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제 6 장

3

 

성강이 자리잡고있는 쌍포에서 30리쯤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송흥리가 있는데 거기에 유명한 온천이 있다. 라돈온천으로서 신경질환과 마비를 푸는데 특효가 있다고 한다.

고영란은 송흥온천에서 치료받게 되였다. 다시 평양의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 입원시킬수도 있었지만 책임비서가 병원의사들을 만나보고 그렇게 결정했던것이다.

《인제는 우리 성강의 물과 열로써 치료해봅시다.》 하고 전진욱은 의사협의외가 끝나자 말하였다. 《본인도 성강을 뜨려고 하지 않고 의사선생들도 그것이 더 낫겠다고 하는 이상 여기서 치료해봅시다. 원장선생, 그럼 담당은 누구한테 맡길 생각입니까?··· 아, 홍지순선생! 좋습니다. 적임자라고 봅니다.》

그때부터 고영란의 병치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하였는데 그중에는 설비부지배인 허필웅도 있었다. 녀의사 홍지순이 약품과 부식물때문에 공장에 올 때면 무조건 자기한테도 들려 영란의 치료정형에 대하여 말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니, 그렇게 요구했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날 허필웅과 홍지순은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고있었다. 하지만 두사람 다 이제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겠는지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설레이더니 오후엔 바다쪽에서 시꺼먼 비구름이 덮치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허필웅은 서둘렀다. 당앞에 다진 맹세대로 빨리 대형산소분리기공사를 완공해야 하는데 그날까지는 이제 보름남짓한 기일밖에 없기때문이였다.

인제는 대형산소분리기의 심장부라고 하는 압축기와 분리탑, 팽창기들에 대한 조립을 완전히 끝내고 하나의 큰 공장과 맞먹는 건물공사가 마감단계에서 진행되고있었다. 한쪽에서는 시운전이 한창이여서 어데서나 용접의 불꽃이였고 귀청을 찢는 소음이였다.

그리하여 허필웅은 거의나 손짓언어를 섞어가며 홍지순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란인 차도가 있소?》

《예. 치료가 잘되여요. 많이 나아집니다.》

《정말 다행이요. 거기서 수고많겠구만.》

《저야 뭘···》

《우리 집사람이··· 요샌 의사선생이 어째 한번두 집에 오지 않는가구 묻더구만. 거기서도 알겠지만 우리 그 사람··· 성미는 좀 바글바글해두 마음씨는 참 곱소.》

《알고있어요.》 홍지순은 머리를 갸웃하고 소리없이 미소하고있었다. 《정말이지 다 고마운분들이예요. 부인께 제 인살 꼭 전해주세요.》

《이 공사가 끝난 다음, 아니, 영란이가 다 나으면··· 우리 한번 모여앉읍시다.》

《저두요?》

《그렇지 않구.》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그밖에 더 할 말도 없었다. 대신 가까운 곳에서 용접기가 붕붕거렸다. 마침내 홍지순이 눈길을 떨구며 나직이 물었다.

《저··· 부지배인동진··· 건강이 어떻습니까?》

허필웅은 그 녀자의 입놀림으로 그 말을 알아들었다.

《난 일없소. 늘 기분도 좋구. 큰 일을 맡아하니 막 하늘우에 올라있는것만 같소.》

《그래두 너무 무리하진 마셔요.》

《고맙소.》

그들은 산소분리기조작실에 마주서있었다. 뒤쪽에서 1만㎾짜리 전동기가 금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귀청을 째는 아츠러운 소음때문에 더이상 말을 나눌수 없었다. 허필웅은 머리를 젓고 손을 들었다가 맥없이 떨구며 인사의 말을 웨쳤다.

《잘··· 가오. 또 만납시다.》

《안녕히 계셔요, 부지배인동지.》

홍지순은 머리숙여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한순간 무춤하면서 망설이는듯 했는데 그것이 허필웅의 가슴을 쿡 찔렀다. 그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가. 무엇인가 부탁할게 있었을가?···

허필웅은 다시 그 녀자를 소리쳐 부르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홍지순은 머리를 푹 숙이더니 아직 문짝도 달지 못한 문으로 쑥 나가버리는것이였다. 그쪽에서는 조작공들이 1만㎾전동기를 돌리며 국제표준공정도에 그려진 도표에서 노란색(질소), 파란색(산소),빨간색(아르곤)의 수치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것들의 온도락차를 리용하여 -195℃의 액체상태와 산소를 분리해내는것이다.

