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제 2 장

4

 

《여보, 산보시간이 되였어요!》

박씨는 서재에 들어서며 명령조로 깨우쳤다. 그전이라면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비록 마누라라 하더라도 양영복은 자기의 사색을 깨뜨리는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창 탐구에 골몰하는 때에는 누구도 서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몇달전부터는 한생을 엄격히 지켜오던 가정의 그 법도가 달라졌다.

언젠가 황석태가 제련소병원의 녀의사를 데리고 집을 찾아왔다. 그는 녀의사더러 양선생이 무리하지 않도록 몸조리에 맞게 가장 합리적인 일과를 짜주라고 하였다. 양영복은 일본에서 도진 심장병이 아직 회복되지 못한데다가 나날이 걷기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보약을 달여먹으며 연구사업을 하게 하였다. 그냥 두면 출퇴근에 소모하던 시간까지 연구사업에만 전념할것이 뻔했다. 건강을 념려하여 집에서 일을 하도록 한노릇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었다. 황석태는 그것이 걱정되여 찾아왔던것이다.

《양선생, 앞으로는 이 의사선생이 짜주는 일과대로 꼭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그 당부에 양영복은 싱긋이 웃을뿐이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황석태는 곁에 앉은 박씨에게 부탁했다.

《부인님이 제정된 일과를 엄격히 지키도록 양선생을 단속해야 하겠습니다.》

《아이구, 그 령감이 내 말을 들을게 뭡니까?》

박씨는 눈가에 주름이 깊이 패이도록 눈웃음을 지으며 령감에게 눈을 흘기였다.

《양선생이 집에서 그렇게 부인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까?》

《그 령감 고집이야 세상이 다 알지 않수.》

《이거 안되겠구만. 그렇다고 내가 늘 이 집에 와서 양선생의 일과를 집행해줄수도 없고···》

그 무슨 중요한 문제의 해결방도라도 모색하듯이 심중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황석태가 박씨에게 자못 엄숙히 말했다.

《당원 박혜정동지에게 당원 양영복동지의 일과를 책임지고 집행할데 대한 당적과업을 주겠습니다. 이 과업을 박혜정동지에게 주는 고정분공으로 결정하도록 가두당세포에도 의견을 주겠습니다.》

황석태의 표정과 어조가 하도 엄엄하여서 박씨는 느닷없이 마음이 긴장되였다. 얼른 령감의 눈치를 살피였다. 느슨한 웃음이 떠돌던 령감의 얼굴에도 숙연한 기색이 떠올랐다. 자기의 건강을 그토록 념려하는 당비서의 마음에 감심한 모양이다.

집을 떠나면서 황석태는 박씨에게 재삼 강조했다.

《과업집행정형을 당세포에는 물론 한달에 한번씩 나에게 직접 보고하십시오. 무슨 애로가 제기되면 아무때고 나를 찾아오십시오.》

가두당세포에서는 초급당비서의 의견대로 해당한 결정이 채택되였다.

그후부터 양영복의 집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부부간의 처지가 뒤바뀌였다. 무슨 일에서나 남편의 말에 공손히 순종해오던 안해가 자기의 의사에 남편이 복종할것을 당당히 요구해나섰다. 물론 그것은 일과집행에 국한되여있었다. 처음 며칠은 박씨가 애를 먹었다. 생활의 타성이란 검질긴것이다. 남편은 약을 먹는 시간이나 휴식시간, 산보시간을 여전히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서재에서 나가오!》

신경질을 부리며 소리쳤다.

박씨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당조직관념이 없는 당신을 초급당에 보고하겠어요!》

마음을 도사리고 큰소리로 맞받았다. 약을 달여놓고도 속을 태우며 몇시간씩 기다리던 어제날의 그가 아니였다.

양영복은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낯선 사람을 보듯이 놀라운 눈길로 안해를 바라보았다.

