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서 장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벌써 몇번째나 심중속에서 이 노래를 부르시며 기억을 반복해 더듬으시는지 모른다. 머리쉼을 하시느라 눈이 내리는 창밖풍경을 바라보시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언제적이였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눈발속을 흐릿하게 비치는 정원외등을 지켜보시다가 창가에서 돌아서시였다. 그래, 그때쯤이였을것이다. 정규적혁명무력의 선포를 앞둔 1948년초, 경위련대피복제작소에서는 매일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군복생산작업이 벌어졌었지. 손이 딸려 작업이 계획대로 진척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어머님께서 녀투사들에게 호소하시여 그들도 여기에 동원되였었고.

이날 어머님을 따라 경위련대피복제작소에 가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밤이 퍽 깊어서야 제작소를 나서시였다. 깊은 밤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잠간 흔들다가는 가뭇없이 잦아들군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느날과는 달리 말씀을 하지 않고 걷기만 하시였다. 아까 작업장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며 의문났던것이 다시금 상기되셨기때문이였다.

오늘은 군복생산을 마무리짓는 날이여서 눈코뜰새없이 바빴는데 밤이 어느 정도 깊어지자 피곤에 몰려 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부지런히 일손을 다그치면서도 가끔 작업장을 돌아보시던 어머님께서 그것을 감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노래를 부르며 일하자고 말씀하시였다.

다 불렀다. 차례로 목청을 뽑기도 했고 지명을 하기도 했으며 합창을 하기도 하였다. 그속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혁명가요들이며 계몽기가요들, 민간에서 불리우는 구전가요들, 하여간 별의별 노래들이 많았다. 그러던 끝에 어머님께서 《서도아리랑》을 부르시자 김명화며 황순희들이 이어받더니 그것을 넘겨받아 온 작업장사람들이 저마끔 각이한 곡조와 가사를 가진 《아리랑》 노래가락을 뽑는것이였다.

웬만한 노래는 알고있어 따라부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이 《서도아리랑》을 뽑으시는 대목에 이르시여서는 그 곡조며 가사가 처음 들으시는것이여서 듣기만 하시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다같이 부르는 《아리랑》에 이르러서야 부르시였다. 내가 알고있는것 말고라도 《아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노래가 많구나. 그런데 그 노래제목들은 무엇일가?

《어머니.》

김정일동지께서는 침묵을 깨시였다.

《아까 명화큰엄마랑 황순희아지미들이 부르는 노래두 제목이 〈아리랑〉이나요?》

《그렇단다.》

《한데 왜 다르게 부르나요?》

《무엇이 다르더냐?》

어머님께서는 털목도리를 여미시며 아드님에게 물어보시였다.

《가사내용이 그렇지 않나요, 곡조도 마찬가지구.》

《응- 듣고보니 정말 그렇구나.》

어머님께서는 그이의 분석을 긍정해주시였다.

《네가 정확히 들었다. 옳다. 곡조나 가사내용이 서로 다르지. 그건 왜 그런가. 우리 조선에는 〈아리랑〉노래가 많다. 저기 백두산밑의 함경도에 가봐도 그렇고 남해가의 전라도에 가보아도 그래 8도의 매 지방은 물론이고 지어 자그마한 고을까지도 자기의 〈아리랑〉노래를 가지고있단다.

이 어머니가 한것은 〈서도아리랑〉이다. 명화큰엄마가 부른것은 함경도의 〈온성아리랑〉, 황순희아지미는 〈강원도아리랑〉을 불렀고 재봉사누나들이 부른건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영천아리랑〉, 〈되돌이아리랑〉들이다. 가사나 곡조가 같지 않은건 함경도김치맛이 다르고 평안도김치맛이 다른것처럼 〈아리랑〉노래에도 매 지방의 고유한 전설과 음악적특성들이 들어있기때문이란다. 그렇지만 가사나 곡조가 달라도 우리 민족이 가지고있는 주되는 품성을 노래하고있다는 점에서는 어느 노래나 똑같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해가 되시였다.

