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그날 새벽 기사장 송근우는 대형산소분리기 건설전투장에 나가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맵짠 칼바람이 몰아치는데 돌격대원들이 새로 조립한 화학설비가 얼지 않도록 불을 피우고 모포로 감싸며 교대로 밤을 새우고있는것이였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북부해안지방에서는 오늘밤 최저기온이 령하 23℃에 이르겠다고 했었다.

송근우는 금시 천막에서 몸을 녹이고 나오는 사람들(교대하러 나오고있었다.)속에서 열심히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누구든 붙들고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싶은 심정이였다.

천막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음교대시간까지 견디여내기 위해서인지 열심히 써레기담배를 빨고있었다. 경쟁적으로 담배불들이 벙끗거리는 속에 돌격대장 황상보의 얼굴이 눈에 띄였다. 송근우는 성급히 그를 불러 닦아세웠다.

《누가 이렇게 하라구 했소. 이 추운 날씨에 그러다 사람들을 다 얼구어죽일려구 그래? 도대체 이게 제정신을 가지구 하는 일인가 말이야. 엉?!》

황상보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듯 콩크리트기둥을 싸안고있는 자기 대원들쪽에 흘낏 눈길을 던지더니 뜨직뜨직 대꾸했다.

《시키긴 누가 시켰겠습니까. 화학설비관들을 얼구면 다시 해체해야겠기에 다를 저렇게 제몸을 내댄겁니다.》 하고나서 그는 화가 나는듯 허연 입김을 포연처럼 내불며 계속했다. 《뭐 별수있습니까. 낮에 저 화학설비를 조립할 때에도 관속의 7수화물이 얼지 않도록 불을 피우지 않았습니까. 아직 벽체를 완성하지 못했으니 한동안 감싸안고 보온을 해야지요. 그러지 않았다간 큰일입니다. 사실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진 맹세대로 강철생산을 늘이자면 빨리 대형산소분리기가 돌아야겠는데 그러자니 이렇게 하는수밖에 딴 도리가 있습니까?···》

《?···》

황상보는 손끝까지 타들어가던 담배꽁다리를 휙 던져버렸다. 새빨간 불찌가 원을 그리며 바람결에 팍ㅡ팍ㅡ 피더니 희끗거리는 눈더미에 떨어져 죽고말았다.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던 황상보가 다시 송근우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의 두눈에서는 로골적인 비난의 빛이 반디불처럼 얼씬거렸다.

《기사장동지, 우리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사장동지가 좋은 안을 내놓으십시오. 사실말이지 우리도 동태가 되고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

송근우는 입술을 깨물며 가늘게 좁혀뜬 눈으로 그를 쏘아보기만 했다. 황상보는 게면쩍은듯 그의 눈길을 피했다.

해뜨기 전이 제일 추운 법이다. 송근우는 으시시하게 몸을 떨었다. 먼 산봉우리에서 칼날같이 매서운 새바람이 바다쪽으로 불어치고있었다.

돌격대원들이 교대를 하기 시작했다.

《수고했네. 철원소대장, 빨리 들어가 몸을 녹이게.》

《어ㅡ처ㅡ 철송이, 2소대장인가? 나 이거 꼬투리까지 꼬ㅡ꽁언것 같애.》

《일없어. 저기 천막에 들어가면 우리 오혜순누이가 알콜을 발라서 잘 비벼줄거야. 그럼 뜨끈뜨끈해져.》

《아, 그ㅡ렇단 말이지? 조ㅡ 좋구만.》

그들이 말하는 오혜순이란 돌격대원들속에서 제일 나이많은 녀성으로서 창고장일을 맡고있다. 송근우는 돌격대원들이 서로 걸죽한 롱말을 주고받으며 교대하는것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런 방도도 없다는것을 곧 깨달았다. 돌격대장녀석에게 괜히 말을 건것 같다. 그는 솜외투의 모자를 뒤집어쓰며 큰길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또 멎어섰다. 교대를 하고 천막으로 들어가던 돌격대원들이 환성을 지르고있었다.

