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제 1 장

2

 

허필웅은 오늘도 종일 마음이 언짢았다. 무엇인가 그를 괴롭히며 꼬집어대군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도 잘 알지 못했다. 한때 성강에서 제일 손탁이 센 일군으로 떠받들리우던 자기를 누군가가 손가락질해가며 남의 허물이나 까뒤집고 비웃어대는 속물이라고 수군거리는듯싶었다.

기관차를 몰고나왔을 때 화차를 끌던 사람들속에서 녀의사 홍지순을 보았다. 그 녀자가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기차방통을 끌어온 3년어간 뜻하지 않던 일로 심하게 상한 사람들도 있으므로 현장에 나오는 의사들은 의례 그곳을 무심히 지나가지 못하는것이다.

허필웅은 그 녀자를 소리쳐 불렀다.

《의사선생, 나 좀 봅시다.》

홍지순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무슨 일이세요?》

《여긴 어째 나왔소?》

《예?…》

《아, 여긴 전극초소의사들도 있는데 강철의무실에서 나왔으니 말이요.》

《저… 그건…》

허필웅은 그 녀자의 기여들어가는 목소리에 손을 홱 내저었다.

《그래 저녁은 잡샀소?》

《예, 먹었어요.》

《우리 집 사람이 강냉이랑 좀 구해놨다 하던데 래일 아침에 와서 가져가오.》

《됐어요. 저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그러다 혹시 뒤소리라두 들으시면…》

허필웅은 허거프게 웃었다.

홍지순은 개성에서 나서 자랐다고 한다. 함경도의 드살찬 녀인들은 자기를 헐뜯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앙칼진 말을 거침없이 쏘아붙이는것이 례사이련만 이 녀자는 그런 일에 맞다들면 낯색이 하얘져서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고말것이다.

《갑시다. 가면서 얘기합시다.》

시꺼먼 밤하늘에서는 모래알같은 싸락눈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봄의 줄기찬 행진에 물러서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는 겨울의 심술궂은 장난인듯 했다.

멀지 않은 바다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차디찬 밤대기를 파헤치며 쉼없이 울려왔다.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자기의 큰 보폭에 잦은 걸음으로 따라서는 홍지순을 눈여겨보며 허필웅은 가슴이 아릿해지는것을 느꼈다.

《요즘 몹시 상했구만. 몸을 잘 돌보오. 아직 젊었는데.》

《고마와요. 하지만 부지배인동진 더하셔요. 지금 무슨 병에 걸리신것처럼 핼쑥해지신거… 아세요?》

《…》

그는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이 조용하고 착실한 녀인이 바로 그가 페염에 걸려 위급할 때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었다. 몇해전인 12월의 어느날 가열로를 보수하는 전투장에서 물관이 터져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놓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물속에 빠진 대형전동기를 빨리 건지지 않으면 영영 못쓰게 될수 있었다. 순간도 지체함이 없이 기중기로 들어올려야겠는데 물속에 뛰여들기엔 너무도 사나운 강추위였다. 령하 20℃가 기록된 날이였었다.

그러나 그속에 서슴없이 뛰여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필웅이였다. 대형전동기를 포함한 공장의 모든 설비들이 그의 사업범위속에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대신할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금시 얼어붙고있는 물속에 세번씩이나 자맥질해 들어가 손더듬으로 기중기고리를 대형전동기에 걸고 나왔을 때 마침 현장에 달려온 이전 책임비서 주동호가 그의 젖은 몸에 모포를 씌우며 소리쳤었다.

《빨리 휴계실로!… 의사선생도 부르시오!》

그리하여 위생가방을 메고 달려온것이 홍지순이였다. 그때부터 무려 열흘낮 열흘밤 그 녀자는 심한 페염으로 신음하는 그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첫날 밤엔 주동호책임비서도 그의 머리맡에서 밤을 새웠다. 말은 없었으나 그들은 서로 맞잡은 손을 통하여 흘러가고 흘러오는 피의 뜨거움과 격하게 뛰는 심장의 맥동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배짱이 맞는 사나이들이였던것이다.

그때부터 허필웅은 책임비서와 허물없는 친구가 되였는데 다음해 뜻밖의 일이 생겼다. 어느날 한 보안원이 불량소년들과 밀려다니며 못된짓을 하는 허필웅의 아들을 불러다 호되게 달구고있었다. 아버지가 련합기업소 부지배인이므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고 단단히 혼뜨검을 내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번에 가열로같이 달아오른 허필웅은 사실여부도 알아보지 않고 그리로 달려가 무섭게 을러메며 자기의 아들을 집으로 끌어갔다. 그는 자기의 아들이 남보다 더 어질고 참하다고만 굳게 믿고있었던것이다.

