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1

제 5 장

11

 

대형산소분리기를 해체하여 날라오는데 두달이 걸렸다. 내각의 일부 일군들은 다른 공장들의 전례로 보아 대형산소분리기를 해체하기 시작하여 설치하기까지 몇년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복잡한 물리화학설비여서 설비의 재료만 해도 강재와 동합금, 알루미니움재료, 가소물재료 등 전기, 자동화, 기계의 종합체로서 자칫하면 깨여지고 부서지고 변형이 가서 못쓰게 되므로 세계적으로 이러한 설비를 일단 설치하고 운영하다가 다시 뜯어옮긴 례는 단 한번도 없다는것이 그들의 론거였다.

영천에서 멀지 않은 한 공장에서도 대형산소분리기 한기를 옮겨갔지만 끝내 운전을 못하고 몇년새에 그만 파철무지로 되고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강은 해낸다. 이제 어떻게 하나 두고보라!》

철도화차로 150량분에 달하는 설비를 두달내로 해체하여 날라온 지배인 김용삼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데 그는 그새 강마르다 못해 얼굴에 퍼런 빛이 돌았다. 입술은 말라서 트고 목이 가늘어지고 매양 실룩거리는 눈시울밑에서는 먼지낀 주름살이 파르르 떨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책임비서가 그새 《ㅈ철》공장개건과 대형산소분리기의 기초를 완성하느라고 눈에 띄게 핼쑥해졌다고, 얼굴이 누렇게 뜨고 입술이 꺼멓게 죽었다고 걱정을 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허필웅이 노여운 소리를 했다.

《책임비서나 지배인동무의 눈엔 이 허필웅이같은건 보이지도 않습니까? 나도 몸이 좀 축갔다고 걱정하는척이라도 해주시오. 귀맛좋게스리.》

《이번에 부지배인동무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김용삼이 하는 말이였다. 《크고작은 관들이 하도 많다나니까 운반도중에 삐쭉삐쭉 우로 옆으로 삐여지군 해서 차굴안에서 사고가 나질 않나. 정말 별의별 죽을 고생을 다 했지요.》

자기를 칭찬하는 말에 허필웅은 소리내여 웃었다.

《엎음갚음이라구 나도 한마디 합시다. 우리 지배인동문 글쎄 공장밖에 나가면 성, 중앙기관 아무데나 막 뚫고들어가지요. 그리군 아바이들한테 땅땅 제기하구 또 얼렁뚱땅 덮쳐오는 특기가 있더란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더 빨리 일을 제낄수 있었지요.》

전진욱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뭐 서로 춰줄내기인가요?》

허필웅이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속담에 사람과 쪽박은 있는대로 쓴다구 버림받던 사람을 다시 써주구 오늘은 애들처럼 칭찬까지 해주니 아무튼 기분이 붕 뜨는구만요. 흥야라붕야라!···》

그새 허필웅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숱한 고생을 했어도 그는 더 젊어지고 혈기왕성해졌다. 정든 공장에 돌아와 자기 성미에 맞는 일감을 맡은데다가 설비들을 날라오던중 너무도 뜻밖에 꿈인가 생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왔던것이다. 하여 그는 기회만 있으면 그날의 일을 두고 끝없이 이야기를 펼치군 하는데 어떻게 번개치고 우뢰울던 하늘이 숨을 딱 죽이고 감격의 눈물만 쏟았는지 그리고 눈이 먼것처럼 허둥거리던 자기가 그만 한순간 우산밑에서 계시는 그이의 안광에서 강렬한 섬광이 펀뜩! 하는것을 띄여보고 별안간 가슴을 쾅 때리는 거세찬 충격에 어떻게 《장군님!》 하고 부르짖었는지 목이 메여 말하군 했다. 그날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많은 세부들이 더 보충되고 이야기는 자꾸만 길어졌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상기하는지 허필웅의 두눈은 미소를 머금은듯 찌긋해지고 입은 버긋해져있다.

그들은 쇠바줄직장의 제품장과 3강철직장의 원료장에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짐함들과 바다가 구내철길을 따라 가득 무져놓은 관류들을 돌아보고있었다. 찬바람이 철길주변의 슬라크가루를 눈보라처럼 휘뿌렸다. 사나운 겨울이 삭풍을 앞세우고 달려드는것이다.

