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6

제 3 장

6

 

《강철령감》최진수는 그길로 책임비서를 찾아갔다.

사무실은 비여있었다. 회의가 끝나자바람으로 또 《ㅈ철》공장으로 갔다고 한다. 마침 1부지배인이 그쪽으로 간다면서 함께 가자고 친절히 권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령감이 소리쳤다.

《가만, 난 내리겠소.》

차에서 내렸다. 책임비서가 2중판직장앞의 큰길에 차를 세워놓고 고영란과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보았기때문이였다. 아마 책임비서는 교대를 마치고 가는 영란이를 보고 차를 세운것 같다.

령감은 두사람의 등뒤를 돌아 슬그머니 책임비서의 차에 올랐다.

《야, 범도. 우리 이 차를 몰구 달아날가?》

《아, 아바이, 나 밥통 떨어지게 할라구요?》

《밥통은 어째 떨어져. 내가 있는데, 응? 우리 하나강철에 가마가 열세개나 있다는거 몰라?》

《체, 아바이두.》

든든한 체격에 일솜씨가 걸싼 책임비서운전사는 롱을 받을줄도 몰랐다.

령감은 다시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사람, 특히 고영란의 크고 억실억실한 두눈이 줄곧 새물거리는것을 늙은이다운 애착을 품고 내다보며 또 말을 꺼냈다.

《야, 범도. 얼마전 설을 쇨때 후방부에서 소 한마리 잡은거 있지? 내 그때 소눈깔 하나 얻자구 후방부에 가서 싹 다 뒤지지 않았겠어. 헌데 암만 찾아봐야 소눈깔이 있을게 뭐야.》

《그래서요?》

《고영란인지 허는 저년 좀 보라. 글쎄 소눈깔이 어데 갔나했더니 저년 눈안에 박아넣었구나.》

운전사 범도는 그만에야 《핫하하!》 하고 소리쳐 웃어대고 자기의 기지있는 롱질에 흐뭇해난 령감도《흐흐흐!》 하고 머리를 떨며 웃어대였다.

그때 밖에서는 책임비서와 마주선 고영란이 역시 커다란 두눈에 저물녘의 희미한 노을을 담으며 웃고있었다.

《난 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땐 그저 씩 웃기만 합니다.》

《그 웃음이 열마디, 백마디 말을 대신하는거야.》 하고 전진욱이 말했다. 《그런데 그 장봉구인가 하는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됐다구?》

《그 동문 말박사입니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정신이 막 휘ㅡ돌아갑니다. 세계요 유럽이요 무슨 로그함수요 프로그람이요 하면서··· 그렇게 그 시당의 간부집 딸두 홀려냈을겁니다.》

영란이는 추운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겨울인데도 외투나 솜옷이 아니라 코트를 입고있다.

《분하지 않아?》

《첨엔 좀 괘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것 같습니다. 그런 말박사는··· 시장에나 가 앉으라지요.》

그 웃음, 파아란 피줄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하얀 그리고 추위때문에 약간 발가우리해진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밝게, 정차게 웃는 그 모습, 전진욱은 그처럼 환한 처녀의 용모를 아껴주고싶었다. 하여 이런 처녀를 계속 2중판직장에서 일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영란인 어떻게 돼서 이 직장에 왔지?》

《우리 직장에 전인복이라는 몸이 약한 어머니가 여기에서 일을 걸싸게 하는걸 보구서 내가 할일이 바로 저거구나! 하구 생각했습니다.》

전진욱은 영란이가 말하는 녀성의 이름이 신통히 딸의 이름과 같은데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 직장의 녀성이 모두 세명이드라?》

《예.》

《이제부턴 이 직장에서 녀성들을 싹 없애버리겠어. 그런거 자랑하는건 자기 딸이 남자들과 씨름한다구 우쭐대는것처럼 미욱스러운짓이야. 응?··· 없애버려야 해.》

고영란의 얼굴이 대뜸 흐려졌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합니까. 예, 책임비서동지?!》

《더 좋은 일감을 주지. 녀자들만이 할수 있는···》

《아닙니다. 싫습니다. 싫습니다.》 고영란은 전진욱의 팔소매를 힘껏 잡아비틀고 살을 꼬집기까지 했다. 《책임비서동지, 싫습니다. 녀자들은 뭐 축구를 안합니까. 한땐 망측스럽게 생각했지만 인젠 권투도 하지 않습니까. 남자들이 하는걸 우리라고 못할건 뭡니까. 예?··· 싫습니다. 다른 일은 다 싫습니다.》

《아, 아ㅡ꼬집긴? 알겠소. 알겠다니까.》

이윽고 처녀와 갈라져 차에 오른 전진욱은 깜짝 놀랐다. 《강철령감》이 뒤에 앉아서 코를 골고있었던것이다.

