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모든것이 끓어번졌다. 김정일동지께서 현지지도하신 성강은 당장 생기와 활기를 되찾고 벅차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종업원궐기모임이 열리고 여기에서 전국의 로동계급과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켜나갈것을 호소하였다.

매일과 같이 신문과 텔레비죤에서는 믿음과 사랑을 안고오신 장군님에 대하여, 현지지도의 길우에 수놓아진 혁명일화들은 물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강행군의 선봉에 선 성강의 로동계급을 끊임없이 소개하였다. 기자들과 촬영가들, 시인들과 작곡가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고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ㅈ철》과 쇠물을 다루는 용해공들의 힘찬 로력투쟁이 감동적인 시와 노래로 소개되였다.

기업소의 방송차도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했다. 《ㅈ철》공장을 새로 살리는 전투와 함께 강괴겁생산기지건설, 전극직장과 내화물직장의 개건, 오리목장과 살림집건설이 동시에 벌어져 저마끔 방송차를 불러대였던것이다.

전투장마다에 새로운 대형구호판들이 세워졌다.

벅찬 나날속에 3월이 가고 4월도 가는데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제대군인 1 000명이 또 성강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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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녹는 5월이라지만 북방의 날씨는 아직도 찼다. 일기예보는 노상 북동풍이 10~15m로 불고 파도는 2~3m로 높겠다고, 그러므로 작은 배들은 주의하라고 해상경보를 알리군 했다.

그날도 쌍포앞바다는 소란스러웠다. 세찬 파도가 물갈기를 날리며 기슭으로 밀려들군 하였다. 하지만 제대군인결사대는 이른아침부터 파도를 맞받아 바다속에 뛰여들었다.

《여, 해군사관! 뭘 꾸물거리는거야. 해병이라는게 파도를 보구 겁을 먹은게 아냐?》

《어, 하사 류수길! 감히 분대장에게 무슨 허튼소리야!》

기슭의 슬라크더미우에서 꾸물거리고있는것은 박철진이였다. 해군복을 입고있긴 하지만 운수중대사관으로서 자동차를 몰았을뿐 아직 이렇듯 세찬 파도속에 뛰여들어본적이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불안해하고 주저한다는것을 느낄 때면 느닷없이 화를 내며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무작정 거침없이 뛰여드는 성미였다.

역시 이번에도 거침없이 바다에 뛰여들었다. 마침 그 시각을 기다리고있은것처럼 산더미같은 파도가 밀려와 그를 덮쳤다. 그는 얼결에 차고 짠 바다물을 꿀꺽 마셨다. 그러자 코에서부터 머리속에까지 매운 연기같은것이 확 쓸어들고 배안의 내장을 송두리채 뒤집어놓는듯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그는 비틀거렸다. 가까스로 허궁 들리는 다리를 바닥에 붙이는데 미처 숨돌릴새도 없이 두번째로 달려든 파도가 그를 세차게 후려치고는 기슭의 슬라크더미에 부딪쳐 부글부글 끓어번지며 도로 밀려갔다. 그것도 그냥 밀려간것이 아니라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를 사정없이 깊은 물속으로 끌어갔다.

《왜 그래, 엉?!》 류수길이 허우적거리며 가까이 다가와 그를 붙안았다. 《어디 아파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해군사관이였던 박철진이 파도에 밀려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것이다.

《이 친구 야단났구만. 엉?》

다른 동무들도 그에게 몰려왔다.

그를 끌어내여 수건으로 맹렬히 문질렀다.

《이젠 됐소. 이- 일없어.》 박철진은 이를 떡떡 맞쪼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갑자기 현운증이 나면서…》

《안되겠소. 동문 오늘 좀 쉬여야겠소.》

《그래, 빨리 병원에 가봐.》

형언할길 없는 수치심이 그를 불같이 태웠다. 그리하여 그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동무들을 마주볼수가 없어 머리를 돌리며 입술을 악물었다. 분노의 눈물에 눈앞이 흐려지고 악문 이새로는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다시 파도속에 뛰여든다.

《여- 일없겠어?》

수길이 소리친다.