《당신 언제부터 사람이 그렇게 달라졌소?》

《그걸 몰라서 물어요? 어서 일어서세요!》

《허참.》

양영복은 속빈 웃음을 터뜨리며 하는수없이 일어섰다.

박씨는 자기의 요구에 순응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일종의 흐뭇한 긍지감을 느끼였다. 동네에서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자기의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박사집할머니》로 통했다. 영림바닥에서도 아무개박사의 부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지만 자기의 이름을 댄다면 아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오직 남편의 후광속에서만 자기의 존재가 있었다. 그러한 처지에 오래동안 습관되다보니 언제 한번 남편앞에서 자기를 주장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인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가정에서 비로소 동등한 위치를 차지한듯싶었다. 그러한 변화는 부부간의 사이를 버성기게 하는것이 아니라 더욱 살틀하게 하였다. 령감이 적당히 휴식도 하고 제때에 잠자리에 들다보니 자연히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기회가 많아졌다. 더구나 즐거운것은 산보시간이였다. 령감을 부축하고 어깨나란히 걸으면서 흘러간 시절의 추억도 나누었고 남들이 보지 않는 호젓한 숲속에 이르러서는 조용조용히 목소리를 합쳐가며 옛시절의 노래도 함께 불렀다. 박씨는 인생말년에 이렇게도 행복하고 즐거운 기분에 잠겨보는것이 꿈만 같았다. 청춘시절에도 그들부부간에는 있어보지 못한 일이였다. 남편은 한생을 시간을 짓쪼개며 살아왔다. 과학자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만일 박씨가 같은 과학자였다면 과학문제를 두고 밤을 새우며 론담을 벌렸을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씨는 과학을 몰랐다. 그들부부간에는 할말이 별로 없었다. 박씨쪽으로 보면 가정의 사말사를 두고라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남편은 젊어서부터 가정일을 전적으로 안해에게 맡겨버렸다.

박씨는 애타는 침묵속에 흘러간 과거를 벌충할 때가 마침내 왔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생기였고 인제는 화제도 생기였다. 여전히 과학문제나 사회정치문제 같은것은 화제에 올릴수 없지만 지난 시절의 추억담은 함께 나눌수 있었다. 과학밖에는 다른 잡생각을 모르던 령감도 나이탓인지 옛시절을 즐겨 돌이켜보았다.

저녁산보는 7시부터 8시까지였다.

박씨는 오늘도 그 시간을 기다리며 더디게 돌아가는 벽시계를 몇번이고 쳐다보다가 서재에 들어선것이다.

《여보, 들었어요? 산보시간이 다되였어요!》

박씨는 들은체도 않고 그 무엇을 쓰고있는 령감의 어깨를 흔들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였나?》

양영복은 자기 생각에서 미처 풀려나지 못한 흐릿한 눈으로 로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빨리 일어서시라요.》

박씨는 정색한 낯빛으로 령감의 팔굽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옷걸이에서 다림발이 생생한 연회색샤쯔와 흰 바지를 가져왔다.

《어서 이걸 갈아입어요.》

《뭐 직장에 가는것도 아니고 산보를 가는 걸음인데 입은대로 나가지.》

양영복은 자기의 차림을 돌아보며 귀찮게 응대했다. 방안에서 입고있던 바지와 남방샤쯔는 오래된것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밖에 나서도 괜치 않을것 같았다.

《어서 갈아입수다. 우리가 산보길에 나서면 숱한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나요.》

양영복은 로친의 성화에 하는수없이 새옷을 갈아입었다. 박씨는 그의 옷깃을 펴주며 시뭇이 웃었다.

《그렇게 차리니 얼마나 좋수, 한결 젊어보이구···》

양영복은 새삼스레 로친의 차림을 살폈다. 하르르한 나이론천으로 지은 흰색치마와 미색적삼을 떨쳐입었다. 그에게 그런 옷이 있었던가싶게 전에는 입어본 일이 없는 나들이옷이였다.

