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까치 한마리가 깍깍거리며 지난해의 묵은 잎사귀가 아직도 몇개 말라붙어있는 느티나무가지를 마구 꺾어던졌다. 김용삼은 자기 방의 창가에서 저물어가는 해살이 마지막으로 빛을 던지고있는 그 나무를 내다보며 옛사람들이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거니 좋은 소식이 있다거니 한것은 무엇때문일가 하고 생각하고있었다.

지배인인 그에게는 까치가 울어도 좋은 소식은커녕 어느 하루도 마음속 근심이 가셔지지 않는다. 생산에 필요한 갖가지 합금원소들과 무연탄근심, 중유근심, 세멘트근심을 안고 동서남북으로 차를 달리던 끝에 입맛도 잃고 잠도 설쳤다. 공장에 돌아오면 지배인방으로 그칠새없이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강재를 내라는)의 성화에 증을 내던 나머지 보위대를 방으로 불러 당장 저 사람들을 《체포》해서 문밖에 끌어내가라고 소리친적도 있다.

그때문에 신소를 받고 비판도 받자 그는 우에서 내려온 사람에게 결이 나서 말했다.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온것은 아니다, 문을 밀고 쳐들어온 사람들을 앉혀놓고 지금 성강이 돌아간다고 이렇게 쓸어온 사정은 알만하다, 허나 우리도 계획을 다 못하고있는 형편이여서 계획외엔 하나도 낼수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어거지를 쓰며 놀자구 접어드는데 나도 일을 해야 할게 아닌가, 그 사람들한테 붙들려있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정 공장보위대를 불러 엄포를 놓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었다, 다시는 접어들지 못하게!··· 그걸 가지구 문제를 보겠으면 맘대로 하라!···

그가 이렇게 말하자 《우에서 내려온 사람》도 입맛만 쩝쩝 다시고 말았다.

그이후 김용삼은 자기가 《체포해서 끌어내라》고 했던 그 질군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사업상 련계도 더 밀접해졌다. 지금은 김용삼이 어떤 성격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서남북 그 어델 가도 반겨맞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였다. 그렇다고 그의 근심이 덜어진것은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성강의 봉화를 지펴주신 이래 오늘까지 계획을 한것은 단 두달뿐이다. 그것도 장군님께서 인민군대까지 동원하여 파고철수송조직을 해주신 결과였었다.

《ㅈ철》이 제일 걸렸다. 지금도 책임비서 전진욱은 운명을 건 거기에 나가있다. 한쪽에서는 쉰한번째인가 강괴겁시험이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년에 50만마리의 오리를 생산할 엄청난 목표로 새 오리목장건설이 힘들게 벌어지고있다. 이것들모두가 막대한 자재와 자금을 소비하는 모험인데 성공하지 못하면 흔히 말하듯 《모가지를 내놔야》 한다.

그는 먼저 주물직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를 닮아가는지 운전사 방봉철도 성미가 급해졌다. 멀지 않은 주물직장까지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바람같이 달렸다. 주물직장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강철괴에 붙은 모래를 착암기로 뜯어내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였다. 그 모래를 터는 공정이 없는 겁, 다시말하여 쇠물을 형타에 부어도 붙지 않도록 하자는것이 몇달째 죽기내기로 시험하고있는 강괴겁이다.

연구팀을 책임진 라수범(기술발전부기사장)이 달려왔다. 면도도 제대로 못하여 늘 시꺼멓게 죽어있던 얼굴이 놀랍게도 오늘은 웃음을 띠고있는것 같다.

《지배인동지.》 그가 소리쳤다. 여기선 강괴겁의 모래를 뜯는 착암기소리에 귀가 멜 지경이여서 거의나 고함을 지르지 않으면 안된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뭐?···》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지배인동지, 속금형이 될것 같습니다.》

그는 현장의 불빛을 리용하여 땅에 금을 그으며 설명하는데 지금까지 제일 애를 먹은것이 쇠물을 부은 후 강철형타가 녹아붙기 전에 뽑아내는것이였다. 그런데 주물로동자 박봉철이 좋은 안을 냈다는것이다.

