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4

제 5 장

4

 

7월이 왔다. 한여름철이건만 북방의 바다기슭은 아직도 서늘하였다.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가 김책만을 뒤덮고 성강의 1강철직장에서 뿜어올린 황갈색의 연기는 무거운 저기압에 눌리여 우로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을 헤염치였다. 그맘때면 간밤에 수평선 저 멀리 휘황한 불의 도시를 이루던 수많은 낙지배들이 발동소리도 요란히 돌아오는데 선창가에는 그보다 더 많은 아낙네들이 낙지를 받아 가려고 함지며 소랭이를 앞에 놓고 줄을 지어 앉아있군 했다.

이곳 바다가사람들에게는 년중 제일 바쁘고 고되고 흥거로운 7월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낙지잡이로 열이 오르는 이 계절, 그들은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변함없이 밤의 바다로 나가군 했다.

그러나 성강사람들은 강철생산에 자기들의 운명을 걸고있었다.

전체 종업원들과 가족들이 파철을 모아가지고 아침출근시간에 집단적으로 정문에 들어설 때면 수백수천에 달하는 크고작은 딸따리들의 바퀴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리고 소랭이며 쇠붙이들을 이고 진 사람들이 대군중시위라도 벌리는듯 끝없이 물결쳐흐르는데 방송차에서 시작된 거센 음악의 폭풍이 대기를 뒤흔들고 처녀방송원의 격조높은 선동과 힘찬 구호까지 잇달아 터지며 온 쌍포지구가 떠들썩하군 했다.

딸따리와 소랭이, 쇠붙이조차 없는 사람은 그 흐름속에 끼울념도 못했다. 가족돌격대와 학생소년들까지 떨쳐나선 성강땅에서 파철도 없이 공장에 들어설수는 없기때문이였다.

《섯! 증명서 봅시다.》

애리애리한 보위대원의 낮고도 빠른 말에 허필웅은 얼떠름해서 옆으로 밀려났다.

《나보구 그래?》

《예.》

《뭐?》

새로 들어온 햇내기가 분명했다. 여기 쌍포지구에서 허필웅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딴데서 온 손님이거나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닐수 없다.

벌컥 성을 내려고 했다. 그때 마침 지휘부건물에서 나오던 최진수 《강철령감》이 그를 띄여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아 부지배인동무, 정말 오래간만이구만?!》

령감은 껄껄한 손안에 역시 크고 마디진 허필웅의 손을 움켜쥐고 나란히 보위대원의 앞을 지나갔다. 새로 온 보위대원은 부지배인이라는 말에 허리까지 꼿꼿이 펴며 경의를 표했다.

《부지배인동무.》 하고 령감이 물었다. 《다신 안 온다하구 갔다면서 어떻게 또 왔소?》

《나도 모르겠수다. 어째 또 왔는지···》

《뭐ㅡ 라구?》

《···》

그는 더이상 말하고싶지 않았다. 감궂게 입을 다물고있는 그의 얼굴은 누렇게 떠있었다. 두눈은 충혈지고 이마와 목의 피줄들은 퍼렇게 부풀어올랐고 등은 구부정하였다. 죄스러운듯 옆눈으로 슬그머니 령감을 치떠보군 하는데 입가에는 게면쩍어하는듯 한 웃음이 떠오르고있었다.

지난날 여기 쌍포지구와 김책시일판의 일부 새망스러운 녀인들이 남몰래 훔쳐보군 하던 그의 장대하고 정력이 차넘치던 몸과 마음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고 좀이 쓸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강철령감》 최진수는 그런 모양의 허필웅을 보는것이 민망스러워 버릇처럼 킁킁 코를 울리며 화를 내였다.

《이보 부지배인동무, 내 말 좀 하라오?···》

《됐수다, 듣기 싫소.》

《뭘 말하자는지도 모르면서 듣기싫다? 허ㅡ 싫은 소린 억지루라도 들어야 하는거요.》

《그럼 말해보시오.》

《부지배인동무, 그래 무슨 새바람이 들어서 공장을 떠나갔소? 나두 소문은 들었소만 그게 뭐 소견머리있는 짓이요? 짜개바지때부터 정이 든 공장인데 그래 누구와 맞지 않구 누구와 틀렸다구해서 훌쩍 가버렸다구?··· 원, 그거야말로 뜨물 마시구 주정하는 격이 아니구 뭐겠소?》

《아바이, 모르면 좀 잠자쿠 있으시오.》

《소리치지 마오. 부지배인동무, 그래두 속은 살아서.》 하고 령감은 허필웅의 빛을 잃은 침울한 눈시울밑에 퍼리끄레한 그림자가 얽혀있는것을 빤히 보면서도 한가닥 동정과 련민의 빛도 없이 계속 몰아대였다. 《그런 새까먹은 소릴 허믄 누가 동정이라두 할줄 알았소?···》

그들은 나란히 1강철직장앞으로 가고있었다. 갑자기 허필웅은 놀라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고 령감을 돌아보았다.

