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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밤 5월1일경기장은 교예장기재설치작업으로 들끓고있었다. 경기장 2호, 4호수문으로 꼬리를 물고 나드는 자동차들,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용접불보라들, 무엇인가 찾고 부르고 지시하는 무선마이크들의 공명음들, 바닥과 4층, 5층 량켠의 발판설치작업장에 가득 달라붙어 일하는 인민군군인들, 출연자들, 지원자들, 그야말로 하나의 전투를 방불케 하는 기재설치작업이였다.

중철이에게서 용접기를 앗아들고 예닐곱대가량 용접봉을 태우고난 박철건은 한숨 쉬려고 용접모자를 벗어들며 허리를 폈다. 철건은 용접기를 중철에게 넘겨주며 곁에 앉으라는 손시늉을 했다.

《할머니랑 집식구들이 다 잘있습데?》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 중대장에게 일렀는데. 중대장이 집에 갔다오라는 말 안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

김중철은 눈을 내리깔며 머리만 슬슬 긁는다.

《얼굴이 뜨거워서 그럽니다. 영웅이 되여 돌아온다구 잔뜩 소문만 내놓구.》

《이런 졸장부 봤나.》

박철건은 한손으로 중철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툭 쥐여박았다.

《전에 내 말했지?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 그 한가지만 가지고도 굉장히 떠받들리우겠는데 뭘 소심해서 그래. 집에 갔다오라구, 출연자들과의 상봉모임이 끝난 담에. 알겠어?》

《알았습니다.》

《참, 상봉모임토론준빈 하구있나?》

《따로 준비할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낀바 그대로 토론하겠습니다.》

그때 가까이로 적재함에 기재를 가득 실은 화물자동차 한대가 굴러와 멈춰섰다. 조수석문을 열고 내려서는 사람을 보니 한정미였다. 검청색솜바지에 고운 허리선을 돋구어주는 불색솜옷차림을 한 처녀는 적재함을 따고 기재를 부리느라 붐비는 사람들에게 조심히 다루라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이윽고 자동차는 사람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떠났다. 정미는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루루이 인사를 하고는 잠시 서서 경기장을 휘둘러본다. 그러던 한정미는 몸을 돌려 비행기사다리처럼 생긴 발판다리쪽으로 향하는것이였다. 연출실로 가는가부다 하고 짐작했는데 정미는 그늘이 져 어둑한 객석 안쪽 맨끝의 의자에 가앉는것이였다.

박철건은 일을 시작하라는 뜻으로 중철의 잔등을 가볍게 치며 몸을 일으켰다. 한번 짬을 내서 만나려던 참이였는데 마침 기회가 온듯싶었다.

장갑을 모아잡은 두손을 무릎우에 얹고 앉아있던 한정미는 철건이 다가가자 흠칫 놀라며 당황해하는것이였다. 철건이를 올려다보는 그의 고뇌 비낀 두눈에는 애원하는듯 한 무언의 호소가 담겨있었다.

《몸은 불편하지 않는가요?》

박철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스럼없이 의자 두개정도 넘겨 정미의 곁에 앉았다.

《절 수태 욕했겠지요?》

《갑자기 건 무슨 소리요? 욕하다니, 어째서?》

《그럼 혜영동무랑 진호동지가 얘길 안해준거구만요.》

《···》

《전, 전 언제부터 철건동지를 한번 만나려고 했댔어요. 만나서···》

한정미는 말을 끊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정미는 갑자르며 기계기름에 얼룩져있는 장갑을 애꿎게 비틀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분연히 쳐들며 마저 잇는것이였다.

