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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더욱 깊어갔다. 이따금 어디선가 쏴- 하고 골안을 훑어내리는 바람소리만 들릴뿐 철령은 아득히 머나먼 옛적의 적막속에 잠겨있는듯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령길을 톺아오르는 야전차의 동음소리를 들으시며 상념에 잠겨계시였다. 굽이굽이 휘돌아간 령길처럼 그것은 가지가지의 하많은 이야기의 봉우리를 돌고돌며 끝없이 이어져가고있었다.

인민의 소원,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가 한 말을 곱씹어보시였다. 이 나라 사람들의 륜리도덕적품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시였다.

누가 말했던가. 한 인간을 알려거던 그의 생이 끝난 다음 사람들이 하는 평가를 들어보라고. 그러자 그이의 눈앞에는 1994년 7월 어느날, 비내리는 깊은 밤에 있었던 일들이 화면처럼 비끼여오는것이였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을 찾은 조객들을 배응하시고나서 수령님의 집무실로 걸음을 향하시였다. 그이의 집무실사품을 정리해드려야 할 도덕적의무를 실행하여야 하시였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서탁, 책장들,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구식금고와 오래 사용하시던 《목란》표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 수령님의 체취가 력력한 집무실의 기물들은 예나 다름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묵묵히 서계시다가 허리를 굽혀 발치에 있는 수령님의 실내화를 손에 드시였다. 눈앞이 삽시에 흐려오시였다. 움푹 패인 신바닥, 본래의 색갈이 알리지 않는 희벗한 실내화.

못내 한스러우시였다. 몇달전 수령님의 집무실에 오셨을 때 실내화가 낡은것을 보고 수령님, 이젠 신을 바꿉시다라고 말씀드리자 괜찮소, 내겐 새것보다 익숙된것이 좋구만 하고 밀막으시던 수령님의 음성, 그 음성이 귀전을 아프게 울리셨다. 그때수령님께 실내화라도 꼭 바꿔드렸으면 조금이나마 아픔이 덜해질것 같은 심정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에게 금고를 열라고 손짓하시였다.

좌르륵 좌르륵,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집무실의 무거운 공기속에 퍼져갔다. 금고앞에 허리를 굽히고 손질을 하던 부관이 머리를 든다.

《장군님, 아무것도···》

그의 너부죽한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있었다.

《그저 이것밖에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이 내미는것을 받아드시였다. 사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책동지를 곁에 세우고 찍으신 사진이였다.

마침내 김정일동지께서는 끓어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실수가 없어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큰 비애와 상실의 아픔을 당하시였지만 그것을 강잉히 누르시고 오히려 인민을 위로하셨던 그이이셨다. 그러나 이밤 끝없이 검소한 수령님의 집무실을 보시니 생전에 그이를 더 잘 모시지 못한 한스러움이 솟구쳐 저도 모르게 그만 또다시 눈물을 쏟게 되신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만들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도 슬픔에 어깨를 떠는 부관이며 서기들을 달래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이르시였다.

···수도의 밤거리는 여전히 눈물의 바다속에 잠겨있는듯싶었다. 또 한차례 쏟아진 무더기비로 하여 차길이며 걸음길, 건물들은 비물에 푹 젖어 번들거리였고 강녘의 버드나무며 가로수들은 때없이 불어치는 바람에 몸부림을 치면서 그 무엇을 애절하게 호소하는듯싶었다.

한시간 좋이 시내를 돌고나서야 마음을 진정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로 돌아가시기 위하여 전승광장쪽으로 차를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속도를 높이시려다가 언뜻 차창밖에 무엇인가 눈에 띄우는것이 있어 가속답판에서 발을 떼시였다. 불기둥처럼 내뻗친 전조등빛에 철도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애젊은 청년을 데리고 우산도 없이 걷고있는것을 보셨던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속도를 죽이며 차를 천천히 그리로 갖다대시였다. 아닌 깊은 밤중에 곁에 와 멈춰선 승용차,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리시는 어떤 간부분, 한순간 영문을 몰라 얼떠름해있던 그들은 그이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서야 알아보고 일시에 부르짖었다.

