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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녘이 가까와오고있었다. 미들강계선장주변은 현대문명세계의 혼탁된 명암속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있었다. 석양빛에 각별한 증오를 품은듯 희부연 어스름속을 마구 썰어대는 시퍼런 빛묶음들, 내장을 뒤흔드는 로크리듬의 폭음, 단절음의 광란.

스네어, 하이앳트를 미친듯이 두들겨대다가는 100와트짜리 백열등을 집어들어 바닥에 대고 깨버리는 청년, 무엇을 잡아먹을듯 한 인상을 하고 바스기타를 뜯어대며 몸을 꼬아비트는 금발머리처녀, 고함을 지르듯이 노래하는 녀가수, 한 돌의자에는 중년사나이가 앉아있었는데 마약중독자인지 느침을 흘리며 제 머리칼을 한오리씩 뽑다가는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히물거리며 웃는다.

참으로 계선장주변은 영원히 깨지 못할 말세라는 취기에 푹 잠겨버린듯싶었다.

전상음의 머리속을 어지럽게 휘돌리던 넌덜머리나는 광경은 배가 계선장을 출발하자 이내 사라져버리였다. 반시간가량 강상류를 거슬러올라 목적지에 도착한 상음은 배에서 내렸다.

그는 별장으로 곧바로 들어가려다가 정박장 한켠에 만들어놓은 산보길로 걸음을 돌렸다. 계곡의 들쑹날쑹하고 아름번 바위들을 에돌기도 하고 그우를 넘어 사품치며 쏟아져내리는 강물, 기슭에 빼곡이 들어차 이름모를 안정을 불러일으키는 넓은잎나무들, 그린듯이 까딱 않고 서있는 수목들사이로 가리마같이 뻗어간 산보길.

전상음은 대번에 심신이 거뿐해났다. 허나 이것은 한순간일뿐 물소리만 소연한 계곡의 고요는 오히려 낮에 겪었던 일을 또렷이 상기시키는것이였다. 동시에 귀전에는 또다시 어떤 목소리가 갈마들며 마음을 괴롭히였다.

당신은 어째서 헤밀톤음악회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지 않겠다고 했습니까. 10여년전부터 당신은 음악창작을 아예 포기해버렸다고 하던데 그 원인에 대하여 말해줄수 있습니까.

이것은 캐써린 헤밀톤음악회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던중 텔레비죤휘라모니루트기자와 나쇼날 뮤지크잡지사의 기자가 그에게 한 질문들이였다.

기자들에게는 말해주기 싫었다. 허나 전상음은 언제나 마음속깊이 잠재하고있으며 때때로 자기를 괴롭히는 이 량심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너는 왜 소감을 피력하지 않았는가. 너는 어째서 음악창작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전상음은 저으기 고통스러운 눈길로 거머무트름한 강수면을 넋없이 응시하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철이였지. 10여년전 그때 나는 높은 명예와 그에 따르는 거액의 재산, 매일같이 누리는 값비싸고 화려한 물질생활로 하여 성공한 인생의 최절정에 선 만족감으로 충만되여있었다. 그랬던 내가 그 모든것을 스스로 부정해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게 된것은 과연 무엇때문이였던가.

 

×

 

한참 달려서야 교통이 번잡한 도시중심을 벗어난 차는 교외를 가까이하며 속도를 높이였다. 전상음은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고앉아 시창밖에 펼쳐진 교외의 목가적인 풍경을 내다보고있었다. 길옆에 드러누운 넓은 사탕수수밭, 그너머로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푸른 구릉들, 왼쪽시창밖에는 흰구름이 피여오르는 저 멀리까지 무연한 목초지가 펼쳐있었고 하얀 점이 다문다문 박힌 젖소무리며 말사슴떼들이 한가스레 풀을 뜯고있었는데 그것은 류다른 정취를 자아내게 하였다.

요즘 전상음의 심정은 노상 만족감에 취해있었다. 《음악- 하나로 통일되는 인류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론문, 잇달은 폭풍같은 반향, 미국클라씨크협회의 청탁을 받고 창작한 관현악작품의 성공적인 초연, 이것으로 하여 세계고전음악계에서의 전상음의 지위와 명예는 더욱 확고해지였으며 그는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존재로 되였다.

오늘도 상음은 협회에 일을 보러 갔다가 론문과 작품을 놓고 흥분된 견해를 피력하는 뭇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한겻이나 시간을 보내였다.

이게 진짜인생이지. 한 90살까지는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마냥 흥그러워지는 기분은 터무니없는 욕심을 자아내게 한다. 전상음은 비죽이 웃었다. 살만큼은 살았는데 그래도 한껏 생을 누리고싶어지는 욕심이 자기로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아직도 창작하고싶은 주제와 령역이 많은데 비해 내 나이는 벌써 인생황혼기에 깊숙이 들어서고있지 않는가. 정말 건강한 몸으로 그때까지 살면 여북이나 좋겠는가.