《그래요. 전 철건동지를 만나서 사죄를 하고싶었어요.》

《가만, 좀 차근차근 말해야지 이거 어디 뭐가 뭔지 알겠소? 뭘 사죄한다는거요?》

한정미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새 강진호며 심혜영이와 있었던 일도, 외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전 요즘에야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것을 알게 된것 같애요. 그걸 깨닫게 되니 철건동지랑 혜영동무의 깨끗한 사랑을 모욕한 저자신이 저주스러웠어요. 그래서 전 철건동지를 만나 이걸···》

《그런 일이 있었구만.》

박철건은 허리에 한손을 얹으며 중얼거리였다. 여태껏 고집스레 틀고앉아있던 불쾌감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련민과 동정심이 차오른다. 정미의 심정이 십분 리해가 되였다. 한편으로는 그가 돋우보였다. 정미는 분명 새롭게 살려고 결심하였을것이다. 솔선 나서서 새 기재를 만들어내놓은것을 봐도 그렇고 이즈음에는 탄력바를 직접 몸에 두르고 수범비행으로 출연자들을 이끈다지 않는가. 그런데 진호와는 앞으로 어쩔셈인가.

박철건의 물음에 정미는 침묵으로 대답하는것이였다.

《그건 그렇고.》 그는 숨을 길게 들이그으며 어깨를 쭉 폈다. 《어제 진호가 내게 왔댔소. 포탄비행과 물결날기를 자기와 외사촌동생이 맡아서 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런 중요하고 무거운 일을 앞두게 되니 오래전부터 소원했던 조선로동당 입당을 청원하고싶다는거요. 그러면서 입당청원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고 묻길래 있는 그대로, 본인이 생각해왔던 그대로 쓰라고 말해주었소.

난 진호와 정미동무 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본인들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내 꼭 얘기하고싶은것은 동무네 일이 어찌됐든간에 교예장이 잘되도록 진호를 마지막까지 책임적으로 도와줬으면 하는것이요. 이건 진호의 친구래서가 아니라 당원으로서 당원에게 하는 동지적부탁이요. 내 사실 동무를 만나러 여기 온건 이때문이였소.》

《!》

 

×

 

저는 19××년 ×월 ×일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해안동에서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기관사로 일하는 강호윤의 외아들로 태여났습니다. 제가 출생할 당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당의 부름따라 온 나라 인민들이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있던 장엄하고 벅찬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태여난 저는 탁아소와 유치원을 거쳐 소학교과정을 마치고 중학교에 진급하여 우리 당의 전반적무료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아무런 근심걱정을 모르고 마음껏 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당은 체육에 취미있는 저의 소망을 헤아려 구역체육구락부에 들어가 자기의 재능을 활짝 꽃피울수 있게 해주었으며 자그마한 그 재능을 헤아려 우리 나라 교예예술인후비양성기지인 평양교예학원으로 불러주시였습니다. 그러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을세라 졸업후에는 평양교예단에 보내주어 세계교예무대에서 주체조선의 교예예술을 마음껏 시위하게 내세워주었고 오늘은 교예창작가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교예장을 맡겨주는 커다란 신임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해만 가는 당의 이 사랑은 저로 하여금 보답의 일념으로 불타게 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또한 저에게 우리 세대들모두가 일생최대의 영예로 여기는 조선로동당원이 되고싶은 소원을 품게 하였습니다.

당원이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입당을 하려면 남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입당준비에 앞서 마음속에 새긴 맹세는 이것이였습니다.

저는 이 맹세를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일해왔습니다. 실력전을 벌려 맡겨진 창조과제를 손색없이 해내는 1급배우로, 창작가로 준비했고 한편으로는 야간돌격대에 망라되여 당창건기념탑을 비롯한 수도의 주요건설장에 나가 충정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자신도 스스로가 이만하면 입당준비를 갖추었다고 만족해있었습니다.

허나 저는 그 인식을 달리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근년간에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 특히 교예장창작을 맡아 수행하는 두해어간에 보고 듣고 체험한 모든것을 돌이켜볼 때 자기의 사상정신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졌는가를 통절하게 느꼈기때문이였습니다.

나의 친구인 조선인민군 부대장 박철건동무는 자연재해로 하여 한 병사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여 그를 구원하였으며 그때 입은 중상때문에 군사복무를 더 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건동무는 수류탄철편을 찍는 일을 해서라도 군대의 전투력강화에 이바지하겠다며 군수공장에 보내달라는 청원을 하였으며 애인의 장래를 위하여 사랑을 단호하게 끊어버릴 결심까지 하였습니다. 나처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종사하고있는 애인인 심혜영동무 역시 처녀의 몸으로 아이들을 키울 결심을 하였으며 그것이 철건동무에게 무거운 짐으로 될가봐 수년동안이나 품을 들여 가꾸어온 사랑을 포기하였습니다.

