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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쉭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가까운 곳에서 무서운 폭발이 일어났다. 어찌나 폭발이 셌던지 서가들이 넘어질것처럼 세게 흔들렸으며 창문들이 깨여져나가고 천정에서 흙부스레기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리였다.

전상음은 금시 무너질듯이 몸부림치는 건물의 진동에 공포를 느끼며 한쪽벽에 기울서하니 넘어진 서가를 꽉 붙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김포비행장과 영등포지구에서 들리던 폭음과 총소리는 밤이 지나자 서울시내의 각곳에서 어지럽게 울려왔다. 한치의 땅, 하나의 건물, 하나의 거리를 놓고 적아간에 치렬한 시가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상음이, 어디 있나? 상음이!》

매캐한 화약내와 흙먼지가 자욱한 방안공기를 가르며 문쪽에서 귀익은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림진우였다. 그의 뒤를 따라 연밤색코트차림에 흰 목수건을 돌려쓰고 배낭을 가뜬히 멘 진애가 들어서는것이 눈에 띄였다.

《여기 있는줄 모르고 허튼델 다니며 찾았구만.》

너저분한 방안을 한번 휘둘러본 림진우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전상음은 대답대신 씩 웃었다. 그는 저으기 긴장해하는 진우며 낯빛이 핼쑥한 진애의 얼굴을 일별하고나서 헌헌하게 대답했다.

《이 상음일 부리당의 하늘소처럼 여긴거구만. 다들 가는데 나두 따라야지. 바늘따라 실 간다질 않나.》

《자식.》

림진우는 낯빛을 풀며 손을 들어 그의 한어깨를 툭 쳤다.

《그런걸 난 또 어쩌나 하고 근심했댔지. 어때, 진애야. 이 오빠의 짐작이 맞지?》

《오빠두 참.》

《이자 자네 얘길 했댔어. 이 앤 글쎄 자네가 북행길을 썩 달가와하지 않는다는거야. 그래서 저두 떨어질 소리를 하데. 그래 내 욕을 좀 했지. 또 장담했고. 한데 내 짐작이 틀림이 없거던.》

《오빠! 시간.》

《오참, 그렇지.》 림진우는 그제야 펀뜩 놀라 상음이를 재촉했다.

《자, 그럼 빨리 가자구. 시청앞에서 우리를 기다려.》

《잠간만.》

전상음은 앞서걸으려는 그들을 멈춰세웠다.

《조금만 량해를 구하자구. 이걸 가져가야지.》

《그건 뭔가?》

《여태껏 모아두었던 내 재산이야, 악보.》

전상음은 쭈그리고앉아 바삐 손을 놀려 책무지를 뒤지며 악보들을 골라내였다.

《짐스럽지 않을가, 북에도 이런 악보들이 많겠는데.》

《이건 원전악보네. 출판업자들이 출판할 때마다 구미에 맞게 조금씩 뜯어고치는 그런게 아니지.》

《그럼 이것두 넣으라나?》

진애에게 도와주라는 뜻으로 손짓하고나서 림진우는 상음의 곁에 끓어앉아 민족음악총보들을 집어들었다.

《내버려두게. 그거야말로 짐이야.》

《왜 그러나. 이것도 역시 우리 문화재산에 속하는거 아닌가.》

《문화재산?》

전상음은 손놀림을 멈추고 반문하였다.

그는 갑자기 진우가 든 악보들을 손가락질하며 자기가 든 악보를 흔들어대며 어성을 높였다.

《그게 어떻게 재산이 될수 있어? 그래 내 그 도도리, 배뱅이굿가락따위나 건져내려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 서고에 뛰여들어온줄 아나? 문화재산이라, 천만에.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문화재산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작품들, 전세계가 인정하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하이든의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일세.》

《허 자네두, 내가 가지고가면 될텐데 성은 왜 내나. 자, 시간이 없어. 빨리 짐을 싸들고 일어나자구.》

잠시후 시청앞을 출발한 자동차는 총포탄이 작렬하는 시가지를 벗어나 양주방향으로 가는 도로에 들어섰다.

