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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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추위가 시작되던 12월의 어느날 성진제강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로 부임된 전진욱은 밤이 깊도록 공장구내철길을 따라 걷고있었다. 발밑에서는 먼지오른 시꺼먼 눈더미가 버석거렸다. 날씨는 맵짰다. 밤하늘을 떠이고있는 산마루에서부터 삭풍이 불어치며 숨죽은 공장구내를 회오리처럼 휩쓸다가는 바다쪽으로 빠지군 했다.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도당책임비서가 하던 말이 귀전에 쟁쟁하였다.

《여보, 책임비서. 꽤 해낼수 있겠소?》

도당에서부터 공장까지 차를 같이 타고올 때엔 그런 말이 없었는데 공장사람들에게 새로 온 책임비서를 소개하고 돌아가기에 앞서 찬바람만 휩쓰는 구내를 빙 둘러보고는 으시시 몸을 떨면서 그렇게 물었던것이다.

《좀 말해보오. 응? 꽤 해낼것 같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할수 있으랴. 그러나 도당책임비서는, 거의나 아버지벌 되는 사람인 그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마도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전진욱은 공업대학(공장대학) 교원이나 의사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창나이때 대학동창생들은 틀림없이 그가 어느 산골중학교 물리교원으로 배치될것이고 머리에 서리가 불릴즈음엔 꼭 공훈교원이 될거라고 롱삼아 예언하군 했다. 하여 그는 동창생처녀들에게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말한 일도 있었다.

《어째 나한테 사랑의 쪽지편질 보내는 처녀는 하나도 없소? 아하- 내가 어느 중학교 물리교원으로 배치될거라구 하니까 탐탁치 않아보이는 모양인데 이제 두고보라구요. 인차 교장선생이 되지 않나.》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유쾌한 익살군, 쾌남아로 유명한 전진욱이였다. 그러나 중임을 떠안고 공장을 돌아보려니 매운 연기를 마신것처럼 숨이 막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도당책임비서도 그의 유연해보이는 어깨에 숨죽은 공장을 떠맡기고 가려니 속이 편치 않았을것이다.

《왜 말이 없소?》

《뭐 말할거나 있습니까.》

《어쨌든 해내겠지?》

《해내야지요.》

《그럼 잘 있소.》

《안녕히 가십시요.》

그리고는 마음이 무거워 구내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운전사가 차를 몰고 따라왔으나 손짓으로 돌아가라 하고는 정처없이 걸음을 옮겼다.

너무도 생소해진 공장이였다. 한때 도당에서 일하던 시기에 그는 이 공장을 맡아본적이 있었다. 그후 김책제철련합기업소로 조동되면서 걸음이 끊어졌는데 그 몇해가 바로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생소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공장의 자랑이던 1강철직장의 전기로들까지 숨을 죽이고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쓰려나고 눈시울이 때끔거렸다. 혹독한 추위때문일수도 있다. 세찬 칼바람이 공장구내를 뒤덮고있는 탄가루며 석회석, 슬라크가루를 회오리처럼 말아올려 검은 눈보라로 뿌려치군 했다.

한순간 그는 걸음을 멈추고 굳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후에 알아보니 60여명이였다.) 철길우에서 한덩어리가 되여 바줄을 끌고있는것이였다. 구령도 어기영소리도 없다. 불똥을 뚝뚝 떨구는 홰불이 앞뒤에서 철길을 비쳐줄뿐 모두 얼어든 몸을 가까스로 움직이고있었다.

홰불에 비쳐진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그을음과 석탄먼지에 얼룩진데다가 피기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회초리처럼 후려치는 찬바람을 막으려는듯 목을 잔뜩 움츠린 사람들이 해여진 솜신발로 얼어붙은 철길바닥을 허비며 헐금씨금 용을 쓰고있었다.

그는 마치 자석에 끌린듯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이걸 왜 사람이 끕니까?》

대답이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고 말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였다. 가쁜숨을 헐떡거리며 서로 의지하고 말없는 구령속에 하나같이 호흡을 맞추며 필사의 힘을 다 짜내고있었다. 그들이 죽기내기로 용을 쓰고있다는것을 그는 조금후에야 알게 되였다.

《어디까지 끌구 갑니까?》

그의 물음에 누군가 짜증기어린 소리를 거칠게 내뱉았다.