《어머니!》

그이께서는 또다시 물어보시였다.

《응- 그럼 〈아리랑〉이라는건 무슨 뜻이나요?》

《···》

화제는 끊긴듯싶었다. 정적, 정적. 그이의 귀전에는 오직 발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만이 가락맞게 들려올뿐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을 올려다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털목도리밑의 가장자리를 한손으로 매만지며 저 앞쪽만을 응시하고계시였다. 왜 그러실가? 자신의 물음을 언제건, 어느때건 진중하게 대하셨고 리해하기 힘들어하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알기 쉽게 알려주시던 어머님이 아니시였던가.

《〈아리랑〉, 음- 어떻게 말해줘야 쉽게 알아들을가?》

어머님께서는 혼자소리처럼 뇌이시였다. 조금 지나서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먼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는 〈아리랑〉백설이라는 말이 전해져내려오고있었단다. 이건 〈아리랑〉에 백가지 곡조와 백가지 전설이 담겨져있다는 소리겠다. 순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가지고도 해석들이 많은데 례를 들면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였다는 이야기, 너도 아는 성부와 리랑의 〈아리랑〉이다.

어느 한 지방이름을 따서 불리워졌다는 지명설도 있고 봉건왕조때 개성의 구석진 곳에 모여살고있던 고려량반들이 옛 왕조가 그리워서 불렀다는 력사적인 사실에서 유래되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런가 하면 어원설을 내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주장하는가, 매 노래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이걸 어원적으로 분석해보면 이런 뜻으로 된다고 하누나. 〈아리랑 아리랑〉이라는건 지난날 항시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가슴이 너무도 아려나서 아리다, 아리다라고 표현하다가 그채로 굳어진것이라하고, 〈아라리요〉는 님과의 리별이 괴롭다는 심정인 〈아난리요〉로, 〈고개〉라는건 뭔가 하면 아무리 넘어도 끝이 없는 고통스러운 인생살이를 의미한 〈고계〉가 오래동안 입말로 전해오다가 〈고개〉로 변화된것이라겠지.

백가지나 되는 전설도 역시 몹쓸 사회의 억압속에 어렵게 사는 눈물겨운 생활감정, 자연경치에 대한 찬양, 초가삼간이나마 지어놓고 부모형제, 처자들이 다 모여서 오붓하게 살고싶은 념원, 련인과 헤여져야만 하는 리별의 고통, 님과의 언약을 목숨바쳐 지키는 우리 조선녀성들의 모습, 랑만적이고 순박한 사랑에 대한 찬미, 이렇게 내용이 같지 않단다.

허나 어느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 어느 곡조를 들어봐도 〈아리랑〉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주는 감정정서는 있었다. 님에 대한 그리움, 반드시 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싶은 념원이였다.》

《!》

《그런데 이렇게 소박한 사랑만을 노래하며 련련히 흘러오던 그것이 홀연 생활세태를 벗어나 전민족적인 감정정서로 폭발적으로 번져가게 된 계기가 있었단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그러니까 1926년이겠다. 그해 어느날 서울의 〈단성사〉라는 이름을 단 영화관에서는 라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을 돌렸다는구나. 영화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한데···》

어머님의 음성은 무척 비감에 잠겨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영진은 고학을 하던중 3. 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는 《죄》로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감옥에 끌려간다. 모진 고문의 후과로 정신병에 걸린 영진은 병보석으로 출옥하자 그길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진이네로 말하면 지주 정상민의 땅을 부쳐먹는 소작인가정이였다. 영진의 누이동생 영희는 성품이 단정하고 미모가 아름다와 백리아근에 소문이 났는데 오래전부터 지주집 마름 오기호가 그에 눈독을 들이고 치근거리고있었다. 그렇지만 영희는 집에 자주 오군 하는 오빠의 동무 윤현구를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사람들은 되놀이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지주집에서도 술판이 벌어진 틈을 타서 오기호는 영희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기호는 처녀의 완강한 저항으로 속심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인차 애인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윤현구는 오기호와 드잡이판을 벌린다. 영진이도 달려왔으나 정신병때문에 현장을 분간하지 못하고 환각에 빠진다.

