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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있었다. 아까 캔지스 씨티의 중심도로를 달릴 때에는 마지못해 시들하니 내리던 눈이였다. 그런데 시내를 벗어나 교외에 자리잡은 마을의 이 자그마한 길거리식당에 들어가앉은 이제 와서는 제법 솜뭉치모양으로 굵어지며 하늘이 메게 쏟아져내렸고 간간이 센 바람도 불어쳤다. 봄기운을 시샘하는 겨울의 마지막심술인것 같았다.

《선생님, 뭘 드릴가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전상음은 눈길을 돌리였다. 키가 자그마하고 리지적인 눈빛을 가진 메히꼬혈통의 처녀접대원이 곁에 와 서있었다. 상음은 두사람분의 식사를 주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만나기로 약속한 한무신동포가 여기에 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려야 했다. 상음은 그렇다고 해서 가슴속에 그득 쌓인 괴로움과 고통을 혼자 묵새기며 그냥 앉아있기는 더욱 싫었다. 그는 식사대신 커피를 청하려 했다가 고쳐생각했다.

《진 둘, 독한걸로.》 전상음은 두손가락을 내들며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접대원이 술과 약간의 더운 료리를 가져다놓고 돌아서려 하자 상음은 그 녀자를 불러세웠다.

《레지, 잠간.》

그는 두서넛의 손님밖에 없는 조용한 식사홀을 둘러보고나서 손짓으로 카운다우에 매달려 통속영화를 한창 방영하고있는 대형액정텔레비죤을 가리켰다.

《보는 손님이 있는것 같지 않은데 다른걸 바꾸지.》

접대원은 애교짙은 미소를 지으며 두무릎을 살짝 굽혔다펴더니 탄력있는 걸음씨로 카운다쪽으로 걸어갔다.

통로가 바뀌였다. 럭비? 싫었다. 캔지스관광안내? 손을 저었다. 음악? 막 지겨웠다.

《가만.》

전상음은 련이어 바뀌여지는 통로들중에서 무엇인가 얼핏 눈에 드는것이 있어 접대원을 제지시켰다. 《아리랑》 선률과 함께 모국어가 순간적으로 청각에 미쳐왔던것이다. 다시 돌려 찾게 하였다. 인차 화면에 그것이 나타났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공연을 선전하는 광고였다.

상음은 눈정기를 각별히 모으며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처음 보는것이였으나 마냥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각이한 의상을 입었으되 친근감이 나는 사람들의 얼굴, 가슴을 푹 적시며 울리는 《아리랑》선률, 락하산식지붕을 이고 록음짙은 릉라도의 한복판에 들어앉은 경기장. 한데 저건 뭘가?

매 작품을 단편적으로 선을 보이며 흘러가는 광고물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던 전상음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촬영기가 자주 배경대형상을 비치는것에 의문이 갔던것이다.

분명 특대형전자막같은데 그게 뭐가 큰거라고 계속 비치는것인가. 북도 발전된 나라들처럼 얼마든지 저런것도 만든다는 일종의 국력시위인가. 하긴 그게 중요한것이 아니지.

전상음은 내심 부정했다. 중요한것은 미국과 서방의 그 어느때보다도 강도높은 경제적제재와 군사적위협을 당하고있는 북이 대예술축제를 준비하고 보란듯이 세계각국에 관람할것을 선전하고있는, 이것이였다. 사실 미국은 《9. 11사건》 직후 세계의 면전에서 대대적인 《반테로전》을 다짐하고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은 올해도 역시 전쟁의 해로 선포하였고 이라크와의 전쟁을 벌린다는것을 숨기지 않았으며 미국을 반대하는 나라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반테로전》의 대상으로 된다는것을 공공연히 떠들고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북도 포함되여있을것이다.

상음은 새로 집권한 부쉬행정부가 북을 말살해버리기 위해서 얼마나 혐오스러운 음모를 꾸미고있는지 백악관과 국방성, 국무성과 유엔에 근무하고있는 친구들과 자기의 음악숭배자들에게서 들어 알고있었다.

그들이 쉬쉬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부쉬가 체이니며 포웰, 콘돌리쩌 라이스를 비롯한 정치적맹우들앞에서 자기 임기기간에 기어이 북핵문제를 일도량단해버리고말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한다. 부쉬정치집단이 강경매파로 구성된것을 보면 그것은 곧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며 전쟁을 념두에 둔것이리라. 선임정권이 이룩한 북미핵협상의 성과를 하루아침에 일소해버린거며 작금년에 걸쳐 그들이 텔레비죤화면에 나타나 북의 존엄과 정치체제를 헐뜯는 최대의 모독적인 비방발언을 한것, 조선반도주변의 군사정세를 한층 긴장시키는 움직임을 비롯하여 모든것을 미루어볼 때 전상음은 부쉬의 발언이 결코 객기나 빈말이 아닐것이라고 추측되였다.

말그대로 세계는 새 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불구름속에 휩싸여 평화와 안정의 전망은 더욱 암울한 지경에 빠져들고있었으며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은 피하지 못할 전쟁접경에 이르고있었다.

그런데 북에서는 거대한 흰비둘기의 세찬 퍼덕임소리가 울려퍼지고있지 않는가. 이 지구상에서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불만과 의견을 품고있는 수많은 대소국가들중에서, 더우기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있는 나라들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반미국가인것으로 하여 력사상 류례없는 인위적고초를 겪고있는 북에서.

물론 북은 지난 전례를 보나 생존을 위하여 부쉬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그냥 수수방관하지 않을것이다. 필경 그들은 그와 같은 급의, 그 이상의 대응을 준비할것이다. 그런데 보다 빈틈없는 대응준비를 갖추어야 할 긴박한 형편에서 《아리랑》공연을 하다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가. 공연내용이 민족의 대단합을 주장하는것임에는 분명한데. 그리고 평화를 주장하는 마스게임은 틀림이 없는데.