《넨장, 보구두 모르오?》

《?》

어떤 이름할수 없는 창피감과 함께 서글픔도 느껴졌다. 바로 그때 앞에서 홰불을 비쳐주던 사람이 다가왔다. 솜옷모자를 눈우에까지 눌러썼는데 몹시 여윈 소년같아보였다. 그 애가 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건 석회석을 실은 방통입니다.》

소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가 묻는 말에 짜증을 부린데 대한 사죄의 의미로 우정 말해주려고 온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애와 더 말을 주고받을수 없었다. 앞에서 거쉰 목소리가 날아온것이였다.

《넌 게서 뭘하니?》

그 거쉰 목소리의 임자도 홰불을 들었는데 작업을 지휘하는 늙은이같았다. 그가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밑을 잘 보라구. 철다릴세.》

후에 안 일이지만 구내철길은 연 수십km나 되였다. 가로세로 얼기설기 뻗어간 그 철길은 수많은 강과 홈타기, 도로와 습지를 지나는데 눈으로는 잘 알리지 않는 올리막과 내리막도 있어 자칫하다가는 추락사고가 나거나 내리막에서 제동을 걸지 못해 바줄을 끌던 사람들이 차바퀴밑에 깔리는 끔찍한 일이 생길수도 있었다. 사실 그런 위험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전진욱은 그들사이에 끼우려 했다. 그러자 누군가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물었다.

《거긴 뉘기요?》

순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그는 자기를 숨기고싶지 않았다.

《제 새로 온 책임비섭니다. 방금 왔습니다.》

《?

헉- 헉 하던 거친 숨결의 파도가 멎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허리를 펴고 그 자리에 굳어졌던것이다. 본의아니게 책임비서를 모욕적으로 대하고 노엽혔다는 생각에 얼어붙어버린것 같았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 앞에서 홰불을 쳐들고있던 늙은이의 거쉰 목소리가 또 날아왔다.

《이건 뭐야. 아지미무릎에 올라앉았나? 어째 다들 얼이 빠진것처럼 멍청해서 그래?

그가 옳았다. 화차가 멎어서면 다시 출발하는데 몇갑절 더 진땀을 뽑아야 하는것만큼 책임비서가 왔다고 해서 수인사를 하느라고 지체할수는 없는것이다. 하여 사람들은 일시에 입김을 내불며 다시 바줄을 잡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전진욱은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들어설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들대로 새로 온 책임비서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한번 중떠보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을것이다. 이럴 때 굳이 만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능먹은 아첨쟁이이거나 심보고약한 사람일수도 있다.

전진욱은 그들속에 끼워 기차방통을 끌면서 이렇게 물동량을 끌어들이고 내가기를 벌써 3년나마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디젤유도 없고 석탄도 없어 기관차들이 멎어섰다는것이다.

그는 별안간 심장이 맹렬히 뛰고 숨이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것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성강의 모습》이라고 자랑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성강이 달라!》하고 감탄하며 신문에 내자고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라면 또 몰라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성강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 할수 있는 성강에서 인력으로 기차방통을 끌게 할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나라사정을 구실로 무턱대고 《결사전》을 부르짖으며 머리를 짜고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도 무리하게 사람들을 동원하여 인해전술을 벌리군 한다. 그리고는 결사관철의 의지가 있는 손탁이 센 일군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실리는 없이 혹사만이 있는 일판, 개별적일군들의 몸값이나 올리는 그런 일판이 과연 어디에 필요하단말인가? 여기서도 그렇다. 물동을 실은 기차방통을 사람의 힘으로 끌어서야 과연 몇차지의 강철을 뽑을수 있겠는가?!자랑은커녕 커다란 수치가 아닐수 없다.

기차방통을 2원료직장안에까지 끌어갔다. 나중엔 온몸이 얼고 맥이 빠져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또 그것을 밤새워 부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턱없이 많은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것이다.

샐녘이 되니 전기가 왔다. 전진욱은 비로소 아까 자기를 우정 찾아와 말을 걸어준 사람이 나어린 소년이 아니라 애젊은 녀자임을 알아보았다. 동실한 턱과 눈언저리에 시꺼먼 손자리가 났어도 가무스레한 얼굴에 두눈이 곱게 웃는 아련한 처녀였다.

《책임비서동지,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목소리는 더 고왔다.

《처년 여기서 무슨 일을 하나?》

처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외로 돌렸다. 그를 대신하여 아까 물풍스럽게 짜증을 부리던 사람이 역시 퉁명스럽게 말했다.