새되고 아츠러운 전동기의 울부짖음소리는 그냥 계속되였고 무엇때문인지 허필웅은 여전히 한자리에 박혀선채 머리를 기웃거리고있었다.

얼마후 책임비서가 왔을 때 그는 분리탑밑에서 돌격대원들이 한창 건물벽체에 미장작업을 하는것을 지휘하고있었다. 아니, 지휘하는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돌격대원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잔소리를 하고있었다.

《부지배인동무.》 전진욱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수염이야 밀어야지.》

《예ㅡ 이거 말입니까?》

그는 시꺼먼 수염이 자란 턱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유명한 청석골의 림꺽정 못지 않게 구레나룻이 자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허필웅은 책임비서가 결코 수염때문에 자기를 찾아온것이 아니라는것쯤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책임비서동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선 면도를 하고 3시까지 당위원회로 오시오. 그때 중요한 문제를 토론합시다.》

전진욱은 그대로 차에 오르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닐세라 허필웅은 이상한 표정으로 선자리에 그냥 굳어져있는것이였다.

전진욱은 그에게 말해주고싶었다. 며칠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성강의 대형산소분리기 설치정형을 료해하시다가 건설을 맡고있는 부지배인 허필웅에 대해서도 물으시고 은정깊은 말씀을 주셨다는것을 당장 말해주고싶었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이제 확대집행위원회를 열고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한 후 《ㅈ철》에 이어 대형산소분리기까지 완공되는 조건에 맞게 강철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기로 했던것이다.

전진욱이 돌아보며 소리없이 웃음짓는것을 보고 허필웅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책임비서동무, 당위원회엔 왜 오라는건지 저레 속시원히 말해주면 안됩니까?》

《뭘 바빠서 그럽니까? 부지배인동물 찾을 때에야 좋은 일이 있어 그런다는걸 짐작하겠는데.》

《?···》

허필웅은 전진욱이 차에 올라 멀리 사라져갈 때까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그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그래, 그래. 좋은 일들이 많지. 그건 사실이야.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역시 그럴거야. 그렇지만 책임비서가 우정 찾아와 알릴 정도의 좋은 일이란 무엇일가? 혹시 나를 부르는 큰 일감이 또 생긴것은 아닐가?··· 일판을 련속 벌리는 지배인, 책임비서이고보면 그럴수도 있다. 이전《 ㅈ철》공장의 시꺼멓고 덩지큰 건물들을 까부시고 새 건물을 세우던것처럼 당장 낡은 전극직장을 들어내자는건 아닐가? 언젠가 지배인도 그런 말을 한적이 있지 않는가.

돌격대장방에서 면도기를 빌려 더부룩해진 수염을 정성들여 밀었다. 세면을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거울속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을 점도록 들여다보았다. 볕에 타고 주름도 늘었지만 웬일인지 더 혈기왕성해진것만 같다. 그는 소리없이 웃었다. 어쨌든 허필웅, 임자는 돌격대장이 제격이야. 무슨 부지배인이요 하는것보다는 그게 더잘 어울려.

돌격대장 황상보가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왜 혼자 웃습니까, 부지배인동지?》

《한때 나도 멋쟁이였었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도 멋있습니다.》

《그래?》 하고 허필웅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다시금 나직이 웃었다. 《내가 멋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흠ㅡ 그런데 이보라구 돌격대장, 오늘 우리 시대엔 일을 꽝꽝 제끼는 사람이 진짜멋쟁이란 말이야.》

《아, 부지배인동지야 일을 제끼는데서도 으뜸이 아닙니까. 그러니 진짜멋쟁이지요.》

《여 여, 너무 개여올리지 말라구.》

무르녹은 봄날이였다. 지대정리를 하면서 새로 파제낀 대형산소분리기주변의 땅에서는 김이 오르고 바다가로 뻗어간 구내철길우에서는 아지랑이가 아물거리고있었다. 모든것이 따스한 볕에 녹으며 조용히 숨쉬고있었다. 멀리 1강철직장의 지붕우 파아란 상공에서는 담황색의 연기가 아까부터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구름처럼 고요히 떠있었다.