《괜찮아. 다 나았어.》

그는 악에 받쳐 파도와 겨루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한모금 물도 마시지 않았다. 수길이와 다름없이 덮쳐드는 파도속에 몸을 쑥 잠그고 소경처럼 이리저리 바닥을 더듬었다.

지금 그들은 바다에서 고철을 걷어내는 전투를 벌리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제대군인들로서 성강에 도착하자 휴가도 마다하고 결사대를 뭇고 고철수집전투에 나섰던것이다.

이 전투와 결사대의 발기자가 바로 박철진이였다.

얼마전 그는 제강소에서 제일 걸린것이 바로 전기와 파고철이라는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해결할수 있겠는가 하고 여기저기 돌아보며 머리를 짜고있었다. 그러다가 가족돌격대가 이 바다기슭에서 고철주이를 하는것을 보았다. 장군님의 현지지도후 가족들까지 떨쳐나 소랭이를 들고 바다가의 슬라크무지에서 고철을 줏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런데 그들이 줏고있는 고철은 사실상 땅속에서 풍화되였거나 파도에 씻겨 슬라크에서 떨어져나온 잘디잔 쇠쪼각들이였다.

바로 어제 저녁에 있은 일이였다. 가족돌격대의 녀인들이 해군복을 입은 박철진이 나타나자 그를 둘러싸고 벅작 떠들어댔었다.

《아이구 해군아재, 어서 이리 오시오.》

《정말 끌끌하지비?》

《그러게 해군은 다 미남자만 뽑는다질 않소.》

《그런데 해군아재, 바다가에 산보를 나왔소야?》

철진은 소리내여 웃었다.

《산보가 다 뭡니까. 장군님께서 주신 강철생산과제를 수행하자면 고철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기에 지금 머리를 짜보는중입니다.》

《오, 그런걸 난…》

《역시 제대군인이 다르지야?》

나이가 들어보이는 한 녀인이 철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내 고철무지가 있는델 대주면 그걸 다 꺼내올수 있겠지비?》

《그런데가 있습니까?》

《있지 않구. 그런데 그걸 꺼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저기 보라구. 저 바다속에 큰 짐배가 하나 가라앉아있지비. 글쎄 왜놈들 밴지 미국놈 밴지 그거야 우리두 알턱 있소? 모르지비. 어쨌든 거기 가라앉은 커다란 짐배에 숱한 선철이 가뜩가뜩 무져있다구 하질 않소야. 그런데두 우린 그걸 꺼낼 엄두는 못내구 이렇게 손톱눈만 한 고철만 주을래기 정말 애나 죽겠소.》

《아, 그래요?》 박철진은 주먹을 내흔들며 장담했다. 《그런거야 응당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 제대군인들이!》

그가 말끝도 맺기 전에 녀인들이 환성을 질렀다.

《야, 됐구나!》

《정말 고맙소야.》

《해군들만 나서주면야 우리 가족돌격대가 줄을 쭉 서서 거기까지 들어가 받아내면 될거 아이오?》

《그렇구말구요. 제창 해치우자요.》

《아니, 아니.》 박철진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제대군인들이 맡겠습니다. 가족돌격대까지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철진의 이 말은 녀인들을 노하게 했다. 《노다지》있는 곳을 대주었더니 뭐 자기들끼리만 하겠다고?… 녀인들이 달려들어 웃고 떠들며 꼬집고 쥐여박기 시작하자 철진은 황황히 도망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길로 합숙에 달려가 먼저 해군출신제대군인들을 휘동하고 다시 바다가로 나갔다. 그리하여 그가 데리고 나간 진짜 해병들이 물속에 자맥질해 들어가 가라앉은 배와 선철무지를 확인하였다.

길게 생각할것이 없었다. 소식을 들은 전체 제대군인들이 즉시 결사대를 조직하고 여기서 전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파도가 그닥 높지 않았으므로 철진은 진짜해병들인 자기 동무들과 같이 몇시간이고 바다물속에 자맥질해 들어갈수 있었다. 그자신이 가라앉은 배에서 선철괴를 꺼내는데 필요한 잠수시간도 재여보고 기슭에까지 내오는 로력까지 계산했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그가 바다에 익숙되지 못한 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그걸 고려했어야 했다. 바다의 성격은 파도에 있다는것을 알고 덤볐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다른 용기와 결단이 있었다. 일단 결심했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였다.