《체네라니요. 애까지 달린 안깐이요.》

《안깐》이란 함북도사람들이 녀인들을 홀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아마 《안칸》에 있는 사람이란 뜻에서 생겨난 말일것이다.

전진욱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 그렇소?이거 참 안됐구만.》

녀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책임비서동지. 오히려 전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맙다는것일가? 녀인은 인사하고 물러갔다. 알고보니 그 녀인의 이름은 서옥영이였다. 데리고있는 딸은 벌써 세돌이 되여온다고 한다. 홀로 사는 녀자의 몸으로 남들처럼 시장에 나앉은것이 아니라 집에서 제일 거리가 먼 《ㅈ철》공장에 다니는데 가끔 방통을 끄는 일까지 도와나선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전진욱은 서옥영이라는 그 이름을 기억에 새겨두었다.

그때 송근우기사장이 차를 타고 달려왔다.

《아 책임비서동무, 이제야 겨우 찾았군요.》 그는 다짜고짜 전진욱을 잡아끌었다. 《중앙당에서 전화가 왔수다. 과장동지라는군요.》

《과장?》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알고보니 오래전부터 인연이 깊은 과장이였다. 이제 금방 40고개에 올라선 젋은 나이였지만 전개력있는 일군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는 전진욱에게 부임 첫날의 인상에 대하여 자세히 묻고나서 맡은 일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

 

다음날 지배인방에서 간부들의 협의회가 있었다. 어려운 식량문제를 풀기 위한 대책과 기관차를 살릴데 대한 문제였다.

식량문제를 풀기 위해 이전에 합금철을 생산하다가 품위가 낮아 줴버렸던 월프람정광을 녹여 탕그스텐철을 생산하여 팔데 대한 론의가 벌어졌다. 초보적인 타산에 의하더라도 전체 종업원들의 7개월분 식량을 해결할수 있는 전망이 확고히 내다보였다.

사람들은 흥분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지금껏 그 생각을 왜 미처 못했던가? 기관차문제도 힘들지 않을것 같았다.

김용삼지배인은 말했다.

《인력으로 기차방통을 끈건 전적으로 저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난 지배인이 된 때로부터 근 1년간 밖에만 나가 살았지요. 기사장한테 다 맡기고. 상사동무들을 데리고 원료, 자재를 구해들이러 동서남북 다 돌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말입니다.

그는 토론되는 문제와는 판다른 이야기를 늘어놓고있는듯 했다. 송근우기사장이 따분해하며 《좀 보시오, 책임비서동무.》라는 의미의 눈빛을 전진욱에게 던졌다. 그러나 전진욱은 흥미있게 그리고 매우 주의깊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김용삼은 학생시절부터 김책시일판에서 축구선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군대에 나가서는 아예 축구와 인연을 끊고있다가 제대되여 돌아와서야 뽈도 차며 공업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강파로운 주걱턱을 가진 그는 일단 목표를 정하기만 하면 축구장의 우측공격수인 자기의 특기를 살려 곧추 날카로운 돌입을 들이댄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련합기업소지배인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그로 하여금 1년간 업무사업만 하게 하였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말입니다.》하고 그는 계속했다. 《밑에서만 일하다가 갑자기 지배인책상에 앉으니 뭐가 걸려도 어데다 전활해야 하겠는지 알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사실 책임비서동무도 그렇구 우리야 제일 어려운 때 무거운 임무를 떠맡지 않았습니까. 곤난하던 사정은 더 말하지 맙시다. 책임비서동문 그래도 김책공대 졸업생이구 도당에서도 일해봤지요? 내야 전적이 있습니까, 학력이 있습니까.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구 닥치는대로 쳐들어갔지요. 정무원이건 부이건 그저 무작정 밀고들어가구 뚫고들어가구 에-에- 쌈질도 수태 해봤지요. 그러지 않구 점잔만 빼서야 누가 거들떠나 봅니까. 그렇게 하니까 차차 중앙기관, 도급기관, 큰 공장, 기업소 간부들을 하나하나 익히구 곬을 타고 들어가는 법도 배우게 됩디다. 자신심도 생기구요. 에- 말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내가 하자는 말은 딴게 아니구 방도를 찾구 곬을 타자는겁니다. 그러면 못해낼게 없지요.》

지배인의 성격과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였다. 그는 새로 온 책임비서에게 이런 식으로 그간의 자기 사업에 대해서도 보고한셈이였다.

