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7

제 2 장

7

 

《지배인동무요?》 현경오가 수화구가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고있었다. 《책임비서동문 어데 갔소? 뭐라구? 그 동문 왜 한번도 전화를 받지 않는거요?》

김용삼은 침착하고 조용하고 또 단정하기로 유명한 그가 이처럼 당치 않은 리유로 격하게 소리치는것을 여적 본일이 없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것이라고 짐작되면서 벌써 마음이 조여들었다.

《비서동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무슨 일이 다 뭐요?》 현경오는 이렇게 다시 소리쳤으나 얼마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짐짓

어성을 낮추려 애쓰며 이렇게 물었다.《지배인동무, 한가지 좀 물어봅시다. 다른 단위에 중공강을 넘겨준 일이 있소?》

《예, 있습니다.》

《뭐?》 현경오가 또 소리쳤다.《다시 말해보오. 뭐라구?》

《아니, 왜 그럽니까? 우리 공장에서 ㅌ강을 생산하는데 절실히 필요한 류산을 받아오자니 그렇게 하는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강재는 좀 미달하더라도 ㅌ강은 무조건 생산보장하기로 되여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책임비서동무랑 기사장까지 셋이 모여앉아 토론하구서··· 넘겨주었습니다.》

《···》

잠시 거치른 숨소리만이 수화구를 울리였다.

김용삼은 무엇인가 께름한 생각에 목이 타드는것 같았다.

《비서동지.》

《가만,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내각에서 요구한 중공강은 왜 잘라먹었소?》

《내각에서 요구한 중공강을?··· 아니, 비서동지. 그걸 누가 잘라먹는단 말입니까?》

《···》

이번에도 잠시 거친 숨소리만 계속되였다. 그가 다시 말을 잇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듯 했다.

《성강책임비서가···》하고 마침내 현경오는 흥분을 억제하며 아주 낮아진 소리로 말했다. 《내각이 요구한 중공강을 잘라먹고 제멋대로 다른 단위에 넘겨주었다는 자료가 장군님께 보고되였소. 거기 기사장동무가 내각에 그렇게 보고했다고 하오.》

《예?》 이번에 김용삼이 소리질렸다. 《우리 기사장동무가 말입니까?》

너무도 엄청난 일이여서 그는 한순간 명치끝이 뻐근해지는것을 느꼈다. 다음순간 벅찬 격동에 흐느낌소리처럼 숨을 내뿜으며 다른 전화기에로 손을 내뻗치였다.

《이제 당장 전화로 알아보겠습니다. 비서동지도 같이 들어보시면 알게 아닙니까.》

그는 송수화기를 귀언저리와 아래턱에 끼우고 다른 전화기를 끄당겨 현경오도 들을수 있게 소리증폭건을 눌렀다.

《기사장동무, 나 지배인입니다.》

엄엄한 목소리였다. 아직 이처럼 격동되여 무뚝뚝한 목소리로 경고하듯이 년장자인 기사장을 불러낸적이 없었다. 그는 벌써 무엇인가 예감되는것이 있어 오한이 나는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고있었다. 기사장에게 사유를 따져묻는 그의 어성은 전에없이 몰풍스러웠다.

《아ㅡ 그거 말이요?》하고 기사장은 마치 기다리고있었던듯 평소의 가는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것이였다. 《내 지배인동무한데 미리 말해준다는게 그만··· 실은 말이요. 착암기정대용중공강을 내가 과업받았지요. 헌데 다른 일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깜박 잊고말았구려. 그러다가 어제인가 그제인가··· 아니, 어제 아침이였소. 갑자기 강창길부총리동지가 성이 나서 중공강이 어떻게 됐나하고 따져묻질 않겠소. 그래서 그만 얼결에 그걸 다른데 넘겨주었다고 했던거요.》

《다른데라니?》

《아니, 그저··· 급한김에 좀 변명을 했던거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기사장동무!》하고 김용삼은 격하여 부르짖었다.《도대체 내각에서 과업을 준 깡하구 다른 단위에 준 깡하구 무슨 상관이요? 또 책임비서한테 넘겨씌우는건 무슨짓이구?》

《아니, 지배인동무. 도대체 무슨 일루···》

《기사장동무. 다른 단위에 준 깡이야 우리 셋이서 토론했던게 아니요? 그런데 책임비서동무가 제멋대로 줬다는건 뭐요?》

《아, 아니.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그저 급한김에 변명을 한다는게 그만···》

《기사장동무, 동문 비렬하오!》

 

김용삼은 송수화기를 탁자우에 동댕이쳤다. 송수화기가 깨여져나가는것처럼 요란스럽게 미끄러지더니 탁자 한끝에 매달려 데룽거렸다. 거기에서는 여전히 무슨 소리가 징징 울리고있었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때 목에 끼운 송수화기에서 현경오비서의 낮고도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다.