이에 대하여 신소받은 전진욱(그때엔 도당조직부 책임지도원)이 급히 달려와 바로 책임비서와 마주앉아있는 그를 일쿼세우고 무섭게 달구어대였다.

그 누구한테도 굽어들지 않던 허필웅이였다. 하지만 그날엔 찍소리 한마디 내지 못했다. 전진욱의 말이 백번천번 옳다는것을, 자신이 법우에 올라타는 무엄한짓을 했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며칠후 허필웅의 아들은 여러 불량소년들과 같이 시보안서에 불리워갔고 보름나마 교양을 받았다.

그와 이러한 인연으로 얽혀있는 전진욱이다. 그런데 그가 불현듯 련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오리라고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그런데 그 전진욱은 오자바람으로 또 한차례 허필웅을 되게 짓조겨댔다. 오자바람으로 그는 여러 계획분 과제수행정형을 까보던 가운데 정무원에서 긴급과제로 떨군 수저가락생산을 미달하고있는것을 발견했던것이다.

사실 그것은 허필웅이 받은 과업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별로 중한 일로 여기지 않았었다. 그는 자잘한 수저가락들이 아니라 공장이 안고있는 대형설비들, 제일 작은것일지라도 기중기로 들어올려야만 하는 숱한 설비들을 안고있었던것이다. 하여 그는 그것을 유도로직장의 설비부직장장에게 떠넘기였는데 그 알량한 부직장장은 수첩에 적어놓기만 하고 감감 잊고있었다.

즉시 비상대책이 세워졌다. 알고보니 설명절전으로 그 수저가락들중 많은 몫을 중요대상건설장에 보내주게 되여있었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으니 온 공장이 그 일에 달라붙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체 종업원들에게 호소하여 불수강을 모아들이고 그것을 녹여 번쩍거리는 새 수저가락을 만드느라고 온 공장이 사흘낮 사흘밤 복닥소동을 피워야 했다.

결국 허필웅은 그만 온 동네가 두들겨패는 북신세가 되고말았다. 북잡이는 역시 새로 온 책임비서였다. 그래도 북통이 깨여지지 않은것은 허필웅이 그만큼 질긴 억척보두인때문이였다.

그때부터 허필웅은 노여움으로 타는 마음속에 불안의 불씨를 계속 묻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얼마전엔 송근우기사장과 마찰이 생겨 또 언짢은 일을 당하게 되였다.

전달에 있은 행정간부회의때였다. 동력직장의 건물확장공사를 벌리면서 설비를 앉히고 건물을 짓느냐, 건물을 짓고 설비를 앉히느냐 하는 문제로 론쟁이 심각했었다. 그때 허필웅은 설비부지배인으로서 무조건 건물을 먼저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사장은 시간과 속도를 빗대고 설비를 먼저 앉히자고 했다.

허필웅은 대번에 화끈 달아올랐다. 하여 올곧지 않은 성미그대로 거침없이 내쏘았다.

《이보시오, 기사장동무. 시간을 앞당기는건 중요하구 설비가 못쓰게 되는건 상관없다는거요? 속이 구리게 놀지 마우. 이번통에 제 낯내기를 하자는 그 속통을 내 몰라서?》

《내가 낯내기를 한다구?》

얄밉게도 송근우는 어떤 경우이든 자기의 랭랭한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 그때에도 그는 입술을 비쭉거리며 말했다.

《설비도 상하지 않구 시간도 앞당기면 더 좋지 않은가요?… 지배인동무생각은 어쩐지 좀 말해주시오.》

그러자 난처한 립장에 처한 김용삼은 허필웅에게 비난하는 눈빛을 던졌다.

《아 부지배인동무, 지내 흥분해서 그러지 마시오. 내 보기엔 기사장동무생각이 옳은것 같은데 그렇게 감정을 앞세우면서 빈정거리면 되겠습니까?》

허필웅은 되게 후려맞은듯 한 기분이였다. 분노라기보다는 아연해졌다. 지배인 김용삼이 기사장에 대한 고까운 생각을 숨기면서 내놓고 그를 추어주는것이다. 무엇때문에? 기사장이 자기를 눈아래로 좀 내려다볼사 한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아직 기술적으로나 생산실무적으로 그한테 뒤진다고 해서 자기를 낮추는것은 아닌가?… 이러한 생각이 그로 하여금 또 비틀린 소리를 하게 했다.

