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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해주십시오, 어머니. 이 아들은 아버지처럼 우리 장군님을 만나뵙고 그분께서 아시는 사람이 되였습니다.

열흘전이였습니다. 2차실동훈련준비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경기장에 있던 저는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으신다는 기별을 받게 되였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했습니다. 조국앞에 세운 공적도 없고 이름난 예술가도 아니며 더우기 나이도 새파란 이 아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제게 진호, 덤비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하오, 아버지이름이 강호윤이 맞지? 김철기관사이고. 8년전 7월초엔가 비내리는 밤에 난 아버지랑 진호를 만난적이 있어. 생각나오? 그러니 우린 구면이지. 자 이젠 마음을 푹 가라앉히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자구 하시지 않겠습니까.

온몸을 옥죄이던 긴장이 그 한순간에 봄눈처럼 녹아버렸습니다. 글쎄 그날 밤 10분도 되나마나한 시간에 만나신것을 어쩌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계시는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품창작과정에 대하여 물어주셨습니다. 전 어려움도 잊고 자그마한 실무적문제까지 곁들어서 말씀올렸습니다.

작품창작과제를 받은 저는 배낭을 둘러메고 현실체험을 떠났습니다. 두달가까이 진행된 현실체험은 비록 짧았지만 많은것을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공작기계공장의 CNC설비며 라남탄광기계로동계급이 만든 《HM》기, 하루가 모르게 달라지는 토지정리전투장을 돌아보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무엇을 가지고 조국과 민족의 앞길을 개척했는가에 대하여 연구해보았습니다.

그 나날에 저는 그것은 다름아닌 정신력이며 이 불패의 힘이 있는 한 우리는 이 땅우에 기어이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는 작품의 문제거리를 잡아쥐게 되였습니다. 그달음에 평양으로 올라온 저는 창작에 앞서 야외교예예술의 세계적인 추세와 동향을 연구해보았습니다.

예술적가치가 있고 규모가 제일 큰것은 10여년전에 유럽의 어느 한 나라에서 만든 작품이였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예술축전페막식때 교예배우 6천명을 바닥에 출연시켰는데 그중 500명을 골라 따로 훈련을 시켜서 40분동안 갖가지 교예종목을 펼쳐서 대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들을 압도적으로 누르자면 우리에게는 인원도 시간도 모자랐습니다. 예술형상문제를 놓고봐도 대국의것이라고 자처하는 그 작품은 바닥에 늘어붙어있어 그런지 산만하고 답답했습니다.

머리수를 가지고는 안된다. 우리 실정에 맞게 극소수의 인원으로 최대의 형상효과를 얻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들처럼 바닥에서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그것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의 정신력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감탄도 하고 간담도 서늘하게 만들수 있는 공중전을 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이런 속에서 3단비행과 고무총원리를 리용한 탄력비행이 나왔습니다. 54. 6메터비행으로 기니스기록집에 오른 미국의것을 70메터의 포탄비행으로 꺾은 요소종목도 이런 연장선에서 창작되였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착상이 기발하고 형상이 대담하다, 시대정신이 강하게 반영되였다고 평가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직도 여지가 있어, 대담무쌍한 요소종목을 더 탐구보충하여 대걸작품으로 만들어야 해, 진호, 세상을 굽어보며 마음껏 하늘에서 활개치라, 알겠지 라고 분에 넘친 믿음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장군님께 제 주장을 설명해드리고나자 가슴이 졸아들었댔습니다. 자기 작품에 심취되여 저도 모르게 무엄한 언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지내 난도가 높아 위험하다고, 그래서 반대라도 하시면 어쩔가 해서였습니다. 난도가 지내 높아 우려된다는것은 저를 지지해준 동지들도 마지막까지 준 의견이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빈구석이 많고 장황한 저의 설명을 나무람하실 대신 작다고, 더 대담하라고 격려해주실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장군님의 은총을 입고 자기를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편지가 생각키웁니다. 실동훈련시 일어난 사고로 교예무대를 스스로 떠나겠다는 저의 결심을 알고 어머니는 써보내셨지요.

《···

진호야, 나는 너의 고민과 결심을 리해한다. 불만스러운것은 네가 어딘가 모르게 마음가짐새가 정하지 못한감이 드는것이구나.

길어지는것 같다만 내 오늘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였는가를 꼭 하나 말해주고싶다.

네 부모들이 신혼살림을 갓 펴놓고 살 때 있은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얼마나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지. 당조직이 찾길래 비서에게 가니 당규약공부를 하라겠지, 입당준비를 시키자는것이였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짬만 있으면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 손에서 책을 놓은적이 별로 없었지. 그런데 언제부턴지 아버지의 기색이 노상 무겁기만 한게 눈치가 이상하더구나.