호출음이 부드럽게 울렸다. 전상음은 운전사가 넘겨주는 송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서방의 음악세계에서 명망높은 첼로연주가, 작곡가인 로스뜨로뽀비치였다.

《아, 자넨가? 시간을 좀 낼수 있겠는지.》

《미안합니다, 선생. 병석에 계신다는것을 알면서도 제 기쁨에만 취해서 그만 잊었군요. 시간을 내겠습니다. 어느때가 맞춤할가요?》

《고맙네. 병은 무슨, 로환이지. 자리에 눕고보니 어찌나 사람이 그리운지. 보고싶네. 래일 오전에 와줄수 있겠나?》

《예, 그리 하지요.》

전화로나마 병문안을 했을걸. 그는 송수화기를 놓으며 못내 자책했다. 상음에게 있어서 로스뜨로뽀비치는 다년간 연주생활을 함께 한 음악지우이기도 했고 스크랴빈, 무쏘르그쓰끼, 글린까, 챠이꼽스끼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로씨야작곡가들의 창작기법을 배워준 스승이기도 했던것이다.

차는 대도로를 벗어나자 속도를 죽이였다. 여기서 한 15분가량 달리면 전상음의 집이 있었다.

《그치 성격이 급한데. 도로가 무슨 자동차경기주로인줄 아는 모양이지.》

전상음은 시창밖의 풍경을 부감하다가 운전사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등받이에서 어깨를 뗐다. 수은색후사경으로 새까만 《폭스 바겐》 한대가 사나운 속도로 뒤쫓아 달려오는것이 비쳐들었다. 인차 그 차는 상음이 탄 승용차 뒤부분에 이르렀다.

선행신호도 보내지 않고 무례하다고 할만치 옆에 붙어달리는 자동차를 유심히 지켜보던 전상음은 갑자기 심장이 멎는듯 한 감을 느꼈다. 《폭스 바겐》의 역시 검은 옆시창들이 스르르 내려지면서 불쑥 두개의 자동총총신이 나왔던것이다.

그다음 세우라 하는 호위원의 웨침. 아츠러운 제동기소리. 동시에 울리는 자동총련발사격의 굉음. 비명소리.

호위원의 손에 밀치워 좌석 한구석에 박혀있던 전상음은 조금후에 머리를 들었다. 앞과 옆시창들이 모조리 부서져나가고 기관덮개가 흉하게 이그러진 승용차는 도로 한가녁에 멈춰서버렸다. 운전사는 피범벅이 되여 운전대우에 늘어져있었다.

한손에 자동권총을 든채 차앞에 서있던 호위원은 손전화기를 꺼내들고 무슨 말인지 몇마디 하고는 상음이쪽으로 급히 다가왔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일없네. 빨리 이 사람이나 봐주시오.》

호위원은 머리를 저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가슴부위가 아예 벌둥지가 되였는걸요.》

《저런, 죽일 놈들···》

전상음은 분노가 끓어올라 숨이 가빠났다.

《도대체 백주에, 그래 대체 어떤 놈들인가?》

《글쎄 알겠습니까. 경찰에 사건장소와 차번호, 종류를 알려주었으니까 인츰 밝혀지게 되겠지요.》

 

그로부터 몇시간후, 집에 돌아온 전상음은 식사전에 늘 그러하듯 석간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것을 얼추 훑어보던 그는 한곳에 눈길을 멈추었다. 신문에 낮에 있은 테로미수사건의 경위와 동기가 실려있었던것이다. 범인은 두명, 한명은 경찰들과의 총격전에서 치명상을 입고 그자리에서 절명하였다고 한다. 체포된 다른 범인의 나이는 마흔한살, 이라크인, 미국무성의 문화공보원 연수생인데 테로의 동기는 전상음이 알라신을 모독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상음은 아연하였다. 테로범이 혹시 다른 사람과 혼돈하지 않았을가. 모르는 소리. 상음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라크인은 분명히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가. 그는 주택관리인을 찾아 차를 준비하도록 분부하였다.

범인이 구금된 경찰서는 그의 집에서 차를 달려 반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 곧바로 담당경부를 찾아간 전상음은 명함장을 내밀며 용건을 말하였다.

《난 그저 그 사람에게서 몇가지 알고싶은것이 있어 왔소. 혼자 처리하기 정 곤난한 문제라면 사법성의 매킨지씨에게 이 자리에서 전화해도 괜찮을것입니다.》

경부는 처음에는 뜨아해하다가 상대가 미국에 잘 알려진 고전음악계의 거물이며 사법성 고위관리를 하는 친구를 가지고있고 명함장에 곁따라 내미는 적지 않은 은행소절수를 보자 쾌히 수락하는것이였다.

전상음은 경부의 립회하에 테로범과 마주섰다. 상음은 백색불수강으로 만든 철망 가까이에 다가가 그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선량기가 가득한 크고 시커먼 두눈, 굽실굽실한 머리칼, 귀밑부터 아래턱까지 덮은 수염, 약간 벌어진 입술사이로 보이는 가쯘하고 하얀 이발. 아무리 뜯어봐야 사람의 생명을 마구 해치는 잔혹성이란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따뜻하고 지성미가 느껴지는 인물이였다.