아서라, 어리석은 놈. 전상음은 꺼질줄 모르는 불길처럼 솟구치는 의문을 단번에 말소해버렸다. 유서를 한무신씨에게 넘겨주고 조용히 생을 끝장내버릴 결심을 한 내가 이런 주제넘은 생각을 하다니.

그는 큰 륙각수정고뿌에 술을 부어 단번에 마셔버렸다.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체질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주정이 센 술탓인지 인차 머리가 핑 돌았다. 고통스러웠던 기분이 차츰 가셔지며 개운해났다. 음, 좋구만. 사람들이 바카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가 인류를 못쓰게 만든다는걸 알면서도 버리지 않는 원인이 있어. 나도 오늘 그의 자손이 돼볼가. 참, 내가 여기에 왜 왔던가. 저명한 작곡가 전상음씨가 이 촌구석 술집에 왜 왔던가.

상음은 팔을 뻗쳐 식탁을 짚으며 식당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카운다 한옆에 놓여있었던 낡은 피아노대신 대형액정텔레비죤이 새로 나타난것을 내놓고는 모든것이 낯이 익었다.

옳아, 지난 세기 1993년 3월 어느날이였어. 그날 나는 캔지스 씨티로 가는 길에 우연히 이 식당에 들렸댔지. 미국이 끝내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을 의미하는 《팀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을 시작하였다는 뉴스를 듣고는 눈물을 뿌리며 《아리랑》을 불렀고.

그날의 일이 눈앞에 생동하게 어른거리였다. 새삼스러운 모멸감이 솟구쳐올랐다.

 

×

 

이날 전상음은 류다른 흥분과 기쁨에 젖어있었다. 남조선대학생운동계의 요청으로 미국에서 살고있는 재미동포들을 위하여 보름전에 뉴욕에서 시작한 반전주제순회음악희가 여기 쎄인트루쓰에서도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것이다. 음악회는 시작된 첫날부터 대성황리에 진행되였으며 여기에 참석한 동포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진정어린 감격을 터뜨리였다.

상음은 그 감정의 리면을 모르지 않는다. 처음 듣는 음악이였으나 단번에 피를 끓게 하는 동질성, 구수한 토장국냄새며 우아한 치마저고리,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는 김치맛을 누구나 후련히 느껴서일것이다. 보다는 북핵문제로 《한》반도의 군사적긴장도가 파국적인 국면에 이른 오늘 불굴의 정의투사로 우뚝 일어서서 제국주의와 생사를 판가름하는 북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동정이 북받쳐서일것이다.

전상음은 흡족하여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휘파람을 불어대였다. 차안에는 《풍년가》의 리듬을 변형시킨 선률(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중간부선률이다.)이 차넘쳤다. 참, 그들이 묘하거던. 서유럽의 고전음악방식을 듬뿍 도입했는데도 작품에는 흰빵이나 치즈냄새가 전혀 없지 않는가. 리듬을 취사선택한걸 봐도 그렇고 선률을 전개한것을 놓고봐도 그래, 작품전반에는 조선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진하게 풍기고 거기에 북고유의 신비스러운 세계가 한껏 담겨져있지 않는가. 작품이 참 마음에 들거던. 전상음은 휘파람은 멈추었으나 흥얼흥얼하며 례의 선률을 계속 불렀다.

호텔에 도착하니 그가 든 방관리원이 마중나오며 아까부터 손님이 찾아와 기다린다고 알려주었다.

《한무신씨인가?》

《아닙니다. 〈한국〉대사관의 무슨 일등서기관이라던지.》

전상음은 백단나무로 짠 육중한 방문을 열었다. 벽을 따라 주런이 놓인 흰 쏘파의 한구석에 비스듬히 앉아 총보를 뒤적이던 검은 모직양복차림을 한 40대 초반의 사나이가 일어나 목례를 하며 명함장을 꺼내들었다.

《먼저 방에 들어와 실례했습니다.》

옷차림도 점잖고 보기 좋은 중키에 얼굴선이 부드러운데 비해 몹시 차고 매서운 눈찌를 가진 사람이였다.

상음은 털모자며 외투를 벗어 관리원에게 준 다음 일등서기관에게 앉으라는 손시늉을 하며 그와 비스듬히 대칭위치에 있는 쏘파에 자리를 정했다.

《좋은 책을 보십니다.》 서기관은 손에 들고있던 두툼한 도서를 응접탁에 내려놓으며 첫말을 떼였다. 《한데 누구한테서 구입했는지요?》

전상음은 그의 캐묻는듯 한 말투가 비위에 거슬렸지만 한켠으로는 쓰거웠다. 이 사람은 백색뚜껑에 누런 글씨로 《배합관현악과 우리 식 작곡기법》이라는 제목을 단 이 도서가 북의 출판물이여서 신경이 곤두섰으리라. 아마 공식적으로는 외교관이나 진짜 몸은 서울의 안전기획부에 담그고있을것이다. 전상음은 불쾌감이 치밀어 아직도 그의 도닥이는 손가락밑에서 수난당하는 도서를 끄당기며 질책했다.

《당신 도덕이 없구만. 누구한테서 받았으면 어쩔텐가.》

《아,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서기관은 량해를 구하며 로회하게 발명했다. 《실은 제 처가 음악애호가인데 오늘 선생을 만난다니까 정도이상의 관심을 보여서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커피음료가 들어왔다. 그것을 드는 동안 상음의 음악작품에 대한 눅거리분석이며 찬사를 늘어놓던 그는 전상음이 이마살을 찌프리는것을 눈치챘는지 말머리를 돌려 넌지시 묻는것이였다.