한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었고 영웅로장으로 소문났던 그가 년세로 보아서는 아주 놀랍게 롱질이 심하고 다른 용해공들과 꼭같이 입심도 사납다는것을 전진욱은 잘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령감이 무슨 장난을 꾸미는가 해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진짜로 잠들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규모로 보나 중요성으로 보나 공장적으로 제일 큰 1강철직장의 고문격인 교관으로서 밤이고 낮이고 현장에서 로동자들과 같이 일하며 속보도 쓰고 (붓글씨도 잘 썼다.) 소래기도 질러대며 선동사업을 언제나 로앞에서 평범하면서도 실속있게 해제끼는 령감, 언제 한번 편안히 눈을 붙여볼새가 없는 령감이였다.

전진욱은 운전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자구, 천천히.》

이제부터는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ㅈ철》 구역이다. 시꺼먼 길가의 도랑창에 시꺼먼 눈더미가 덮여있다. 저물녘의 설핀 해살이 차창에 언듯거리는데 바퀴밑에서는 낮동안에 녹은 눈과 얼음이 진창이 되여 질벅거렸다.

《ㅈ철》공장에 이르니 회전로앞에서 허군수가 출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치고있었다.

《가만, 강복금, 이리 오라구. 쇠물이 로에 붙고있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것두 볼줄 몰라?》

정광을 섞어 빚은 구단광이 회전로안에서 깨여지고 부서지면 정광이 녹아 로벽에 붙게 된다. 그러면 바람을 세게 쏴주어 떨구는데 심할 때에는 출구까지 메여버리므로 산소용접으로 불어서야 떼여낼수 있다.

허군수는 강복금이라는 녀성로동자가 쿡쿡 찔러서야 책임비서가 왔다는걸을 알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만나는 《〈ㅈ철〉의 형제들》이여서 각근히 인사할 필요는 없다. 전진욱은 그의 침울한 얼굴을 보고 오늘의 시험도 실패라는것을 알았다. 몇번째 실패인가?··· 영화에서는 백스물한번째요 몇번째요 하군 하지만 그들은 몇번째 시험인지 세여보지 않았다. 그것을 세여보고 세상에 공포하는것은 후날 성공한 뒤 기자들과 영화창작가들이나 할일이고.

그새 허군수는 살이 쏙 빠지고 초췌해졌다. 기지있는 당일군인 그가 책임비서와 같이 《ㅈ철》에 운명을 건 이래 별로 웃어볼새도 없이 시꺼매 돌아가더니 인제는 눈정기까지 흐려졌다.

《뭐 좀 먹을게 없소? 출출하구만.》

《있을게 뭡니까.》

《소문난〈ㅈ철〉당비서가 알고보니 깍쟁이로구만.》

《아무 생각두 없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오늘 회의에서 무슨 말들이 오구갔습니까, 예?··· 그걸 생각하믄 그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게···》

《난 배속이 비여서 꾸륵꾸륵하는데?》

《정말입니까?》

그는 미심쩍어하는 눈빛이였다.

《정말아니믄. 어디 내 배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 한번 들어보라구. 막 우뢰질이요.》

《그럼··· 갑시다.》

땅거미가 졌다. 바람이 불면서 구내의 시꺼먼 먼지를 회오리처럼 말아올렸다. 그들은 서둘렀다. 《ㅈ철》공장구내식당으로 바삐 가는데 잠을 깬 《강철령감》이 뒤쫓아왔다. 아직 전진욱은 령감이 뭣때문에 찾아왔는지 묻지 못했다. 그럴새도 없었고 물을 필요도 없다.

