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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어느날.

미국의 중서부를 련결하는 련방도로에는 주말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들과는 달리 록키산별장구역으로 들어가는 한대의 검은색 대형 《벤즈》가 있었다. 인차 국도를 벗어난 《벤즈》는 계곡과 구릉들사이로 우불구불 휘여돌아간 작은 도로를 한시간정도 달려 침엽수림속에 들어앉은 동방정교사원풍의 꽤 큼직한 독립가옥앞에 멎어섰다.

차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동양인치고는 드문 여섯자가까이 되는 장대한 체격을 가진 반백이 훨씬 넘은 늙은이였는데 까만 샤쯔에 흰 넥타이를 매고 같은 색갈의 바지를 받쳐입어서인지 단정하고 무게있는 기품이 엿보이고있었다. 그는 이전에 미국 시카고교향악단의 작곡가로, 피아노연주가로 명성을 떨치였던 재미동포음악가 전상음이였다.

잠간 서서 우중충한 산발이며 가파로운 계곡들을 무심히 휘둘러본 그는 곧 차문을 닫고 빠른 걸음씨로 집으로 들어갔다. 전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전상음은 교향악단과 작업시 신호를 주기 전에 그러하듯 방안 기물들을 엄격한 눈초리로 지켜보다가 얼굴앞에 쳐든 두손으로 허공을 날카롭게 휘저었다. 입가에서는 브람스의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그는 오늘 기분이 몹시 좋았다. 미국의 동포사회계에서 유력자로 알려진 아이오와주의 한 음악애호가로부터 자연스러운 기회를 마련하여 북부조국을 방문할수 있도록 힘을 써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던것이다.

꼭 가보고싶었던 땅이였다. 그 소원을 성취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였던 그였다. 그런데 드디여 만단시름이 풀리게 되였다. 윤이상씨와도 련계가 깊고 북에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니 소문없이 조용히 다녀올수 있도록 틀림없이 약속을 지킬것이다. 미소가 저절로 피여오른다.

전상음은 텔레비죤을 켜고 그앞에 마주앉았다. 화면에는 최근의 불안정한 지역정세문제들, 로씨야의 체츠냐며 팔레스티나의 가자지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정세들이 방송원의 해설과 함께 현지촬영장면들로 방영되고있었다.

흥심없이 얼핏얼핏 텔레비죤을 보며 커피를 타던 상음은 문득 손놀림을 멈추고 화면에 눈과 귀를 강구었다. 지역정세해설뒤끝에 조선의 북과 남에서 진행하고있는 흩어진 가족친척상봉상황이 방영되고있었는데 화면에 비쳐진 사람들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던것이다. 누굴가? 추억의 갈피를 빠르게 뒤번지며 애써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얼굴이 전상음이에게 준 충격은 너무도 컸다. 한동안 꼼짝 않고 과거를 더듬던 그는 마침내 그 이름을 찾아내고야말았다.

옳다. 틀림없는 그다. 전상음은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소꿉시절의 다정한 친구 림진우, 그러니 여적 살아있었단 말인가.

저으기 흥분하여 커피잔을 든채로 전실을 오락가락하던 그는 소탁자로 다가가 허둥거리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텔레비죤방송회사를 찾아 편집물의 출처를 확인해보니 서울에 주재하고있는 본 회사의 기자단이 보내준것을 편집한것이라고 한다. 편집물의 인터네트봉사를 주문한 상음은 대형콤퓨터를 켜고나서 후들거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고 발리돌을 찾았다. 약을 먹고나니 조금 진정되는듯싶었다.

곧 콤퓨터화면에 편집물이 현시되기 시작하였다. 편집물에는 년초부터 진행한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친척상봉들이 수록되여있었는데 주문이 있어서 그런지 림진우의 상봉장면들이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친척들과 담소하는 진우, 어머니묘소앞에 엎드려 오열을 터뜨리는 림진우, 기자들속에 에워싸여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습.

