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8

제 4 장

8

 

성강이 또다시 들끓었다.

박유창 제1부부장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시는 선물을 가지고 직접 성강에 왔다. 선물전달식이 성대히 진행되고 격정에 넘친 사람들이 연단에 달려나가 맹세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일성동지혁명사상연구실》 정문현관에 걸린 조선화《성강의 파도》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보고 또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군 했다. 그것은 심장의 느낌으로만 받아안는것이여서 해설도 필요없었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보약들이 용해공, 압연공들을 비롯한 수많은 로동자들에게 직접 전달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검은 상어알 한알한알을 마음속에서 끓고있는 뜨거운 맹세와 함께 눈물속에 삼켰다.

갑자기 모든것이 속도를 높였다. 장군님께서 알아주시고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는 성강사람들이라는 크나큰 영예가 그들을 새로운 위훈에로 떠밀어주었다.

맨 처음 강괴겁이 성공되였다. 축하의 꽃다발이 안겨지고 방송차가 폭풍같은 음향으로 온 공장을 들썩이게 했다. 대규모 오리목장건설도 완공단계에 들어갔다. 봄이 무르녹으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더 따스해지고 더더욱 넓어져갔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것은 새 《ㅈ철》과 제대군인용해공 박철진을 대하는 서옥영의 심장뿐인듯 했다.

 

×

 

그들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마주서있었다. 서옥영이 문을 열고 나서는데 박철진이 떡 막아섰던것이다.

저녁무렵이여서 날씨는 쌀쌀했다. 봄철에는 특히 이 시간에 바다바람이 더 세지군 한다.

옥영은 그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박철진이 그의 손회목을 부여잡으며 숨결도 거칠게 부르짖었다.

《안돼, 오늘은 그냥 못가!》

옥영은 재빨리 두손으로 솜옷의 목깃을 올려 자기의 얼굴을 가리웠다.

《철진동무, 제발···》

《안돼, 오늘은 결판을 짓구야말겠소.》

철진이는 여전히 옥영의 한손을 집게처럼 꽉 물고있었다. 얼핏 사위를 둘러보고는 옥영이를 끌고 스산하기 짝이 없는 연진늪으로 가는것이였다.

옥영은 고함을 지르고싶었으나 목이 꽉 메여 한마디도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앙버티려고 해보았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우악스럽게 끌고가는 철진이의 팔힘은 무서운것이였다. 본래 운전사였다더니 제대되여 용해공으로 일하면서 더 팔뚝시가 굵어진 모양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오고가는 사람도 없었다. 새 《ㅈ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종전의것도 살리지 못했으므로 지금은 죽은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바람이 세차졌다. 서켠하늘에 어줍게 비껴있던 불그레한 노을도 어느새 해쓱해지면서 소리없이 스러져가고있었다.

그들은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연진늪의 가장자리에 멎어섰다.

이제 여기서 여차직하면 늪에 빠뜨릴 잡도리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옥영은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런 시꺼멓고 스산한 늪으로 끌고온단 말인가. 저 넓은 바다에, 옥영이 어릴 때부터 정붙이고 살아온 저 파도세찬 푸른바다에 빠뜨리면 못쓴다던가?···

《인젠 말해보오.》 하고 박철진이 명령하였다. 여전히 거칠고 몰풍스럽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어째 대답을 피하는거요. 도대체 뭣때문이요. 말을 해야 할게 아닌가? 그래 내가 그렇게두 마음에 안들어?》

《···》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옥영은 죽더라도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꺼먼 진창이나 다름없는 늪가를 둘러보다가 그냥 그 자리에 가만이 꿇어앉으며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쥐였다.

《이건 뭐요, 응?》 박철진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냥 앉아서 버티겠다는거요?》

《···》

아무 말도 안할테다, 입을 열면 그대로 말이 이어지고 나중에는 그가 바라는대로 끌려가고말것이다.