《지배인, 이젠 알만 하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실태를 좀 검토해봐야 할것 같소. 그렇게 알고 준비하오.》

밤이 깊었다.

김용삼은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경련으로 굳어진 얼굴을 실룩거리며 아무 의미도 없이 손가락으로 총이 센 머리를 부절히 빗질하였다. 이름할수 없는 분노와 경멸의 감정이 그를 못 견딜지경으로 괴롭히고있었다.

어딘가 멀리 전극직장이 있는 곳에서 구내기관차가 꽥ㅡ하고 울부짖었다. 바다기슭을 따라 륜환선으로 이어진 철길쪽이였다. 그 기관차들을 살리던 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책임비서가 오자바람으로 시작한 일이였다. 돌이켜보면 기관차부터 살린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듯이 여겨졌다. 그자신이 그때 련합기업소를 끌고나가는 기관차가 되기로 속다짐했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탁자우에 동댕이쳤던 송수화기를 끌어다 바로 놓았다.

그는 자기가 불같이 달아오르고 때없이 저돌적으로 욱하고 내미는 격한 성격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그것을 누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군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그가 전진욱책임비서와 특별히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였다. 그들이라고 왜 서로 의견이 없고 불만이 없으며 사소한 감정상의 마찰도 없겠는가? 중요한것은 믿음이다.사업을 통한 리해와 방조이다. 흔히 도량이라고 하는 그 마음의 폭과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 뒤에서 오그랑수를 쓰며 남을 딛고 올라설 기회를 노리거나 제살궁리만 한다.

김용삼은 바로 그런것을 용납할수 없었다. 하기에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면 면전에서 침을 뱉는것도 서슴지 않는다.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코지에 걸린 작업복을 껴입었다. 누가 전화를 걸어오는지 명백하였으므로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전화종소리는 검질기게도 계속되였지만 그대로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섰다.

무섭게 짓눌려있는 그의 마음처럼 날씨도 음산했다. 바다모양도 아주 사나울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

 

세상의 모든 사고와 불행은 무슨 일이나 소홀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송근우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뜻하지 않던 김용삼의 강타에 얼떠름해져있던 그는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있어 강창길내각부총리 집을 전화로 찾았다. 얼마후 부총리 안해가 나왔다. 바로 40년전에 총각이였던 송근우가 나서서 부총리와의 인연을 맺어주었으므로 그의 안해는 그가 전화를 걸 때마다 매번 반갑게 받아주군하였다.

서로의 건강과 자식들에 대한 따뜻한 정어린 인사말들이 있은 후 그는 남편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부총리는 첫마디부터 신경질을 부렸다.

《뭣때문에 전활하는지 알고있소. 이보 기사장, 동문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요. 에? 사람이 어쩌믄 그렇게 달라질수가 있소?》

《부총리동지,무슨 말씀인지···》

《그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말이요?》

《저···》

《송근우!》하고 부총리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물론 동무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 내가 잘못이였소. 그래, 부총리인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소. 그래도 난 동무의 말을 믿구··· 중공강이 여사여사해서 딴데 빼돌려졌다고 총리동지한테 보고했는데 결국 그것이 어떻게 됐는지 아오?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되였단 말이요.》

《예? 장군님께 말입니까?》

《그래, 장군님께 잘못된 보고를 올리였으니··· 동무때문에 얼마나 엄청난 일이 저질러졌는가 말이요. 엉? 그래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수 있는가?》

《?···》

한순간 송근우는 정수리를 호되게 얻어맞은것처럼 눈앞이 아찔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래 이 일을 동무가 책임질수 있소?!》

《부총리도ㅡ동지, 사ㅡ실 전···》

혀가 잘 돌지 않았다.

《그만하오. 듣고싶지도 않소.》강창길부총리의 어조는 칼로 베는것처럼 날카로왔다.《사람이 어쩌면 그리도 속통이 좁을수 있소? 련합기업소의 기사장이라면 그래도 제가 책임질줄도 알아야지. 에?···》

그리고는 삐삐ㅡ 소리만이 계속되였다. 김용삼지배인과 같이 그도 결김에 송수화기를 내던진것 같다. 그야말로 이제 다시는 송근우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선고나 다름없는것이다.

송수화기를 틀어쥔 그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퍼렇게 부풀어오른 손회목의 피줄들이 다 메여버린듯 했다. 눈앞에서는 불찌들이 날고 숨이 꺽꺽 막혔다. 손에 들고있던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바로 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듯 했다.

친형처럼 믿고따르는 강창길부총리여서 그저 소홀히, 대수롭지 않게 자기를 변명하느라고 한짓이 이렇듯 무서운 결과를 빚어내리라고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본의아니게 책임비서를 송사질했다는것을 알게 되자 공포의 전률이 온몸을 스쳐가는것을 느꼈다. 김용삼지배인이《기사장동무, 동문 비렬하오!》하고 부르짖던 새된 어성이 다시금 비수처럼 머리속을 찔렀다.

