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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아오른 《아리랑》관람열기는 실내등 환한 뻐스안으로 그대로 옮겨온듯싶었다. 장발머리네 일행보다 한발 늦어 뻐스에 오른 상음이네는 번마다 실례합니다를 련발하며 비여있는 맨 뒤좌석에 들어가 앉았다.

전상음은 등을 편안히 기대며 좌석의 팔걸이에 손을 얹었다. 그는 흥분을 눅잦히려고 두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자감이 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뜨고 오가는 화제에 귀를 기울이였다.

《야- 난 첨에 배경대가 하는걸 보구 깜짝 놀랐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런걸 할수 있을가. 최고의 〈쇼〉를 일으키는 충격적인 순간, 너무나 멋있고 너무나 통쾌해서 가슴이 다 후련했다니까요. 그걸 찍느라 전지약을 두번이나 갈아댔는데도 모자라 이 혜진아가씨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큰일날번 했어요.》

《뭐 배경대만 그런가요. 공연 한장면한장면은 어느것 하나 흠을 잡지 못하겠어요. 엄청나게 아름답기만 해요. 이번에 내 아인 아빠, 엄마교육보다 〈아리랑〉으로 평양의 태아교육 먼저 받은셈이겠죠, 우리 부부가 일생 고생스레 돈 벌어 가정교사에게 퍼부어도 안될 고급교육. 우리 앤 1시간 20분이나 공짜로 받았어요. 당신은 어째서 일언반구 안하시죠?》

전상음에게 서울의 노래패 《조선나라》 가수라고 소개한 리혜진이 진갈색의 엷은 덧옷자락으로 불룩한 배를 여미며 곁에 앉은 남편에게 지청구를 한다. 그 녀자의 남편은 팔짱을 낀채 도리머리를 저었다.

《난 못하겠어요.》

사람들의 눈길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그는 한손으로 왼쪽가슴을 꾹꾹 눌렀다. 《공연을 보면서 심장이 화끈 달아 세번씩이나 멈춰설번 해 겨우 진정했어요. 그런데 이제 또 상기시키면 아예 서버리고말잖아. 그럼 당신 청청백일에 청상과부되고.》

좌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눔인터나쇼날》 회사의 총무라고 하는 50대의 은테안경쟁이가 화제를 이었다.

《한데 북이 하나는 대단히 잘못하고있는게 있어요.》

《하- 총무선생, 북에 오자바람에 평양밤거리 어둡다, 시민들 옷차림 화려하지 못하다 계속 걸그락질 하시더니 드디여 흠을 찾았게?》

《그러게 말임더. 인민대학습당 가선 북이 수지타산 잘못 세웠다, 만경대소년궁전 보구선 믿어지지 않는다며 늘쌍 봐야 투덜대시더니 이번엔 워찌 그라는기야.》

《아아, 이 경상도문둥이들아, 마저 들어보고 말을 해. 내가 하는말 그것 아니예요.》

《거럼 뭐야.》

《아, 안타깝다. 빨리 말해요.》

《나도 〈아리랑〉은 아무 이견 갖고있지 않아요. 정치적부담 조금치도 느끼지 못했고 외려 내것으로 쏙쏙 받아들였어요. 내가 말하자는건···》

총무는 약간 성이 난듯 한 어투로 설명했다.

《내가 말하자는건 특등석값이 지내 눅다는거예요. 우리게서두 좀 괜찮다는 오페라가극단공연 좋은 자리표 한장 값이 얼만지 알지? 그 다음자리표 한장도 어디 눅어? 그런데 세계적인 이 마스게임특등석값 이렇게두 눅다니 이게 어디 된 일이여? 이북은 확실히 장사물계 몰라요. 일을 아주 잘못하고있어. 이제라두 특등석값 열배 콱 올려놔도 볼 사람 아주 많아.》

전주에서 고기도매업을 한다는 키가 자그마하고 배가 불쑥 나온 은테안경과 나이가 엇비슷한 상인이 그에게 불만을 터뜨리는것이였다.