《날 어데루 끌구가시오?》

《끌구가긴? 제가 따라왔지. 그래 어델 가려구 했소?》

《?···》

그는 인차 대답하지 않고 령감의 팔굽을 잡으며 사위를 둘러보고서야 낮게 수군거렸다.

《저··· 아바이, 한가지 물읍시다. 책임비서동무의 기분상태가 요즈음 어떠시오?》

《그건 어째 묻소. 딴 공장사람이? 우리 책임비서기분이 나쁘다면 속으로 좋아하겠소?》

《뭐요? 내가 그렇게 너절사한 사람인줄 아시오? 내 책임비서와 엇나긴 했지만 그 량반 대바른 성품은 내 맘에도 든단 말이요. 한때 내가 책임비서동물 잘못 보구서 우둘렁거리긴 했어두 사람이야 난 사람이지, 안 그렇소?》

령감은 소리내여 웃었다.

《하ㅡ 산이 커야 그늘도 크다더니. 그래서 나두 부지배인동물 좋아하는것 같소.》

《뭐 좋아한다구? 속에 없는 소릴랑 마시오.》 하고 허필웅은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곽을 꺼내는데 무엇때문인지 그 손이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같은거야 이리저리 굴러다닐수도 있지만 책임비서동무야 판 다르지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줄 아는··· 일군중에서도 상일군이 아니요? 헌데 아바이, 어째 자꾸 그런 눈으로 보시오?》

령감은 웃음을 참을수 없는듯 코밑에 내돋은 허연 수염을 사뭇 쭝긋거리고있었다.

《어쨌든 달라졌어. 룡이 되여 왔다니까.》

허필웅은 얼굴을 붉혔다.

《됐수다. 책임비서동무가 지금 어데 있는지··· 그거나 대주시오. 아바이야 알구있겠지비?》

《그걸 모를 사람이 어데 있을라구. 책임비서가 뭐 숨어다니는 사람인가?··· 지금〈ㅈ철〉공장개건공사와 대형산소분리기때문에 온 공장이 끓고있으니 어데 가있겠는지 물어보마나한게 아이오?》

허필웅은 한손으로 갓 면도를 한 턱을 문지르며 잠시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다. 령감이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더니 불현듯 낯색을 흐렸다.

《그러니 책임비서동문 몹시 바쁘겠구만?》

《그렇잖구. 밤낮 시꺼매서 다니지비 일이 바쁘니까.》

《기분상태는?》

《기분이야 나쁠리 없지 일이 잘돼가니까.》

《그럼 내 청을 들어줄수 있을것 같소?》

《또 강재를 내라는건가? 책임비서한테?》 갑자기 령감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몽땅 이런판이라니까. 그러다가 또 우리 책임비설 잡자구 그래?···》

《됐수다. 내가 뭐 사람잡이나 하는 사람이요? 아바이, 어벌쩡한 소리 말구 가서 제 할일이나 보시오.》

그는 령감의 등을 떠밀어보내고 불이 날 지경으로 두손을 마구 비벼대였다. 속으로는 령감앞에서 터놓지 못한 불만을 중얼거리고있었다.

《뭐 〈강철령감〉이라구 떠받들어주니까 사람을 우습게 안단 말이야.···》

그는 《ㅈ철》공장쪽으로 걸음을 빨리하였다. 자기의 결심이 흔들릴가봐 겁을 내며 서둘러갔다. 지금 당장 책임비서를 만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

그러나 책임비서를 찾지 못했다. 대형산소분리기를 설치할 장소인 《ㅈ철》공장구역에 가있다고 하기도 하고 내화물직장에 가있다고하기도 했다. 두시간이상이나 뛰여다녔지만 아무리 걸음폭이 큰 사람이라도 승용차를 따라잡을수는 없는것이다.

화가 났다. 인제는 발을 질질 끌며 걸음마다 누군가를 욕질하기 시작했다. 자존심도 다 줴버리고 바보짓을 하는 자기자신을 경멸하며 속으로 침을 뱉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서야 고압관직장앞에서 책임비서를 만났다.