림진우는 가면서 말해주었다.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으로 전선경비사령부협주단이 조직되였는데 협주단 기본인원을 몇개 소조로 나누었으며 첫 조는 벌써 사나흘전에 서울을 떠났다는것, 진우네 조는 김포비행장방어전투에 참가하고 돌아오던중에 폭격을 만나 지체되는 바람에 맨나중에 떠나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이제 양주서 가평, 춘천, 화천으로 꺾었다가 평양쪽으로 길을 돌리면 금시 순천이야. 도로도 안전하고 자동차도 있겠다 순천에 가면 우린 기본대렬과 만나게 될거네.》

그러나 그들이 가는 로정은 진우의 장담처럼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시로 변하는 전선형편으로 하여 림진우네들은 불쑥 나타난 미군기갑부대의 추격을 받아 온 길을 되돌아 달리기도 했으며 빈번히 출몰하는 반동분자들때문에 기본도로를 벗어나 에돌아가기도 했다. 여기에 마가을의 선득한 랭기와 식량난 역시 그들을 항시적으로 위협하고있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떠날 때부터 푸르럭거리던 자동차마저도 기관이 마모되여 서버리는통에 일행은 사리원근방에서부터는 도보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걸음마다 층층이 막아나서는 온갖 난관들, 그것은 진우네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것이였다. 그중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은 전상음이였다.

그는 자기가 겪고있는 어려움을 달게 받아들일수 없었다. 전상음은 추위와 굶주림, 지어 시시각각 생명을 위협당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웃는 곁의 사람들의 사고가 리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포와 불안을 감추어보려는 일종의 허세라고 단정하고있었다. 상음은 오직 미궁같은 앞날이 불안스러웠으며 선택을 경솔히 하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에만 싸여있었고 그래서 자체모순에 빠져 허덕거리고있었다. 만일 림진우오누이와 굳게 맺어진 인간관계가 없었더라면 그는 벌써 모순의 해결을 위하여 합리적인 출로를 찾아 즉시 행동하였을것이다. 허나 그가 안깐힘을 쓰며 놓지 않는 그 감정도 차츰 식어가고있다는것을 전상음이는 물론 진우도 진애도 그 누구도 알수 없었다.

도보로 상원을 떠난 일행은 며칠동안의 행군끝에 배산고개어방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알을 세여먹던 닦은 강냉이마저 떨어져 길량식을 구하지 않고서는 목적지까지 갈수가 없었다.

림진우는 일행중 제일 건장한 사람들을 데리고 식량을 얻으러 인가를 찾아 내려갔다. 여기에는 전상음이도 포함되여있었다.

서북쪽방향으로 되짚어내려와 근 반나절을 헤매고나서야 마을을 하나 찾아낸 진우네들은 너무 기뻐 한달음에 동네어귀에 들어섰다. 꽤 깊어보이는 골안을 따라 띄염띄염 집들이 들어앉은 마을은 무척 아담했다. 그런데 정작 들어서니 멀리서 보기와는 다르게 마을에는 알수 없는 적막이 무겁게 깃들어있었고 행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첫집과 마찬가지로 어느 집을 돌아보아도 비여있었으며 눈에 띄우는것는 오직 깨진 장독이며 부서진 문짝, 울타리, 무엇에 의해선지 온통 짓이겨진 배추밭들뿐이였다.

림전우를 따라 집들을 돌아보며 마을끝에 이른 전상음은 허리에 두손을 얹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틀전부터 때없이 찾아드는 허리아픔이 발작했던것이다.

《몸을 차게 건사해서 더하지 않나?》

림진우의 걱정어린 위로였다.

《내게 털요가 있는데 오늘 저녁엔 그걸 덮고자라구.》

《괜찮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뭐.》

동통부위를 세괃게 주무르며 상음은 흔연하게 대답했다. 아픔이 덜해지는감이 들었다. 손놀림을 멈추고 무심히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는 갑자기 덮쳐드는 엄청난 전률에 으드드 몸서리를 쳤다.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무서은 괴성이 터져나갔다.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량식창고 비슷한 목조건물앞에 되는대로 쌓여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발견하였던것이다. 피가 랑자해서 쓰러져있는 사람들속에는 너덧명의 인민군부상병들도 섞여있었다.