《고생스레 끌어오긴 했는데.》 하고 전진욱이 말했다. 《난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첫째로 영천에서 오래동안 쓰지 않고 세워두다보니 숱한 설비, 부분품들이 잃어졌거나 못쓰게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함흥화학설계사업소 동무들이 와서 보고 이건 도저히 살리기 곤난하다는게 아니겠소.》

《예?》

《곤난하다니요?》

지배인과 허필웅 두사람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눈꼬리를 잔뜩 치떴다. 허필웅은 당장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함이라도 지를 태세였다.

《둘째 난문제는》 하고 전진욱은 자기 생각에만 묻혀 그들은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형산소분리기공장을 건설해야겠는데 그렇다고 건설기업소를 하나 불러들여야 하겠는가? 또 산소분리기엔 분당 수백㎥의 맑은 물을 용수로 쓰게 돼있으니 그 물을 어데서 끌어오겠는가? 수십리밖의 림명천에서부터 공사를 벌리는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또 오래전〈ㅈ철〉공장건설때처럼 제2수력발전소건설사업소까지 불러와야 하겠는가? 그들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공사량보다 훨씬 적은것을, 그것도 모든것이 흔할 때 2년씩이나 걸려 해냈는데 우린 제일 어려운 시기에 그보다 여섯배나 더 큰 공사를 단 몇달동안에 해내야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까놓고말해서 지금 우리에겐 생산에 맞물린 로력밖에 없고 그렇다고 다른 기업소까지 데려다 먹여살릴 힘도 없으니 이 난문제를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는지 좀 말해보시오.》

두사람은 입을 벌린채 굳어져버렸다. 지금까지 낡은 《ㅈ철》설비와 건물들을 들어내고 새 건물을 세우고 설비들을 앉히는데만도 온 기업소가 달라붙어 역사질을 했는데 이제 그보다 더 엄청난 공사를, 그것도 추운 겨울에 벌려야 했던것이다.

구내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고있었다. 차바퀴들이 야단스럽게 쿵쿵거리며 철길우에 먼지의 타래를 말아올렸다. 《ㅈ철》을 싣고 1강철직장으로 가는듯 했다.

세사람은 그 기관차가 멀어져갈 때까지 그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또다시 울려퍼지는 기적소리, 그것은 마치 동무들, 뭘 끙끙 앓고있는거요? 주저말고 끝까지 냅다 달리란 말이요! 하는 벅찬 웨침인양 공장구내를 휘젓고있었다.

그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있던 김용삼이 말라터진 입술을 혀로 추기며 말했다.

《책임비서동문 무슨 결심이 서있는것 같은데··· 다른건 또 돌격을 한다치구 거 설비조립이야 우리자체로 해낼수 있겠습니까? 우린 다 금속쟁이들뿐인데···》

《갑시다.》 전진욱이 말했다. 《가서 방도를 토론합시다. 모여앉으면 좋은 안들이 나올겁니다.》

아무때나 돌격구령을 웨치면 군중은 지치고 믿지 않는다. 가장 성숙된 기회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돌격구령을 내리고 돌격하여 점령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번, 두번 전투에서 승리하면 세번째, 네번째돌격도 군중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다음날 련합기업소당 집행위원회는 대형산소분리기 건설공사의 돌격구령을 내렸다. 건설지휘부가 구성되고 총지휘는 책임비서가, 설비조립과 건설의 돌격대장은 허필웅이 맡았다. 지배인은 이번에도 대외사업, 물자보장을 맡았고 공장의 생산지휘는 물론 기사장이 담당하였다. 온 공장이 맞교대에 들어갔다. 한교대 로력은 뚝 떼여 건설공사에 돌린것이다.

황상보의 돌격대는 충동리 림명천의 물을 끌어오는데서 핵심인 뽐프장건설과 강밑바닥 600m구간에 대형콩크리트 다공관을 늘이는 공사를 맡았다. 돌격대장 자신은 갖가지 시공에서 귀신같다는 김윤식이며 김학수와 같은 《아바이》들과 같이 설비조립련합기업소와 함흥화학설계사업소에서 온 기술자들을 돕는 일, 산소분리기설비조립에 달라붙었다.

 

×

 

된추위가 터진 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전진욱은 림명천의 가물막이제방이 터졌다는 급보를 받고 돌격대전투장으로 나갔다.

돌격대는 그새 한쪽에서 뽐프장을 건설하고 한쪽에서는 림명천의 얼음을 까고 물속에 들어가 강바닥에 자갈을 깔고있었다. 맑은 물을 얻기 위한 려과층이였다. 거기서 뽐프장까지 대형콩크리트다공관을 련결시켜야 한다. 그런데 강상류쪽에 있는 광산에서 나온 미광이 물에 섞이여 흐르고있으므로 가물막이공사를 했는데 그만 어느 한 물곬이 터진것이였다.