령감이 쫓아다닐 때엔 틀림없이 무슨 긴요하게 제기할 문제가 있을것이다. 《ㅈ철》공장 구내식당은 공장의 시꺼먼 연기를 피해 바다기슭의 안침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책임비서와 소문난 《강철령감》 그리고 자기네 공장당비서까지 들이닥치자 식당아주머니들은 바빠서 쩔쩔매였다.

전진욱이 웃으며 롱을 했다.

《아주머니들, 배가 뒤잔등에 가붙었소. 뭐든 제꺽 들여오시오. 소문난 공장이니 물론 푸짐하게 차리겠지.》

허군수가 물었다.

《추운데 속두 좀 데울가요?》

《그야 물론!》

그러자 허군수는 주방칸에 대고 명랑하게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 소리를 뽑았다.

《연희동무!ㅡ 거 물도 좀 데워서 한고뿌씩 올려놓소야! 찰찰 넘치게 부어서.》

허군수는 이제야 비로소 본래의 자기를 되찾은듯 했다. 전진욱은 사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고생하는 그를 휴식시키기 위해 여기로 끌고왔다. 허군수의 웃고있는 얼굴을 보게 되여 마음이 개운해진 그는 《강철령감》이 말 한마디없이 뿌죽해있는것도 못 본척 했다.

상이 들어왔다.

《책임비서동지, 이거 강낭국수밖에 없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바로 강낭국수요. 정말이요. 그건 동무네 당비서두 잘 알아.》 하고 상에 나앉던 전진욱은 반갑게 소리쳤다. 《아니, 정말 세가지 반찬이 어느새 이렇게?··· 가재미도 있구? 동무넨 부자로구만. 응?!〈강철령감〉님, 좀 보시오. 어떻습니까?》

《난 부엌에 들어서면서 벌써 다 봤수다.》 하고 령감이 처음으로 시쁘둥해서 하는 말이였다. 《물고기버치랑 여러가지 장단지랑 다 봤는데··· 어째〈ㅈ철〉공장이 우리 하나강철보담 더 잘 산다오?》

허군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한테야 랭동고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 식당앞에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올린 랭동고 말입니다. 얼마전〈고난의 행군〉때 생활이 어려울수록 랭동고가 더 필요다는걸 절감했지요. 그래서 방공호모양으로 저렇게 만들어놨더니 낙지 한마리도 딱 분한있게 쓴답니다. 랑비라는게 아예 없어졌지요.》

《아냐, 그게 아냐.》하고 중얼거리는 령감의 낯색은 여전히 시쁘둥했다. 《여기와서 보니 알게 됐어. 내 로장을 할 때부터 그냥 소래기만 질러댔지 진짜로 일할줄은 몰랐다는거 오늘 새삼스레 알게됐당이.》

령감은 그것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던것이다. 《ㅈ철》공장은 큰 기업소이지만 1강철은 그저 직장이 아닌가, 하나의 큰 공장에야 어떻게 대비할수 있겠는가고 허군수가 위로하는 말에도 그는 줄곧 한탄하고있었다. 마치 어느쪽이 더 잘사나 하는 내기를 걸고 우정 찾아온 사람같았다. 그때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령감은 말이 없었다.

한시간후 전진욱은 령감과 같이 1강철의 전기로들을 돌아보았다. 마침 거기엔 송근우기사장도 나와있었다. 직장장과 같이 천정기중기를 손짓하며 무어라고 소리치다가 전진욱을 보자 그만 부처님처럼 굳어졌다.

전진욱은 아무말없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령감이 앞서가며 5호전기로의 박철진에 대해서 재빨리 설명했다. 박철진이 인사하자 령감이 제꺽 주를 달았다.

《천명제대군인으로 왔지요. 본래 12호로에 있었는데 지금은 5호전기로의 세포비서로 일합니다.》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4월에 제대되여온 그가 벌써 세포비서로 일한다니 자랑할만 한 일이 아닐수 없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제대군인이 확실히 다르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로앞에서는 길게 말할수 없다. 전진욱은 로안에서 3상전극이 별로 야단스럽게 울부짖지 않으면서도 파랗게 쇠물을 끓이는것을 들여다보며 용해기가 끝난것이라고 짐작했다.

