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30

 

《음향실!》

림진우는 흠칫 상념에서 깨여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앞에 아동장창작가가 서서 휴대용확성기에 대고 예술음향실을 찾고있었다.

진우는 벗어쥐였던 체육모자를 쓰며 몸을 일으키였다. 오후 첫 시간에는 아동장이 경기장바닥을 타게 되여있었는데 그가 앉아있던 자리는 장지휘를 하는 지휘석이였던것이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확성기로 음향실을 다시한번 찾고난 그 녀자는 진우에게 다가왔다.

《아, 아니, 괜찮소. 그저 두루 신경쓸 일이 생겨서 거기에 옴해있다나니.》

《참모장동지가 총연출가동지를 찾는것 같습니다.》

《그래?》

아마 전상음이와의 상봉문제때문일것이다. 오전에 원석현과 얼핏 길에서 만났는데 성에서 취한 대책을 알려주겠다면서 오후에 만나자고 하였던것이다.

《저, 총연출가동지.》

걸음을 옮기려는데 녀성창작가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는다.

《몇개 동작을 고쳤는데 좀 봐주지 않겠습니까?》

《허어 – 내가?》

허거픈 음성이 절로 나온다.

《제 작품도 못해서 쩔쩔매는 사람이 무슨 체면으로 보겠나. 봐야 바른소리 한마디 못할거요. 청실동무, 신심을 가지고 마저 완성해보우. 지금 형편에선 난 조언을 줄 여유가 없구만. 미안하오.》

진우는 량해를 구하듯 그 녀자의 어깨를 한번 잡아주고나서 돌아섰다. 인차 그의 귀전에 동심적인 음악선률과 함께 자신심에 넘친 창작가의 구령소리가 들려온다.

진우는 통로를 따라 무겁게 발을 내디디였다.

요즘 림진우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괴로움을 안고 혼자 속을 썩이며 모대기고있었다. 창작능력이 모자라 그이의 믿음에 따라서지 못하는 허무감에 사로잡혀서였다.

열흘전에 진우는 원석현이에게서 그이의 교시를 전달받았을 때 눈앞이 캄캄해났다. 원석현이는 크게 질책하셨는데 장본인인 이 림진우를 놓고서는 별로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지 않는가. 그저 수령님께서 겪으셨던 일들, 자신께서 힘들게 넘으셨던 일을 례증드시며 진정으로 뜨거운 인간애를 지닌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이르셨다고 한다. 내가 한 행동이 오죽 안타까우셨으면 심중속에 묻어두셨던 일까지 터놓으셨겠는가.

《이제 진우동무에게는 옛 친구를 만나는가, 안 만나는가 하는것보다 조국통일과 민족의 운명문제를 어떤 눈으로 보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생활에서 찾으라고 일러주시오. 자기와 옛 친구의 인생경로에서 말이요.》

이것은 김정일동지께서 석현에게 전상음의 편지를 돌려주면서 하신 가르치심이라고 한다. 림진우는 그 교시를 용서로 받아들이였으며 기회를 주신것으로 간주하였다.

진우는 새로운 결심을 품고 작품에 달라붙었다.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자기와 전상음의 인생경로를 예술가적눈으로 탐구해보았다.

근래에 와서 림진우는 가끔 지나온 생의 길을 돌이켜보군 한다. 그러면 선참 떠오르는것은 비명에 돌아간 아버지며 누이동생의 얼굴이 어룽거리는 속에 장장 반세기를 하루같이 아들을 기다려 속을 태웠을 어머니의 정상이 그려지며 세상에 이처럼 류다른 아픔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가 하는 생각에 눈굽이 삼삼해나군 했다.

《큰할머닌 계속 삼촌을 찾았어요. 가실 때두 진우야, 진우야, 늬 얼굴이 생각 안나는구나. 늬가 정말 살아있느냐 하시며···》

흩어진 북남가족친척상봉차로 서울에 갔던 림진우는 조카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의 소식을 고대하며 어느 한밤도 편히 주무시지 못했을 어머니. 진우는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을 때 평생회한이 산처럼 밀려와 봉분에 엎어져 끝내 울음을 터뜨리였다.