어느덧 그는 가라앉은 배에까지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 류수길이나 다름없이 베개통모양의 녹쓴 선철괴들을 안고 나오기 시작했다. 차디찬 물갈기가 그들의 머리우에서 미친듯이 날치였다. 부글부글 끓어번지고 소용돌이치며 밀려갔다가는 다시 또다시 갈기를 쳐들고 달려드는 파도,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저 먼곳에서는 산더미같은 검은구름이 덮치듯 밀려들고있었다.

그때 누군가 기슭에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이건 뭐야. 누가 이렇게 하라구 했어. 엉? 당장 나오지 못해? 당장 나오라니까!》

지배인과 여러 사람이 나와있는데 지배인이 대노하여 고아대고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철진은 파도우에 머리를 내밀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듯 인상좋던 지배인이 아니였던가?…

얼마전 공장에서 1 000명 제대군인들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는데 그때 분위기가 고조되여 지배인에게도 노래를 청하자 그는 《난 노래라군 전혀 못해. 하지만 동무들의 청이니 한곡 부르겠는데 좀 도와주. 나로 말하면 군대때 ×군단 ○○사에서 복무했는데 나와 같은 사단친구들이 있으면 좀 나오라구.》라고 말했었다. 그리하여 지배인곁에 나간 사람이 무려 다섯이나 되였는데 그때 그들모두가 서로 어깨곁고 《동지애의 노래》를 목메여 부르며 눈물이 글썽해있던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철진은 가슴이 아릿해진다.

그 지배인이 옷을 입은채로 물속에 들어서며 또 소리쳤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쩔려구 그래. 오늘같이 파도가 셀 땐 레루장도 막 쓸어가. 그런거 동무네 알기나 하구 그래?》

그는 맨처음 류수길을 붙잡았다.

《이거 보라, 살가죽이 찢어진걸. 엉?》

수길은 그것도 모르고있었다. 오랜 세월 물속에서 삭을대로 삭은 선철이여서 모서리가 파편처럼 터슬터슬했는데 거기에 쓸친것 같다. 팔목에서 흐른 피가 뻘겋게 번겨가고있었다.

《아, 이런?…》

다음순간 그는 자기를 붙잡은 지배인과 함께 거센 파도속에 휘말려들어갔다. 하지만 또 솟아나며 철진에게 소리쳤다.

《여 해군사관, 이걸 좀 받으라구.》

지배인이 아무리 목터지게 고아댔어도 제대군인들을 끌어낼수는 없었다. 하는수 없이 지배인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가서 의사선생을 불러오우. 저 하나조강에두 의무초소가 있지? 빨리!》

그때 가족돌격대가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나타났다. 그들까지 왁자자하니 떠들며 물에 들어서서 제대군인들이 꺼내오는 선철괴를 받기 시작하자 그만 지배인은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낙네들이 벅작 떠들 때 사내들은 조심해야 한다. 더우기 드살센 함경도녀인들이 웃고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지배인이 아니라 지배인의 하내비라도 단통에 웃음가마리로 만들어버리는것이다.

지배인은 손을 내젓고말았다.

그날부터 결사대원들은 무려 한주일동안 파도속에서 선철괴를 안아내오는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동안 1 000명에 달하는 제대군인들모두가 박철진을 알게 되였다. 해군사관 박철진이 실은 한번도 배를 타보지 못한 운전사였다는것을 그가 고백했던것이다.

사실은 류수길 한사람에게만 터놓은 말인데 소문은 빨래줄처럼 길게 거짓말까지 보태져 마치 그가 바다에 빠져 다 죽어가던것을 어떤 보병친구가 필사적으로 건져내였다는 식으로 엉터리없이 번져졌다.

모르는 사람은 우정 찾아다니며 묻기도 했다.

