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4

제 6 장

4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한 바다기슭의 배수리공장을 현지지도하고계시였다. 여기에서도 저녁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두가로 이어진 공장구내에서는 한시도 멎음이 없이 철판을 자르거나 떼여붙이는 소리, 메질소리와 공기함마소리가 대기를 쩡쩡 울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타신채로 천천히 공장구내를 돌아보고계시였다. 당중앙위원회 박유창 제1부부장이 그이를 수행하고있었다.

날이 어둡기 시작하자 바다로 이어진 공장구내에서는 시퍼런 용접의 불광이 휘우듬히 뿌려지는 가랑비를 언듯언듯 비쳐주군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갖가지 배들이 떠있는 부두가로 차를 몰아가시였다. 이윽고 선창가에 이르자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갓 도색을 한 배들이 파도에 실려 움씰거리고있는것을 살펴보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크고작은 배들에서 비쳐진 불빛이 갖가지 령롱한 빛으로 처절썩이는 파도우에서 흥떡이고있었다.

박유창 제1부부장이 손을 들어 새로 건조된 배들을 가리키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이 공장에서 자체로 만든 쾌속정들입니다. 거의나 바람같은 속도로 날아갑니다.》

《바람같은 속도라…》

그이께서는 프로펠라의 재질 등에 대하여 물으시고 발전된 나라에서 만든것보다 더 낫다고 만족해하시였다.

《그런데》 하고 박유창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씀드렸다. 《배의 소리가 좀 요란스러운것이 결함입니다. 그래서 지금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소음장치를 만들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기웃하시였다.

《파도우를 날아가는 쾌속정인데 기관소리가 좀 높으면 뭐라오? 쾌속정이 거의나 바람같은 속도로 날아가자면 기관소리가 높을수밖에… 문제는 속도요. 발전된 나라들에서 우리가 만든 쾌속정을 보고 눈이 확 뒤집어지게 더 멋있게 만듭시다!》

그이께서 손짓, 몸짓까지 섞어서 하시는 말씀에 수행원들과 공장의 일군들모두가 소리내여 웃었다.

이어 그이께서는 배무이한 철판의 재질 등을 료해하시였다. 박유창과 공장지배인의 보고를 받으시며 그이께서는 만족해하시였다. 우리의 로동계급이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필요한 모든것을 자체로 훌륭히 만들어내는것이 장하게 여겨지시였다. 특히 성강에서 보내온 강재의 질이 아주 좋았다. 그이께서는 만족하여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성강이 그이의 뜻을 받들어 일을 잘하고있는것이다. 아직 그곳 성강의 강철생산량이 그이께서 바라시는 높은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달마다, 분기마다 련속 줄기차게 생산량을 늘이고있다는것을 그이께서는 잘 아신다. 지금 새 공법으로 만들고있는 《ㅈ철》의 성과에 이어 대형산소분리기까지 완공되면 조만간 성강의 강철생산량은 더더욱 늘어날것이며 나라의 경제국방건설에 크게 기여할것이다.

《지배인동무.》 하고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기신 어조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내 생각엔 배수리를 전문하는 이 공장에서 파철도 적지 않게 나오는데 그걸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 보내주는것이 좋을것 같소. 응?…》

어두워서 공장지배인의 표정은 잘 알리지 않았지만 그가 무등 놀라와한다는것을 알수 있으시였다. 박유창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는것을 못본척 하시며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물론 동무네가 그 파철을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나도 모르는바가 아니요. 그러나 우리의 경제와 국방건설에서는 무엇보다 강철생산을 늘일것을 요구하고있소. 물론 동무가 이걸 모를리 없지. 지금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 강철생산을 추켜세우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있고 전망도 확고한데 이제 동무네 공장도 단단히 신세를 지게 될거요. 그러니 늦지 않게 여기서도 제때에 그들을 도와줍시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공장지배인이 허리를 쭉 펴며 시원스럽게 대답올렸다. 《장군님말씀대로 파철을 다 모아 성강에 보내주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벽 3시가 지나서야 수도에 돌아오시였다.