사무치게 그리워났다. 어린 자식들을 배곯리지 않으려고 언제한번 허리를 펴보지 못한 어머니, 자식들을 남 못지 않게 내세우고싶어 갖은 고생을 다하신 어머니, 이런 어머니를 위해 그 시절 아들은 무엇을 한것이 있단 말인가. 배곯지 않게 차례지는 범벅음식에는 교외의 남새밭에 나가 배추며 무우꽁다리를 줏느라 해지는줄 모르셨던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이 깃들어있는것도 몰랐다. 두부장사며 삯빨래를 하느라 썩살이 박히고 퉁퉁 부은 그 손에서 달마다 어김없이 냈던 학비가 나오는것도 다는 몰랐다.

그래도 어머니는 철이 없다 탓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들이 무용전습소에 다니는것이 대견스러워 그저 기뻐하셨다. 세월이 바뀌여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다.

《어머니, 좋은 세상이 왔는데 이젠 그만두세요. 이 아들이 인차 큰사람이 되여 어머닐 꼭 호사시켜 드릴랍니다.》

이것은 조국해방전쟁때 전선원호사업으로 바삐 다니다가 어느날엔가 집에 들어와 두부를 앗고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진우가 한 우스개소리였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는 마지막대화인줄 내 알았더라면···

허나 광도가 센 전지불처럼 사색의 눈을 밝혀들고 어제와 오늘을 샅샅이 더듬어비치며 탐구를 해볼수록 결과는 매번 이렇게 끝나버리군 했다.

이 나라 사람들중 유독 나만이 이런 아픔을 가지고있으며 나만 이 류다른 체험을 했단 말인가. 그이의 교시대로 전상음의 편지를 깊이 음미해봐도 그렇고 내곁의 각이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래 마치도 큰 숲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거목에도, 지어 자그마한 잡관목에도 성장에 이르기까지 제나름의 곡절이 있듯이 우리 민족성원들 매 개인에게는 나름의 체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는가.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와 상음이의 인생길에 통일장의 생활바탕이 있다고 하신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무엇을 보고 예술형상의 생활바탕이 있다고 하셨을가. 아, 그것이 무엇일가. 나는 어째서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는걸가. 아무리 무진 애를 써도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가. 무엇때문일가.

늙었나부다. 림진우는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중얼거리였다. 마른 나무가지에서 즙이 나올수는 없는것이다.

잠간 서서 경기장 천정의 전광장식을 올려다보던 진우는 괴로움이 듬뿍 배인 긴숨을 내쉬며 원석현의 방으로 가는 계단우에 올라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안에는 차성규부부장이 석현과 함께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떠돌고있었다.

《인차 위대한 장군님께서 외국손님들과 함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공연을 관람하러 나오시게 됩니다.》

《!》

림진우는 불시에 닥쳐온 영광이 믿어지지 않아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공연이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장내의 곳곳에는 공화국기며 당기발들이 나붓기고 《결사옹위》, 《총폭탄》이라고 웨치는 우렁찬 구호소리가 차넘쳤다.

퍼그나 시간이 흐른 뒤 림진우는 그이께서 부르신다는 전갈을 받게 되였다. 수도교외의 로상에 도착한 림진우는 달빛에 번들거리는 야전차의 앞머리가 모두 나라의 중부지역으로 뻗어간 도로쪽으로 향하고 서있는것을 보자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나 일을 쓰게 하지 못하였으면 전선길을 가시던 도중에 부르셨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숙여 인사를 올리는 진우네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연소감을 피력하시고나서 본화제에로 들어가시였다.

《통일장이 아무래도 걱정이 되여 동무를 불렀습니다. 작품창작은 잘 되여가고있습니까?》

《하느라고 했는데 아직은···》

진우는 그이께 속시원한 대답을 드리지 못하는 제 처지가 스스로 모멸스러워 뒤를 잇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아직 끝을 보지 못했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안색에 주의를 돌려보시다가 부드럽게 권고하시였다. 《진우동무, 어쨌든 통일장의 상은 알고있을테니까 어서 말해보오. 륜곽적이래도 말이요.》

림진우는 그동안 사색하였던것을 조금이라도 정리하려고 생각을 더듬으며 말씀드리였다. 이따금 답답할 정도로 갑자르며 설명하는 그의 어조는 몹시 침중하였다. 이 무슨 불륜의짓인가. 무능력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죄를 솔직하게 이실직고할 대신 증언부언하려들다니. 내가 언제 작품을 륜곽이나마 그린적이 있었던가. 그는 소스라쳐놀라 입을 다물었다.