《동무들, 영란동무가 왔소.》

《야! 우리 고영란누이 또 왔구만요.》

《이거 보라, 고구마까지 삶아왔소.》

《아니 영란동무, 이 추운데 왜 또 나오는거요?》

송근우는 그들이 법석대며 맞아주는 녀자를 멀거니 바라보고있었다. 어데선가 본것 같기는 했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련합기업소의 생산과 기술전반을 맡아보는 기사장으로서 한 평범한 녀성로동자까지 머리에 새겨둘 리유는 없다. 그러나 웬일인지 많은 돌격대원들이 반겨맞는 그 녀자가 누구인지 알고싶었다.

마침 돌격대의 창고장이 천막에서 나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좀전에 돌격대원들이 교대를 하며 걸죽한 롱질속에 이름을 올리던 오혜순이라는 녀자였다.

그를 소리쳐 불렀다. 손에 바께쯔를 들고 가던 그 녀자가 몸을 돌려 다가왔다.

《오ㅡ 고영란이 말입니까?》 하고 그 녀자는 놀라와했다. 《아, 2중판직장의 유명한 처녀를 모르십니까?··· 하반신마비때문에 평양적십자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채 낯지도 않았는데 부득부득 우기고 공장에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송근우가 여전히 머리를 기웃거리자 그 녀자는 중대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그의 귀전에 대고 속삭이는것이였다.

《그럼 장봉구라는 연구사는 아십니까?··· 아, 공업기술연구소에 있던 그 고수머리연구사 말입니다. 예, 저 고영란이 그 사람하구 약혼을 하구 결혼식을 차리자구 하는 때에 그 연구사가 배반했다지 않습니까. 일이 안될라니 인차 하반신마비까지 왔구요. 그것두 그 사람탓이 아닐가 하는 말들도 있는데··· 정말 어쩌믄 그럴수 있습니까. 그 연구사란 사람이 글쎄 일 잘하고 인물 잘나고 우리 녀자들도 반하던 아까운 처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까. 그 장봉구란 사람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영란인 치료를 받구왔지만 아직··· 다리를 잘 쓰지 못합니다.》

《장봉구가 그렇게 만들었다?···》

《예, 그러군 저도 배반당했다는겁니다. 어떤 간부댁딸하구 돌아가다가 쫓겨났다던지.》

《너절한 자식.》

송근우는 분개했다. 장봉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땅바닥에 침을 뱉군 하던 송근우였다. 기사장으로서 그가 어떤 수다쟁이며 말장사군인가 하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그런 사람들, 아무런 실력도 없이 수를 쓰며 명예를 따내고 출세의 사다리로 기여오르는자들을 제일 중오하고 멸시해온 송근우였다.

《그 자식이 과학자, 기술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며 돌아가더니 나중엔 약혼녀까지 배반하다니. 사람구실 못할 그런 녀석은 구정물을 들씌워야 해. 더러운 자식!···》

땅바닥에 침을 탁 뱉았다. 오혜순을 보내고 차에 오를 때까지 두번세번 거듭 땅바닥에 침을 뱉았다. 이제 그 자식을 만나면 껍데기를 벗겨내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윽별렀다.

 

그러나 그가 장봉구를 만난것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장봉구 그자신이 직접 기사장을 찾아왔다.

그때 송근우는 기술발전부기사장 라수범이 준비하고있는 학위론문을 돕기 위해 주물직장에 나가있었다. 한때 자기가 반대했던《ㅈ철》과 강괴겁을, 그 성공의 비결을 과학기술적으로 해명하는 일에 늦게마나 나선것이였다.

주물직장안의 휴계실은 조용했다. 인제는 사람들의 귀를 멀게 하던 착암기소리도 여기에 없다. 모래를 뜯어내는 착암기소리(사락작업)때문에 사람마다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지르던 일도 옛말로 되여 지금은 소리치지 않고도 매끈한 강괴겁이 생산되고있다. 속금형주물과 지레대원리를 리용한 탈괴장치가 완성되였기때문이다.

장봉구는 어슬무렵에 나타났다. 새로 지은 봄외투를 입었지만 신발엔 진흙이 게발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염도 깎지 않았다. 언제나 기름을 발라 굽실굽실 빗어넘기던 고수머리도 짚검불같이 헝클어져있었다.

