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5

제 5 장

5

 

4시가 지났다. 푸름푸름 밝아오는 새벽빛에 하늘은 재빛으로 변하고 밤새 눈을 밝히던 별들도 시진하게 빛을 잃어갔다. 저기 골어귀에서는 물흐르는 소리가 꿈결같이 들려오고 희끄무레한 물안개도 고요히 피여오르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시였다. 살풋이 내려덮이는 눈시울밑에서 피로와 졸음이 물결처럼 파문을 짓고 고요히 굼니는것을 느끼시였다. 잠간만 눈을 붙이자, 잠간만!···

언제부터였는가?··· 기차가 달리고있다. 그이께서 타신 기차가 거의나 소리도 없이 밤의 대지를 질주해가고있다. 기적소리도 없다. 차바퀴소리도 없다. 솨!··· 밤의 대기를 파헤치고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뿐···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신채 고르로운 차바퀴의 진동을 기분좋게 느끼신다. 그런데 웬일인지 차츰 기차가 속도를 죽이고있는듯 여겨지신다. 어느 간이역인가··· 그러나 잠시 멎어섰던 기차가 다시 출발한다. 차츰 속도를 높인다. 호각소리, 기적소리, 그렇다. 도중역에서 지체할 리유란 없는것이다. 또다시 뿡!ㅡ 장쾌하게 울리는 기적소리, 점점 더 커가는 차바퀴소리, 그런데 갑자기 승강대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누구인가 다급하게 부르짖는 소리.

《사람이 떨어졌소!ㅡ》

《뭐, 뭐라구?》

《저기 보시오. 저 사람이 그만 차에서···》

《누구라구? 왜 떨어졌다구?》

떨어지다니, 그럴수가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승강대로 나가시였다.

《무슨 일이요. 누가 떨어졌다는거요?···》

《장군님, 방금 누군가 도중역에 내렸다가 그만···》 이렇게 당황하여 말씀드리는것은 박유창 제1부부장이였다. 《이럴 땐 어떻게하면 좋습니까. 장군님, 기차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달리는 기차를 세운다는것은 비상사고이다. 도대체 누가 떨어졌는가?··· 그이께서는 승강대란간을 짚고 뒤쪽을 바라보시였다. 철길침목을 위태롭게 건너뛰며 헐레벌떡 따라오는 사람, 기를 쓰고 달려오나 차츰 속도가 떨어지는 그 사람의 얼굴이 무던히도 낯익게 느껴지시였다. 한때 축구선수였다던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 성강지배인 김용삼이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목청껏 소리치며 손을 내밀고있건만 그는 자꾸만 휘청거리고 또 멀어지고있다.

언제인가 그처럼 전속으로 달리는 기차를 따라 정신없이 달려오던 사람이 있었다. 자강도당책임비서 연형묵··· 그이께서는 피끗 머리속을 스쳐가는 하나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시였다. 한순간이라도 그이와 가까이 있고싶고 의지하고싶어, 정녕 헤여지기 아쉬워 뽀얗게 눈가루를 말아올리며 승용차를 몰아 뒤쫓아오던 사람, 그 불같은 사람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이다. 그런데 저 축구선수는 왜 기차에서 떨어졌는가?··· 한순간 김용삼이 무엇에 걸채였는지 허공을 그러쥐며 철길우에 곤두박히는것이 보였다. 누군가 《악ㅡ》 하고 부르짖었다. 박유창의 거쉰 목소리.

《장군님, 기차를 세우랍니까?》

높아가는 차바퀴소리, 기적소리!···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기적소리가 멀리로 사라져간다. 멀리 더 멀리···

다음순간 그이께서는 천천히 눈을 뜨시였다. 그리고는 자신께서 꿈을 꾸셨다는것을 깨닫고 조용히 웃으시였다. 이윽고 정신없이 따라오다가 무엇엔가에 걸려 곤두박히던 김용삼의 모습을 다시 눈앞에 떠올리며 천천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아니, 꿈에서 벌어진 그 일이 사실이래도 그 한사람때문에 정시로 달리는 기차를 세울수는 없다. 절대로 그래선 안된다. 그는 제발로 따라와야 한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자기가 떨어진 기차를 따라와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기어이 기차를 따라올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보시였다. 지금껏 승용차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자세로 불과 10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시였다. 그러나 심신은 거뜬하시였다. 푸릿한 새벽빛속에 우렷이 자태를 드러내고있는 산봉우리들과 산기슭의 떨기나무숲을 감싸고있는 물안개, 시내물소리도 유정하다.

그이께서는 부관이 차문을 열어드리기 전에 벌써 밖으로 나서시였다. 시내물소리가 울리는 골어귀로 내려가신다. 다른 수행원들도 하나 둘 차에서 내리고있다.