《봉철이?》

주물공 박봉철은 부기사장에게 지레대원리로 뽑자고, 아르키메데스가 지지점만 있으면 지레대로 지구도 들겠다고 하지 않았는가고 귀띔했다는것이다. 이제 곧 기중기로 지레대원리를 시험해보겠다고 라수범은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드물게 있는 좋은 소식이다.

《책임비서동무에겐 알렸소?》

《예.》

봄이 오면서 밤에도 바다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음달에 쌓여있던 시꺼먼 눈더미들이 어느새 소리없이 녹더니 길바닥에서 김이 문문 오르고있다. 저 멀리 선창이 있는 곳에서는 모닥불들이 군데군데 타오르는것이 보인다. 공장의 수산직장사람들이 겨우내 바다가모래불에 비끄러매여있던 배들을 뒤집어놓고 골탄칠을 하고있는것이다.

그때 책임비서가 차를 타고 달려왔다.

김용삼은 그와 같이 또 부기사장의 설명을 들었다. 전진욱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라수범의 어깨를 끌어안고 쇠물이 붙기전에 뽑는 장치(탈괴장치)를 빨리 만들어 시험하자고 했다. 그렇다. 아직도 더 시험을 해야만 한다.

이틀후 탈괴장치를 만들어 시험했지만 또 실패했다. 성공할수 있다는 전망은 내다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실패는 실패이다.

책임비서에 대한 뒤소리가 은근히 나돌고있었다. 전진욱이 부임되여오자 그 무슨 습식구단광이요, 50만마리 오리요, 강괴겁이요 하면서 정신차릴새 없이 들볶아댄다고 불평을 부리며 무슨 《돌격대비서》라는 별명까지 붙이기 시작한것이다.

투쟁의 불을 싫어하고 혁신의 그늘밑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내돌린다. 그들이 이 지배인에 대해선 뭐라고 하고있는지?···

그따위것은 알고싶지도 않다. 김용삼은 남들이 뭐라고 뒤소리를 하건말건 제할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만 공장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것때문에 속이 끓어번질뿐이다. 하여 나날이 그의 마음속에는 어수선한 불안과 고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지 못하는 지배인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매일같이 이렇게 자문하며 그는 괴로와했다.

내각에서 소집한 중요단위책임일군들의 회의에 참가하려고 며칠간 평양에 다녀왔다. 집에 들어서니 안해가 전보 한장을 내놓았다.

 

《부친사망급래》

 

놀라서 안해를 바라보며 소리쳐 물었다.

《언제 온거요, 이거?》

《그저께 장례가 끝났어요. 나하구 룡진이하구 갔댔어요.》

《?···》

말을 못했다. 그러는 그에게 안해가 다른 종이장을 또 내밀었다.

《이건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쓰시던 편지인데··· 그만 채 쓰지 못하구 눈을 감으셨더군요. 장례에 갔다가 가져왔어요.》

그는 종이장을 받아들었으나 글줄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정쩡한 당황함과 걷잡을수 없이 머리속을 꽉 채우는 죄책감에 입안이 말라드는것을 느꼈다. 46년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본 아버지의 모습을 상기하였다. 그 어떤 오뇌를 안고있어서인지 깊은 주름살이 패인 입귀를 실룩거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이던 아버지, 그때 아버지는 이틀밖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셨다. 가끔 조심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군 했다. 부자간의 정을 이어주는것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뿐이였던것이다.

첫날밤 홀로 불쌍하게 고생하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김용삼은 부지중 우렷이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병색이 짙은 그 어머니가 이렇게 조용히 속삭이는듯싶었다.

《용삼아, 어쨌든 친아버지가 찾아오시지 않았니. 늦긴 했지만···》

그러자 별안간 가슴이 뻐근해지고 눈굽이 쑤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여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아버지를 찾아헤매던 어머니에 대해서, 어머니를 잃고 누이와 함께 살던 일에 대해서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로인은 련이어 잔을 기울이였다. 마시고 또 마시고··· 속이 젖어들다 못해 어느덧 눈가에까지 회오의 눈물이 축축히 내배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슬픔을 짜내는 노죽이 아니였다.