사연도 많은 이 길,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봄비를 기다리며 또 좋아한다. 그러나 이밤의 가랑비는 줄곧 찬기운을 풍기며 시름겨운 한숨처럼 느리게, 찔끔거리며 내리고있다. 그리하여 그이께서 달려오신 멀고먼 길우의 가로수들은 물론 외진 고장의 산과 숲, 밭갈이가 시작된 논벌이며 인적없는 길 그리고 이곳 불꺼진 수도의 거리들도 온밤 으쓸한 가랑비에 축축히 젖어들고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헤아릴수없이 많은 일감이 그이를 기다리고있었다. 그이의 결론을 기다리는 문제들은 그 언제건 결코 줄지 않으며 세월이 갈수록 늘어만 난다. 온 나라의 모든것이 그이께 보고되고 그이의 뜻에 따라 처리되고 전개되기때문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보고된 자료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여기 숙연한 정적이 흐르는 집무실에서 온 나라의 맥박을 다 짚어보시는 심정이시였다. 그런데… 어느 한 자료에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설비부지배인 허필웅의 영웅적소행에 대한 보고자료… 천천히 읽으신다. 한줄 또 한줄 읽으며 무등 놀라신다. 그리고는 차츰 마음이 저려들고 눈시울이 흠칫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허필웅… 인상깊던 사나이, 단 한번 폭우 쏟아지는 철길에서 만나보셨지만 허우대가 큰 미남자이고 성격도 걸걸하고 호방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시다. 그런데 바로 그 사나이가 대형산소분리기의 산소관에 불이 달려 무서운 폭발이 일어날수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 자기 한몸을 내대여 불구멍을 막고 나라의 귀중한 설비를 지켜내였던것이다.

허필웅 58살…

자료를 끝까지 읽으시고는 또 처음부터 다시 보신다. 아무런 감동적인 수식사도 없이 길지 않게, 단순하고 명백하게, 어찌보면 딱딱하게 씌여진 수수한 보고자료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 글줄마다에서 바위같은 성격을 지닌 한 사나이의 애국으로 불타던 마음을 보고계시였다. 그리고 그의 심정의 거센 박동소리도 귀담아 듣고계시였다.

정적이 깃들었다. 채칵거리던 탁상시계소리도 멎고 시간의 흐름마저 정지되여버린듯 했다. 그이께서는 여전히 숨소리도 저어하며 길지 않은 소행자료만을 줄곧 들여다보고계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송수화기를 들었으나 잠시 망설이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습관적으로 박유창 제1부부장을 찾으려 하시였는데 그도 자신과 같이 방금전에야 수도에 들아왔다는것을 상기하신것이였다.

송수화기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창가로 다가가 아직 어둠이 짙은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있다. 얼마전부터 봉긋봉긋한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 백양나무가지들이 비에 젖어 번들거리고있는것이 내다보이시였다. 줄금거리며 내리는 가랑비, 일기예보에 의하면 우리 나라 전반적지방에서 비가 내릴것이라고 했으니 지금 저 멀리 북관땅도 온밤 차거운 비에 젖어들고있을것이다.

그이께서는 저릿저릿한 아픔에 잠겨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의 시련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까운 사람들을 잃었으랴.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이의 가슴속에는 한량없는 아픔의 상처가 새겨지군 하였는데 오늘 또다시 기대되던 한 사나이의 희생으로 하여 크나큰 아픔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시였다.

이윽고 다시 탁자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당 책임비서를 찾소.》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손에 든채 반쯤 눈을 감고 희생된 허필웅의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비에 젖은 몸으로 철길우를 뛰여다니며 쩡쩡한 목소리로 구령치듯 웨치던 사나이, 그이께서는 그날 그에게 성강의 진짜주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였었다. 하여 그는 자기의 가슴속에 열혈의 자폭정신을 불로 지피고 그 불을 안고살며 싸우다가… 그만…

그때 성강당 책임비서의 흥분어린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성진제강련합기업소당 책임비서 전진욱이 전화받습니다.》

《책임비서, 지금 뭘하고있소? 허필웅동무의 장례는 어떻게 준비하구?》

그이께서는 저쪽에서 올리는 대답을 주의깊게 듣고 또 이렇게 물으시였다.