그에게는 이 광경이 사막에서 목이 말라 물을 찾는 련인들과 락타우에서 물을 실컷 먹고 나머지는 불모래우에 쏟아버리는 토호처럼 보여진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리고 현실에로 돌아온 영진은 들고있던 낫으로 윤현구와 붙어돌아가는 오기호놈을 찍어넘긴다. 결국 영진은 살인죄로 일제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그는 자기를 끌어안고 목놓아우는 윤현구에게 가는 사람을 울리지 말라고 타이르고는 동네사람들에게 웨친다.

《그때 변사를 바이올린연주가이며 작곡가, 시인이기도 한 김영환이라는 사람이 하였는데 그가 〈여러분, 울지들 마십시오. 나는 다름아닌 이 조선에서 태여났기때문에 머리가 별내져서 인명을 해쳤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갈길은 저승의 길이 아니라 환생의 길입니다. 그러니 슬퍼들 마시고 부디 제가 사랑하는 〈아리랑〉이나 불러주십시오.〉 라고 영진의 대사를 웨치고나서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연주하자 첨에는 한사람, 두사람 따라부르더니 점차 관객전체가 부르더라지 않겠니. 마지막에는 온 영화관에 처절한 울음바다가, 애끓는 곡성이 터졌다고 하더구나.》

《!》

《왜 그랬겠니. 사람들에게 있어서 〈님〉은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으로 여겨져 그러지 않았겠니.

이때부터 영화주제가 〈아리랑〉은 계급과 계층, 지역적인 감정정서를 뛰여넘어 조선사람이라면 너도나도 부르는 민족애가로 되였고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아리랑〉을 망국노의 설음을 토해내는 비가라고 뜻하였단다.

하지만 조선민족은 오늘에야 비로소 〈아리랑〉을 긍지에 넘쳐 부를수 있게 되였다. 아버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셨으니 사랑을 되찾고 그것을 깡그리 바칠수 있는 〈님〉을 만났거던.》

《!》

《생각나느냐. 작년엔가 어느날 오후에 네가 이 엄마한테 해준 이야기가 있지? 넌 이 세상에는 하나에 하나를 합하면 둘이 되는것이 아니라 더 큰 하나가 되는것도 있다고 했다. 어머닌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댔다. 네가 두개의 진흙덩어리를 합쳐보이며 설명해서야 알았구나.

네가 옳게 봤다. 〈아리랑〉의 의미도 바로 그거다. 그 진흙덩어리처럼 합치면 합칠수록 다르게 되는것이 아니라 오직 한모양, 오직 하나만 되려는것, 맘과 맘을 서로 합쳐 더 큰 하나가 되려는 지향이 〈아리랑〉의 뜻이라고 말할수 있다.》

《!》

《어떻니, 이젠 리해가 되느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저하시였다. 심중속에 착실히 새겨지기는 했으나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의 전부를 헤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찼던것이다.

《그럼 뜻도 새길겸 엄마랑 함께 〈아리랑〉을 다시 불러볼가?》

인차 아득한 밤하늘로 두분이 부르시는 노래소리가 조용히 퍼져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가에서 물러나 집무탁으로 돌아오시였다. 그랬다. 잊지 못할 그밤, 나는 어머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도 그 이야기가 여운이 커서 나는 중학시절이며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닐 때 학술적으로 연구를 해보았었지. 후에는 그에 그친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혁명실천에 응용해보기도 했고.