림진우네들은 마을에 무겁게 드리운 까닭모를 음산하고 싸늘한 적막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다.

《누가, 누가 이런···》

누군가의 억눌린 목소리가 마치 꿈속에서처럼 들려왔다. 사람들과 함께 그리로 다가간 전상음은 눈길을 허둥거리다가 발치에 뒹구는 이불거죽같은것을 주어들었다.

– 《대한민국》의 전시법에 따라 북한빨갱이를 도와주거나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렇게 엄정처형할것이다. –

《개새끼들.》

상음의 손에서 나꾸채듯이 당겨들고 읽어본 림진우는 격분을 터뜨리였다.

《그러니까 인민군부상병을 숨겨주었다고 이런 승냥이짓을 벌려놨어. 아,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야만들, 개새끼들》

일행은 한동안 끔찍한 참변앞에 얼어붙은듯이 서있기만 했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신음같기도 했고 흐느낌같기도 했다.

《산 사람이 있구만. 저쪽이요.》

사람들은 림진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목조건물뒤로 달려갔다. 건물뒤에 이른 그들은 또다시 몸서리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마른 강냉이대만이 누런 이파리를 실렁대는 거기에도 역시 무자비한 살륙의 선풍이 휩쓴 흔적이, 녀인들과 아이들의 시체가 한벌 쭉 깔려있었던것이다. 이상한 소리는 어머니인듯 한 젊은 녀인의 가슴에 두손을 얹고 온통 피칠갑을 하고 앉아있는 너덧살정도 나보이는 계집애가 내고있었다. 그 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흐느끼고있었는데 사람들을 보자 공포에 질려 시체들속을 비집으며 몸을 숨기려고 버등거리는것이였다.
《우리 암만 시간이 바빠도 시신들을 감장해주고 갑시다.》
조금 지나서 전상음의 귀전에 퍼그나 갈린 진우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신동무, 이 앨 데리고 먼저 떠나오.》
오후 한겻이 되여서야 일을 끝낸 일행은 식량공작에 착수하였다. 살륙과 함께 략탈과 파괴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식량이 남아있을리가 만무하였다. 땅거미가 짙게 내린무렵까지 헤매고난 뒤 그들이 얻은것이란 겨우 서너바가지나 될 강냉이, 그것도 한절반 불에 탄 강냉이였다.

전상음은 그동안 내내 아무말없이 무의식적으로 일행을 따라다니였다. 때로 그는 일손을 멈추고 공허한 표정으로 마을을 둘러보며 멍하니 서있는가 하면 무엇인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고통스러운 인상을 짓기도 하였다.

《속이 말짼가?》

일행이 귀로에 오르자 림진우가 다가와서 물었다. 상음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가마며 화식도구가 들어있는 배낭을 추슬러메고는 진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순천에 당도하면 그 다음목적지가 어딘가?》

《만포까지 가야 할거네.》

《국경이구만. 조선 한끝···》

전상음은 나직이 긴숨을 내쉬였다.

《진우, 자네는 시국형편을 잘 알테니 어디한번 말해보게. 어떻게 될것 같나. 이 란리는 도대체 언제 끝날것 같은가.》

《이건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야.》

《그럴테지.》

상음은 머리를 끄덕이며 미련없이 림진우의 말허리를 꺾었다.

《자넨 인민군은 반드시 남하하며 결국엔 이 전쟁이 북의 승리로 끝날거라고 주장하고싶겠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알노릇이고. 어쨌든 이보게, 인민군이 밀고내려온다고 치세. 여하간에 피는 또 흘려야 하겠지?》

《그건 무슨 소린가, 누가 피를 흘린단 말인가?》

《자네도 방금 보지 않았나. 그들을 왜 죽였어? 적수공권의 늙은이들과 녀성들, 아이들을. 그네들은 단지 인도주의적인 감정에서 인민군부상병을 도와주었을뿐이지. 그것이 죄였네, 적군을 도와주었다는 죄. 그래 인민군의 남하가 시작되면 이런 일이 없을거라고, 되풀이되지 않을거라고 믿나? 내 말을 마지막까지 듣게.》

전상음은 무엇인가 말하려고 들먹거리는 진우의 거동을 제지시켰다.