《장군님!》

그들의 인사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산부터 들려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들의 집이며 이름, 직장을 물어보시였다.

이름은 강호윤, 집은 청진이며 김책제철소 구내기관사로 일하고있다고 한다. 곁에 서있는 청년은 평양교예단의 배우로 일하는 아들이라고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기관사의 왼쪽다리를 여겨보시였다.

《보니까 한다리를 저는것 같던데 어디 상한게 아니요?》

《예. 전쟁때 파편이 박혔던 부상자리가 도져서 비만 오면 조금 저리군 하는데 일없습니다.》

《전쟁참가자구만, 어디서 복무했소?》

《4사 18련대 통신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기관사는 마치 군대시절이 돌아온듯 어깨를 쭉 폈다.

《아- 4사 18련대? 미24사단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련대지. 그러니까 락동강까지 갔다왔겠소?》

《그렇습니다.》

《음, 한데 평양엔 어떻게 왔고 이 깊은 밤중에 어딜 가는 길이요?》

《화물수송차로 왔던 걸음에 아들을 데리고 만수대동상에 가는 길입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짐작이 되시였다. 필경 이들은 수령님이 그리워 만수대로 가는 걸음일것이다. 그이께서는 부드럽게 권고하시였다.

《수령님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동무의 마음에 머리가 숙어지오. 그러나 돌아들가오. 밤이 퍽 깊었고 몸도 불편하지 않소?》

《아닙니다. 저는 오늘 꼭 수령님을 찾아뵈워야 합니다.》

《?!》

《장군님, 전 장군님께서 그렇게 높이 사주시는 인간이 못됩니다. 전 사실 나쁜 인간입니다. 제 오늘 꼭 만수대로 가려 하는것은 수령님께 용서를 빌기 위해서입니다. 전 수령님께, 장군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

가로수를 흔들며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의 서슬에 후두둑하고 잎새에 실려있던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기관사는 볼편에 흐르는 물기를 닦을 념도 못하고 자초지종을 떠듬떠듬 털어놓는것이였다.

《제 고향은 원래 서울입니다. 저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며칠이나 밤잠을 못 잤댔습니다.

장군님, 그런데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자 이놈은 어쨌는지 아십니까? 나는 이젠 고향에 영영 못 가보겠구나 하고 리속을 먼저 생각하며 제 설음에 겨워있었습니다.

글쎄 이게 뭐겠습니까. 새빨간 두주먹뿐인 이 빈털터리가난뱅이가··· 수령님의 품에 안겨 사람대접을 받고 기름진 생활을 누리며 살아온 제가 나라가 대국상을 당한 오늘 그 누구보다 큰 아픔을 겪고계실 장군님을 위안해드릴념을 못하고 제 생각만 했으니 이게 죄중에 큰 죄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

《수령님령전에서 호곡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며 가책이 되였습니다. 배은망덕한 자기를 돌이켜보면서 제가 절절하게 느낀것은 우리가 얼마나 복속의 복을 누려왔는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분을 잃었는가하는것이였습니다.

장군님, 이젠 우리에게 장군님 한분밖에 안계십니다. 그러니 슬픔을 거두시고 너무 몸을 혹사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저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어디선가 먼 우뢰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부드럽게 뒤흔든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이 훈훈해나시여 말씀없이 서계시였다. 이 얼마나 고지식하고 순결한 인간인가. 그를 통하여 우리 인민의 모습을 보는것 같으시였다. 이름할수 없는 감동에 차신 그이께서는 그저 이렇게만 표현하시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동무는 참 좋은 사람이요.》

그날 밤 집무실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던 기물들과 방금전에 들으셨던 강호윤의 이야기를 음미해보시며 많은 생각을 하시였다.

가을날의 샘처럼 티검불 하나 끼지 않은 그 마음, 봄하늘처럼 청청 푸르기만 한 그 충정, 인민은 어떻게 되여 이렇듯 훌륭한 품성을 가지게 되였는가.