《산화기인가?》

《예, 아니 이자 방금 환원기에 들어갔습니다.》

산화기나 환원기는 탄소와 린, 합금원소들의 조성을 해당 강종이 요구하는 분석값에 맞게 조정하는 공정을 말하는데 산화기에서는 중간온도를 보장하면서 공정을 진행하고 환원기에는 화학조성을 최종적으로 맞추며 출강을 위한 온도를 보장하는것이다.

《좋아.》 하고 전진욱은 박철진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수고하라구.》

로를 떠나면서 령감이 박철진의 유별난 사랑과 곡절에 대해 루루이 설명하고는 지금껏 70고개를 넘어 살면서 그렇듯 까다롭고 딱한 일에 맞다들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녀자의 이름이 뭔가고 묻자 그는 증을 내며 말했다.

《글쎄 서옥영이라는 앤데 제대군인 박철진이 어쨌다구 자꾸만 피해가는지 원, 몇달째 애를 멕이우다.》

《서옥영?!》

전진욱이 걸음을 멈추자 령감이 물었다.

《그 앨 아시우?》

《예, 압니다.》

《원 저런! 고게 어떻게 했길래 책임비서까지 다 알게 됐을가?···》

전진욱이 웃는것을 보고 령감도 자기가 사랑스럽게 욕질한 옥영이를 생각해서인지 벙글써 웃어버렸다.

직장을 다 돌아보고 다시 한시간후엔 직장휴계실에 들어가 마주앉았다. 비로소 본론이 시작되는가?··· 전진욱은 아까 말하던 박철진에 대한 문제가 아닐가 하고 생각하였다. 령감이 가끔 자기네 직장사람들에 대한 왕청같은 문제를 끄집어내는 일이 드문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자리에 앉게 되자 령감은 자기 방의 주인답게 손가락마디를 딱딱 울리고 헛기침을 하는데 웬일인지 이마와 목의 피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성이 났는지 아니면 말을 떼기 거북해하는것인지?···

《책임비서동지.》 하고 그는 별스레 정중히 불렀다. 《내 오늘 늙은 사람으루서 좀 싫은 소릴 해두 되겠습니까?》

《뭘 그럽니까. 처음두 아닌데··· 하십시오.》

《좋수다. 책임비서동무, 이자 기사장을 만났을 때··· 좀 보기 뭣합니다. 그게 뭐이오. 예?··· 책임비서야 큰 사람인데 기사장이 좀 비뚤게 나왔다구 해서 말도 없이 그앞을 지나가구···》

얼마나 감각이 예민한 령감인가? 한순간에 불과한, 전진욱자신도 거북스러운 느낌에 미처 말마디를 고르지 못한채 지나가버린일인데 그것을 꼬집고있는것이다.

그는 담배와 라이타를 꺼내였다. 먼저 령감에게 한대 권하고 자기도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는것과 함께 한모금 깊이 힘주어 빨면서 굴뚝처럼 연기를 내뿜었다.

《어째 제 말이 노여웁소?》

《아니, 무슨 말씀을··· 옳습니다.》 하고 전진욱은 조금 얼굴을 붉히며 솔직히 말했다. 《내가 그만 쬐쬐하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제창 받아무시니 나두 맘이 편하우다.》

《허ㅡ늘 그렇지요. 누구말이라구 엇나가겠소. 자칫하다간 로에 처넣겠다구 을러대겠는데.》

두 사람은 맘껏 소리내여 웃었다. 용해공들치고는 드물게 담배를 피우지 않는 령감이지만 책임비서와 같이 열심히 빨고는 허공에 연기를 내불었다.

전진욱이 또 웃으며 말했다.

《인젠 본론을 말하시우.》

《본론엔 벌써 들어가있수다. 기사장문제니까.》

《참.》하고 전진욱은 소리내여 웃었다. 《련합당위원회를 할 때두 그렇게 직방 말하군 하더니만.》

《그렇채이믄. 본론엔 빨리 들어가야 하우다. 우리 로동자들은 긴 말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데선가 구내기관차(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내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뿡!ㅡ 하고 울려왔다. 두사람은 차츰 멀어져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꼭같이 지금 장군님께서는 강철생산이 정상화되였다는 보고를 애타게 기다리시겠는데 아직도 《ㅈ철》을 완성하지 못하고 론의만 벌리고있구나 하는 심각한 자책에 잠겼다. 그리하여 전진욱은 또 한동안 담배만 뻐금뻐금 빨았다.