어둡기 시작했다. 인제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늪가에 나와있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할것이다. 늪에서는 비릿하고 씁쓸한 냄새가 풍겼다. 연진늪이여서 풀들도 없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물결도 찾아볼수 없는 늪, 오직 시꺼먼 가루가 녹아있는 시꺼먼 감탕뿐···

《좋아.》박철진이 다시 소리쳤다.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겠소. 알아두오. 난 무슨 일이든 끝장을 보고야마는 성미요. 절대 그대로는 돌아가지 않아!》

《···》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나를 강요하지 마세요, 강요한다구 입을 열 내가 아니라는걸 알아주세요.···

그런데 이리도 가슴이 아프고 쓰린건 무엇때문일가? 정말이지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사랑의 눈물과 사랑의 아픔을 다 알수 있을가?···

옥영은 머리를 수그리고 박철진이 담배연기와 함께 가슴속에 들어차있는 분노와 의혹, 안타까운 기대와 또 이름할수 없는 무엇인가를 다같이 후ㅡ 하고 내뿜고있는것을 귀담아 듣고있었다.

몸이 얼어들고 앉음새가 불편해지면서 차츰 감때사납고 고집스러운 그가 밉광스러워졌다. 그리하여 옥영은 처음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유치원에 가서 수림이를 찾아야 해요.》

《걱정마오. 수림인 용세네 집에서 밥을 먹고있을거요. 용세 누이가 돌봐주기로 했소.》

《예? 그럼···》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기어이 수림이 친구가··· 아니, 아버지가 되겠다구.》

옥영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는 되지 않을것이다. 수림인··· 절대 성칼사나운 동무같은 사람에게 정을 붙이지 못할것이다. 그 애가 얼마나 병적이라구!···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눈을 뜨고 시꺼먼 늪우에 해쓱한 빛을 던지기 시작했다. 시꺼먼 어둠이 시꺼먼 늪을 뒤덮었으므로 천궁의 별지도가 희미하게나마 거기에 그려지고있는것이다.

박철진은 세번째 담배꽁다리를 던지고 네번째 대를 꺼내여 피워물고있었다.

옥영은 여전히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꽁초는 계속 늪속에 던져졌다. 열대, 열한대··· 드디여 동강이 난것 같다. 호주머니마다 다 뒤져보나 더는 담배가 없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엔 발끝으로 늪가의 흙을 파던지기 시작하는데 마치도 옥영이가 앙버티고있는 옹고집의 방어진지를 파서 허물어버리려는듯 했다.

옥영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옥물며 생각했다. 대답하지 않을테다. 그렇게 쉬이 대답할 내가 아니다.

박철진은 담벽처럼 버티고 서있고 옥영이는 저려나는 발을 손으로 꼬집으며 앉아있었다. 무서운 의지의 대결이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옥영이.》

참다못해 그가 부른다.

《옥영이.》

좀 더 큰소리였다. 그러나 옥영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옥영의 무릎앞에 꿇어앉았다.

《좀 말해보오. 정말 그렇게도 내가 싫소?》

《···》

《한마디만!··· 싫으면 싫다고 말하오. 뭣때문에 싫어하는지 그건 묻지 않을테니 한마디만 해주오. 내가 정 맘에 안 들어?》

《···》

《정 싫다면···》 이번에는 거의나 침통한 목소리이다. 《그렇다면 난··· 가겠소.》

《···》

옥영은 대답대신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더이상 견딜 힘이 없었다. 아픔과 설음, 눈물속의 허탈감, 천천히 쓰러지면서 신음소리를 내였다.

《옥영이!》 박철진이 부르짖었다. 《왜 그래, 응?》

그는 쓰러지는 옥영이를 덥석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 들어올리며 허리를 펴고 일어서더니 곧추 큰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옥영은 힘없이 버둥거렸다.

《아니, 일없어··· 내려놔주세요.》

몇번 더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철진은 더 힘주어 껴안는것이였다.

《안 놔주겠어, 억지로라도 안구가겠어.》

《뭣때문에··· 어째 날··· 못살게 굴어요?》

《사랑하니까, 옥영이도 날 사랑한다는거 알구있어. 그러면서도 무엇때문인지 그걸 숨기구있을뿐이야. 안 그래? 솔직히 말해봐. 내 말이 맞지?···》

《···》

대답대신 옥영은 울기 시작했다. 억눌린 흐느낌소리가 터졌다.