5대혁명가극을 창조하던 나날에도 그랬고 영화혁명을 할 때도 그러했으며 지어 어느해인가 북남유일팀을 무어 국제체육경기에 나갈 때 공동선수단의 단가를 고르지 못해 의견이 엇갈린다는것을 알고 《아리랑》을 지적해준적도 있었다. 하다면 어제날 눈물의 상징으로만 여겨왔던 이 노래가 오늘 본래의 뜻을 찾고 긍지와 자부심에 넘친 《아리랑》으로 불리우게 된것은 무엇때문인가.

작품대본을 서탁에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쏘파의 등받이에 웃몸을 붙이시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그래, 윤이상선생의 말이 그에 적중한 해답으로 되지 않는가. 수령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었지. 평양에 체류중이였던 윤이상작곡가를 접견하신 수령님께서 그와 함께 정원을 거니시며 나누시였던 이야기였다. 그게 1990년대초였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 수령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생생히 기억되시였다.

 

···

수령님: 그래 평양에 와서 불편한 점이랑 없으셨소?

윤이상: 예, 매번 올적마다 항상 그랬던것처럼 주석님과 령도자님 덕분에 치료도 받고 금강산이랑 산천구경두 실컷 했습니다.

수령님: 선생이 편히 지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윤이상: 주석님, 제 이번 평양걸음에 소득이 아주 많았습니다. 통일방략이랑 우리 해외동포들에게 많은 선물을 가지고가는데

더우기 중요하게는 이 윤이상이라는 사람도 분명히 큰 선물을 받았다는것입니다.

수령님: 그거야 우리 둘사이에 주고받은 정이지요. 윤이상선생이 내게 그처럼 좋은 음악작품을 선물했는데 답례를 해야 하는것이

마땅한 례의가 아니겠소.

윤이상: 물론 제가 받은 선물은 큰것입니다. 하지만 주석님께선 알게 모르게 저한테 그보다 더 큰것을 주셨습니다.

수령님: 허, 그렇소? 그게 뭘가?! 몹시 호기심이 나는구만.

윤이상: 《아리랑》입니다. 어제 제가 들은 북의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 관현악 《아리랑》입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 노래의 선률이 귀전에 들려오자 한순간에 마음이 정화되였댔습니다.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진정어린 환대와 북주민들의 진심을 느끼면서도 그리고 몇번씩이나 평양방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속 어딘가 깊은 곳에 고집스레 틀고앉아있던 이질감이 단번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담에 푹 젖어드는것은 피는 속이지 못하겠구나, 북도 역시 내 민족이 사는 땅, 내 민족의 넋이 돈독히 살아있는 땅이 분명하고나 하는것이였습니다.

이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갔습니다. 주석님께선 제 심정을 다는 모르실겁니다. 주석님으로부터 해외범민련운동에 관한 귀중한 고견과 가르치심을 받아안았지, 풍파사나운 세계정세속에서도 여전히 민족정기를 잃지 않고 제 길을 꿋꿋이 가는 공화국의 모습을 보았지. 어제 밤엔 흥분이 잦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문득 어릴적에 엄친의 친구되는 사람에게서 들은 비화가 떠올랐지요.

어느날 그 사람이 서울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단성사》에서 라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을 보고와서 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그분이 그 광경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내용을 잘 모르면서도 저두 따라울었습니다. 커서 알게 되였지요.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이 망국노의 운명을 강요당하던 우리 조선민족의 아픈 마음을 바로 건드려 크게 격동시켰다는걸 말입니다. ···

해방이 되였어도 조선민족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그래 우리 조선사람들은 이 노래를 마냥 슬픔을 읊조리는 비가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러했던 《아리랑》을 오늘 이 평양에서 듣게 되니 새삼스럽고 감개무량하기만 합니다. 왜 그런지 어제날의 비통한 감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자긍심만 날뿐입니다.

주석님께서 알게모르게 제게 주신 선물이란 이것입니다.