실내화, 《목란》표텔레비죤수상기, 텅 빈 금고안에 남아있는 한장의 사진,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던 집무실의 기물들 그 하나하나가 말해주고있었다. 그것은 탄생하신 그날부터 천성으로 지니신 수령님의 인민성을 말해주고있으며 평생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깡그리 바쳐오신 수령님을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우리 인민은 수령님을 그토록 흠모하고 따르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민이 세상 그 어느 인민과도 비길수 없는 가장 고결하고 깨끗한 륜리도덕적품성을 가지고있는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니였던가.

상념은 또 하나의 굽이를 돌아 이어져간다. 그이께서는 렴배복할머니가 쓴 편지구절을 떠올리시였다. 할머니는 자신께 올린 편지에 이렇게 썼다.

《···

무릇 사람에게는 무엇인가에 의지하고싶어하는 성정이 있습니다. 녀자로 말하면 어려서는 부모요, 출가가서는 남편이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탁하지요. 남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랑 영화를 보니 생활의 순리를 범속하게 여기는 학자며 목사, 종교인도 역시 제나름의 정신적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기대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마음의 기둥으로 의탁한분은 수령님이시였습니다. 그랬기에 인민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자 홀연 넋이 흩어지고 고아가 된 심정에 싸여 하늘이 무심타고 원을 터뜨렸습니다.

저도 어버이를 잃고보니 하늘이 꺼지고 세상이 캄캄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겠습니까. 모든게 수령님생전처럼 여전하고 오히려 그분께서 환생하신것 같지 않겠습니까. 그래 가만히 앉아 당의 목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두루 사람들이 일하는것도 눈여겨보았습니다. 인차 깨도가 되였습니다. 가고오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억척같이 일하시는 장군님이 계셔서 수령님의 환생이 생시처럼 느껴진것입니다.

저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인 1951년 여름에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습니다. 래달이 지나가면 저의 당생활년한은 꼭 50년이 돼옵니다. 이 나날 저는 전쟁이며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공업화를 실현하는 투쟁에 참가하는 과정에 그가 진정 당원이라면 자기앞에 맡겨진 혁명임무에 충실하는것과 함께 항상 귀를 기울이고 인민의 목소리를 들을줄 알아야 하며 그들이 바라는것을 풀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는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령님의 존함으로 영광스럽고 존엄높은 조선로동당의 한 성원으로서 위대한 장군님께 한가지 의견을 정중히 드리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오르신 그날부터 오늘까지 한평생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어떤분이시였는가를 우리는 엄혹한 고난의 행군의 나날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최전연초소며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에 새겨져있는 불멸의 자욱을 통하여 더욱 잘 알게 되였습니다.

대홍단에 가셔서는 팔소매를 부여잡고 태여날 애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새색시의 철없는 소청도 기꺼이 들어주신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어느해인가 한 발전소언제건설장에 가시여서는 침수지역 인민들의 생활형편부터 먼저 알아보시고 살림집을 빨리 지어주자고, 새집들이할 때는 천연색텔레비죤을 보내주겠다는 어버이의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공장을 찾으시여서는 생산된 제품을 보시며 인민들이 좋아하는가부터 물어주시고 언젠가는 멀리 외국을 방문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북방의 로동계급이 해놓은 일이 대견하시여 수행일군을 비행기에 태워 자신의 축하와 은정어린 선물을 전달하게 하셨던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이 나라 방방곡곡마다에 깃들어있는 전설같은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하도 많고많아 그것을 쌓으면 하늘에 닿을것이요, 모으면 대하를 이루게 될것입니다.

하기에 세상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가리켜 수령은 인민을 친혈육처럼 보살피고 인민은 수령을 어버이로 모시고 따르는 혼연일체의 나라라고 칭송하는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인민들은 대해같은 그 사랑을 받아안을 때마다 장군님을 더 잘 모시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가슴을 치군 했습니다. 사실말이지 장군님께선 인민을 위해서는 그토록 지극하셨지만 언제한번 자신을 돌보신적이 있었습니까, 자신의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돌리신적이 계셨습니까. 옷을 입으면 단벌야전복밖에 모르시였고 쉬시면 쪽잠에 드시였고 끼니마저 줴기밥이나 죽을 드셨으며 그 한공기의 죽마저도 때로는 나눠잡수시였습니다.