온몸을 떨며 크낙한 슬픔에 목메여 울었다. 풍부한 미래와 진실한 사랑, 무지개 같은 희망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악을 쓰는것처럼 몸부림쳤다.

《싫어, 정말야. 난··· 다 싫어!》

박철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뭐라구? 다시 말해보오.》

《내려놔주세요. 난··· 정말 싫어.》

내려놓는다.

다음순간 옥영은 후려맞은것처럼 비청거렸다. 별안간 철진이가 옥영의 어깨를 붙들고 사정없이 흔들어대였던것이다.

《내가 머저리였나. 응?!》 하고 박철진이 헐씨근거리며 거칠게 내뱉는다. 《옥영이 진짜 싫어하는걸 내가 여태 쫓아다녔단 말이야? 정말 내가 잘못 본거야?》

《···》

옥영은 손으로 볼을 싸쥐고 울었다. 슬픔과 아픔에 겨워 목놓아울었다. 박철진은 망두석처럼 그의 앞에 서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은 시간의 흐름도 망각하고있었다.

불현듯 승용차의 밝은 불빛이 그들의 눈을 때렸다. 승용차가 큰길가에 와서 멎어선것이다. 이어 여러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옥영의 성구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일가?··· 누군가 밖으로 나와 옥영이를 소리쳐부르고있다.

《옥영이!》

직장장의 목소리였다.

《옥영이!··· 젠장, 어디 갔어?》

《사고?···》 박철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옥영이 없는새 사고난게 아니야? 나때문에, 응?···》

옥영이도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비칠했다. 지금껏 너무 오랜 시간 꿇어앉아있었으므로 발이 말을 듣지 않았던것이다. 한발 두발 옮기다가 그만 주저앉았다. 박철진이 허리에 팔을 감고 일으켜세우는것을 사납게 뿌리쳤다.

《싫어요. 다치지 마세요!》

비틀거리며 큰길로, 자기의 성구기로 걸어갔다. 박철진이 따라오며 도와주려 했으나 무작정 뿌리치며 허우적거렸다.

성구기앞에는 새 《ㅈ철》연구성원들이 책임비서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고있었다. 《ㅈ철》공장 초급당비서 허군수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보십시오, 책임비서동지. 어제 구운거나 그저께 구운거나 여기 성구기에서는 배합비률이 꼭 같습니다. 정광은 물론 모든것을 련 3일째 꼭같은 비률로 빚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회전로에서 구워낸 이 알들을 보면 날마다 달라집니다. 깨여지는 알수가 점점 적어지고있습니다. 처음 시험로에서 해보던 때와 거의 같아집니다.》

《음ㅡ》 하고 전진욱은 그것들을 만져보고 쓸어보고 바닥에 때려 보기도 하며 물었다. 《원인이 뭘가. 응? 어떻게 되여 날마다 나아지는가 말이요?》

《모르겠습니다.》

《알아내야 돼, 그걸 알아야 성공이 확고해져.》

그는 아이들이 못치기를 하듯이 구단광알들을 련속 바닥에 때려 보고있었다.

《하ㅡ 이거 누가 빚었지?》

《우리 옥영입니다.》 허군수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챠, 이 동무가 오늘따라 어디 갔어?···》

그때 옥영은 그의 등뒤에 가있었다.

《동무뒤에 숨어있구만.》

책임비서가 웃으며 하는 말에 허군수는 몸을 홱 돌렸다.

《숨긴 왜 숨어, 이리 나오라구. 내가 말한거 사실이지? 물량까지 꼭 같았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물량을 강조하는것은 새 《ㅈ철》이 습식이기때문이였다.

사실 여기에 옥영은 아무런 도움도 준것이 없다. 연구사들이 직접 배합비률을 정하고 자기는 성구기를 돌렸을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옥영이까지 성과에 끌어들이려 한다. 자기들의 기쁨속에 옥영이도 넣고싶어하는것이다. 아니, 옥영이만이 아닌 세상사람모두를 끌어들이고싶을것이다.

