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8

제 5 장

8

 

날이 밝을무렵에야 비도 멎고 돌격작업도 끝났다. 서옥영은 감탕이 게발린 몸을 씻을 맑은물이 없었으므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바다로 나갔다.

지금은 9월, 보통때엔 선뜻 물에 들어서기가 주저되는 계절이나 밤새 비에 젖던 몸이여서 겉옷은 벗어던지고 속내의바람으로 바다물속에 들어섰다. 한때 인력으로 기차방통을 끌 때 안면을 익힌바있는 1강철직장 기중기운전공 강숙(장군님의 1998년 3월 9일 현지지도말씀을 받들고 제일 선참으로 자기가 처녀때 일하던 기중기에로 달려나온 녀성이였다.)이와 《강철의무실》의 녀준의 한정옥이 그와 같이 뜀박질을 하며 파도를 맞받아 뛰여들었다.

《야 좋구나!》

누가 먼저 흐느낌소리같이 부르짖었는지···

《정말 시원하지?!》

서옥영은 여전히 아무 대꾸없이 손바닥으로 속내의를 막 문지르며 열을 내였다. 그다음 깐깐히 몸을 씻었다. 늘 깨끗하게 몸을 씻고 가꾸어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녀성의 첫째가는 미는 맑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또 산뜻한것이라고 그는 믿고있었던것이다.

날이 밝기 시작했지만 하늘과 바다는 아직 검푸른 빛으로 음울하게 맞붙어있고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는 음산하였으며 녀인들의 가슴노리를 적시는 물은 금시라도 깊은 바닥으로 끌어넣을것처럼 시꺼멓고 스산하고 무시무시하였다.

옥영은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리며 목과 얼굴로부터 어깨에까지 물을 끼얹는데 번마다 오한에 소스라치군 했다.

《옥영이, 몸을 물에 쑥 잠가야 해. 그래야 춥지 않아!》

녀준의 한정옥이 떠들썩 일러주는 소리였다.

《옥영이, 날 좀 봐! 나 헤염치는거야?!》

금방 물속에서 솟구친 강숙이 또한 무엇때문인지 째지는듯 한 소리로 부르짖고있다. 새벽 바다에 울려가는 자지러지는 흐느낌, 흥그러운 웨침··· 진정 그들이야말로 비록 생활상 어려움과 곡절은 많아도 작고 보잘것없는것에까지 생활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줄 아는, 그리하여 그 어떤 어려운 생활이든 아무 주저도, 미련도 없이 받아들이고 벅차게 호흡하면서 작은 기쁨도 크게 만들어 맘껏 즐길줄 아는 이 나라의 수수한 녀인들이였다.

그러나 서옥영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 그들의 숨막히는듯 한 웃음과 아스라한 비명소리를 쓸쓸한 마음으로 듣고있었다. 사실 그들두 녀인은 다같이 큰 무우처럼 체격이 크고 길고 뼈대가 굵었지만 옥영은 버들잎처럼 연약하기만 하다. 지금 당장 파도에 실려 저 망망대해로 떠간다 해도 어쩌지 못할 몸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째서인지 줄창 까닭없이 우울하고 으스스하기만 하다.

몸을 씻고 기슭에 나와 모래불에 던졌던 옷을 헹구었다. 그것을 힘들게 쥐여짠 후 다시 주어입기까지 또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어째 옥영이, 벌써 갈려구?》

《옥영이, 우리랑 같이 가.》

아직 물속에 남은 두 녀인이 뭐라고 자꾸 소리쳤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소곳이 머리를 수그리고 멀지 않은 구내철길까지 타박타박 걸어갔다.

서옥영이 싫어하는 가을이 시작된다. 겨울을 앞둔 계절, 조락하는 계절, 모든것이 어수선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따라 또 무슨 언짢은 일이 있었던것만 같다. 옥영이의 마음을 헤집고 휘저어놓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흠칫하며 멎어섰다. 감탕투성이의 커다란 신발이 앞을 막고있는것이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감탕에 게발린 옷차림그대로인 박철진이였다. 돌격작업이 끝나자 옥영이 가는 곳을 봐두고 바다물속에 몸을 잠글 때까지, 물에서 나와 옷을 벗어 쥐여짤 때까지 내처 기다리고있은것이 분명했다.