가슴을 허비는 쓰라림과 이름할길 없는 애수가 독한 술처럼 속을 덥히고 주름깊은 얼굴도 벌거우리하게 물들이고있었다.

그때 용삼은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 그런 눈물이 누구에게 무슨 필요가 있소? 그래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나 하시오?··· 내 가슴속에 어떤 피멍이 들었는지 알기나 하나 말입니다. 난··· 여태껏 아버질 미워했습니다. 아니, 증오했다구 할가.··· 아버진 왜 어머니를 찾지 않았는가요. 그때 군사사업을 보던 군관이였으니 얼마든지 행처를 찾을수 있었겠는데 왜 딴가정을 이루게 됐는가 말입니다. 물론 애써 찾아봤다고하겠지요. 그러나··· 몇달 찾아보다가 그만두는것 하구 끝까지 찾아내는것 하군 다르지요. 도중에 주저앉고마는 사람, 무슨 일이건 끝까지 해내지 않고 중도에 줴버리고마는 사람을 난 절대 바로 보지않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난··· 아버질 미워했습니다. 병약한 어머니가 밤마다 내 머리를 쓸어주며 이제 꼭 온다고, 아버진 살아있다, 꼭 용삼이를 찾아올거라고 말하다가 마지막 일루의 희망마저 차츰 사라져가자 목놓아 울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막 찢기는것만 같습니다.

아마 당신은 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아버질 그리워했고 또 얼마나 아버질 미워했는지 상상도 못할겁니다. 늘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살아왔다는걸 알기나 하시오?··· 어쩌다 동네애들과 싸움을 해도 저 과부집 자식이 어쩌구저쩌구 욕질을 할 때 이 마음속에 사나운 발톱이 일어서군 했다는걸 당신은 알기나 하나 말입니다?··· 그런 말을 들은 날 밤이면 과부집 자식이라고 욕질을 한 그집은 절대로 편안히 자지 못합니다. 돌멩이가 날아가 장독을 부시고 유리창을 깨버리구···

그러는 내 가슴은 시원했는줄 아시오?··· 아니, 찝찌레한 눈물만 차구넘쳤습니다. 피눈물이!···

지금도 사람들이 뭐라는지 한번 들어보시오. 그때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저런 불망종같은 사람이 어떻게 련합기업소지배인을 다 하는가구요. 당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나를 키워주셨지요. 군대에 보내여 사람 만들구 제대되여 전기로앞에 세워주면서 일을 잘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셨습니다. 일을 잘하면 표창을 주고 엇드레질을 하면 볼기를 치면서 한걸음 또 한걸음 이렇게 키워오셨단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어데 가있었습니까? 이 아들을 생각하구 찾아볼 생각이나 했습니까?··· 물론 이런 아들이 있다는걸 몰랐다구 하겠지요. 좋습니다. 인젠 상관없습니다. 까짓거, 아무렇게나 말하시오. 하지만 난 절대 자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아버지를 찾으려던 생각이 점점 식어갔습니다. 헌데 뜻밖에도 당조직에서 아버질 찾아주었지요.

사실 우리 책임비서도 아버지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두살때인가 아버지가 전선에서 희생되였거든요. 손탁이 센 어머니가 두 아들을 엄하게, 끌끌하게 키웠답니다. 그래서 우리 책임비서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는 설음을 속에 묻어두고 늘 웃고 떠드는 유쾌한 사람으로 자랐지만··· 나는 앓는 어머니와 같이 고생스레 살다가 그 어머니마저 잃고는 성미가 올곧지 않은 사람이 되고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두··· 솔직히 말하면 좀 다루기 말짼 고집쟁이로 소문나있습니다. 그래서 터놓고말하면 사실말이지 당조직에서 아버지의 행처를 알아냈다고 할 때··· 난 무섭더군요. 그 아버진 우릴 끝까지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제 만나 무슨 필요가 있을가 하구요. 정도 없는 아버지가 이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참, 정이란게 무엇이겠습니까. 억지로는 절대로 정을 붙이지 못한다는걸 이번에 더 잘 알게 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친아버지인데도 수십년세월 모르고있던 정을 갑자기 붙이자니 생콩이라도 씹는것처럼 혀바닥이 아리더군요.···

이것은 그의 마음속 울부짖음이였지만 로인은 그것도 마음속 귀로 다 들었는듯싶다. 손에 든 술잔에 하염없이 떨어져내리는 짜디짠 눈물을 마시고 또 마시며 그는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아마도 로인은 속으로 어쩌면 그리도 가까이 안해와 자식을 두고도 한생 찾아내지 못했을가 하고 한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용삼은 결코 그러한 후회의 짜디짠 눈물에 녹을 사람이 아니였다.