《자, 동무들.》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세면도구도 가지고 오오. 얼마나 물이 맑은지··· 정말 옥계수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이 가져온 수건과 비누를 받아들고 먼저 세면을 하시였다.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으려니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 스쳐가는것을 느끼시였다. 차고 시원하고 더없이 상쾌한 산촌의 물, 간밤 천리길을 달려오신 피로가 말짱 가셔지는것 같다.

수행원들중에서 먼저 달려온것은 박유창 제1부부장이였다. 그는 세면을 입으로 하는것처럼 푸ㅡ푸 소리도 야단스러웠다.

《장군님, 정말 기막힙니다.》

이럴 때의 그는 싱싱한 참나무처럼 힘과 정력이 넘친 젊은이 한가지였다. 그러나 실은 그의 심장병이 자주 위험계선을 넘고있다는것을 그이께서는 한시도 잊지 않고계시였다. 그러므로 어제 평양을 떠나실 때에도 그만은 떨구어두려고 하시였었다.

《1부부장동문 래일 밤 성강으로 갈 때 같이 가기요. 오늘은 산악지대로 24시간 자동차강행군을 해야겠는데 그러면 심장부담이 너무 클수 있소.》

그러나 박유창은 막무가내였다. 나이많은 일군들도 수행하지 않는가, 자기는 아무일 없다, 한때 부정맥때문에 애먹던것을 유명한 심장전문외과학 박사 아무개가 말끔히 가셔주었다고 열을 올려 주장했다. 지금도 자기의 건강을 증명하려고 우정 찬물을 몸에 끼얹으며 야단인지도 모른다.

《장군님, 이 물을 차에 떠가지고 가는게 어떻습니까. 이제 또 성강까지 먼길을 가셔야겠는데 피곤하실 때마다 이 물로 세면하시면 좋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웃으시였다.

《물을 떠서 비닐통에 넣으면 그게 상쾌한 제맛을 그대로 보존하겠소? 여느 물이나 같이 미적지근해지지. 그건 그렇고··· 난 일정을 변경시키기로 했소. 성강행은 취소요.》

박유창의 얼굴에서 산촌의 맑은물이 줄줄 흘러 입으로 쓸어들어갔다. 그가 머리를 들고 굳어져버린것이다.

《장군님, 벌써 기차편성이 다 돼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성강로동계급이 장군님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는데···》

《그건 나도 알고있소.》 하고 그이께서는 정색하여 말씀하시였다. 《그 동무들이 그새 간고분투하여 일정한 성과를 올리고 나를 기다리고있다는걸 말이요. 그러나··· 내 이제 가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겠소? 이미 할 말은 다 했고 줄것도 다 주었는데 아직 강철생산이 당에서 기대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추궁을 하겠는가? 아니면 전번에 갔을 때와 꼭같은 연설을 또 하란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좀전에 꿈에서 보신 김용삼을 생각하시였다. 어쩌면 성강현지지도가 일정에 물려있어 그런 장면이 꿈에 나타났던것인지? 아니면 성강을 생각할 때마다 외곬으로만 가는 고집쟁이 김용삼이 근심스러워서였는지?···

《아직은 일러.》 하고 그이께서는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가보고싶지만··· 일러.》

박유창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얼굴에 흘러내리던 물줄기도 말라갔다. 그 대신 잠을 깬 숲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잔바람이 나무가지들을 조심스럽게 흔들고 뭇새들이 푸르릉거리며 날기 시작했다. 시내물소리도 더 힘차게 주절거리는듯싶었다.

《1부부장동무.》 그이께서 생각깊은 어조로 다시금 말씀을 이으시였다. 《찾아가 성과를 축하하고 고무를 주는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또 있소. 그것은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것이요. 내가 성강의 로동계급을 끝까지 믿고 성공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면 아마 그들은 더 분발할것이요. 그러면 내가 현지지도하는것보다 더 의의가 있지 않겠소? 난 그렇게 보는데··· 어떻소?》

박유창은 아무 대답도 올리지 못하고 눈밑에 깊이 패인 잔주름만 흠칫거리고있었다. 새들이 지저귀였다. 차츰 물안개도 걷히며 골안을 지나 멀리 연기오르는 마을의 굴뚝들까지 선명하게 바라보였다.

그날 박유창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성강의 책임일군들에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사연을 전달받은 성강의 일군들은 아무말도 못하고있었다.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는 죄책감때문에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있었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눈물을 머금고있는가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박유창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성강의 로동계급을 끝까지 믿고 성강의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하시였소. 동무들, 잊지 마시오.》라고 두번세번 곱씹었다.

 

다시 한달이 흘러갔다. 가을이 시작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