《흥, 가루팔러 가니 바람이 불구 소금팔러 가니 이슬비 온다더니… 넨장, 나도 모르겠소. 다 될대루 되라지.》

다음순간 그는 사업노트를 꽉 움켜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책임비서가 이 일을 그냥둘리 없었다. 지배인, 기사장을 무시하고 언행이 거칠고 오만방자하고 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조겨댔다. 결국 새 책임비서와는 끝까지 호흡이 맞지 않으리라는것이 분명해졌다.

허필웅의 생각에 자기들 두사람은 서로 다른 형의 사나이들이였다. 한편은 그 무엇이나 짓눌러버리는 대형프레스마냥 우람차고 거쿨진 반면에 다른 한편은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쾌남아이면서도 사업에 들어가서는 끈질기기로 유명한 사나이였다. 같은점이 있다면 둘다 류달리 승벽이 강한것인데 바로 그것때문에 더더욱 화합은 바랄수 없었다.

허필웅은 이렇게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 터벌터벌 걷고있었다. 오래 계속되는 침묵에 마음이 어수선해진 홍지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지배인동지, 무슨 일이 있으세요?》

《있소. 좀 시원치 않은 일이… 아무래도 난 여길 떠나가야 할가보우.》

《예, 떠나다니요?》

《글쎄 그럴만 한 일이 있소.》

홍지순의 걸음이 떠졌다. 가는 한숨소리와 함께 목소리도 작아졌다.

《부지배인동지, 어련하시겠지만… 일단 자기가 택한 길을 끝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 바꾼다는건 그닥 좋은 일이 아닌것 같이 생각되는데…》

《아,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는 사나이였다. 사내싸지 못한 사내따위는 상대도 않는 사나이,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하기에 그는 홍지순의 말이 옳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사람》 전진욱에게 마음속으로 격렬한 말들을 퍼붓고있었다.

그는 비록 자기가 거칠고 소란스러운 기질이지만 그것이 기사장의 친절과 겸손보다는 더 진실하고 더 유익하다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런데 책임비서인 당신은 송근우기사장만을 믿고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달콤한 말에 독이 있다는것은 이 세상의 흔한 리치이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로 자기의 생각을 정립하기 시작한 태고적부터 공인된 리치인것이다. 이걸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책임비서동무?!…

《부지배인동지.》 홍지순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의 팔소매를 끄당기였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녀자들은 많은것을 감각으로 안다.

불현듯 지순의 그 한마디 말이 차디찬 불신으로 응어리지던 그의 마음속에 한방울 따스한 눈물처럼 떨어져내리는것을 느꼈다. 그는 눈시울을 흠칫거리며 그 녀자를 눈여겨보았다.

그는 비록 거쿨진 사나이였지만 속에는 뜨거운 인정이 들어차있었다. 하기에 자기를 헌신적으로 치료해준 이 녀의사를 기회만 있으면 위해주려고 애썼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속이 언짢아 또 이렇게 물었다.

《의사선생, 거기서 보기엔 내가 어떤 사람이요?》

《예?!…》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순에게가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물은것인지도 모른다.

《막된 놈이지, 그건 틀림없어.》

《아이, 무슨 그런 말씀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만.》하고 허필웅은 갑자기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차를 가져오라구 운전사한테 말을 못했구만.》

지순은 잠자코 있었다.

허필웅이 또 중얼거렸다.

《강괴겁시험을 한다고 기사장동무가 하나강철로 꼭 와달라구 했는데…》

《?…》

《그 사람이 난 왜 불렀을가? 내가 저를 제일 싫어한다는걸 잘 알면서도… 모를 일이야.》

허필웅은 비로소 자기들이 송령천을 가로지른 다리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낮교대를 마친 사람들이 둘 또는 셋씩 다리를 건느고있었다. 어느새 하늘에서 쥐여뿌리던 싸락눈도 그만 동이 났는지 그치고말았다. 찬바람만이 다리밑의 시꺼먼 구석쪽에서 쓰레기들을 날리며 극성을 부리고있었다. 한순간 두사람은 오스스한 느낌에 마치 약속이나 한듯 몸을 떨었다.

봄이 다가올수록 추위는 더 참기 어려운 법이다.

멀리 1조강직장쪽에서 새여나온 가열로불빛이 한줄기 따스한 빛으로 밤하늘을 언듯언듯 비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