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점심때였다. 김책역에 나갔던 승용차가 돌아와 나지막한 둔덕우의 집대문앞에서 멎었다. 차에서는키가 크고 몸이 여윈 한 늙은이가 내렸다. 마침내 그가, 아버지가 나타난것이다.

늙은이는 대문안으로 들어섰으나 갑자기 두마리의 누런 개들이 목사리가 끊어져라 하고 길길이 날뛰며 극성스레 짖어대는것을 당황하여 지켜보는데 반반히 면도를 한 광대뼈 불거진 여윈 얼굴의 근엄한 표정과 몸에 꼭 맞는 옷차림이며 눈앞의 모든것을 살피는 주의깊은 눈길로 미루어 과묵하고 절제가 강한 사람이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김용삼은 개들을 향해 위혁적으로 팔을 내젓고나서 안해와 함께 몇걸음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제가 용삼입니다. 이 사람은··· 제 안해이구요.》

《아버님.》안해도 머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먼길에 얼마나 수고많으셨습니까.》

《으ㅡ음, 고마우이.》

늙은이는 처음보는 아들과 며느리앞에서 할 인사말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듯 했다. 혀끝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감빨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머밋머밋 한손을 내미는데 누렇게 뜬 얼굴이 경련적으로 이지러지고있었다.

《이제야 와서··· 정말 체면이 없이 됐네.》

김용삼은 물론 안해도 그 말엔 대답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난 말일세.》하고 늙은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오래 있진 않겠네. 그저 한번 보구싶어 왔을뿐일세. 손자들이랑··· 》

《애들은 학교에 갔는데 곧 옵니다.》 안해가 말했다. 《맏이는 군대에 나갔구요. 둘째두 군대에 나갈려구 벌써 신체검사랑 다 했어요.》

김용삼이 곁들었다.

《참 우린 아들만 넷이랍니다.》

《오! 아들만 넷씩이나?··· 게다가 벌써 맏이는 군대에 나갔단말이지.》 늙은이는 감탄하여 연송 허연 입김을 포연처럼 내불며 말했다. 《우리 집 손자녀석들가운데서두 하나 올해에 군대에 나간다네.》

다음순간 그는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것을 깨달은듯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친아들앞에서 《우리 집》이 따로 있음을 강조했던것이다.

별안간 옹색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늙은이의 거동을 지켜보면서 용삼은 무엇때문인지 처음으로 어떤 친밀감 비슷한것을 느끼게 되였다.

《여긴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방안에 들어가자 자연히 안해가 주역을 맡게 되였다. 이미 준비해놓은 음식상의 보자기를 거두며 안해는 말했다.

《아버님, 처음 오셨는데 변변치 않습니다.》

《고마우이.》

며느리앞에서도 늙은이는 거북해하였다. 용삼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그는 중얼거렸다.

《난 말일세. 여기 오래있진 않겠네.》

벌써 두번째로 한 말이였다.

《아유, 아버님. 어째 자꾸 그런 말씀을?!··· 》이번에도 안해가 먼저 말을 받았다. 《어서 나앉으세요, 아버님. 겉옷도 벗으시구··· 여보, 어서 술병을 따세요.》

김용삼은 입에 주먹을 가져다대고 컹컹 헛기침을 하고나서 술병을 꺼내들었다. 얼마나 얄궂은 일이람?!··· 네 아들의 아버지로 46살이 되여서야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술을 부어드리려니 불현듯 고생많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마음이 어수선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머니가 이 일을 아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가?··· 아마 무덤속에서도 쓰라린 회한에 눈물을 흘릴것이다. 아버지도 별안간 어머니가 생각난듯 했다. 천천히 잔을 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우리 이 잔은··· 어머닐 위해 드는게 어떤가?》

《예, 좋습니다.》

잔을 들었으나 선뜻 입에 가져갈수 없었다. 한생 아버지를 찾던 어머니에게 무엇인가 위로가 될 말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을수 없어 《어머니,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이 잔을 들겠습니다.》라고 가까스로 중얼거렸다.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러자 옆에 앉아 술을 붓던 안해가 한손으로 입을 싸쥐고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상우에 흘러내린 술이 주륵주륵 떨어져 자기의 무릎을 즐벅하게 적시는것도 알지 못하고 경련적으로 어깨를 떨고있다.