아래일군들이랑 예술을 보는 사람들이 그 로고를 력사에 남기려고 의논끝에 동상을 건립하고 영화에 담겠다고 제의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아래사람들의 절절한 이 제의를 거듭 밀막으시였습니다.

수령님의 령전에 다진 맹세를 다 실천하자면 아직 할일이 많고 또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셨던 조국통일도 이룩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할수 없다 하시며 오히려 일군들을 엄하게 견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나오는 〈2월은 봄입니다〉경을 불허하셨다니 이처럼 안타깝고 속이 타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자식은 받은 사랑만큼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야 한가정의 가풍이 바로된것이라 하였습니다. 나라의 가풍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수령이 준 사랑과 은혜는 하늘만큼 큰데 인민은 그것을 응당한것으로만 여기고 백성의 도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나라의 가풍이 옳게 서있다고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장군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장군님을 칭송하는 장을 넣은것은 어느 한 일군이나 예술가가 주장해서가 아니라 인민의 소망에 의해, 이 나라 수백만 당원들의 총의에 따라 그리된것입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도 당원으로서, 우리 당 총비서로서 이것을 리해하여주시고 널리 헤아려주셔야 합니다.

삼가 마음을 정히 하고 의견을 다시 드리건대 장군님, 이번만은, 이번만은 인민의 소원을 헤아려 우리가 장군님의 백성된 도리를 지키게 해주십시오.

이 나라의 평범한 당원이고 공민인 제가 장군님께 편지를 올리려고 결심한것은 바로 이때문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 옥체건강에 각별히 주의를 돌려주실것을 아무쪼록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각도 멀고험한 전선길에 계실 장군님을 그리며 삼가 펜을 놓으려고 합니다.

2001년 ×월 ×일

당원 렴배복 올립니다.》

 

당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편지를 받은 이후부터 줄곧 자신께 자문자답하시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나는 당원으로서 조국과 인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의무를 어떻게 수행하여왔는가. 력사의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당을 따라서 운명을 같이해온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 그들이 그토록 신뢰하고 따르는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서 자기의 책임을 다해왔는가.

그렇다. 나는 당원으로서, 당의 총비서로서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그러나···

했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어머님을 회상하게 되시였다. 상념은 편지의 여운을 타고 또 한굽이를 돌아 쉰두해전의 그날에로 흘러갔다.

저택의 정원이며 뒤뜰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던 그날, 날마다 그러하듯 이른아침에 일어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을 도와 오리며 게사니에게 먹이를 주고나서 작은 바께쯔에 돼지먹이물을 담아들고 뒤뜰로 향하시였다. 돼지우리는 저택에서 좀 떨어진 뒤뜰 한구석에 있었다.

그이께서 가시니 김명화가 와있었는데 발치에는 그의 집에서 늘 보아 눈에 익은 한말들이양철바께쯔가 놓여있었다. 아마 아침마다 돼지물을 모으려고 신양리를 도시는 어머님의 수고를 생각해서 먼저 걸음을 한듯싶었다.

김명화는 그이께서 인사를 하시자 반색을 하며 손에서 바께쯔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어머님께 지청구를 하는것이였다.

《이보라구 정숙동무, 이젠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구 손을 떼라구. 아, 몸이 못쓰게 돼가는걸 알기나 하나?》

《아침에 운동삼아 하는 일인데 일없어요. 한바퀴 돌고나면 얼마나 정신이 거뜬한지 몰라요.》

《정숙동무는 이젠 여느 사람과 달라. 그걸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라구.》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는 김명화였다. 반토굴형식으로 지은 돼지우리의 뚜껑을 닫으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드시며 명화를 가볍게 탓하시는것이였다.

《언니두 참, 일전에 그런 소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김명화가 돌아간 뒤 물어보시였다, 어머님이 여느 사람과는 다르다는게 무슨 뜻인가고. 어머님께서는 그저 후에 알게 된단다라고 대답해주시는것이였다.