《가만, 몽골해군이 누구라구?… 오, 저 친구?!》

《여보게, 몽골해군.》하고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었다는 한 수다쟁이는 이렇게 재담을 시작하였다. 《나와 군복을 바꿔입지 않겠나?… 싫다구? 그럼 모자라두 좀 빌려주게. 댕기 달린 모자말야. 아 거 노래에도 있지 않나? 펄펄- 날-려라 위-훈-깃든 댕…》

노래까지 불러대던 그는 별안간 너무도 매몰스럽게 번뜩이는 박철진의 눈빛에 깜짝 놀라며 뒤걸음쳐갔다.

《어, 이 친구 왜 이래?… 난 사실 처녀들은 다 해군복 입은 총각을 더 좋아한다기에…》

악에 받친 철진이였지만 자기의 성격을 살리지 않았다.

사실이 그러했다. 처녀들이야말로 그들의 첫째가는 관심사이며 화제거리였다. 군사복무의 전기간 처녀들과의 교제가 없은데다가 나이찬 총각들이였으므로 자연히 합숙방에 들어서면 자기가 만나보았거나 집에서 보내온 처녀의 사진을 놓고 벅작 떠들군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로동자합숙에 들어있었다. ㅁ자형의 건물로서 150여개의 큰 방을 가진 2층짜리집이였다. 제대군인들을 맞기 위해 직장별로 분공을 받고 꾸리기경쟁을 벌렸다고 한다. 미장을 하고 장판과 도배는 물론 책걸상과 침대까지도 새로 만들었다. 밝고 산뜻한 방, 정성다해 차려주는 식사… 어려운 때였지만 부족되는것이 없었다.

저녁마다 생활위원회의 계획에 따라 총화도 짓고 춤과 노래로 떠들썩한 오락회도 벌리군 했다. 하건만 그들은 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꼭 필요한것이 없다는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가 그것을 마다할수 있으랴. 누가 그런 얼빠진 생각일랑 싹 걷어치우라고 감히 말할수 있으랴?… 사실이 그러했다. 그 누가 자기들은 선군시대의 제대군인들로서 매일, 매 시각 강철생산만을 생각했을뿐 다른것은 한순간도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할수 있겠는가? 혹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괴이쩍고 우습강스럽게 보일것인가?…

그들은 사랑을 꿈꾸었다. 마치 기다리기에 지친것처럼, 지금 이루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차례지지 않을것처럼 조급해하는 축들도 있었다. 하기에 어떤 친구는 김정순이라는 수수한 이름에 진지하고 친절한 합숙책임자를 찾아가 구슬리기도 했다.

《책임자어머니, 그 집 아버님은 글을 쓰신다지요? 거 무슨 력사소설이라던데… 아 참, 그렇지. 고구려처녀라는 책을 쓰신다면서요?…》

《고구려척사라는 책을 써. 고구려처녀가 아니구.》

롱을 모르는 김정순은 이렇듯 고지식하게 나왔다.

《야- 쓸바엔 고구려처녀 얘길 써야지요. 거 뭐 고구려척사라는게- 뭐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자가 옳겠지요?… 거 보시라요. 고망옛적의 그 남자가 오늘의 나만 하겠나요?》

《임자 말하자는게 뭔가?》

《아- 별거 아니구요. 거 력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고구려처녀같이 맘씨 곱구 일도 잘하는 그런 체네 하나 소개해주십사 하는 그겁니다.》

《맘씨만 고우면 되겠나?》

《아- 맘씨가 고우면야 인물도 곱겠지요 뭐.》

《흥, 그러니 다 고와야 한다? 인물도 곱구 맘씨도 곱구. 그 소리구만. 응?…》하고 나이지숙한 합숙책임자는 소리없이 웃으며 말하였다. 《걱정말라구. 쌍포바닥에 체네들이 줄을 지어 서있어. 이제 맘에 드는 체네가 꼭 찾아와.》

어떤 친구는 합숙을 돌아보는 책임비서에게 들이대기도 했다.

