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5

제 6 장

5

 

여름이 왔다. 또다시 나라의 주요신문들과 통신, 방송들에서는 성강의 자랑찬 성과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하였다. 성강에서 벌써 석달째 련이어 장군님께서 주신 강철생산목표를 점령하였던것이다. 기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당보에는 세차례나 옹근 한면을 차지하는 성강을 취급한 정론이 발표되였으며 평양의 중요 극장안내원들과 옥류관, 청류관을 비롯한 식당의 안내원들은 성강의 용해공들을 위한 특별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성강의 용해공들을 비롯한 공장의 로력혁신자들이 장군님의 은정깊은 조치로 평양견학을 시작하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박철진은 자기 안해인 서옥영이와 같이 산으로 오르고있었다.

해는 높이 솟았고 산기슭에는 투명한 적막이 서리여있었다. 밤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골안을 지나자 휘우듬한 등판우에 찔레꽃덤불을 비롯한 잡관목들이 암팡지게 둘러앉았는데 석비레땅이 드러난 비탈면에서는 갓 피여난 할미꽃이 고개를 갸웃하고 시진하게 웃고있었다.

《저···》 하고 서옥영이 자기 남편을 향해 손에 든 꽃송이들을 내보였다. 《어떠세요. 이 꽃들이 좋을가요?》

옥영이 어느새 보라빛나팔꽃이며 하얀 국화꽃송이를 꺾어들었던것이다. 철진은 머리를 끄덕이며 어줍게 웃었다.

《좋구만, 아주 좋아. 헌데··· 내 눈엔 어째서 하나도 띄우지 않을가?》

《발밑만 보지 말구 멀찍이 보세요. 그래야 눈에 띄지요.》

《참 그렇구만.》

오늘은 성강이 자랑하는 영웅 허필웅의 생일 59돐이 되는 날이다. 그것을 알려준것은 《강철령감》최진수였다. 그가 어제 느닷없이 허필웅의 말을 꺼냈던것이다.

사실은 2차로 평양견학을 떠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생산전투조직을 하던중이였었다.

《3강철에 간 허필웅동무의 아들녀석말이요.》 하고 령감은 말했다. 《이번에도 평양견학에 빠진것 같은데··· 아직 제구실을 못하는가? 그렇다면 그녀석 아무래도 우리 하나강철에 끌어와야 할것같애. 우리가 주리를 틀면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의젓한 용해공으로 키우잔 말이요. 어떻소, 동무들?···》

누가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령감의 말이 절대적으로 다 옳은것은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꼭 우리한테 와야만 온전한 용해공으로 자란다는 법은 없는것이다.

령감은 용해공들의 그러한 속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데서는 누구도 당하지 못한다고 장담하는 령감인것이다.

《내가 어째 그녀석 얘길 꺼냈나 하믄》 하고 령감이 낯색을 달리하며 말했다. 《래일이 우리 허필웅동무 생일이야. 아마 쉰아홉돐이 될거야. 오늘호 당보에 난 우리 성강에 대한 정론을 보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나겠지. 하마트면 깜박 잊을번 했거던. 흐ㅡ음, 그래서야 안되지. 우리 강철을 위해 한몸바친 영웅을 잊다니··· 절대 그래선 안돼.》

령감은 늘 이렇게 젊은 사람들을 교양하고 이끌어간다. 언제나 수수하게, 진실하고 허심하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일솜씨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키워주는것이다.

하여 철진은 이번의 평양견학에 같이 뽑힌 안해 서옥영이와 같이 허필웅영웅의 묘소를 찾기로 했었다.

별안간 옥영이가 철진의 팔을 당겼다.

《가만, 저기 보세요.》

철진은 손채양을 하고 안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보다 앞서 허필웅의 묘소를 찾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허필웅의 안해와 아들 그리고 녀의사 홍지순, 마지막으로 고영란이도 눈에 띄였다. 생전에 허필웅과 제일 가깝고 인연도 깊었던 사람들인것이다.