《요즘 미국각지를 다니며 반전주제음악회를 진행하신다지요?》

《잘 알구있소그려. 근데 왜 그러시오?》

《이젠 그만두십시오.》

《?》

《이건 제 개인이나 우리 대사관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정부의 공식적인 요구입니다.》

뭐, 요구? 《대한민국정부》?

《아 아 선생님, 마저 들으십시오.》

상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있다는듯이 그는 손바닥을 세워들었다.

《미국무성과도 이와 관련하여 호상 의견이 합치되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의견 가지지 마시고 중지하십시오.》

《흐, 흐흠.》

그는 어이가 없어 코그루를 박았다. 주제넘다고 생각되는 속에서도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음악회를 불편하게 여긴다?!

《좋소, 국무성사람들은 내 만나지. 그런데 당신들은 왜 우리가 하는 일을 불만스러워 하는거요. 거기에 당신들의 비위에 거슬리는것이라도 있소?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오. 내 들어보고 옳으면 기꺼이 참작하리다.》

《왜 없겠습니까. 가령 거 관현악 〈아리랑〉이라든가 〈노들강변〉을 들수 있지요.》

《여보, 거기에 무슨 리념이 있소? 그야 북, 남, 해외에 사는 조선사람들 전체가 다 아는 민요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 아닌가.》

《옳습니다. 그러나 누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는가가 중요하지요.》

《그럼 북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목적밑에 그것을 만들었다는것이요?》

《그럴수도 있지요. 북이야 민족의 무게중심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늘 선전하고있으니까. 그리고 듣자니 작품을 또 보충한다면서요? 무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와 〈사향가〉라던지. 맞습니까?》

《···》

《그것 보십시오.》

상음이 대답을 못하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먼저의것은 민요라고 리해한다 쳐도 뒤의것이야 철저히 북선전으로 되지 않습니까. 난···》

《아니, 아니요. 내가 지금 왜 그러는지 아시오? 리해가 안돼서 그러오. 당신들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그 무슨 남북적십자회담도 하고 예술교류도 주장하는데 왜 나는 하지 말아야 하는가. 조선민족의 피가 분명히 끓고있는 이 전상음이는 어째서 그런 일을 하면 안되는가 말이요. 이게 어페가 있는 행위가 아니요?》

《선생, 그건 북이 우리가 어쩔수 없는 방법으로 회담을 청하고 교류를 요구해오기때문에 인도주의적인 방향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인것입니다. 한마디로 외교입니다. 그것 말고라도 그렇지요.》

갑자기 일등서기관의 목소리가 거칠어졌고 눈찌에서 파들파들 불이 떨었다.

《지금이 어느땝니까. 선생도 아다싶이 북은 세계의 평화에 도전하여 핵개발을 시도하고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한〉반도에서 파국적인 일이 벌어지게 될겁니다. 이 모든 책임은 북이 지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지각있는분인 선생이 〈한국〉의 대학생아이들의 청탁에 응해서, 북찬양을 신념으로가 아니라 젊어서 한때 류행으로 치부하는 철부지들의 요구에 응해서 북을 선전해요? 선생은 아무리 민족동질의 감정을 읊조리는 민요라 하지만 명칭 하나만 놓고도 련북을 주장하는 색갈있는 음악회라고 단정할수 있습니다. 절대로 무리가 아니란 말이죠.》

모욕감으로 하여 오한이 나는것 같았다. 새파란 젊은 녀석이 큰소리를 치고 거치른 언사를 내뱉아서만이 아니였다. 험악한 조선반도의 정세를 눅잦히는데 얼마간이라도 도움이 될가 해서, 그리고 오랜 사색과 연구끝에 북도 남처럼 배달의 땅에 살아야 할 충분한 명분과 가치를 가진, 오히려 남보다 어째서인지 크고 높다는것이 인정되였기에 음악으로나마 북을 바로 알게 하여 해외동포들에게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식을 심어주려 했던 애바른 진정이 외곡되여서였다.

그런데 이녀석은 외목고지로 북을 헐뜯으며 조선반도에서 터지게 될 전쟁을 합리화한다. 이 새파란 놈이 전쟁이라는게 도대체 뭔지 알기나 알고 독설질인가. 풀메뚜기같은 놈. 이놈은 말상대조차 되지 않는구나.

《나한테 온 목적이 그래 그건가?》

《예, 그것때문입니다.》

치미는 울기를 겨우 자제하며 전상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나가게, 당장.》

《···》

《어서.》

《···》

《〈대한민국〉이 뭐라든 누가 어쩌든 내 할바는 내가 알아 할테니 다시는 상관 말라구.》

상음의 태도를 지켜보던 일등서기관은 한눈귀를 쪼프리더니 여유있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전상음의 앞을 지나치려다말고 멈춰섰다.

《고정하십시오 선생, 어쨌든 매사에 주의하는것이 좋습니다. 비록 선생은 미국국적을 가지고있지만 태를 묻은 곳이야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알아두십시오. 미국정부도 선생의 활동을 그리 달가와하는 눈치가 아니라는것을 말입니다. 그럼 전.》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일등서기관이 돌아간 뒤에도 전상음은 오래동안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곧 남과 북의 전쟁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렬강들이 세력권을 다투는 전쟁으로 되며 우리 조선민족은 제땅을 외세의 싸움장으로 제공하는 대신 민족멸살이라는 대참극을 당하게 된다.

남조선은 지금 북미핵대결에서 주제넘은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가련한 망상을 품고 미국의 전쟁열기에 적극 동조하는데 그래 전쟁이 종식되면 그들은 과연 살아남을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어째서 북을 그리도 미워하는가. 민족력사에 죄를 많이도 저지른 그네들에 비하면 북은 나름의 철학과 사상, 전진목표를 가지고 력사에 남을 일들만을 하고있지 않는가.