안해도 지난날 자기의 남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얼마나 불쌍히 여겨왔고 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어떻게 원망했는지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김용삼은 자기의 마음도 흠씬 젖어드는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고 눈귀를 흠칫거렸다.

《여보, 그만하우!》

그의 어성이 높아지자 로인은 급해했다.

《모든게 내탓일세. 내탓이야.》

《···》

김용삼은 말없이 술잔을 채웠다. 이제 와서 그런 화제를 꺼낼 필요는 없는것이였다. 누구를 탓할것도 없고 설음많던 지난날을 상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여기 김용삼의 집에서는 아들들이나 안해가 자기들의 아버지, 남편이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누구도 먼저 송수화기를 들지 않는것으로 가풍이 세워져있다.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수화구에서는 강철의무소의 녀의사 홍지순의 떨리는 목소리가 징징 울리고있었다.

《지배인동지, 책임비서동지가 그만··· 혼절했습니다.》

《혼절?!》 하고 그는 불길한 예감에 어깨를 옴츠리며 벼락치는듯 한 고함을 질렀다. 《혼절이라는건 뭐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엉?··· 책임비서가 어떻게 됐다구?》

《갑자기 정신을 잃고··· 까무라치면서··· 》

《뭐ㅡ요? 어째 그렇게 됐소?》

《과로한것 같습니다.》

《알겠소.》

그는 당장 자리를 차고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일생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가 눈앞에 있다는데 생각이 미쳐 주춤거렸다.

《저··· 》 하고 그는 말을 떼였는데 이번에도 아버지라는 부름은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 잠간··· 》

《얼른 가보게. 책임비서가 그리 됐다는데 얼른!··· 》

그때 마침 막내아들이 책가방을 흔들거리며 들어왔다.

《엄마, 할바이 왔어?》

버르장머리없는 막내의 행동거지에 김용삼은 물론 제 어머니도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유독 기뻐한것은 늙은이였다.

《오, 여기 와있다. 내 손주야!》

드디여 늙은이는 아무런 가식도 없이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자기의 혈붙이를 만난것이다.

《할바이가 우리 할아버지오?》

《그래, 내가 네 할아버지다.》

《그런데 어째 이제야 왔소?》

《응, 그렇게 됐구나.》

김용삼은 막내아들의 버르장머리없는 언행에도 불구하고 홀연 마음이 홀가분해지는것을 느꼈다. 줄곧 옹색해하던 로인이 손자의 출현으로 지금껏 은근히 자기의 마음을 결박하고있던 보이지 않는 바줄을 끊어버린것이 분명했다. 그러고보면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이들과 인생을 마무리짓는 늙은이들간에는 아무런 가식도 없는 순수하고 소박한, 자기들만의 공통된 언어가 따로 있는듯싶었다.

김용삼은 송수화기를 들고 자기의 운전사를 찾았다.

《봉철인가? 빨리 와주게. 응, 급한 일이 생겼어.》

얼마후 그가 차를 타고 달려갔을 때 책임비서는 현장휴계실에서 기다란 걸상 두개를 붙여놓은 《침대》에 누운채 녀의사 홍지순과 무엇인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일도 참 맹랑하게 되였다. 무슨 《혼절》이라며 와뜰 놀라게 한 녀의사가 어처구니없었다. 하여 그는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고말았다.

 

×

 

《의사선생.》하고 전진욱은 말했다. 《심한 뇌타박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환자도 정상으로 돌아올수 있는가요?》

홍지순은 어처구니없는듯 쓰겁게 웃었다.

《책임비서동진 뇌타박으로 쓰러진게 아니라 혼절이였습니다. 과로에서 오는.》

《아, 그렇소?》

《그러믄요. 그리구 책임비서동지야 지금 정상으로 돌아와있는데 걱정하실게 뭡니까.》

《정말 그렇구만.》

말은 이렇게 했으나 속으로는 언짢아했다. 물론 그는 정상으로 돌아와있다. 문제는 지금 조선인민군 11호중앙병원에 후송되여간 딸 인복이가 정상상태로 돌아올수 있는가 하는 그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안해도 가있다.