··· 아니, 난 그런 눈물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가 진정 우리를 사랑했다면, 진정 운명을 함께 하려고 생각했더라면 끝까지 우리를 찾았을것이다. 한생을 다 바쳐,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끝까지 찾아내고야말았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중도에 멎어서고말았다. 이제 곧 군대에 나간다는 손자소리를 하는것으로 보아 한두해만에 포기하고만것이 분명하였다.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사랑과 가정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해버린 사람을 내가 어떻게 정을 담아 부를수 있겠는가?···

물론 그는 자식으로서, 인간적인 도리로 보아도 그래선 안된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속으로는 줄곧 이렇게 부르짖었고 그것이 또 그의 가슴을 시종 알알하게 하였다.

로인이 떠나던 그날엔 진눈까비가 내렸다. 김용삼은 안해와 그리고 누구보다 더 빨리 할아버지와 정이 통한 막내까지 데리고 김책역으로 나갔다. 정확히 차가 오는 시간을 맞추어 나갔다.

기차가 들어서자 보내는 짐도 적지 않아 다들 바삐 오르내렸다. 마침내 출발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서로서로 급히 서둘러 인사말들을 주고받았다. 막내손자와 며느리의 인사말까지 받고나서 로인은 김용삼에게 이렇게 말했다.

《추석때에 한번 또 올가 하는데··· 어머니묘두 볼겸.》

《오셔야지요, 물론》

《오게 되겠는지···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때 아버지는 무엇인가 예감하고있은것 같다.

《무슨 말씀을··· 꼭 오십시오. 아버지.》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렀다. 스스럼없이 진정을 담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말에 로인은 흠칫 눈시울을 떨더니 목메인 소리로 가늘게 《내 아들!···》 하고 속삭이였다. 자기가 지어준것이 아닌 친아들의 이름은 차마 부르지 못하고 그저 《아들》을 부르는데 로인의 젖어드는 마음처럼 끈적끈적한 진눈까비들이 그의 눈섭에 달라붙어 진물처럼 녹아내리고있었다.

《아버지!》

김용삼이 두번째로 아버지를 부르자 로인은 두팔을 벌리며 자기의 아들을 끌어안고 소리없이 흐느끼였다.

드디여 기차는 떠나고 승강대에 서있던 로인은 렬차원에게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가더니···

그는 전보장과 아버지가 채 쓰지 못한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는 편지를 힘들게 쓰시던것 같다. 최후의 기력을 다 짜내며 연필로 쓰고 지우기를 거듭한 흔적이 처처에 남아있었다.

 

··· 지금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글을 쓴다. 여태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고 너무도 일찌기 어머니마저 여의였으니··· 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으리라는걸 내 모르지 않는다. 그 죄책감때문에 요즈음은 앉으나 서나 그때 끝까지 처자를 찾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스럽기 그지없구나. 그런데 이 아비는 그렇게 품 한자루 들이지 않았지만 우리 장군님께서 련합기업소지배인으로까지 키워주셨으니··· 크나큰 그 사랑, 그 은정을 눈에 흙이 들어간들 어찌 잊을수 있겠나. 그래서 내 비록 늙었지만··· 고철 하나라도 들고가 장군님 그 은덕에 이바지하려 했지만 무정한 세월은 그런 기회마저 주지 않는구나. 정말이지 가고싶다, 다시한번 큰 사람이 된 자식을 만나보고 나라의 대들보로 키워주신 우리 장군님께 큰 절을 올리고 싶었구나. 그런데 갑자기··· 이 어인 일인가, 병이 도지여··· 자리에 눕고말았으니···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 아비구실을 못하고 가는 이 늙은이를 용서해다오. ···

 

편지는 여기서 끊어졌다. 그다음은 지우고 또 지우고 한 흔적뿐···

김용삼은 눈굽이 저려나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불시로 자기의 가슴이 차츰 눈물에 젖는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며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어린시절부터 고생많으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때없이, 수없이 입을 옥물고 원망해온 아버지, 그 아버지를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사랑하고 용서하게 되였다는것을 크낙한 슬픔속에 깨달았다.