지난날 송근우는 그를 대할 때마다 매번 그 어떤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끼군 했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그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움푹 꺼져들어간 두볼과 눈섭우에까지 뿌연 먼지가 한격지 올라있는것을 살펴보려니 이 녀석이 그새 거들먹거리며 사는줄 알았더니 어데 가서 고생깨나 하는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왜 왔나?》

《기사장동지.》 이렇게 부르짖는 장봉구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눈물에 젖어있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공장을 떠나간 저를··· 욕해주십시오. 저야말로 진짜 너절한, 몹쓸놈이였습니다. 이 놈을 뼈가 우스러지게 막 두들겨 패주십시오.》

《···》

송근우는 별안간 목을 졸라매인듯 숨이 차오르고 목구멍에까지 불길같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금시 마음속에 스며들던 야릇한 동정심은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녀석이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수작질이야. 도대체 누굴 업어넘겨보려는거야?

그는 휴계실 문쪽에 꿇어앉아있는 장봉구를 가늘게 좁혀뜬 눈으로 쏘아보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퍼렇게 얼어들고 싯허연 머리칼이 드리운 관자노리는 때없이 푸들푸들 뛰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장봉구는 넉두리를 계속했다.

《기사장동지, 제발 저를 다시 공장에 받아주십시오. 사실 허필웅부지배인동지가 꼬드기지만 않았어두 제가 왜 공장을 떴겠습니까. 그런데두 설비부지배인동진 공장에 다시 왔지만 전··· 아직두 이 모양 이 꼴루 헤매고있으니··· 제발 기사장동지, 절 좀 도와주십시오. 저야 연구사인데 기사장동지 보증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강에 다시 올수 있지 않···》

《닥쳐!》 송근우는 째지는듯 한 그 목소리가 자기의것이 아닌것만 같았다. 《제가 무슨 연구사라구? 말장사군이지. 난 처음부터 한번도 장봉구를 연구사라구 믿어본 일이 없어.》

《아니, 기사장동지?》

장봉구가 머리를 들고 두눈을 흡떴으나 그는 여전히 독살스럽게 쏘아붙였다.

《내 말을 똑바루 들어. 다른 사람들은 얼려넘길수 있어도 나는 안돼. 알겠어? 나만은 절대로 속이지 못해. 여기서 썩 사라지라구. 갈 땐 개방구만큼도 여기지 않더니 뭐 도로 오겠다구? 필요없어. 누린내나는 녀석은 여기에 필요없단 말이야.》

《뭐ㅡ라구요?》

무릎꿇고 앉았던 장봉구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언제든 공손하고 어줍어하는 미소를 떠올리던 그의 얼굴에 싸늘한 경멸의 빛이 어리고있었다.

《기사장동지, 뭐 누린내나는 녀석이라구요? 말이면 다하는줄 아시오? 도대체 기사장동진 뭐가 잘났다구 그따위 소릴 탕탕 하는겁니까? 그럼 말해봅시다. 그래 나한테선 누린내가 나구 거기선 뭐 불고기냄새라도 나는줄 아시오? 천만에!··· 까놓고 말해서 거긴 기사장이라면서 지금껏 해놓은게 뭐가 있습니까! 반대로 남들이 하는 일을 코코에 막아나섰지요?〈ㅈ철〉, 강괴겁, 고압관, 대형산소분리기! 어느것 하나 기사장동지가 손댄게 있습니까. 피나게 연구하고 발전시킨게 있나 말입니다. 밤낮 자기자랑만 하면서 어디 두고보자, 이 성강에서 송근우가 없이 되는게 뭐가 있다더냐! 하고 코웃음만 쳤지요? 그러던게 이제 와선 뭐라구요? 개방귀? 누린내?!··· 제 코나 씻으시오. 기사장동진 뭐 잘난게 있다구 남을 욕보이는건가요. 예?··· 속담에도 제 얼굴 흉한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더니 정말 치사합니다.》

《···》

그처럼 도도하고 언변이 좋던 송근우였지만 젊은 사람의 야멸찬 힐난에는 넋이 빠진듯 했다. 어느새 그는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해쓱해졌다. 볼따귀며 눈시울은 경련이 인듯 푸들거리고있었다. 아직 이처럼 고약하게 모욕받고 멸시당한 일은 없었다. 더구나 라수범기술발전부기사장까지 옆에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하찮게 여기고 멸시하던 장봉구한테서 모욕을 받은것이다.

