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

 

종    장

 

그로부터 몇해후 가을.

전선길, 또다시 이어지는 전선길이다. 한번 떠나면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를 전선길이기도 하다.

이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야전차에 옮겨탄 김준남 당중앙위원회 비서와 분망한 사업토의를 하시며 전선길을 달리고계시였다. 화제에는 대계도간석지건설자들이 2호, 4호제방을 완공한 소식이며 미군철수와 자주통일운동에 떨쳐나선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소식, 최근 일본에서 로골화되고있는 타민족말살행위를 규탄하는 기사를 《로동신문》에 실을데 대한 문제 그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세계기니스기록집에 오른것으로 하여 태양민족의 국보로, 인류문화예술의 재보로 더욱 빛나게 된것을 축하하는 국내외의 반향들도 들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본화제를 마무리 지으시고 집무에 들어가시려다가 어느 한 문건을 뽑아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앞좌석에 앉은 김준남에게 넘겨주시였다.

《이걸 한번 보고 동무의 의견을 기탄없이 내놓소.》

차안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야전차의 고르로운 동음만 들리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눈이 자꾸 감기시였다. 고르로운 동음이며 은은한 빛을 내는 감색차내등도 피로와 손을 잡은듯싶다. 시창에도 시선을 주고 예민한 몸부위도 자극해보셨으나 허사였다. 차츰 흐릿해져가는 차내등,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안는듯 한 동음-장군님, 전 이 문제에 관해선 이렇게 주장하고싶습니다. 우리가- 누가 말하는가, 무엇을 주장한다는것인가, 음-

《속도를 늦추오.》

일순 얼떠름해있던 김준남은 그이께서 차벽에 몸을 기대시자 운전사에게 속삭이듯이 지시했다. 그는 시창앞에 드러누운 도로를 조마조마한 심정을 안고 지켜보았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천금같이 귀중했다. 쪽잠이나마 한번 푸짐하게 쉬셨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이께서 쉬실동안 평탄한 이 도로가 끝나지 말았으면.

눈굽이 뜨끔뜨끔해나고 불덩이같은것이 치밀어오른다. 진흙이 발려있는 구두며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이의 야전복을 보니 불시에 장군님을 수행하여 전선길을 달리던 나날들이 돌이켜졌던것이였다. 높고 험한 령들, 진눈까비, 폭우, 폭풍사나운 바다길, 무수한 쪽잠들과 줴기밥. 오늘도 그렇지, 랭기품은 늦장마비를 그대로 맞으시며 한겻이나 함경남도의 여러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보시였다. 불편하신 몸으로 비방울이 콩볶듯 하는 구내길을 다 걸으시며.

일전에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할 때 가슴을 치던 이런 격정이 새삼스러이 돌이켜진다. 무릇 《아리랑》은 험한 인생의 고개를 뜻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인생의 험한 고비를 넘을적마다 그것을 《아리랑고개》라고 표현하였다. 《아리랑고개》를 많이 넘어본 사람에게는 그만큼 복도 차례진다 하였고.

하다면 장군님께서는 많고많은 그 험산준령을 무엇때문에 넘으시였는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서였고 내 민족, 내 인민을 위해서였다. 했기에 장군님께서 《아리랑고개》를 넘으실적마다 우리 민족, 우리 조국의 강성부흥의 력사가 한걸음씩 크게 전진하고있지 않는가.

허나 우리 인민은 장군님의 정신육체적인 힘겨움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다는 모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이께서도 얼마전에 나도 인간인데 어째서 힘들지 않겠는가 하시며 자신의 힘겨움을 내비치셨겠는가. 그래도 그이께서는 그냥 가신다. 정녕 그래야만 하는가. 아! 언제면 우리는 장군님을 단 한번이라도 편히 모실수 있을가.

김준남은 운전사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이 도로가 언제 끝나오?》

《10분정도 달리면 끝납니다.》

그담엔 평탄도가 그리 좋지 못한 지선도로에 내려서야 한다. 조금 더 가느라면 산골길이 나질것이고.