늦었지만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장에 나가자 또 새로운 근심거리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산소직장의 전동기가 타버린것이였다. 주파수가 떨어져 과부하를 받은것이 기본원인이였다.

산소를 보장해주지 못하면 전기로들은 숨이 차서 헐떡이다 못해 제대로 소화를 못한다. 다시말하여 3상전극이 구멍을 뚫고 들어가 바닥을 녹일 때(용락이라고 한다.) 산소를 취입하여 탄소를 비롯한 개재물들을 우로 떠오르게 하고 그것들을 석회가 빨아서 뽑아내는데 그 공정이 없어지므로 용해기가 무한정 길어지고 깡의 질이 떨어지는것이다.

비상대책이 필요하였다. 그는 대형전동기수리전투를 조직하는 한편 빈 산소통들을 모아 자동차에 싣게 하였다. 그것을 본 《강철령감》이 물었다.

《지배인동무, 그건 어쩔려구 싣는거요?》

《꽁무니에 불이 달렸는데 별수가 있습니까? 다른 공장에 가서 구걸이라도 해야지요.》

《저런!》 하고 령감은 혀를 끌끌 찼다.

《다른 공장들에 있으면 얼마나 있겠다구··· 그걸 모아 이 큰 성강의 숨구멍을 열것 같소?》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책임비서 전진욱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원래 산소직장의 산소분리기의 설비가 낡고 용량이 딸려 조금만 부하를 걸어도 무엇인가 튀여나가군 했다는 말을 듣자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산소는커녕 죽은 소신세도 못지겠군.》

김용삼은 순간 무엇인가 속에서 울컥 치미는것이 있었으나 입술을 깨물며 가까스로 참아내였다.

《아니 책임비서동무, 이거 어디 롱소리나 할 때가 됐습니까?》

김용삼의 볼부은 말에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배인동무, 그럴게 없이 여기에다 1만 5천㎥짜리 대형산소분리기를 가져다 놓는게 어떻습니까?》

김용삼은 그가 여전히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롱질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대형산소분리기가 어디 있다고 그럽니까.》

《있습니다. 쓰지 않는게···》

김용삼은 코웃음쳤다.

《그런거 가져오면 내 당장 벌거벗고 춤을 추겠수다.》

이것은 분명 속이 뒤틀려하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전진욱은 그냥 웃으며 롱으로 받았다.

《하필이면 벌거벗고 추겠습니까?··· 하ㅡ 속담에도 논팔아 굿을 하니 맏며느리 춤춘다고 했는데··· 이제 내가 굿을 하면 그때 지배인동무가 어떻게 춤추나 두고봅시다.》

김용삼은 미간을 잔뜩 찡기였다. 사실 그는 실속없는 말을 망탕하는 사람들을 제일 질색한다. 쾌남아로 불리우는 책임비서가 아무때건 기지있는 유모아로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는것을 잘 알고있지만 그가 요즘 《ㅈ철》때문에 모진 진통을 겪고있는 형편에서 대형산소분리기요 뭐요 하고있으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보다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에 더없이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과 계속 같이 굿을 하고 춤을 추다가는 발목이 삐여지거나 개굴창에 빠지던지 무슨 일이 날것만 같은 불안도 없지 않았다.

대형전동기는 이틀후에도 살리지 못했다. 그동안 전기로들에서 생산된 깡들은 인장시험기의 당길힘이나 충격시험기 쇠망치의 강타에 견디지 못해 여지없이 끊어지거나 부서져나갔다. 모두 불합격이였다. 미칠 지경이였다. 그러나 김용삼을 목조르기한것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어느날 장평역에서 들어오던 화차들이 구내의 직통교가 무너지는 통에 오도가도 못하게 되였고 구내수송도 막혀버렸다는 급보가 또 들어왔다.

