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하늘이 잔뜩 흐려졌다. 바다도 내다보이지 않는다. 담황색연기도 시꺼먼 하늘의 중압에 눌리여 땅바닥에 갈앉아 구내길을 덮었다. 차고 습하고 알싸한 대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저기압이 쌍포지구를 짓누르고있었다.

저물녘부터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 겨울의 첫눈이다. 푸실푸실한 눈가루들이 바람에 날려 엇비스듬히 뿌려지더니 차츰 바람이 자면서 솜털같이 하얀 눈송이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내리기 시작했다.

유도로직장을 나서던 지배인 김용삼은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무심히 손바닥을 펴들었다. 어릴 때 그해의 첫눈을 손바닥에 많이 받으면 그만큼 복을 받는다고 하던 늙은이들의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듯 많은 눈송이들이 흩날리고있건만 어느 하나도 손에 내리지 않고 엇비듬히 비껴가거나 손가락짬을 스치며 찔끔찔끔 녹아버리군 했다.

갑자기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두손을 맞잡고 마구 비벼대였다. 오늘따라 어릴적 일을 떠올리며 감상에 빠져있은것이 그지없이 놀라왔다. 그러는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감상적인것과는 거의나 인연이 없는 사람이였던것이다.

그때 기술발전부기사장 라수범이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

《지배인동지, 부총리동지가 찾습니다.》

《···》

그는 부기사장을 묵묵히 지켜보며 이 사람이 얼마동안이나 더 버텨낼가 하고 생각하였다. 젊고 학식이 있고 정열가이기도 한 그는 벌써 석달째 강괴겁을 완성하기 위해 밤과 낮이 따로없이 전투를 벌리고있는데 보기에도 딱할 지경으로 여위고 초췌해지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책임비서에게 잘 보이려고 극성을 부린다고 은근히 뒤소리를 내돌리고있다.

허튼 소리이다. 속통이 좁거나 실력이 딸리는 질투군들이 흔히 그렇게 남을 헐뜯지 못해 몸살이 나한다. 질투군들이란 자기에게는 없거나 모자라는 재능과 기술을 남들이 가지고있는것을 도저히 참을수 없어 속앓이를 하는데 그 괴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을 혀바닥으로 남을 깎아내리는데서 찾는것이다.

《지배인동지?···》

김용삼은 그가 독촉하기 전에 손을 내저었다.

《부총리동진 어데 계시오?》

《예, 기사장동지방에···》

《알겠소.》

지도검열책임자인 강창길부총리는 기사장방에서 공업기술연구소의 연구사들을 만나고있는데 낯색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송근우기사장이 하는 말이였다.

《지배인동무, 〈ㅈ철〉문제가 심상치 않군요. 이제 심각한 일이 벌어질것 같소.》

《그래요?》

김용삼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곧장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강창길부총리가 머리를 돌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아, 지배인동무요? 내 이제 지배인동무 방으로 가겠소.》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기사장이 뒤를 따랐다.

《그것보시오, 지배인동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길것 같소.》

《그건 무슨 소립니까?》

기사장은 그의 팔소매를 잡고 무슨 비밀이라도 터놓는듯 낮게 수군거렸다.

《난 부총리동지를 오래전부터 잘 아는데 말이요. 사실 말이지 내겐 아버지나 다름없는분이 아니겠소. 그런데···》

《아버지?》 별안간 김용삼은 기사장 송근우의 작게 축소된 두눈을 불로 지지듯이 들여다보았다. 《그게 우리 일과 무슨 상관이요. 예?》

《아, 지배인동무. 내 말은···》

《됐습니다. 기사장동무, 난 바쁜 사람입니다.》

김용삼은 자기가 두번째로 나이든 기사장을 무시하고 멸시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 방에 들어서자 말코지에 모자를 벗어걸고는 쏘파에 앉아 머리를 움켜쥐였다.

송근우기사장이 아버지라는 말을 꺼냈을 때 부지불식간에 속이 울컥 치밀던것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가? 기사장은 례사롭게 강창길부총리와의 친분관계를 강조했을뿐인데 느닷없이 화를 낸건 무엇때문일가?···

그는 아버지란 말을 남달리 정차고 애틋하게 여겨왔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살아온 그여서 남달리 아버지의 정을 그리워했고 아들만 넷을 키워온 아버지로서 자식들이 다 자란 오늘까지 그들에게 줄수 있는 모든것을 깡그리 쏟아부었다.