《우리는 습식이니까.》 하고 책임비서가 말했다. 《물과 관련되는 원인을 찾아야 할거요. 혹시 얼었다녹았다하는데 원인이 있을수도 있소. 그래 내 말이 어떻소?··· 성구기운전공인 옥영이가 한번 말해보라구.》

《저야 뭐··· 아는게 있습니까. 하지만 얼었다녹았다하는데 원인이 있다면··· 구멍탄을 빚을 때···》

허군수당비서가 어처구니없어 소리쳤다.

《구멍탄?··· 야, 여기 구멍탄이 무슨 상관이야?》

《아 들어보기요.》 책임비서가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일없소, 어서 말해보라구.》

《저··· 구멍탄을 빚은걸 보면···》 하고 옥영은 그만 주접이 들어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었던 구멍탄을 땔 때하구 그저 바깥에 말렸던거 땔 때하구 다르지 않습니까. 얼었던건 자꾸 부스러지는걸 보면···》

별안간 허군수가 이마를 탁 쳤다.

《아! 그래, 그래!》그는 마치 눈앞에서 번쩍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는듯 손을 들어 머리로 가져가며 흐느낌소리같이 부르짖었다. 《책임비서동지, 옳습니다. 얼었다녹았다하는··· 거기에 무슨 쪼간이 있습니다. 인젠 찾은것 같습니다. 문제는 물이 얼었다녹았다하는···》

《바로 그렇단 말이요!》

책임비서도 시꺼매진 손으로 그의 이마를 쳤다. 웃음소리, 모든 사람들이 어린애들처럼 되여간다. 허군수가 또 청을 높인다.

《옥영이, 이제 보니 너 그저 서옥영이가 아니구··· 더 멋있는 옥영이구나. 응? 거 뭐랄가···》

책임비서가 웃으며 튕겨주었다.

《은옥영, 금옥영이지.》

《옳습니다. 은옥영, 금옥영!···》

그들은 아마 옥영이가 녀자만 아니라면 한가슴에 꽉 끌어안고 정신없이 잔등을 두드려주었을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옥영은 저도모르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난 그저 그들이 말하는것을 듣고, 그들이 물과 관련된다고, 얼었다녹았다 하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가 하기에 한마디 했을뿐인데··· 그들이 다 생각했던걸 말했을뿐인데 괜히 나를 칭찬하는거야.

《책임비서동지.》 허군수가 웃으며 말했다. 《당장 시험해봅시다. 뭐 오래 끌거 있습니까.》

《그래야지.》 책임비서도 웃고있다. 《그러자면 커다란 랭동고가 하나 있어야겠는데··· 없으면 뭐라나. 랭동기가 있는 집마다 한바께쯔씩 나눠주면서 얼쿠라구 해. 우리 집, 지배인, 기사장집에도 가져가구. 그렇게 얼쿤것들을 얼지 않은것들과 갈라서 따로따로 회전로에 넣어 구워보면 진단은 확정적인거야.》

그것만 확인되면 지금까지 시험로에서 성공한것이 진짜회전로에 와서 실패한 원인을 추운 겨울에서 찾아야 한다. 한번 얼었던 알들만 회전로에 들어가 부스러지고 깨여졌다는것을 말해주기때문이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것때문에 숱한 경험자들과 학계의 이름난 사람들, 권위자들이 모여들어 온 한해겨울 심각한 론쟁을 벌렸다는것이?!···

서옥영은 넘치는 기쁨을 누를길 없어 노상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 전진욱책임비서며 허군수당비서를 바라보며 불시로 눈물이 핑ㅡ 어리는것을 느꼈다. 저들은 당일군들이다. 당일군이라면 흔히 사람들을 불러 담화하고 회의를 열어 대중을 고무하고 불러일으키는 사람들, 즉 사람과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근래에 와선 당사업을 별나게 하는것 같다. 그들은 늘 로동자들과 같이 생산현장에서 살고있다. 로동자들과 같이 일하고 담화하고 걸죽한 롱질도 잘한다. 기술문제도 토론한다. 지금은 당일군들과 행정일군들, 기술자들을 특별히 갈라볼수 없게 되였다. 그들자신이 기술자들이기도 하다. 근래에 와선 기술이 없는 당일군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였다. 그들은 한시도 생산과 떼여놓고 자신을 생각지 않으며 생산을 직접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그때 책임비서가 불시로 큰소리를 질렀다.