그쪽에서도 새로 온 사람들을 보고있었다.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여기 왔는가? 하는 의문이 실린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철진이나 옥영이는 그들을 잘 알고있었지만 허필웅의 가족이나 고영란은 그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있기때문이였다.

녀의사 홍지순이만은 옥영이를 알고있었다. 현장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녀의사여서 자주 눈에 익히기도 했거니와 몸이 가늘고 가무스레한 살결에 류달리 정찬 눈빛을 가진 아릿다운 옥영이를 남달리 기억에 깊이 새겨두었던것이다.

홍지순은 가까이 다가오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반가운 미소를 띄우며 옥영이에게 마주왔다.

《그러니··· 여기 왔군요. 같이 오신분은 남편이세요?》

《예, 그래요.》

홍지순은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머리를 돌리며 나직이 무어라고 속삭이듯 했다. 그러자 고영란이까지 모두 철진이와 옥영이에게 반갑게 눈인사를 하며 서둘러 자리를 내주었다.

박철진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묘소앞에 이르더니 옥영이를 손짓하여 가까이 오게 하고는 둘이서 천천히 허리굽혀 꽃송이를 놓았다.

《부지배인동지.》 하고 철진이 큰소리로 말했다. 《하나강철직장 용해공 박철진이와〈ㅈ철〉공장 성구직장에서 일하는 제 안해 서옥영입니다. 저희들이 드리는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그는 절도있게 묵도를 했다. 옥영이도 따라하였다. 깊이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둘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한생이 얼마나 길었는가 짦았는가 함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 얼마나 오래 살아 남는가에 달려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고있으나 그 누구의 기억속에도 남아있지 않을 때 그는 영영 죽어버리고마는것이다.

그때 그들의 등뒤에서 녀의사 홍지순이 가느다랗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마나! 영란이, 저기 봐. 또 오고있어요, 사람들이···》

《정말?!》

철진이와 옥영이도 머리를 돌렸다. 바로 좀전에 철진이네들이 올라온 비탈길로 여러 낯모를 사람들이 올라오는것이 보였다. 꽃송이를 든 젊은이들과 보위대복장을 한 처녀도 있었다. 그런데 류달리 철진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또 있었다.

《아니, 저게?》

옥영이도 그를 알아보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저 사람이?》

그 순간 옆에서 누군가 가늘고 새된 흐느낌소리를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머리를 돌려보니 고영란이였다. 순간의 충격에 미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것을 옥영이가 날래게 나서며 부둥켜 안았다.

《아니, 왜 이래요?》

사실 그렇게 물을 필요는 없었다. 고영란은 새로 나타난 사람들의 뒤쪽에서 따로 머리를 짓수굿하고 올라오는 장봉구의 모습을 띄여보고 그만 호되게 얻어맞은것처럼 무너져내렸던것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올라왔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장봉구만은 멀찍이 떨어져 짚검불같이 헝클어진 머리를 잔뜩 짓숙이고 벗어진 모자만 비틀고있었다. 그는 맨 나중에 저혼자 따로 인사를 하려는듯 했다. 남들이 술을 붓고 꽃을 놓으며 뭐라고 하는데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철진이와 옥영이는 물론 영란이도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의 거동을 지켜보며 지난날 그에게 들씌워지던 갖가지 험담들을 더듬고있었다.

마침내 차례가 왔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같이 온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기를 기다리는듯 했다. 그러나 고영란이야 어떻게 자리를 피할수 있으랴. 그가, 다름아닌 장봉구가 이제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보아야만 했다. 하여 영란이와 붙어서있던 녀의사 홍지순이도 서옥영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장봉구는 결연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묘소에 이르자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더니 《부지배인동지!》 하고는 두팔을 내뻗치며 앞으로 엎어졌다.

《부지배인동지, 제가 왔습니다. 죄많은 이 장봉구가 왔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준 고마운 부지배인동지까지 속이구··· 못나게 굴던 이놈을 용서해주십시오.》

차츰 그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터져나오는 오열에 젖어들고 숨결에 허덕이다 못해 거칠어졌다. 갈구리처럼 굽어든 손가락으로 묘소앞의 잔디풀을 쥐여뜯는데 손등우에는 퍼릿한 피줄들이 드러났다.