《내가 바로 당신이 죽이려고 했던 전상음이요.》

상음은 뜨직뜨직 자기의 소개를 했다. 이라크인은 대답대신 아래입술을 조금 내밀며 두어깨를 으쓱했다.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왜 나를 죽이려고 했소?》

《알라신을 모욕했기때문이요.》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오.》

《어제 시카고음악홀에서 당신의 작품을 들었소. 중간부를 쟈즈리듬에 코란의 중요대목을 합창으로 해서 만들었더군. 격분했소. 우리의 신앙을 모욕한 당신을 죽여버리기로 작정했소. 이게 다요.》

전상음은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피해망상증, 이 무도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자.

《여보시오, 작곡기법은 어느 일개인이나 특정한 나라의 독점물이 아니라 전인류의 소유물이란 말이요. 코란의 음악성과 아메리카의 리듬을 매듭지어놓은것은 미국과 아랍세계의 평화와 단결을 의미하는것이요. 그런 자그마한것을 가지고 음악을 제 마음대로, 제멋대로 얼추 듣고 생명을 앗으려들다니. 당신의 사고는 정상이 아니요.》

《평화와 단결? 자그마한것?》

이라크인은 이렇게 반문하더니 입을 꾹 다물고 상음의 발치 어덴가를 지꿎게 응시하였다. 이내 그는 입을 열었는데 몹시 또박또박 느리게 말하는것이였다.

《자그마하다? 그러니까 별치 않은 음악이라는거구만. 만일 당신이 평범한 작곡가, 2부류예술가라면 리해가 되는 말이요. 그러나 당신은 미국이 알고 서방이 아는 예술가요. 그래 당신은 인간을 미와 추, 선과 악으로 제일 잘 추동하는것이 예술이라는것을, 음악이라는것을 모른단 말이요? 뭐, 평화와 단결? 입을 다무시오.》

《···》

《당신도 만전쟁을 화면으로 보았겠지? 미군이 나의 조국 이라크를 어떻게 짓뭉개놓았는지 보았을테지? 난 그 전쟁에서 사랑하는 두 딸을 잃었소. 미국을 욕질 한번 해보지 못했고 미군에 돌 한개 던져본적이 없는 그들을 말이요.》

문득 이라크인은 말을 멈추었다. 전상음이 눈을 들어 보니 그는 얼굴을 싸쥐고있었다. 손을 내린 이라크인은 물기가 어린 시꺼먼 눈을 무섭게 번뜩이였다.

《이전에 나는 당신의 음악을 즐겨들었고 당신을 존경해왔소. 음악에는 당신이 방금 말한 평화와 인류의 단합이라는 고상한 정신이 강하게 깃들어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요. 하지만 어제 최근에 창작했다는 그 작품을 들은 순간 나는 환상에서 드디여 깨여나게 되였소. 당신이 온갖 선률과 리듬, 화성에 담아 웨치는 그속에 뭐가 있는가를 알아차렸단 말이요. 노예가 되라는거요. 예수와 미국, 아메리카인을 목뒤가 뻣뻣해지도록 올려다보며 하늘소처럼, 노새처럼 살아야 편안해진다는거요.

똑똑히 아시오. 양키와 알라신의 자손들은 력사적으로 놓고봐도, 앞으로도 영원히 원쑤로 남아있을거요. 때문에 그들의 자손들은 서로 공존은 있으나 화합은 없을것이며 더우기 미국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한은 더욱 큰 반발과 증오가 생길것이요.》

《에익, 이 무도한 살인자, 배타주의자. 넌 그 주장이 세상 협소한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있다는걸 모르는가.》

전상음은 끝내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분격을 쏟아내였다. 상음의 노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흰이를 가득 드러내며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민족주의자라?》 이라크인의 얼굴에 랭소가 비끼였다. 말투도 거칠게 달라지였다. 《너 〈한국〉계 양키찌꺼기지? 하긴〈한국〉놈들이란게 양키밑구멍이나 핥는 주제에 사람인체 하는 난쟁이들이니 너도 마찬가지겠지. 귀를 크게 열고 똑똑히 들어라. 네가 아무리 평화와 단결을 떠벌이여도 그건 이단자 양키의 교활한 설교이고 구린내나는 양키의 개나발에 불과해. 그리고 넌 예술가가 아니라 협잡군, 아첨군이야. 예술가다운 자기의 철학은 하나도 없고 이단자들의 세계화를 따라불어대는 나팔통, 사기군이란 말이다.

너를 빗맞힌게 원통하다. 오늘 살아남은건 천행이야. 알아두라. 알라신의 원쑤인 너는 언젠가 우리 형제들에게서, 알라신의 전사들에게서 심판을 받을 날이 올거다.