《여, 동문 어떻게 여기 와있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책임비서가 보는 곳, 문가에 서있는 박철진에게로 쏠렸다.

《저···》 박철진이 당황하여 중얼거린다. 《책임비서동질 좀 만나볼가 해서··· 왔댔습니다.》

《나를?··· 왜?···》

철진은 갑자기 군대때처럼 차렷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리하여 어줍게 대답하던 젊은이가 대바람에 그쯘하고 날파람있는 모습으로 변모되였다.

그러나 옥영은 한순간 그의 눈가에서 초물처럼 진한 물기가 번뜩인것을 놓치지 않았다. 웬일일가? 그리도 감때사납던 사람이 눈물은 왜?!···

《책임비서동지.》 웬일인지 박철진의 쇠소리나던 목소리도 눈물에 젖어드는듯싶다. 《사실은 제 사적인 일때문에 찾아왔었는데···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눈굽이 찡해나는것을 참을수 없었습니다. 제ㅡ 제가 못난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떨쳐나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강철생산과제를 기어이 수행하자구 뼈를 깎으며 일하는 이때, 강철생산에 운명을 걸고있는 이때 제대군인용해공이라는게 무슨 개인적인 일이나 들구 책임비서동질 찾아왔으니··· 제가 하마트면 아주 너절한 놈이 될번 했습니다.》

그는 또 한번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거수경례를 했다.

《책임비서동지, 그럼 전 돌아가겠습니다.》

군대식으로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간다. 그때 전진욱은 눈앞에 서있던 서옥영이 흠칠하는것을, 그만에야 입술을 옥물고 눈시울을 바르르 떠는것을 보았다. 언젠가 《강철령감》이 세포비서 철진에 대하여 자랑하면서 옥영이와의 사랑의 숨박곡질에 대해 말하던것이 떠올랐다.

《제대군인총각이 글쎄 어쨌다구 그러는지 벌써 몇달째 애를 멕입니다.》

작은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대하지 말며 큰일이라고 해서 지내 무겁게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전진욱은 구단광을 얼쿠기 위한 분공을 주고는 서옥영을 불렀다.

온 겨우내 그들이 《ㅈ철》연구실을 겸해쓰던 휴계실로 들어갔다.

허군수도 불렀다.

《내 일전에〈강철령감〉한테서 》 하고 그는 서옥영을 자리에 앉도록 손짓하며 허군수에게 말했다. 《이 동무 문제로 제기받은게 있었는데 그만 일이 바쁘다보니 깜빡 잊어버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했소.》

《서옥영이 문제라니요? 아 이 동무야 착실하구 깐깐하구··· 방금 책임비서동지두 우리〈ㅈ철〉공장의 은옥영, 금옥영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강철령감〉은 그렇게 말하지 않더구만.》

《아 그 〈령감〉이 〈ㅈ철〉공장에서 제일 자랑하는 꽃을 어째 헐뜯는다는겁니까? 》

《ㅈ철》이 잘되여가니 그는 줄곧 기분이 떠있는것이다. 심중한 론의를 해야겠는데 자칫하다가는 롱질로 되여버릴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진욱의 이 생각은 공연한 우려였다. 서옥영이와 아까 나타났던 하나강철의 5호전기로 세포비서인 제대군인 박철진에 대하여 대충 설명하자 허군수는 대바람 눈살이 꼿꼿해졌다.

《아니 옥영이, 그건 또 무슨 곤대짓이야?》

전진욱은 그의 거치른 말투를 탓하지 않았다.

