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머리이야기

 

첫 머리이야기

 

1993년 3월 15일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서 한밤을 보내고 계시였다. 총참모장 최광과 작전국장을 비롯한 여러 장령들이 그이의 맞은편에 꼿꼿한 자세로 서있었다.

전쟁이 터질 시각이 박두해오고있었다. 우리의 있지도 않는 핵문제를 구실로 적들이 모험적으로 벌려놓은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이 절정단계에 이르렀던것이다. 지금 적들의 모든 공격무력이 군사분계선일대에 집결되여있다. 1, 000여대의 비행기, 250여척의 함선집단, 거기에 전술적핵무기를 실은 미해군기동분함대까지 증파되였다. 그 모든것들이 대형작전도에 갖가지 부호들과 수자들, 화살표들로 표시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변화된 적정을 료해하시며 작전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괌도는 어떻소?》

《최고사령관동지!》 작전국장이 기다리고있은듯 재빨리 말씀드렸다. 《어제 다섯번째로 〈F117-A〉스텔스전투폭격기 3개 편대가 기습공격연습을 위해 출동하였습니다. 비행시간은 3시간 24분···》

숨도 쉬지 않고 보고드리던 작전국장은 그이께서 머리를 끄덕이시자 돌연 입을 다물고 미처 쏟지 못한 흥분을 마른 침처럼 꿀꺽 삼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금 작전국장이 말한 그 스텔스전투폭격기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괌도에서 날아올라 3시간 24분이라는 긴 시간 비행을 계속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 그 스텔스전투폭격기들은 우리의 녕변지구를 선제타격할 특수임무를 받고 괌도의 앤더슨비행장에서 벌써 며칠째 리륙하고있다. 리륙하여서는 북상하여 곧추 군사분계선 대밑까지 날아들다가는 급기야 기수를 돌리군 한다.

이제 그것들이 분계선상공을 넘어 녕변지구에 미싸일을 발사하는 순간이면 전쟁이 터진다. 그것도 일찌기 인류가 체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처절한 현대전이, 생사결단의 판가리격전이 터지게 될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우에 두 팔을 겯고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다섯번째로 날아올랐단 말이지. 다섯번째라···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우리에 대한 위협공갈인가 아니면 실제로 선제타격의 효률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반복하는것인가?···》

그이께서 최광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옮기시자 고통스럽게 입귀를 실룩거리고있던 그는 천천히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제 생각엔···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 놀래워보려는 시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근거는 무엇입니까?》

《근거는···》 여전히 최광은 서둘지 않고 또박또박 찍어가듯 했다. 《기습공격이란 은밀히, 불의에 진행하는것인데 지금 놈들은 다섯번이나 그것을 반복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옳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적들은 우리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지 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벼락성명을 내쏘는 바람에 기절초풍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우리의 기를 꺾어보려고 미쳐날뛰지만··· 안될것입니다. 우리가 놈들의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맞선다는것을, 타격의 선택권은 우리에게도 있다는것을 보여줍시다. 오만한 적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자, 그럼···》

김정일동지께서는 재빨리 몸을 돌려 대형작전도앞으로 다가서시였다. 단숨에 적아쌍방의 무력배치상태와 기동로정을 쭉 훑고나서 힘주어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의 타격이 얼마나 위력하며 무자비한것인가를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먼저 전선서부에서 타격집단의 기동작전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기동작전의 초기임무와 최종임무에 대하여 먼저 밝혀주시였다.

한순간 번개의 섬광이 사람들의 눈을 때린듯 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 그들자신이 준비해온 기동작전이였지만 그이께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작전방향을 밝혀주셨던것이다.

최광은 저도모르게 안경을 벗어들었는데 두두룩한 앞가슴이 벅찬 흥분으로 오르내리고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경련이 인듯 두 눈을 슴벅거렸다. 누군가는 숨결이 가빠난듯 신음소리처럼 흐느끼였다. 저력있게 울리는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불길처럼 뿜어나는듯 싶었다. 무심한 통신기재들까지 록색불빛을 파르르 떨며 무엇인가를 웨쳐댔다.