얼마후 가까스로 자신을 진정하기 시작했다. 랭철한 침착성으로 사태를 바로잡아야 했다.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송근우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지배인은 책임비서에게로 갔을것이다. 거기서 기사장 송근우의 비인간적인 언행에 대하여 격분에 차서 론고할것이다.

밤은 몹시 찼다. 으시시 몸을 떨며 그는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한뉘 기술자로서 자기 맡은 일에 전념하였고 남을 걸고들지 않았다. 남의 일에 일체 상관하지 않는것이 그의 변함없는 생활방식이였다. 그런데 뜻밖의 엄한 추궁을 피하려던노릇이 그만 남을 걸고들고 남을 잡는 일로까지 번져졌다. 강창길부총리가 재차 따지고들 때만이라도 심중하게 받아들이고 대답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번져지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는 즉시 책임비서를 찾아가기로 했다.

얼마후 그가 시험생산을 위하여 회전로에 붙여놓은 성구기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성구직장장이 서옥영을 세워놓고 한바탕 훈계를 하고있었다.

《이보라구, 옥영이. 난 너때문에 정말 머리칼이 다 세여지구있어. 그런거 너 알기나 해? 내 그만큼 일렀는데 어째 수림이를 집에 보내지 않는가 말이야?》

《애가 어디 나한테서 떨어지려구 해야 말이지요.》

《야, 그러게 그 애 몸이 추설때까지만이라두 우리 집에 있게 하자는거야. 억지로라도 떼여보내야지, 응? 우리 집사람이 언제부터 그 앨 데려오라구 했는데···》

그때에야 송근우를 알아본 성구직장장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기사장동지! 어떻게 이밤중에?···》

《책임비서동문 어데 있소?》

《예, 저기 휴계실에···》

송근우도 잘 아는 서옥영이 머리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기사장동지, 책임비서동진 이자 방금 잠드셨습니다.》

《아니, 난 여기 있소》

등뒤에서 책임비서의 목소리가 나자 옥영은 깜작 놀라는 표정이였다.

《기사장동무.》하고 전진욱이 갈린 소리로 말했다. 《밤두 깊었는데 어떻게 나왔습니까?》

송근우는 추위때문에 몸을 떨면서 나직이 웃었다.

《그럼 난 그저 앉아서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까?》

《뭐 그럴거야··· 기사장동무,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안색이 영 좋지 않군요.》

송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진욱의 충혈진 눈과 시꺼먼 먼지가 올라있는 이마언저리며 탄가루로 매닥질된 작업복을 스쳐보며 아직은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회전로에 붙여놓은 접시모양의 거대한 성구기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회전로에서 수백m나 떨어져있었고 여섯개의 공정을 거쳐서야 장입되던것을 회전로주둥이에 직접 쏘아넣도록 한것이였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은 많고도 많다. 이 하나의 성구기를 가지고도 천정기중기며 벨트콘베아, 뽈분쇄기들을 앉혀야 하고 하나의 큰 공장과 맞먹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책임비서동무.》하고 그는 말했다. 《지배인동무가 무연탄수송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군요. 늦어도 한주일후이면 기차방통들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지배인동무가 수고많습니다.》

웬일인지 전진욱은 몹시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송근우는 먼지가 낀 그의 얼굴을 불안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혹시 지배인동무가 왔다 가지 않았습니까?》

《예, 방금 왔다 갔습니다.》

불시로 가슴을 찌르는것을 느꼈다. 차디찬 오한에 소스라치며 그는 말을 떠듬거렸다.

《책임비서도ㅡ동무, 내 실은··· 책임비서동무와 긴히 할 얘기가 있어 나왔는데···》

《할 얘기가?··· 그럼 저기 갑시다.》

그는 충혈진 눈으로 송근우를 유심히 마주보면서 몸을 돌려 앞서걸었다. 그들은 책임비서와 《ㅈ철》공장 연구사들이 휴계실 겸 연구실로 쓰는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사연을 말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전진욱은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깃든 커다란 자책의 파문을 가늠하듯이 가까스로 눈을 뜨고있었다. 죽을 지경으로 피로한 사람의 느린 손동작으로 귀밑을 긁으며 가끔 마가을밤의 서리찬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고 가는 흐느낌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까지》하고 송근우는 길게 탄식하며 말을 이어갔다. 《번져질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책임비서동무, 이 너절한 놈을 좀 후려갈겨주시오.》

《···》

전진욱은 한동안 그를 마주보기만 했다. 속에서는 견딜수 없을지경으로 혐오감이 치밀고 악문 이새로는 저도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한순간 그는 으시시 몸을 떨며 두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어린시절부터 그는 유쾌한 장난군으로 소문났었지만 못나게 구는 동네아이들과는 곧잘 아귀다툼도 했었다. 그때처럼 자기와 마주 앉아있는 송근우의 귀통을 드세게 박아놓고싶은 충동에 그만 자개바람이 이는듯싶었다. 그렇다, 맘껏 분노를 터뜨리고싶었다.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공장을 개건현대화하는데서 제일 믿고 의지하고싶었던 기사장이다. 그런데 이렇듯 속물처럼 구는 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어찌 알았으랴.