사실 현장의 당일군들은 늘 로동자들과 같이 일하며 소리치고 욱박지르는데 습관되여있다. 귀청을 찢는 소음과 뜨거운 불속에서 한순간도 헛눈을 팔새 없는 격렬한 작업환경이 그렇게 짧고 크고 격하게 소리치게 만든다.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투박하고 거친 말속에 뜨거움이 있다.

그런것도 모르고 혹시 용해공들이나 압연공들을 비롯한 제강소의 로동자들과 이렇게 말하는 당일군들을 두고 틀려먹었다느니, 점잖지 못하다느니 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전기로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전기로앞이나 압연기앞에서 로동자들과 같이 다문 한두시간만이라도 일해본다면 아마 불이 얼마나 뜨겁고 격렬한가를, 그 불을 다루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뜨겁고 진실한가를 대번에 다 깨닫게 될것이다.

《야, 제대군인이 어째서 그래. 응?》 하고 허군수는 제김에 분해서 풀무처럼 씩씩거렸다. 《제대돼와서 반년만에 벌써 세포비서를 하잖아? 옥영이 너 눈알이 뒤통수에 가붙은게 아냐?》

《···》

대답이 있을리 없다. 전진욱은 담화방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참견하지 않았다. 난로의 탄불이 제대로 붙고있나 살피고 또 무엇인가를 찾으며 부시럭거렸다.

《그래두 우리〈ㅈ철〉공장에선 옥영이가 제일이라구 했더니만 너 별나게 돼가는구나, 응?··· 사람들이 늘 곱다곱다 하니까 뭐 공장에 저밖에 없는줄 알아?···》

《비서동지, 그런게 아닙니다.》 하고 옥영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며 부르짖었다. 《알지두 못하면서··· 그렇게 아무렇게나 막 말씀하면··· 됩니까?》

《옥영이가 말해줘야 알지? 그래 옥영이 너 초급당비서는 고사하구 부문당비서한테라두 얘길 했어?··· 밤낮 꽁해가지구··· 쿨쩍거리지 말아. 보기 싫다.》

옥영은 울고있었다.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허덕이고있는것을 보며 허군수도 눈시울을 흠칫거렸다. 소리는 질러도 옥영이를 남달리 사랑하고 아끼고있다는것을, 그래서 옥영이도 그앞에선 막 떠들고 허물없이 울기도 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옥영이.》 마침내 전진욱이 입을 열었다. 《여기엔 공장초급당비서와 련합기업소당 책임비서 두 당일군이 앉아있어. 할 일이 없어 이러는게 아니라는것쯤 옥영이두 잘 알지?··· 옥영이를 사랑하구 아끼는 당일군들이 묻는거야. 어째서 그 끌끌한 사람을 거절하구 괴롭히는지 우리가 알면 안되겠어?》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눈물을 삼키고 숨이 꺽꺽 막히는 소리를 내고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을 문지르며 어깨를 떨고있었다. 비닐을 댄 휴계실창문밖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도 더 세차졌다. 연통도 웅ㅡ 웅 울었다.

《저같은게 뭐라구.》 하고 옥영은 여전히 눈물을 씹어삼키며 말하는것이였다. 《그 훌륭한 동물 거절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게 아닙니다. 진짜 괴롭히는건 제가 아니라 그 동무입니다. 그 동문 어째서 계속 나만 못살게 굴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괴롭구 아픈지 아십니까? 얼마나··· 오래동안 눈물속에 살아왔는지 정말··· 알기나 하십니까!》

《난 눈물이나 짜는거 딱 질색이야.》

허군수가 소리쳤다.

《어서 계속하라구.》

전진욱이 말하였다.

《책임비서동지, 초급당비서동지.》 하고 서옥영은 물기에 젖어있는 두눈을 들었다. 《이 볼것 없는 녀자도 생각은 있습니다. 그 동무는 제대군인입니다. 깨끗합니다. 우리 장군님께서 뜨겁구 억세게 키워주신 그런 불같은 청년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서옥영이는 뭐겠습니까. 그래 제가 꼭 이 말을 해야만 합니까?》

옥영은 가슴앞섶에 모두어쥔 두손을 힘껏 비벼대는데 마치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비틀어짜는듯싶었다. 마침내 그 녀자의 가늘고 진한 눈섭이 우로 치켜올랐다. 그러자 자기앞에 앉아있는 두사람을 면바로 마주보는 그 녀자의 눈물어린 두눈에서는 작은 불빛이 흔들거렸다.