《속도를 좀더 늦추면 안되겠소?》

《안됩니다. 여기서 속도를 더 떨구면 장군님께선 깨여나십니다.》

김준남은 속한숨을 길게 토하며 묵묵히 시창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고르롭게 울리던 야전차의 동음이 점차 어디론가 잦아든다. 대신 《아리랑》곡조가 담긴 풀피리소리가 울리였다. 부둥켜안고 절대로 놓고싶지 않을만큼 참으로 애틋한 정을 불러일으키는 곡조였다. 이어 마음의 밑굽까지 긁어내며 목메여 호소하는 현악기의 선률음, 그다음 뒤따르는 무곡풍의 총연주, 각이한 악기들이 노력을 합쳐 읊조리는 마음의 대단원, 그러다가 청아한 풀피리소리로 끝을 맺는다. 음- 아쉽군, 아쉬워. 그이께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시여 나직이 노래를 부르시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

 

그때 그이께서는 쪽잠에서 깨여나시였다. 야전차가 험한 산간길 어구에 들어서면서 변속을 하였던것이다.

무엇때문에 꿈에까지 관현악 《아리랑》의 선률이 울리였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인을 찾아 사색을 달리시였다. 하지만 알아내지 못하시였다. 잠재의식이 머리를 쳐든것인가? 그럴수도 있다. 사실 나는 관현악 《아리랑》이 처음에 나왔을 때 얼마나 애정에 넘쳐 감상했었던가. 그런데 내가 사랑했던 관현악작품들중 어째서 유독 《아리랑》이 뇌리를 울린것일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번거롭게 회전하는 사색을 단념하고 아까 보셨던 문건을 손에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혹시 미흡하게 처리한것이 있을가 보아 다시한번 꼼꼼히 검토하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인 리강오누이가 올린 편지-

···공부를 잘해서 앞으로 조국과 혁명의 믿음직한 역군이 되기 바란다. ···

-날로 강화되는 미국과 반공화국세력들의 고립과 압살책동과 관련한 실무적인 대책-

(두고봐야 한다. 우리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그들에게 충분한 신호와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반공화국강경일변도로 나간다면 앞으로 사태는 그들에게 불리하게 번져질것이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결속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실무적문제-

이것이였다. 그래서 한숨 값비싼 쪽잠에 드신중에도 《아리랑》곡조가 울렸던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만스러우시였다. 그토록 품을 많이 들인 《아리랑》, 거기에 바친 인민의 눈물겹고도 애바른 정성, 그러한 《아리랑》이였기에 민족이 모두 울고웃으며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째서 《아리랑》을 끝낸단 말인가.

물론 여기에는 《아리랑》공연을 조금이라도 또 연장했으면 한다는 국내외의 반영도 들어있었으며 그에 공감한다는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의 의견도 첨부되여있었다.

다시 연장이라. 할수도 있겠지. 상상을 초월한 공연이였으니까. 그만큼 성과도 컸고. 허나 또 연장을 한다 해도 끝이 분명 있는것은 사실이 아닌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정하시였다. 아니, 세상만물엔 결말이 있어도 우리의 《아리랑》은 끝이 없어야 한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이겨낸 우리 혁명은 지금 눈석이가 끝이 나고 《아리랑》곡조로 좋은 계절을 맞이하고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봄인것이다. 아직도 앞길에는 한여름의 폭열과 무더기비, 을씨년스러운 마가을이 있으며 그뒤에는 겨울의 된추위를 비롯한 온갖 도전들이 예상되고있다. 이것을 이겨내고, 이 모든것을 물리치고 민족모두가 바라는 통일강성국가를 하루빨리 일떠세우자면 힘의 송가는 반드시 계속 울려야 한다. 이 나라의 허리에 깊숙이 박힌 분렬의 장벽을 송두리채 들어낼 때까지, 이 민족이 드디여 힘을 합쳐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강성국가를 일떠세울 때까지. 그렇다. 《아리랑》은 계속, 영원히 울려야 한다.

문건을 무릎우에 내려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책임서기를 찾으시였다. 그에게 다음주 월요일 첫시간에 차성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과 내각의 일군들, 림진우총연출가, 문화성부상 원석현을 비롯하여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실무일군들과의 협의회를 준비하도록 이르시였다.

전화대화를 끝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계속 보시려다가 그만두시였다. 어쩐지 감정이 북받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나직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시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

 

야전차는 여전히 어둠의 장막을 힘있게 헤치며 최전선을 향하여 고속으로 질주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