그러나 그는 경련적으로 꿈틀거리는 분노의 숨결도,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오른 우악스러운 욕지거리도 매운 내굴처럼 삼키며 참아내였다. 입술을 깨물고 신음소리도 참으며 깨끗이 면도를 한 송근우의 주름깊은 얼굴을 면바로 쳐다보았다.

《기사장동무.》하고 마침내 소란스럽게 숨을 내불며 그는 말하였다.《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면 되겠는데··· 너무 자신을 비하하진 마시오. 듣기 거북하군요.》

어성은 높지 않았지만 환갑나이를 썩 넘긴 송근우에게는 채찍소리처럼 매서운 핀잔이였다. 전진욱은 잠시 동안을 두고나서 또 말을 이었다.

《기사장동무, 그래도 부총리동지는 기사장동무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겠는데 어쩌면 자기의 스승이고 상부인 부총리동지에게 그처럼 되는대로 둘러칠수가 있습니까. 의리도 없고 신의도 없는 인간만이 그런다는것을 잘 알겠는데··· 기사장동무, 자신을 변명하자면 끝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라도 절대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은 말아주시오. 그러다가 자기만을 위하는 그런 비뚤어진 일군이 될가봐 걱정입니다.》

송근우는 죄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고 머리를 수굿하고있는것이 그 어떤 책망도 욕설도 다 받아들일 자세였다.

《그 얘긴 더 하지 맙시다. 누군들 결함이 없겠습니까. 기사장동무, 그걸 어떻게 고쳐나가는가 하는게 기본이지요.》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무.》별안간 눈물이 쑥 나오리만큼 감동에 젖은 송근우는 손끝으로 팔소매를 긁으며 말했다.《정말 귀쌈을 쳐도 할소리가 없는 나를 두구 이렇게 즉석에서 다 풀어주니··· 뭐라구 말해야 할지···》

《대신 기사장동무한데 부탁할게 있습니다.》전진욱은 아무런 감정의 표현도 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연구한 성구알들이 시험로에선 잘되더니 요지음 여기 큰 로에 넣으니까 계속 부서지면서 말썽을 부립니다. 그것때문에 정신이 나갈지경인데 기사장동무의 방조를 바랍니다. 생산문제를 걷어안구 몹시 바쁘겠지만··· 수재로 소문났던 기사장동무의 그 실력에 우리 ㅈ철공장의 기술력량까지 총동원하면 그 어떤 난문제도 다 풀릴게 아닙니까.》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무. 이렇게 믿어줘서··· 내 어떻게 하나 ㅈ철에 몸과 맘 다 바치겠습니다. 두고보십시오. 누가 뭐라구하든 책임비서동무랑 같이 ㅈ철을 하겠습니다. 이건 절대 빈소리가 아닙니다.》

어느덧 난로우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끓어번지며 하얀 김을 뿜어대였다. 천막밖으로 뽑은 가는 연통에서는 시꺼먼 연기가 새여나오군 했다.

별안간 송근우는 전진욱에 대한 따뜻한 정이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드는것을 느꼈다. 밤낮으로 고생하는 책임비서에 대한 사무치는 동정과 사랑이 불현듯 그의 가슴속에서 불길같이 타오르기 시작한것이다.

《책임비서동무, 제창 토론해봅시다.》하고 그는 가늘고 새된 목소리로 피곤에 몰린 전진욱을 눈뜨게 했다. 《아, 시험로에서 잘되던것이 여기라고 안되겠습니까. 해봅시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부터 그는 또 입을 다물었다.

작은 시험로와 대형회전로는 성격이 달랐다. 그리고 사실상 련합기업소 기사장인 송근우도《ㅈ철》에서 허군수의 연구사업경험을 새로 배워야 할 처지라는것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ㅈ철》에서 발을 끊게 한 또 한가지 일이 생겼다. 갑자기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일군이 도당검열조성원들과 같이 내려왔던것이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에 의하면 무슨 책임비서문제를 료해한다던지.··· 그러한 풍문을 듣자 송근우는 급기야 서리맞은것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거의나 그림자마냥 조용히, 소리없이 움직이였다. 책임비서에 대하여 무엇이 제기되였다면 바로 자기가 저지른 일, 중공강문제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하여 강창길부총리에게 대수롭지 않게 둘러친 그 일의 후과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