《부지배인동지, 날 용서해주십시오. 나도 이젠 사람구실을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라구 밤낮 몹쓸놈으로만 살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부지배인동지만은 믿어주리라구 생각했습니다. 저더러 늘 개대가리같은 녀석이라구 누구보다 더 지독하게 욕해온 부지배인동지가 아닙니까. 그땐 다 몰랐지만··· 인젠 알겠습니다. 어째서 날 그렇게 미워하구 욕을 했는지··· 그래서 오늘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 죄많은 장봉구가 새 출발을 하겠다는걸 부지배인동지와 약속하려구 말입니다. 부지배인동지, 믿어주십시오, 예?···》

어데서 날아왔는지 말벌 한마리가 그의 귀전에 달라붙으며 붕붕 거렸지만 그는 그것도 알지 못하는듯 했다. 이윽고 정적이 깃들었다. 말벌도 날아갔다. 해는 높이 솟아오르고 어데선가 희미한 들꽃향기가 풍겨왔다.

장봉구는 마침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까처럼 머리를 짓숙이고 산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한순간 그는 머리를 들고 자기 앞에 서있는 고영란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두눈을 슴벅이며, 다음순간엔 눈시울을 흠칫 떨며 쳐다보는것이였다.

《영란이?!···》

《···》

영란은 세차게 입술을 깨물고있는데 그처럼 크고 밝은 두눈은 눈물로 가득차있었다.

《영란이, 용서해주오. 이 못난놈을···》

《···》

여전히 영란이는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이윽고 피가 나도록 옥물고있는 영란이의 입술우에
뜨거운 눈물이 방울지어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인젠》 장봉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렸소. 정말이요. 사실 말이지 전엔 내가 개별적사람들에게 붙어서 제 운명을 해결해볼가 했더랬지. 남들은 강철생산에 운명을 걸고 사생결단을 할 때 제 생각만 하면서 올리뛰고 내리뛰며 너절하게 놀았지만··· 인젠 정신을 차렸소. 량심을 찾았다고 할가.··· 왜 믿어지지 않소? 그래도 영란인··· 그 누구보다 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영란인 그래도 날 끝까지 기다릴줄 알았는데··· 좀 말해보우. 나라구 한생 너절한 놈으로만 살아야 한다는거요?》

대답이 없다. 흐느낌소리뿐, 이름할수 없는 격정으로 하여 영란은 입을 막고있는 손등에 더운 눈물만 뿌리고있었다.

그때 박철진은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져있었지만 가슴을 허비는듯 한 고영란의 흐느낌소리를 온몸의 감각으로 듣고있었다. 그 소리에 견딜수 없어 숨이 차서 허덕이고있었다. 그러나 한마디 말도 할수 없었다. 전날처럼 장봉구의 멱을 틀어잡고 동댕이쳐버릴수도 없었다. 무엇인가 세차게 가슴을 달구는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수 없었다.

마침내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장봉구가 머리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경사진 비탈길로 걸음을 옮겼다. 서옥영이 살그머니 영란이를 그에게로 떠밀어주었다. 그러자 고영란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우로 쳐들며 흐느낌소리같이 부르짖는것이였다.

《아, 엄마!ㅡ 난 어쩌믄 좋아?ㅡ》

가늘고도 비통한 울부짖음이였다. 가슴을 허비는 처절한 그 소리에 먼저 옥영이가 흐느끼고 홍지순이도 뒤따라 눈물을 뿌리는데 철진은 그만 머리를 돌리고말았다. 저릿저릿한 아픔으로 하여 목구멍에서는 금시 고함소리가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산을 내리다가 멎어섰던 다른 남정들도 머리를 돌리였다. 어느덧 그들의 눈가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번뜩이고있었다.

《엄마!》 하고 영란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목이 멘 소리로 또 부르짖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 엄마!···》

이럴 때의 고영란은 마치 어린애와 같았다. 피기까지 가셔진 하얀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고 이발로 짓씹어놓은 엷은 입술은 그냥 애처롭게 떨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