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제 1 장

4

 

1998년 3월.

또다시 봄이다. 아직도 날씨는 차고 메말랐어도 어길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올해에도 봄은 꾸준히 그리고 완강하게 찾아오고있다. 움터나는 싹과 눈석이가 바로 봄의 첫 인사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의 차창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풍경을 내다보며 이렇게 생각하고계시였다.

해질무렵이였다. 그이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지휘성원들과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박유창을 마주하고계시였다. 때로는 최고사령부 작전실로도 되고 당중앙위원회 집무실로도 되는 렬차안에서였다.

지금 그이께서는 나라의 북변 동해기슭으로 가신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가 기본목표이다. 나라의 경제건설과 직접 련결되여있는 성강, 한시바삐 성강을 살려야 할 절박성을 강조하듯 지금 여기서는 나날이 엄중해지는 정세에 대하여 김하천대장이 보고드리고있다.

《최근 적들은 <작전계획 5027>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이라크위기와 동시에 우리의 <기습공격>이 예견된다고 떠들어대고있습니다. 이라크위기로 하여 그 무슨 안보상 <공백>이 생긴다면서 남조선주둔 미8군을 전시체제로 개편한데 이어 미주리주의 와이트맨공군기지에 전개하고있던 <B-2> 전략핵폭격기들을 괌도에 파견하였습니다.》

《가만, 이자 무슨 폭격기라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B-2> 전략핵폭격기들입니다.》

《음- 박쥐들말이지.》

그이께서는 그 스텔스전투폭격기들이 박쥐날개형이므로 흔히 《박쥐》라고 부르군 하시였다. 상대방의 레이다망에 걸리지 않는다는것을 자랑해왔고 지난 페르샤만전쟁때 실지 그것을 증명해보인 이래 더욱 오만해져서 우쭐렁거리는 비행기들이다.

《박쥐들이 날아온다?!…》 이렇게 무심히 뇌이신 그이께서는 다시금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이른봄의 한산한 풍경에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여기는 동해연선이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이곳도 많이 변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사람들이 허기지고 추위에 떨고있고 산천도 모진 상처를 입었던것이다. 저 모든 산들에 무성한 숲이 우거지고 맑은 내물이 세차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대머리진 민둥산들을 아픔에 젖어든 눈길로 줄곧 바라보고계시였고 김하천대장은 여전히 박두해오는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이라크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미국이 그 무슨 《공백》을 운운하며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이른바 《2개지역전쟁 동시대응전략》을 내놓고있는데 대하여 열을 올려 보고드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그의 보고를 귀담아듣고계시였다. 그렇다. 어제도 오늘도 적들은 부단히 우리를 자극하고 핵몽둥이로 위협하고 호시탐탐 전쟁의 구실을 노려왔었다. 하여 우리는 오늘 《고난의 행군》에 이어 강행군을 계속하면서까지 온갖 힘을 다하여 전쟁에 대처하고있는것이다.

그이께서는 다시금 차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해질무렵의 재빛하늘에서는 날이 어둡기도 전에 서둘러 눈을 뜬 뭇별들이 이른봄의 추위를 참고 견딜수 없는듯 사뭇 껌벅이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기차를 향해 마주 달려오는 《가》형군용차가 눈에 띄시였다. 마침 철길과 자동차길이 거의나 직선상으로 나란히 놓여있어 구름같이 먼지발을 날리며 달려오는 자동차의 앞머리가 꺼져가는 락조의 잔광에 번뜩이군 하였다.

기차와 자동차는 서로 맞받아 질풍같이 돌진해갔다. 마치 죽기내기로 충돌을 결심한듯 한편은 강철레루에서 불꽃이 일게 내달리고 다른편은 길우에 먼지발을 말아올리며 힘껏 내달렸다.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곤두박질하듯 마주 달려오는 풍친 자동차의 운전칸을 눈여겨보시였다. 댕기달린 모자를 쓴 해군사관이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 해군사관은 미친듯 자동차를 몰아가는것인가?…

김하천의 목소리가 차츰 더 커졌다.

《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최근 미국이 본토에서 발진한 <B-52>전략핵폭격기들로 우리를 타격할수 있는 원거리공격연습을 끝냈다고 내놓고 떠들고있는 그것입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에게로 머리를 돌리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던것이다.

《그건 우릴 위협해보는거요.》 그이께서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이렇게 덧붙이시였다. 《어떻게 하나 우리의 기를 꺾어보려고 하는데… 안될거요. 그렇겐 안돼!》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하고 김하천은 돌연 활기에 넘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적들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있습니다. 우리를 자극해보는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

바로 그때 미친듯이 마주 달려온 군용차가 기차와 어기면서 뒤쪽의 산자드락으로 뻗어간 길을 따라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최고속도로 물도랑쯤은 허궁 날아넘을것처럼 내달리고있다. 분명 분과 초를 다투는 어떤 일이 있는것이라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리고 이것은》하고 군사정세보고를 끝마친 김하천대장이 어조를 달리하며 말씀드렸다. 《일본교도통신이 선정한 지난해 1997년 국제10대뉴스입니다.》

《가》형군용차는 드디여 등성이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먼 산봉우리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던 락조도 천천히 스러져갔다.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했다. 전등이 켜졌다. 그이께서는 비로소 탁자우의 통신에 피끗 눈길을 주시였다.