품위있는 여름철옷으로 차림을 한 그들은 집을 나섰다. 양영복은 한손에 단장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박씨의 손을 잡았다. 그의 부축이 없이는 쉬이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다.

한창 퇴근길이여서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치료를 위해 걷는 산보길이지만 남들의 눈에는 여생을 즐기는 다정하고 행복한 로인내외로 비끼였다. 오가는 사람마다 그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쯤 돼야 늘그막에도 사는 재미가 좋을텐데···》

홀로 걷던 로인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사람들의 왕래가 번화한 거리를 벗어났다. 그들은 물매가 완만한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 산기슭의 숲속에 이르렀다. 내외는 늘 다리쉼을 하던 로송밑에 앉았다. 서느러운 그늘밑으로 저녁바람이 솔솔 불어왔지만 박씨는 큼직한 부들부채로 령감에게 부채질을 하여주었다. 힘겹게 걸어온 양영복은 흠뻑 땀을 흘리고있었다. 어지간히 땀을 들인 그는 로친의 지극한 마음에 가슴이 훈훈해오는것을 느끼며 한마디 롱담을 건늬였다.

《임자 최근에 나를 통제하는걸 보니 남을 다스리는 솜씨가 여간 아니야.》

《새삼스럽군요. 이래뵈두 내가 처녀시절에 제사공장 녀공들을 휘동해서 파업투쟁까지 벌렸댔다는걸 잊었어요? 여태껏 제 죽었수다 하구있었으니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야 령감 하나쯤 통제 못하겠어요?》

박씨는 눈을 할기며 어깨를 으쓱해보이였다.

《참 그랬었지. 훌륭한 녀성정치가로 될수 있는 재목인데 나한테 와서 신세를 망쳤지.》

《신세를 망친게 아니라 신세를 고쳤지요. 당신같은 사람을 만났길래 무식한 내가 한뉘를 남편덕을 보며 살았지요.》

박씨는 불시로 눈빛이 그윽해졌다. 매미울음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왔다. 호젓한 숲속의 신선한 공기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송진내로 코안을 자극했다.

로인내외는 석양의 볕발을 바라보며 아득히 흘러간 청춘시절을 머리속에 그리였다.

처녀시절에 박혜정은 함흥제사공장에서 일했다. 비료공장에서 일하던 부모들이 가스폭발로 돌아가자 손우의 오빠와 함께 단 둘이 살았다. 오빠가 페병으로 몸져누운 그해 여름이였다. 사각모를 쓴 대학생이 집을 찾아왔다. 그가 양영복이였다. 가난이 쩌들어붙은 자기 집에 불쑥 나타난 대학생을 보고 혜정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알고보니 대학생은 오빠의 중학시절 학우였다.

양영복은 병이 깊어진 학우를 위해 의사를 불러오고 약을 사왔다. 페병에 감염될수 있다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혜정이 밤일을 나가는 때이면 그를 대신하여 밤새워 오빠의 병시중을 들었다.

혜정은 그가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자기의 오빠에게 그처럼 인정깊은 벗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녀동생과 학우는 정성을 다했으나 이미 기울었던 환자의 병세는 걷잡을수 없었다. 오빠는 양영복이 나타난지 스무날만에 죽었다. 혜정은 오빠의 조촐한 장례를 양영복과 함께 치르었다. 양영복은 방학이 끝나자 일본으로 다시 류학의 길을 떠났다. 혜정은 함흥역두에서 그를 눈물속에 배웅했다. 오빠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그마저 떠나고보니 사무쳐오는 외로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렬차의 승강대에 오른 양영복은 차실로 얼른 사라지지 못하고 측은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더니만 트렁크에서 책 한권을 꺼내주었다. 프랑스의 처녀영웅 쟌 다르크에 대한 책이였다. 부모들의 생존시에 소학교를 다닌 혜정은 그 책을 읽을수 있었다. 고된 일에 시달리면서도 며칠사이에 다 읽었다. 그 책을 주고간 양영복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벗의 녀동생이 쟌 다르크처럼 굳세고 용감한 처녀영웅이 되기를 원하였을것이다. 혜정은 그 심정을 생각할수록 양영복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물론 후날에 그를 사랑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무렵에 제사공장에서는 왜놈직공장이 한 녀공을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를 계기로 녀공들은 파업에 떨쳐나섰다. 혜정은 그 앞장에 섰다가 2년형을 받고 수감되였다. 겨울방학으로 다시 집에 왔던 양영복이 감옥으로 면회를 왔다. 그때 반갑던 심정은 죽어서도 잊을수가 없었다. 두 청춘의 세찬 눈빛이 철창을 사이에 두고 부딪쳤다. 양영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싸웠다는 얘길 들었소.》

