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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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후 남쪽으로 가는 대도로에서는 두대의 승용차가 서로 앞자리를 다투며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성강지배인 김용삼과 책임비서 전진욱이 탄 차들이였다. 구름발같은 먼지가 뒤따랐다.

가끔 제동을 걸 때마다 길바닥을 쓸치는 아츠러운 마찰음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바라보며 눈살을 찌프렸다. 어데서 저런 정신나간 사람들이 나타났는가 하는 힐난이였다. 마주오던 차들은 너무도 성급하고 과격한 그 승용차들의 맹돌진에 겁을 먹고 미리감치 길가녁으로 비켜서군 하였다.

두대의 차중에서 뒤따르는 차가 앞차에 경고하듯이 경적소리를 울리군 했다. 앞선 차를 향하여 보내는 위혁적인 신호가 분명했으나 앞의 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여전히 질풍같은 속도로 내달릴뿐이였다.

《계속 따르라, 떨어지지 말구.》

뒤따르는 차에서 김용삼이 씨근거리며 소리쳤다. 앞서 달리는 책임비서를 따라잡고 한바탕 행패를 부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수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앞선 차에서는 전진욱이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꾹 감고있었다. 뒤따르는 차에서 김용삼이 날카로운 경적소리로 결이 나서 고아대군 했으나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의병대장 홍범도와 이름도 용모도 비슷한 그의 운전사는 책임비서가 지금 무엇때문인지 몹시 격해있으므로 조향륜을 휙휙 돌리며 회오리같이 말아올린 먼지발을 뒤따르는 차에 들씌우군 하였다.

그렇게 30분이상을 달렸다. 마침내 령을 내려 바다기슭으로 뻗은 길에 들어섰는데 운전사가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지배인동지 차가 고장난것 같습니다.》

《뭐?》

뒤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뿌연 먼지의 파도속에 잠겨들고있는 지배인의 차가 겨우 분간되였다.

《차를 세우오.》

그러나 차는 벌써 멎어있었다. 운전사가 문을 열고 뛰여내리더니 지배인의 차에로 달려갔다. 그것을 지켜보던 전진욱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가까운 곳에서 그칠새 없는 파도소리가 그의 격해진 마음을 위로하듯 쉼없이 철썩이였다. 차창에서는 봄날의 따스한 볕이 어리광치듯 들뛰고 바다에서는 갈매기들이 날아예며 저들만이 알고있는 그 무슨 사연을 목메이게 끼륵거리고있었다.

그러나 뿌옇게 먼지가 올라있는 전진욱의 얼굴은 여전히 엄하게 찌프려져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차창밖에서 김용삼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몰풍스럽게 울렸다.

《책임비서동무, 나 좀 봅시다. 예?··· 아, 이거 제발 속시원히 말이라도 좀 합시다.》

《?···》

전진욱은 지그시 입술만 깨물고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윽고 마지못해 차에서 내리며 어수선하고 시쁘둥해진 김용삼의 얼굴을 흘끔 치떠보았다.

《지배인동무, 할 말이 있으면 공장에 가서 합시다.》

《아니, 난 더 못 견디겠습니다.》 커다란 고민에 휩싸인 김용삼의 얼굴은 이지러져있었다. 《책임비서동무, 제발 좀 매질을 하던지 욕을 퍼붓던지 아무렇게든 해주시오. 그렇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있으니 도대체 날더러 어쩌라는겁니까. 난 정말 못 견디겠습니다.》

《···》

전진욱은 말없이 먼지와 땀자국으로 얼룩이 진 김용삼의 퍼르데데한 얼굴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끝에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물었다. 바람을 막느라고 두손을 잔뜩 오그려 불을 붙이고 나서야 언짢게 물었다.

