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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후 림진우는 집단체조창작단 화가로 일하고있는 외사촌형 김영화네 집을 찾았다. 영화네 집을 찾은것은 서울에 사는 작은어머니(진우의 어머니는 김영화에게 있어서 작은어머니가 된다.)와 제 자식들에게 보내는 영화의 기념품을 가져가기 위해서였고 한켠으로는 그가 맡은 배경대그림이 어떻게 되였는지 눈으로 확인하고싶어서였다.

집에 들어서니 영화는 병석에 들어있었다.

《일어나지 마오. 형님, 몸은 좀 어떻소?》

림진우는 상반신을 일으키려는 영화의 거동을 만류하며 병문안을 했다. 김영화는 석달전에 위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였다.

《요즘 조금 무리했더니 몸이 이상하구만. 하지만 괜찮네. 안정하느라면 차차 낫겠지.

참, 엊그젠가 〈로동신문〉을 보니 동생이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더군. 축하하네.》

《예, 그랬습니다. 우리 장군님께선 저를 직접 사람들앞에 불러 공민으로서 응당히 한 일을 큰 공적으로 내세워주셨어요.》

림진우의 이야기를 듣고난 영화는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고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다니. 우리 가문의 자랑이야. 암, 그렇구말구. 하여간 동생은 복이란 복은 온통 다 독차지한것 같구만. 얼마나 영광스럽겠나.》

《!》

《내가 미리 해놓길 잘했어.》 김영화는 머리맡에 놓인 몇십매는 잘될 16절지크기의 그림종이들을 집어들어 림진우에게 넘겨주었다. 《한번 봐주게. 일전에 우리 동무들이 병문안을 왔다가 이걸 보더니 잘 됐다고는 하더라만 그래도 동생이 보는것이 다르지. 작품주제와 일치되는지 모르겠네.》

진우는 가슴이 알알해났다. 죽음의 문턱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속에서도 화가의 본분을 잊지 않고있는 외사촌형의 모습이 몹시 감동스러웠다.

그림을 보고난 림진우는 그것을 서류가방에 넣으며 영화를 안심시켰다.

《형님이 그렸는데 어련하겠소. 동무들의 평가가 옳구만요. 그만하면 잘되였소. 이걸 예술위원회에 제출하겠으니 형님은 신경쓰지 말고 치료에나 전심하오.》

김영화의 병색이 짙은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조용히 떠올랐다.

《서울엔 언제쯤 나가게 되나?》

《래일 아침에 출발해서 금강산에 도착한 다음 3일, 개성에서 하루 체류하고나서 넘어간다니 사나흘쯤 될거요.》

《아!- 나도 가보고싶구나.》

반듯이 누워 천정을 응시하던 김영화는 진우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는 진우의 만류를 한사코 뿌리치고 일어나앉는것이였다. 그는 베개밑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더니 진우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옛시절의 추억이 깃든 사진들이였다. 진우는 사진들을 류다른 감회에 싸여 한장두장 번지였다. 거기에는 진우네 일가친척의 사진도 있었고 영화네 부모들의 사진도 있었으며 외사촌형제들이 다정히 어깨겯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는 8. 15해방이후 사랑하는 동생이랑 함께 서울 파고다공원의 기암괴석앞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보다가 갑자기 심장이 활랑거리는감을 느끼며 그것을 눈바투 가져다댔다. 그 사람이였다. 학생복을 입고 앉아있는 동생 진애를 중심으로 사각모를 쓰고 그뒤에 빙 둘러선 세명의 학생들중(두사람은 진우와 영화이다.) 오른쪽끝에 선 사람, 꺽두룩한 키에 너부죽한 얼굴, 볼에 보조개가 뚜렷한 그 전상음이 틀림없었다. 진우는 무릎우에 얹은 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나쁜 놈, 형님이 왜 아직도 이 사진을 가지고있을가.

《이건 내버리우.》

림진우는 사진을 영화에게 내밀었다. 김영화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허거픈 기색을 지었다.