가라, 썩 사라져. 이 더러운 잡종늙다리야.》

 

전상음에게서 이 일은 뜻밖이였다. 나에게 있어서 예술의 목적은 인간들사이의 화목과 안정, 인류의 평화를 도모하는것이다. 나는 이 진리를 한생을 바쳐 작품창작으로 확인했으며 립증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것이 갑자기 의심되는것일가. 미국과 서방은 이라크의 싸담 후쎄인이 폭군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한편 그 무슨 침략자를 격퇴하는 성전을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대량살륙무기를 만들려고 시도하고있어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마구 유린하고있지 않는가. 살인자는 알라신을 거들지만 분명히 싸담정치의 지지자거나 하수인일것이다. 아니면 그는 그 누군가의 사촉을 받은것이 분명하다.

아니, 아니야.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서방의 선전이다. 그들은 늘쌍 자기들 선전의 생명은 공정성과 객관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지난 례를 보면 왕왕 외곡과 비방을 일삼는가 하면 리해관계에 따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있지 않았는가. 옳을수도 있다. 내 머리는 너무나 오래동안 미국과 서방의 반이라크선전에 젖어있었고 또 그것을 믿어왔으니까.

물속같이 깊은 방안의 적막을 부드럽게 가르며 명랑한 세모종소리가 울리였다. 자체모순의 끝모를 라선형식운동에 어지간히 지친 전상음은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이불을 제끼고 일어나앉았다. 불깃한 침실등의 밝기를 조절한 다음 송수화기를 들어보니 도이췰란드에서 걸어오는 윤이상의 전화였다.

《혹시 쉬는중은 아닌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난 뒤에 윤이상이 묻는 말이였다.

《허, 이거 무척 례절이 밝아졌는걸. (윤이상은 작품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거나 실머리가 잘 잡히지 않을 때면 종종 때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군 했다.) 물론 자지 않지. 한데 어떻게?》

《예, 좀 불편스러운 일이 있어서.》

《흐흠- 죤 케이지의 망령이 또 형씨를 괴롭히는거구만? 아니면 고전음악의 주장을 완전히 부정할 음향을 또 만들어냈는가? 윤형, 좀 땅을 살펴보며 날구려. 그러다간 아예 우주음악이 되고말겠소.》

《거 비양은 여전하시구려. 우주음악이면 뭐라오? 듣는 사람이 있고 리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긴 윤형의 음악도 나의 음악과 함께 현대인들의 정신생활에 반드시 공존해야 할 대립물이니까. 그럼 나시구려. 그 사람들을 태우고 제트기처럼, 초음속비행기처럼.》

수화구에서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자, 이젠 말씀하시오, 뭐가 안타깝던지. 도리아? 이오니아? 내 온갖 〈재래식무기〉들을 총동원해서 날을 세워 호되게 반격하리다.》

《그런 문제라면 오죽 좋겠소. 실은 다른것때문에 전화를 들었소.》

《그렇소?》

《전형, 내 책을 보았소.》

전상음은 긴장해서 마른침을 힘들게 삼키였다. 론문을 도서로 출판한 뒤 상음은 그 누구보다도 윤이상의 견해를 목마르게 기다렸던것이다. 비록 기법과 형식, 쟝르에서 극심하게 상반되는 그였으나 어쨌든 윤이상은 현대음악의 거장이였으며 자기의 확고하고 뚜렷한 사회정치적, 미학적견해를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고전음악이건 현대음악이건 그 어떤 쟝르의 음악이건 그것이 인간의 정신생활에 미치는 우단점을 그는 이러한 심오한 일가견을 가지고 정확히 분석하군 했다.

《음악의 기원, 음악과 인간, 작곡기법의 실용적문제, 총론과 두개장에 걸쳐 서술한 여기까지를 읽자 감탄했소. 역시 전형의 학문적높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였소. 그런데 마지막장-인류언어의 실체와 그의 진리, 바로 이걸 읽고나자 론문전체를 부정하지 않을수 없었소.》

《뭐라구?》

윤이상의 어조에 따라 흥분하기도 하고 머리를 끄덕이던 상음은 홀연 낯색이 창백해지였다.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귀설게 들리였고 그 한마디한마디는 상음의 몸에서 기력을 깡그리 뽑아내는듯싶었다.

《전형은 이렇게 썼소. 〈···사람의 얼굴이며 성격이 천차만별인것처럼 매 민족의 음악유산과 전통도 나름의 모양을 가지고있어 그의 존재명분은 확실하다. 그러나 한 민족의 음악유산과 전통이 아무리 높은 지성과 폭, 깊이를 가지고있다 해도 세계의 본질, 인류의 본성을 가장 적라라하게 포괄적으로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나 작다고 볼수 있다. 민족음악의 제 우점은 한 민족에 국한된것이므로 오로지 민속유희나 오락, 자국의 극장무대에서만 매연되여야 하며 나름의 영원성을 가지려는 욕망이 있다면 박물관이나 력사가들의 문헌에나 남기면 되는것이다.