《장군님, 저는···》

림진우는 자못 비장하여 자포자기의 심중을 그대로 토설하였다.

《저는, 전 안되겠습니다. 장군님께선 제가 겪은 체험이랑 그 상음이라는 사람의 인생경로를 귀히 여겨 여기에 방도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체험이 크고 제가 겪은 아픔이 아무리 크다 한들 혁명을 하는 과정에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체험에 비하면 무엇이겠습니까.》

《···》

《제 이렇게 떼거지를 쓰는것이 배은될 행위라는것은 알고있지만 장군님, 솔직히 말씀올리면 제 능력으로썬 이번 작품이 너무 힘에 부칩니다. 제 이제는 늙었나봅니다.》

진우는 말을 마치고나서 무엄한 자기의 언행을 수습하려는듯 몸가짐을 바로하였다.

하회를 기다려 머리를 숙이고있는 그를 이윽토록 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우의 언행을 아량있게 리해하여주시였다.

《허, 진우동무가 진짜 로쇠가 온 모양이요. 수령님과 당을 따라 천만리를 걸어오며 별의별 우여곡절을 다 이겨낸 동무가 약한 소리를 하는걸 보니.

가만, 일전에 동무에게 도움이 되라고 수령님이야기랑 내가 체험했던것을 말했는데 혹시 거기에 너무 집착되여 자기의 생활체험이 왜소하게 느껴진것은 아니요?》

《···》

《대답을 못하는걸 보니 그런것 같구만. 림동무, 너무 실망하지 마오. 창작과정에 무슨 고충인들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나도 어지간히 궁리해본것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함께 토론을 해봅시다.》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 저 멀리에서 별찌 하나가 긴 불꼬리를 끄을며 떨어졌다. 가까운 도로에서 차들의 동음소리가 들려오고 사이사이로 주변 가로수잎들이 설레는 소리만 들려올뿐 사위는 고요하였다.

인차 김정일동지께서 담담한 어조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원래 예술이란 그 어떤것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정서적감흥을 주지 못하면 본래의 사명을 잃고마는 법이요. 정서적감흥이란 뭐겠소. 진실한 생활형상이 아니겠습니까. 동무의 작품이 공회전을 거듭한것은 바로 이것이 없었기때문이요.

자, 그럼 우리 통일장의 내용들을 가까운 생활에서 하나하나 찾아봅시다.》

《···》

《일전에 나는 동무가 어머니묘소앞에서 눈물을 쏟는것을 보고 참으로 생각이 많았소. 해외동포음악가의 편지를 보면서는 림진우라는 한 인간이 걸어온 인생길을 상기해보았고. 기억나오? 13차축전때 그걸 내게 들려주던 일을 말이요.》

《기억납니다, 장군님.》

《그럼 어디 말해보오. 진우동무는 얼굴도 알아볼수 없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체험했소?》

림진우는 서울에 나가서 모친상을 치르며 한 체험을 천천히 되살리며 대답올렸다.

《분렬로 인한 통절한 아픔, 하여 이렇게는 살수 없다는 생각이라. 그날 옛 친구의 편지를 보고서는 느낀것이 무엇이였소?》

《이런 인간도 뒤늦게나마 민족문제에 관심을 돌리는구나, 하는것이였습니다.》

《옳습니다. 동무가 옳게 말했소. 오늘 우리 조국의 평화적통일은 더는 미룰수 없는 초미의 문제요. 고향이 남조선인 그 재미동포음악가가 공화국을 방문하려 했고 친구를 만날 결심을 하게 된것도 아마 이때문일것이고.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하는가.》

《···》

《13차축전때 우리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종교계와 전대협이 대표를 파견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반공풍조가 아무리 우심하고 그로 하여 이질성이 농후해졌다 해도 정은 어디 가지 않는다, 통일의 방도는 다른데 있지 않다, 민족의 매 성원들의 가슴에 천성으로 젖어있는 민족애, 이것을 높이 사고 귀중히 여기면 그가 누구든, 과거에 어떻게 살았고 어떤 리념을 가지고있었든간에 민족의 운명과 자주적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라고 하셨소.》

말씀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우의 의견을 물으시였다.

《내 보기에는 이쯤되면 작품이 발붙일 토양이 마련되였다고 생각되는데 림동문 어떻습니까?》

림진우는 제때에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의 교시를 들으면서 점차 알지 못할 무엇인가가 형체를 드러내는것에 정신이 온통 쏠려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진우는 뒤늦게야 입을 열었는데 대답은 퍼그나 두서가 없었다.