사실 이들은 부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뭐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온갖 국가적, 사회적혜택을 누리며 뭇사람들의 존경속에 살 자격과 권리를 당당히 가지고있는 동무들입니다. 그런데도 박철건동무나 혜영동무는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당이 제일 가슴아파하는 문제, 우리 장군님께서 제일 관심하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청춘도 미래도 다 바치는것이 곧 조선로동당원의 자세라는것을 누구보다도 자각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시대정신의 체현자란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이들입니다. 일을 많이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당과 수령이 바라고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구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미는 사람, 필요하다면 육신도 기꺼이 바치는 결사옹위, 결사관철의 정신력을 지닌 이들이야말로 시대정신의 체현자들인것입니다.

당원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나도 이들처럼 살고싶다, 나도 이들처럼 내 몫을 가지고 떳떳이 시대정신에 발맞추고싶다.

지금 이 시각 저의 가슴속에는 총시연회를 성과적으로 치르어 위대한 장군님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완성되였다는 충정의 보고를 드릴 그날을 위하여 온넋을 깡그리 불태울 이런 비상한 각오와 결심으로 차있습니다.

제가 맡은 교예장은 《아리랑》을 완성시키는데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포탄비행과 물결날기를 어떻게 형상해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난도가 대단히 높은 이 요소종목들은 그자체가 큰 위험을 내포하고있으므로 높은 실력과 오랜 공중무대출연경험을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형상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현재 여기에 출연할 배우는 아직도 선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딴곳에서 데려다 훈련시킬 사람도 없으며 시간 또한 더욱 없습니다.

해결방도는 오직 자체의 힘, 이 작품의 주인인 저자신이 직접 하는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의 서부지역과 북방의 자강땅을 편답하는 길에서 체험했던 눈물없이는 듣지 못할 영웅적인 투쟁이야기들, 이 투쟁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이 나라 당원들과 청년투사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바로 내가 형상해야 한다는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전부터 가장 난도가 높은 포탄비행은 나자신이, 물결날기는 현재 평양교예학원졸업반 학생인 저의 외사촌동생 신옥이 맡아 출연하기로 토론하고 훈련에 진입하였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오직 한가지, 무조건 해내고야말겠다는 결심뿐입니다.

이제 한주일후이면 총시연회를 진행하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서 총시연회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투나 같습니다. 이 준엄한 시각을 눈앞에 두니 오래동안 품고있던 소원을 어머니당에 아뢰고싶습니다. ···

문득 문이 여닫기는 소리와 함께 향수냄새가 연하게 풍겨왔다. 강진호는 펜을 든채 고개를 들었다. 책상앞에 한정미가 서있었다. 정미는 잠간 입당청원서에 눈을 주었다가 한손으로 침착하게 귀밑에 흘러내려온 머리칼을 올리쓸었다.

《물결날기는 걱정 안해도 될거예요. 방금 당위원회에 가서 내가 출연하겠다고 제기했어요. 그래서 오늘부터 정식 훈련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담당출연자로서 진호동지에게 요구하고싶은것은 안전기사를 경험이 많은 민유남동지로 바꿔달라는거예요.》

《?》

《그리고 입당청원서는》 한정미는 돌아가려고 하다가 주춤 서서 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이 제대로 다 끝난 다음에 써도 되지 않을가요? 어떤 동무는 이보다 더 위험한 출연과제를 수행하면서도 먼저 입당청원서를 쓰지 않았어요.》

《?!》

대체 무슨 일인가. 한주일전까지도 훈련지도를 마지못해 하였던 한정미였고 크게 다투고난 뒤에는 교예장에서 손을 떼고 극장에 들어가겠다고 제기한다는 소문이 돌지 않았는가. 도대체 그새 정미의 심중에서는 무슨 변화가 일어났을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물결날기에 출연하도록 떠밀었단 말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일이여서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하여 처녀가 나간 뒤에도 진호의 생각은 오래동안 정미에게 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