봄날의 이른새벽에 그이의 뇌리속에 언뜻 자리잡은 이상한 의문은 몇시간후에 있은 일로 하여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더욱 커지기만 하였다.

그날 중낮쯤 되였을 때였다. 학습방에서 한창 공부에 열중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당쪽에서 게사니울음소리에 이어 녀자의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와 귀를 강구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체없이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시였다. 아닌게아니라 마당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자신께서 기르시는 예닐곱키로는 실히 될 굉장히 큰 게사니가 왝왝거리며 안경을 쓰고 양장을 한 어떤 젊은 녀성에게 달려들고있었다. 그이께서 불러서야 게사니는 공격을 그만두었는데 그래도 미심쩍은지 차색 눈알은 그 녀성에게 가있었다.

《누구를 찾아오셨나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게사니날개를 어루쓸며 물으시였다. 겁에 질린 눈길로 게사니를 훔쳐보던 젊은 녀성은 그제서야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자기 소개를 했다.

《응, 난 〈조선녀성〉잡지사 기자란다. 여기 김정숙이라고 집짐승을 잘 기른다는 아지미가 산다지? 취재를 왔는데 그를 만나려면 어딜 가야 하니?》

《우리 어머니를요?》

《그가 어머니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녀기자는 게사니를 가리켰다.

《이것도 어머니가 기르는거겠구나.》

《이건 제가 기르는거예요.》

녀기자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며 저택을 주의깊게 둘러보았다.

《여긴 어느 간부분이 사느냐?》

《우리가 살아요.》

《우리라니?! 아버진 무슨 일을 보시게?》

《우리 아버진 김일성장군님이예요.》

순간 녀기자의 눈에 비낀 당혹감과 놀라움, 그다음 바뀌여지는 존경과 감동에 찬 눈빛, 하지만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의미가 어떤것인가를 알수 없으시였다.···

그날 늦은 오후 그이께서는 어머님과 함께 녀성기자를 바래주시였다.

《녀사님, 오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갑니다. 제 녀사님말씀대로 녀성당원들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써서 꼭 잡지에 내겠습니다.》

《그래주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우리 녀성들속에는 소문없이 건국사업에 큰 기여를 하는 동무들이 많아요. 그러니 바로 그런 동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널리 소개선전하여 군중을 분발하게 하는것이 선생의 임무가 아니겠어요.》

《잘 알겠습니다.》

녀기자는 어머님과의 작별에 앞서 그이께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부탁하는것이였다.

《어머님은 참 훌륭한분이예요. 앞으로도 어머님을 잘 도와드려요.》

의문스러우시였다. 어머님이 훌륭한분이라는것은 누구나 잘 안다. 인정깊고 남을 잘 도와주고 총도 잘 쏘고. 그래서 어머님을 백두산의 녀장군이라고 존경하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머님을 새삼스럽게 칭송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 기자가 어머님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께서 취재에 흔연히 응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글은 반대하셨다는것, 그 일로 하여 녀성기자가 그토록 감동에 젖어있었다는것을 후에 아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 어머님이 어떤분이시라는것을 완전히 아시게 된것은 과연 언제였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시였다. 추억은 련련히 거슬러올라갔다. 옳아, 내가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날이였지.

그것을 위대한 수령님께 알려드린 그날 두분께서는 수삼나무가 늘어선 저택정원길을 오래도록 거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이께 당원의 의무와 권리, 당생활준칙을 두고 조언을 주시다가 문득 화제를 어머님에게로 돌리시였다.

《오늘은 어쩐지 어머니 생각이 나는구나. 고생을 많이도 했지. 생전에 한숨 잠이라도 편히 쉬여봤고 좋은 옷 한벌이라도 입어봤다면 이렇게두 마음이 아프지 않을거다. 어머니와 함께 집짐승을 기르던 일이 기억나느냐?》

《생각납니다, 수령님.》

《그걸 하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가사나 돌보며 편히 지낼수 있었지. 그러나 어머니는 자진해서 집짐승을 기르는 일을 했다.