세월의 무정한 흐름도 친구의 모색이며 습관을 지워버리지 못하는것 같았다. 입귀를 처뜨리며 웃는거랑 격하면 손짓, 몸짓이 부산한 거동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옛 친구의 일거일동을 걸탐스레 들여다보던 전상음은 류다른 장면이 나타나자 안경을 고쳐쓰며 화면에 바투 웃몸을 기울이였다. 림진우가 친척들에게 무엇인가 정히 포장한 지함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진우의 음성이 울려나왔다.

《이건 우리 장군님께서 너희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민족앞에 불초했던 지난 일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국통일성업에 진심을 다 바쳐야 한다. 우리 다같이 김정일장군님께 인사를 올리자.》

옷깃을 여미며 몸을 일으키는 림진우를 따라 친척들이 우르르 일어선다. 하나같이 불그레하니 상기된 얼굴들, 눈에 어려있는 감격과 행복감. 모두 두손을 높이 들며 《김정일국방위원장님 만세!》를 웨친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시라니, 그분이라면 미국과 서방이 인정하는 세계적인물이신데 그럼 진우 이 사람이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총애를 받는 측근신하란 말인가. 대단해졌군.

전상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화면은 계속 흘러갔다. 차츰 마음이 무르녹으며 코끝이 매워났고 눈앞이 어룽어룽 흐려왔다. 맨나중에 림진우는 친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고향하늘》을 불렀는데 입속으로 따라부르던 상음은 그만에야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북받치는 그리움, 오래간만에 마음속에 깃드는 부드러운 훈향. 이 고결한 감정이 상음이로 하여금 자기를 지탱할수 없게 한것이였다.

두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그러고있던 전상음은 비척거리며 피아노가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는 건반에 두손을 얹고 마음을 진정했다가 선률을 타며 나직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산 저너머로 멀리 보이는

새파란 고향하늘 그리운 하늘

언제나 고향집이 그리울제면

저 산너머 하늘만 바라봅니다

 

뇌리속에 떠오르는 옛시절의 추억, 추억들. 물지게를 메고다니던 날들, 달밤, 진창길, 범벅밥덩이들, 땀내가 폭 배인 포대기냄새, 생일날 진애에게서 꽃을 받던 일. 그게 무슨 꽃이였던가. 홍장미? 아니야, 앵초다발속의 카네숀이였어. 진애! 림진애!

사랑했던 처녀, 사랑했던 안해의 이름을 되뇌이며 전상음은 벽에 걸린 진애의 초상화를 올려다보았다. 학생복차림을 한 림진애는 옛시절의 이쁘고 착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수태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고있었다. 그때 높아가는 나의 수강료를 대지 못해 안타까와하다가 자기의 피를 판적도 있었지. 그 일이 연고로 돼서 우리들사이에는 애정이 싹텄고.

상음씨, 진애는 영원히 당신 인생의 성실한 조률사가 되여주겠어요. 사랑의 언약이 담긴 격렬한 포옹끝에 림진애가 한 이 말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애틋하고 아릿한 옛시절의 추억은 구름송이처럼 계속 피여오르고있었다. 오늘은 참으로 내 인생에서 기쁜 일만 생기는 날인가부다.

피아노뚜껑을 덮은 전상음은 휘파람으로 례의 곡을 불어대였다. 이런, 브람스가 다 뭔가. 푸른 하늘, 그리운 하늘이지. 내심 혀를 찬 전상음은 곡목을 《고향하늘》로 바꾸었다.

아! 나의 다정한 벗들, 한시바삐 만나고싶구나. 결국 스무해전에 서울에 갔을 때 들은 소식, 그네들이 잘못되였다는건 거짓말이였단 말이지. 진애가 보고싶다. 그 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때 몸에 품고있던 애기는 어떻게 되였을가. 아들일가, 딸일가.

편지를 쓰자. 그런데 이건 늦지 않는가. 인터네트망을 리용해볼가. 아니다,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에 문의해보는것이 더 빨라.