《이렇게 찾아와주어서 고마워요, 오빠!》

혜정의 눈에는 마주서있는 양영복이 죽은 오빠의 모습으로 뒤바뀌여보이였다. 철창을 부여잡은 혜정의 손을 양영복의 손이 감싸쥐였다. 혜정의 입에서 느닷없이 울린 《오빠》라는 부름에 그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혈육의 감정을 느꼈을것이다.

혜정은 이듬해 가을에 형기를 마치였다. 드디여 자유로운 몸이 되였으나 살길이 막막했다. 제사공장에서는 다시 일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을것이 뻔했다. 절망에 휩싸여 며칠을 보낸 어느날에 양영복의 소식을 들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양영복은 흥남제련소에 기술자로 입직했다고 하였다.

혜정은 그를 찾아갔다. 구원을 바라서가 아니라 친오빠처럼 보고싶었기때문이였다. 제련소의 기사들이 사는 합숙호실은 놀랄만큼 깨끗하고 화려했다. 방안에 들어선 혜정은 어리둥절했다. 양영복은 고학을 하던 어제날의 대학생이 아니라 조선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당당한 기술자였다. 달라진 그의 처지가 다소 서먹한 감정을 불러냈다. 하지만 양영복은 예나 다름없이 친절히 맞이했다.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양영복이 물었다.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소?》

《글쎄 어쨌으면 좋을런지···》

절망적인 처지를 되돌아보며 혜정은 한숨과 함께 말끝을 삼켰다.

《그쪽에서 반대없다면 혜정씨가 늘 내곁에 있어주었으면 하오.》

혜정은 의혹어린 시선을 들었다.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서로 마주보는 시선이 얽힌채 한동안 풀릴줄 몰랐다.

《우리가 결혼을 하면 안되겠느냐 말이요.》

양영복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그를 바라보던 혜정은 전신의 피가 흐름을 멈추는듯 했다. 사무쳐오는 그리움에 양영복을 무시로 그려보면서도 자기들사이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 청춘이 결합되기에는 여러모로 격차가 심하였다. 그것을 날카롭게 의식하며 혜정은 당황했다.

《안돼요, 그럴수 없어요!》

얼결에 부르짖으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불로 지지듯이 눈굽이 화끈했다. 그러한 느낌에 눈물이 뒤따랐다. 양영복에 대한 감사의 정과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는 애달픈 자각이 뒤엉키며 가슴을 들부셨다.

처녀의 격렬한 흥분에 양영복은 당황하였다. 자기의 고백이 눈물을 쏟도록 그를 노엽혔다고 생각했다. 처녀의 흥분과 눈물이 가지는 복잡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미안하오, 내가 그쪽의 마음을 모르고 그런 말을 했나보오. 난 혜정씨를 진심으로··· 그러나 그쪽에서 싫다면··· 용서하오.》

눈물로 흐려진 혜정의 시야에 한껏 죄스러운 낯빛으로 용서를 비는 양영복의 모습이 안겨왔다. 부끄러움과 괴로움에 휩싸인 그의 모습이 가슴을 찢었다. 그러자 자기의 전존재를 다 바쳐 그의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고싶었다. 한껏 거북스런 몸가짐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양영복이 한없이 애모쁘게 여겨졌다. 자기의 생명까지도 서슴없이 바쳐 보호해주어야 할 순진한 어린애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혜정은 분별을 잃었다. 오직 양영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싶은 강렬한 심정만이 전신을 불태웠다. 혜정은 무너지듯 몸을 기울이며 넋없이 중얼거렸다.