그게 1949년 봄이였던가. 내 하루는 어머니를 불러앉혀놓고 말을 해주었다. 일이 험한데다가 건강도 여의치 않은데 당분간이라도 그만두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장군님, 나라일이라는게 한사람이라도 일손을 보태야 잘될게 아닙니까, 정숙이는 일을 하지 못하면 못삽니다, 키울 땐 힘이 들지만 다 길러서 보내줄 때는 얼마나 흥이 나고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더구나.

제사공장 로동자들이랑 평양학원, 중앙보안간부학교, 경위련대군인들이 어머니의 신세를 많이 졌지.》

《···》

《사람들은 어머니에 대하여 이렇게도 표현하고 저렇게도 비유하며 좋은 말을 많이 하더라만 어머니성정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라면 난 단마디루 헌신성이라고 말하고싶다. 오직 남을 위해서 자기를 깡그리 바치며 불같이 산게 너희 어머니다.》

《···》

《어머니처럼 살거라. 어머니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온넋을 혁명에 바쳐야 한다.

내 오늘 부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은 이것을 반드시 사업과 생활의 원칙으로,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해서이다. 이것을 명심하고 일할 때만이 너는 조국과 인민, 나라와 민족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참된 당원이 될수 있는거다.》

어머님!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을 부르시였다. 마음속으로 어머님께 진정을 터놓으시였다.

저는 당원으로서 혁명을 해오며 작가, 기자들을 비롯하여 혁명동지들로부터 사심없는 조언과 의견을 받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것을 허심하게 자기의 사업과 생할에 받아들이였으며 그것을 성실하게 국사와 우리 당활동에 참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진심으로 되는 의견이라 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받아들이면 안될 경우가 있는것같습니다.

얼마전에 저는 한 로당원으로부터 편지를 한장 받았습니다. 그는 편지에 쓰기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령도자에대한 칭송 장면을 넣은것은 이 나라 수백만 당원들과 인민들의 총의에 의하여 한것이므로 나도 당원으로서, 총비서로서 그것을 널리 헤아려줄것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받아들일수 없는것이였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것이였습니다. 나를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는 그들을, 나에게 운명과 미래를 다 맡기고 따르는 그들을 아직 세상 보란듯이 내세우지 못했는데 제가 어찌 그것을 헌헌히 수락할수 있습니까.

그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피눈물나는 1994년, 그때로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 그 험난한 길을 걸으며 김정일동지께서 남몰래 흘리신 눈물, 그이께서만이 겪으셔야 했던 괴로움, 혼자 묵새겨야만 했던 아픔과 고통은 그 얼마였던가. 전선길에 오르시면 자주 눈에 띄우군 하는 벌거벗은 산들, 멎어있는 공장, 기업소, 렬차들, 그것을 보실 때마다 그이의 가슴은 매운 연기를 채운것처럼 매번 아프고 쓰려오시였다. 컴컴한 거리들, 아빠트들, 가로등들, 기척없이 서있는 궤도전차며 뻐스들, 수도로 돌아오실 때마다 보시는 이 광경들은 그이로 하여금 그어떤 통분함과 회한으로 하여 가슴을 터지게 하는것 같으시였다.

어느해 겨울인가 자강도 어느 령밑의 길가집에 들리셨다가 그 집 소녀애가 싸늘한 가마뚜껑을 열며 점심이라 내보이는 한그릇의 강낭죽을 보시고 그밤 남몰래 얼마나 많은 속눈물을 흘리셨는지 모른다. 그 어느해인가는 최첨단기계설비개발에 돌려야 할 자금을 놓고, 그 어느해인가는 국방력강화에 돌려야 할 자금을 놓고 인민생활을 생각하며 괴롭게 지새우신 날과 밤은 또 그 얼마였던가.

당원 렴배복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렴배복할머니에게 이야기하시였다. 아니, 전체 당원들과 인민에게 절절히 마음속 진정을 토로하시였다.