어찌나 과열된 기쁨에 떠있었던지 전상음은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까마득히 잊고 이것저것 펜이며 악보를 집었다놓으며 허둥거리기만 하였다. 조금 시간이 흘러서야 펀뜩 정신을 차린 상음은 손전화기를 꺼내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부를 찾았다.

《아, 친구를요? 도와드립시다. 외무성에 의뢰해서라도 선생의 희망이 성취되도록 꼭 힘써드리겠습니다.》

사연을 들은 상대자는 그의 요청을 아주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이 성사되면 제 사례를 크게 하겠습니다.》

《이거야 인도주의문제인데 사례는 무슨 사례입니까. 더우기 지금이야 6. 15시대가 아닙니까. 조선사람이라면 이런 일에 응당 발벗고 나서는게 옳지요. 그럼 좀 물어도 괜찮을가요?》

《어서 그러십시오.》

친구의 이름과 집주소, 직업을 묻는 상대방에게 전상음은 될수록 짧고 정확하게 알려주려 하였으나 흥분하여 자주 틀리게 답변하군 했다.

《음, 그렇군요. 곧 알아보겠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만나서 나눴으면 좋겠는데··· 래일 오후쯤 여기로 와주실수 있겠습니까?》

《그야 어련하겠습니까. 갑지요.》

《아참, 한가지 잊었는데 선생, 오늘중으로 조회를 해보자면 당장 자그마한 정보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말입니다. 선생은 그 친지분들과 언제 어떻게 갈라지게 되였습니까?》

그 순간 전상음은 온몸을 휩쌌던 즐거움이 졸지에 사라지는감을 느꼈다. 그다음 들려오는 아츠러운 비행음, 폭음, 불기둥,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의 무리, 그속에서 들려오는 너털웃음과 함께 미해병대 소좌 커튼의 술에 취한 목소리.

미스터 상음 전, 당신 친구일행은 괴멸되고말았소. 오늘 아침 우리 헬기편대와 륙전대원들의 협격으로 말이요. 몇이나 살아남았겠는지. 산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종당에는 저절로 사멸되고말거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들은 바보요. 예술보다 리념에 대한 광열적인 미련때문에 제손으로 제 눈을 찔렀거던.

자, 아메리카의 신화를 위하여, 영웅 맥아더장군을 위하여 듭시다.

아!- 불시에 전상음은 내장이 통채로 쏟아져나오는것 같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전실바닥에 주저앉았다. 놀란듯 한 목소리가 손전화기에서 계속 울려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선생, 말씀하십시오, 예?》

《미안합니다. 제 좀··· 제 좀 있다가 다시.》

전상음은 지꿎게 캐여묻는 상대방에게 량해를 구하고는 서둘러 손전화기를 꺼버리였다.

전실에는 잠시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록키산줄기를 넘어오는 해풍과 골짜기기류가 합쳐 수림을 가락맞게 뒤흔드는 바람소리만 들릴뿐이였다.

이맘때면 늘 부는 바람소리, 일명 피서객들이 《룰라비(자장가)》라 부르는 유정하고 아늑한 바람소리였건만 그러나 지금 이 시각 그것은 량심이 눈을 뜬 그날부터 오늘까지 심신을 괴롭히던 그 목소리처럼 들리는것이였다. 너는 그때 어째서 북행길에 오를 결심을 하였는가. 그랬던 그 결심을 너는 무슨 리유로 포기해버렸는가.

이따금 전상음은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1950년 가을 미군비행대의 폭격이 있었던 그날이 없었더라면 자기의 인생이 바르게 흘러갈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상음은 매번 도리머리를 젓군 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 만약 그날이 없었더라도 그때 너의 성정과 사고는 기어코 바른 인생길을 역행하였을것이라는 량심의 목소리에 떠밀려서였다.

전상음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전실 한벽면을 거의다 차지하고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의 뇌리속에는 반세기전 가을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떠오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