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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어머니.

형님네 가정은 잘있는지, 귀여운 내 조카애들도 이젠 퍽 컸겠구만요. 우리 고향은 북방의 해안도시여서 아직도 겨울기운이 남아있겠지만 여기 릉라도는 한창 덥습니다. 새벽에 섬을 한바퀴 달리고나면 싱싱한 기운이 온몸에 뻗쳐나고 그러면 젊음의 긍지와 자부심이 북받쳐오르군합니다. 낮에 땀이 흠씬 나도록 일하고나면 진정한 삶의 희열에 떠밀려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어머니, 저녁이면 또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슴슴한 물비린내를 맡으며 강가에 앉아 별들이 내려앉아 빛나는 대동강을 바라보며 사색이라는 〈즐거운 괴로움〉에 시달리군 합니다. 그러면 래일에 대한 자신심과 희망으로 하여 밤을 지새고싶은 심정이구요.

어머니, 그런데 이것은 갑자기 옛일로 되였습니다. 지금 저는 이것이 아득한 과거로 여겨지고 마치 꿈을 꾸고난것 같습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며칠전에 제가 맡은 작품을 야외무대에 올려놓고 첫 실동훈련을 하였습니다. 잘 안되였습니다. 재수정이나 부분적인 의견이 제기된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상하고 기재들이 파손되였으며 그래서 저의 작품은 당분간 중지되였습니다. 영영 파묻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든것을 각오하고있습니다. 엄중한 사고를 발생시켜 귀중한 우리 동무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의 설비기재들을 못쓰게 만들었으니 제가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앞에 나설수 있으며 어떻게 감히 자기를 변명할수 있겠습니까.

이 사나흘어간에 사람들속에서는 저와 작품을 두고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아가고있습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분하기만 하고 반발심만 솟구칩니다.

어머니, 제 왜 어머니에게 굳이 제 심정을 토로하는지 아십니까.

법적, 행정적처벌을 받는것은 응당합니다. 교예무대에서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가혹한 일이 생긴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고통스러운것은 제가 이름을 날리고싶어서, 빨리 당대렬에 들어서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힌탓에 모험을 하였으며 사고를 일으킨 후에는 그걸 변명하기 위해서 된다고 그냥 우긴다는 뒤말들입니다.

이런 너절한 뒤소리를 듣고서야 제 어찌 분격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이 아들은···》

후- 그만하자. 편지에 괴로움을 진하게 쏟아내던 강진호는 더운 숨을 내뿜으며 펜을 멈추었다. 편지를 읽고 못내 괴로워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편지종이를 집어들어 쪼각쪼각 찢어버리였다.

오후내껏 고민속에 싸여있다나니 머리가 흐리터분하였다. 진호는 찢어버린 편지를 모아 태워버리고 문밖을 나섰다.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기분을 바꾸고싶었다.

늦은 저녁이여서 그런지 유보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유보도 계단아래 강기슭에는 드문드문 밤낚시군들이 앉아있는것이 보였고 웃도로쪽에서 훈련을 끝내고 돌아가는 출연자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들이 가끔 들려왔다. 비릿한 물냄새를 싣고 강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약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하였다.

강진호는 왜 그런지 림진우총연출가가 보고싶었다. 그가 걷는 이 유보도는 새벽에 진우와 함께 달리기를 하는 구간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저녁산책을 하며 작품을 토론하는 산보길이기도 했다. 총연출가는 진호에게 있어서 작품창작의 제일가는 동반자, 지지자였다. 부족점이 많아 의견이 분분했던 초시기에 그의 진지한 설득과 사심없는 방조가 없었더라면 강진호의 예술가적재능은 빛을 못 보고 파묻히게 될번 하였을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결과는 암담하게 끝나지 않았는가. 그 감정이 되살아나서인지 좀처럼 바뀌여지지 않는 기분이였다.

한 십분가량 기계적으로 오락가락하던 강진호는 산보를 단념하고 웃도로쪽으로 올리누운 계단우에 발을 얹었다.

《진호동지!》

뒤쪽에서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한정미였다. 정미는 댓걸음 떨어진 거리에 서있었다.

《저기 좀 가자요.》

처녀는 오연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다가 제잡담 돌따서서 유보도휴식터의 대리석란간쪽으로 걸어갔다.

《진호동진 어째서 사람이 그렇게두 곧은목인가요?》

강진호가 란간에 이르자 정미가 한 첫말이였다.

《엄중한 사고가 난데다가 태반이 반대하는걸 보면 전망이 불보듯 뻔하다는걸 알겠는데 그게 뭐예요. 왜 자꾸 우기면서 곁의 사람 보기 딱하게 그러는가 말이예요.》

얼마동안 얼떠름해있던 강진호는 한정미가 말하는것을 듣고서야 처녀가 찾아온 까닭이며 노여움을 터뜨리는 리유를 알아차렸다.