《진애가 있길래 건사했더니. 미안하네, 아픈 상처를 다쳐놔서. 내 상음이만 잘라버리지.》

《됐소, 거 무슨 아이들처럼. 진애가 보고싶으문 그 애 사진을 하나 줄테니 없애버리우. 초가삼간 타없어져도 빈대 타죽는걸 보는게 시원하다구 내 지금 그 심정이요.》

《여적 잊지 않고있었구만. 사람이 품은 한이란 참 모질기도 하지.》

《형님은 무슨 소릴 그렇게 하오. 몇십년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내 그놈이 한 짓거리를 쉽게 잊어버릴것 같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소. 이가 갈리오.》

《허허, 내 주책머리없이 그 사진은 뭘하러 건사해가지고. 됐네, 됐어. 같지 않은 놈때문에 형제의가 상하겠네.》

김영화는 허리에 두손을 얹고 힘겹게 무릎을 세워들었다.

《좀 가자구, 내 동생에게 보여줄것이 있네.》

림진우는 사진때문에 생긴 불쾌감을 애써 털어버리며 영화를 따라 그의 화실에 들어갔다. 서재겸 화실로 쓰는 이웃방은 크고 너렁청했는데 해빛이 푸짐하게 들이비치는 창문 오른쪽가녁에 큰 화판이 세워져있었다.

영화는 그리로 다가가 화판을 덮은 씌우개를 조심히 벗겼다. 손가락등으로 화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진우의 소감을 재촉했다.

《제목은 〈강토여!〉라고 달았다. 한번 봐다오.》

림진우는 둬걸음 뒤로 물러서서 주의깊게 오래동안 작품을 감상해보았다. 세로 두평방 가까운 크기의 화판에는 흰 저고리를 입은 백발의 할머니가 한손으로는 《38도선》이라고 쓴 패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다른 손은 하늘을 향하여 높이 추켜들면서 이름할수 없는 원한과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주제나 구도도 좋고 양상도 마음에 드오. 한데 형님, 화폭크기를 너무 주관적으로 잡지 않았소? 내용과 화폭이 어딘가 모르게 모순되는 감이 드오.》

《옳네,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이니까 괜찮아. 마감에 바탕색으로 조절하면 되니까.》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할거요?》

김영화는 머리를 저었다. 그는 화포의자에 앉으며 진우에게 서재앞에 놓인 팔걸이의자를 권했다.

《전번에 동생이랑 같이 금강산에 가서 애들을 만나본 이후부터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구만. 밤이면 부모님들과 작은어머니, 고향의 오동나무, 그 모든것이 눈에 선하여 어디 잠을 이를수가 있어야지. 저 그림은 지금의 내 심정을 그저 표현해봤을뿐이네.》

《···》

《서울에 가거들랑 작은어머니에게 내 인사를 잘 드려다오. 우리 애들에게 내가 할 얘기는 여기에 썼네.》

김영화는 서재옷걸이에 걸려있는 덧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탄식조로 뇌이는것이였다.

《나이가 원쑤지. 통일이 대밑에 왔는데··· 그날을 내 눈으로 봤으면 한이 없으련만.》

《이 무슨 형님답지 않은 소리요. 병치료를 잘해서 어떻게 하나 일어날 잡도리를 해야지. 형님은 그날을 꼭 봐요, 본다니까요.》

《아니네. 난 그때까지 못 가.》

김영화는 쓰겁게 웃었다.

《놀라지 말게. 난 이제 2차수술을 받아야 하네. 의사들은 안심시키려든다만 틀림없이 병증세가 악화되였을걸세. 어쩌면 전이가 시작된지도 모르지.》

림진우는 전에 없이 엄숙한 표정을 하고있는 영화를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니 외사촌형은 이미 각오하고있다. 결국 이 편지는 일종의 유서나 다름이 없지 않는가.

김영화는 담담하게 뒤를 이었다.