《뭐라구? 니 정신이 나갔지로. 그렇게 비싸면 내 숙질들은 워찌 본당기여. 〈아리랑〉이 돈많은 니들만 보라는게야?》

《니가 왜 돈이 없어. 접때 되님한테 쇠고기팔아 폭리 본건 돈이 아니여? 이게 그러는건 제 돈주머니가 아까워 그러지. 이봐라, 니 그만한 돈을 내면 허공중에 뿌리는거여? 제 동포들이 땀을 모아 만들어놓은 〈아리랑〉에 가는거지. 노린내나는 아부재긴 그만 쳐요.》

같이 동업을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핀잔을 주자 폭소가 터졌다. 화제는 끊기지 않고 줄곧 흘러갔다.

《구경을 하면서 난 정말 많이두 속눈물 흘렸어요. 이북사람들이 이걸 만들면서 얼마나 수고를 했겠냐구요. 끝나서는 이게 과연 내 민족이 만든거 분명하구나 하니까 조선사람된 자부심이 막 솟구쳤어요. 공연을 보니까 어떻게 북이 미국과 땅땅 맞서도 별일 없는가를 오늘에야 알았어요.》

《옳은 말씀했어요. 나두 〈아리랑〉을 보면서 나뿐아니라 우리 남쪽사회가 아주 작아지는감이 들어요. 일전에 기업차로 이슬람교국가에 간적 있었는데 그들이 우릴 보고 뭐라는지 아세요. 남보다 북이 더 좋다고, 밉살스런 미국과 맞서면 매번 이기는 북의 장한 모습 저들에겐 굉장한 힘준다잖아. 남쪽엔 인물이 없다는거죠.》

《배경대만 좀 봐요. 난 학생애들이 야야 하고 함성 올릴 때 미국의 항공모함, 전폭기가 뚝뚝 부러져나가는것 같았어. 너무나 통쾌하고 힘이 와짝와짝 나 무엇이든지 아주 큰일두 단숨에 해제낄것 같아요. 이게 민족감정 아니고 뭐겠어요.》

《한데 우리 메스콤에선 북에 퍼주기 위해 관람보낸다고 김대중대통령을 공격한다죠?》

《아, 거 표현 정확히 하세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략칭)의 행태에 한국메스콤전체를 비하면 안되는 말씀이죠.》

《그만들 해요.》

장발머리가 버럭 소리질렀다.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자니 정녕 참지 못하겠던 모양이였다. 그는 좌석등받이를 잡고 일어나더니 좌중에 대고 위혁조로 뇌까리는것이였다.

《이자 그 발언들 국가보안법 몇조 몇항에 해당한건줄 알아요? 이것말구두 공연 보면서 북찬양, 반미발언 누가 제일 많이 했고 사진촬영 누가 많이 했는지 모를줄 알아요? 난 다들 기억하고있어요. 이제라두 생업줄 떼우구 감옥소에 가고싶지 않거들랑 험담 삼가해요.》

사람들이 왁 들고일어났다. 서울서 가구상이나 하는 주제에 네가 뭐가 돼서 위협이냐,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수작, 안하는 행동 없구나. 내 네곁에 앉아 이따금 보니 너두 발장단을 치지 않는가 하면 금이발을 가뜩 물구 하하대더구나. 나도 봤어요, 북정치가요 《동지애의 노래》가 울리니까 입으루 웅얼거리며 따라부르는걸. 감옥소에 갈라치면 널 앞세우고 씩씩하게 갈테다. 그렇지 않으문.

자자, 조용들 해요. 이 량반 내 좀 아는데 성정은 본디 그렇지 않능기라. 이눔아, 싸게싸게 속 뒤집어봐. 니 누기 시켜서 이런짓이여, 돈은 얼마 받았나.

《흥, 들어보나마나예요.》

장발머리를 한바탕 몰아대던 끝에 도매업자가 묻자 아까 상음의 곁에 앉아있던 젊은 청년이 주먹을 내흔들며 부르짖었다.

《보수패거리들이 시켰겠지요. 그 리성을 잃은 패거리들한텐 그저 건당으루 무쇠주먹맛을 보여야 해요.》

《야, 이 새끼야!》

전상음은 별안간 귀청을 찢는 악청에 와뜰 놀랐다. 고함을 친 사람은 곁에 있던 라경운사장이였다. 이제껏 곰상스럽고 사분사분하던 인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전세기 93년 그날의 낯이 익은 표독스러운 표정이였다. 라경운은 매운 눈찌에 파들거리는 불을 담고 먹이를 본 표범처럼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어디 지껄여봐. 보수패가 어쩌구 무쇠주먹이 뭐라구? 너 이새끼, 목이 몇개야?》

뻐스안은 팽팽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청년은 보호자세를 취했고 좌중은 모두 일어나 그를 에워쌌다.