어머나! 이 사람이?··· 옥영은 몸을 떨었다. 무엇때문인지 오늘 꼭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감하고있었던듯이 느껴졌다.

박철진이 손에 들고있던 작업복을 쑥 내밀었다.

《입소. 춥겠는데.》

《아니, 일없어요. 난···》

물속에 있을 때보다 더 참을수 없이 몸이 떨렸으나 이름할길 없는 어떤 고집때문에 머리를 젓는데 별안간 박철진이 우악스럽게 그의 어깨를 홱 잡아돌렸다.

《에익, 못난이같은게!》 그는 옥영의 작은 어깨에 작업복을 씌워주고 꼭 여미여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벌벌 떨면서두 뭐 일없다구? 내 이 작업복을 비에 적시지 않으려고 별의별 수를 다 생각해냈다는걸 알기나 하오?··· 난 이걸 말이요. 지배인동지차에다 건사했댔소. 옥영이를 위해서.》

어쩐지 박철진은 그새 딴사람이 된듯 했다. 무엇인가 달라진것이있었다. 이전처럼 담배질만 거듭하며 속이 타서 따져묻고 으름장을 놓지도 않았다. 감때사나운 자기의 본성과는 달리 별스레 곰살궂게 굴며 여유있게 입술을 찌긋하며 웃고있는 그를 보려니 웬일인지 자꾸만 속이 떨려났다.

《참, 지배인동지차 운전사 말이요.》 박철진이 계속하는 말이였다. 《하ㅡ 그 운전사도 괴짜야. 내가 군대때 운전사를 했다니까 뭐랬는지 아오?···》

철진은 그 무엇인가 상기한듯 빙긋이 웃다가 그만 시꺼먼 손가락으로 턱밀을 굵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어떤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옥영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파리해진 기색으로 입을 꼭 옥물고있는 옥영이를, 아무말없이 입술만 바르르 떨고있는 옥영이를 주의깊게 살피더니 맥빠진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오? 오늘도 입을 옥물고 말하지 않는다는거요?》

옥영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럼 맘대루 하오. 나도 동물 더이상 괴롭히지 않겠소. 정말이요.》

이건 무슨 말일가?··· 옥영은 젖은 옷속에서 봉긋하게 부풀어오른 앞가슴을, 철진이의 눈길이 와서 멎군 하는 그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움씰움씰 오르내리는것을 가리우려고 두팔로 꼭 감싸안으며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바보였소.》 하고 박철진이 계속했다. 《동무가 힘들어하는 대답을 억지로 받아내려 했으니··· 바보짓이였지. 동무네〈ㅈ철〉공장 당비서동지도 만나봤는데··· 좋은 얘길 많이 들었소. 물론 서옥영이라는 동무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구.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지. 걱정마오. 다신 억지놀음을 안하겠소. 정말이지 인젠 그따위 숨박곡질··· 구걸하는 놀음 다신 안해!···》

옥영은 그만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뭐 구걸하는 놀음?··· 누가 동무한테 구걸한다구 모욕적으로 말한적이 있어요? 오늘은 어째 이렇게 비틀린 소리만 할가, 이 동무 정말 날 모욕하구싶어서 기다리고있은게 아냐?···

《그래서 난》 하고 철진은 옥영이의 생각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병사답게, 용해공답게 결심했소. 당조직과도 토론하구 어머니한테 전보도 치구. 어머니더러 빨리 와서 며느리감을 보라구 했지. 그렇소. 인젠 숨박곡질도 끝났소. 장군님께서 주신 강철생산과제만 수행하면 그날로 결혼식을 하겠소.》

《?···》

비로소 옥영은 머리를 들었다. 경련이 일고있는 얼굴에 가까스로 이지러진 미소를 떠올리며 나직이 물었다.

《정말이세요?》

《정말이요. 난 한다면 끝까지 하고야마는 성미요.》

그는 마치 한 녀자의 결혼이 아니라 그 무슨 결사전에라도 나갈것처럼 엄숙한 표정이였다.