수령님: 아, 그렇소? 윤이상선생도 그 노래에 가슴이 젖었다니 기쁘구만, 감회도 새롭고. 우리 민족구성원들치고 《단성사》비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

사실 《아리랑》의 본래의 뜻은 합치려는 지향과 념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애적인 모든것을 발휘하게 하는 이 정신, 이것이야말로 우리 조선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우수한 품성중의 품성이 아니겠소.

윤이상: 지당한 말씀입니다. 《아리랑》의 본태야 화합이지요.

수령님: 선생과는 역시 뜻이 통하고 마음이 같으니 정을 나누기가 좋소.

《아리랑》이라, 선생도 어련하겠지만 우리는 격변하는 정세와 환경속에서도 조선민족의 일원으로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며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여 조국통일에 이바지해야 할 때입니다.

한데 요즘 민족문제를 놓고 언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소. 선생이 늘 주장하고있는것처럼 민족은 창공과 같이 영원한것이고 정권은 활엽수와 같다는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거던.

그래 내 얼마전에 북남고위급쌍방대표단성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다 하였소.

남조선당국자가 우리와의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한다는데 나는 그런 회담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나를 만나겠으면 새로운 통일방안을 가지고오라, 우리는 이미 련방제통일방안을 내놓았는데 그보다 더 좋은것이 있으면 내놓으라, 만일 마련한것이 없으면 우리의 련방제통일방안을 찬성하여도 된다, 북과 남이 최고위급회담을 한다면 그 어떤 통일방안을 가지고 토의해야지 그저 마주앉아 차나 마시고 국수나 한그릇 먹고 헤여져서야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이런 선상에서 이번에 북과 남이 힘을 합쳐 해놓은 일을 계기로 우리 겨레는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향하여 참으로 귀중한 걸음을 내디디였다, 이 걸음이 이젠 멈추어서도 안되고 주춤해서도 안되며 반드시 래일의 통일에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이요.

내 이제 서울에 나가서도 할 이야기는 이거요.

윤이상: 주석님, 그 말씀을 들으니 지금 제 머리엔 갑자기 《거리》 (윤이상이 작곡한 음악작품제목, 5개의 관악기와 5개의 현악기를 위한 Distanzen-이 작품은 10개 악기의 자리배치까지도 특이하다. 무대중앙의 관악기는 천상의 세계, 앞자리의 저음현악기는 지상세계, 량옆자리의 바이올린들은 두 세계의 련결을 의미한다. 관악기중 특별히 성스럽게 울리는 호른은 천상의 제왕을 상징하며 작품에서 주도적역할을 한다. 호른의 인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믿음에 넘친 울림에 의하여 저음현악기들의 소란한 울림은 차츰 조용해지며 정돈되여간다. 작곡가 윤이상은 이 작품에서 어버이수령님을 이 세상 그 어떤 불의와 악도 모두 무릎을 끓게 하는 카리스마와 조국과 민족, 량심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한품에 안아 안정과 화목에로 이끄시는 크나큰 자비를 소유한분이시라는것, 때문에 수령님은 천상의 제왕과도 같은분이시라는것을 주장하고있다.)의 음향이 막 되살아납니다.

잘될겁니다, 반드시 잘될겁니다. 주석님께서 서울에 나가시면 막혔던 물목이 터진것처럼 걸린 문제가 시원스레 풀릴겁니다.

수령님: 선생이 또 날 비행기 태우는구만. 내가 무슨 제왕이겠소. 전에도 내 말했지만 내가 나라의 수령이 된것은 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되여서가 아니라 동지들과 인민들, 우리 민족이 내세워줘서 그리된것이요.

어쨌든 믿어줘서 고맙소. 음, 선생도 확신한다니 서울길을 다녀오는것이 옳은 선택같소.

윤이상선생, 내 서울에 나가면 이렇게 말할 작정이요. 여봐라, 백두산의 김일성이 왔다, 우리 리념은 젖혀놓고 다들 무릎을 마주하고앉아 시원한 된장국을 불어마시며 《아리랑》노래를 들으며 민족의 중대사를 오손도손 토론해보자꾸나라고 말이요.