라수범이 보다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 장봉구! 동무 어따 대구 함부로 주두리질이야? 동무 정말 덜돼먹었구만.》

《됐수다. 거기선 참견마시우.》

《뭐가 어째?··· 이거 보자보자 하니까 정 눈꼴사납게 노는구만. 아예 모가질 비틀어놔야 알겠어?》

그러나 그가 말끝도 맺기 전에 장봉구는 문을 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열려진 문으로 주물직장안의 탁한 공기가 홍수처럼 밀려들고있었다.

송근우는 선자리에서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새된 소리로 사납게 욕지거리를 퍼붓고싶으나 입이 열려지지 않아 모지름을 쓰는듯 퍼리끄레해 진 볼을 실룩거리고있었다.

그러나 생활은 그가 받은 모욕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듯 했다. 어데선가 깔깔대는 처녀의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그다음 째지는듯 한 호각소리, 누군가를 나무라는 가벼운 욕지거리, 그래도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낮고도 굵은 목소리가 길죽한 롱질을 계속하는 천정기중기우에서는 용접의 불꽃이 폭포처럼 흩날리며 바닥에 떨어져내리고있었다.

라수범이 뭐라고 했다. 송근우는 놀란듯 그를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였다. 여전히 입술을 꽉 악물고 두주먹을 부르쥔채 후들후들 떨고만 있었다.

 

×

 

장봉구의 출현은 기사장 송근우에게만 충격을 준것이 아니였다. 그가 나타난것을 보았을 때 고영란은 졸지에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느꼈다.

밝고 따사로운 해빛이 비치는 봄날의 정오였다. 고영란은 대형산소분리기 심장부의 하나인 팽창기를 조립하고있는 함흥화학설계사업소의 젊은 기사를 돕고있었다. 하반신마비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했으므로 직장에서는 일할수 없었다. 지금 영란이가 할수 있는 일은 기업소의 모든 력량이 총집중된 산소분리기조립전투장에서 무엇이든 찾아하는것뿐이였다. 그런데 함흥화학설계사업소에서 온 젊은 설비기사 박순남이 한사코 영란이를 자기곁에 잡아두려고 했다.

영란이는 또 그대로 설비기사와 같이 일하는것이 좋았다. 그를 통하여 산소분리기며 팽창기에 대해서 많은것을 배울수 있기때문이였다.

《산소분리기란 하나의 큰 랭동공장이요.》 하고 그는 기회만 있으면 무엇이든 설명해주군 했다. 《이 팽창기에서 기본 랭을 생산하는데 팽창기라고 부르는건 팽창의 원리를 리용하기때문이요. 영란동무, 손바닥에 입김을 후ㅡ 하고 불어보오. 그러면 한여름철에도 찬기운이 느껴지거던. 그건 바로 압의 변화때문인데··· 바로 그 원리요. 그걸 기계적으로 높은 압에서 낮은 압으로 련속 떨구면 온도락차가 나면서 령하 195도까지 이르게 된단 말이요. 그러면 공기가 액체상태로 넘어가는데···》

그도 역시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는 사람이였으나 장봉구와는 달랐다. 잠시라도 그의 설명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죄스러울 지경으로 진지한 교육자형이였다.