어제 밤 안해는 전화로 이렇게 알려왔다.

《인복이 수술은 외과에서 제일 유능하다는 박사선생이 했어요. 대좌별을 단분이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수술한지 사흘째 되는 오늘 인복이가 처음 날 알아보지 않겠어요. 어릴 때처럼 〈엄마〉하구 부르겠지요. 난 너무 기쁘구 반가워서〈인복아, 내 딸아〉하고 부른다는게 그만 엉엉 울고말았어요. 어쩌겠어요. 내옆에 서있던 간호원처녀도 나랑 같이 울었는걸요. 그런데 그 앤··· 울지 않아요. 그저 쳐다보기만 하면서 제 에미가 우는데 전 그저 아무말도 없이 보고만 있지 않겠어요. 여보, 난 무서웠어요. 그리구 그러는 그 애가 너무 불쌍해서 더 소리내여 울었어요.

··· 됐어요. 그만하세요. 다신 그 애앞에서 울지 않을테니. 그래두 좀 생각해보세요. 엄마라는게, 중태에 빠진 딸자식의 친엄마라는게 울음도 없다면 그게 무슨 엄마겠어요, 예?》

그리고는 또 울었다. 전진욱이 짐짓 성이 난듯 엄하게 꾸짖어서야 울음을 그치고 말했었다.

《안 울겠어요. 예, 정말이예요.··· 약속해요.》

그때 전진욱은 속으로 울고있었다. 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라고 왜 눈물이 없겠는가? 남들한테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쓸뿐이다. 책임비서라고 중태에 빠진 딸자식때문에 왜 고민하지 않겠는가?보다 큰 임무가 있기에 남모르게 자기의 마음속에 묻어두고있을뿐이다.

그리하여 전진욱은 방금 진료소의 녀의사에게 뇌타박을 두고 물었었다. 한마디라도 위안이 될 말을 듣고싶은 심정이였는데 오히려 무안만 당하고말았다.

알고보니 녀의사의 생각은 다른데 가있었다.

《책임비서동지.》하고 홍지순이 말했다. 《지금 사람들속에서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아가고있다는걸··· 아십니까?》

《어떤 소문?》

《저···》

《나도 짐작이 가는게 있는데··· 일없소. 어서 말하시오.》

《〈ㅈ철〉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내려온다면서··· 》

《벌써 와있소.》하고 전진욱은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담 또 어떤 소문들이요?》

《그리구 책임비서동지가 〈ㅈ철〉을··· 아니, 무슨 지난날 다른 사람들이 쌓은 공적을 무너뜨린다던지··· 》

《저런! 그렇게 고약한 사람을 아직까지 그냥 놔두고있단 말이요? 당장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야지.》

그가 소리내여 웃어대자 녀의사는 시무룩해졌다.

《책임비서동지, 그저 롱담으로 굼때버릴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럴수도 있지. 있구말구.》

갖가지 흉흉한 소문이 마른 잔디밭에 달린 불길처럼 쌍포지구를 휩쓸며 돌고 또 돌고있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소문은 한바퀴 돌 때마다 배로 불궈지고 수많은 재티를 흩날리면서 자꾸만 새로운 풍문을 또 만들어 호기심많은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게 쑤시는것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지순이 주사를 맞고 안정해야 한다고 애원하듯 말했지만 손을 내저었다.

《걱정마오. 난 일없소. 그리구 의사선생, 누구한테도 오늘 내가 뭐 어떻게 넘어졌으니 어쩌니 하는 말을 내지 마시오. 부탁합니다.》

《예, 알겠어요.》

녀의사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것이 있었다. 그 녀자가 허필웅이 공장에서 나간것을 어떻게 보는지?··· 그러나 말을 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그들의 사이를 비난하는 암시로 들릴수 있기때문이였다. 비렬한자들만이 무엇인가를 은근히 암시하고 꼬집으며 그렇게 묻는것이다.

전진욱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물며 녀인을 외면했다. 그러자 홍지순은 입술을 꼭 옥물었다. 전진욱의 묻는듯 한 눈빛에서 벌써 그 녀자는 허필웅에 대해서 묻고싶어하는것이라고 지레짐작하였다. 얼마전에 허필웅이 책임비서를 타매하고 갔기때문이였다.