《책임비서동지, 고운 따님이 있다는 정보를 받았는데 저한테 주시지 않겠습니까?》

《허- 이 친구 어벌뚝지가 크군.》하고 책임비서는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줄수 있지. 당장이라도 줄수 있어. 그런데 이보라구 제대군인친구, 사랑이란 선물이 아니야. 표창으로 주는것도 아니구. 심장으로 녹이는거야. 다시말하면 쟁취하는거지. 알겠나? 남한테 소개해달라구 부탁하는건 제대군인답지 못한 일이야. 공격을 하라구. 군대에서 공격정신만 배워온 동무들이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그러나. 책임비서동지, 저한테 따님을 주십시오.하고 구걸하다니…》

철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자신이 바로 끝까지 맞받아나가는것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말하군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기가 잊지 못해하는 처녀를 도저히 찾아낼 길이 없었다.

얼마전 그들이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여기 성강에 도착하였을 때의 일이였다. 1 000명제대군인들을 위한 환영모임이 있었는데 온 제강소가 다 떨쳐나선듯 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났을 때 덤벼치며 동무들을 따라가다가 한 녀자가 부딪쳤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하고 그는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한손으로는 뒤더수기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제가 그만 덤벼치다가…》

《아니 괜찮아요, 해군동무.》

그 처녀는 해병이라고 해야겠으나 《해군동무》라고 하면서 상긋 웃었는데 그 순간 철진은 그만 얼어붙는것 같았다.

무엇이 그를 휘여잡고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후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수 없었다. 그저 입을 벌린채 공기를 게걸스럽게 마시며 뒤덜미를 긁어대던 손을 그냥 떼지 못하던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아니?!…》

처녀는 그의 이상한 거동에 놀란듯 두눈을 사뭇 깜박이면서 빤히 쳐다보고는 또 웃었다.

《해군동무, 왜 그렇게 보세요?》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의 물결속에 사라졌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일이였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 끊임없이 자신을 욕질했다. 이 엉터리, 머저리, 바지저고리!… 그를 붙잡고 이름이라도 알아냈어야지. 이 미욱한 놈아!…

그런데 무엇이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을가?… 잘 다듬어진 단아한 얼굴, 웃음짓는 두눈, 그저 그뿐이였다.

이렇듯 싱거운 일도 있단말인가. 그는 밤이고 낮이고 그 처녀를 잊지 못했고 직장마다 찾아다녔으나 그 처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름도 몰랐으므로 어데 가서 찾을 길도 없었다.

얼마후 제대군인결사대는 한달동안의 전투끝에 보름간 휴가를 받았다. 비로소 고향의 부모님들께 가게 된것이다.

철진이도 고향인 무산에 갔다가 왔다. 누이와 매부는 물론 중학동창들을 통해 수많은 처녀사진이 들락날락했지만 그는 한눈을 쪼프리고 들여다보고는 히죽이 웃기만 했다. 사진속의 처녀들도 철진을 마주보며 순결하게, 정차게 상글거리며 웃고있었건만… 아니였다. 우연히 그와 이마를 맞쪼았던 이름모를 처녀의 두눈이 소리없이 상긋 웃음을 날리던것을 생각하면 사진속의 어여쁜 처녀주인공들은 대바람에 빛을 잃고마는것이였다. 하여 그는 한장의 사진도 없이 한마디의 가슴울렁이는 언약도 나눈것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1강철직장에 배치되였다.

로장 리성표가 물었다.

《결혼했소?》

《아직 총각입니다.》

《처녀가 없어?》

《아니, 있습니다.》

《그럴테지. 멋쟁이해군샤쯔가 처녀 하나 후리지 못한다는게 말이 안되지. 빨리 날자만 정하라구. 우리가 차려줄게.》

《고맙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급격히 합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대군인들은 사랑과 결혼도 군대식으로 전격적이여서 삽시에 쌍포바닥과 김책시안의 처녀들을 참빗처럼 훑으며 골라가졌다. 골라가지고는 제창 처녀의 집으로 제대배낭을 메고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제대배낭과 더불어 성강의 미래를 걸머진 름름한 체구와 열화같은 군인정신이 있었으므로 처가들에서도 다른 재산은 넘보지 않았다.

고향에서 부모들이 정해준 처녀들도 새 세기 결사관철의 봉화가 타오른 성강의 바다가로 꽃이불에 수놓은 비둘기마냥 신살림의 꿈을 구구거리며 날아들었다. 성강에서는 연송 새살림을 펴는 그들의 집을 짓기에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였다.