《탄광지배인이 여긴 왜 와있소?》

전진욱의 그 말에 허필웅은 본의아니게 대뜸 비뚤어진 소리가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책임비서동무한테 또 구걸하려구 왔수다.》

《뭐라구?》 하고 전진욱은 련민의 정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여겨보며 말했다. 《제노라하는 허필웅동무가 구걸이라니··· 그렇게 말하기 부끄럽지 않소?》

《부끄러운걸 알면 이렇게 또 왔겠습니까?》

《?···》

전진욱은 의아쩍은 눈빛이였고 허필웅은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리유로 화가 나서 골살을 찡기며 어성을 높였다.

《아무렇게나 생각해두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아니, 내가 부탁하는걸 꼭 들어줘야겠수다.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어쩔테요?》

《너무 그러지 마시오. 책임비서동무.》 하고 허필웅은 거쉰 소리로 울부짖었다. 《책임비서동문 언제까지나 이 허필웅을 헌필웅이나 헌 바지처럼 여길 작정입니까. 예?··· 설사 헌 바지라 해도 기워입으면 못쓰나 말이우다. 그렇게 보지 마시오. 사람을 너무 비웃지 말란 말입니다!》

이렇게 로골적으로 싸움을 걸려고 잡도리한것은 아니였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전진욱은 긴장한 낯빛으로 말없이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한순간 허필웅은 자기의 덜퉁스러운 성미를 저주하였다. 은근히 전진욱의 팔소매를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책임비서동무, 저기 잠간만··· 긴히 할 말이 있어 그러는데 좀 들어주시오.》

《?···》

전진욱은 의아해하면서도 그가 끄는대로 따라갔다. 지난해 어느 여름밤 서로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기며 헤여졌던 그 바다기슭이였다. 그날의 그밤처럼 희미한 달빛아래 펼쳐진 바다에서는 파도가 사나왔다. 기슭을 치는 거센 파도소리가 그들의 가슴을 쉼없이 적셔주었다.

《책임비서동무.》 하고 허필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한대 좀···》

전진욱은 달빛에 비쳐진, 어쩐지 땀자욱으로 얼룩져있는듯 한 그의 얼굴을 께름직하고 뜨아한 생각에 잠겨 흘끔 스쳐보았다. 그리고는 아무말없이 담배를 꺼내여 불까지 붙여주었다.

허필웅은 담배연기를 깊숙이 들이삼키고 헛기침을 련발하더니 갑자기 거쉰 소리로 을러메듯이 말했다.

《책임비서동무, 그래 끝까지 날 밉게 볼 생각입니까? 이 허필웅이 그리도 밉소?》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지금도 그렇게 보고있지 않습니까?》 하고 그는 시꺼먼 눈섭을 흠칫거리며 소리쳤다. 《내가 뭐 모를줄 아시오? 나를 헌 바지나 헌 발싸개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는거 말이요.》

《아까부터 자꾸 헌 바지타령은 웬일이요? 도대체 말하자는게 뭔지 어서 본론을 말하시오.》

그러자 허필웅은 입에 가져가던 담배를 훌 집어던졌다. 어느새 그의 입은 단말마의 고통에 못이겨 고함이라도 지를듯 움씰거리고 우로 가져간 마디굵은 손가락들은 숨이 막혀 참을길이 없는듯 우악스럽게 목깃을 헤치고있었다.

《난 못 견디겠습니다.》 하고 그는 마침내 불을 뿜듯 거칠게 속삭이였다. 《날 좀 도와주시오. 책임비서동무, 정말 속이 타 죽을 지경입니다.》

《죽을 지경이라니?···》

《그래, 죽을 지경입니다. 제 집에 오구싶어서, 장군님께서 봉화를 지펴주신 성강에 돌아오구싶어서 죽을 지경이란 말입니다. 밸통머리 사나운 내가 이런 말을 하자니··· 자갈이라도 씹는것처럼 급하긴해도 더는 못 견디겠습니다. 매일 매시각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남들처럼 봉화가 타오르는 큰 일판에서 왁왁 소리치며 본때있게 일하구싶어 죽겠단 말이우다. 그런데 저기 죄꼬만 탄광에선 부엌에서나 쓸 갈탄을 캐는데 내가 없어도 아무 지장없이 탄을 캘수 있수다. 키가 꺽두룩한 난 오히려 갱천정에 머리만 들이받군 하지요. 아니, 난 성강을 떠나선 못살겠수다. 한뉘 여기서 깡냄새를 맡으며 살아온 내가 무슨 정신에 탄광에루 갔겠소?··· 돌이켜보면 사실 난 영웅주의자였수다. 개인영웅주의자!··· 그래서 책임비서동무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몰아준다고 게정을 부렸던거지요. 이제야 그걸 깨달았으니··· 늦었지만 어쩌겠수. 책임비서동무, 내가 그만 죽을 죄를 졌으니 제발 여기 제 집으로 다시 올수 있게 도와주시오. 예?··· 책임비서동무.》

《···》

전진욱은 저도모르게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허필웅은 긴장하여 숨소리까지 죽였다.