집안에 벌찬 사내애들이 넷씩이나 정신차릴새없이 돌아치며 다툼질을 해도 언제 한번 큰소리로 욱박지르거나 매질을 한적이 없었다. 그는 자식들이 자존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기를 바랐으므로 그 무슨 일에서든 강박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란 자식들에게 채찍질이나 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훈계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친근하고 믿음직한 벗으로 되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런데 기사장은 부총리를 두고 무엇이라고 했던가? 스승이나 맏형같은 사람이라 했다면 몰라도 아버지같은 사람이라니?···

때마침 강창길부총리가 방안에 들어서는데 최근 몇해동안 등이 구부정해지고 해쓱해진 그의 얼굴은 준엄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손끝으로 코언저리를 문지르며 쏘파 한끝에 앉더니 저으기 차거워진 시선으로 김용삼을 바라보았다.

《〈ㅈ철〉공장 말이요.》하고 그는 천천히 말마디들을 꼭꼭 씹으며 말했다. 《지배인동문 이전의 공정을 다 뜯어마슨걸 어떻게 생각하오?》

《다 뜯어마샀다구요?》

《성구기를 뜯어다 회전로에 직접 붙여놓지 않았소. 다른 공정은 다 줴버리구.》

강창길의 이마에 패워진 깊고 차거운 주름살들이 경련적으로 꿈틀거리고 사람들을 만나 담화하면서 기록한 료해철을 번지고있는 하얀 손도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그때엔 그럴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용삼은 긴장해지는 마음을 애써 눅잦히며 대답했다. 《새 〈ㅈ철〉이 시험로에서 성공했으니··· 낡은걸 버리는거야 응당한 일이 아닙니까.》

《한심하오!》

강창길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을 하고 말씨도 침착하고 부드럽던 그였지만 지금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새되게 부르짖는것이였다.

《그 성구기가 어떤 기대요? 회전로에 옮긴 그 성구기말이요. 뭐 생산의 합리화라구? 도대체 정신들이 있는지 모르겠구만. ··· 그런 명분으로 아무 기대나 뜯어옮기는 망탕짓을 했으니 얼마나 엄중한 일이요. 그리구···》

그는 흥분으로 하여 해쓱해진 얼굴을 김용삼에게 가까이 가져오며 손에 쥐고있던 원주필을 앞으로 창끝처럼 겨누었다.

《그리구 지배인동무, 그 〈ㅈ철〉은 우리 수령님께서 오랜 세월 특별히 관심하시며 그의 완성을 위해 로고를 바쳐오신거란말이요. 그걸 알면서도 무턱대고 다 뒤집어엎고있으니 이게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

김용삼은 강창길부총리의 입에서 연기처럼 쏟아져나오는 입김을 바라보면서 마치 눈보라를 들쓴듯 어깨를 옹송그렸다. 그는 비로소 지도검열성원들이 《ㅈ철》과 관계되는 문제를 어떻게 보며 어데로 끌고가는지 알게 되였다.

별안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여 얼굴을 찡기는데 입술의 귀재기가 경련적으로 바르르 떨리는것을 느꼈다.

《어디 말좀 해보오.》 강창길의 두눈은 차츰 가늘게 쪼프려지고 그속에서 의혹과 불신의 빛이 펀뜩이였다. 《그걸 마스는데 물론 지배인동무도 동의했겠지?》

《예.》하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기사장동무도 전적으로 찬성이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직접 책임비서를 거들지는 않으면서도 모든것을 그와 결부시켜 말하고있었다.

《기사장소린 하지도 마오. 내가 그에게 종전의것도 복구하라고 직접 과업을 주었는데 그는 어떻게 했소? 예, 예 대답은 해놓고 아무것도 해놓지 않았소. 결과 어떤 엄중한 후과가 빚어지고있나말이요? 에?··· 뭐 전적으로 찬성했다구?》

《···》

김용삼은 아무말없이 그를 마주보기만 했다. 기사장이 말하던 《아버지같은분》이 지금 얼마나 랭혹하게 문제를 보는것인가?···

그는 전형적인 학자형인 강창길부총리를 담박한 사람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지금 《ㅈ철》문제를 엄중시하는 그 얼음쪼각처럼 차고 예리한 론조에는 가슴이 서늘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말이 난김에》 하고 부총리가 말했다. 《지배인동문 기사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무슨 말씀이신지?》

《뭐 에돌것없이 직방 말해주오. 혹시 내가 감정적으로 그를 보고있지 않는지···알아야 할게 아니요. 지배인동무 보기엔 그가 어떻소?》

《그야··· 기술실무에 밝고 사람들과의 교제도 좋구···》

《기사장은 젊은 지배인을 눈아래로 좀 내려다볼사 한다는데 동문 그를 두둔하는구만.》

《전 기사장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장일이···》

《됐소.》부총리는 미간을 찌프렸다. 《동문 내게 속을 주지 않고있는데··· 그 얘긴 그만합시다.》

그는 다시금 사업수첩을 뒤적거렸다. 불쾌한 감정을 그 수첩에 써놓은 작은 글줄들속에 뒤섞어버리려는듯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김용삼은 가만히 한숨을 내그었다. 얼마나 많은 하소와 얼마나 많은 송사질이 저 크지 않은 사업수첩에 가득 적혀있을것인가!··· 그러자 별안간 하나의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니, 우정 상기해본것인지도 모른다.