 

정녕 격분스러운노릇이였다. 이게 도대체 인륜을 아는 녀석인가. 옳은것은 옳다 하고 그른것은 외면하는것이 민심인데 그걸 애써 부정하며 불의를 내리먹이려들다니. 더우기 북과 남이 화해와 단합의 물곬을 타고 서로 제집처럼 오가는 6. 15시대의 청청하늘밑에서.

네놈이 뭐 체육대회를 함께 하자는 《아리랑》의 초청에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거절하라구 했다지? 가는 사람에 한해서는 친북반미발언까지 합쳐 기어이 《국가보안법》에 걸어 중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구. 아무래도 내 오늘 이놈을 만나 죄를 문책하고 단단히 혼뜨검을 내주고말리라.

치미는 분기를 끝내 늦굴수 없었다. 하여 식사중에 단연코 수절을 놓아버린 전상음은 손을 붙잡는 일행의 만류를 뿌리치고 음식점거리의 민족료리식당문을 나섰다. 당구장이며 식당들, 지어 한증탕까지 들어가보며 한시간 가까이 고려호텔안을 헤매고다니던 상음은 호텔지하식당에 들어가서야 라경운이를 찾아낼수 있었다.

전상음은 문을 닫으며 식당안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퍽 늦은 저녁이라 넓다란 식사홀에는 둬서넛의 외국인남녀가 대형어항곁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들며 조용히 담소하고있을뿐이였다. 라경운은 그들에게서 퍽 떨어진 한구석의 식탁을 혼자 차지하고 술병을 기울이고있었다.

《여기요, 여기. 미스터 전, 이리 오세요.》

그를 띄여본 라경운이 손벽을 치며 소리친다. 버르장머리 없는, 전상음은 경운에게 할 적중한 말마디를 고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알콜에 푹 젖은 그와 마주앉자 시퍼렇게 세운 속이 스스로 물러빠지는것이였다. 식탁우에 뒹굴고있는 서너개는 잘될 빈 술병, 삼거웃처럼 흩어진 머리카락, 양복저고리는 의자밑에 떨어져있고 매듭이 가슴노리에서 건등거리는 오렌지색넥타이를 보니 취해도 되겐 취한 모양이였다.

《그 련공분자들에게 한상 요란히 배설하셨다지요?》

《그렇네, 자네두 참가할걸 그랬구만.》

《나야 시간이 있었나요.》

《한데 뭐가 잘못된것이라도 있나?》

《잘못이야 뭘, 아주 잘했어요. 그러나 체육대회에 어디 발길질을 해보라는거예요.》

라경운은 꾸르록 하고 트림을 내불고는 술을 부어 상음에게 내밀었다.

《내 이제 나가서 모주리 잡아들여야지, 보안법에 걸어서. 나쁜 놈들, 국체변혁을 공공연히 시도해?》

《임자 정말 그네들을 법으로 다스릴셈인가?》

전상음은 술잔을 받아 내려놓으며 엄하게 따지고들었다.

《그 년놈들을요? 그래야지요.》

그랬던 라경운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가만가만, 이자 내 뭐라고 했나. 잡아들인다? 내가? 흥, 무슨 힘으루. 전선생, 못해요. 그저 객기를 부려본거지. 그 젊은 아이가 뒤배경이 보통 세지 않아요. 알고보니 가까운 친척이 국정원의 큰 간부더군요. 손아귀 드세기루 소문난 그 사람. 한데 그 사람두 정치적동향이 좀 껄끄럼해. 안기부출신이나 한국법조계의 정통파가 아니거던.

전선생, 아마 그네들을 법에 거는 순간에 난 국정원에서 쫓겨나게 될겁니다. 국정원공기가 이전과는 달라졌지요, 6. 15이후부터. 요즘 〈아리랑〉북풍이 불면서부터는 애써외면, 묵묵부답이다못해 오히려 암리비호, 묵인조장입니다. 친북발언, 반미언행에 대해서 말입지요. 하긴 국정원뿐인가. 통일부두 그래, 외교통상부도 같고, 체제의 안보를 일선에서 지키는 군에서두 기웃하는 판이니 더 말해 뭘해요.》

안심이 되였다. 대신 측은해났다. 상음은 또 술을 마시려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보게 라사장, 몸 상하겠네. 좋은 공연 보구 뒤탈이 생기면 되겠나. 그만하라구.》

