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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시간이 흘렀는지. 불현듯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섯점을 치는 시계종소리와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애국가》의 선률에 쪽잠에서 깨시였다. 쏘파에서 일어서신 그이께서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나서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교환수에게 《아리랑》을 담당한 차성규부부장을 찾도록 이르시였다.

조금 지나서 귀익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이른새벽에 안됐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량해를 구하시였다.

《동무가 올려보낸 문건을 보았습니다. 차동무, 어떻소? 〈아리랑〉의 완성속도가 상당히 빠른데 대외선전을 병행하는것이 좋지 않을가?》

《그 문제는 준비위원회에서 인차 하기로 초보적인 토론이 있었는데 실은 장군님, 선전사업은 저절로 시작된거나 같습니다. 조국을 방문하여 5월1일경기장을 참관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어찌나 소문을 크게 퍼뜨렸는지 공연준비정형을 알아보고 자기네가 직접 광고선전을 하겠다면서 해외의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저저마다 〈아리랑〉 관광선발단을 무어가지고 들어오고있습니다.

그중 남조선과 해외에서 조직된 동포선발단들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는데 그들중에는 이번에 생사를 모르던 가족, 친척, 친우들을 만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며칠전엔 한 재미동포가 〈아리랑〉 총연출가가 림진우동무라는것을 알고는 자기와 소꿉시절동무라며 화상으로 상봉시켜줄것을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거 〈아리랑〉이 시작부터 괜찮구만. 좋은 징조요. 진우동무의 친구라는 동포는 어데서 뭘하는 사람이라오?》

《이름은 전상음이라고 미국에서 오래동안 음악가생활을 하던 사람이라던데 ···》

전상음이, 음악가? 사색은 한순간 지나간 세월의 갈피들을 빠르게 번지다가 한곳에서 멈춰섰다. 10여년전에 림진우에게서 들으신 기억이 나시였던것이다. 그때 그는 친구로 인하여 당한 불행을 이야기하며 몹시 괴로와했었지.

《아, 그렇지. 전상음이라, 내 진우동무에게서 들어 알고있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친구를 바로 알아보았구만. 만나보았답니까?》

《죄송합니다, 장군님. 제 미처··· 알아보구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일없소. 만났겠지. 옛 친구가 아니요.》

그렇다. 만났을것이다. 림진우가 원래 대범하고 정에 여린 사람이니 처음에는 괴롭겠지만 나중에는 받아들일것이다. 무등 자신의 일처럼 기쁘시였다.

《어쨌든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리이기때문에 머리를 써야 합니다. 바깥정세랑 참작해서 대외선전과 손님초청을 어느 계기에 어떻게 하겠는가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바꿔드시였다.

《내 통일장의 대본이 수록된 CD원판을 보았습니다. 동무를 찾은건 이때문인데 차동무, 어떻소? 동무에겐 대본이 마음에 듭니까?》

수화기에서는 전류 흐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사실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의 사업은 통일장때문에 근본 전진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창작을 시작해서 오늘까지의 사이에 대본은 세번씩이나 공회전을 하였습니다. 모든것은 장담당자인 림진우동무에게 달려있는데 어떻게 된셈인지 이번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그래서 준비위원회에서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세번째 대본을 올렸습니다.》

《세번째라.》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고쳐드시였다. 《혹시 림동무의 건강이 나빠진건 아니요?》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기도 왕성하고 전처럼 아침운동도 하고. 그저 작품때문에 고민할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집무탁가녁의 탁상시계에 눈길을 주시였다.

《진우동문 지금 집에 있겠구만. 어떡한다? 본인의 얘길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진우동무는 요즘 작품창작때문에 5월1일경기장에서 침식을 하고있습니다. 이제 30분후이면 림동무가 새벽달리기를 하는데 제 먼저 가서 알려주어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아니, 그만두오. 본인을 만나는건 내 대본을 한번 더 보고 결심하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곧 콤퓨터를 동작시키시였다.

인차 화면에 《분렬의 장벽을 짓부시고》 라는 장제목에 이어 모의화면들이 고르로운 속도로 현시되기 시작하였다.

두번째로 보시였으나 여전히 불만스러운 작품대본이였다. 대본에는 창작가가 기울인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과 표현방식에 국한된것이였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 민족대단합운동의 공통리념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대하여서는 극히 추상적으로, 주관적으로 형상되여있었다. 배경대에 조국통일주제의 정치적구호들을 현시하고 바닥은 붉은색조선지도형상에 초점을 박은것만 봐도 잘 알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림진우나름의 견해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생경한 이런 작품을 가지고 어떻게 만사람의 심장과 호흡할수 있단 말인가.

