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3

 

자강도 현실체험을 갔다온 뒤 강진호의 교예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하였다. 김정일동지의 교시대로 진호는 작품의 고루하고 도식적인 여러 부분을 대담하게 들어내고 굵직굵직하고도 참신한 요소종목들을 넣었으며 그와 동시에 새 기재의 제작과 조립을 다그쳐 인차 5월1일경기장에서 실동훈련을 할수 있게 준비하였다. 걸린 문제는 요소종목들에 출연할 배우들의 인원수가 결정적으로 모자라는것이였다. 특히 난도가 제일 높은 포탄비행과 물결날기를 담당할만 한 실력자가 없었다. 물론 극장에는 더러 있었으나 그들은 현재 외국공연에 나갔거나 국제교예축전을 준비하고있는중이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소환해서는 안되였다.

며칠전부터 이 문제때문에 극장이며 조선체육대학을 나들던 강진호는 오늘도 오전내껏 교예학원에 가서 인원을 선발하다가 실망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경기장에 들어선 진호는 먼저 림진우총연출가의 방부터 찾아갔다. 대기실과 록빛주단을 깐 넓은 사무실을 거쳐 그와 맞붙어있는 아담한 창작실에 들어선 강진호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앞차대에는 무용동작을 표기한 종이장들과 바닥대형그림들, 배경대축소판그림들이 되는대로 널려있었고 림진우는 눈을 감은채 진밤색3인용쏘파의 한쪽등받이에 웃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있었다. 두귀가 처지게 꾹 다물린 입술, 무거운 고뇌의 상징인듯 볼편이며 이마를 깊숙이 파며 질러간 주름살들, 옆차대우에 널려있는 커피통이며 잔들, 접시들, 창턱에 뭉그려놓은 겉옷.

강진호는 의혹에 차서 그것을 일별하며 조용히 뒤걸음쳐나왔다. 왜 그럴가. 물론 창작중일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림진우의 모습이였고 창작실의 어수선한 광경이였다.

진호는 총연출가를 잘 안다. 같이 일하며 체험한데 의하면 림진우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단정한 분위기에서 책상우에 종이장 하나만 놓고 창작에 집념하는 절제가 강하고 정돈된 창작가였다. 주위가 산만하고 무질서하면 그것이 그대로 작품에 담겨진다고 하며 창작가들속에서 어설픈 창작태도가 나타나면 늘 엄격하게 꾸짖던 그가 아니였던가. 무슨 일일가?

강진호는 지하층에 있는 연출실에 이를 때까지 의혹을 풀지 못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김재근책임연출가며 여러 연출가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주시한다. 원탁에 다가간 진호는 보온병을 기울여 물을 한고뿌 마시고나서 단마디로 대답해주었다.

《안되겠습니다.》

《그래? 쓸만 한 대상자를 하나도 고르지 못했단 말이지.》

김재근의 물음이였다.

《정 없는건 아니고 한둘이 있긴 한데 언제 그들을 훈련시키겠습니까.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줍니까?》

《문젠 문제구만. 혹시 지방체육학원에 사람이 있지 않을가?》

《거기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거기서 선발하느니 차라리 체육대학이나 체육단 예술체조에서 데려오는게 낫지요. 재근아바이, 내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준비위원회나 우리가 뛰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문제는 큰 범위에서 풀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큰 범위?》

《예, 당적으로 말입니다. 외국공연날자를 얼마간 뒤로 미루든지 아니면 공중작품을 빼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아리랑〉에 동원시킬수 있지 않습니까.》

김재근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서 내 이자 총연출가동지와 토론해보려고 방에 갔댔는데 아참, 그 아바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들어가보니 고민하는것 같기도 하구 창작중인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기분상태가 썩 좋아뵈지 않습니다.》

《그 사람 요즘 작품때문에 그럴거네. 두번씩이나 공전했으니까.》

《통일장이야 창작년조로 보나 생활경력을 봐도 총연출가동지에겐 파악이 있는 작품이 아닙니까.》

《글쎄 말이네.》

김재근책임연출가도 리해가 안되는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건 그렇고. 이보게 진호동무, 여하간에 당에 보고를 올리는건 고려해보세. 당에서 〈아리랑〉이 제기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풀어준다구 가볍게 손을 내밀면 경우가 안되지.》

강진호는 불만스러웠지만 우기지 못하였다.

《오, 그리고 아까 아동장의 심혜영선생이 찾아왔댔네. 오면 자기에게 꼭 전화를 하라고 하데.》

강진호는 책임연출가의 책상우에서 송수화기를 끄당겨 들었다. 곧 약간 쉰듯 한 심혜영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진호동지, 오늘 어느때든 시간을 내줄수 없겠어요?》

《시간, 마침 점심시간인데 지금이 좋지 않소? 그런데 왜? 무슨 일이 생겼소?》

《인차 알게 돼요. 그럼 제 먼저 청류벽쪽 유보도에 나가겠어요.》

 

점심시간이여서 그런지 오전내껏 경기장의 바깥원형광장에서 울리던 구령소리, 음악소리도 잦아들어 유보도는 오직 귀 따가운 매미소리가 들릴뿐 한적하기만 하였다. 원형광장을 가로질러 유보도에 내려선 강진호는 강기슭 바투 계단에 앉아있는 심혜영을 띄여보고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진호는 혜영이 일어서려 하자 손짓으로 제지시키며 그 녀자곁에 다가가 퍼더버리고앉았다.

《에- 참, 낮에 거 집단체조 연출부장이 새 탁구알까지 들고와서 도전을 하길래 한바탕 스트레스를 푸는가 했는데.》

《시간을 뺏어서 정말 안됐어요.》

진호가 롱담조의 푸념을 했건만 그래도 미안해하는 처녀였다.