전체 돌격대가 물속에 들오가 한줄로 늘어서서 터진 물곬을 막고있었다. 벌써 3시간째 그렇게 버티고있다고 한다.

전진욱은 억이 막혔다.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가? 사람들을 다 동태짝처럼 만들자고 이러는가? 도대체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가?···

시퍼렇게 얼어서 굳어진 젊은이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책임비서를 보고 뭐라고 소리치는데 괴롭게 비틀린 입술에서 휘파람소리같이 가는 신음소리만 새여나오고있었다. 얼굴은 물론 입도 혀도 다 얼러붙어버린것 같았다.

전진욱은 기슭의 허연 얼음장을 뿌적뿌적 짓밟으며 그들이 버티고있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무작정 뛰여들다보니 그만 깊은 물속, 려과층을 얻으려고 깊이 파고있던 곳에 들어섰다. 대뜸 허리까지 물에 빠졌다. 짱ㅡ 하는 차고 예리한 충격과 함께 숨이 꺽 막히고 다음순간엔 무수한 바늘침이 온몸을 찔러대는것을 느꼈다. 손발이 저려들었다. 강반을 휩쓰는 차디찬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였다.

그는 서로 어깨성을 쌓고 굳어져있는 청년들과 처녀들을 잡아흔들었다.

《왜 가만있어. 응? 이거 다 얼어붙은게 아니야?》

젊은이들속에서 누군가 가까스로 입을 놀려 《채ㅡ 책임비서도ㅡ동지. 발을 뽀ㅡ 뽑지 못해서···》라는 흐느낌소리를 짜내였다. 이게 누군가?··· 돌격대참모장 김남규이다. 체통이 작고 성미가 맵짠 이 사람이 이런 무서운 전투에 사람들을 불러냈는가?

후에 알아본데 의하면 누가 선동을 했거나 구령을 친것이 아니라고 한다. 제일먼저 누가 거기에 뛰여들어갔는지 그것도 알수 없다고 했다. 모두가 일시에 그저 어쩔새없이 뛰여들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돌격대가 제일 미워하는것은 광산에서 흘러내린 미광이다. 그것이 섞인 물은 산소분리기에 먹이지 못하므로 깊은 려과층을 손톱이 모지라지게 파내던중이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돌격대가 《날개모래》라고 하는 그것들이 사람들을 도왔다. 물과 함께 흘러내리던 그것들이 어깨성을 쌓은 사람들의 발과 다리, 허리에 걸리고 차츰 쌓이기 시작한것이였다. 《날개모래》(미광)도 흐르다 멎어 쌓이면 그대로 돌처럼 굳어진다. 마침내 그것이 터진 물곬을 몸으로 막은 사람들의 다리며 허리까지 파묻고 땅땅 굳어지고있었다.

전진욱은 저도모르게 회오리치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머금고있었다. 허연 입김만 내뿜고있을뿐 퍼렇게 얼어붙어버린 돌격대원들의 참혹한 정상과 또 그리고 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며 울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 있소. 내 이제 파내줄게. 응? 먼저 참모장부터 파내구··· 그담 체네들··· 조금만 참으라구. 응?》

이윽고 《날개모래》에 파묻힌 사람들을 파내는 책임비서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는것을 보자 혼자서는 움직일수 없어 말뚝처럼 박혀있던 돌격대원들도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그들중 한 처녀는 엉엉 어린애처럼 울다못해 그의 팔을 붙잡고 부르짖었다.

《책임비서···동지,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우린··· 이ㅡ 일없습니다. 정말··· 입니다. 울지 마십시오.》

《오. 그래, 난 울지 않는다. 그저 동무들이 너무 장해서··· 동문 이름이 뭐지?》

《최성희입니다.》

《동문?》

《김춘옥··· 입니다.》

《고맙다. 성희, 춘옥이 그리구 동무들 다··· 정말 고맙소.》

다행이다. 눈물은 얼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책임비서를 흐느껴 부르며 울고있는데 늦게나마 운전사 라범도가 숨소리도 거칠게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전진욱은 그만 목이 메여버려 손짓, 눈짓으로 처녀들부터 뽑아주라고 했다.

한사람의 다리를 뽑는데 10분씩이나, 때로는 그 이상이 걸릴 때도 있었다.

