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9

제 2 장

9

 

《ㅈ철》시험로에서는 날이 갈수록 새로 만든 구단광들이 더 많이 터져나가고 부서졌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암담한 기색이 차츰 그림자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낡은 설비들을 뜯어버리고 성구기를 직접 회전로에 붙여놓았으므로 인제는 종전의 방식으로 《ㅈ철》을 만들수 있는 길도 막혀버렸다. 《ㅈ철》공장은 페허처럼 되여가고 전진욱의 얼굴은 더욱더 컴컴하게 질리고 꺼칠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복무하는 공병부대에서 련락이 왔다. 통신중대의 전인복부중대장이 공사장에 지원을 나갔다가 추락사고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였다.···

 

밤중이였다. 집에 들어서는 전진욱을 보자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안해가 다가왔다. 거의나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겉옷을 받으려 했다.

《아니, 인차 또 나가야 하오.》

안해가 머리만 끄덕이였다. 그새 인복의 부대에 갔다 왔는데 그 눈물젖은 얼굴만으로도 인복의 형편을 짐작할수 있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물을 말도 없었고 예상되는 무서운 말을 듣고싶지도 않았다.

안해가 책상우에 놓여있던 편지를 가져왔다.

《인복이가··· 당신에게 쓴 편지예요. 사고가 나기 며칠전에 썼더군요.》

편지를 받아든 그는 눈에 익은 인복이의 필체를 보자 별안간 예리한 아픔이 가슴노리에 스쳐가는것을 느꼈다. 하여 그는 한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한동안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왜 그러세요, 예?》 또다시 눈물이 그렁해진 안해가 목메인 속삭임소리로 물었다. 《편지를 보세요. 우리 인복이가 거기에 뭐라구 썼는지 어서 보세요.》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하던 안해의 얼굴은 부석부석해져서 전혀 딴사람처럼 서름하게 느껴졌지만 중태에 빠진 딸자식의 어머니로서 그 모진 아픔을 소리없이 눈물속에 이겨내는것만도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여보, 그 애가 글쎄···》하고 안해는 입을 열었으나 다시 뜨거운 눈물을 씹어삼키는것이였다.《편지에 아버지장군님을 만나뵈왔다면서···》

《뭐?···》

불시로 뜨거운 경련이 온몸을 누비는것을 느꼈다.

급히 편지를 펴들었다. 첫머리부터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일에 몰리워 지금껏 딸의 머리를 다정히 쓸어준적이 없고 아버지다운 정찬 말로 마음을 덥혀준적도 없는 그였기에 그 편지의 글줄들을 속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읽지 않을수 없었다.

인복은 평소에 늘 써오던 서두의 인사말도 없이 자기가 뜻밖에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몸가까이 뵙게 된 사연을 흥분에 넘쳐 쓰고있었다.

 

《···우리가 공사를 벌리는 이 길로 숱한 차들이 지나가고왔지만 누가 우리 병사들이 어두운데서 밥을 먹는것이 마음에 걸려 차를 멈추고 불을 비쳐줄 생각을 했겠어요. 우리의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그저 지나가던 승용차이거나 어떤 군대차겠지 하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발걸음도 저절로 옮겨지겠지요. 그래서 장군님계신 곳으로 한발두발 다가갔답니다. 그러다가 더이상 나가진 못했어요.

그때 장군님께서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물으시겠지요. 이름이 뭐나? 나이는 얼마인가 하구요.

장군님이신지는 몰랐어도 자꾸만 가슴이 쿵쿵 뛰는데 발걸음은 한자리에서 딱 굳어지고말더군요.

떠나가실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 박혀있는데 아버지장군님께서 손을 저으며 〈동무, 수고하오.〉하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런데도 전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한마디 인사말밖에 더 올리지 못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막 조여들구 눈물이 나군 합니다.

글쎄 누구신지 몰랐으니 그럴수밖에 있는가 하고 감히 말할수 있겠나요? 아니, 절대 그럴수 없어요. 마음에 비쳐든것이 있고 우렁우렁하신 그 음성, 마치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온것처럼 느껴지던 그 친근하신 음성에 자석처럼 끌려간 그것만 봐도 짐작했어야 했지요. 아버지, 안 그렇나요?

이틀인가 지나서 무력부의 장령동지 한분이 내려와 그날 우리 병사들을 위해 차를 멈추고 전조등을 비쳐주신분이 바로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이시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때 우린 다 울었습니다. 서로 붙안구 막 소리쳐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경애하는 아버지장군님을 목메여 불렀답니다. 울지 않을수 없었어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는것도 그렇게 기쁘구 행복한줄 첨 알았어요.

참, 공병중대의 소문난 익살군인 윤철동무는··· 그야말로 눈물을 모르고 그저 웃음통만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찌나 목메여 울고 또 울던지··· 자기는 그런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장군님께서 불을 비쳐주시는 그앞에서 허겁쓰레기같은 우스개소리만 늘어놓구있었다면서 막 가슴을 치며 우는게 아니겠어요. 익살군인 그가 그렇게 울기 시작하니 남자구 녀자구 다들 또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그때 내가 경애하는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를 가리키시며 〈저 동문 이름이 뭐요? 익살군이지?〉하고 물으셨다고 말해주자 그가 글쎄 장대같이 큰 키를 쑥 솟구치면서 막 소리지르는게 아니겠어요.

〈야! 이 윤철이도 장군님께서 아신다!〉

그리하여 또 온 중대가 울고 웃으며 야단이였답니다. 그랬어요.

울고 웃고 또 울고··· 그러면서 우린 모두 마음속으로 맹세를 다졌어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무조건 끝까지, 철저히 수행하자구요.

아버지, 이 딸은 오늘 밤도 전투장으로 나갑니다.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수행하기 전엔 죽을 권리도 없다는 말의 참뜻을 저도 인제는 잘 알고있습니다. 아버지도 그래서 밤낮없이 현장에서 살며 일해오셨다는것도 잘 알구요. 전날 철없을 때엔 무정한 아버지라고 원망도 하고 입이 삐죽해서 투정질도 많았는데··· 용서하세요.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어머니도 할머니도 앓지 마시고 아버지 하시는 일을 잘 도와드리세요. 강철로 당을 받들겠다고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 직접 맹세드린 아버지이신데 성강의 봉화를 기어이 하늘높이 빛내여야 할게 아니나요.

바라고 또 바라는 이 딸의 마음 이만 적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부디 안녕히!》

 

인복은 아직 혼수상태라고 한다. 경과를 보아가며 인민군11호중앙병원(당시)에 옮기기로 했다는것이다.

편지를 읽고난 전진욱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저도모르게 코를 울리고 주먹으로 눈굽을 씻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 한마디 말도 없이 안해에게 편지를 넘겨주고 문밖을 나서려는데 고령의 어머니가 문지방을 짚고서서 밤참이 든 보자기를 손에 쥐여주는것이였다.

어머니의 표정은 절절하였다. 딸의 일로 너무 괴로와하지 말고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잘해야 할게 아닌가고 간곡히 당부하는 표정이였다.

지난 전쟁시기 아버지가 전사한 후 애어린 시절부터 엄하게, 대바르게 전진욱의 형제를 키워오신 어머니, 오랜 당일군이였던 어머니··· 전진욱은 눈물자욱이 남은 얼굴을 감추려고 애쓰며 보자기를 받아들었다.

밖에서는 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