《총연출가동지에겐 미안하게 됐어.》

한정미는 흘껏 눈을 치떴다.

《아니, 할아버지한테 미안할건 하나도 없어요, 진호동지 일이 문제지. 거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사실말이지 그 작품의 운명엔 우리 일이 관계되여있잖아요.》

우리 일? 리해되였다. 작품이 성과적으로 완성되면 나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조선로동당 입당청원도 하게 될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한정미일것이다. 그것때문에 평시에 늘 애를 끓인 녀자였으니까. 나를 만나기 이전에 정미의 대상자기준은 가풍과 함께 처녀보다 사업성과가 압도적으로 특출하여 사회적존경과 신망을 받는, 그래서 이른바 자기를 내려다보는 살뜰한 남자가 아니였던가. 그러니 이번 작품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것은 무리가 아닌것이다.

《그럼 정민 내가 어쨌으면 좋겠어?》

딩딩하던 한정미의 얼굴기색이 풀리였다. 정미는 두손을 가슴앞에 모두어잡고 한걸음 다가갔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봐요. 준비위원회에 찾아가 협의회에서 한 주장 철회하고 방향을 돌리겠다고 제기해요. 작품을 편안하게 고치면 될거 아닌가요. 솔직한 심정인데 나두 처음부터 탄력비행의 난도가 높아 뜨아했댔어요. 아니나다를가, 어쩌문 참.

어때요? 진호동지, 그렇게 하지요?》

《그렇겐 못해.》

강진호는 몰풍스럽게 고집했다.

《왜 못해요?》

《내가 주장한건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때문이야. 난 앞으로 교예장을 다른 작품으로 바꾼다 해도 협의회에서 한 주장을 거둘 생각은 꼬물도 없어.

총연출가동지의 심정도 마찬가지일거야. 그가 뭐 마음에 둔 작품이여서, 도와준 작품이여서 손을 들어 지지해준줄 알아? 총연출가동진 예술가의 량심이 가리키는대로 행동한거야.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작품을 부정하다니, 그렇게는 절대루 못해. 만약 불피코 작품을 바꾸어야 한다면 난 내 작품을 론문으로라도 무조건 주장할테야.》

《할아버지는 왜 자꾸 꺼드는가요? 지금 할아버진 우리 일에 방해만 될뿐이예요.》

한정미는 짜증을 냈다. 강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일에 할아버지는 방해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나도 들어있지 않는가. 좋게만 생각하자.

《그러니까 끝내, 끝내 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겠다는거군요, 다름아닌 제 부탁을.》

한정미는 울기가 올라있는 진호의 얼굴을 이상한듯 세세히 뜯어보았다.

잠시 그들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경우가 안된것 같은데 진호동지, 제 하나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강진호는 먼발치에 앉아있는 밤낚시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요즘 난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군 해요. 어째서 우리는 마주서면 약속이나 한듯이 어색해하고 따분해하는가요. 우리 집에 인사하러 가자는것도 흔연히 응하지 않고, 근간엔 약속을 어기는 일들도 잦고.

진호동지, 속을 좀 털어놔봐요. 우리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고있어요?》

《···》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언제까지 이렇게만 지낼 작정인가요?》

강진호는 씁쓸한 미소를 띠우며 란간에 얹은 두손우에 어깨를 약간 구부리였다. 가늠할수 없는 앞으로의 문제처리로 하여 괴로움에 싸여있는 련인의 심정은 외면하고 그가 말했듯이 경우에도 어울리지 않는 문제를 내드는 처녀의 처사가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그의 거동에 정도이상의 신경이 가는 모양이였다. 한정미는 밤바람의 서슬에 목언저리에서 흩날리는 머리칼들을 모두어잡아 뒤로 던지며 거의나 따지다싶이 재촉하는것이였다.

《왜 말을 못해요. 툭 터놓기 힘든가요?》

강진호는 울컥했다.

《쓸데없는걸 묻는구만. 지금 그걸 론할 경황이나 돼? 선입견은 버려. 난 우리의 관계를 심각하게 끌고갈 생각은 조금치두 해본적이 없어.》

《아니, 난 오늘 그걸 꼭 들어야겠어요. 어서 말해줘요.》

진호는 무가내로 우기는 처녀를 못마땅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손바닥으로 란간을 가볍게 쳤다.

《좋아, 기어코 알고싶다니 말해주지. 기회가 없어 그랬지 사실 내 전부터 정미에게 하고싶었던 말은 있었어. 하나 묻자구. 그래 휴양을 진짜 가야겠어?》

《휴양이야 공민의 권리인데 어쩜 그런 투로 따지고드는거예요?》

《아니야. 정미는 진짜 몸이 불편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부디부디 휴양을 가겠다고 제기한데는 다른것이 있어.》

진호는 처녀의 대답을 부정하고나서 리면을 파헤쳤다.