그는 하늘높이 솟구쳐오른 대형산소분리기의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며 그것이야말로 진짜멋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피땀이 스며있는 창조물이여서 보고 또 보아도 싫지 않았다. 그는 우정 분리탑주위를 천천히 돌아가고있었다. 서둘 필요가 없었다. 책임비서는 3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아직 30분나마 시간이 있는것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숨을 딱 죽였다. 무엇인가 그의 가슴을 찌르고 온몸을 뒤흔들어놓는것이 있었다. 무서운 일이 벌어진것이였다. 누군가의 째지는듯 한 웨침과 분리탑의 한 창구멍으로 터져나오는 불길, 다음순간 그는 언틀먼틀한 땅바닥에 발을 걸채이면서 앞으로 달려갔다. 언제 어떻게 계단을 뛰여오르고 아름드리 관들을 에돌았는지 알지 못했다. 귀전에는 당황하여 부르짖는 말마디들이 돌멩이처럼 날아왔다.

무어라고 악악 고아대는 사람들, 점차 분리탑건물전체에 흩날리는 화염과 기름이 타는 진득진득한 연기, 허필웅은 술에 취한것처럼 비틀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없이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 계단에서 굴러내리며 기침을 터치는 한사람을 손더듬으로 붙들었다.

《동문 왜 여기 있어. 어느 직장이야?》

《함흥화학설계··· 사람입니다. 갑자기 불이 나서···》

《무슨 불이야. 어째 불이 났어?》

《저ㅡ기 산소관이··· 터졌는데 용접불꽃이 튀면서···》

《뭐 산소관? 용접불꽃?···》

목이 칵 메이고 더이상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였으나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산소관이 터졌다는 곳으로 달려올라갔다. 그가 붙들었던 사람이 《부지배인동지, 어쩌자구?···》 하면서 그를 뒤따르고있었다. 그리하여 허필웅은 창황중에도 그 함흥사람이 숨찬 소리로 건네는 몇마디 말을 통하여 분리탑에 기름을 주입하던중 뜻하지 않게 어느 한 산소관이 터졌다는것,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에서 용접불꽃이 떨어지며 거기에 불이 달렸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 불길은 이제 한순간 거대한 폭발로 이어질수 있다. 분리탑의 산소관들이 폭발하고 거기에 이어져있는 저아래 6개의 축랭기들마다에 꽉 들어찬 유리솜, 광재솜들에까지 불이 달려 련속폭발이 일어나면 대형산소분리기는 하늘로 날아나고만다.

불길이 날름거리는 산소관쪽에서 한 젊은이가 불덩이처럼 뛰쳐나오고있었다. 용감하게 달라붙어 불을 꺼보려 했으나 너무도 세찬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허궁 날려버린것 같다.

그를 보자 가슴에 불뭉치를 틀어박은것처럼 숨이 꺽 막히면서 두다리가 휘청거렸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을 내뿜는 그속으로 뛰여들지 못하리라는것을 깨달았다. 아니, 자기가 지금 죽음을 맞받아가고있다는것을 불현듯 깨닫고 온몸이 저릿저릿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자 무서운 수치감이 피줄을 타고 온몸을 질주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런 나를 보신다면, 순간이나마 머춤하고있는 나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가? 인민군대의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성강의 불을 지피라고, 일단 불을 달았으면 끝까지 돌진하여 목표를 점령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는데 이렇게 주저하고있는 나를 보시면 뭐라고 하시겠는가?··· 성강의 주인으로서 단단히 한몫해야 한다고, 자신께서는 그런 허필웅을 기대한다고 하시던 장군님!···

그는 헉 하고 단김을 내뿜으며 안으로 뛰여들었다. 온몸에 불이 달려 나딩구는 젊은이도 돌봐줄새가 없었다. 함흥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젊은이를 끌어가는데 그런 속에서도 그는 허필웅의 뒤에 대고 소리치는것이였다.