림진우, 자신도 모르게 답답해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두팔을 엇가로 결어 가슴우에 얹으시였다. 그이께서 진우를 처음 만나보신것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를 하고있던 1988년 9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에게서 개페막공연작품창작정형을 보고받으시면서 그의 남다른 정치적안목과 예술가적재능을 느끼시였다. 그뒤 그이께서는 진우를 따로 만나 장시간 담화를 하시였는데 그날 참으로 의미심장한 충격을 받으시였다. 굽이굽이 고개도 많았고 험한령도 많았던 그의 경력을 들으시면서 림진우라는 한 인간의 인생사에 민족분렬의 력사가 체현되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랬기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가 통일장을 맡았다는것을 아셨을 때 마음을 놓으셨고 믿음이 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이 엉킬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 음악감상을 하시려고 마우스를 동작시키시였다. 뭇새들의 지저귐소리, 희붐히 들리우는 새벽하늘, 창밖의 소연한 정적을 흔들며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서주가 조용히 울리였다.

진청색을 띤 먼산, 과일나무들을 심은 야산들, 그밑에 키를 맞추어 오붓하게 들어앉은 협동마을, 어데라없이 젖빛안개에 묻혀있는 부유하고 아담한 전원이다. 동켠하늘자락이 불깃하게 달아오르다가 이내 커다란 불덩어리가 불쑥 솟아오른다. 차츰 활기를 띠는 전원, 소영각소리, 대기에 울려퍼지는 뜨락또르동음,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 현악기와 민족타악기의 두번에 걸치는 힘있는 포옹으로 농촌마을의 새벽풍경을 일단락 구획지은 선률은 마치 천리마속도의 창조자들이 활개치는 모습을 한시바삐 그리고싶은듯 앞서거니뒤서거니 전야로, 들판으로 성급하게 밀려간다.

각이한 의미를 가진 선률들의 도도한 흐름이다. 휘몰아치는 리듬에 떠받들려 선풍을 일으킨다. 선률은 로동을 한껏 포식하고 창창한 하늘밑에 드러누워 술렁이는 황금빛전야를 표현하기도 했고 그속에 벼단을 안고서서 이마의 땀을 씻는 얼굴이 둥실한 녀성농장원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묵중한 쇠장대를 틀어쥔 한 용해공이 한손을 허리춤에 얹고 세상을 발아래로 굽어보는듯 한 자세로 서있는 모습이며 불노을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의 동음을 울려내기도 했다. 다른 화폭이 펼쳐지며 그것은 긴장하고 근엄한 눈빛으로 설계도면을 들여다보는 로학자, 꽃송이며 꽃테프들에 파묻힌 거대한 짐배가 옆으로 진수되는 장면, 횡진수의 성공에 두팔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는 청년과학자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작품은 금관악기의 선률들이 격렬하게 주고받으며 총주제를 해명하는 마지막부분에 이르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우에 결은 팔을 푸시며 귀를 기울이시였다. 매번 이 대목에 이를 때면 그이의 심중은 이름못할 환희와 열렬한 공감으로 끓어번져 애정이 북받치군 하시였다. 서주부에서 풍기는 구수하고 친근한 느낌, 작품전반에 일관하게 흐르는 《룡강기나리》의 구성진 가락, 풍년가의 흐들먹진 선률, 급하고 드팀없는 휘모리장단들이 그려내는 그 모든 화폭들이 이 부분에 와서는 하나로 합쳐지며 천리마의 군상이 뚜렷하게 보이시였던것이였다.

관현악이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한결 사색이 정리되는것 같아 기분이 거뜬해나시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고 음악감상은 오히려 통일장에 대한 불만과 의혹을 더욱 짙게 해주는것이였다. 표현수단에 있어서 추상성이 다분한 음악예술도 이렇듯 시대를 감득할수 있는 회화적 화폭을 충분히 펼치는데 예술의 모든 표현수단을 가지고있는 총연출가 림진우는 어째서 통일장을 그렇게 만들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집무탁에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일력을 번지시였다. 자신의 오늘 일정을 알아보시니 림진우를 만날 시간은커녕 조언을 줄수 있게 대본을 연구해볼 짬시간조차 모자랐다.

마침내 결심을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임서기에게 한시간후에 림진우와 전화련계를 가지도록 사업조직을 하라고 이르시였다.

 

림진우에게서 전화가 온것은 회읍스름하던 문수벌 끝자락이 연황색 기운으로 물들기 시작할무렵이였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 인사를 올리는 진우의 목소리는 후두염을 앓는 사람처럼 짜내는것 같이 들렸다.

《허,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하루사업의 성과는 첫아침의 기분상태에 있다는데 림동무, 이 좋은 새벽에 목소리가 왜 그리 나쁘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 늘 념려해주신 덕분에 전 이렇게 오륙이 성성하고 모든게 무탈합니다. 그저 작품때문에, 제 앞처리를 바로 못해서 그럽니다.》

《작품때문이라면 다행이요. 난 이 환절기에 혹시 건강관리를 잘못 해서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가 했구만.》

그이께서는 리해를 표시하시였다.