《그래 날더러 뭘 말하라는겁니까?》

《말해주시오, 책임비서동무. 내가 무엇때문에 이러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내가··· 이 못난 김용삼이 글쎄 경애하는 장군님앞에서 감히 우는소리만 했으니··· 그러니 대갈통을 까부시던지 아무렇게나 해주시오. 예?··· 그러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괴롭진 않을것 같습니다.》

전진욱은 별안간 숨이 막히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담배연기에 개키여 한바탕 기침을 터치는데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와이샤쯔목깃을 헤쳐놓으며 격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난 지배인동무가 그렇게 무모한줄은 정말 몰랐소. 어쩌면··· 어쩌면 감히 경애하는 장군님앞에서 우는소리만 하다가 나중엔 자신이 없다고··· 과연 그걸 상상이나 할수 있소? 결국 못하겠다는게 아니요?··· 내 잘못도 많습니다. 어제부터 지배인동무가 이것도 죽고 저것도 죽고 자기도 미칠 지경이라고 하면서 울상이 되여 다니는걸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이였으니··· 어쩌면 내 잘못이 더 클수도 있습니다. 허지만··· 장군님앞에서까지 그럴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그리구두 뭐 매질을 해달라구? 대갈통을 까부시라구?··· 아니, 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지배인동무하군 말하고싶지도 않구···》

《너무 그러지 마시오, 책임비서동무.》

《지배인동문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기대와 신임을 저버리였을뿐아니라 우리 성강의 로동계급을 모독했습니다. 장군님께서 지펴주신 결사관철의 불을 가슴에 안고 온 나라의 앞장에서 나가는 그들의 얼굴에 검댕이칠을 했단 말이요. 과연 그걸 상상이나 할수 있습니까? 우리 성강의 로동자들은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놓고 언제 한번 한다못한다하며 주저하거나 동요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되여 성강의 지배인이 감히 장군님앞에서 그럴수 있는가 말이요. 도대체 그렇게 할 권리를 누가 지배인동무한테 주었소. 에? 누가?···》

《내가 정말 정신이 쑥 나갔댔습니다.》 하고 김용삼은 먼지오른 손바닥으로 어수선해지고 피기까지 가셔진 얼굴을 어루쓸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저 곤난한 공장사정만 자꾸 눈앞에 떠오르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구··· 경애하는 장군님께 절대 거짓보고는 드릴수 없다. 절대 하지도 못할걸 하겠다고 해선 안된다! 하는 그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다보니 그만···》

전진욱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지금 이 시각까지도 변명을 중얼거리고있는 김용삼을 붙들고 마구 흔들어대고싶었다.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고함을 치고싶었다. 그런데 김용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책임비서동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전진욱은 또다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갑자기 손끝까지 타들어가던 담배를 땅바닥에 떨구고 발로 마구 비벼껐다.

《지배인동문 지금도 자기 생각만 하고있구만. 정말 어쩌면 그럴수가 있소?》

《예?》

《생각 좀 해보시오. 지금 장군님께선 지배인동무의 일때문에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지 생각해보란 말이요. 협의회때 지배인동무가 대답을 올리지 못할 때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씀없이 괴로와하시던 장군님의 그 모습이, 손에 든 원주필만 계속 그루박던 그 모습이 그래 눈에 삼삼하지 않단 말이요? 그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막 찢어지는것 같은데··· 그런데도 지배인동문 제 생각만 하면서 저만 괴롭다고 우는소릴 하고있으니··· 어쩜 그럴수가 있는가 말이요. 예?》

《?···》

그때 먼 산굽이에서 뿡ㅡ! 하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울려왔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돌리며 저도모르게 몸을 떨었다.

(특별렬차가 아닐가?) 하고 전진욱은 흐느끼듯 숨을 톺으며 생각하였다. (혹시 남으로 달리는 저 렬차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고계시지 않을가?···)

웬일인지 두눈이 뿌옇게 흐려지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용삼이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우두커니 서서 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잠시후 렬차는 먼 산봉우리밑의 차굴속으로 사라져갔다.

눈굽이 저려들기 시작하였다.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안고 오셨던 장군님께서 아픔을 안고가신다고 생각하니 눈보라를 들쓴것처럼 온 몸이 옥죄여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군님, 저희들이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전진욱은 고뇌와 절망에 찬 마음을 걷잡을수 없어 속으로 부르짖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앙상한 가로수우듬지들너머 먼 하늘가에서 기적소리가 울려오는듯 했다. 그는 저도모르게 눈을 감으며 귀를 강구었다. 바로 그순간 곁에 서있던 김용삼이 갈린 소리로 《책임비서동무.》 하고 불렀다.

전진욱은 흠칫 몸을 떨며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얼음쪼각같이 차고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가쁘게 속삭이였다.

《제발, 지배인동무, 지금은 좀··· 다문 한순간만이라도 좀 가만 있어주시오.》

《···》

김용삼은 그만 두눈을 슴벅거리며 굳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