마침 점심식사시간이였다. 취사원들이 밥을 담은 버치며 늄국통 등을 이고 나타났다. 그 처녀들이 또 많은 사람들을 울리였다. 정신없이 돌아가며 자기 녀동무들을 붙들고 얼굴을 막 비벼대는가 하면 남자들의 언손을 어루쓸며 왕왕 울기만 했다. 참모장 김남규가 얼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그 처녀들을 돌아가며 때려주었다.

《야, 엄향실, 이렇게 울기만 하겠어?》

《명월이 넌 또 뭐야. 사람부터 뽀ㅡ 뽑아야 할게 아니야?》

강반을 휩쓰는 바람도 웡웡거렸다. 하늘에서는 찢어진 구름장들이 바람에 쫓기여 황황히 날고있었다.

오늘은 그냥 우는 날인가?··· 울면서 사람들을 뽑아냈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뽑아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진정 눈물이란 무엇인가.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운다. 그런데 오늘은 무엇때문에 울고 또 우는것인가?

자기들이 바치는 그 헌신이 장해서 울었다. 서로가 한마음이 되여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가고있다는 자부심이, 긍지감이 그들을 울게 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을 다 뽑고 그 자리에 모래를 담은 마대에 돌을 처넣고는 그만 기진하여 모두 물속에 주저앉고말았다. 밖에 나가면 젖은 몸이 단번에 얼어버리기때문이였다. 물속이 더 나았다. 취사원들이 돌아가며 사람들의 입에 밥을 떠넣어주었다. 물속에서 일하던 돌격대원들 자신은 손이 곱아서 밥술을 들수 없었다. 책임비서까지 나서서 밥이며 국을 떠넣어주자 처녀들은 그만 밥이 아니라 눈물을 씹어삼키기 시작했다.

《책임비서동지!ㅡ》

《일없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전진욱은 처녀들의 입에 밥술을 떠넣어주며 그자신은 더운 눈물을 씹고있었다.

《이러지 말라구. 자, 어서 밥을 넘기라는데.》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무슨 소릴. 그건 내가 동무들에게 할 말이야.》
고마움과 감사의 념에 울고 또 운다. 이럴 때엔 눈물만이 그 마음을 다 말해줄수 있다. 그리하여 돌격대원들이나 책임비서나 지금 꼭같이 서로를 더 잘 알고 더 가깝게 여기게 되였다.

전진욱은 사람들에게 이렇듯 많은 눈물이 있는줄 처음 알게 되는듯싶었다. 좋다, 맘껏 울게 놔두자. 이 눈물이 지금 이들 모두의 마음을 따뜻이 적셔주고있는 담에야 무엇때문에 굳이 그걸 막으랴.

그 순간 그는 멀지 않은 길가에서 또 한 처녀가 울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운전사 범도가 다가와 길가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처음엔 잘 알아듣지못했으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도 눈에 익은 그 모습,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너무도 달라진것이 많은 딸의 모습이였다. 뜻밖의 사고와 오랜 시일에 걸친 입원생활, 여러차례의 수술로 하여 더욱 작아지고 더 가늘어지고 더욱더 창백해진것만 같은 딸의 모습에 그만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느꼈다.

저도모르게 살얼음이 끼는 물을 손으로 젓고 첨벙거리며 길녘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함께 붙어서있다가 거의나 그림자처럼 힘없이 미끄러지는듯 다가오는 인복이에게 흙탕물로 매닥질이 되고 얼음버캐가 버석거리는 두발을 쑥 내밀었다.

《인복아!ㅡ》

목매인, 그리하여 거의나 들리지 않는 신음소리였다. 딸도 역시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흙물투성이인 그의 품에 서슴없이 안겨들었다.

《인복아, 끝내 이렇게··· 왔구나.》

그는 어망결에 《끝내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말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순간 혀를 깨물며 그 말을 도로 삼키였다.

《그동안 이 아버진··· 한번도 너를 찾아보지 못해서 안됐구나. 정말 무정하다구 원망했겠지?》

《아니, 안예요, 아버지.》 하고 인복은 눈물에 젖은 창백한 얼굴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목메여 속삭이였다. 《아버진 이렇게 매일 힘들게 일하시는데 난··· 그저 내 생각만··· 했어요. 보고싶어서,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해서··· 왜 한번도 오시지 않나 하면서··· 자꾸만 기다렸어요. 글쎄 인민군 군관이라는게 어린애처럼··· 정말 미안해요, 아버지.》

《인복아, 그 말을 들으니··· 고맙구나.》

뒤에서는 안해가 머리를 숙이고 솜옷의 목깃을 이발로 씹으며 흐느끼고있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매이던 딸이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으니 눈물을 떠나 무엇을 더 말할수 있으랴. 눈물의 언어, 눈물의 철학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는 그들이였다.