하여 그 녀자는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저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것 같은데··· 어서 하십시오.》

전진욱은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뽑으며 놀란 눈빛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하시오?》

《예.》

전진욱의 두눈이 이번엔 찬양의 빛으로 미소를 뿜었다.

《의사선생, 솔직히 말하여 난··· 거기서 설비부지배인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묻고싶었소.》

《무슨 소문을 들으신가 보지요?》

《소문을 무서워하오?···》

《예.》

《무서워하지 마시오. 소문이란 무시해버려야지 거기에 신경을 쓸수록 더 보태지고 더 커지는 법이요.》

한순간 홍지순의 눈에서 불빛이 흔들리였다.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그럼 말씀드리지요. 그분은 자기가 심하게 앓을 때 밤을 새워 치료해준걸 대단히 고맙게 여기면서··· 마치 은인이나 되는것처럼 저를 대해주었어요. 그러면서 한때 제가 고향인 개성으로 갈가하고 동요할 때엔 어렵지만 여기서 같이 일하자고, 서로 도우면 되지 않는가 하며 꾸짖겠지요. 그리구 지난해 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신 후에도 제게 몇번이고 흥분해서 말해주더군요. 장군님께선 우리 성강로동계급이 먼저 가슴속에 불을 지피라고 하셨다고, 그것이 어떤 불인지 아는가?··· 우리 식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노예로 되는가 하는 운명의 불이다, 다시 말하여 신념의 불이고 서로 돕고 이끄는 정의 불이다, 의사선생도 여기에 한몫해야 한다, 로동자들을 위한 의사들의 뜨거운 정이 하나라도 더 보태지면 얼마나 좋은가, 성강의 쇠물이 더 펄펄 끓을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해주던분이 글쎄 저는 왜 그렇게 훌쩍 떠나갔는지··· 그 일을 생각할 때면 정말 가슴이 쓰립니다.》

《···》

무엇이라고 말할수 있으랴. 전진욱은 웬일인지 속이 편치 않고 눈이 바로서지 않는것을 느꼈다. 목구멍으로 흘러든 뜨거운 물결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철썩이고있었다.

조용하고 착실하고 마음여린 이 녀의사를 통하여 허필웅의 인간적면을 새롭게 알게 되고 그가 공장에서 나가게 한데 대한 자기의 책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의사선생.》 하고 그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에게서 힘을 얻고 고무를 받았다면 의사선생도 그에게 힘을 주고 고무해주어야 하지 않을가요?》

《아니, 제가 말입니까?》

《네, 아무리 도도한 사람도 녀인들의 진심으로 되는 충고엔 귀를 기울이는 법입니다.》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서.》

전진욱은 홍지순이 떠나자 《ㅈ철》전문연구사들을 불렀다. 기어이 새 공법을 성공시키자면 그들과 끝까지 손잡고 나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련속적인 실패와 나날이 강도가 높아지는 지도검열에 의기소침해져있다.

열변을 토했다. 백번도 더 말했을 새 공법의 절박성과 가능성을 그리고 기어이 해내야 할 당적의무에 대하여 다시금 피를 토하듯 력설했다.

차고 습한 바람이 바다쪽에서 불어왔다. 본격적인 겨울이 왔건만 아직도 진펄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릿한 썩은 물과 해묵은 풀의 물커진 냄새가 풍겨오군 했다. 그 냄새에 미간을 찌프리고있던 허군수가 휘파람소리같이 가늘게 부르짖었다.

《어랍쇼. 설비부지배인이 또 어떻게? 어디서 무슨 냄새를 맡고 오는게 아닐가요?!》

전진욱은 불현듯 허군수와 허필웅 두사람이 같은 허가성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예로부터 이곳 김책지구에는 허가성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히 많다고 한다.

허필웅은 차도 없이 큰길을 따라 곧장 회전로가 있는 곳, 전진욱이 있는 곳으로 씨엉씨엉 걸어왔다. 인사말도 시원스러웠다.