기회를 봐서 물어보았다. 난 입당을 포기했소 라고 하는구나. 심장이 후두두 떨려 무슨 일이 생겼는가 다우쳐물었다. 아버진 여전히 뚝한 말투로 내 스스로가 세포비서아바이를 찾아가 말했소 하더구나. 암만 리유를 알자고 애썼지만 워낙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종내 듣지 못하였다. 그래 이 어머닌 생각끝에 세포비서아바이를 찾아갔지.

예, 호윤동무가 그랬지요 하고 세포비서아바이가 왜 네 아버지가 입당을 스스로 포기했는가를 말해주더구나.

입당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사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나도 이젠 처자앞에, 사람들앞에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인간이 되였구나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내 속내를 들여다보니까 글쎄 이게 뭡니까, 내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했다구요? 아닙니다, 일을 잘한다고 평가해주구 내세워주니까 그만에야 오직 자기만 잘하면 된다는 리기적인 경쟁심에 사로잡혀 시대정신을 망각했지요, 최근에만 놓고봐도 정비를 걸써해서 교대기관사에게 기관차를 인계한적도 적지 않았고 톤수에는 관계없이 탕수에만 신경을 쓴 일도 더러 있었고 서로 돕고 이끌어서 집단적혁신을 일으키는 천리마시대에 사는 제가, 시대의 기수, 로동계급인 제가 바로 이러했단 말입니다, 때문에 난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는 이런 오물들을 들어내고 완전히 깨끗해진 다음 떳떳하게 입당청원을 할텝니다. 이럽디다. 그래서 내가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만한 결함은 앞으로 당생활을 하면서 고치면 된다고 반대했더니 벌컥 성을 내는게 아니겠소.

내가 알고있는 당원들은 하나와 같이 먼지 한점 묻지 않은 깨끗한 인간들이였수다, 전쟁때 적의 화구를 막고 전사한 우리 분대장동지며 더벙쇠라는 내 이름을 강호윤이라고 고쳐달아준 부소대장동지도 당원이였구요, 그래 세포비서아바인 한팔을 못 쓰는 몸을 가지고도 어째서 여적 화차정비원을 놓지 않고있소? 아바인 늘 제게 말했지요, 당원이란 수령님슬하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항상 몸과 마음을 정히 가다듬구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이요. 이럽디다.

내 끝내 두손을 들고 물러났수다, 아주머니, 호윤이 그 사람 역시 진국입디다, 앞으로 일이 잘될터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시오 하고 세포비서아바이가 그러더구나.

진호야, 내 어째서 너의 아버지에 대하여 쓰는가. 너는 조선로동당원이 되기를 열렬히 원하고있다. 어머니는 네가 당원의 영예를 지니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지 네 얘기를 들으면 당원이 되려는 너의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게 느껴지는구나.

부러먹은 마음은 몇날 못 간다. 당원이 되려면 아버지처럼 마음을 순결하게 가져야 한다. 아들아, 이걸 반드시 명심해다오.

···》

옳습니다, 어머니. 이 아들의 당원이 되려는 열망에는 진심보다 사심이 더 많았습니다. 가끔 회의를 하고나서 당비서동지가 당원들만 남으시오 라고 할 때면 수치감에 휩싸이군 했습니다. 저기 앉아있는 일부 당원들, 배우시절에 어깨우에 올려놓던 그 어린 녀배우들보다 내가 못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반발이 솟구쳤구요.

당창건기념탑야간돌격대에 나가서는 어쨌는지 아십니까. 어렵고 힘든 일이 제기될 때면 어김없이 당원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라는 구령이 떨어지군 합니다. 그러면 제대군인들이 선참으로 나서는데 그들을 보면서는 부러워도 했지만 나두 군사복무를 했다면 당원이 되였을것이라는 위안이 전부였습니다.

당원들만 남으시오, 당원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어머니, 이 나라 수백만 당원들은 어떻게 이 부름을 체험하며 당대렬에 들어섰을가요. 아마 나처럼 그러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들은 이 부름을 엄격한 요구성으로 받아들이고 늘 자기를 채직질하며 분발하였을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부끄럽고 수백만 이 나라 당원들앞에 수치스럽습니다. 우리 군대의 수많은 당원장병들이 조국의 한치의 땅을 놓고 적들과 피의 대결전을 벌릴 때 저는 구름 한점 끼지 않은 맑고 푸른 하늘을 이고 공부를 하였으며 붉은 당원증을 가슴에 품은 우리 과학자, 기술자, 근로자들이 허리띠를 조이며 사회주의수호전을 벌릴 때 아들은 외국공연을 다니며 좋은 음식에 걱정없는 날을 보냈습니다. 이런 제가 어찌 이 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신뢰하고 따르는 조선로동당원이 되겠다고 감히 말할수가 있겠습니까. 왜 그리도 아들을 두고 걱정하는지 이제는 알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아들은 당과 조국을 위하여 한몸내댈 굳센 각오가 섰을 때에야 비로소 조선로동당의 입당을 청원하렵니다. 그때 저를 부디 축복해주십시오.

 

2001년 ×월 ×일

북방의 자강땅에 현실체험을 떠나면서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