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5

제 2 장

5

 

북방의 바다가 철의 도시엔 무더운 여름철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제야 여름인가싶더니 어느새 또 시서늘해지며 길가의 가로수들은 서둘러 락엽을 날린다.

사계절중에서 봄이 제일 길게 느껴진다. 꾸준히 찾아오는 봄, 희망을 안고 꾸준히 기다리는 봄, 봄은 힘들게 찾아온탓으로 쉬이 물러가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름은 더더욱 짧아진다. 그것이 오래 계속되였으면 하고 기대할수록 더 빨리 가버린다. 그러면 가을!··· 언제부터였던가. 아버지가 법적추궁을 받던 그 가을부터 옥영은 이 계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을 앞둔 계절이여서 매일 음산한 바람소리와 더불어 오슬오슬 추워오는 가을밤의 쓸쓸한 고독과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한 측은함이 차겁게 마음을 적시군 했다.

그러한 옥영이였으므로 제대군인용해공 박철진이 불같은 정열을 퍼부을수록 웬일인지 마음은 어두워지기만 했다. 한창시절의 밝고 산뜻하던 마음이 날을 따라 어수선해지고 모지락스럽게 되여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날도 옥영은 머리를 짓숙이고 송령천의 은덕다리를 건너가고있었다. 발밑에서는 희뿌연 먼지가 일고 머리우에서는 1강철직장에서 뿜어올린 담황색연기가 바람에 실려 《ㅈ철》공장쪽으로 밀려오고있었다. 제강소에 적을 둔 사람치고 담황색의 그 알싸한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건만 오늘따라 옥영은 그 연기에 숨이 막히는듯 했다. 기분도 언짢았다. 오스스 몸을 떨며 종종걸음을 쳤다. 마치도 박철진 그 사람이 옥영이에게 연기를 날리며 웨치는듯싶었다.

《···내 기어이 수림이 아버지가 되겠소!···》

《뭐 괴롭힌다구?··· 내가 동물 괴롭힌다구?》

《그래요. 그래요!》하고 옥영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제발 날 건드리지 말아줘요. 제발 더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제발!···》

부지불식간에 옥영은 자기의 가슴이 눈물로 그득차는것을 느꼈다. 저도모르게 흐느끼고있다. 아니 내가 왜 이러는거야?··· 울지 말자. 누구에게도 눈물만은 보이지 말자!···

옥영은 바람에 불리듯 허청거리였다. 눈물에 젖는 자기자신에게서 달아나려고 애쓴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ㅈ철》공장까지 갔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선별직장쪽 《ㅈ철》시험로가 있는데서 련합기업소와 《ㅈ철》공장의 간부들이 쓸어나오고있었다. 대부분 새까매진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떠들어대고있다.

《지배인동무.》 책임비서가 말하고있다. 《당장 성구기를 회전로 가까이 뜯어옮깁시다.》

《좋습니다.》 지배인도 유별나게 목청을 돋구고있다. 《떼옮깁시다. 난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기사장동무도 물론 같은 생각이겠지요?···》

《그러믄요. 이제부턴 책임비서동무가 하자는 일은 무조건 지지찬동입니다. 무조건!》

또다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고음과 중음, 쐑소리까지 섞인 남성들의 웃음중창이다.

《아, 마침》하고 《ㅈ철》공장 당비서 허군수가 소리쳤다. 《저기 서옥영이 왔습니다.》

《음, 서옥영!》 책임비서가 머리숙여 인사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답례했다. 《하필이면 옥영이 없는새 좋은 일이 있었을가. 어쨌든 옥영이두 인젠 하얀 달린옷을 곱게 차려입구 다니게 됐소. 시꺼먼 연기가 싹 없어지겠으니 말이요.》

《정말 그렇습니다.》

허군수당비서도 입을 다물줄 모르고있다. 그런데 아주 놀랍게도 책임비서와 허군수 그리고 《ㅈ철》공장 지배인 리태영은 석탄방통하차작업을 하고난 사람들 같았다. 눈이 웃고있고 벙글써 벌린 입에서 하얀 이발들이 반들거릴뿐이였다. 간밤에도 그들이 밤을 새우며 시험로와 씨름을 하고 끝내 성공했던것이다.