《틀거리가, 예. 장군님, 감각이 옵니다.》

《틀거리가 섰다? 그러면 됐구만. 이젠 심장을 쩡 울리게 작품을 만들어볼수 있겠소?》

《할수 있습니다. 한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른 화제를 꺼내시려다가 그가 말끝을 흐리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아직도 리해가 안되는 점이 있는거구만.》

《아닙니다.》

림진우는 서둘러 언행을 수습하였다.

《그럼 왜 그러오?》

진우는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 결심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작품을 놓고 깊이있는 말씀을 하실적에는 틀거리이상으로 사색의 폭을 넓히셨겠는데 그것도 알고싶은 욕심이 동하였던것이였다.

《이왕이면 제 미숙한 재기를 헤아려 장면이랑 마저 가르치심을 주셨으면 해서 그럽니다.》

《허 이런, 장면까지? 건 안되겠소. 주인은 동무이고 내 말은 어디까지나 의견인데.》

그래도 림진우는 물러서지 않고 고집스레 청을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난색을 지으며 둘러선 장령들에게 묻는듯 한 시선을 보내시였다.

《질군이군. 이런 땐 어떡하문 좋은가?》

《장군님.》

그는 한발 나서며 절절하게 다시 청을 드렸다.

《정말 질군이요.··· 흠- 할수 없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난색을 거두시였다. 《작품창작에 도움이 된다니 용빼는 수가 없군. 그럼 조언이 되겠는지 모르겠는데 한번 들어보오.》

진우의 뇌리속에서는 어슴푸레한것이 벗겨지고있었으며 툭툭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귀에 들려오는듯싶었다.

림진우는 김정일동지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가는것을 확연하게 느끼였다.

《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주제가인 〈아리랑〉을 들을 때마다 수난에 찬 민족의 력사를 새삼스럽게 돌이켜보군 했습니다. 어제날엔 나라를 빼앗겨 불행했고 오늘날엔 분렬의 고통으로 편안한 날이 있어보지 못했고.

나는 그래서 그 점을 강조해주는 의미에서 서장의 〈아리랑〉선률을 통일장의 전반부에 울리게 하자는것입니다, 요즘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새로 형상한 노래를 넣고.

장제목이 〈분렬의 장벽을 짓부시고〉인데 신통치 못하오. 통일장의 제목은 장성격이나 전체 작품의 정신에 맞게 〈통일아리랑〉이라고 고치는것이 나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에 보니까 마감에 조선지도를 그린 착상이 좋던데 색갈은 희푸른색으로 바꾸는게 좋겠소. 리념우에 있는 민족애, 순결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흰색, 어제도 오늘도 청푸르게 살아있는 조선민족의 통일념원, 이것을 형상해서 말이요.

문제는 배경대와 바닥형상인데 나는 동무와 옛 친구의 감정을 그대로 거기에 쏟아넣으면 된다고봅니다. 어릴적에 겪었던 망국민의 설음, 아들을 기다려 긴긴세월을 잠 못이루다 끝내 돌아가신 동무의 어머니, 머리에 백발을 얹고서야 비로소 진리를 찾은 옛 친구.

림진우동무, 나는 우리 민족의 력사가 비낀 동무네들의 인생경로를 이렇게 덜지도 더하지도 말고 그대로 펼치면 될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그대로 덜지도 더하지도 말고, 불시에 거대한것이 흉벽을 쿵쿵 두드리였다. 그다음.

다음순간 진우는 순식간에 밀려든 창조의 열정적이고도 무분별한 파도에 휘말려 끝내 자기를 잃고말았다.

섬광이 번쩍인다. 암전, 조명, 배경대에 그려지는 재빛구름, 어두운 들판, 무정하게 드설레이는 갈대숲,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치며 절규하는 백발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 림진우를 목놓아부르는 상음의 얼굴도 보인다. 그와 동시에 민족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형상하는 바닥출연자들, 맨나중에 뚜렷이 새겨지며 크게 물결치는 희푸른색의 거대한 조선지도.

이 순간 그야말로 림진우는 오래동안 잠자고있던 령감이 마침내 눈을 뜨고 명화폭들을 펼치는것을 가슴후련히 느끼고있었다. 환희에 넘친 진우는 내심 울고웃으며 계속 부르짖었다. 아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새여나온다.