전진욱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자 지배인은 소리없이 씩 웃었는데 그것은 책임비서가 자기의 동닿지 않는 긴 설명을 끝까지 들어주고 리해해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는 의미같았다.

허나 기사장 송근우는 무엇이 언짢은지 줄곧 이마살을 찌프리고있었다. 지배인의 말이 끝나자 그는 직방 이렇게 말했다.

《책임비서동무, 기관차가 뛰지 못하는건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석탄이 없기때문입니다.》

《디젤유도 없구요.》

전진욱이 받아주었다.

《예, 없지요. 련관부문이 다 멎어섰으니 할수 없지 않습니까.》

기사장 송근우는 전진욱이 제일 믿고있는 사람이다. 도당에서 부부장으로 일할 때부터 그는 전진욱이 관심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군 했었다. 나이가 지긋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진욱은 그의 말을 기술실무일군다운 솔직한 대답이라고 좋게 받아들이며 가볍게 질문했다.

《여기서 60리만 가면 우리 련합기업소 산하인 일신탄광이 있지 않습니까.》

《아, 일신탄광!》하고 기사장은 너그럽게 미소했다. 《거기서 나오는 탄은 기관차가 먹지 못합니다. 기관차는 5천 5백~6천J의 탄을 요구하는데 일신탄광에서 나오는건 그 절반밖에 되지 않지요.》

《아, 그래요?》하고 전진욱은 롱으로 받았다. 《기관차도 장수하고싶어 흰쌀밥만 먹겠다는건데 사람들이 칡뿌리를 캐먹을 땐 저도 좀 강낭밥이나 조밥을 잡숴보라구 하면 안될가요?》

여러 사람이 웃어대였다. 사람들은 기지있는 유모아를 좋아한다. 설비부지배인 허필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핫하- 기사장동무도 꼴먹을 때가 있구만, 예?!》

송근우기사장은 그쪽에 대고 눈을 흘기면서도 말은 한마디도 못했다. 그를 대신하여 전진욱이 허필웅에게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기관차가 뛰지 못하는건 설비부지배인동무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거야 물론이지요.》 허필웅이 쏘파등받이에 어깨를 잔뜩 기대며 능글맞게 대꾸했다.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그리고는 무엇때문인지 기사장에게 또 머리를 돌리고 묵직하게 말하였다.

《기사장동무, 기사장동문 자기가 없으면 이 공장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말하군 하는데 왜 지금껏 기관차 한대 살리지 못했소?》

명백한 도발이였다. 하지만 기사장 송근우에게는 또 그대로 자기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흥분으로 달아오르지 않는 침착성, 달리 말하면 랭담한 침착성이였다.

《설비부지배인자릴 내놓고 그 책임까지 다 내게 떠넘기시오. 그런 다음 말해봅시다.》

협의회가 비뚤어지고있었다. 이럴 때엔 지배인이 엄하게 막을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직 자기가 그렇게 나설수 없는 처지라고 보는듯 했다.

사실 지배인은 이 자리에서 제일 젊은축이다. 다른 사람들로 말하면 오래전부터 김용삼을 지도해왔고 때로는 무대우에 올려세우고 홍달구던 사람들이다. 특히 기사장 송근우는 지금도 지배인을 좀 눈아래로 볼사 하는 빛을 숨기지 않고있다. 그것이 지배인의 분기를 돋구군 했지만 아직 소리가 난적은 없다고 한다. 지배인 김용삼이 공격수라면 기사장 송근우는 능란한 방어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필코 언젠가는 치렬한 공방전을 벌려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같았다.

《기사장동무, 구내철길이 모두 몇km나 됩니까?》

《50km가 넘습니다.》

《예. 그럼 기관차는 몇대 있습니까?》

《내연기관차 한대하구 중기관차가

설비부지배인 허필웅이 대신해주었다.

《내연기관차까지 해서 모두 여라문대 되지요.》

《몇대만 살리면 물동량을 다 실어나를수 있습니까?》

《글쎄

기사장은 고개를 기우뚱했으나 허필웅은 자신있게 말했다.