(수령님의 호탕한 웃음소리)

윤이상: 저··· 주석님,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것은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입니다만 터놓고 이야기해도 일없겠습니까?

수령님: 어서 말씀하시오, 윤이상선생.

윤이상: 이즈음 제 두루두루 속을 어지간히 썩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민족을 위하여 아직 할 일은 많은데 저랑 우리 세대는 늙었지, 그렇다고 하여 이거 괜한 로파심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다음세대가 과연 우리만큼 민족의 아픔을 자기의것으로 여기고 통일에 관심을 돌리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수령님: 음, 다음세대라··· 일리가 있는 말씀이요.

윤이상: 주석님, 글쎄 북과 남이 아무리 좋은 합의를 봐야 뭘합니까. 세기가 바뀌여도 그걸 계속 틀어쥐고 이끌어갈 위인이 없으면 한낱 빈 종이장에 허울좋은 공리공담만 될뿐이지요.

사람이란 정이 있어 사람이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함부로 정을 안 주는게 사람의 본성인가 봅니다. 오직 줄만 한 사람에게, 진정을 알아주고 바르게 쳐주고 손잡아 이끌어주는 사람에게 그걸 주지요. 민족도 같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은 이 땅의 력사적인 비극을 제일처럼 여기고 그걸 가셔주기 위해 성실히 분투하는 정치인에게 운명을 맡겨야 앞날이 편안하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제 이번 평양걸음에 참관도 많이 하고 북부조국의 주민들도 많이 만나는 과정에 김정일령도자님의 위인상을 들으며 다시한번 깨달은것은 새삼스럽습니다만 민족의 앞날은 결코 미로는 아니로다, 여전히 우리 조선민족의 래일은 창창하고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주석님께선 제 말을 명을 다 산 한 늙은 예술가의 객담으로가 아니라 민중과 력사가 요구하는 목소리라는것을 중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주석님, 그래 제 긴히 부탁드리고싶은것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아무쪼록 만수건강에 관심을 돌려달라는것입니다. 그와 아울러 김정일령도자님께 여느때보다 각별히 건강에 만전을 기해주십사 하는 저의 소원을 전해드렸으면 하는것입니다. 령도자님의 옥체건강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여있는것입니다. 김정일령도자님께서 건강하신 몸으로 민족을 이끌어야 주석님의 뜻도 실행할수 있습니다.

수령님: 고맙소. 내 윤이상선생의 그 소원을 우리 조직비서에게 꼭 이야기해주겠습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 수령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윤이상작곡가가 《아리랑》을 들으며 감격해하였다는 점에도 공감하게 되였지만 수령님과 자신의 건강을 바라며 민족의 운명을 부탁하는 그의 진정어린 념려도 고마우시였다. 허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보다 수령님의 뜻과 사상을 오늘도 여전히 전체 조선민족이 들고나가야 할 기치로 간주하고있는 그의 진심에 감명되시였다.

《아리랑》!

우리 민족고유의 품성과 정서를 그대로 담고있는 이 노래. 우리 수령님이 아니시였더라면 조선민족은 이 귀중한 민족정신을 찾을수 없었을것이다. 수령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은 지금도 《아리랑》을 슬픔의 노래로 여겼을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선민족은 오늘 이 노래가 울리면 누구나 울며웃으며 따라부르고 그리도 감격스러워하지 않는가.

펜을 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작품대본을 끄당기시였다. 뚝을 넘으려고 움씰대는 흥분을 눅잦히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태양의 노래》 대본뚜껑에 힘있는 필치로 써내려가시였다.

-작품대본을 보았습니다. 나는 림진우총연출가동무가 10만명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희세의 걸작으로 만들어낸 그 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새로 하게 될 대예술작품창작과제를 빠른 시일내에 수행한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먼저 나는 진우동무에게 저번에 작품창작방향을 놓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대본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려고 합니다.