《장군님, 됐습니다. 이제는 다 알겠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그뒤에 들려오는 김정일동지의 음성, 그것은 마치도 먼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 하였다.

《보오, 방도는 동무와 그 재미동포에게 있지 않습니까.

속죄는 한 인간이 도덕륜리적자책감을 깊이 느끼고 그를 씻으려는 고결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동무는 왜 이것을 볼수 없었는가. 전민족적인 지향과 감정앞에 자기를 세우지 못했기때문이요. 했기에 동무는 옛 친구의 갱생을 믿지 않았으며 작품에도 그것이 반영되였던것이요.

진우동무, 예술가는 인간이여야 하오. 커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 송가를 구가하는 〈아리랑〉을 만들어낼수 있는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의 앙양된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으시였다.

《그래 진우동무의 옛 친구는 어떻게 할셈이요?》

그는 문화성이 취해준 대책을 말씀올렸다.

《래달초에 오스트리아에 가는 문화성대표단에 망라되여 거기 가서 만나보려고 합니다.》

《3국에서 만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낮게 뇌이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곡진하게 당부하시였다.

《림동무, 그가 우리 공화국의 세상에서 생활한 날은 불과 서너달밖에 안되는데 그 어간에 진리를 알면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너그럽게 지나간 일을 삭이고 크게 마음을 가집시다. 옛날부터 스스로 벌을 청하는 사람은 책하지 않는다고 했소.

그 사람이 말년에나마 과거를 뉘우치고 조국방문을 결심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장마비에 시내물이 좀 흐려졌다 해도 그건 한순간이지 바탕은 절대로 변하지 않거던.》

《잘 알겠습니다, 장군님. 제 좁은 소견을 가지고 그만···》

《그래야 합니다. 이보오, 한데 가기는 어디로 가겠소, 제땅이 있는데 오라고 합시다. 작품을 완성한 다음 문화성의 명의로 초청해서 〈아리랑〉공연도 구경시키고. 내 의견은 그의 의향을 들어보고 다른것이 없다면 음악회도 조직해주면 좋을것 같구만.

림동무, 그때 모두 계산하시오, 엄하게 꾸중도 하고 볼기도 갈기고. 그러나 너무 되게 치진 마오. 그러다 또 달아나면 어쩌겠소.》

그이께서 볼기를 치는 시늉을 하며 해학적으로 권고하시자 둘러선 인민군지휘성원들속에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저편 키높이 서있는 가로수사이로 《아리랑》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출연자들이 탄 차행렬이 불빛을 흔들며 지나가는것이 보인다. 노래소리는 거기서 들려오고있었다.

 

4월도 봄명절 우리 장군님

초소의 병사들 찾아가는 길

야영을 떠나는 아이들 보며

차창에 손저어주시네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

 

《얼마나 좋소. 나는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 좋은 노래는 백천마디 말보다 뜻이 깊거던. 혁명이야 이런 멋에 하는거지. 자, 한바탕 달려봅시다.》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쾌한 어조로 일행을 재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진우에게 손을 내밀며 격려해주시였다.

《림진우동무, 한번 마음을 도사려먹고 1900년대부터 오늘까지 민족의 백년사를 통채로 끌어안고 몸부림쳐보시오. 나는 진우동무를 믿습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제 꼭···》

김정일동지를 모신 야전차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그이께서 타신 야전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은 다음에도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자격지심과 회한이 끝없이 밀려든다. 내 한생 김정일동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이의 뜻을 예술에 구현하느라 애써왔지만 아직도 멀었다. 내 언제면 저분의 뜻을 다 알게 될가. 다는 몰라도 조금이라도, 한부분을 아는것도 과분하리라. 허나 나는 그렇게도 안될것이다. 예술이란 원래 신성한것이여서 아무에게나 자기의 넋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예술의 진가를 아는 참인간에게만 주는것이다.

그렇다. 5대혁명가극을 창조하던 나날들이며 집단체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하여 지나온 예술창작의 길을 더듬어보면 뇌리를 강렬하게 치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조국과 인민, 민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안고 시대와 력사에 투철한 참된 인간, 진실한 예술가만이 희세의 기념비적예술작품을 창조할수 있다는것이다. 아! 내 언제면 저분의 인간애와 예술세계를 다 알게 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