《지금 형편에선 5대면 됩니다, 책임비서동무.》

《그럼 석탄이 많이 드는것도 아니군요. 기관차 한대가 하루 6t 먹는다니까 다 합해서 30t입니다. 하루 30t!》

사람들은 책임비서가 밤새 많은것을 료해하고 생각했다는것을 깨닫고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기사장동무.》 전진욱이 계속했다. 《어떻습니까. 하루 30t이면 별로 많지도 않은데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기사장은 아까처럼 전진욱에게 년장자다운 너그러운 미소를 보냈다.

《그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책임비서동무.》

《예?

《이제 가보면 알겠지만 일신탄광은 지금 페갱된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몇해전부터 물에 잠겨있는데다가 식량사정때문에 탄부들이 뿔뿔이 흩어져갔습니다. 하루 30t은 고사하고 3t도 캐지 못합니다. 그건 내가 잘 압니다.》

전진욱은 여기로 임명되여올 때 기사장과의 사업을 첫자리에 놓고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모든 일군들이 실력을 높여 실리가 나게 일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에 비추어 그 누구보다먼저 기술일군들과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고 보았던것이다. 그 자신도 송근우기사장과 같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졸업생이지만 기사장에게는 《실천과 경험》이라는 무시할수 없는 자격증이 하나 더 있다는것을 그는 중시하고있었다.

《기사장동무가 안된다면 다 안되오?》

허필웅의 질문이였다. 로골적인 도전이였으나 기사장은 그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허필웅이 장골형의 크고 단단한 체격에 입심 또한 여간 사납지 않기때문일것이다.

허필웅은 무서운게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두눈이 부리부리하고 호방한 성격에 실무에도 밝았다. 인생의 황혼기인 50대중반이건만 아직도 뭇녀성들의 눈길을 모으고있는 사람, 일을 제낄 때엔 불과 물속에도 서슴지 않고 뛰여드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있다.

바로 그러한 기질이 이전 책임비서 주동호의 눈에 들어 그의 《알쌈》이 되였다는 말도 있다. 바로 그 허필웅을 전진욱은 도당에 있을 때 모질게 비판했었다. 그것도 이전 책임비서의 면전에서 무자비하게 때린 일이 있다. 그러한 사정이 있어 허필웅은 전진욱이 책임비서로 임명되여오자 심사가 매우 편치 않아 하는 기색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한텐 조금도 꺼리낌없이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고있다.

무익한 론쟁을 계속할수는 없었다. 하여 전진욱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기관차를 살리는 문젠 제가 맡는게 어떻습니까?》

송근우기사장이 무던히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책임비서동무가 그런 일까지야 어떻게

즉시 반응한것은 지배인이였다.

《책임비서동무가 맡는다면 난 마음놓겠습니다.》

《아 지배인동무, 그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송근우는 눈살을 찌프렸다. 《아무려면 새로 온 책임비서한테

전진욱이 제때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무얼 할가요. 사람들이 바줄로 기차방통을 끌고있는데 난 사무실에 앉아서 간부들의 리력문건이나 뒤져보라는겁니까, 아니면 사무실에 틀고앉아 한사람씩 불러대며 담화를 할가요?》

허필웅이 눈웃음치며 기사장을 넘보았다.

《술잔은 찧을 때마다 소리가 나고 사람은 마주칠 때마다 정이 붙는다오.》

《에- 나도 모르겠수다.》하고 송근우는 팔을 내저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알구 시작하시오, 책임비서동무.》

그날 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모자랐다.

그때부터 전진욱은 식량문제와 기관차문제를 안고 올리뛰고 내리굴고 하며 눈코뜰새없이 돌아갔다. 속이 타는 일도 많았지만 어쨌든 두석달분 식량은 끌어들이게 되였다.

한편 기관차를 뛰게 하려고 탄광에 가서 동원사업을 하니 광차만 만들어주면 하루 100t이상 보장하겠다고 했다. 많은 광차를 만들어 보내주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였다.

기관사들도 불러일으켰다. 하루에 한번만 재를 털어도 되던 일을 저열탄이여서 일곱번, 여덟번도 더 털어야겠지만 그들은 머리를 흔들지 않았다.

《그런 탄이라두 먹어봅시다.》

《어떻게든 기차가 뛔야지요. 사람들이 맨손으로 기차를 끌 때마다 정말 속에 재가 앉는것 같수다.》

한편 운수과의 늙수그레한 김양묵과장은 저열탄을 잘 연소시키기 위한 연구사업을 맡고 여러가지 토법창안을 내놓았다. 석탄을 바다물로 이기고 마른 풀을 섞어서 땐다는것이다.