《부지배인동지, 위험합니다.》

아니, 위험한것은 내가 아니라 분리탑이다. 강철생산을 늘이기 위한 결정적수단인 대형산소분리기가 위험에 처했다!···

허필웅은 자기의 마음속에 시꺼먼 연기처럼 들어차는 불안과 절망을 입으로 헉헉 내뿜으며 무턱대고 화염이 터져나오는 곳을 향해 돌진해갔다. 걸음마다 적의 화구로 돌진해가는 한 영웅전사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리였다. 그날의 싸움터에서처럼 불을 뿜어대는 구멍을 향해 결사적으로 맞받아 나가서는 어떻게 하든 불을 껴안으려고, 터진 구멍을 막아보려고 허우적거리였다.

한순간 불에 달군 머리가 핑ㅡ 휘둘러졌다. 그는 입술을 악물며 몸부림쳤다. 참고 견디여야 한다. 순간이라도 의식을 잃으면 끝장이다. 그리하여 그는 저도모르게 머리를 잔뜩 뒤로 젖히고 두팔을 벌리며 황황 불을 내뿜는 터진 구멍을 손으로 더듬고는··· 가까스로 두팔벌려 껴안았다. 그러자 손이 익고 팔이 불붙고 가슴이 타는듯 한 무서운 고통에 온몸이 전률했다.

고통!··· 미칠것만 같은 무서운 고통··· 그는 마지막으로 살이 불에 타는 역한 냄새를 가까스로 의식하며 숨도 쉬지 못한채 번개불처럼 펑끗 하는 하나의 생각을 더듬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오래 살자고 했었다. 더 값있고 보람있게 살자고 애써왔고 그리하여 나날이 늘어가는 기쁨과 행복에 취해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것이 시뻘건 화광속에 녹아버리고있다. 오직 불길만이 길길이 날뛰며 아득히 상공으로 너울거리고있다.

그리하여 그는 불길에 실려 불길처럼 사무치는 기쁨에 겨워 너울너울 춤추듯 하면서 수십, 수백만도의 열도가니속으로, 이글거리는 불속으로 자꾸만 빨려들어갔다.

 

×

 

그 시각따라 전화종소리는 류달리 맹렬하게, 귀따갑게 울렸다. 전진욱은 송수화기를 들자 《책임비서동지!》 하고 웨쳐대는 저쪽의 성급한 목소리에 속이 흠칠하였다.

《동문 누구요. 왜 그렇게 소리지르오?》

《책임비서동지···》그 다음말은 목메인 울먹임소리에 삼켜져버렸다. 《허필웅··· 설비부지배인이 어떻게 됐다구?》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고함치듯 했다. 그러자 모임을 위해 방안에 들어와있던 사람들도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다들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오한이 나는듯 몸을 떨었다.

전진욱은 송수화기를 떨구었다. 별안간 목구멍을 졸리운듯 호흡이 딸려 헐썩거리며 문앞으로 나가다가 피끗 모여온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임은··· 좀 있다 합시다.》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허필웅은 이미 숨져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대형산소분리기를 위험에서 구원한 용감한 사나이가 백포를 쓰고있는데···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전진욱은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의 머리맡에서 이윽토록 눈시울만 흠칫거리고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에게 미리 말해주어야 하는것을··· 가슴은 쓰리다 못해 칼로 저미는듯 했다.

후회란 왜 이리도 쓰라린것인지? 후회란 언제나 때늦은것이여서,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것이여서 더더욱 모질게 가슴을 허비는것은 아닌지?···

《허필웅동무.》 하고 그는 아무 기척도 없이 누워있는 허필웅에게 마음속으로 뜨겁게 속삭이고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갈줄은 모르고··· 그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에 대해 크나큰 사랑과 믿음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걸 미처 전달해주지 못했구만. 이걸 어쩌믄 좋소, 응?··· 좀 더 뜻깊게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기쁨을 누리게 하자고 했는데··· 이럴줄이야··· 내가 왜 아까 그 말을 못했는가 말이요.》

눈굽이 저릿저릿해지고 목이 꺽 메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뜨거운 속삭임으로 그와 마음속 대화를 계속하였다.