이들 지도검열그루빠가 와서 처음 지도검열요강을 발표할

때 강창길부총리는 다섯개 요강에 무려 40여개 항목으로 된 내용을 렬거했는데 그 모든 항목들이 다 성강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강철생산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있는 원인을 료해하고 성강의 생산이 정상화되도록 도와준다는것 그리고 일군들과 기술자들의 사업을 료해하고 잘못된것은 바로잡아준다는것이였다. 그때 김용삼은 한조항한조항을 새겨들으며 별안간 눈굽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었다.

지도검열의 드팀없는 원칙성은 물론 그 본질이라 할가 일군들을 아끼는 인간사랑의 따뜻한 론조에 마음이 후더워졌던것이다.

그러나 역시 지도검열은 지도검열이다. 거기엔 적절한 방조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이번에도 그들은 강철생산문제뿐아니라 개별적일군들의 사업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낱낱이 랭정하게 파헤치고 사정없이, 무자비하게 분석하고있는것이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첫눈치고는 류달리 아낌없이 풍성하게 퍼붓고있다.

《지배인동무.》 부총리의 쪼프린 두눈이 그를 싸늘하게 견주고있었다. 《나는 종전의 〈ㅈ철〉공정을 다 마사놓은것이 단순한 기술실무적문제가 아니라고 보고있소. 물론 이에 대해선 따로 총화가 있겠지만··· 중요한것은 이제라도 기대를 제자리에 옮기고 종전의 생산공정을 빨리 복구하는것이요. 지배인동문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토론해보겠습니다.》

《그러자면 새 〈ㅈ철〉공법을 위해 설치하던 공정은 부득불 페기하지 않을수 없소.》

《?···》

김용삼은 불현듯 두눈이 때끔거리는것을 느끼며 저도모르게 손끝으로 이마언저리를 세게 문질렀다. 심각한 일, 아니 무서운 일이였다. 사상적으로 문제시되는것도 그렇거니와 여섯개의 공정과 열한채의 건물을 뛰여넘어 회전로에 직접 붙여놓은 성구기를 또 종래대로 옮겨가야 하는 그것이야말로 성강의 새 주인공들의 총퇴각, 비참한 대실패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왜 그러오?》

부총리의 물음에 그는 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사실 몹시 바쁜 일이 있어서···》

《가만,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부총리는 서둘지 않았다. 사람들과 담화한 내용을 뒤적거려보면서 우정 시간을 끄는것 같았다.

《최근 지배인동무가 전쟁때 헤여졌던 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이 있던데?···》

《예.》하고 그는 흐느끼듯 숨을 톺았다. 《그런데 그런것도 지도검열대상이··· 됩니까?》

《아니, 그런건 아니요. 그저··· 호기심에서 물었을뿐이요.》

《그럼 전···》

《갑시다. 난 공업기술연구소에 가겠소. 지배인동문 책임비서동무랑 이전의 〈ㅈ철〉공법을 살릴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는게 좋겠소.》

《예, 알겠습니다.》

어느덧 사위는 어둠에 잠겨있었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눈송이들이 춤추듯이 사르륵거리며 내리고있었건만 김용삼은 아무런 정서도 느끼지 못하였다. 무엇때문인지 모든것이 께름하고 불만스럽기만 하였다.

별안간 사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운전사대기실로 간다는것이 정문쪽으로 갔던것이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돌따섰다. 그런데 부총리가 돌연 전쟁때 헤여졌던 아버지문제를 꺼낸 리유는 무엇때문인가?··· 그에 대해서 아는것은 책임비서와 가까운 몇사람뿐이다. 누가 무엇때문에 그것을 부총리에게 말했을가?···

그의 아버지는 전쟁때 어느 한 군의 군사사업을 보는 지도원이였는데 어머니도 그곳에서 식모로 일했다고 한다. 1951년 아버지가 다른 직무에 조동이 되여 그들(누이까지 세식구)은 간단한 이사짐을 꾸려들고 군용렬차에 올라 남쪽으로 가고있었는데 도중 적기들과 맞다들었다. 끊임없이 쏟아진 기총소사와 줄폭탄··· 한순간에 기차와 함께 폭발하여 날려버릴것 같았다. 아닐세라 끝내 화차에 불이 달렸다. 그러자 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불을 끄는 전투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기관사는 제나름대로 결단을 내렸으니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불을 끄고있는 마지막화차를 아무래도 살려낼 가망이 없다고 보았는지 그것을 떼여던지고 폭격속을 뚫고 최고속으로 내달렸던것이다. 그 복새통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여져 오랜 세월 소식을 모르고 살아왔었다.