수령님께선 당신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셨고 당과 국가주권, 사상과 철학, 지어 가장 고상한 륜리도덕까지 주셨습니다. 지난날 지지리도 천대받고 멸시당하여 눈물의 아리랑만 불렀던 당신들이 오늘은 강성부흥아리랑을 부르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의 인민으로, 진정으로 참다운 삶을 누려 행복의 아리랑을 부르는 인민이 된것은 모두 수령님의 덕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론할 때 수령님을 모셔야 합니다. 수령님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래일도 변함없이 조선민족의 정신적기둥이시며 그이의 사상과 뜻은 민족의 자주적전진운동의 구성입니다. 나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수령님의 위업을 받드는 그분의 전사, 그분의 당원입니다.

사랑하는 인민이여, 당원동지들! 나는 알고있습니다. 당신들의 어린 자식들이 아직 사탕 한알 제대로 먹지 못하며 자란다는것을, 온갖 고생 겪으면서도 당을 따라 꿋꿋이 운명을 같이해온 당신들이 아직도 유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있다는것을.

허나 수령님께, 당과 조국앞에, 당신들에게 다시 확약하건대 당원 김정일은 틀어쥔 총대로 기어이 승리를 이룩하여 반드시 이 땅우에 부유하고 강대한 김일성민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통일강성국가를 일떠세울것이며 세상사람들이 당신들을 부러워하게 내세우겠습니다.···

철령의 밤은 조용히 깊어갔다. 다만 크고 밝은 보름달만이 령길 굽이굽이를 계속 돌고도는 그이의 야전차에 부드러운 빛을 아낌없이 뿌려주고있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삼라만상도 깊이 잠든 이 시각, 림진우네들이 철령을 넘어가는 자신의 야전차를 가슴을 치며 눈물겹게 우러러보고있다는것을 모르고계시였다.

 

그로부터 1년후 림진우는 국내외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제2장 1경 《내 조국의 밝은 달아》의 창작경위에 대하여 묻는 그들에게 당시를 회상하여 이렇게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때 협의회가 끝난 다음 우리는 식사를 하고나서 곧장 작품수정작업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피로해서 하나둘 잠에 취해버렸습니다. 장마비에 젖어 가드라들었던 몸도 녹고 더운 음식을 든데다가 밤이 너무 깊었댔으니까요. 어디선가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한 자동차의 동음에 제가 먼저 깨여났습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2시더군요. 저는 잠을 쫓고 토론도 계속할겸 동무들을 깨워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열고 나서니 산골특유의 쌉쌀한 소나무송진냄새가 짙은 새벽공기가 어떻게나 청신하던지, 맑은 밤하늘에 조용히 떠있는 보름달이며 소란한 골개물소리마저도 무척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것 같았습니다.

그때 총연출가선생 아닙니까 하고 누군가가 찾아서 뒤돌아보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엊저녁에 군인숙박소 소장이라고 소개하시던 대좌동무였습니다. 푹 쉬지 않고 왜 일찍 일어났는가고 그가 묻더군요. 저는 건물바깥채쪽을 피끗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일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창 주무시겠는데 떠돌썩하다니 이게 보통 실례되는 일입니까.

대좌는 내 거동을 보고 짐작했는지 아, 알만 합니다, 총연출가선생,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방금전에 떠나가셨습니다라고 알려주는것이였습니다.

놀랐습니다. 아쉬움에 가슴 한귀퉁이가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엊저녁에 장군님께서 분명히 대좌동무에게 연출가선생을 책임지고 며칠간 푹 쉬우시오, 이건 최고사령관이 동무에게 주는 명령이요 하시면서 오늘 밤은 쉬고가실 의향을 표시하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떠나가셨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다음날에 장군님을 또다시 뵙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었던것이 어찌나 어리석어보였던지 저는 막 통탄하고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좌동무에게 벌컥 화를 터뜨렸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가신다는것을 왜 알려주지 못하는가, 동무넨 매일같이 그분을 만나뵈올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작별인사라도 드리게 어째서 알려주지 못하는가라고 했더니 대좌는 벙벙해있다가 제잡담 내 팔을 잡아끄는것이였습니다.