《되풀이될거네. 왜냐하면 인민군도 역시 전쟁을 하고있으니까. 전쟁이란 뭔가? 인간성정에 잠재하고있는 멸시와 학대, 증오와 잔인성, 타인에 대한 온갖 무차별적인 배타정신의 산물이 아닌가. 그래 전쟁이 사리와 분별, 경우와 도리같은 인간성을 아나? 그런걸 바지가랭이에 붙은 엉겅퀴만큼도 여기지 않는게 전쟁이 아닌가?

같네, 이편이나 저편이나. 악에 달이 뜬 눈에는 전투원과 녀성들, 늙은이들, 어린이들의 구별이 필요없네. 오직 누구편인가 그게 중요하지.》

《···》

《무슨 일이나 그건 언제나 사회와 인류앞에 일종의 륜리도덕적가치를 가지는 법이네. 그러나 살륙의 이 대무희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왜? 전쟁은 곧 리념의 힘겨루기이고 특정인이라 일컫는 정치가들의 너절한 정치적야심과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때문이네.

리념, 정치가. 진우, 난 이것에 혐오감을 느껴. 그들은 어째서 여기에 그토록 매력을 느끼며 사람들을 괴롭히는것인가. 그네들은 5천여만의 인명을 앗아간 2차대전을 연출하고도 무엇이 성차지 않아 이 땅, 이 자그마한 땅을 둘로 갈라놓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죽일내기를 벌리게 하는것인가.

민족은 지쳤어. 왕가의 고리타분한 세습정치에 시달렸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험한 고생을 했어. 력사의 운명, 이 운명의 세파속에 부대낄대로 부대껴온 우리 민족이 세기를 내려오며 일일천추로 바라온것이 뭔줄 아나? 안정과 화목, 평화와 부요한 살림이였네.

해방후 그 소망이 피였댔지. 아침이슬처럼 잠간, 마치 무지개처럼. 그다음엔 둘로 갈라지고 또다시 신앙이요, 리념이요 하는 대립과 반목의 력사가 시작되고.

끝장내야 돼, 어떻게 하나. 인위적인 운명이 강요한 이 전란을 끝장내고 민족의 소망을 한시바삐 풀어줘야 한단 말이네.》

《난 자네의 그 견해에 공감하지 못하겠어.》

림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아까처럼 전상음이 자기 말을 제지시킬가봐 그러는지 빠른 말씨로 뒤를 잇는것이였다.

《인민군이 진격하면 누가 피를 흘린다는건가. 민간인들? 상음이, 자네도 잘 알고있지 않나, 저번에 인민군이 서울을 해방할 때 어떤 일이 있었나. 인민군이 수백문의 야포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고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았댔지. 실제적으로 그 소문은 영 무근거한것은 아니였고. 그런데 서울에 포탄이 떨어졌댔나. 오히려 시가전에서 피를 흘린것은 인민군이였어. 후에 우리가 안 사실이였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하셨댔나. 문화재와 시민들이 상할수 있다고 야포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지.》

《···》

《자네 일을 놓고봐도 그렇지. 자네의 견해대로 한다면 인민군은 전상음이라는 인간을 가만놔두지 말아야 했었네. 이전의 일은 젖혀놓고서라도 전쟁이 시작되자 리승만의 어용나팔수가 되여 미국의 전쟁참전을 주장한 그것만으로도 엄벌에 처하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인민군은 어쨌나. 용서했어. 재능으로 민족의 이름을 떨쳐보겠다는 자네의 그 량심을 귀히 여겨 용서하고 무대에 내세워줬지.》

《그만하게.》 전상음은 울기에 차서 부르짖었다. 《난 어디까지나 예술가야.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 당시엔 사고와 견해가 혼탕이 되여있었단 말이네.》

《지금은 어때?》

진우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자 그는 당황해서 머뭇거리였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네.》

진우의 목소리는 상음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전쟁의 륜리도덕적측면, 리념의 힘겨루기 아니, 전쟁에 대한 자네의 견해는 온당치 못하네. 일반론에 불과해.