《동무의 통일장을 나도 보았습니다. 내 오늘 동무에게 전화를 걸라고 이른것도 그때문이니 우리 작품토론을 하는것이 어떻소?》

조금 지나서 진우로부터 작품에서 추구했던 의도가 무엇인가를 들으시는 김정일동지의 안광에는 착잡한 빛이 어리고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민족대단합운동에 영구히 구현할 때 민족의 분렬을 끝장낼수 있다, 이것이 통일장에서 말하려는 문제점이겠소? 옳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이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였다.

《감흥이 잘 오지 않습니다. 통일을 하자면서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거던. 노래나 배경대, 바닥형상을 봐도 그렇고. 아무리 장표현방식이 함축과 비약이 기본이라고 해도 사람들을 진실로 공감시킬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질 않겠소.

잘 안되였습니다. 왜 이 장이 잘 안되였는가, 나는 통일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일장에 내포되여있는 단점들을 지적하면서 때로 물음을 제기하시였으며 진우의 대답에 긍정을 표시하기도 하고 의문스러워하기도 하시였다.

이른아침의 청신한 기운이 감돌던 집무실은 국내외의 정치정세며 예술의 제 문제들을 두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김정일동지의 음성으로 꽉 차는것 같았다.

《동무의 주장을 들으니 리해가 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을 가지고 민족의 대단합이라는 이 거대한 전진운동을 감정정서적으로 형상할수 있겠는가. 부족합니다. 통일장이 옳게 되자면 〈아리랑〉과 민족의 력사에 대하여 탐구를 더 해야 합니다. 생활적으로 누구나 받아들일수 있게 말이요.》

《잘 알겠습니다. 제 그 뜻을 새기고 탐구를 깊이하겠습니다.》

《진우동무가 리해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통일장은 그런 방향으로나가야 할것 같소.》

믿음에 찬 어조로 그를 고무해주고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시였다.

《참, 내 하나 잊었구만. 차부부장한테서 듣자니 전상음이라고 미국에서 산다는 옛 친구가 상봉을 요청하였다는데 만나보았습니까?》

《···》

《50년만에 만나던가? 얼마나들 기뻤겠소.》

여전히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림진우였다.

《대답을 못하는걸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던거구만.》

《장군님, 전 그를 만나기를 거절했습니다. 아니, 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모순에 찬 그의 대답을 들으니 의혹이 드시였으나 명백한것은 일이 잘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집무탁에 한손을 얹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가장자리를 매만지시다가 송수화기를 바로 드시였다.

《만나지 못했다?! 난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에 얼핏 들었댔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일인줄 몰랐구만. 진우동무, 좀 들어봅시다. 무슨 연고로 옛 친구와의 상봉을 거절하게 되였는가, 그걸 말이요.》

이윽고 림진우는 대답을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들으시기엔 처음의 진우의 언행은 그답지 않게 퍼그나 소심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의 정황에 따라 의분에 넘치기도 했으며 심지어 분노에 떨기까지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저는 자기를 자책하고 만나러 갔댔습니다. 가니까 해외동포사업국의 일군이 말하기를 내가 한 얘기를 듣더니 그 사람이 제 먼저 단념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씀올린 진우는 말을 끊었다가 정녕 자제 못하겠는지 끝내 그대로 감정을 터치는것이였다.

《장군님, 제 애초에 옛 상처에만 옴해있은것은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리해가 안되는것은 있습니다. 인정을 금수처럼 대하고 조국을 짚신갈아대듯 했던 그 사람이 어인 일로 하루아침에 인간이 되였고 조국방문까지 결심하게 되였는가 이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본바탕이 흐린 물과 같은 그 사람의 속을 봐서는 도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저는 정말 그가 한 속죄가 좀체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불현듯 집무실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정원숲에서 흘러들던 뭇새들의 울음소리도 이 순간 어디론지 잦아버린듯싶었다.

《결국 그렇게 되였군.》

김정일동지께서는 낮은 음성으로 뇌이시였다. 점점 연황색기운이 진해져가는 창밖의 새벽하늘을 바라보시며 묵묵히 계시던 그이께서는 말씀을 건네시였다.

《그 동포가 무슨 다른 말을 한것은 없다오?》

《없습니다. 그저 전자우편으로 편지 한통 보낸것밖에는.》

《음- 편지만 남겼다.》

《···》

《내 보기에는 일이 썩 잘된것 같지 않구만. 편지는 동무한테 있소?》

《저, 집에 있습니다.》

《내 그걸 좀 봐도 괜찮겠소?》

《예.》

《그럼 내게 보내주오.》

드디여 문수벌 동켠하늘에 커다란 아침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삽시에 온 하늘에로 적황색기운이 강렬하게 뻗쳐가면서 창너머 곧게 뻗어간 걸음길이며 정원숲우에 태양빛이 쏟아져내려 이 아침의 정서를 더욱 청청하게 해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의 심중은 무겁기만 하시였다.

이날 오전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음의 편지를 읽는것으로 집무를 시작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