정문을 나서서 얼마쯤 떨어진 둔덕에 오르자 그는 보입니까라고 하며 적막속에 잠겨있는 들쑹날쑹한 봉우리쪽을 가리키더군요.

눈부리를 세워보니 저 멀리 앞에 솟은 검푸른 산봉우리들의 허리어방에서 여러개의 동전잎만 한 불빛들이 천천히 움직이고있었습니다. 불빛들은 이따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군 했는데 제 짐작에는 굽인돌이를 돌아 그런것 같았습니다.

대좌동무는 저게 자동차불빛이 아닌가고 묻는 제게 예, 옳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타신 야전차의 불빛입니다라고 말해주더군요.

심장이 후드득 뛰였습니다. 저는 어떤 비상한 예감에 싸여 저기가 어딘가고 물었지요. 대좌동무가 알려주었습니다.

철령이라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원래 식사후에 인차 떠나시려고 했댔는데 그러면 병사들의 단잠을 깨우게 되기때문에 좀 기다렸다가 기상시간에 맞춰가자고 하셨다는것, 그래서 지금 가신다고 합니다.

불시에 거대한것이 흉벽을 세차게 두드리는감이 들었습니다.

철령!

그러니 여기가 바로 그 철령이란 말인가.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이 령, 오르면서 40리 내리면서 40리, 그 피눈물나는 고난의 행군시절 눈비바람, 모진 광풍이 부는 험한 령길을 때로 차를 밀고 오르셨다는 그 철령이란 말인가.

이 새벽의 령길도 전날 내린 비로 몹시 험할것이다. 그런데도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신다. 정녕 이밤, 이 새벽에 그이께선 꼭 가셔야만 하는가. 목이 꽉 잠겨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노래 《우리는 잊지 않으리》의 가사들이 심장을 치며 뇌리를 달굴뿐이였습니다. 피눈물언덕에서 장군님 시작하신 고난의 행군, 조국의 운명 지키려 철령을 넘어 몇천리, 한공기 죽도 나누며 장군님 헤쳐가신 시련의 그 자욱, 이런 노래가사의 구절들이.

철령은 이 나라의 평범한 령들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민은 어떻게 철령을 그처럼 잘 알고있는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자신께서 책임지셨다는 사명감, 그것을 숙명으로 간주하신 우리 장군님께서 타는듯 한 피눈물, 말 못할 괴로움을 혼자 묵새기며 래일의 희망을 마음속에 정히 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누가 몰라줘도 넘으신 령이였기때문입니다. 그 험난한 나날 정말 우리에게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우리 조국은 숨이 진지 오랬을것이며 또다시 우리 민족은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는 운명에 처했을것입니다.

저희들은 가슴을 치며 토로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술가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이런 위대한분을 《아리랑》의 화폭에 모시지 못한다면 우리 어찌 이 나라의 예술가라고 말할수 있겠는가고.

그때 이 장을 담당한 안무가동무가 제게 말하더군요. 령을 넘어가시는 장군님의 야전차, 보름달, 눈에 펼쳐진 이 화폭을 그대로 《아리랑》에 담자고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 인민의 마음인듯 장군님께서 가시는 전선길을 비쳐드리는 보름달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자고 맡입니다.

《내 조국의 밝은 달아》가 시대의 명작으로 창작된 경위는 이러합니다. 제 이야기를 끝내면서 그때의 심정을 담아 이 작품의 주제가를 부르겠습니다.

 

령을 넘어 야전차는 또다시 달리는데

저 멀리 하늘가엔 둥근달이 솟았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내 조국의 밝은 달아

장군님 가시는 전선길의 이밤을

더 밝게 비쳐주려마

 

머나먼 로고의 길 지키여드리는

인민의 마음인가 달빛이 흐르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내 조국의 밝은 달아

장군님 피로를 잠시나마 푸시게

고요를 얹어주려마

 

높은 산중턱에서 마중하던 달

전선길 따라서며 바래드리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내 조국의 밝은 달아

장군님 안녕을 간절히 바란다고

이 마음 아뢰주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