그러면 세계와 인류언어의 실체로 되는 음악은 어떠한것인가.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민족의 음악유산과 전통을 합리적인 하나로 혼탁시켜 능히 재조합할줄 아는 능력을 가진 국가나 인간, 그들의 손에 의하여 창조된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와 인류언어의 실체로 되며 이 언어를 활용할 때 그 음악작품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

전형, 이게 뭐요? 몸은 비록 미국땅에 뒀다 해도 혈관에는 민족의 피가 분명히 흐를 전형이 쓴것이 옳으시오? 론문대로 한다면 우리 민족의 음악전통, 음악유산은 어떻게 봐야 하며 어떻게 하시려오? 혹시 아메리카니즘의 용융로에 넣자는건 아니겠지. 난 그 책을 읽으면서 둘이 쟝르의 갈림길에서 서로 헤여질 때 전형이 내게 하던 말이 생각났소. 그리도 의지백배해서 민족정신을 운운하던 형씨가 궁극에는 이런 주장을 펴다니. 생각나시오, 전형.》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그날은 30년전 장마비가 그칠새없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 도이췰란드의 자그마한 소도시의 한 호텔실내정원에서였지. 그때 우리 둘은 정통음악과 현대음악을 놓고 격렬한 론쟁을 벌리고난 뒤여서 무거운 침묵속에 앉아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떼였던가. 나였던가, 아니, 윤이상씨였다.

전형, 부언하건대 고전음악은 이젠 생명력을 잃고있지 않소? 이건 전형도 아시다싶이 세계음악계가 인정하고있는것이지요. 여지가 있다면 인위적인 에네르기음악과의 결혼이요. 많은 예술가들이 그래서 포기하고 방황하고있지 않소. 예술이란 한곳에 머물수 없으며 새로운 형식과 쟝르가 나오면 인간의 기호도 관습도 달라지고 그에 맞게 각성되고 습관되기마련이요. 진정으로 부탁하오만 나와 함께 갑시다. 현대음악이야말로 나날이 착잡해지고 다차원적으로 발달하는 현대인들의 정신과 생활을 충분히 그려낼수 있는 유일한 신학문이요.

윤형, 그러지 말아주. 예술가가 어쩌면 자기의 견해를 친구에게, 그것도 예술가에게 강요할수 있소? 윤형은 마치 사람의 일생이란 태여났다가 죽는것은 뻔한 리치이니 뭘 그리 진지하게 참인생을 찾아보노라 애쓰는건가라고 말하는것 같구만. 고전음악이 생명력을 잃었다는것은 너절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더러운 심술을 가지고 늙어가는 인간들, 말하자면 우리곁에서 기생하는 의지박약자, 말공부쟁이들, 처세군들의 넉두리에 불과하오. 난 아직 젊었소. 힘도 있고 용기도 부족하지 않으며 열정도 있소. 뿐만아니라 그 너절하고 더러운것들이 입을 모아 헐뜯는 고전음악창작기법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민족이 낳은 현대의 영웅들, 고난에 찬 민족의 현대사를 그려낼수 있단 말이요. 나는 내 길을 갈테요. 설사 앞으로 7음계가 영원히 종멸하고 당신들이 제창하는 12음계나 우주음계가 인류의 정신문화를 주도한다고 해도 말이요.···

내가 이렇게 주장했던가. 《가만, 잠간.》 전상음은 가까스로 자기를 다잡으며 신경질적으로 그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본론에서 벗어나는것 같구려. 우린 순 예술가적립장에서 쟁론을 펴야 하는것이 옳지 않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요. 혹시 전형은 코뢰 분겐이나 위슈납스끼의 선률 하나 파보고 무엇인가 전부 아노라고 어깨를 추켜올리고 다니는 사춘기, 청년기시절로 되돌아가자는거요? 전형, 우리 나이는 그럴 때가 지났소. 우리는 마땅히 분렬된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론해야 하며 그 해결방도를 모색하고 그걸 음악에 담아야 할 때요.》

《그럼 윤형의 론제에 끌려들어가봅시다. 말씀해주시오.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저저마다 머리를 쳐들고 제노라고 우겨대면 이 세계는 무엇이 되오? 인류의 평화와 안정은 뭐가 되냐 말이요. 윤형은 민족의 불행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먼데것은 젖혀놓고 우리 민족을 놓고 론의해봅시다. 우리가 등을 대고 살아야 할 곳, 윤형이나 내가 이것이라고 선률에 담을만 한 민족정신의 뿌리는 어디에 있소? 〈한국〉이라고 말할리는 만무하고 혹시 북을 맘에 두고있는것은 아니요?》

《옳소.》

윤이상의 긍지에 찬 대답에 상음은 놀랐다.