드디여 성공했구나!··· 마침 방송차가 달려오며 경쾌한 음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우등불 타오르네 불타오르네

눈속에 바람속에 불타오르네

아늑한 숙소야 날 찾지 말아

우리들은 바라지 않네

 

마치도 《ㅈ철》의 성공을 위해 아글타글해온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노래인듯싶었다. 방송차는 옥영의 옆에 와멎었다. 고성능의 출력이 센 방송나팔이 지배인과 책임비서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음향의 폭풍을 들씌웠다.

 

···

라라라라 당의 부름에

너는 우리 길동무였네

 

책임비서가 방송차쪽에 대고 빨리 가라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거센 음향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수 없었던것이다.

방송차는 떠났다. 그러나 음향의 폭풍만은 여전히 대기를 뒤흔들며 계속되였다.

 

우등불 타오르네 불타오르네

노래속에 웃음속에 불타오르네

내 심장 불탈 때 너도 불탄다

당을 받든 우리 맘처럼

···

 

옥영은 생각하였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들이 거둔것이 얼마나 간고한 노력과 피타는 투쟁끝에 이루어진것이고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다는 모를것이다. 많은 간부들과 기술자들이 몇달째 볕과 바람에 까맣게 타면서 수염도 깎을새 없이 고심해왔다는것을 보자 눈굽이 저릿해나고 속이 뭉클해졌다. 그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사람은 왜 없는지?··· 옥영은 인차 자리를 뜰수 없었다.

《당장 가서 부총리동지한테 보고해야겠습니다.》 송근우기사장이 가늘고 새된 목청을 돋구어 하는 말이였다. 《매일같이 전화로 어떻게 되는가 묻군 했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받으면 대단히 기뻐할겝니다.》

지배인이 머리를 기웃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부들은 큰길에 나와 갈라졌다. 김용삼지배인과 책임비서, 《ㅈ철》공장지배인과 당비서는 옥영이 가는쪽 회전로앞으로 걸어갔고 송근우기사장은 대기하고있던 차를 타고 본거지인 강철구역으로 달려갔다. 송령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1강철과 1, 2조강, 단조, 유도로, 주물직장들이 있는 곳이 강철구역이고 그 반대쪽이 새로 건설된 《ㅈ철》구역인데 3강철과 전극직장, 2중판직장 등은 무려 5개의 큰 직장을 안고있는 《ㅈ철》공장쪽에 있는것으로 하여 자기의 사명과는 달리 《ㅈ철》구역의 거주자들로 되였다.

회전로앞에 이르자 책임비서를 둘러싸고 또 토론이 벌어졌다.

책임비서는 사방으로 손을 내흔들며 무어라고 열정적으로 말하고있다. 성구기를 뜯어다 회전로에 붙여 직접 장입을 한다더니 그 위치를 놓고 설명하는듯 했다. 그렇게만 되면 성구기로부터 회전로까지의 6개공정, 11개 건물이 필요없게 된다. 책임비서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김용삼지배인은 마치 전방지휘소에 나선 군사령관과도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허리에 한손을 얹고 서있었다. 아침노을이 그의 얼굴을 불그레한 빛으로 물들여 마치 영화의 한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인듯싶었다.

반대로 그와 마주선 《ㅈ철》공장 허군수당비서와 리태영지배인은 두억시니같이 새까만 얼굴에 아직도 웃음을 가무리지 못하고 노상 벌쭉거리는데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은 자기네 당비서와 지배인의 괴상망측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옥영은 키득거리는 그들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던졌다.

마침 책임비서가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옥영이, 좀 기다려. 나하구 같이 가자구.》

얼마후 옥영은 책임비서의 차에 올라 성구직장으로 갔다.