한순간 옥영은 어깨에 걸치고있는 그의 작업복이 별안간 갑옷마냥 온몸을 옥죄이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던질수 없었다. 그러면 자기의 속마음까지, 거기에 숨어있는 저미는듯 한 아픔까지 다 드러내보일것만 같이 생각되였던것이다. 웬일인지 숨쉬기가 헐치 않았다. 무엇때문에?··· 지금껏 오랜 숨박곡질에서 끝까지 앙버틴것은 바로 옥영이 자기가 아니였던가?···

《그럼··· 됐군요.》 하고 마침내 숨찬 소리로 말을 떼기까지 옥영은 자기의 한생이 물살빠른 강물처럼 세차게 그리고 죄다 말끔히 흘러가버린듯싶었다. 《참 기뻐요. 축하··· 해요.》

《그렇게 말할줄 알았소. 동무야 맘씨 고운 녀자니까. 헌데 옥영이, 어떤 녀자와 결혼하는지 왜 묻지 않소?》

《거야 물론 예쁘구 똑똑하구··· 그런 녀자겠지요.》

《옳소. 정말 둘도 없는 녀자요. 곱구 착하구···》

《?···》

옥영은 또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이든 깨물고 또 깨물어 피가 나지 않으면 안될것처럼 물어뜯고싶었다. 그러니 이 동문 자기가 어떤 녀자와 결혼한다는걸 알려주려고 이 추운 새벽까지 날 기다렸단 말인가? 지금껏 자기를 받자하지 않은 나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나를 괴롭히려고 우정 찾아와 꾸며낸 친절을 베풀고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또 한번 소스라쳤다.

《춥소?》

《아ㅡ 뇨.》

《이걸 더 껴입소.》

《아니, 됐어요. 됐ㅡ어요!》

시뻘건 해가 저 멀리 수평선우에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커다란 쟁반같은 불덩이가 쇠물같이 시뻘건 바다물을 통채로 끌어올리며 솟구치고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변인가? 갑자기 그 거대한 불덩어리속에 두 녀인의 자태가 뛰여들었던것이다. 바다물속에서 나온 강숙이와 한정옥이였다. 그 녀인들은 저들끼리 웃고 떠들며 걸어오다가 철길우에서 마주선 이쪽의 두사람을 발견하자 한순간 얼어붙은듯 하더니 급기야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종종걸음을 쳐갔다. 그러건말건 옥영은 부글부글 바다를 끓어번지게 하며 솟구쳐오르는 태양만을 우두커니, 넋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새날이 밝고있는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또 래일도 영원히 태양은 변함없이, 어김없이 새날을 안아온다.

《참, 얼마나 아름답소. 응?》

박철진의 그 말에 옥영은 갑자기 찬물을 들쓴것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이 동문 무엇이 아름답다는걸가. 결혼을 앞둔 자기의 고운 꿈과 밝은 래일이?···

《저···》 하고 옥영은 혀가 말라드는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속삭이듯 말했다. 《전 빨리 가··· 봐야겠어요. 수림이가···》

《걱정마오. 수림인 지금쯤 1호합숙 내 방에서 자고있을거요.》

뭐 1호합숙?··· 옥영은 그 의미를 깨닫는데 또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로동자합숙을 왜 《1호합숙》이라고 부르는지 알수 없다. 그밖에 외래자합숙이 있지만 2호와 3호합숙이 또 있는건 아니지 않는가···

다음순간엔 자기 딸 수림이가 눈앞에 서있는 이 사람, 인차 결혼한다는 박철진의 방에서 자고있다던것을 상기해냈다. 하여 옥영은 숨도 쉬지 않는듯 굳어져있다가 급기야 전류에 감전된듯이 와뜰 놀라며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우리 수림이가··· 이자 뭐랬지요?》

《합숙 내 방에서 잔다니까. 끝내 나하구 친하기 시작했거던.》

《뭐예요. 동문?···》 드디여 옥영은 오연히 머리를 쳐들고 가늘게 그리고 새되게 부르짖었다. 《지금껏 날 그렇게 들볶구 아프게 허비고도 아직 모자란다는거지요? 그래, 당장 결혼한다면서 우리 수림일 꼬드기는건··· 무슨 심보예요?》