김용삼이 태여난것은 부모가 헤여진 그 이듬해였다. 정처없이 아버지를 찾아헤매던 어머니가 여기 쌍포에 보짐을 풀었으므로 용삼의 어린시절은 바로 이곳 성강에서 흘러갔다. 여기서 누기찬 바다바람은 물론 강철직장의 누런 연기를 례사롭게 마시며 몸과 마음을 키웠고 사시절 불앞에서 일하는 용해공, 단조공들의 뚝심에 정을 붙였다.

그동안 어머니는 이곳 성강의 전극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한뉘 눈물과 고생속에 살아온 어머니였다. 전라남도에서 나서자랐으나 17살때 함경북도로 이주해와서 한동안 묵어있던 주인집 홀애비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는데 얼마후 령감이 병으로 죽었다. 그후 겨우 스무살을 갓 넘긴 아녀자의 몸으로 다행히도 맘씨무던한 아버지를 만나 비로소 꿈같은 새살림을 폈지만 그 아버지마저 또 잃었으니 어머니가 남모르게 흘린 절망과 슬픔의 쓰라린 눈물이야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어머니는 그가 16살났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용삼은 씨다른 누이 성희의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를 닮아 어질고 착실한 누이여서 동생을 말없이 보살피고 거들어주었지만 친어머니의 사심없고 사려깊은 정과 헌신을 대신할수는 없었다.

시쁘둥하고 감때사납고 옹고집스러운 성격은 그때부터 서서히, 소리없이 자라났다. 그는 어질고 병약한 어머니를 줴버리고 (이렇게밖엔 달리 생각할수 없었다.) 달아난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저주하였고 자기는 자식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보살피고 돌보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여 그는 후날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번 친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코 맹목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자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관심하는가를 주의깊게 살피고 제때에 꼭 필요한 조언도 주군 하였다. 하여 자식들은 아버지의 권리로 행사되는 강요가 아니라 참다운 벗이 주는 진실한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맏아들이 지금 인민군대에서 군사복무를 잘하고있는 그것이 바로 그의 좋은 실례이다. 조만간 둘째와 그의 동생들도 차례로 인민군대에 나갈것이다.

그런데 46년세월이 지난 오늘 네아들을 키워온 그의 머리에도 어언 서리가 불리려는 때에 뜻밖에도 전혀 낯모를 사람이 별안간 아버지라면서 나타났던것이다.

그는 당황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그야말로 한가닥 반가움이나 호기심, 한쪼각 련민의 정도 없는 사람, 한생 원망하고 질시해온 사람이 별안간 공장이 지도검열을 받고있는 제일 숨가쁜 때에 불쑥 나타났던것이다. 하여 그는 갖가지 복잡한 생각을 굴리며 차를 타고 《ㅈ철》공장쪽으로 갔다.

그새 《ㅈ철》공장에서는 새 공법을 받아들여 90

m짜리 회전로

2기를 놓고 그옆에 가설건물을 지었는데 책임비서 전진욱은 그곳에서 먹고 자며 보초병마냥 로를 지키고있었다. 오늘도 그는 얼마전부터 버림받고있는 로앞에서 머리우에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모양으로 앉아있었다.

김용삼이 나타나자 전진욱은 그를 휴계실의 난로앞으로 이끌었다. 김용삼이 부총리와 나눈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난로우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는 물이 끓기 시작하였다. 이어 전진욱의 얼굴도 난로의 불빛처럼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니 새로 꾸린 공정을 페기해버리고 종전의것을 되살린단 말이지요? 아니,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지배인동무, 절대 그래선 안됩니다!》

김용삼은 전진욱의 눈길을 피하였다.

전진욱이 물었다.

《그래 기사장동문 뭐랍디까?》

《기사장동무야 뭐···》 하고 그는 지금 전진욱이 누구든 자기를 편들어줄 사람을 찾고있다는것을 알고있으므로 본의아니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기사장동무야 새 〈ㅈ철〉을 나보다도 더 적극 나서서 지지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지도검열을 받는다고 해서 생각이 달라질가요?》

《그러면 됩니다.》 전진욱의 얼굴에 처음으로 한가닥 안도의 빛이 파문지어갔다. 《기사장동무가 변함없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우리야 공장의 주인들이니 제할바를 합시다. 남들이 뭐라든 우리는 〈ㅈ철〉을 꼭 성공해야 합니다.》

격하여 씨근거리는 그를 바라보면서 김용삼은 탄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까부터 중태에 빠져있다는 책임비서의 딸 인복이에 대하여 묻고싶었는데 종시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또 그런 문안이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하여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는 저도모르게 또 한번 한숨을 내그었다. 나날이 무거운 《저기압》이 소리없이 그들을 짓누르고 숨구멍을 꽉 틀어막고있는것을 그는 느끼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