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5

제 4 장

5

 

그 시각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안에서 박유창을 마주하고 앉아계시였다. 괴로운 침묵이 한동안 계속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협의회가 끝났을 때부터 지금껏 아무 말씀도 없이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렬차가 굴간을 지날 때마다 창유리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묵묵히 여겨보시였다.

《장군님.》 하고 참다못해 박유창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힘들게 말씀드렸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사실 성강지배인은···》

그는 더이상 말씀드리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던것이다.

어느새 또 기차는 차굴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때 머리우의 불빛에 비쳐진 박유창의 얼굴은 어쩐지 강마르고 어수선하게 보였다. 밝은 형광등빛이 그의 얼굴에서 피기까지 말짱 가셔버린듯 했다.

박유창은 지금 자기의 잔등이 아프게 조여드는것을 가까스로 참고있었다. 장군님께서 괴로와하시는것을 지켜보느라니 서리발같은 오한이 잔등을 주름잡고있기때문이였다.

기차가 차굴속에서 빠져나왔을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마침내 박유창을 향해 물으시였다.

《그 성강지배인 이름이···》

몰라서 물으신것이 아니였다. 박유창은 마치 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급히 말씀드렸다.

《예, 김용삼입니다.》

《젊어서 한땐 축구선수였구.》

《예, 옳습니다.》

《음ㅡ》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 지배인이 우는소리만 했는데 1부부장은 그가 뭣때문에 그렇게 한것 같소?》

《저··· 그 동문 아마 련관부문이 다 죽고 이러저러하게 걸린 문제가 많다는데서 그만 패배주의에 빠진것 같습니다.》

《그렇다?···》 그이의 안면엔 준절한 기색이 어리고 음성은 서리발처럼 날카로왔다. 《패배주의자는 우리한테 있을 자리가 없지. 그렇지 않소?》

《저···》

했으나 박유창은 더이상 말씀드리지 못하고 감궂게 눈섭을 찌프리기만 했다. 아픔이 실려있는 그이의 눈빛을 마주하려니 그만 가슴이 얼어드는것만 같았다.

그렇다. 그이께서는 분노를 느끼셨다기보다 아픔에 잠겨계시였다. 다른 단위도 아닌 성강의 지배인이 우는 소리를 하면서 패배주의의 대답을 올렸으니 자신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를 저버린 그에 대하여 괴롭게 생각을 이어가시는것이다. 그 어떤 문제이건 즉석에서 판단하고 분석하고 결심을 내리시는 그이이시건만 오늘은··· 지금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그 어떤 배신감 비슷한 느낌때문에 더더욱 괴로우시였다.

《김용삼이···》 하고 그이께서는 다시금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축구선수요 공격수요 하길래 결패있고 과단성있는 공격정신의 소유자인줄 알고 큰 기대를 가지고 왔었는데 그만 패배주의에 빠졌단 말이지.》

《장군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하고 박유창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사실 그는 강철생산을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뛰여다니던 동무인데··· 앞으로 저희들이 잘 교양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용서를···》

순간 그이께서 피끗 돌아보시는데 그 눈빛은 엄하시였다.

《용서?!》

차바퀴소리가 요란스워졌다. 또다시 굴간속으로 들어간것이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이곳 철길엔 굴간도 많다. 어느새 시꺼먼 굴속에 들어서는가 하면 순시에 훤해지기도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굴에서 또 빠져나왔다. 검은 구름장들이 밀려들고있는 하늘가를 내다보며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새 날이 잔뜩 흐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희끄무레한 하늘아래 희끗희끗 뒤번져지는 파도의 멀기에 눈길을 주시며 준렬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1부부장동무가 어쩌면 그렇게 말할수 있소. 용서하자구?··· 무엇을 용서한단 말이요? 그가 자기의 패배주의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그 생각을 용서한다는거요? 여기에 무슨 용서하구 말구 할게 있는가 말이요.》

《···》

박유창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입귀만 찡기고있었다. 자신의 책임을 느끼며 괴로와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그때 성강책임비서는 왜 가만있었소? 그도 같은 생각이였던건 아니요?》

《아닙니다, 장군님.》박유창이 재빨리 말씀드렸다. 《그 동문 일어나서 자기 생각을 말씀드리려 했는데 도당책임비서가··· 그때 장군님의 안색이 좋지 않으신것을 보고 눌러놓았습니다. 그러는것을 제가 봤습니다.》

《하지만 지배인이 패배주의에 빠졌으니 응당 책임비서에게도 책임을 물어야지. 우리가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성강의 불을 지펴 온 나라의 앞장에 세우려고 했는데 바로 봉화를 쳐들게 한 그들에게서 패배주의가 나왔으니 스쳐버릴수 있겠는가?!···》

《···》

박유창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있었다.

또다시 굴간, 레루이음짬을 타고넘을 때마다 굴간벽을 쿵쿵 울리는 차바퀴소리가 지루하게도 계속되더니 한참만에야 밖으로 빠져나왔다.

차창밖의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시꺼먼 먹장구름이 덮치듯 밀려오는데 어데선가 번개불이 펑끗거리더니 이어 굵다란 비방울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차창밖에서는 이해의 첫 봄우뢰소리가 비에 젖고있는 산야를 조심스럽게 뒤흔들며 웅글게 울리고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김정일동지께서는 성강지배인에 대하여 단 한번도 화제에 올리지 않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