얼마후에야 령감이 먼저 기사장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련합기업소 기사장이믄 큰 어른인데··· 내가 너무했는지 모르겠수다. 젊은것들두 그렇게 흥달구구 주리를 틀면 밸뚝시를 부릴게 뻔한데 나살이나 든 그 량반이 좋아할리가 없지비. 그런데··· 내 오늘 책임비서동지한테 하자는 말은 그게 아니구···》

그는 주근깨같은 로인반점이 가득 널린 두툼한 손을 두번째로 담배갑에 내밀었다. 전진욱이 담배를 뽑아 라이타불까지 켜주었다.

령감은 한두모금 빨고 한바탕 기침을 터치였다. 전진욱은 그제서야 담배를 피우지 않던 령감이 오늘 우정 입에 물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잠시후 담배불을 꺼버리고서야 령감은 끊어진 말을 이었다.

《기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책임비선 다 모를거우다. 그 량반이··· 실은 속에 눈물만 그득하던 사람이였수다. 짜개바질 입구다니던 그때(왜정때 말이우다.)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우? 아버진 배군이였는데 술도깨비여서 가산이란게 남아나지 않은데다가 어머니와 누이까지 병에 걸려 어린 송근우가 밤낮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 팔면서 병구완을 했다구 합디다. 그렇지만 끝내 어머니두 누이두 잃구 계모라는게 들어왔지만 그것두 달아나구··· 지금 모시구 사는 늙은인 뉘긴지 아시우? 판판 낯모르던 녀자였다우. 골병이 든 아버지가 배에서 내리자바람으루 길바닥에 쓰러진걸 집에까지 부축해왔던 녀자인데··· 아버진 이틀두 못 넘기구 숨졌다는거우다. 어린 송근우를 대신해서 그 녀자가 장례를 대충 치르었다던지··· 누가 시켜서 그리했겠소? 그 녀자두 그런 어진 마음을 갖구왔으니 우리 기사장덕을 보게 됐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네들 둘 다 정말 맘씨 고운 사람들이요.

이건 다 송근우 그 사람 아저씨벌 되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내게 해준 얘기우다. 기사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녀잘 친어머니처럼 모시구있는데···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여느 사람같으믄 필경 남남으루 갈라지고말았을거우다. 난 얘길 듣구 저 기사장을 다시 보게 됩니다. 얼마나 고운 마음씨가 속에 자리잡구있는거겠수. 그런데 맘씨만 고우면 뭘하겠수. 제 할바를 잘해야지비. 그렇지 않습니까?··· 헌데 그 량반 해방후 좋은 제도를 만나 기사장까지 되긴 했겠지만. 정말 공부하는 일이라면 죽기루 해대던 사람이우다. 참 그 량반이 김책공대를 다닐 때 무슨 전국대학생 학과실력경연인지 하는데서 1등을 해서 소문을 냈다는 얘긴 책임비서두 아마 들은적이 있을거우다. 그렇지요? 들었으믄 관두구···

그럼 내가 보는 기사장에 대해 말해보리다. 기사장으루 말하면 기술엔 밝으나 손탁은 세지 못하구··· 말하자면 사람들을 틀어쥐구 냅다미는 그런 일에선 좀 약하단 말이우다. 거기에 어릴 때부터 속에 눈물만 채우구 자라왔겠다 어찌어찌해서 군대복무도 못한탓으루 마음은 자잘하구 좀 여리다구 볼수 있는데 반면에 욕망은 큰 사람이라구 할수 있수다. 그런 사람이여서 늘 속을 활 터놓지 못하구 좀두상처럼 옹크리는가 하믄 또 어떤 땐 괜히 새살을 떨기두 하는거라구 난 생각하우다. 사실말이지 나두 공장적으로 제일 나이많은 사람으로서··· 가끔 언제까지 일을 시키려나 하구 생각할 때가 없지 않수다. 손에서 일을 놓으믄 당장 죽을것처럼 생각되면서 아득바득 붙잡고있을 생각두 없지 않구요. 이런게 바루 자리지킴할 생각이 아이겠소? 그런 내 생각으루 비추어보면 송근우기사장두 자리지킴할 생각으루 웃사람, 아래사람 여기저기 눈치만 자꾸 보는게지비. 오늘 회의때 있은 일두 그래서 벌어진게 아이오?··· 그렇지만··· 사람이 아무리 밉상이라두 그한테 너무 타내진 말아주시우. 책임비서동지랑 잘 밀어주믄 아직 큰일을 할 사람이우다. 내 보기엔 그런데 책임비서생각엔 어떠시우?··· 달리 생각할건 없수다. 내 생각이 그르다믄 직방 말해주시오.》