《그래 말해보오. 아직도 강이가 영아를 떨구오?》

진호는 심혜영의 부탁을 받고 리강의 조형훈련을 종종 맡아해주군 하였다.

《아니, 아니예요.》

《그럼?》

《진호동지, 철건동지가 평양에 와있어요.》

《어- 철건이가?! 언제 왔게. 어디 있다오?》

《병원에 입원해있어요.》

강진호는 움쭉 놀라 두팔에 실었던 웃몸을 바로세웠다.

《건 또 무슨 소리요? 입원해있다니.》

《그건 이제 차차··· 저, 진호동지.》 심혜영은 그의 이름을 불러놓고는 웬일인지 망설이다가 소심한 말투로 다시 이었다. 《근간에도 철건동지와 편지거래가 있었겠지요?》

《그렇지 않구.》

《그럼 혹시 철건동지가 편지에 이성문제라든가 제 얘기를 거든 일은 없는지.》

《없었소, 전혀.》 진호는 처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버럭 증을 냈다. 《혜영동무, 한데 왜 자꾸 빙빙 에돌기만 하는거요? 철건인 어떻게 입원하게 되였구 동문 왜 갑자기 이성문제를 거들며 심각해서 그러는가 직판 말해야 할거 아니요.》

심혜영은 대답없이 입을 꼭 다물고 바지가랭이의 끝단을 매만지였다.

《야- 이거 답답하구만. 어서 말하오, 대체 무슨 일인지.》

《그러니까 진호동지에겐 아무 내색을 안했군요.》

처녀는 애매하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심혜영은 자기가 진호를 찾은 사연을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될 결심, 사랑의 일방적인 포기, 정치위원과 편지로 나눈 이야기내용, 박철건의 입원소식, 면회시 취한 철건의 랭정한 태도. 강진호에게는 이 모든것이 처음 듣는 말이였다. 그리고 심혜영이 말하는 문제가 자기로서는 체험해보지 못한것이여서 그 녀자에게 뭐라고 조언을 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혜영이라는 처녀를 다시 보게 되였고 친구가 진짜 좋은 녀성의 사랑을 받고있었구나 하는 부러움뿐이였다.

《그래서 철건일 의심한다는거요? 그러지 마오. 나는 철건동무를 소꿉적부터 잘 아는 사이요. 철건인 동무가 그랬다 해서 마음을 갈아대는 사람이 아니요.》

《···》

《혜영동문 아직두 철건일 사랑하오?》

심혜영은 대답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 믿소. 나두 친구의 태도가 리해되지는 않지만 무슨 사연이 꼭 있을것 같구만.》

《글쎄 그랬으면 좋으련만.》

《오늘 저녁에 내 갈테요.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한데 혜영동무.》 강진호는 한무릎을 그러안았다. 《자기에게 지나치게 모질지 않을가? 처녀의 몸으로 두 아이를 끌어안은데다가 역시 일생 다심한 거둠새가 필요한 철건동무를 놓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끼리니 내 하는 말인데 혹시, 음- 》

심혜영은 웃었다.

《왜 마저 얘길 안해요. 그대로 표현하기가 두려운거지요. 말을 고르지 말아주세요.》

《까짓거, 그럼 툭 털어놓지 뭐. 난 심동무의 결심을 지지하고 높이 사. 그러나 혜영동무의 결심은 왜 그런지 의무감이라고 느껴지거던.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철건동무를 위해서도 그의 의향을 따르는것이 옳지 않을가?》

강진호는 혜영이 응대를 안하자 머리를 짓수굿하고 계단짬에 돋아난 쇠뜨기를 잡아뜯었다.

《무엇이나 바로 결심한다는것도 힘들지만 결심한걸 똑바로 실천하는것이 더욱 힘든거요. 동문 지금 자기에게 엄청난 요구를 제기하고있고 그걸 실천하려 하고있소.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것도 여간한 일이 아닌데 또 철건동무까지.

공명? 아닐거요. 량심? 이것도 맞지 않아. 오직 의무감, 의무감이라고밖에 달리는 볼수 없거던. 난 많이 못살아봐서 인생은 잘 모르오. 그렇지만 혜영동무의 결심을 놓고는 조언줄수 있소.

심사숙고하오. 의무감에 떠밀려가다가 나중에 훌륭한 내 친구의 이름을, 이제껏 내가 높이 보았던 혜영동무에 대한 나의 좋은 인식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주기 바라오.》

흑- 하는 흐느낌소리가 났다. 강진호는 계속 이으려다가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떠는 혜영을 띄여보고 그만두었다.···

원형광장쪽에서 심혜영의 이름을 겨끔내기로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혜영은 급히 눈굽을 훔치고 옷차림을 바로하며 몸을 일으켰다. 강진호도 따라일어섰다.

심혜영의 대답소리를 듣고 인차 아동장담당창작가며 여러 유치원의 교양원들이 진호네가 있는 장소로 달려왔다. 강진호에게 눈인사를 하고난 담당창작가는 다짜고짜 혜영의 두손을 잡으며 황급히 묻는것이였다.

《혜영선생, 강이 어데 있는지 모르지?》

《지금 렬차에 앉아서 한창···》

《아유- 까막천지구나.》

그 녀자는 혀를 차며 지청구를 했다.

《렬차가 다 뭐나. 평양역에서 좀전에 애순이라는 렬차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개찰구에서 애를 잃어버렸대.》

《그럼 그 애가 또 달아났군요.》

혜영은 속상해서 부르짖었다.

《빨리 가자요.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할거 아니야.》

《진호동지!》

강진호는 무엇인가 말하려는듯 입을 우물거리는 심혜영에게 손짓을 하며 빨리 따라가라고 재촉했다.

《내 철건동무를 만나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