책임비서는 마치 성구기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 주위를 돌며 자세히 살펴보더니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몇t짜리더라?··· 음- 그렇지.··· 그러니까 기초는 400t중량을 받게 해야겠는데···》

그런 계산이 어떻게 나온것인지 옥영은 알지 못했다. 당일군이 노상 생산기술문제를 붙안고있다는것도 잘 리해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이 행정대행이라고 뒤소리를 하지 않을가?··· 옥영은 자기의 이 생각을 말해보리라 결심하였다.

《뭐라구?》 전진욱책임비서는 놀란듯 했다. 《행정대행? 그게 무슨 소린가?》

《영화나 책에서랑 그럴 땐 행정대행이라구 뒤소릴 하던데요.》

《누가?》

《아, 거야 일군들이지요.》

《어떤 일군들인가 하는거야.》

《물론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돌리겠지만 어쨌든 뒤소리를 듣는 당자도 속을 썩이지 않습니까. 의견이 제기되면 검열이 붙게 되구요.》

《알만해, 무슨 말인지.···》

별안간 책임비서는 검댕이가 묻은 퍼르데데한 미간의 주름을 찌프리였다. 늘 웃고있던 그의 두눈도 모진 피로에 잠겨 한순간에 10년은 더 늙어버린듯 했다.

《그러니 옥영인 우리의 성공을 믿지 않고있구나.》

《아닙니다, 책임비서동지.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ㅈ철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도 오랜 세월을!··· 그런데 오늘 갑자기 성공이라니 전 어째 그런지 걱정이 됩니다.》

《···》

그러자 전진욱은 빙그레 웃었는데 순간 옥영은 그의 두눈에서 흔들리는 따스한 불빛을 보았다. 마치 귀여운 딸자식을 쓸어주고싶어하는 아버지의 눈빛과도 같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의 서류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그속엔 포도알크기의 구단광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중의 몇알을 손에 들고 그는 말했다.

《자, 이걸 봐. 지금까지의 구단광들은 자꾸 깨여지구 부서지구 해서 애를 먹었어. 깨여지지 않는건 세멘트를 섞은것인데 옥영이두 잘 알지? 그걸 굳히느라구 저 체육관처럼 커다란 양생건물을 짓구두 거기서 20일씩이나 널어서 말려야 했지? 그걸 빨리 굳히자니 로에 넣어 굽기도 했구. 그런데도 세멘트를 섞었으니 류황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용해공들이 먹기 싫어했지? 하지만 이걸 봐. 류황성분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리구 힘들게 굽지 않아도 깨여지지 않아. 보라구!》

련속 5개의 구단광알을 머리높이우에서 두터운 철판을 깐 바닥에 떨구었지만 하나도 깨여지지 않았다. 책임비서의 얼굴에는 누군가와 내기를 해서 이긴 장난꾸러기소년과도 같이 의기양양해 하는 표정이 쪼프린 두눈의 따뜻한 미소에서 그리고 입귀의 잔주름이 바르르 떨고있는데서 력연히 나타나고있었다.

《어때 옥영이, 응?!》

《···》

무어라고 대답할수 있으랴. 별안간 눈굽이 쿡 쑤시고 오열이 북받쳐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방금 50고개에 올라선 그의 이마에 깊숙이 패인 주름살들을 여겨보면서 련합당책임비서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가 하는 생각이 가슴에 마쳐왔다. 자기의 마음속에 서리서리 얽히고있는 서글픔과 애달픔이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그를 붙들고 막 소리내여 울고싶은 심정이다. 성공을 의심치 않는 이 순간에도 책임비서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보라. 오죽했으면 련합기업소당 책임비서가 서류가방에 시꺼먼 구단광알들을 가득 넣어가지고 다니겠는가?!···

이러한 생각에 잠겨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책임비서가 어깨를 도닥여주었다.

《옥영이, 동무마음 내 알아. 나를 위해주는 그 마음을···》하고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도 어느덧 젖어들고있었다. 《난 각오하고있어. 이제 숱한 건물을 허물어버리구 개건현대화하자면 별의별 일이 다 있을수 있다는걸. 그래도 옥영이같이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힘이 나는거야.》

《책임비서동지!···》

불시로 목구멍 가득히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참을수 없어 끝내 옥영은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