드디여 합숙 25호실에는 박철진만이 남았다.

《여 해군사관.》 류수길이 말했다. 《그런 처년 여기 없어. 쌍포바닥을 다 훑어보라. 분명 딴데서 왔던 처녀이거나 그새 시집을 가던가 했어. 더 찾지 말라구.》

리성표로장은 물었다.

《여 철진동무, 날자 정했소?》

《이제 정하겠습니다.》

《빨리 정하라.》

《알았습니다.》

그들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길게 말할새도 없었고 용해공들은 원래 긴말을 몰랐다. 지동치는듯 한 아크소리와 산소취입의 소란, 강렬하고 뜨거운 화염앞에서 바삐 돌아치는 그들에게는 손짓언어와 짤막한 구령소리만 있을뿐 다른 사설은 있을수도 없었다. 더우기 해군사관이였던 박철진은 지금 여기서 3교대의 7번수였다. 처음 군대에 입대하여 신병훈련을 받을 때에도 제3중대 제3소대 제3분대의 마지막병사였었는데 지금은 24명으로 구성된 로의 마지막 3조 7번수가 되였다. 기능에 따라 번수별로 나가는것이므로 또 신병이고 마지막번수이다.

그러나 괜찮다. 그는 언제든 재빨리, 거침없이 맹돌진하는데 습관되여있다. 누구든 앞선사람이 있으면 한사코 끝까지 따라잡고야마는 성미이다.

《뭘해?》 찢어지는 소리가 귀전을 때린다. 《빨리 석회석!》

전전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용해공이 된 용세라는 녀석이다. 고작 6번수인 주제에!… 순간 속이 불끈하여 머리를 돌리며 감때세나운 눈빛을 던진다. 그러나 용세는 그따위 눈빛쯤엔 끔쩍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그런 일에 노여움을 탄다는것은 좀스러운 일이다. 여기 용해장에서는 곁눈을 팔거나 제때에 손발을 맞추지 못하면 그가 누구이건 설사 아버지벌 되는 사람이라도 《야, 뭘해?!》하고 사정없이 벼락치는 소리를 내지르는것쯤은 보통이다. 그리고 그런것쯤 받아줄 아량도 없다면 애당초 용해공을 그만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용해장은 곧 전투장이기때문이다. 장입으로부터 마지막출강때까지는 줄곧 돌격이다. 이런 돌격전에서는 모든것이 다 명령이다. 명령은 짧고 맵짜다. 그러니 6번수인 용세녀석이 7번수에게 명령하는것이야말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는 용세가 하는대로 부지런히 삽질을 해댄다. 뜨거운 열이 온몸을 달구고 흐르는 땀은 눈을 쓰리게 한다. 지금은 3상전극이 구멍을 뚫고들어가 바닥을 다 녹이고있다. 이것을 용락이라고 한다. 여기서 1차시편을 따내여 강종이 요구하는 합금수치를 맞춘다. 철진은 이렇게 조장이나 로장이 배워준 용해기에 들어가기 전의 과정을 다시 속으로 더듬어보았다.

조장(반장)이 또 그의 어깨를 때리며 소리쳤다.

《시편따는거 보라!》

《예.》

조장은 로장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무슨 일이나 기계처럼 정확히 그리고 재빨리 해치우는 사람이다. 자기 조에 박철진이와 같이 끌끌한 미남자 제대군인이 배치된것을 커다란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박철진이 앞으로 꼭 《강철령감》처럼 소문난 영웅로장이 될것이라고 장담하군 했다.

《정말이야.》하고 그는 말하였었다. 《우리 강철령감을 보라. 젊었을 땐 얼마나 팔팔한 미남자였는지 몰라. 멋있게 생기면 일두 멋있게 하는 법이야. 알겠어?》

그는 쇠물을 시편바가지로 떠서 철판에 쏟고 물에 넣어 식힌 후 얇은 시편을 분석실로 보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때 5호로에서 사고가 났다. 전극(흑연봉)이 부러졌다고 한다. 체격이 좋은 사람의 키와 몸통에 비길수 있는 크기의 기둥같은 전극이 부러지면 기중기고리로 걸어서야 끌어낸다.