《그래요?! 허- 요즘 북에 몇번 나들더니 열광적인 련북감정에 빠진거구만. 그네들이 윤형의 음악은 리해합디까?》

《그들은 나의 음악보다도 자기 민족의 한 성원이 불원천리하고 찾아왔다는 점, 분에 넘치게도 이 윤이상이 항상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잊지 않고 우리 민족의 예술을 전세계에 널리 선양하는 사람이라는 이걸 귀히 여기고 나를 혈육처럼 맞이해주었다는것은 분명했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거지.》

《모르는 소리. 〈한국〉을 혐오스럽게 여긴다는 점, 그것이 북으로 하여금 윤형을 환영하게 했겠지. 윤형, 우린 예술가요. 옳으면 옳다고, 그르면 그르다고 모든것을 공정하게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 예술가란 말이요. 윤형이 말하자는건 궁극엔 북에 민족정신의 뿌리가 있다는건데 그건 어페요. 윤형이 북을 알면 얼마나 아시오. 융숭한 환대를 받았다고 해서 찬양하는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소, 나도 예술가요. 물론 극진한 환대를 받았지요. 하지만 나는 그걸 놓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일찌기 내가 느끼지 못하였던 정신세계를 체험했다고 말하고싶었던것이요. 내가 〈령산회상〉에서 그려보기만 했던 민족의 옛스러움, 우리 민족품성의 본태인 자존심, 향토애, 인정미, 인격, 순박성, 이 모든것이 현실적으로 환생된것을 체험했다는것이요. 이건 훌륭한 정신적모델을 세워 인간을 감화시킨 우리 이전의 예술천재들뿐만아니라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구원하려고 노력하고있는 우리 세대 이름있는 예술가들도 일찌기 알지 못하였던것이였소.

전형, 나나 전형은 이국에 살면서 입으로는 민족의 운명을 읊조렸지만 실지 몸을 내대고 살을 깎아본적이 있었소? 눈물만 흘렸고 웨치기만 했었지. 그걸 북이 지금 행동으로 대신하고있단 말이요.》

《···》

《부탁하건대 자기의 주장을 거두어주시오. 전형이 아무리 그 어떤 수식사를 쓴다 해도, 아무리 관록과 명성의 힘으로 말한다 해도 〈음악- 하나로 통일되는 인류의 언어〉는 민족정신을 얕잡아보는 저서요. 세계화를 부르짖는 아메리카정신에 대한 찬양일따름이요.》

《결국···》 전상음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윤형이 아닌 밤중에 전화를 든건 그때문이겠소?》

《그렇소. 전형이 그래도 계속 그걸 고집한다면 예술가의···》

《그만하시오.》

전상음은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이며 그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다음날 전상음은 약속대로 로스뜨로뽀비치의 집을 방문했다. 서재 겸 침실로 쓰는 방에 들어가니 그는 커다란 침대우에 누워있었다. 병문안을 하면서 상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를 만류했다.

《책을 받았네, 감사하이.》

《어떻습니까?》

전상음은 이 로씨야인은 무엇이라 평할가 하여 궁금했다.

《참, 미안하게 되였네. 건강이 너무 악화돼서 그만 읽어보지 못했지.》

《다행입니다.》

그로서도 어쩔수없이 튀여나간 말이였다.

《다행이란건?》

《일단 책을 펼치면 선생성미에 끝까지 보겠는데 건강이 어디 따라 서겠습니까.》

머리를 끄덕이던 로스뜨로뽀비치는 이상한 기미를 챘는지 상음의 얼굴을 더듬는것이였다.

《자네 안색이 썩 좋지 못하구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가?》

《아, 아니, 나도 사실 요즘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전상음은 황황히 둘러쳤다.

《그럴테지. 주의하라구. 자네도 이제는 예순에 들어섰으니만치 날을 세가며 건강을 봐야 하네.

음- 거 도서제목은 아주 좋더구만. 〈음악- 하나로 통일되는 인류의 언어〉. 마음에 들어. 나으면 내 꼭 보지.》

《감사합니다.》

《이보게.》

로스뜨로뽀비치는 저으기 소심한 어조로 청했다.

《음악을 좀 들려주지 않겠나?》

《그러지요.》

전상음은 흔연히 동의하며 서재가운데에 놓인 피아노로 다가갔다.

《뭘 칠가요?》

《아무것이나 쳐주게. 난 자네가 연주하는거면 다 좋아.》

전상음은 두손을 깍지끼고 가볍게 손풀이를 하면서 생각해보다가 곧 연주를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오랜 로씨야서정가요들과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 다음 이어서 로스뜨로뽀비치가 제일 좋아하는 드보르 쟈크의 《신세계》 제2악장에로 넘어갔다. 로씨야식으로 꾸린 넓고 아늑한 방안에는 마음속 갈피갈피까지 깊숙이 적시는 련련하고 섬세한 선률이 조용히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건 들을 때마다 생동한 회화작품들이 눈에 얼른거리는구만.》

한시간 좋이 넘어서야 연주를 끝내자 로스뜨로뽀비치는 속삭이듯이 뇌이는것이였다. 그의 두눈귀에서는 은백색무리등빛을 담은 가느다란 물기가 흐르고있었다.

《황량한 초원, 하늘끝까지 갈라뻗어간 해진무렵의 잔광,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슬라브인들의 초막, 그물그물 피여오르는 연기. 향수지, 향수. 오참, 어서 들게.》

로스뜨로뽀비치는 이렇게 말하며 때마침 들여온 밀차식식탁을 가리켰다.

전상음은 유리잔에 부은 펜치술을 들고 훈제한 철갑상어알을 입에 가져갔다.