전상음은 왜 자기가 북에 동정심을 품고있는지 또 어째서 북을 신뢰하게 되였는지를 알고있었다. 2년전 그때부터였다. 음악과 조국, 민족과 음악에 대하여 뼈아픈 번민이 시작된 그날부터 전상음은 조국이라 불리우는 반도에 존재하는 두 제도를 랭철한 눈으로 조명하게 되였다. 그 과정에 상음은 남조선은 침을 뱉고 떠나온 그때 그 모양으로 남의 껍질을 쓰고살면서도 독립국가인체 하는 곳이라는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그런데 북은 어떠하였던가.

북의 력사를 소급해볼수록 상음의 뇌리속에 강렬하게 인이 찍힌것은 정의롭고 슬기에 넘치는 민중사회라는것이였다. 미국과의 대결력사며 정치적맹우인 쏘련과 중국과의 관계, 평등과 개인의 리익을 충분히 포함시킨 집단위주의 사회생활방식, 오직 민중의 복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국가기구, 정치기구들. 참으로 북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그들의 세계는 특이하였고 그래서 신비스럽기만 하였다. 북의 문화상을, 특히 음악세계를 투시했을 때 더욱 그랬다.

했어도 전상음은 자기로서는 그네들을 다는 모른다고 인정하고있었다. 몇권의 북도서들을 읽어보고 몇개의 음악작품이나 듣고서야 북을 어떻게 전부 안다고 할수 있겠는가. 그저 전상음의 뇌리속에는 북이 남쪽보다 확실히 훨씬 우위에 있다는것이였다. 이것은 공화국의 진면모를 깨달은데서 오는 견해라기보다 그를 새로운 눈으로 보려고 애써왔기때문에 아직 리론적인식에 불과한것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래도 상음은 기뻤다. 비록 리념은 다르지만 북도 우리 민족의 일원이고 또 그들은 민족정신을 홀시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크게 장려하고있지 않는가. 그렇다. 북녘땅도 내 조국이요, 그 땅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도 내 민족인데 해외에 산다고 어찌 동족의 땅이 남의 싸움장으로 되는것을 수수방관할소냐. 안될 일이지.

《저 선생님, 식사를 어디서 하시겠는지.》

흑인남자접대원이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묻는다. 상음은 응접탁우의 시계를 얼핏 보고나서 일렀다.

《시사보도를 듣고 하겠소. 그때 내 알려주지.》

전상음은 서재 겸 침실로 쓰는 방으로 건너가서 텔레비죤을 켰다. 짐작한대로 화면에서는 각국의 주요신문사와 라지오, 텔레비죤통신기자들속에 에워싸인 국제원자력기구의 한스 불릭스총국장이 북핵문제를 놓고 한창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들어보나마나 뻔한 소리였다. 지적한 군사대상에 대한 핵사찰을 거부하는 북을 공정한 국제질서를 어기고 세계평화를 유린하는 엄중한 국가라고 하며 북은 즉각 국제공동체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였다.

입안이 쓰거워나 통로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원인 모를 초조감이 드는것이였다. 그 어느 통로를 돌려보아도 온통 북핵문제가 론의되고있었으며 한결같이 북에 대한 미국의 위협과 공갈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론조뿐이였던것이다. 전상음은 다시 원래의 통로로 이전하였다. 프로가 바뀌자 이번에는 미국방성의 고위인물이 나타나 이달에 《한》반도에서 진행하게 될 미《한》 《팀스피리트 93》 합동군사연습의 목적을 밝히고나서 이어 여기에 투입하게 될 무력의 규모를 화면과 함께 설명하는것이였다.

초대형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 함선집단, 핵동력유도탄순양함 《캘리포니아》호 함선집단, 혼성상륙직승기모함 《벨로우드》호, 상륙부대지휘함 《불루릿지》호를 비롯한 각종 함선, 함정들, 《비1비》 전략폭격기며 《에프 117》스텔스폭격기를 포함한 각이한 기종의 공군타격무력들, 그외에도 불러대는 땅크며 대포, 미싸일을 들어보니 미국의 최신고도기술과 거대한 경제력이 만들어낸 살인무력이 총동원된것 같았다. 저만한 무력이면 군사에 문외한인 전상음이 보기에도 한개 전쟁을 치르고도 남음이 있다고 대뜸 짐작되는것이였다.

전상음은 등골에 땀이 질편하게 흘러내리는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눈과 귀를 강구었다. 아마 저 《비1비》 전략폭격기들이 투하하는 핵폭탄만 가지고도 북은 물론 반도전체가 황페화될것이다.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번 〈팀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에 군사연습사상 최대규모의 무력을 동원하였습니다. 연습은 포항상륙작전으로부터 시작될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북에 시한부를 정해주었습니다. 북이 만일 우리의 이러한 아량과 선의까지 무시하고 정해준 시일내에 국제공동체앞에 자기의 핵계획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거부한다면 연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것입니다.》

전쟁이다. 이것은 전쟁을 강요하는 공개적인 선전포고이다. 그러니까 미국은 정말 전쟁을 결심하였다는건가. 화석처럼 굳어져서 한참이나 앉아있던 전상음은 시계가 열두점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정신을 차렸다.

송수화기를 들어 음악단을 찾은 전상음은 단장에게 일이 있어 본인은 며칠후에 떠나겠으니 악단은 계획대로 캔지스 씨티로 출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번호를 돌려 국무성에서 근무하는 지기를 찾았다.