숨막히는 침묵, 전진욱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여 입에 물고는 몇번이나 라이타를 켜대였다. 그때마다 바다에서 불어치는 마파람이 순시에 불을 꺼버리군 했다. 마침내 두손을 오그려붙이고서야 겨우 불을 붙였다. 한모금 페장깊이 들이삼키고는 후ㅡ 하고 후련히 내불고나서 껄껄 웃었다.

허필웅이 참다못해 부르짖었다.

《어째 웃으시오. 예? 책임비서동무, 내 정 여기 엎드려 빌어야 시원하겠소?》

소리내여 웃어대던 전진욱이 힐난의 눈빛을 그에게 던졌다.

《오늘은 왜 그리 쬐쬐하게 구시오?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그럼 어째 대답을 주지 않습니까?》

《난 이미 대답을 주었소.》

《뭐?··· 책임비서동무, 좀 똑바로 말해주시오. 언제 대답을 주었다구요?》

《벌써 몇달전에!··· 부지배인동무, 그때 내 이미 부지배인동무의 자리가 그냥 그대로 있다는걸 말한 일이 있지요? 승용차도 운전사도 사무실도 그냥 그대로 부지배인동물 기다리고있다고!··· 생각나지 않습니까?》

《?!···》

허필웅은, 기골이 장대하고 거쿨지고 아귀센 이 사나이는 대번에 무너져버리는듯 했다. 호흡이 멎은듯 그 자리에 딱 굳어지더니 이윽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거렸다. 다음순간 무거운 몸을 지탱하는데 육체의 힘을 깡그리 짜내는듯 숨소리도 무겁게 씨걸거리더니 전진욱의 두손을 꽉 움켜잡았다.

《책임비서동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 알아주어서. 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지배인동무, 사실 우린 처음부터 배짱이 맞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책임비서로 올 때 남다른 기질을 가진 허필웅이라는 사람을 점찍고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같이 손잡고 성강의 주인이 되여 일을 내밀 생각이였는데 그만 길이 엇나갔단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누가 길을 에돌았는가, 내가 에돌았는가 아니면 허동무가 에돌았는가?··· 사실 우리야 길을 에돌새가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난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허필웅은 두손을 맞잡고 비틀며 말했다. 《내 이제부터 성강의 진짜 주인이 되겠습니다. 정말이우다.》

《좋습니다.》 하고 전진욱이 역시 감동에 젖어 말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손잡고 같이 일을 잘해봅시다. 성강의 진짜 주인들이 돼서 말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허동무에게서 이걸 바라십니다.》

《예, 장군님께서?···》

전진욱은 뿌옇게 번뜩이는 그의 두눈을 마주보며 흥분어린 목소리로 계속했다.

《아마 장군님께선 허필웅동무가 성강에 다시 왔다는걸 아시면··· 대단히 기뻐하실겁니다. 그럼 허동무가 이제 자기 직무에 다시 돌아오는 문제는 내가 상급당에 제기하여 인차 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무, 정말 고맙습니다.》

허필웅의 목소리는 어느덧 눈물에 젖어들고있었다.

바다와 하늘이 맞붙은 수평선 저 멀리로 따갑게 불타는 별찌 하나가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져내렸다. 눅눅하고 훈훈한 바람결을 따라 쏴ㅡ 처절썩ㅡ 쉬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넘실넘실 뒤번져지는 희미한 물갈기우에서 파랗게 펀뜩이는 린광, 은하수가 흐르는 저 하늘과 맞붙은채 거세게 호흡하는 바다의 장쾌한 음향, 바다는 잠들지 않고있었다. 이밤도 우주의 무한한 시간을 따라 변함없이 반복되는 삶을 읊조리고있었다.

 

그로부터 한달후의 8월초의 어느날 허필웅은 상급당의 결정에 의하여 본래의 직무에 다시 돌아왔으며 9월에 들어와 서해기숡의 영천화학공장에서 대형산소분리기를 해체하여 이동설치하는 전투가 시작되면서 지배인과 같이 그 일을 맡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