《내 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일전에 그 동무를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였소. 한때 그 동무가 책임비서와 틀려서 공장을 떴다고 하던 일 말이요.》

《장군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전진욱의 목소리는 커다란 자책으로 하여 갈린듯 했다. 《제가 그때 아량을 가지고 대해주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제가 속이 좁았습니다. 오늘 그를 잃고보니… 지난날 그를 잘 도와주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려 가슴이 더 쓰립니다.》

다음은 거친 숨결소리가 전류를 타고 흘러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그으시였다.

《정말 아까운 사람을 잃었소. 첫눈에 벌써 체통이 큰것처럼 속도 큰 사람이라는게 알리더랬는데… 책임비서와 틀렸던 일도 내앞에서 서슴없이 말하면서 사실 책임비서는 배짱이 맞는 일군인데 괜히 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우둘렁거리면서 애를 먹였다고 말하는게 아니겠소. 책임비서동무, 생각해보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속이 큰 사람이였기에 마음속에 불덩이를 안고산게 아니겠소. 그래서 위급한 순간 자기 한몸도 서슴없이 내댈수 있었던거구.… 내가 제일 기대하는 기업소의 하나인 성강에서 통이 크고 일솜씨가 걸싼 사람을 또 하나 찾았다고 기뻐했는데 이렇게 갈줄이야…》

그이의 아픔에 젖어든 음성에 성강의 전진욱은 가까스로 오열을 참고있는듯 했다. 불시로 새여나온 흐느낌소리를 씹어삼키며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너무 괴로워 마십시오. 장군님께서 그러시면… 장군님께서 괴로워하시면 우린 더… 못 견딥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우리 그 동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것 같소?… 살아있을 때 못해준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쩌겠소. 그가 일한것만큼, 그가 생명을 바쳐 위훈을 새긴것만큼 영예를 안겨줍시다. 내 생각엔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안겨주는게 좋을것 같은데… 어떻소?》

《경애하는 장군님, 고맙습니다.》

《그는 응당 영웅칭호를 받아야 해. 그만한 일을 했거던. 자기 한몸을 불태워 성강의 볼을 더 세차게 타오르게 하지 않았소. 빨리 영웅내신을 하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면 다 되는가? 그밖에 더 해줄것은 없겠는가?…

그이께서는 점도록 송수화기를 꼭꼭 누르고계시였다. 마치도 참을길 없는 마음속 아픔을 그렇게 애써 누르시는듯 했다.

성강의 전진욱은 크나큰 아픔이 찍히고있는 그 소리에 그만 숨이 막혀 모지름을 쓰는듯싶었다. 괴로움에 찢기는 숨소리만 전류를 타고 련속 파문지어오고있었다.

마침내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가족들은 있겠지?》

《예, 처와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몇살이요?》

《지금 스물두살입니다. 김책시수산사업소에서 어로공으로 일하고있습니다.》

《음ㅡ 그러니 다른 기업소이구만. 책임비서동무, 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게 잘 도와주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그럼 부탁하오. 책임비서, 장례식을 잘하시오. 성강의 영웅남아를 그저 눈물로만 떠나보내서야 안되지. 취주악대도 동원하여 그가 자기 한몸을 바쳐 구원한 산소분리기탑앞에서부터 군악을 울리며 영웅의 장례답게 잘 치르어줍시다.》

《예, 장군님!…》

전진욱은 그만 목이 꺽 메인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수화구에서는 벅찬 격정에 사무친 흐느낌소리만이 그가 채 맺지 못한 말을 대신해주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로소 눈길을 들어 탁상시계를 보시였다. 아침 5시 40분… 새날이 밝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