《아니아니, 난 마셔야겠소. 빨갱이 〈아리랑〉을 위해서 마시고 한국을 위해서 건배, 건배를 해야지. 안 그래요, 선생.》

《량면주의자구만. 그럼 마시라구. 쭉-》

《량면주의라니? 남과 북이 모여앉아 통일선언도 했고 오늘은 〈아리랑〉을 부르며 정을 나눴는데 뭐가 량면주의야. 령감은 이게 못마땅해요?》

《···》

《강약이 부동이라고 힘이 센 북이 전쟁은 하지 말고 〈아리랑〉을 부르며 손을 잡자는데, 푸- 대한민국제씨들이 무슨 용빼는 수가 있어.》

《허, 이거 이자 보니 임자야말로 국가보안법에 걸릴 대상이군. 소리치지 말게.》

《하지만 힘들거예요. 북이 가쁠거예요.》

한고뿌의 술을 한번에 입안으로 털어넣은 라경운은 그만에야 사래가 들리워 줄기침을 했다. 기침이 멎자 그는 또다시 게트림을 내불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얼핏 둘러보고나서 상음의 귀가까이에 얼굴을 가져다대며 속삭이듯이 말하는것이였다. 전상음은 후각에 미쳐오는 그의 입안냄새가 상당히 역스러웠으나 꾹 참고 들었다.

《왜 안되는가, 우리와 같은 사람들때문이지요. 해방전부터 축적해놓은 재부와 한국이 서면서부터 세습해온 권력을 왜 그들이 헐헐히 내놓겠다 하겠나요. 나부터두 싫은걸요. 그래 북이 그럼 너들도 살게 해주마 하고 련방제를 내놨지만 뿌리깊이 박힌 물욕, 권세욕이 그걸 쉽게 받아들일수 있나요? 안되지요.

으으흠- 그러나 빨갱이들이 만든 〈아리랑〉마스게임은 정말이지 대단한거야.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부심 절로 나는거지. 민족통일을 일일천추 소망하는 한국의 민중에겐 산같은 희망을 주고 미국인들과 나와 같은 반공일선의 제씨들에겐 직격탄을 퍼부었거던. 이제 봐요. 시간문제일따름이지 국새를 안은 현대판 경순왕이 신하들을 대동하고 판문점을 넘는 일이 벌어질거야. 힘이 없으니까. 있다 해도 제것이 아니거던. 또 그것은 민심이 가리키는 력사의 순리이기도 하고. 하늘과 땅의 뜻이야 누구도 함부로 거스르지 못하지, 후- 》

라경운은 역한 술냄새가 짙게 배인 한숨을 그의 빰에 들씌우며 얼굴을 당겼다. 그리고는 의자등에 몸을 던지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흥얼대는것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전상음은 흐리멍텅한 눈길을 천정에 박고 구슬프게 웅얼대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일이였다. 이전에는 이 노래만 들으면 민족의 사무친 한과 슬픔이 되새겨져 비장한 감정만 치솟았건만 지금은 넉두리같이 들렸고 장송곡처럼 들려오는것이였다. 왜 그럴가. 이 사람의 입에서 울려나와 그럴가, 그럴수도 있다. 이 량반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 극우익정치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니까. 아니다,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지. 문제는 반북대결의식이 골수에까지 들이배긴 이 인간이 《아리랑》을 제것처럼 표현하는것이다. 《아리랑》을 보고나자 대뜸 민족의 운명에 이례적이고 정당한 관심을 나타내는것이다. 사실 이게 중요한것이 아닌가. 그럼 《아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속 검은 이 인간도 력사의 순리를 인정하게 만들고 같이 공존할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것일가. 새 세기에 가야 할 민족의 바른길을 환하게 주장하는것이여서? 옳다. 《한》반도의 평화통일념원이 진실로 담겨있어서? 그것도 옳다. 그러나 이것들은 《한》반도가 분렬된 그날부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입을 모아 부르짖은것이며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우리 민족은 남녀로소는 물론이고 삼척동자까지도 외우던 말이 아니였는가. 그런데 그것이 오늘은 왜 이리도 의미심장한 충격을 주며 만사람을 격동시키는것인가. 《아리랑》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식당을 나선 전상음은 깊은 생각에 잠겨 발길이 가는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