직장에서 겨우 3기의 전기로를 살렸는데 그중 한기가 고장이 났다는것은 큰일이 아닐수 없다. 사람들이 고열과 화광속에서 서로 가마우에 뛰여오르고 기중기를 소리쳐 부르며 야단이다. 리성표로장도 어느새 그쪽에 가서 돕고있다.

《거긴 뭘하러 가?》

조장이 또 꽥 소리친다. 철진이 사고난 5호로에로 달려가려 했기때문이다. 그는 멈춰섰다.

《거기 가서 뭘 할게 있어?》

그 말이 옳다. 마지막 7번수인 주제에 뭘 돕는다구… 쑥스럽겐 되였다. 그러나 고함을 친 조장의 눈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있다. 무슨 일에나 발벗고 나서며 어깨를 들이미는 제대군인 철진이를 향해 웃고있는것이다.

 

그날 교대가 끝났을 때였다. 합숙으로 향하던 철진은 직장앞의 이전 원철로를 폭파한 자리에 꾸린 휴식터(사슴사, 원숭이사 등이 있다.)에서 용세가 기중기운전공 남옥이를 다불러대고있는것을 보았다.

로동자합숙 1층 112호실에 사는 김남옥은 앵두알같아 말갛고 발그레한, 직장에서도 제일 나어린 처녀이다. 그 어린 처녀가 커다란 강철구조물인 천정기중기를 솜씨있게 움직이는것을 볼 때마다 철진은 무척 놀라고 또 대견해하군 했었다. 그런데 저 희떱게 굴기 좋아하는 용세라는 녀석이 무엇때문에 어린 처녀한테 을러메는것일가?… 저도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됐어요. 난 그런거 몰라!》

남옥이가 울먹거리며 부르짖는 말이다.

《머?》 용세가 어거지를 쓴다. 《청년동맹서 과업받은거 놓구두 머 몰라?… 그럼 말주변 없는 내가 무대에 나가서 시랑송 하란?》

《머 용세동무가 말주변 없어? 동맹회의때마다 토론하는건 말주변 아니구 머예요?》

《챠 이런! 넌 언제부텀 그렇게 나하구 맞서믄 병아리처럼 톡- 톡- 쪼아대기 시작했어?》

《머 병아리? 그럼 거긴 뭐라구 해야 해? 수닭?…》

철진은 웃음소리를 죽이며 돌따서고말았다. 아직은 채 여물지 않은, 그래서 귀엽고 천진스러운 어린이들을 대할 때 혹은 금시 꽃망울을 피우는 꽃을 냄새맡을 때 느끼는것과 같은 순수함과 담박함에 마음이 흥그러워지는것이였다. 마치도 그 어떤 산뜻한 바이올린음악을 듣고난것과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하여 저도모르게 벙글거리며 머리를 높이 들고 걸어갔다. 그런데 인차 잰 발걸음소리가 뒤쫓아왔다.

용세였다.

《아 형님, 형님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날 기다려?》

《우리 누나가 꼭 데려오라구 했소. 사실은 오늘이 바로 내 귀빠진 날이요.》

그는 용세가 《고난의 행군》시기 부모를 잃고 누이집에서 산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고맙다만 난 오늘…》

《아니 형님, 그러지 마시오. 오늘은 꼭 가야 하오. 친형처럼 생각해서 그러는데.》

《그-래?… 좋아. 가자구.》

그들은 같이 정문으로 나섰다. 철진은 방금 용세가 남옥이와 마주서있던 일을 상기하고 소리없이 웃으며 물었다.

《용세, 남옥인 뭣때메 울리면서 그래? 우리 직장에서 제일 어린 처녀인데.》

《하 고거.》 용세가 입을 비쭉거리며 말했다. 《내 고거 힘들어할 때마다 좀 도와줬더니… 하- 나만 보문 톡톡 못나게 굴지 않소. 햇병아리같은게.》

《네가 도와줘? 뭘 어떻게?…》

《아, 별거 아이요. 강철직장에선 사실 기중기운전공이 제일 힘들다는거 형님 모르오? 제일 추운것두 그래, 제일 더운것두 그래 사시절 제일 혼나는게 바루 기중기운전공이요. 그래서 청년동맹원들에게 호소하구 좀 도와줬는데 점점…》

그는 더 말을 이으려 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고말았다. 철진이도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희떠운 녀석인 용세가 별안간 혈육처럼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용세의 집은 제강소병원뒤쪽에 있었다. 철진은 처음 병원건물을 보았다. 자기가 일하는 현장에 《강철의무실》이 있고 그자신은 아직 고뿔 한번 앓아본적이 없으므로 병원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던것이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용세가 물었다.