《여보시오, 매킨지씨지요?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을 낼수 있겠소? 음- 래일 오후에? 그럼 그때 가겠습니다.》

다음날 늦은 오후 전상음은 미국무성의 어느 한 방에서 매킨지와 만났다. 날씨와 건강을 념려하는 영국식의 한담으로 시작된 화제는 음악이야기에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매킨지에게만 국한된것이였다.

《옳습니다. 나 역시 그 사람 작품에서 제일 공감이 가는것은 부드러움과 선량성이지요. 금관악기를 더러 거칠게 써서 다소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데 매킨지씨.》

최근에 한 에스빠냐계작곡가가 창작한 어떤 협주곡에 대한 담소가 어느 정도 뜸해졌을 때 상음은 말머리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미국은 정말 북과 전쟁을 할 결심입니까?》

매킨지의 인상이 달라지였다. 그는 의아해서 상음을 마주보다가 인차 깨도가 되는지 웃몸을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며 배허벅에 두손을 얹었다.

《그렇습니다.》

《?!》

상음은 아연감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도 범상하고 평온한 그의 대답이였던것이다. 이자 이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가.

《그러니까 전쟁은, 전쟁은 피할수 없다는거지요?》

《선생, 북핵문제를 해결할 옳은 방안은 오늘의 상황에서 그것밖에 다른 선택이 있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상음은 부르짖었다.

《최대의 문명국가라 일컫는 미합중국이 대화와 협상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는 문제를 힘으로 풀려 하다니. 더우기 렬강들의 리해관계가 얽혀있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그것도 핵전쟁을 결심했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어서 말해주시오. 도대체 누가 결심했습니까. 클린톤대통령은 여하간에 음악인이였으니 세계평화를 일거에 깨버리는 그런 무자비한 선택을 했을리는 만무하고. 국방성입니까, 아니면 국무성의 주장입니까.》

《···》

《내 아무래도 만나봐야겠습니다. 알브라이트선생이 지금 계시지요?》

《부재중입니다.》

《그럼 내 이제 백악관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대통령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없을것입니다. 미국무력의 최고통수자인 그가 전쟁이 박두한 이때 거기에 있을리 만무하지요. 있다해도 대통령각하는 선생을 만나주지 않을것입니다.》

《뭐라구요? 만나주지 않을거라고? 그건 어째서입니까?》

《선생이 미국과 국제공동체의 견해와 전혀 다른 주장을 갖고계시기때문입니다. 세계와 인류는 한결같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보려고 오래동안 인내성을 기울인 미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있으며 오늘의 선택을 불가피한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정의의 전쟁마차는 벌써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북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핵계획을 그냥 고집한다면 그것은 더욱 가속도로 달릴것입니다. 그리고.》

웃몸을 세워든 매킨지는 배허벅에서 손을 풀며 상음에게 앞에 놓인 음료를 들라는 시늉을 했다.

《내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되는것이 있습니다. 섭섭함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노여움이라고 표현해얄지. 미국의 햄버거를 먹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미국최고의 음악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선생이, 다름아닌 미합중국 국민의 한사람인 당신이 자기 정부와 국가의 선택을 애써 부정하는듯한 그것이지요. 이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혹시 북을 동정하는게 아닙니까?》

《그렇소.》

전상음은 태연하게 긍정했다.

《북도 내 모국의 한부분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소. 이런건 당신이 리해하여야 합니다. 이런걸 문제시하면 다민족국가인 미국을 유지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햄버거니 코카콜라니 하는 거치른 말씀은 삼가하는게 좋겠소. 당신이 루이 암스트롱의 선률을 안주 삼아 남부의 포도주를 기분좋게 마시며 막연한 미국인의 긍지에 넘쳐있을 때 다름아닌 유색인종인 나 전상음이는 미국공민으로서 아메리카의 문화에 충분한 기여를 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이요.》

《아, 제가 실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선생.》

그는 실무적인 어조를 버리고 숭배자의 자세로 돌아왔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반대파들의 돈을 받아먹고 정부에 삿대질하는 길거리의 《반전투사》가 아니라 세계고전음악계의 명망있는 거물임을 잠시나마 잊은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매킨지는 뒤를 다지는것을 잊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나, 북과의 전쟁이 박두한 이때 언행을 정돈하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 문제때문에 근간에 선생을 한번 조용히 만나자고 작정했댔는데 마침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가 선생음악의 숭배자이니 터놓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마는 련방수사국에서 선생에 대한 주의가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과민을 보이지 마십시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문명과 자유세계를 반대하는 마지막보루를 기어이 없애버려야겠다는 의지를 굳힌만치 전쟁은 불피코 일어날겁니다. 물론 최대반미강경국가인 북이 우리의 최후통첩에 굽어들리 만무하겠지만 미국으로서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선생은 이럴 때일수록 국민감정에 발을 맞추어서 애국주의를 발휘하셔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때아닌 눈이 내리고있었다. 교외를 벗어날적에는 마지 못해 내리는것 같던 눈이 차가 캔지스 씨티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는 함박눈이 되여 펑펑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전상음은 등받이우에 뒤머리를 얹고 하염없는 서글픔에 잠겨있었다. 북은 어떻게 나올것인가. 그들도 미국의 최후통첩을 받았을것이며 그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고있는가를 모르지는 않을것이다. 그래서 결코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지 않을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전쟁? 아니다. 북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리기에는 너무나도 힘에 부칠것이다. 세계최대의 강력한 군사적힘과 그를 경제적으로 든든히 뒤받침해줄수 있는 부유하고 광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아메리카를 북이, 인구도 3천만이 겨우 될가말가 하고 령토도 미국의 코넥티커트주보다 더 작은 그네들이 무슨 수로 대적할수 있단 말인가.

