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0

제 2 장

10

 

공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가지 일이 기다리고있었다.

처음 오리목장건설장에 들려 400마리정도를 유지하는 현상태를 대담하게 벗어나 50만마리를 키우는 목장으로 확장할데 대하여 토론했다. 어이가 없어 침묵하고있는 일군들을 되게 다불리고 차있는데로 나오는데 두툼한 새 솜옷을 입은 허필웅이 나타났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나서 그는 말했다.

《책임비서동무, 그새 안녕하십니까?》

전진욱은 말없이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새 허필웅은 새옷을 입고 반반히 면도를 한 얼굴에 스스럼없이 웃음을 띄우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더 늙어보였다. 눈언저리며 이마의 주름이 깊어지고 손회목의 피줄까지 퍼렇게 부풀었다.

《책임비서동무, 이왕 도와주는김에 한가지만 더 풀어주시오.》

《···》

여전히 아무말없이 기다렸다.

《사실 우린 새로 나온 기업소다보니 변변한 기술자가 없어 애먹구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루 사람들을 고르는데 공업기술연구소의 장봉구란 연구사가 기어이 나와 같이 가서 일하겠다고 떼를 쓰는게 아니겠습니까. 이전부터 제가 좀 돌봐주느라고 했더니 나와 떨어지기가 아쉬웠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를 데려다 키워볼가 하는데···(물론 일을 시켜보면서 말이지요.)사정을 봐서 좀 놔주시오. 송근우기사장은 어서 데려가라구 합디다.》

전진욱은 손을 들어 눈두덩을 문질렀다.

《부지배인동무, 아니, 인젠 지배인이지. 사정은 알만 한데··· 솔직히 말해서 그건 책임비서 혼자서 결심하는 일이 아니지 않소?》

《아, 그러지 마시오.》허필웅은 열을 올렸다. 《무슨 일이든 책임비서만 동의해주면 거지반 된거나 같다는거야 세상이 아는 일 아이오?》

그는 두툼한 새 솜옷을 입고있었지만 전진욱은 아직 가을철에 입고있던 얇은 덧옷차림 그대로여서 사정없이 몸이 떨렸다. 찬바람이 건설장의 구뎅이며 흙무지의 짚검불과 검은 먼지를 잔뜩 말아올려 사방으로 쥐여뿌리고있었다.

토론해보고 본인도 만나본 후에 의논하자고 하자 허필웅은 지금 본인이 기다리고있다고 했다. 그가 손짓하자 오리목장건설지휘부의 한 가설건물에서 낯익은 청년이 모자를 벗어들고 뛰여나왔다.《안녕하십니까, 책임비서동지. 공업기술연구소의 연구사 장봉구입니다.》

고수머리연구사 장봉구, 목소리가 류달리 부드러운데 얼굴에 떠올린 미소는 눅눅하다. 이름도 자주 들어본것 같고··· 실은 그자신이 잘 알려져서가 아니라 2중판직장의 고영란과 약혼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공업기술연구소의 장봉구라는 이름도 자주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게 된것이다.

얼마전 새로 불을 지핀 2중판직장에서 고영란이 일하는 모습을 한번 본 기억이 떠오른다. 규정에 위반되는 일이지만 방열복의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둥실한 몸을 률동적으로 움직이며 걸싸게 일하는 모습, 땀흐르는 희멀쑥한 얼굴에서 특히 인상적인것은 크고 검은 두눈이 시종 누군가를 조롱하듯 능청스러운 장난꾸러기처럼 상글상글 웃고있는것이였다.

전진욱은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고 피곤이 실린 눈빛으로 장봉구를 여겨보기만 했다. 고영란이와는 너무도 판다른 그의 공손하고 례절바른, 그러면서도 어쩐지 꾸며낸것만 같은 눅눅한 미소에 마음이 허전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습지대를 파제낀 건설장 한구석에서 비릿하고 물커진 냄새가 찬바람에 실려왔다.

인제는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토론해보고 알려주겠소.》

장봉구는 차에 오르는 전진욱을 향해 허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허필웅은 웬일인지 얼어드는 귀를 손바닥으로 감싸쥔채 멀거니 바다가 어딘가를 바라보고있었다. 자기의 소란스러운 한생이 찍혀져있는 사연많은 발자취들을 더듬어보고있는것인지?··· 그는 나타나던 때와 달리 어둡고 쓸쓸한 인상이였다.

《ㅈ철》공장에서는 리태영지배인과 당비서 허군수가 문제의 회전로옆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둘다 침울한 표정들이였다. 먼저 허군수가 핼쑥해진 전진욱의 얼굴을 여겨보며 한마디 했다.

《책임비서동지, 딸이 중태에 빠졌다던데 한번 시간을 내서 가봐야 하지 않습니까? 혹시 아버지가 왔다는걸 알면···》

전진욱은 손을 내저었다.

《그 애보다 우리〈ㅈ철〉은 더 중태에 빠져있소.》

《〈ㅈ철〉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하게 됐습니다.》이렇게 말하는 허군수의 눈시울은 먼지가 끼여 재빛으로 거뭇했다. 《이제라도 인복이한테 가보십시오.》

《동무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소리를 지르나 목이 쉬여버려 그렁그렁하는 소리만 새여나왔다.

그는 지금껏 아무말없이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있는 리태영지배인을 훌 스쳐보며 다우쳐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리태영을 대신하여 허군수가 되물었다.

《그럼 아직 모르고있습니까?》

《뭘 말이요?》

《지도검열대가 내려왔습니다, 이자 금방.》

이렇게 대답한것은 역시 허군수였다.

《?···》

리태영이 덧붙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쓸어왔습니다. 당, 행정, 사법, 검찰··· 이제 한바탕 캐구 뚜지구 할겁니다.》

《···》

전진욱은 자기의 이마를 엇비듬히 파고지나간 주름을 아무 의미없이 손가락으로 누르며 어깨를 옴츠리였다. 춥고 죽을 지경으로 몸이 나른해질뿐 그 어떤 흥분도 불안감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온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오늘 당장 도착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을뿐. 기차가 줄곧 연착되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정신적중압감에 사로잡혀있었으므로 모든것이 귀찮을 때도 없지 않았다.

마침내 응당 와야 할 일이, 기다리던 일이 닥쳐왔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리태영이 또 한마디 했다.

《할수 없지.〈ㅈ철〉이 죽었으니 누군가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하는건 응당하지.》

그러자 전진욱은 그에게 날카로운 힐난과 멸시가 담긴 눈빛을 던졌다.

《죽는다는건 무슨 소리요? 지도검열이야 어제두 있었구 래일도 있을건데 뭘 떠들며 그러오?》

《그렇긴 하지만···》

《검열은 검열이구 우린〈ㅈ철〉을 계속해야 하오.》

《···》

리태영은 입을 다물고 눈길을 떨구었다.

허군수도 머리를 수그렸다.

얼굴에 뿌연 흙먼지가 오른 전진욱이 아무리 목청을 돋구어도 그들을 일떠세우기에는 부족되는것이 있었다. 지도검열대의 도착과 더불어 이미 그들은 된서리를 맞았던것이다.

드디여 가을도 가고 겨울이 왔다. 북방의 사나운 겨울이 이제 한바탕 태질을 하며 기승을 부릴것이다.

전진욱은 머리를 돌렸다.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성구기가 있는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리태영과 허군수 두사람은 여전히 못박힌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오직 마천령봉우리우에서 불어치기 시작한 세찬 삭풍만이 홀로 걷는 전진욱의 잔등을 사정없이 후려치고있을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