현장에 달려가보니 수십년세월 해풍을 맞은 콩크리트가 부식되여 경간꼭대기가 맥없이 부서져나갔다. 하여 보가 기울면서 철다리가 경사지게 밑으로 내려앉고말았었다.

김용삼은 저도모르게 이발을 악물며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죽여주는구나!···》

그의 얼굴은 이지러지고 거밋해졌다. 전에는 볼수 없던 깊은 주름살들이 앞으로 불거져나온 그의 이마를 파고 지나갔는데 눈귀를 흠칫거릴 때마다 마치 살아숨쉬는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한숨이나 쉬고있을수 없었다. 청진철도국에 전화를 걸어 철도건설전문가들을 불렀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다. 그런데 커다란 기대를 안고 기다려온 철도건설전문가들은 부식된것을 아예 까없애고 새 기초를 파고 새 경간을 세우는 방법밖에는 다른 안이 있을수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 자리에는 책임비서도 있었다. 두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이건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리이다! 하고 그들은 격하여 속으로 웨치고있었다.

《이보시오.》 하고 김용삼은 터져나오는 고함소리를 겨우 누르며 그들에게 호소했다. 《다리를 새로 건설하는 방법이야 누군들 생각해내지 못하겠소. 에? 그러면 세멘트양생기일까지 최소한 두달은 걸려야 하겠는데 두달동안 성강은 눈을 펀히 뜨고 죽어있으란 말이요?》

《우린들 어쩌겠습니까.》

《이보시오, 동무들. 동무들도 장군님께서 지펴주신 성강의 봉화가 어떤것인지 잘 알구있지 않소, 에?》

《지배인동지.》 늙수그레한 철도건설책임기사가 안경을 밀어올리며 말했다. 《그걸 모를 우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걸 어떻게 합니까. 우리한테 정치사업이나 한다구 세상에 없는 새 기술이 나오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요, 나올수 있소.》 이렇게 말한것은 책임비서였다. 《우린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수 있다고 배웠구 실천을 통해 체험한 사람들이 아니요? 자신이 없으면 물러가시오. 그럼 지배인동무, 이 동무들이 못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돌격대에 호소해봅시다.》

《우리 돌격대?···》 김용삼은 흥심없이 반문했다. 《칠보산건설에 동원되였던 그 동무들 말입니까?》

《예. 그속에 귀신같은 사람들이 있답니다.》

전진욱은 승용차를 보내여 즉시 돌격대대장 황상보와 시공책임자 《아바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들이 칠보산에서 250m 다리건설과 7.5㎞에 달하는 새 도로를 건설하면서 도적인 경쟁에서 1등을 한 전적이 있기때문이였다.

한밤중 황상보대장과 건설공법에서나 경험에서나 여러 공사들에서 소문난 《아바이》들 (돌격대는 청년들로 구성되였으므로 웬간히 나이든 사람은 다 아바이로 불리웠다.)인 시공책임자 김윤식, 김학수 두사람이 도착하였다.

즉시 현장에 나가 홰불을 들고 돌아갔다.

돌격대에서 온 사람들은 무너져내린 다리를 깐깐히 살피고 서로 수군덕거리더니 100t짜리 쟈끼만 있으면 기울어진 보를 들어올린 다음 부서져나간 꼭대기에 강철구조들을 대고 그속에 고강도콩크리트타입을 하면 살릴수 있다고 했다.

《그래? 며칠이면 끝낼수 있소?》

김용삼이 다우쳐묻자 《아바이》한사람이 대답했다.

《보름이면 기차가 뛰게 할수 있습니다.》

《보름?》 하고 김용삼은 불에 덴것처럼 와뜰 놀라며 소리질렀다.

《보름씩이나 기다린단 말인가? 안돼. 그동안이면 난 속이 타 죽던지 미치구말아!》

《지배인동지.》돌격대대장 황성보가 말했다. 《잘 알면서두 그러십니까. 자연상태에서 세멘트를 굳히자면 최소한 열흘은 걸려야 하지 않습니까.》

결김에 또 소리쳤다.