물론 북은 지난 6. 25전쟁때 미국에 대패를 안긴적도 있다마는 그것은 따져놓고보면 공산국가들의 지원을 떼놓고는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날의 벗들도 없으며 오직 북 혼자일따름이다. 그들이 만일 전쟁을 택한다면 세계면전에서 흰소리만 치던 이라크처럼 될것이다. 그보다 더한 비극이 벌어질것이다. 국가의 종말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오천년을 연연히 대를 이어내려오며 살아오던 배달의 강토가 한순간에 불모지로, 페허로 되는것이다. 그러니 북이 어떻게 전쟁을 선택하겠는가. 그러면 대화와 협상? 너무 늦은감이 있다. 그래도 《한》반도를 핵참화에서 구원할 방도는 그 길밖에 없지 않는가. 한데 북은 어째서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있는가.

《북의 반응이 어떤가구요? 필경 출로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할것입니다. 랭글리(미중앙정보부)의 소식통에 의하면 그들은 미국의 최후통첩에 대하여 〈로동신문〉에 구태의연한 비방기사나 내는 정도라고 합니다. 》

매킨지의 말이였다. 전상음은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싶었다. 허나 매킨지의 발언은 엄연한 사실에 기초하고있을것이다. ···

속도를 죽이던 자동차가 어떤 식당앞에서 멎어섰다. 상음은 상반신을 세우며 앞시창너머에 눈길을 주었다.

《왜 섰소?》

《연유가 떨어져서 급유소에 갔다와야 할것 같습니다.》

운전사는 불만기가 어린 상음의 낯빛을 보자 아까 여쭈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인지에 골똘해있는것 같아 그냥 여기로 왔다는것이였다.

《더운 음료를 들면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내 제꺽 갔다오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전상음은 짙은 눈발속에 잠겨있는 시골특유의 길거리를 휘둘러보고나서 느린 걸음씨로 식당현관의 층계를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울퉁불퉁한 돌을 되는대로 쌓아지은듯 한 식당건물의 외부와는 달리 안은 무척 아늑하고 조용했다. 카운다옆에 있는 낡은 피아노건반우에 머리를 수그리고있는 두사람과 쉬나문평방쯤 되는 무도장을 따라 놓은 식탁들에 듬성듬성 앉아있는 서넛의 손님들, 훈훈한 공기, 한절반 잠에 취해서 말하는듯 한 라지오의 방송소리.

전상음은 서서히 퍼져가는 안정감을 기분좋게 감수하며 낡은 피아노가 서있는 소무대가까이의 식탁으로 다가갔다. 애젊은 녀접대원이 가져다준 더운 차를 조금 마시니 피로가 풀리며 노근해져났다. 그때 라지오에서는 게으른 목소리와는 달리 애교가 진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음은 무심결에 귀를 기울이였다.

《지금부터 씨엔엔텔레비죤방송이 전송하는 시사보도를 주방송으로 중계해드리겠습니다. 금일 오후 4시 미군의 항공륙전대 제3진이 〈한국〉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진행하는 〈팀스피리트 93〉 합동군사연습에 참가할 공수부대는 전부 떠난것으로 됩니다. 이 부대는 〈한국〉상공에 도착하는 즉시로 작전지역인 포항에 투하되여 〈팀 93〉연습의 서막을 열것이며 이것은 동시에 북핵문제해결을 알리는 전주곡으로도 될것입니다. 미국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전상음은 흠칫 놀라 차잔을 든채 굳어져버리였다. 터지겠구나, 드디여. 심장이 후둑후둑 들뛰였다. 오한이라도 난것처럼 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결국 그렇게 되고말았구나. 이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거다. 그 누구도 멈춰세울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맹렬하게 굴러가는 전쟁마차는 이제 무서운 비극을 인류에게 보여줄것이다.

언젠가 어떤 반핵주제의 영화를 본것이 떠올랐다. 하늘은 가없이 높고 태양도 여전히 빛나고있으나 괴괴한 정적속에 잠겨있는 대도시, 허연 재를 뒤집어쓰고 거대한 시체로 되여버린 건물들. 그것이 오늘의 현실로 될것이다. 히로시마나 나가사끼보다 더 참혹한 재난이 민족이 사는 강토를 휩쓸게 될것이다. 버섯구름, 거대한 불기둥들. 전상음은 상상되는 그것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워 눈을 감았다. 조금 있다가 눈을 뜬 그는 처절한 눈길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식당안은 무정하게도 조용하였다. 태연하게도 아늑하였고 창밖에서는 눈이 무심하게 내리고있었다. 저들은 무엇이 그리도 좋아 키들거리는것인가. 저 처녀는 왜 신바람이 나서 돌아칠가. 이 인간은 고뿌가 어쨌다고 두덜대는것일가.

투명한 술고뿌에 금이 갔는지 아니면 질이 좋지 못하다는것인지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불만스러워하는 뚱뚱보사나이며 카운다의자에 앉아 졸다가 손님 서넛이 들어오자 금방 활기를 띠며 오가는 금발머리접대원, 피아노뚜껑우에 세워든 두손에 턱을 고이고 곁에 서있는 악사풍의 젊은 남자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연신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고있는 처녀, 식탁우에 무드기 쌓인 순대며 과일들, 송아지고기료리, 흰빵, 술병들. 모든것이 평온했고 기름기가 번질거렸으며 한없이 태평스러웠다. 이들은 이제 곧 지구의 한끝에 사는 한 민족이 무서운 재난을 당하게 되리라는것을 모를것이다. 강토가 불모지로 변하며 민족 그자체가 종멸된다는것을 모를것이다. 저기 로씨야의 우데게족처럼, 안데스협곡의 마야인들처럼. 하지만 안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그래도 이들은 웃고 떠들것이며 먹고 마시고 자는 생활을 태연하게 누릴것이다.