《용서는 무슨 용서··· 내 마음을 거기선 몰라요. 거기서는 내가 어떻게···》

양영복은 자기에게로 쏠리는 처녀의 몸을 부여안았다.

《진정하오, 내가 공연히··· 자기 감정을···》

양영복은 처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뜨거운 열기에 취해버렸다. 어느쪽이나 목이 메여서 더는 아무 말도 못했다. 포옹한 두팔에 서로가 으스러지도록 힘을 줄뿐이였다.···

 

박씨는 석양의 하늘가에 몽롱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령감이 나한테 청혼을 할 때 말이예요. 그것이 동정심에서였수?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 있었수?》

《허, 왜 갑자기 그런 싱숭생숭한 소리를 꺼내는거요?》

양영복은 어처구니가 없는듯 퉁명스레 되물었다.

《아무것도 없고 잘생기지도 못한 나한테 당신같은 사람이 마음을 둔게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아서 하는 말이우다.》

양영복은 덤덤히 먼산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전에 없이 다정히 보내주는 마누라의 속삭임소리가 싫지 않았다.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누긋한 정이 가슴에 서리는것을 의식했다. 맞장구를 친다면 세월없이 마누라가 이야기판을 벌릴것 같아서 응대를 하지 않을뿐이다.

《여보, 돌아갈 시간이 되였소.》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요?》

박씨에게는 돌아갈 시간이 너무도 빨리 다가오는듯 했다. 그러나 하는수가 없다. 일과를 엄격히 통제하는 자기쪽에서 산보시간을 늦잡을수는 없었다.

로인내외는 숲속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박씨는 령감을 부축하고 걸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된셈인지 이즈막에는 령감과 많은 말을 나누고싶어지는 마음이 앞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지금 하고있는 연구사업은 어떻게 돼가고있어요?》

《나중엔 하지 않던 버릇까지 생기나보군.》

양영복은 마누라를 돌아보며 허구프게 웃었다.

지나온 과거에는 연구사업을 두고 지금처럼 안해가 물어본적도 없었고 그에게 연구정형을 이야기해준적도 없었다. 과학을 전혀 모르는 안해와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것이다.

《과학의 속내는 모르지만 지금 령감이 하는 연구사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알고있어요. 또 령감이 어떤 결심으로 접어드는지도 알구요. 그저 일이 잘돼가는지, 못되여가는지만이라도 말해주구려.》

《잘 안되여간다면 로친이 무슨 뾰족한 수라도 써줄텐가?》

《왜 그리 빗나간 소리를 하시우. 무식한 내가 수야 무슨 수를 쓰겠어요. 그저 마음속으로 성공하기를 축원할뿐이지. 한뉘를 함께 살면서도 언제한번 당신의 연구사업을 도와드리지 못한게 한이 되여서 내 요사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있다오. 어떻게 하나 당신의 건강을 지성을 다해 돌볼 결심이예요. 당신이 그저 건강만 하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바라시는 연구사업을 꼭 해낼거예요. 당신은 그걸 해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거우다. 내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요.》

양영복은 담담히 뇌이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하도 곡진하여서 무심결에 낯색을 살피였다. 굳은 결심과 간절한 기대가 어린 마누라의 얼굴이 감빛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양영복은 마누라의 그러한 표정을 처음 보는듯싶었다.

《로친네, 고맙소.》

부지중에 터친 그 목소리는 과학사업을 두고 안해에게 보내는 평생의 첫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