《축전참가자선발때 처신을 바로 못해 당조직과 심사위원회로부터 받은 응당한 비판, 그때문에 집단과 동지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것 같은 느낌, 이런것들로 해서 제스스로 모멸감에 차 어딘가 도피하고싶었던거야.

정미네 할아버지를 만나는것도 그렇지. 우리야 원래 〈아리랑〉이나 끝내놓고 두 집 부모들에게 정식 인사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댔어.》

《사람을,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지 말아요. 그만해요.》

진호에게서 귀에 거슬리는 뜻밖의 충고를 들은것이 어찌나 분했던지 한정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는 두손으로 량볼을 감싸쥐는것이였다. 강진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말을 막지 말고 똑똑히 마저 들어. 지금이 어느때야. 한사람이 두몫, 세몫을 맡아안아도 손이 모자라는 바쁜 시절이 아닌가. 그런데 휴양을 가?

정미는 점점 별나게 돼가고있어. 난 이걸 곁에서 목격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고 불쾌해. 이 나라엔 정미보다 더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 많아. 비록 그들은 수수한 작업복을 입고 기대앞에, 콤퓨터앞에, 논벌에 서있지만 알고보면 모두 영웅들이야. 그래도 그들은 내색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못하는 자책감에 싸여 일하거던. 떠받들어주고 내세워줄수록 머릴 숙이구 성실하게 일해야 돼, 더욱 성실하게. 내가 동무에게 언제부터 하고싶었던 말은 이거야.》

어디선가 물면에서 떰벙 하는 물장구소리가 나더니 이내 강변에는 이름 모를 정적이 깃들었다. 아까부터 이쪽을 흘끔거리며 보던 밤낚시군은 왜서인지 혀를 차며 주섬주섬 줄을 거둔다. 그들때문에 물고기를 낚지 못할가봐 자리를 옮기는 모양이였다.

《듣기 좋군요.》

한정미는 볼을 싸쥐였던 손을 풀어 무척 침착한 동작으로 머리며 옷매무시를 천천히 비다듬었다. 몸거둠새를 끝낸 처녀는 란간우에 놓은 선홍색멜가방을 집어들었다.

《참 잘 알았어요. 듣기 좋아요. 동지가 제게 조언을 다 주고. 어쩌면 사랑하는 처녀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험구를 할가. 난 왜 이때까지 이런걸 모르고 지내왔을가. 어디 솔직히 말해봐요. 입당도 하고 명예칭호를 받는게 뭐가 나빠요.》

《난 자기를 속이면서 그런 평가를 받고싶진 않아.》

한정미는 강쪽으로 눈을 돌렸다.

진호는 그가 코웃음을 친것 같이 여겨졌다.

《난 그래도 저를 생각해서 한 권고인데. 할아버지의 관록과 위치, 인끔에 손상이 간다는것을 알면서두 말이예요. 성실하게, 더욱 성실하게 일하라구? 진호동지, 어쩐지 이 말은 자기를 빗댄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강진호는 눈을 무섭게 번뜩이였다. 한정미는 태연하게 진호의 눈길을 피하며 어깨우의 가방끈을 추슬렀다.

《됐어요, 피차에 아픈 말은 그만하자요. 서로 리해를 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함께 가면 안되는거예요. 사랑이 아무리 귀중해도 난 구걸을 하고싶진 않아요. 전 결심했어요. 우리 관계는 오늘로써, 이것으로 그치자요.》

한정미는 랭랭한 얼굴을 오연하게 쳐들고 걸음을 내짚었다. 너무나도 창졸간에 벌어진 일로 하여 아연해서 굳어져있던 진호는 한참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처녀를 불렀다.

《정미! 정미!》

그래도 처녀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냥 걷는다. 차츰 정미의 도고한 뒤모습도 어둠속에 잦아버리고 멀어져가는 구두뒤축소리만이 무정하게 들리였다.

뒤쪽에서 한무리의 밤낚시군들이 다가오고있었다. 그들은 지나치며 뻔뻔스레 진호를 뜯어보았는데 얼굴에는 한결같이 비웃는듯 한 웃음이 늠실거리고있었다. 방금 처녀와 헤여지는 광경을 목격한것 같았다. 그들중 한명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 한가락을 능청스럽게 뽑아댔다.

 

저건너 앞산에 봉화가 떴구나

우리 님을 허절씨구 만나를 보잔다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에익, 강진호는 주먹으로 휴식터 대리석란간을 세게 치며 울화를 터뜨리였다. 갈테면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