아, 수난많은 나의 민족아! 너의 운명은 왜 그리도 기구하기만 하느냐. 불시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고 불덩어리같은것이 목구멍으로 차올랐다.

전상음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다. 그는 원인모를 인력에 끌려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동양인치고 체격이 장대한 풍신 좋고 잘생긴 백발의 늙은이가 자기들앞으로 불안스럽게 비척비척 다가오자 남녀들은 무엇인가 직감했는지 자리를 내주는것이였다. 앉았다. 뚜껑을 열었다. 서러움이 왈칵 북받쳐올랐다. 얼굴을 싸쥔 그는 건반우에 어깨까지 묻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아, 불행한 조선아! 불쌍한 내 민족아! 너는 왜 그리도 운명이 기구하느냐. 너 차라리 대륙 한복판에 자리잡던지 아니면 망망대해에라도 삶의 터전을 잡았으면 이다지도 수난당하지 않았을것이 아니냐. 너 차라리 태여나지조차 아니했더라면 더욱 좋았을것이 아니냐. 너 혹 살아오면서 남의 귀통을 한번이라도 우벼놓은적이 있었다면 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다. 너 혹 남의 집 대문을 부시고 들어가 오지단지 하나라도 가져온적이 있다 하면 내 이리도 괴롭지 않다. 오천년을 연연히 내려오며 어질고 착하고 인정이 깊어 세상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네가 아니냐. 세상 순하고 결곡하여 세인이 입을 다투어 찬양했던 네가 아니였느냐. 그런데 너의 운명은 어째서 이리도 박복하고 팔자사나운것이냐. 반만년력사를 지내오는 동안 대체 변한 날은 언제였으며 흥했던 때는 언제였고 안정을 가지고 부요하게 산 때는 그 언제였느냐. 그 언젠가 우뚝 일어서서 대륙의 들판을 들들 울리며 세상에 호령질한적은 있긴 있었다만 그것은 여름날의 무지개같은 한시절뿐이 아니였느냐. 아! 비통하구나. 단군성왕께서는 너를 크고 웅장하게 빚어 세상에 보란듯이 내세웠건만 세세년년 뜯기고 빼앗기더니 그나마도 반반씩 쪼개졌다가 오늘은 드디여 망하고마는구나. 아!- 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처량한 노래가 절로 새여나왔다. 언제 건반에 손을 얹었는지 모른다. 계속 불렀다. 조성이 바뀌며 계속 올라갔다. 부를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워나고 숨이 가빠났다. 그래도 전상음은 기력을 짜내여 부르고 또 불렀다. 그는 그저 가슴속에 쌓이고쌓인 이름 못할 절통감을 소리내여 터뜨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진정할수 없는 심정에 싸여있었다. 그것은 세기를 두고 쌓일대로 쌓인 이 민족의 비통한 울부짖음, 비통한 서러움의 폭발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 불행한 조선아! 너는 망망대해같이 거치른 이국에 나 홀로 남겨두고 정녕 가려는것이냐. 나도 가련다. 가더라도 나를 데려가주렴. 가는 걸음 절명의 길이라 해도 나도 데려가주렴. 너 없는 이 세상에 나혼자 어떻게 살란 말이냐. 전상음은 피를 토하며 의자에서 천천히 굴러떨어졌다.

 

×

 

그랬다. 나는 그때 인차 의식을 회복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살기를 단념해버렸었지, 이 식당을 나서면서.

오늘의 심정도 그날과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로써 생을 마칠것이다. 전상음은 고뿌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내심으로 진우에게 이야기했다.

진우선생, 소인은 그때 펜을 들면서 이 편지가 선생의 손에 가닿게 될 때 진우선생이 어떤 심정에 계시리라는것을 알고있었으며 그것은 너무나도 응당한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습니다. 허나 제 렴치불구하고 선생을 부르는것은 비록 용서는 받지 못할지언정 독백으로라도 진애며 선생을 위로해드리고 수십년간 잠재해온 죄의식의 중압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보려는 괴로운 충동이 치밀어서였소이다. 그러니 부디 가슴속 어딘가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을 우정을 살려 이 전상음이라는 인간의 마지막변명을 너그러이 받아줄것을 아무쪼록 부탁하는바입니다.

그때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요. 무슨 생각인들 안했겠습니까. 밤이면 늘 누덕누덕한 자그마한 포대기 하나를 가지고 장밤 밀고당기며 서로 제가 덮겠다 씨름질하던 일이랑. 한번은 선생이 너무 화가 나서 포대기를 아예 제몸에 둘러감고 자다가 부친께 매를 당하신적도 있었지요.

그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얘 상음이, 추웠지? 하며 무척 미안해하던 그 거동, 진애가 내 학비때문에 피를 팔고서 몸져누운 자리에서 내가 하두 눈물을 흘리니까 자식, 사내가 그만한걸 가지구 계집애처럼. 됐어, 후에 결초보은 하려무나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선량한 눈빛도 잊혀지지 않았소이다.

그 시절의 갈피마다 새겨져있던 이런 고운 꿈들이 지나가자 뒤를 이은것은 새롭게 시작할수 없는 자기의 인생에 대한 무서운 반성과 서러움이였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늘 이르기를 음악이란 인간정신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예술이다, 네가 진정으로 음악을 하려거든 제 마음부터 순수하게 가다듬고 일체 속세의 쟁론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음악을 전수하는 과정에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뒤에 일어난 6. 25동란속에서 체험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할수 있었지요.

