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제 3 장

4

 

9월제련소에서는 티탄합금가공설비를 갖추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필요한 부분품들을 자체로 만들기도 하고 다른 기업소에 그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국가계획에 없었던 일이여서 여러가지로 난관이 많았다. 황석태는 생산에 지출되여야 할 자재와 자금을 적지 않게 가공설비제작에 돌리는 용단을 내리였다. 행정실무일군들이 그것을 주저할 때마다 그는 확신에 넘친 어조로 단호히 말했다.

《책임은 내가 지겠소!》

그는 다소 제정된 법규나 규정을 어기더라도 티탄합금가공설비를 하루빨리 갖추는것이 종국적으로는 국가에 리로운것이며 당의 의도를 받드는 길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그가 박치영을 데리고 돌아보았던 자재창고주변에는 공사에 떨쳐나선 사람들로 한벌 덮이였다. 자그마한 뙤창 몇개가 있던 창고건물은 품을 들여서 개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황석태는 많은 시간을 공사장에 나와있었다. 남들이 기술을 뽐내며 팔아주지도 않는 설비를 우리자체로 만든다는 긍지가 가슴에 넘치였다. 비록 남의것을 모방했고 그 성능이 뒤떨어진다고 하여도 우리의 공업기술수준을 고려할 때 그것은 더없이 대견스러운 일이였다. 그는 설비가 갖추어질 건물과 주변을 어느 직장보다 번듯하게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공사와 지대정리작업에는 건설직장은 물론 제련소안의 지원로력도 동원되였다.

박치영은 행복과 영예의 절정에 오른듯싶었다. 제련소전투속보에는 큼직한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소개기사가 옹근 한면에 실리였다. 정문에 들어서면서 첫눈에 뜨이는 영예게시판의 복판에도 그의 사진이 나붙었다. 신문과 방송은 여러차례에 걸쳐 그의 탐구과정을 전하였다. 제련소의 그 어데서나 그의 재능과 경력이 화제에 올랐다. 그 과정에 많은 사실들이 과장되고 윤색되였다. 어려서도 공부밖에 몰랐고 자라서는 그 어느 처녀한테도 헛눈 한번 팔지 않고 과학탐구를 위해 전심을 다한다는것··· 박치영에 대한 소개는 이런 이야기들로 현란하게 채색되였다. 박치영은 처녀들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였다. 별다른 감정을 품고있지 않는 처녀들도 박치영의 곁을 지나고는 선망의 눈길로 되돌아보았다.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지만 정문옆의 영예게시판과 기업소전투속보에 실린 사진을 통해 박치영의 얼굴을 알아보았던것이다.

《연구성과를 축하합니다.》

《최후의 성공을 바랍니다.》

앞을 막아서며 이렇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대담한 처녀들도 있었다.

박치영에게는 하루하루가 꿈같이 흘렀다. 형언 못할 행복감으로 가슴은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이러한 오늘을 위해 연구소를 뛰쳐나와 독자적으로 연구사업을 한것은 얼마나 잘한 일이였는가! 양영복박사의 휘하에 그냥 있었다면 그의 완고한 고집에 눌리워 뜻을 이루지 못했을것이다. 로세대 과학자로서 양영복박사의 연구사업은 티탄합금생산기술의 개발로 절정을 이루고 이미 끝나버렸다. 그에게서 더 무엇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티탄합금생산기술이 양영복박사의 몫이라면 그 가공기술은 나의 몫으로 되였다. 선배의 지식이 끝나고 후배의 지식이 새롭게 시작되는데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양영복박사는 그것을 리해하지 못하고있다. 인간의 생애에 한계가 있는것처럼 과학자의 학술적권위에도 한계가 있다. 지나간 몇해동안에 나는 피타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그가 도달한 지식의 높이에 이르렀다. 그다음부터는 나의 연구사업이 그 지점에서 새롭게 진행되여야 한다는것을 진작 각오하고있었다. 그 뜻을 실현할수 있는 계기는 오고야말았다. 만일 외국에서 가공설비를 사왔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코콤》의 방해가 오히려 나를 분발시키였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연구사업을 할수 있는 계기를 지어주었다. 이를테면 화가 복으로 되였다고 할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악랄하게 과학기술봉쇄를 하여오지만 우리는 자체로 필요한것을 개발하고있다. 놈들의 봉쇄를 뚫고나아가는 우리 과학자들의 전렬에 나는 서있다. 자부심과 긍지가 가슴에 넘치였다. 이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이곳에 다시 오신다면 그처럼 마음쓰시던 티탄합금가공설비를 만들어낸 성공의 보고를 올리게 될것이다. 그 영광의 시각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어쩌면 그이께서 나를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연구과정을 물어보실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여도 심장이 높뛰였다.

양영복박사는 두어달후부터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압착가공방법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초소성가공법을 연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학자로서의 자기 생애가 끝나버린 로학자의 공상에 불과하다. 오늘의 티탄합금가공에서 첨단기술로 알려진 압착가공법을 압도하는 새로운 방법을 지향하는 그자체는 대담한 시도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이 과학 역시 현실에 토대한 자기 발전의 로정이 있는것이다. 우리의 공업수준은 아직 앞선 나라들이 하여놓은 압착가공기술도 도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물며 그것을 초월한 기술개발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분야에서 우리보다 멀리 앞선 다른 나라들에서 진작 개척하였을것이다. 새롭게 분발하여 계속한다고 하지만 양영복박사는 티탄합금가공기술개발에서 이미 나의 경쟁자가 아니다. 조만간에 나는 우리 나라에서 티탄합금가공기술의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였다고 자부할수도 있다.

이제 우리의 전자공업과 자동화공업이 필요한 부분품들을 생산하게 된다면 지금 제작하고있는 설비를 점차 갱신하여 다른 나라의것보다 못하지 않는것으로 발전시킬것이다. 여러가지로 황홀한 미래가 나를 손저어 부르고있다. 당원의 영예, 명예칭호, 남부럽지 않은 가정생활··· 그 모든것이 눈앞에 다가오고있다. 과학사업은 류달리 어려운 분야이다. 하지만 재능있는 사람들에게는 남달리 자기 인생을 크게 성공시킬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학시절에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 리치를 터득했다. 그리하여 꿈많던 그 시절에 인생의 장래를 과학과 결합시키였다. 오늘에 이르고보면 일찌기 자기 생활의 좌표를 얼마나 정확히 그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연구의 첫 성과에 도취된 청춘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자기의 존재가 나래를 활짝 펼치고 아득히 높은 곳으로 떠올라서 꿈속의 화원을 날아가는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