로스뜨로뽀비치는 전상음의 방문에 음악까지 푹 젖도록 듣고나니 기분이 돌아섰는지 퍼그나 활기스러워졌다.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크게 웃기도 했으며 이불우로 두팔을 내흔들며 말뜻을 형용하기도 하였다.

《사실 카밍즈는 2악장이 흑인영가라고 평했는데 난 반대네. 드보르 쟈크가 흑인영가를 창작했을게 뭔가. 선률을 들어보게. 주제해명에 적극적인 픽콜로, 오보에, 화고트들과 현악기군들의 주고받기를 들어보라구. 슬라브적, 동방적색채가 진하거던. 그리고 작곡가자신도 미국의 미개척지를 편답하다가 동포들의 이국살이를 목격하고 그들의 고국향수를 썼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두 동감입니다. 그래서 내 언젠가 카밍즈의 주장을 반평하지 않았습니까.》

《오오, 그렇지.》

로스뜨로뽀비치는 두팔을 벌려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본 기억이 나네. 맵시있었어. 날카롭게 반평했지. 흠- 어쨌든 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늘 내 고향생각을 하군 하네.》

전상음은 또 한잔의 펜치술을 마시고나서 그에게 물었다.

《〈신세계〉말이 나온김에 내 언젠가부터 묻고싶은것이 있었는데··· 생각나십니까, 동방연주회를 가졌을 때 말입니다.》

《기억나. 연주가로서의 마지막연주회였지. 그래서?》

《그때 선생은 왜 이미전에 계획된 곡목을 바꾸고 마지막에 이 2악장을 연주했습니까?》

《그거 말인가, 사연이 있지.》

로스뜨로뽀비치는 두손을 배우에 포개얹고 실눈을 지었다.

《우리 그때 연주려행을 한달 했던가, 그랬을거네.

난 그 당시 오래전부터 조국에 영주할 결심을 실행하려고 했었지. 미국을 출발할 때 벌써 난 모든것을 정리해놓은 상태였어.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즉시 전화로 쏘련대사관을 찾아 내 결심을 알렸지. 대사관관리는 이틀후에 다시 알려주겠다더군. 한데 이틀후에 그가 하는 말이 외무성에서 받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질 않겠나. 조국을 버리고 달아난 죄에 서방세계에서 살면서 반쏘반공선전을 했기때문이라는거네. 결국 나의 조국영주는 꿈으로밖에 남지 못했지.

배척을 당하고보니 왜 그런지 조국, 고향, 일가친척들과 동무들이 얼마나 더 보고싶고 그립던지. 그때 난 매일 밤 베개잇을 적시며 홀로 눈물을 흘렸네. 내가 〈신세계〉로 곡목을 바꾸고 그걸 연주한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네.》

그제야 리해가 되였다. 늦가을의 그 연주회는 로스뜨로뽀비치에게 있어서 이름못할 슬픔과 애수를 토해내는 연주회였을것이다. 전상음은 동정심이 북받쳐 그의 한손을 꼭 잡았다.

《공산체제가 붕괴되였는데 이젠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로스뜨로뽀비치는 침울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비통한 표정이 떠올랐다.

《내키지 않네. 난 원래 공산주의가 질색이지만 그래도 쏘련때는 질서가 있었네, 사람들도 깨끗했고, 그런데 고르바쵸브가 나랄 뭘로 만들었나. 이른바 옐찐의 로씨야가 어떻게 돼가고있는지 아나? 온통 무질서, 란장판, 아수라장이네. 드미뜨리 돈스끼, 이완 그로즈느이, 뾰뜨르대제, 쑤워로브, 꾸뚜조브의 이름과 더불어 강대했던 로씨야, 뿌슈낀, 똘스또이, 레삔들의 지성에 떠받들려 빛나던 우리 로씨야는 오늘 더러운 진창구뎅이에 처박혀 뒹굴고 로씨야인들은 렬등국민취급을 당하고있단 말일세.

네크라쏘브가 말했던가. 누가 루씨에서 살기 좋은가고, 누가 이 나라에서 살기 좋은가. 지금의 로씨야는 정치간상배, 분립주의자들, 장사군들이나 살기 좋은 곳이네. 아!- 한잔 주게.》

로스뜨로뽀비치는 신음소리를 내뿜으며 손을 뻗쳐 술을 청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세우고 상음이 권하는 잔을 받아 단번에 들이키였다. 로스뜨로뽀비치는 술에 개키운듯 기침을 하다가 전상음이 물을 권하려는 거동을 보고 손을 내저었다. 조금 지나서 다시 드러누운 그는 지친듯 한 어조로 이렇게 뇌이였다.

《그래도 가야지. 어머니루씨가 아닌가. 뼈야 거기에 묻는게 옳지.》

《···》

《참, 윤이상씨는 집이 남쪽이라던데 요즘 북에 자주 나든다지?》

《그런다고 합니다.》

《그런 대예술가가 북에 나들 때는 무슨 보는것이 있어 그럴거네. 한데 자넨 고향이 어딘가. 북인가, 아니면 남인가?》

《···》

갑자기 말문이 막히였다. 무엇이라고 대답하랴. 전상음은 머뭇거리며 빈 술잔을 매만지기만 하였다.