기억나시오, 진우선생. 북으로 가겠다는 나의 결심을 듣자 자식, 그런걸 괜히 걱정했댔지하며 이 상음이의 어깨를 툭 치던 일을 말입니다. 그때 솔직한 나의 심정은 이도저도 다 싫었고 가변적인 현실의 흐름에 휘말려돌아가기가 싫어졌댔습니다. 내가 흔연히 결심하게 된것은 순 사랑과 우정때문이였지요. 그러나 북으로 들어가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자기의 행로를 랭철하게 돌이켜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로상에서 목격한 모든것, 폭격에 페허가 된 거리며 마을들, 사방 널려져있는 시체들, 순천으로 가는 로상의 어느 한 마을에서 본 참경들, 거기서 죽은 엄마의 젖가슴에 매달려 울어대던 어린 계집애의 모습을 보며 인간세상에 잠재하고있는 악이 어떤것인가를 느꼈으며 그를 추동하는 무서운 힘을 두고 진저리를 치였습니다. 그다음에 뇌리에 찾아든것은 이 길이 끝나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고민이였습니다.

아!- 전상음은 불시에 괴로운 한숨을 내불며 머리를 세게 흔들어댔다. 진우와 저녁어스름이 진하게 깔린 산속길을 걸으면서 론쟁하던 일, 진애와 모닥불곁에 누워 시름겹게 밤하늘을 쳐다보며 운명의 갈림길을 론하던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생동하게 떠올라 더는 지난 일을 되올려보기가 지겨웠던것이다.

그렇소이다, 진우선생. 이렇게 나는 선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던 끝에 홀연 이것이 옳게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고 이제라도 갱생해보느라 제딴에 노력해왔지요. 금세기의 정의투사로 일떠서서 세계를 굽어보며 제 배짱대로 나아가는 북을 다르게 보면서 그 힘을 알고저 애써왔소이다. 그러다가 동포지기들에게서 《아리랑》소문과 그 이야기를 듣던중 이 작품의 총연출가가 진우선생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더 선생과 그때 있은 일을 놓고 추억할수 있겠소. 저번에 나는 해외동포사업을 본다는 선생에게서 전부 들었소이다. 내가 대오를 떠난 뒤에 생긴 불상사들이며 전후에는 나때문에 선생이 루명을 쓰고 잘못될번 했다는것까지. 이런 아픔과 고통을 당한 진우선생이 무슨 편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만날수 있었겠습니까.

이제는 늦었지요. 무슨 작품을 써볼가 해도 인간이 너무 어지러워졌고 인생을 고쳐살아보려 해도 황혼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렴치불구하고 만나서 백배사죄를 하고싶었으나 이 전상음이 진 죄가 하도 커 그것마저도 바라지 못하게 되였으니 림선생, 소원은 그저 옛날처럼 진우야! 하고 목놓아부르며 통곡을 하고싶은 심정이구려.

진애의 명복을 빌면서, 진우선생의 안위를 위해서 상음이 이 마지막 잔을 들겠소이다.

전상음은 두번째 고뿌 역시 단번에 마셔버렸다. 취기가 더욱 오르며 마음이 푹 가라앉는것이 알렸다. 상음은 입속으로 구슬프게 응얼웅얼거리였다.

 

가을의 나무잎이 떨어지듯이

나의 희망도 말라버렸다

진정한 기쁨의 메아리가

내게서 사라진지 그 얼마인가

오, 그 언제면

오, 신이여

그 언제면 나는

자연과 인간의 전당속에서

기쁨의 메아리를

다시 들을수 있을것인가

이제는 안될 일인가

아니, 아! 그것은 너무하다

 

누구의 시였던가. 예쯔? 아니, 예쯔의 시가 아니라 산문이지. 베토벤의 유서. 나는 베토벤을 제일 숭상했다. 그는 인생은 천번을 살고싶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가 비상히 강하고 성정이 순결한 인간들만이 받아들일수 있는것이고. 하지만 내 경우야 어디 그런가. 민족도 조국도 버렸고 친구에게서도 배척을 당했으니 나야 말로 가련한 존재, 외롭고도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선생님!》

전상음은 흐릿한 눈정기를 애써 모으며 머리를 들었다. 한무신동포였다. 흠, 드디여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구만, 운명이. 5번교향곡이 시작되였단 말이지.

《자넨가, 왜 이자 오나.》

상음은 옆의자를 끄당겼다.

《어서 앉게. 나와 술이나 마시자구. 자네들이 숭배하는 이 알량한 작자가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보라구.》

《취하셨군요. 정신 차리십시오, 선생님. 선생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어디서?》

상음은 그제야 한무신동포의 곁에 서있는 사람을 띄여보았다. 나이가 50대쯤 되여보이는 그는 진밤색양복차림을 하고 한손에는 외투를 들고있었는데 왼쪽가슴에 김일성주석의 초상휘장을 모시고있었다.

《아, 북사람이군. 반갑소. 선생도 앉으시구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사양했다. 그리고나서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부일군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무슨 일루 날?》

《조국에서 전선생의 친구되는분이 화상상봉을 요청했습니다. 림진우라고 아시겠지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총연출하는.》

《〈아리랑〉? 친구? 없소, 모릅니다. 난 듣다 처음입니다, 예.》

전상음은 한손을 휘 휘 내흔들었다. 그러다가 손짓을 뚝 멈추었다.

《가만, 이자 누구라구요? 림진우?》

《예, 옳습니다. 림진우총연출가, 선생의 친구가 맞지요?》

《?!》

《가십시다. 친구가 지금 기다리고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난··· 그 사람이 어떻게 날··· 나는 사실···》

전상음은 얼떠름해서 뜻모를 외마디말로 중얼거렸다.

《예, 친구분과 무슨 일이 있었댔는가를 알고있습니다.》 대표부일군은 사람좋게 웃으며 상음의 한손을 정겹게 잡았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가보면 알게 되실겁니다, 모든것을 다.》

그다음 일어난 일들은 전상음이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엄청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