《난 후회가 별로 없네. 동생도 아다싶이 나는 사는 보람을 느끼며 살만큼은 살았어. 단지 위구심이 드는것은 이러다가 〈아리랑〉에 내놓을 그림을 마저 완성하지 못하는게 아닐가 하는것이네. 그때까지 육체가 버티여주면 여북 좋겠나. 그럼 후에라도 우리 애들이 평양에 와서 〈아리랑〉을 볼 때 아버지가 그린 저 그림은 너희들에게 아버지가 하고싶었던 소리이기도 하다라고 동생이 말해줄수 있지 않겠나.》

《형님, 병치료는 약절반, 마음절반이라고 하지 않소. 자꾸 약한 소리 하지 말고 속대를 꿋꿋이 가지오. 자, 어서 갑시다. 자리에 누워야지요.》

《게 앉으라구.》

김영화는 진우를 눌러앉히였다.

《내 걱정은 이젠 그만하게. 그건 내가 알아 조처할터이니. 내가 오늘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할것은 우리 애들이네. 풀어놓은 야생말같은 그 애들 생각을 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거던. 내 사후에도 회성이랑 수니 그 애들이 이 김영화의 손녀, 손자답게 매사를 무겁게 가다듬도록 동생이 잘 신칙해주게. 력사앞에 지닌 그 애들 세대의 짐이 무엇인가를 항시 깨우쳐주어 꼭 민족의 넋을 되찾고 조국통일성업에 이바지하게 해야 하네.》

《형님말씀을 중히 새기겠습니다.》

림진우는 외사촌형에 대한 고결한 존경심으로 눈굽이 더워났다.

 

세대의 짐.

김영화가 한 의미심장한 이 말의 여운은 림진우의 뇌리속에 오래동안 남아있었다. 하여 진우는 계속 생각해보았다.

또 하루의 분망한 사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각도 림진우는 영화의 말을 새겨보고있었다. 외사촌형은 왜 나에게 자식들을 부탁했을가. 수십년동안 헤여져있던 자식들을 만나고보니 이질감을 강하게 느껴서였을것이다. 손녀 수니가 한 괴이한 옷차림, 누런 머리칼, 정형수술을 한 매부리코, 그것을 보며 외사촌형은 얼마나 불쾌해하였던가.

《저 애들이 살고있는 환경이 그러하니 글쎄 리해가 된다만 그저 놀랍기만 하네. 암만 봐야 우리 애들에게는 혈육이라는 정은 있는것 같애도 민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라든가 민족의 운명에 대한 관심, 하여튼 이러루한것은 조금치도 있는것 같지 않네.》

《내 심정도 마찬가지요. 어쩌면 이렇게 다르오? 다같이 민족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새 세대들인데 북이 다르고 남이 다르다니, 그러고보면 우리 젊은이들이 용소.》

《동생의 말이 옳으이. 제 자식들을 만나보니 우리 사회의 건전함이 마치 명암처럼 뚜렷하게 대조되는구만.》

옳다, 우리 새 세대들의 사고와 지향이 고상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중 민족의 앞길을 개척해온 공화국의 력사와 현실을 모르고 조국의 보폭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있는 사람들이 없는가. 드물긴 하나 있을것이다. 멀리에서, 밖에서 찾을것이 아니라 이 림진우의 집안을 휘둘러봐도 알수 있지 않는가. 번거로운 상념이 마침내 외손녀에게 닿자 진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 이튿날 림진우는 평양을 출발하였다. 어슬녘에야 첫 목적지에 도착한 림진우는 려장을 풀기 바쁘게 송수화기를 들어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를 찾았다. 젊은 연출부장에게서 그간 훈련정형을 료해하며 지지도 하고 조언두 주던 진우는 갑자기 눈앞이 새까매지는것 같아 하마트면 송수화기를 떨군번 하였다.

《뭐, 뭐라구? 사고? 어떻게?》

송수화기를 놓은 다음에도 한동안 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그제야 생각난듯 문을 열고 대렬을 책임진 일군이 든 방으로 황황이 걸음을 옮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