《심보?···심술부리지 마오. 나도 수림이와 친할 권리가 있소. 그 앤 옥영이의 딸만이 아닌 우리 성강의 딸이란 말이요!》

옥영은 굳어졌다. 자기와 마주서있는 결패있고 강의한 제대군인 총각의 얼굴에 떠오른 자신만만한 미소를, 승리자연하는 미소를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순간 《헉ㅡ!》 하고 흐느끼며 그가 준 작업복을 벗어던졌다. 어느새 바다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시뻘건 빛의 비단필을 펴놓고있는 철뚝길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수십년세월 구내기관차들의 바퀴에 쓸려 반들거리는 레루우에서 붉은 태양의 반사광이 번쩍거리고 뒤에서는 박철진이 쫓아오며 뭐라고 소리쳤지만 옥영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1호합숙에까지 갔는지 알수 없었다. 직장에 들려 옷을 갈아입자바람으로 합숙을 향해 반달음쳤었다. 박철진 그 사람보다 먼저, 오늘은 생각만 해도 속이 느글거리는 그 얄미운 사람보다 먼저 가댈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드디여 합숙에 이르렀다. 정문앞의 계단에서 발을 걸채여 넘어질번 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것만 같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아침시간이다. 옥영은 그 누구와도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눈을 내리깔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취한것처럼 몇번 헛디디였다. 합숙관리원에게서 열쇠를 받아야 한다는것도 감감 잊고있었다.

박철진의 방은 2층 5호실이다. 늘 제대군인이라는것을 자랑하는 사람, 곧 장가를 간다고 으시대는 꺼분꺼분한 용해공총각이 사는 방, 거의나 손더듬으로 문을 찾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문은 기다리고있는듯 저절로 열리는감이 났다.

《뉘시오?》

누가 묻는다.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들어왔는가?··· 그런데 저기 침대우에는 우리 수림이가 누워있지 않는가?···

반대쪽 창가의 책상앞에 한 녀인이 앉아있었다. 돋보기를 끼고 사진을 들여다보고있었다. 녀자의 사진, 처녀의 천연색사진, 아까 박철진이 인차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던 그 녀자의 사진인지도 모른다.

《거긴 뉘기요?》

늙수그레한 녀인이 또 묻는 말이다.

《저··· 애를 데려가려구.》

《그러니 수림이 에미구만. 응, 맞지? 서옥영이라는?···》

《예, 그래요.》

《음···》

녀인의 눈길이 옥영이의 온몸을 천천히, 빈틈없이 훑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 녀인이 박철진의 어머니임을 깨달았다. 전보를 쳤다고 했었지. 헌데 무슨 리유로 어머니를 부른것일가? 약혼녀를 소개하려구? 물론 그랬을것이다. 하여 어머니는 아들이 전보로 알려준 처녀를 보려고 만사를 젖혀놓고 달려왔을것이다.

그런데 박철진의 어머니는 옥영이 자기에 대해서도 알고있다. 그 눈빛으로 미루어 도대체 어떤 얌치없는 녀자이길래 주제넘게 제대군인총각을 홀려내는가 하고 눈밝혀 살피는것 같기도 하다.

옥영은 모닥불을 들쓴것 같았다. 따가운 수치와 시커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침대에로 다가가 아직도 깊은 잠에 들어있는 수림이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얘 수림아, 엄마가 왔다. 빨리 집에 가자. 응?》

어린것은 제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칭얼거리였고 늙은이는 너무도 정신이 말짱하여 돋보기너머로 주의깊은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덤비지 말라구. 내가 뭘 꾸려가지구 온게 있는데 아침밥이나 같이 먹지 않겠나?》

《아니, 일없습니다. 그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만··· 우린 집으로 빨리 가야 합니다.》

《그ㅡ래?》

늙은이는 끝까지 주의깊은 눈길로 옥영이의 얼굴모색과 인상이며 몸매와 말씨,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며 탐색하듯이 보고있었다. 창문으로 흘러든 밝은 아침해살이 늙은이의 이마에 촘촘히 가늘게 파고지나간 주름살과 인사치레로 웃어보이려 하나 도저히 웃음을 띄울수 없어 모대기는것 같은 서먹서먹한 인상을 또렷이 드러내보이고있었다. 저 어머니는 아마도 나 옥영이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썩였으리라. 아들에게 일잘하고 인물도 잘난 처녀를 맞세워주려고 사방 수소문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제는 모든것이 다 끝났다. 지금 저 어머니는 자기의 손에 아름다운 처녀의 사진이 쥐여져있으므로 마음이 편하리라.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 아들의 속을 태우며 한사코 뿌리치던 녀자, 특별히 잘난데도 없는 보통 수수한 로동자로서 별스레 코대를 높인다고 은근히 나무람하고 윽벼르기도 했을 녀자를 저렇게 눈앞에 빤히 보면서도 굳이 탓할 생각은 없이 그저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만 보내고있는것이 아닌가.