《아닙니다.》 하고 전진욱은 나직이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옳게 봤습니다. 그런데···》 하고 령감이 호기심가득히 물었다. 《얼른 말해주시우. 뭐입니까?》

《그런 자리지킴할 생각이 어데서 나왔는가 하는건데··· 우리 기사장동무의 경우를 보면··· 그는 제가 해놓은 일만 크게 여기면서 자기는 당에 리익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당에서 자기를 키워주구 내세워주었는데 아직 다 보답하지 못하고있다는 생각은 못하고있는것 같습니다.》

령감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수다. 누구든지 보답할 생각을 못하믄야 찌부러지기마련이지비.》

담배질군인 전진욱은 또 한대를 입에 물었다. 이제와서는 애연가들이 맛보는 감미로움은 고사하고 역하고 골이 쑤시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고약한 습관으로 하여 혀바닥이 껄껄해질 때까지 그냥 또 시누런 연기를 빨고 삼키고 코구멍으로 내뿜는것이였다.

전진욱은 령감이 자기앞으로 날아오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날리고 입으로 불어대더니 멀찌감치 물러앉는것을 보고서야 불을 껐다. 그리고는 어느새 잔뜩 피곤에 몰려 눈이 풀어지고있는 령감을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며 살펴보았다.

《강철령감》최진수는 17살나이에 총을 메고 전선에 달려나갔던 로병이다. 전후 제대배낭을 메고 온 그날부터 용해공으로, 로장으로 일하다가 대중을 조직동원하는 그의 남다른 능력이 눈에 띄여 당학교를 나온 후 얼마간 련합당위원회에서 일하다가 다시 자기의 고향인 용해장으로 돌아가 지금은 교관으로 종일 소래기를 질러대고있다. 어느모로 보나 쇠물내가 나는 사람, 언제든 쇠물처럼 뜨겁게 끓는 사람이다.

밤이 깊었다. 드디여 직장휴계실에서 나온 전진욱은 철판으로 만든 계단을 내려 도로에 나섰다. 같은 건물로 이어진 《강철의무실》을 지나 청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의 대기는 차고 맵짰지만 그는 흥흥 코를 울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비록 오늘 하루는 《ㅈ철》문제로 하여 격하게, 껄끄럽게 흘러갔어도 인제는 어느덧 마음이 가라앉고 어쩐지 숙연해지기까지 하는것을 느꼈다.

방금 있었던 《강철령감》과의 담화를 돌이켜보았다. 자기를 비판하던 령감, 배신적으로 나온 기사장을 념려하던 령감, 마침내 앉은뱅이책상우에 엎드려 어린애처럼 골골 잠들어버린 그 령감을 상기하려니 부지중 위대한 당에 대한 새삼스러운 느낌에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당이 키워냈고 오늘도 수없이 키워내고있는 보통 당원들의 모습이다. 때로는 어질고 단순하고 고지식한가 하면 때로는 벅찬 충동에 불같이 달아오르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은 당앞에서 그 무엇도 숨기려 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는다. 그 누구든 가림없이 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진실로 가슴아파하며 따뜻이 일깨워주고 자기 살붙이처럼 정을 담아 고무해주기도 한다. 그들은 당을 자기들이 사는 집, 자기들의 삶, 자기들의 운명 그자체로 여기며 존대하고 사랑한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전기로의 불빛이 강철대들보를 휘감고 우로 퍼지며 한겨울의 된추위에 얼어들어 꺼멓게 죽어있는 밤하늘을 불그레하게 녹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