《인복아, 끝내 이겨냈으니··· 장하다, 장해》

그는 이 말밖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아버지에게 완쾌된 딸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보내주신 인복아!··· 그는 목구멍으로 쓸어드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사랑하는 딸의 두눈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는데 저도모르게 차츰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나오니 강반을 휩쓰는 찬바람이 젖은 옷을 사정없이 가죽처럼 꽛꽛하게 만들고 뼈속까지 얼어들게 하는것이였다.

《춥지, 아버지?》

인복이가 자기의 몸을 팽팽히 감싼 작은 군용외투를 벗으려 하는것을 손으로 막았다.

《아니, 얘 일없다.》

《아버진 막 떨면서두.》

《일없다니까.》

다음순간 그는 어떤 이상한 예감에 피끗 뒤쪽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순간 물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이쪽을 지켜보고있는 80여명 돌격대원들의 모습이 한폭의 커다란 사진처럼 한눈에 안겨왔다. 그러자 예리한 면도날로 어이는듯 가슴이 팍ㅡ팍ㅡ 찢기는것을 느꼈다.

《인복아, 난···》

그러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한 인복이가 작고 하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두 아버지마음 다··· 알아요.》

《고맙다, 얘.》

그는 인복이를 안해에게 보내고 돌격대원들이 있는 물속으로 다시 첨벙거리며 들어갔다. 그러자 전체 돌격대원들이 목메여 부르짖었다.

《책임비서동지, 들어오지 마십시오.》

《책임비서동지, 안됩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인젠 그만 돌아가십시오.》

눈물겹도록 정차고 고마운 돌격대원들이였다.

그는 물론 책임비서인 자기의 위치가 여기 얼음물속이 아니라는것을 그리고 뜻밖의 사정이 있어 일단 물속에 뛰여들긴 했어도 계속 돌격대원들과 같이 물속에서 일해야 할 리유는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당일군들은 언제나 겉발림식행세가 아니라 진심만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 흙탕물과 얼음버캐며 꽁꽁 얼어든 몸이 끝까지 낯내기로 되지 말아야 한다. 기자들과 촬영가들이 지켜보는 앞이라면 애당초 이 모든것이 낯간지러운 연기로 될것이나 지금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 얼음물속에서 먼저 자리를 떠선 안된다. 비록 돌격대원들은 리해하고 그래도 고마와하겠지만 자기의 량심만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때문이다.

《참모장.》 하고 그는 김남규를 소리쳐 찾았다. 《당장 처녀들을 숙소로 들여보내오. 그리구 남자들은 나와 같이 가물막이뚝을 마저 다지구 들어가자구.》

《아닙니다. 책임비서동지, 우리도 그냥 있겠습니다.》

처녀들이 울며불며 야단이였다.

남자들은 미안해서 쩔쩔매였다.

《책임비서동지, 우리가 다하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그는 더 말을 못했다. 얼마나 소박하고 진실한 청년들인가 이들중에는 한때 발길 닿는대로 정처없이 류랑하던 소년들도 적지 않다. 《고난의 행군》시기 부모들을 잃고 각지로 나돌던 그 소년, 소녀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성강을 현지지도하시고 새로운 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하자 즉시 자기의 자랑높은 고향땅으로 달려왔는데 어느새 이렇듯 미더운 청년들로, 성강의 돌격대원들로 자라난것이다.

《그럼》 하고 그는 눈물에 젖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큰소리로 말했다. 《처녀들은 나가서 불을 피우라. 우리 남자들이 나가자마자 몸을 푹 녹이게. 알겠지?》

좋은 타협안이였다. 처녀들이 일시에 목소리를 합쳤다.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강기슭에 우등불들이 활활 타올랐다. 바람이 불면서 불찌들을 날리고 이쪽저쪽으로 화염을 날리였다. 전체 돌격대가 우등불들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며 몸을 말리는데 책임비서만은 그속에 끼울새가 없었다. 당위원회부원이 달려와 당중앙위원회 박유창 제1부부장이 전화로 찾는다고 알렸던것이다.

전진욱은 물에 흠씬 젖은 옷을 갈아입을새도 없이 그대로 차를 타고 달려갔다. 박유창의 전화는 새 《ㅈ철》을 연구완성하고 개건하는데서 위훈을 세운 사람들의 수훈내신서를 빨리 만들어 올려보내라는 독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