《전··· 이런 말 하고싶지 않았지만 어쩌겠습니까. 너무도 제 마음을 몰라주시니··· 할수없이 하는 말인데··· 솔직히 전 법적제재를 받고있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졸아들어 견딜수 없습니다. 우리 장군님께서 키워주신 그처럼 장하고 깨끗한 동무의 마음에 그늘이 지게 한다면, 그래서 어느때인가 그 동무가 후회하게 된다면··· 그러면 전 못 견딥니다. 그런 아픔을 당하느니 차라리···》

《아니 옥영아.》 허군수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어성을 높였다. 《옥영이 아버지야 뜻하지 않은 사고의 책임을 지구···》

《알고있습니다. 좋게 말한다는걸, 그렇지만··· 법적제재를 받고있는건 사실이 아닙니까, 그때문에 그 동무가 속으로 괴로와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첫째···》

《그럼 두번째는?》

허군수가 거칠게 물었다. 옥영이 눈물젖은 눈으로 그를 빤히 마주보았다.

《두번째··· 저에겐 어린 딸이 있습니다.》

《아 그 애야···》

《예, 제 친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 앨 사랑합니다. 그 앨 떼여놓고는 저의 생활을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사랑합니다. 그 사랑에 절대로 그림자를 드리울수 없습니다. 제 맘에 드는 총각이라도··· 그가 우리 수림이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저 사랑하는척 한다면··· 안됩니다. 그럼 전 그 애를 버리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친엄마라면··· 그러겠습니까?》

전진욱은 도리질을 했다.

《옥영인 지금 잘못 생각하고있어. 첫째요, 둘째요 하지만 다 속이 좁은 생각이야. 난 옥영이가 그럴줄 몰랐는데?···》

《한심해!》 허군수가 또 끼여들었다. 《그 동문 훌륭한 청년이야!》

옥영이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예, 옳습니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와 한생을 같이하고픈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자 말씀드린것처럼 전···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제일 사랑해온 우리 아버지를 계속 무슨 범죄자처럼 그 동무가 본다면··· 제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그리구 사랑하는 내 딸 수림이를 그 동무가 조금이라도 귀찮게 여길 때가 온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래서 난··· 괴로왔습니다, 혼자서 잠 못들고 괴로와한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옥영은 또 손으로 입을 막으며 하염없이 흐느끼였다.

눈물이란 맑은것이다. 맑고 짜고 뜨거운것이기도 하다.

《옥영이.》 전진욱이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난 옥영이가 그렇게 속이 좁은 녀자인줄은 정말 몰랐어. 동문 지금 그 사람, 그 제대군인총각을 모욕하구있어. 군대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키워온 그 사람을 모욕하고있단 말이야.》

《예?···》

《난 그사람이야말로 이제 옥영이 아버지를 잘 돕고 수림이한테도 가장 진실한 사랑을 줄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보는데··· 어떻소, 허동무?》

《예, 옳습니다.》 허군수가 흥분하여 말했다. 《그처럼 훌륭한 청년을 믿지 못하다니, 지금 옥영인 그 사람을 욕되게 하구있어!》

《예, 제가요?》

《그래 네가!··· 맹꽁이같은게.》

전진욱은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들었다.

《옥영이, 다신 그런 소릴 어데 가서 하지 말라구. 대신 그 제대군인총각에게 진실한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물어보라구. 그러면 그는 끝까지, 변함없이 바치는것이라고 말해줄거야.》

《?!···》

서옥영은 머리를 숙이고 손톱여물만 썰고있었다. 감실감실하던 그의 얼굴은 피기 하나 없이 해쓱해졌는데 가느다란 재빛의 눈섭에 매달린 한방울의 눈물은 이윽토록 떨어지지 않고 불빛에 흔들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