《형님, 어째 그러오?》

철진은 머리를 기웃하며 말했다.

《이상하잖아. 우리 공장이야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인데 여긴 옛날식으로 그저 성진제강소병원이라구 했어. 뭐가 잘못된거 아냐?》

《참 형님두. 별거 다 신경 쓰오?》

《그-래?…》

그 순간 그는 숨을 딱 멈추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었을것이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후들거리고… 그다음 웬일인지 심장이 아프게 뛰기 시작했다. 용세가 어째 그러느냐고, 어디 아픈가고 묻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 처녀였다. 드디여 이렇게 만났다!…

《예? 형님, 뭐라구요?…》

그는 처녀를 마주가고있었다. 전날, 아니, 처음 만나던 그때처럼 입을 벙글써 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마주가고있었다. 그런데 처녀는 그의 반대쪽만 보고있었다. 뭐라고 말하면서… 혼자서 누구와 무슨 말을 한다는거야?…

《엄마, 나 병원에 안갈래.》

《가야 해. 수림아, 이제 엄마가 매일 너 보러 올게.》

《싫어, 안갈래. 나 이젠 아프다구 안할게. 응? 엄마?!…》

《수림아, 그러지 마. 엄마말 들어야 해.》

철진은 말뚝처럼 박혀선채 어린 딸을 업은 그 녀자가 눈앞을 지나도록 꼼짝하지 않고있었다. 그 녀자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앓는 애를 업은채 젖은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한손으로 쓸어넘기며 병원정문으로 들어가고있었다.

《형님, 어째 그러오?》

용세의 물음에 그는 가슴속에 꽉 들어찼던 숨을 활 내뿜고나서 말했다.

《저 녀자 어데서… 본것만 같아서…》

《오- 서옥영누이?》 용세가 말했다. 《ㅈ철공장에 다니는데 우리 옆집에 사오.》

《뭐라구?》 어찌된 일인지 그는 거의나 맥빠진 소리로 물었다. 《이자 뭐라구 했지?》

《아, ㅈ철공장 말이요. 그 공장에선 인물두 곱구 맘씨두 고와서 사람들이 다 아까와하오.》

《그래서?》

그가 다우쳐묻자 용세는 바람새는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참 불쌍한 녀자요. 지금 업고가는 딸애가 글쎄 밤낮 골골 앓아서 얼마나 속타하는지 모르오.》

《응?…》

《자, 갑시다.》

그는 용세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터벌터벌 걸어가는데 얼굴은 재빛으로 시쁘둥했다. 갑자기 모든것이 허전하고 시진하고 또 언짢게 느껴졌다.

《형님, 오늘은 참 별나오?》 용세가 뿌루퉁해서 말했다. 《영 싫어서 오는것처럼.》

《아 그런건 아니구… 참, 어느 집이라구?》

《저게 우리 집이요. 빨래 널은거 보이오? 거기요.》

그러니 울타리도 없는 그 옆집이 바로 서옥영이라는 녀자의 집이리라. 《ㅈ철》공장에 다닌다구 했지. 그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할가?…

요즈음 용해공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ㅈ철》, 즉 주체철에 대하여 떠든다. 《ㅈ철》을 더 많이 먹기 위한 론쟁이 우와 아래를 통하여 아주 맹렬한데… 그 공장에서 그 녀자가 일한다고 한다.…

그는 눈이 비뚤 정도로 그쪽에 쏠리던 시선을 돌리며 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더이상 생각지 말자. 이젠 다 끝났다!…

용세의 누이가 밝게 웃으며 작은 널대문을 열어주었다. 아마 아까부터 내다보며 기다리고있은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