《필웅동무, 얼마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성강의 대형산소분리기공사가 어느 정도로 진척되는가를 알아보시던중 동무에 대해서도 보고받으시자 자신께서도 한번 만나본 동무라고, 솔직하고 과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여서 인상에 남았는데 그런 사람이 공사를 책임졌으면 일을 본때있게 내밀것이라고 참으로 은정깊은 말씀을 주셨다고 하오. 그러시면서 이제 성강이 대형산소분리기공사만 끝나면 강철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수 있다고, 그러면 성강의 봉화를 인제는 구호판에서만 아니라 온 나라 인민이 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 될것이라고 하시며 몹시 만족해하시였다고 하오. 그래서 어버이장군님의 그 말씀을 온 공장의 기쁨과 영광으로, 우리 성강로동계급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신임으로 받아안고 강철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 대책을 토론하자고 했었는데··· 그만 이렇게 갑자기 우리결을 떠나갈줄이야··· 정말 어떻게 알았겠소?!···》

허필웅이와는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있는 전진욱이였다. 오해도 있었고 질시와 노염도 있었다. 그러나 허필웅은 속이 큰 사나이였으므로 제때에 자기를 깨닫고 헌헌한 성미 그대로 제때에 바로잡을줄도 알았다. 그러한 허필웅을 좀 더 다정히, 따뜻이 대해주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려 가슴은 마냥 찢기는것만 같았다.

《필웅동무, 내가 잘못했소.》 하고 전진욱은 두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마음속 대화를 계속하였다. 《책임비서인 내가 정말 너무했소. 그저 매번 손탁이 센 일군이다, 내밀성있는 일군이다 하면서 제일 어렵고 힘든 일만 계속 시켰구려. 옆에 바다를 끼고있으면서도 언제 한번 안해와 자식들을 데리고 나가 해수욕도 하고 어죽도 쑤면서 맘편히 휴식할 시간도 주지 못하구···》

허필웅이야말로 속이 크고 일손도 큰 사람이였다. 하기에 그는 자기의 인생도 넓고 깊게, 크게 떠안고 나가군 했었다. 그렇듯 큰 심장을 지닌 사람이였기에 위급한 순간 그 누구보다 먼저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불속에 내던져 나라의 귀중한 설비를 구원해냈던것이다.

사람들의 흐느낌소리가 가늘게 파문지어왔다. 돌격대처녀들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허필웅과 인연이 깊은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떨며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있다.

어느새 소식을 듣고 허필웅의 처와 아들이 달려왔다. 당위원회에서 차를 보내여 데려온것이다.

전진욱은 입술을 깨물고 오열을 터치는 그 녀자를 아픔이 실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키가 작고 몸집은 체소하나 아직도 전날의 미모를 간직하고있는 50대초의 녀자, 그 녀자는 억이 막힌듯 남편의 몸우에 엎어져 눈물을 뿌리며 가느다란 손으로 하얀 백포자락을 정신없이 비틀어짜고있었다.

온 공장이 다 아는 녀자, 기골이 장대한 남편을 쥐락펴락한다고 소문이 났던 녀자이다. 하지만 그 녀자가 자기의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은 그저 눈물이 아니라 찢기는듯 한 아픔이 슴새여나오는 그 녀자의 목메인 울음소리에서··· 마치 혀를 깨무는것 같은 억눌린 울음소리에서 새삼스레 깨닫게 되였다. 떠들썩하게 곡성을 터치거나 머리칼을 쥐여뜯진 않았지만 단번에 목이 쉬여버린 그 녀자의 쓰라린 통곡과 비통한 몸부림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무서운 비애와 아픔이 있었다.

허필웅의 아들, 한때 불량소년들과 같이 밀려다니며 아버지를 망신시키고 사람들의 말밥에 오른 일도 있는 강파롭게 생긴 젊은이는 두손으로 어머니를 붙안고 흐느껴 울고있었다. 비통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눈물이 아니라 피를 토하게 하는듯 했다.

그들의 모습이 또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다. 울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다같이 목놓아 터뜨리자. 인제는 눈물로만 말을 주고받을수 있는 허필웅과 그의 가족들이고 공장사람들이였다.

이윽고 전진욱은 뒤쪽에 서있는 병원의사들에게로 몸을 돌리며 누구에게라없이 조용히 말하였다.

《우리 부지배인동물··· 회관으로 옮깁시다.》

저녁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쉬임없이 끈덕지게 내리는 가는 비줄기들은 대형산소분리기공사장의 분리탑 벽체에 얼룩져있는 화재의 흔적들, 시꺼먼 그을음을 온밤 소리없이 씻고 또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