《아니, 난 그런거 몰라!》

그것을 모를 김용삼이 아니였다. 허나 보름동안이나 공장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이라니 도저히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보름인가 닷새인가 하는건 후에 봅시다.》 하고 지금껏 듣고만 있던 책임비서가 말했다. 《황상보, 타산이 서고 결심이 내렸으니 절반은 먹어논셈이야. 세멘트를 굳히는것도 머릴 짜내면 또 무슨 방도가 나질거 아닌가. 문제는 시간이요. 절대 시간을 랑비해선 안돼. 그러니 당장 일을 시작해야지. 응?》

《예, 알겠습니다.》

얼굴이 밝아진 황상보는 자기의 《고문》들인 시공책임자들과 다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용삼은 더이상 그들의 말을 듣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오슬오슬 추워나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맥없이 돌따섰다. 의아해서 쳐다보는 책임비서의 눈빛을 피해 머리를 외로 돌리며 허척지척 걸어갔다.

《지배인동무.》전진욱이 따라왔다. 《왜 그렇게 풀이 죽어 그럽니까?》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우에 내리드리운 눈섭을 찌프리고 때이르게 이마를 파고 지나간 깊은 주름살을 움씰거렸다.

《책임비서동무, 난 정말 더 못 견디겠습니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생산이 죽고있지 않습니까. 생산이!》 하고 그는 숨소리도 격하게 부르짖었다. 《그거야 책임비서동무도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련관부문이 다 죽은데다가 공장에서 생산하던 산소까지 죽었지, 오늘은 또 가까스로 살려낸 구내철길까지 이 모양이니 이제 무슨 수로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강철생산과제를 수행한단 말입니까, 예?··· 말 좀 해보시오. 책임비서동무, 어디 방도가 있으면 내놓으란 말입니다.》

《지배인동무,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그것보시오. 책임비서동무도 방도가 없지요? 그러니 흥분하지 않게 됐습니까. 이것저것 다 죽어가구있는데.》

전진욱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재빛으로 변해가는 입술을 꽉 악물고 숱진 눈섭을 푸들푸들 떨면서 그는 말했다.

《지배인동무가 이럴줄은··· 몰랐습니다. 늘 돌격의 앞장에서 냅다 미는 성민줄 알았는데 이렇게 우는 소리만 하리라군···》

《별수 있습니까?》 하고 그는 내친김에 그냥 밸뚜시를 부리며 내쏘았다. 《책임비서동문 무슨 배심에 롱소리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죽을 지경입니다. 그저 냅다 밀자, 돌격이다! 구령만 칠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 책임비서동무, 한번 내 위치에 서서 생각해보시오. 당장 속이 까맣게 타서 미치지 않나!···》

《?···》

김용삼은 지금 자기가 도를 넘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또 지금은 당책임일군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틀을 차리고 방안에 들여박혀 사람들을 불러 담화나 하고 문건을 정리하며 자리지킴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생산과제를 직접 떠안고 밀어주는 시대라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암담한 사정으로 하여 잔뜩 뒤틀린 마음은 계속 비뚤어진 소리를 내뱉게 했다.

《책임비서동무, 솔직히 말해보시오. 책임비서동무도 지금 우리가 막다른 처지에 빠진걸 뻔히 보면서도 아닌보살인데··· 사실말이지 지금 당장 책임비서동무도 무슨 뾰족한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보시오. 대답을 못하는거.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정말 난··· 더 못 견디겠수다. 막 미치기 직전입니다.》

그는 아연해진 책임비서를 그대로 두고 헐금씨금 철길을 따라 걸어갔다. 속에서는 불이 일고 눈이 바로 서지 않았으며 두다리는 휘청거렸다.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올리뛰고 내리뛰기만 하는 자신이, 당황하여 헤덤비고있는 자신이 밉살스러운가 하면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져 속이 부그그 끓어올랐다.

새벽녘에는 현장을 돌아보고 잠간 눈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꿈결에서처럼 멀리서 울리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계속 귀전에 메아리쳐오며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다음날 그는 뜻밖에도 책임비서와 같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장군님께서 강철생산문제를 협의하시기 위해 몸소 멀고먼 이곳 현지에까지 오신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