새 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 지나온 년대들을 돌이켜보면 감회가 새롭지만 조선혁명의 분수령이였던 1990년대를 일목하여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동유럽사회주의의 붕괴, 어버이수령님의 서거로 입은 민족의 대국상, 제국주의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이 벌린 전대미문의 반공화국침략책동과 경제봉쇄, 피눈물나는 고난의 행군. 참으로 지난 수여년간 우리혁명이 걸어야 했던 길은 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초행길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대와 인민은 당의 선군정치를 받들고 강의한 의지를 발휘하여 민족의 자주적존엄을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여 강성국가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며 장기간에 걸치는 조미핵대결에서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쥠으로써 평화적인 환경에서 경제강국건설을 다그칠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았고 6. 15북남공동선언을 채택하여 새 세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의 환경을 마련하였습니다.

하다면 백두에서 시작된 우리 조선혁명이 력사에 류례없는 난관과 시련, 온갖 도전을 짓부시며 어제도 그러했던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백승을 이룩한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조선로동당창건 55돐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에 동지애에 기초한 일심단결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이 작품을 우리 혁명의 총화작, 20세기 문예부흥의 총화작, 희세의 명작이라고 평가하고있는것은 이때문입니다.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는 문제, 그래서 당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에 내놓을 대예술작품의 골자로 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동무에게 과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대본은 만족스럽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제명부터 직선적인데다가 내용은 칭송일면에만 치우쳐있으며 그로 하여 예술작품으로서의 폭과 깊이가 응당한 수준에서 보장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작품을 명실공히 세상사람들의 심장을 울릴수 있는 홀륭한 대예술작품으로 만들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합니다. 민족정서의 공통음을 찾고 그의 어제와 오늘의 력사를 진실하게 형상하면 될것입니다. 대본창작을 이런 방향으로 돌리면 조국과 인민, 나라와 민족앞에 쌓으신 우리 수령님의 업적은 자연히 충분하게 반영될것이며 이것은 곧 새 세기 전체 조선민족이 나아갈 길을 환히 명시해주는것으로 될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 하게 될 대예술작품을 지난날 약소민족인탓으로 늘리우고 짓밟혀 눈물의 《아리랑》만 부르던 조선민족이 오늘 어떻게 되여 긍지에 넘쳐 《강성부흥아리랑》을 부르는 강대한 민족으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수 있었는가, 이렇게 주제방향부터 달리 설정하며 《태양의 노래》라는 원래 제명도 주제에 맞게 《아리랑》이라고 바꾸어달면 어떻겠는가를 동무에게 제의하고싶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드디여 뚝을 무너뜨리며 소용돌이치는 선률, 선률. 처량히도 울리던 선률이였다. 애소와 슬픔에 젖어 비통하게 흐느끼기만 하던 선률이였다. 허나 그것은 지금 의지에 넘쳐, 환희에 넘쳐 울리고있다. 눈덮인 전선길의 어느 령마루를 그려낸다. 달만이 떠있는 깊은 새벽의 고개길도 보여주었다. 차체를 세차게 두드리는 폭우며 바람소리를 들려주는가 하면 전진을 방해하는 진창을 물어제끼며 맹렬하게 돌아가는 야전차의 바퀴소리도 울려내준다. 그런가 하면 그이를 반겨 만세를 부르며 두손 들어 환호하는 인민군장병들과 로동자, 협동농민, 지식인들의 눈물젖은 군상들이 보이기도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펜을 놓으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수주일동안 고심하던 문제를 비로소 매듭짓고나니 심신이 거뿐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흥분을 애써 자제하시며 속으로 노래를 부르시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설달에도 꽃만 핀다

 

아직은 여기서 울린다. 오늘은 여기서만 울리고있다. 하지만 가까운 앞날에 이 노래는 삼천리조국강토에 퍼져갈것이며 전세계에 퍼져갈것이다. 그이께서는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흰눈이 내리고있었다. 20세기 마지막해 2000년이 저물어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