이보라구 상음이, 전쟁을 그래 누가 일으켰나. 미국과 리승만이 아닌가. 그네들은 오직 공산주의에 대한 배타적인 증오와 자기 리념의 지배령역확대, 이걸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평등과 백성중심의 정치로 민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있는 공화국을 상대로 해서 말일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건 해방된 이남땅에 실시된 토지개혁과 같은 경이적인 현실을 체험하며 북을 리상사회의 모델이라고 격찬하던 자네 얘길세. 정당한 평가였지. 한데 북에 대하여 아무런 파악이 없고 알려고조차도 않은 자네가 다 그 정도였는데 공화국정치의 진가를 생활로써 체험한 민중의 심정은 어떠했겠나. 그들은 북의 정치를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를 따르는것을 천분으로 간주하고있었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전쟁을 강요했어. 그래 민중이 이걸 순편히 받아들였나? 땅을 도로 빼앗고 노예처럼 살기를 강요하는 이 전쟁을 우리 민중이 용납하고있는가.

상음이, 오늘 선과 정의는 민중의 편, 북에 있네. 때문에 나는 이 전쟁을 그 무슨 리념의 힘겨루기나 정치의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온갖 불의와 정의의 대결, 온갖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대결로 생각해.》

《민중을 거들면서 외피를 씌우지 말게. 어쨌든 자네 주장의 리면에도 리념이 싱싱하게 태동하고있구만.》

전상음은 거칠게 툭 내뱉았다.

《차라리 이전처럼 자본주의에 비한 공산주의의 영원성을 주장하는게 자연스럽네. 자넨 그래 북을 아나? 거기서 살아봤나?》

림진우는 허거프게 웃었다.

《살아본적이야 없지, 한번도. 그저 해방후 5년동안 북에서 해놓은 일을 들으면서 그리고 북과 반대되는 〈남한〉땅의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에 공화국을 알게 되였어. 이 전쟁을 통해서도 체험했고.》

전상음은 머리를 수굿하고 걸었다. 금방 달이 떠올라 길이 훤하게 보였는데도 그는 자주 돌부리에 걸채여 몸을 비칠거리였다. 상음은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독백하듯이 입을 열었다.

《진우, 여하튼 우린 예술가지. 이제 만포에 가면 으음- 북에 가면 자유로운 예술가생활을 담보받을수 있나? 이를테면 자기의 견해와 개성을 작품에 마음껏 표현할수 있을가?》

《왜 없겠나? 자네도 공화국예술인들이 부민관에서 한 공연을 보았지?》

《확실히 자넨 믿음이 강하구만. 하긴 오래전에 벌써 공산주의이데올로기에 심취되였댔으니까.》

전상음은 진우의 불만스러워하는듯 한 얼굴빛을 보고 시정한다는 투로 한손을 저었다.

《노여워 말게, 한마디 그저 해본건데. 아, 어쨌든 이 전란은 언제 끝이 나겠는지. 승부가 빨리 나야 이 수난이 끝나겠는데.》

림진우는 머밋거리다가 위안조로 그루박았다.

《옳아, 승부가 나야지. 인민군대는 반드시 재진격할거네. 믿게, 미국놈은 꼭 망해.》

아니야. 전상음은 일순 내심으로 부르짖었다. 재진격? 미국이 가만 있을것 같나? 그 나라는 강대국이야. 히틀러와 무쏠리니, 제국 일본을 타승한 2차세계대전의 대전승국이란 말이네. 비록 일시적으로 패한다해도 미국은 부유한 나라여서 아무리 퍼내도 마를줄 모르는 딸라와 쟁기를 이 전쟁에 쏟아부어 이기고야말걸세.

그들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인지 꺼내여 그것을 깨려고 노력하였으나 전상음은 자기와 진우사이에 벌써 눈에 보이지 않는 두터운 장벽이 가로놓여있다는것을 은연중 직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달빛이 내려앉아 희읍스름하게 보이는 개울을 건너 일행이 숙영하고있는 소나무숲속에 들어설 때까지도 그들은 누구도 말을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