그러나 설비조립을 맡은 사람들속엔 희떠운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 돋은 한 설비조립련합기업소의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 말이요. 영란동무가 물을 떠주거나 필요한 공구를 골라주는 사소한 일이라도 거들면서 그저 곁에만 있어주면 좋겠소. 그러면 마치 보름달이 비쳐주는것만 같아서 백날천날 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거던.》

영란은 가볍게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제발 그런 침발린 소린 그만하세요. 그보다 더 멋들어진 시를 읊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 허튼소리였어요. 인젠 그런 소리 듣기가 막 역겨워.》

말잘하는 남자들을 영란이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든지 자기를 눈빗질해보는 사람이 있으면 로골적인 멸시의 눈빛으로 거침없이 맞받아보며 나직이, 사무럽게 쏘아붙이군 했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그러면 사내들은 면구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말을 걸게 된것을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새로 온 사람들, 건설건재공업성소속의 설비조립련합기업소와 화학공업성소속의 함흥화학설계사업소의 젊은 사내들은 매일같이 영란이를 시까스르군 했다.

《뭐 쳐다보지도 못하겠소? 정말이지 너무 환해서 눈이 막 부시는구만.》

《그래, 그 눈에 막 빨려들어가는것 같애.》

《동무, 제가 잘났다구 너무 새뚝거리지 마오. 그러다 알겠소? 나와 백년가약을 맺게 될지.》

그럴 때의 영란이는 롱도 받을줄 모르는 녀자 같았다.

《썩 물러가요! 난 약혼한 녀자예요. 다시 성가시게 굴었다간 시궁창에 처박겠어.》

영란이는 자기가 이전과는 판다르게 웃음이 적어지고 사나와지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애써 웃음을 찾으려 하나 남자들의 희떠운 말 한마디 혹은 싱겁게 걸치는 수작질에는 그만 눈살이 꼿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날도 함흥화학설계사업소의 젊은 기사가 은근히 내비친 한마디 말에 골을 내는데 머리우에서 기중기운전공처녀가 영란이를 소리쳐 불렀다.

《언니! 언닐 찾구있지 않나요. 저밑에서···》

갖자기 동관, 알루미늄관들과 강철관들이 거미줄처럼 엉킨 공사장이였다. 조립기사들의 말에 의하면 대형산소분리기를 이루는 그 관들의 총연장길이가 200㎞ 즉 500리에 달한다고 한다. 그처럼 많은 크고작은 관들을 산소와 전기용접으로 때고 붙이고있었으므로 사방에서 불꽃이 흩날리고 붕붕거리는 소음으로 귀가 멍해질 지경이였다.

영란은 관들사이로 기여나가 기중기운전공처녀가 가리키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흠칫 놀라며 한손을 내뻗쳐 굵은 동관을 그러쥐였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숨이 꺽 막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봄외투앞자락을 헤쳐놓은 장봉구가 우를 올려다보며 그를 향해 손을 내젓고있는것이였다. 무어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무던히도 반갑게 소리쳐 부르고있는것만은 틀림없었다. 어쩌면 저 사람이 저리도 반갑게 소리칠수 있을가? 어떻게 되여 모욕받고 영영 물러가버린줄 알았던 저 사람이 또 기신기신 찾아온단말인가?···

이윽고 그는 영란이가 있는 탑우로 올라왔다. 관들사이로 머리를 숙이고 몸을 뒤틀며 올라오더니 영란이와 마주섰다. 영란이가 이름조차 기억에 올리기 싫어하던 사람, 그래서 장봉구가 아니라 그저 《장》이라고만 속으로 불러오던 사람, 그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버긋이 웃고있다. 어쩌면 사람이 이리도 태연하고 뻔뻔스러울수 있담?··· 그때까지도 영란은 한자리에 못박힌듯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영란이, 나요. 그새 어떻게 지냈소?》 그는 애당초 영란이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새 정말 고생 많았겠소. 병도 병이지만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컸겠소. 미안하오. 그래서 늦게나마 잘못을 빌구 영란일 데려가려구 이렇게 왔소. 사실말이지 우리야 이미 일생을 약속한 사이가 아니요?··· 가만, 내 말을 마저 듣소. 그새 영란이 병치료가 잘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머릴 젓지 마오. 이건 정말이요. 한때 내가 어떤 간부댁의 딸과 어쩐다 하는 소문이 나돈것때문에 영란이가 몹시 성을 냈겠지만··· 사실 그건 일시적인것이였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만 눈이 멀었댔지. 어떤 간부의 귀맛좋은 말에 넘어가 영란이한테 조금 죄를 지은건 사실이요. 난 그걸 숨기지 않아. 그것때문에 고민도 많았구. 지금도 역시 내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소. 그렇지만··· 인젠 다 지나간 일이 아니요? 그래도 영란이 바란다면 골백번이라도 용서를 빌겠소. 이건 진심이요. 영란이, 난 드디여 정신을 차리구 새롭게 출발할것을 결심했소. 난···》