수림이를 안고나오다가 문지방에서 발을 걸채이였는데 그때 반쯤 몸을 일으키던 늙은이가 그만 무춤하고 굳어지는것이 눈에 띄였다.

《에그, 조심하잖구.》

그 어머니가 한 말이였다.

문을 닫으며 옥영은 거의나 맹목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다음 어두운 복도벽을 손더듬해가기 시작했다. 피가 나도록 벽을 허비고 입술을 깨물고··· 벅찬 경련에 목이 메여 흑흑 흐느끼며 그냥 자꾸만 무너져내리는 몸을 가까스로 끌어갔다. 온몸을 불태우는 크낙한 수치심, 머리속에 쓸어드는 공허와 무서운 허탈감··· 이런 일을 당하자고 그를 만났던가. 이렇게 끝장을 보자고 그의 진정을 마다했던가?··· 아니면 나 옥영이더러 면도날처럼 모질게 가슴을 후벼대는 이 아픔을 겪게 하자고, 그것을 이기지 못해 저절로 머리칼을 쥐여뜯게 하자고 그 사람 박철진이 그냥 나를 쫓아다니며 못살게 굴었단 말인가?··· 이보세요. 철진동무, 나한테 너무했다는 생각은 없으세요? 마음여린 녀자의 가슴에 칼질을 해도 분수가 있지. 어디 말 좀 해보세요. 대답해보란 말예요. 이러자구, 이렇게 하자구 나를 만났는가요?··· 이렇게 날 짓밟아버리자구 옹근 한해를 두고 날 괴롭혔나요?···

복도바닥에 쓰러져 쓰린 눈물과 아픔을 씹어삼키며 막 몸부림치고싶었다. 차거운 눈물은 계속 코잔등옆으로 진하게 흘러내리고있었다.

어린 수림이가 무서워 떨며 울먹거렸다.

《엄마, 엄마 우나?》

《아니, 아니야. 엄만 울지··· 않아.》

《그런데 왜 또 우나?》

《응, 안 울게. 울지··· 않을게.》

울지 말자. 남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끌끌한 제대군인총각을 마다하며 코대만 높이더니 꼴 좋게 됐다고 손가락질하지 않겠는가? 울지 말자. 목놓아 울고싶어도 오늘만은 참자. 울지 말자.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는지, 아니면 구름이 꼈는지?···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며 옥영은 손수건을 꺼내여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문지르고나서 눈물에 젖은 그 수건을 입에 쓸어넣고는 목구멍안에서 또다시 꾸룩꾸룩 터져나오는 오열을 틀어막으며 정신없이 씹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기가 박철진이라는 그 감때사나운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였다. 그를 마다하고 그를 뿌리치면서도 날에 날마다 그를 찾고 그를 소리쳐부르며 끊임없이 그한테로 한걸음 또 한걸음 가고 또 가고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한걸음을 눈앞에 두고 그 사람은 그만 멎어서고말았다. 멎어섰을뿐아니라 딴곳으로 눈길을 돌리고말았다. 무슨 일이든 군대성격그대로 끝장을 볼 때까지 내민다던 사람이 갑자기 돌따서버렸다. 무정한 사람, 정녕 이러자고 잠자던 녀자의 마음을 휘저어놓았단 말예요? 이렇게 끝장을 보자고 걸음을 시작했나 말이예요?···

어데로 가는지도 몰랐다. 오가던 자전거들이 짜릉짜릉 신경질을 부리였으므로 그것을 피해가는데 길가에서 누군가 째지는듯 한 소리를 질렀다. 다음순간 수림이가 와락 잔등에 파고들며 《아!ㅡ》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것과 동시에 삐ㅡ 익!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청을 찢더니··· 시꺼먼 승용차가 눈앞에 와서 딱 멎어섰다.

운전사가 잽싸게 창문유리를 내리며 소리쳤다.

《동무, 눈이 멀었어? 죽자구 그래?》

《?···》

여전히 옥영은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승용차와 그안에 타고있는 사람들을 멀거니 보고있었다. 차안에서는 알수 없는 사람들이 어린이를 안고 차길에 뛰여든 애젊은 녀인을 놀라서 내다보고있었다.

사실 그것은 당중앙위원회와 도당의 일군들이 타고오는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