《책임비서동지, 안녕하십니까! 좀 도움받을게 있어서 또 찾아왔습니다.》

《강재 말이요?》

《예, 옳수다. 정말 강재때문에 애나 죽을 지경이요.》

《그런거야 지배인한테 가봐야지.···》

허필웅은 그가 말끝도 맺기 전에 팔을 내저었다.

《그래도 우리의 딱한 사정을 제일 잘 아는건 책임비서동무가 아닙니까.》

《여기 사정도 편안친 않소.》

《아 그거 말입니까?》

허필웅은 갑자기 눈시울을 떨며 전진욱을 바라보았다. 동정과 련민으로 하여 그의 목소리는 젖어들고 누르끼레한 볼은 사뭇 실룩거렸다.

《나도 들었수다. 책임비서동무에 대해서 누군가 신소를 해서 검열이 붙었다는걸 말입니다. 게다가〈ㅈ철〉때문에 또 문제가 섰다면서요?··· 헌데 말입니다. 실리가 나는 새 공법을 어째 그 사람들은 한사코 반대한다는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허필웅을 놀라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허군수가 슬쩍 한마디 비꼬았다.

《거기서도 전엔 방해만 놀았지요.》

《방해?》 하고 그는 우는 소리로 말했다. 《못된 성미지비. 옳다는걸 알면서두 방해했으니··· 그렇지만 엊그저께 장봉구 그 사람이 와서 허는 소릴 들으니 어째 그런지 영 속이 좋지 않더라니까. 정말 좋지 않았수다.》

《장봉구?》하고 공업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사가 분격하여 가늘게 내쏘았다. 《그따위가 하는 말을 다 들어요?》

《아니, 이 사람.》 허필웅은 갑자기 부지배인으로 일할 때처럼 목청을 돋구었다. 《옳지, 너 윤길이구나. 뭐 그따위가 어쩌구 어째? 사람을 모욕해두 분수가 있지. 봉구 그 사람이 수재라구 해서 질투하는거지?》

《그따윌 질투해요?》 윤길이라고 불리운 그 연구사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뭐 그리구 그가 수재라구요? 하긴 수재가 옳기야 허지. 한다하는 부지배인동지까지 푹 삶아놨으니··· 그 자식이 요새 어떻게 하구 다니는지 알기나 하시오? 2중판직장에 있는 제 약혼녀까지 배반하구 돌아친단 말입니다.》

《뭐? 그럼 봉구가 우리 영란이를?···》

너무도 뜻밖의 일에 아연해진 허필웅의 볼품없이 이그러진 얼굴에서 두눈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우리 영란이가 어째서? 그만 한 녀잘 어데가서 고른대?》

《암만 그래두 간부댁 따님보단 못하다는거지요.》

《간부댁이라니 어느 간부?》

그는 거칠게 모두숨을 내쉬고 침을 꿀꺽 삼키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마치 어느 간부가 강권을 휘둘러 남의 사랑을 파탄시키는지 당장 심판하려는듯 했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이 없고 지어는 다들 자기를 외면하는것을 보자 마침내 전진욱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책임비서동무, 차를 한대 좀 빌려주시오. 내 당장 그녀석을 붙들어다가 따져야겠수다.》

《차를 빌릴게 있소? 자기 차가 있는데.》

《뭐라구요?》

《전활 걸어 자기 차를 부르시오. 차도 운전사도 부지배인자리도 다 그냥 그대로 있으니》

《?!···》

그의 두눈의 새까만 동자는 커다란 의혹심으로 하여 급작스레 커지고 마냥 실룩거리는 커다란 입에서는 괴로운 기침소리가 터졌는데 그럴 때마다 증기기관차의 연통에서처럼 허연입김이 쏟아져나오군 했다.

《정ㅡ말ㅡ이시오?》

《가보시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믿을수 없는지 구원을 청하듯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에 대답을 줄 사람이 어데 또 있으랴. 다시 야단스럽게 기침을 터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의 얼굴은 재빛으로 죽어가고있었다.

마침내 그는 약간 몸을 비칠하더니 천천히 돌따서 걸어갔다. 전화가 있는 사무실이 아니라 자기가 왔던 큰길쪽으로 헐금씨금 가고있다. 술에 취한것처럼 걸음마다 비칠거리고 컹컹거리는 기침소리도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