《그만해요!》 하고 영란이는 참다못해 소스라쳐 떨면서 부르짖었다. 《제발 그만해요. 그런 거짓부리 인젠 신물이 나! 정말 미칠지경이야. 못 견디겠어.》

《영란이, 내 말 듣소. 난 말이요. 난···》

《보기 싫어. 정말이야. 다신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 말아요. 협잡군, 배신자!》

《뭐!···》

《썩 사라져요!》

영란이는 앞 못 보는 소경처럼 팔을 허우적거리며 자기의 이전 약혼자인 장봉구를 계단쪽으로 밀고나갔다. 그러자 《장》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실룩거리고 주독이 오른것처럼 벌거우리해지고 조금 찌부러진 코를 연신 벌름거리며 뒤걸음쳐 갔다. 마치 때를 기다리고있은것처럼 그의 머리우에 용접의 불찌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웃쪽의 굵다란 판우에 걸터앉아 그들의 싱갱이질을 내려다 보고있던 의뭉스러운 용접공총각이 장봉구를 놀래우려고 우정 그랬는지도 모른다.

《영란이.》 하고 《장》은 부르짖었다. 《후회하지 말아. 내가 그만큼 잘못했다고 말했는데도 정 나와 살기 싫다구? 난 영란이의 공민증을 가지구가서 결혼등록을 했어. 알겠어?》

《뭐ㅡ예요?!》

수치와 절망으로 모지름쓰던 고영란은 부지중 무서운, 타는듯 한 아픔이 가슴을 지져대는것을 느끼며 한팔을 쑥 내뻗치였다. 그러나 고약하기 짝이 없는 그 사람을 붙들수가 없었다. 그저 힘없이 허우적거릴뿐이였다.

《가만, 좀···》

가까스로 짜낸 목소리마저 자기 귀에나 들릴 정도였다. 그러자 장봉구의 칼칼해진 목소리가 련이어 귀속에 파고들며 따갑게 지져대였다.

《알아두라구. 우린 법적으로 결혼한 몸이야. 그러니 영란인 내사람, 나와 함께 있어야 해!》

가만, 가만!··· 법적인 결혼?··· 이건 무슨 소리인가? 이건 저 게잘싸한 사람이 순전히 나를 괴롭히려는 수작질이다.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고있지 않으면서도 우정 녀자의 어진 마음을 리용하여 고통을 주려는 고약한 심보일것이다.

눈앞이 빙빙 돌고 무수한 불찌들이 사물거리는 가운데 파르스름한 용접의 화광이 눈을 때렸다. 별안간 눈이 먼것처럼 새까매졌다. 하여 영란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비청거리다가 그만 무수한 관들이 엉킨 탑우에서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아니, 손을 내뻗쳐 허공을 그러쥐면서 그만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그때 영란은 너무도 뜻밖의 무서운 충격으로 하여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완치되기전에 나온탓으로 하반신마비가 다시 왔다는것을, 그리하여 자기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3m이상 되는 탑중간에서 추락하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머리가 핑 돌고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짜릿한 감각만이 전류처럼 온몸을 스쳐갔다.

영란이가 마지막으로 들은것은 누구인지 머리우에서 《악!ㅡ》하고 부르짖던것과 이어 사람의 소리라고는 전혀 믿기 어려운 목소리가 《사람이 떨어졌다!ㅡ》 하고 무섭게, 기괴하게 울부짖던것뿐이였다. 그 소리를 가까스로 새겨들으며 영란은 모래와 자갈이 쌓여있는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젖히고 벌려진 입으로 마구 쓸어드는 머리칼을 옥문채 의식을 잃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