 

일본교도통신이 선정한 1997년도

국제10대뉴스

1. 리마에서 인질위기 종결.

2. 홍콩을 중국에 반환.

3. 다이아나공주 사망.

4. 아시아통화위기 발생.

5. 등소평 사망.

6. 엘리뇨현상과 기타 비정상적인 기후조건 발생.

7. 북조선의 김정일령도자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

8. 교또에서 유엔기후변화회의 진행.

9. 에짚트에서 대규모 테로공격사건 발생.

10. 국제반보병지뢰금지조약 체결.

 

지난해에 있은 세계적인 중대사변들을 1월부터 년말까지 순차적으로 집계한 뉴스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신자료를 한눈으로 얼핏 스쳐보시고는 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그러한 10대뉴스를 벌써 한두번만 보신것이 아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 신문과 통신들이 저저마끔 지난해의 10대뉴스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포함된 내용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사변을 고르는데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저마끔 나름으로 평가하긴 했지만 모두 약속이나 한것처럼 그이의 조선로동당 총비서 추대만은 일치하게 포함시켰던것이다. 그런즉 일본의 교도통신은 전혀 새로운것이 아닌셈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대장들과 박유창제1부부장을 차례로 둘러보시였다.

《방금 우리가 들어보았지만 오늘 입수된 군사정세자료만 놓고도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반동들이 우리에 대한 고립, 압살공세에 얼마나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는가를 잘 알수 있소.》

그이께서는 세계의 정치군사정세를 재빨리 상기해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기어이 우리를 질식시키고 족쇄를 채우겠다는것이요. 인제는 우리 공화국의 숨이 거의거의 꺼져간다고 보고 조금만 더 바싹 목조르기를 해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군사적공격으로 넘어가겠다는건데… 아니, 그건 우릴 모르고 하는 소리요. 아직도 우릴 잘못 보고있단말이요. 하긴 놈들은 언제나 우릴 잘못보군 했지.… 그럼 조성된 정세하에서 우리는 어떤 대응책을 강구해야겠는가?…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먼저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성원들에게 물으시자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힘주어 말씀드렸다.

모두가 젊은 나이에 조국보위초소에 나선 그날부터 오늘까지 혁명의 군복을 벗지 않고있는 그들이였다. 성격이 침착하고 정세를 꼼꼼히 추리하는 교육자형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하천대장과 같이 날카로운 눈빛과 구령을 치는데 습관된 쩡쩡한 목소리로 자기의 드팀없는 결단성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가슴이 툭 불거져나온 다부진 몸에 실천력이 강한 지휘성원도 있었다.

그들은 한사람같이 그리고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적들에 대한 적극적인 그리고 단호한 군사적대응책을 제의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그리시였다. 문득 고대그리스의 한 철학가의 일화를 상기하신것이였다.

어떤 사람이 철학가 탈레스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제일 어렵습니까?》

철학가는 대답했다.

《자기를 아는것.》

《어떤 일이 제일 쉽습니까?》

《남에게 의견을 제기하는것.》

남에게 의견을 제기하기는 힘들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결심한다는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선택이라고 하는것도 이때문일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천천히 한마디한마디 쪼아박듯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옳은 의견들을 말했소. 우리 군대를 세상에서 으뜸가는 무적의 강군으로 키우자면 무장장비를 더욱 현대화해야 하며 원쑤들이 감히 넘볼수 없게 국방력을 계속 강화해나가야 하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경제를 추켜세우고 국방공업에도 힘을 집중해야 하는바…》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그리고는 특징적인 손세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중요한것은 뭐니뭐니해도 성강에 불을 지피는것이요. 지금 적들은 성강의 마지막로에서까지 불이 꺼지면 그때엔 우리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있소. 말하자면 그때이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무너진다고 보고있단말이요. 그러므로 성강이야말로 우리의 경제건설의 관건적인 보루라고 할수 있소. 관건적인 보루!…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나 성강부터 불을 지피자는것이요. 이것은 내가 줄곧 생각해온 문제요. 경제를 추켜세우기 위해서도 그래, 국방공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도 그래 강철생산만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하오. 그러자면 다른 제철소, 제강소들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조성된 정세와 제반 조건으로 보아 무엇보다먼저 성강을 살려야 하오. 성강의 전기로들을 황황 살리고 거기서 쏟아져나오는 펄펄 끓는 쇠물을 새로운 대고조의 봉화로 높이 들자는것이 바로 나의 구상이고 결심이요!…》

모든 사람들이 격동된 심정으로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를 귀담아듣고있었다. 차츰 커지는 차바퀴소리가 그들의 가슴을 쿵쿵 울려주었다.

잠시 동안을 두고 생각에 잠겨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고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그런데 성강의 지배인, 책임비서가 다 새 사람들이거던.》

박유창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이께서 무슨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 알수 없어 의문어린 눈빛을 서로 주고받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