 

×

 

그랬다. 나는 대답할수가 없었다. 북은 리념이 달라 생소하게 보아왔던 땅이였고 남은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대미숭배, 자아렬등의식이 혐오스러워 등을 돌린 곳이 아니였던가.

이라크인의 살인동기, 론박할수 없는 윤이상씨의 예리한 비평, 로스뜨로뽀비치와 나눈 대화에서 받은 충격. 이것은 나로 하여금 내가 이룩한 모든것에 회의를 품게 하였으며 점점 깊은 고뇌에 싸여 어둠속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던중에 나는 전상음이라는 인간에게는 남이든 북이든 애틋하게 여기는 곳이 없었고 민족애라 칭하는 감정은 더욱 있어본적이 없었으며 결국 성공하였다고 자부해온 예술과 인생이란 한갖 허위였다는것을 마침내 알게 되였다. 아!- 나는 그때 얼마나 무서운 좌절감에 휩싸여 몸부림쳤던가.

다 지겨워났고 허무하게 흘러온 인생이 쓰겁기만 했다. 일체의 세속과 담을 쌓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싶었다. 이런 내가 나에게 아메리카라는 우상아닌 우상을 심어준 헤밀톤과 그의 음악을 어떻게 찬양할수 있단 말인가.

언뜻 흰 거품을 날리며 빠르게 흘러내리는 강물을 무엇인가 꿈틀거리며 거슬러올라가는것이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송어였다. 알을 쓸러 올라가는 모양이였다. 혼자인걸 미루어보니 오다가 사람이나 짐승에게서 해를 입어 무리에서 떨어진것 같았다. 빠른 물살, 바위가 솟은 앞의 물길, 온전치 못한 몸뚱이, 그래서인지 송어는 한참이나 신고를 해서야 바위를 넘어가는것이였다.

상음은 갑자기 송어가 돋우어보였고 부러웠다. 한갖 미물에 불과한 송어라는 놈도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나서자란 곳으로 가고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죽을것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태여난 고향으로 가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그런데 나에게는.

부지불식간에 괴로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한손으로 왼쪽가슴을 꽈악 잡아뜯으며 전상음은 허리를 구부리였다. ···

《선생님! 선생님!》

누군가가 자기를 찾는 목소리가 꿈에서처럼 들려왔다. 전상음은 후둑후둑 불안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애쓰며 돌아섰다. 그의 앞에는 별장관리인이 서있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상음이 손을 내젓자 그는 미심쩍게 훑어보다가 곁에 다가와 팔을 끼였다.

《아이오와에서 산다는 한무신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이 안계신다고 하니까 헤밀톤음악회도중에 련계가 있었다면서 오늘 밤은 여기 별장에서 지내시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정박장에 나오니 배는 도착했는데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서.》

《아직두 기다리시나?》

《예, 한 10분가까이 되였습니다.》

《빨리, 어서 가자구.》

별장에 들어와 송수화기를 들어보니 빈 신호음만 울리였다. 대신 전화기의 알림판에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불원간 선생의 소망이 풀리게 될것 같습니다. 요즘 이북에서는 김일성주석님의 탄신절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북을 다녀온 동포들의 말에 의하면 《아리랑》은 단순한 마스게임이나 콘첼트가 아니라 우리 아리랑민족이 영세존명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해답을 주는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북에서는 소문도 내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세계각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어떻게들 알았는지 저저마다 관광을 제기하며 자의대로 선발단을 무어 북부조국에 파견하고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어원조차도 모르는 수많은 외국인들까지 실상을 확인하려고 북방문을 신청한다니 북부조국이 준비하고있다는 《아리랑》은 명실공히 의미진진한것이 틀림없겠습니다.

우리 역시 가만있을수 없어 《아리랑》관광선발단을 조직하고있습니다. 일전에 부탁하신것도 있어 동의없이 선생을 선발단에 넣었는데 의향은 어떤지. 의견이 안계시면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

《아리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뒤의것은 생소하였으나 《아리랑》이라는 세글자는 심신을 단번에 푹 젖어들게 한다. 전상음은 송수화기를 손에 쥐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서라, 내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낯을 가지고 북에 간단 말인가.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 번민에 싸여있던 전상음은 용기를 내여 송수화기로 손을 뻗쳤다.

《여보십시오, 한무신씨지요. 예, 예. 제 상음이올시다. 제 소망을 귀히 여겨주어 정말 고맙소이다. 한데 저, 우선 그 북에 다녀온 사람들 말입니다. 〈아리랑〉 훈련을 보고온 그 사람들을 만나게 해줄수는 없겠는지요.》

《그야 어렵겠습니까. 소원이라면 이제라도 만나게 해줄수 있습지요.》

《고맙습니다, 그러면.》

전상음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송화구에 입을 바투 가져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