사람들이 혀를 찼다.

《원 세상에! 거 김양묵이란 령감 넉살두 좋다. 거 제발 그 령감더러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릴랑 그만두라구 하라구요.》

그래도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허필웅이 나서서 자기가 김양묵의 《도깨비탄》을 때면서 기차를 움직여보겠다고 했다.

 

×

 

전진욱이 부임되여 3개월이 지났다. 한밤중 전진욱은 송근우기사장과 같이 강괴겁문제를 토론하다가 기적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저도모르게 2원료장으로 뻗은 철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석달전 자기가 처음 사람들속에 끼워 기차방통을 끌고가던 바로 그 길이다.

갑자기 증기발을 내뿜는 칙칙 소리와 레루를 울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허필웅이 《도깨비탄》으로 방금 살려낸 기관차를 몰고오는것이다. 전조등을 환히 켜고 레루이음잠을 쿵쿵 울리고있다.

꽥!- 기적소리를 울린다. 비록 찢어지는듯 한 소리이긴 해도 그 거센 기세가 마음에 든다.

기관실에서 상체를 밖으로 내밀고있는 허필웅의 모습이 알린다. 전진욱은 철길옆으로 물러났다. 꽥!- 다시 울리는 기적소리, 마침 저쪽에서 사람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화차를 끌고오다가 멎어서는것이 보였다. 허필웅이 뭐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은 모두 바줄을 내던지고 한옆으로 나섰다.

기세높이 칙칙거리던 기관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화차앞에서 멎었다. 허필웅이 기관실에서 내려 뭐라고 지시한다. 그러지 않아도 벌써 차대가리가 화차를 물게 련결고리를 걸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차를 문 기관차가 칙- 칙 거세게 증기발을 내뿜으며 뒤걸음쳐왔다. 화차를 끌던 사람들은 철길량옆에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보고있다. 극도로 지쳐버린 사람들이여서 기쁨의 환성도 없다. 그저 멀거니 바라보기만 한다.

전진욱은 자기 역시 마음이 허해지는것을 느꼈다. 기관차를 살린것이 너무도 응당한 일이고 따라서 지난날의 고역이 허무하게 여겨진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후 그는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다시 1강철직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 그곳에서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받던 선철이 떨어져 강괴겁을 만들지 못하는 엄중한 실태와 관련하여 선철대신 강철로 주강케스(강괴겁)를 만들고 그것을 시험해보는 일이 벌어지고있는것이다. 그 강괴겁이 없으면 전기로에서 강철을 아무리 끓여야 소용이 없다. 밥은 손으로 떠먹을수 있어도 강철은 아무 그릇에나 받아먹지 못한다. 대번에 녹여버리든가 아니면 같이 녹아붙든가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불은 불로 끄라는 역설적인 말도 있듯이 강철겁으로 강철을 받아먹자는 아주 《무모한》, 《모험》적인 안을 내놓고 지금 그것을 시험하고있다.

그런데 무엇인가 그의 주의를 끄는것이 있었다. 철길에 남은 두사람, 허우대가 큰 허필웅과 어떤 녀인이 마주서있는데 마치 다투는듯 했다. 허필웅의 거쉰 음성이 가끔 바람에 실려왔다.

어째 왔소? 뭐라구? 오- 그래?

저 녀인은 《강철의무실》의 녀의사가 아닌가? 지금 공장에는 《강철의무실》을 중심으로 전극초소, 조강초소 등에서 10여명의 남녀의사들이 상시적으로 근무하고있는데 그들중 남달리 조용하고 친절한 녀의사 홍지순이 분명했다.

전진욱은 머리를 저었다. 아무리 거쿨진 사나이라 할지라도 조용하고 착실한 녀인과 다툴리는 없는것이다. 오히려 억세고 호방한 사나이일수록 녀자들에게는 더 친절한 법이다.

전진욱은 몸을 돌려 바삐 걷기 시작했다. 마침 라범도가(그의 운전사 이름이다.) 차를 몰고 바람같이 달려오는것이였다.

《아, 홍범도!》하고 전진욱은 차가 멎기 바쁘게 자기의 운전사를 옛 의병대장의 이름으로 소리쳐 불렀다. 《정말 때마침 잘왔소. 빨리 하나강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