통신기재들곁에 서있던 장령이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이께 보고자료를 올린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재빨리 보고자료를 훑어보시였다. 한순간 그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수밖에, 음ㅡ 자, 보시오. 끝내 그들이 굽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에 모여졌다. 흥분과 긴장으로 팽팽해졌던 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여났다. 총참모장 최광이 먼저 안경을 또 벗어들었다. 입김을 불며 손수건을 꺼낼념도 잊고 팔소매로 문지르는데 잔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소리없는 웃음으로 번져졌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놈들이 궁지에 빠져서, 우리가 무서워서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게 아닙니까?》

《예, 옳습니다.》 누군가 웨치듯 했다 .《우리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저 미소를 그리고 계실뿐이였다. 그러자 그 어떤 경우에도 흥분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작전국장이 끼여들었다.

《놈들이 이렇게 하는것은 우릴 좀 진정시켜보려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다시금 보고자료를 여겨보시였다.

그것은 남조선당국이 판문점련락사무소를 통해 보내온 전화통지문내용이였다.

 

《···오늘, 3월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있은 비상국무회의결정을 귀측에 알려드립니다.

래일, 16일중으로 리인모문제와 관련한 남북련락원들의 접촉을 가지고 합의되는데 따라 아무런 부대조건없이 리인모를 돌려보내려 하오니 귀측에서 상응한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쯤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리인모!··· 그이께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불러주신 불굴의 투사 리인모가 돌아오게 된다. 한생의 거의 전부를 철창속에서 온갖 악형을 당하면서도 변함없이 신념과 의리를 지켜온 영웅전사ㅡ 그가 처음 알려진것은 34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1988년 10월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나와 경기도 양주군의 한 양로원에 있으면서 자기의 한생에 대한 수기를 써서 잡지 《말》에 1989년 말부터 다음해 초까지 네번에 걸쳐 발표한 그때부터였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수기를 적구에서 당중앙에 보내온 전사의 보고로 접하시였다. 하여 불굴의 영웅전사를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인도주의적문제로, 전쟁포로송환문제로 제기하게 하시고 우리 적십자회가 리인모의 부인과 딸로 하여금 국제적십자사와 국제법률가협회, 유엔인권위원회와 같은 인도주의단체, 민주단체들에 편지를 보내여 세계적인 여론을 광범히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도록 이끄시였다.

제5차 북남고위급회담때부터는 리인모를 데려오는 문제를 긴급의제로 제기하고 그후 여러 갈래의 회담들에서 중요의제로 내놓고 강력히 다불러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남측은 지난해 9월 제8차 평양회담때 《수석대표》의 이름으로 《리인모의 송환문제》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는 곧 류산되였다. 《안기부》가 《총리》의 약속마저 차버리고 빗장을 질러놓았던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고있는 이때 사회주의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전향을 거부한 리인모를 돌려보내면 북의 승리로 되고 사회주의리념의 승리로 된다》는것, 《김일성주석의 삼촌 김형권의 조선혁명군무장소조의 파발리습격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생존해있는 증견자이므로 북을 돕는 리적행위》로 된다는것 그리고 《앞으로 북에서 제2, 제3의 리인모를 계속 내라고 할것이므로 그 단련에 녹아날수 있다》는것, 때문에 아예 그런 전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완강히 뻗대였다. 그리하여 남조선당국은 리인모를 절대 돌려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른바 《정책결정》까지 내렸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인모를 데려오기 위한 사업을 잠시도 중단함이 없이 적극 내밀도록 하시였다. 일단 결심하신 문제는 끝장을 보고야마는 그이이시였다.

또다시 유엔에도 제소하고 세계각국의 법률가단체들, 인권단체들과 남조선의 여러 민주단체들에도 호소하면서 드센 공세로 남측을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전쟁의 시한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처한 우리의 준전시상태선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결정이 미국과 그 추종세력을 향해 포화처럼, 벽력처럼 터져갔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남조선당국은 매일 김영삼의 방에 모여 《안보관계장관회의》며 《통일관계장관전략회의》를 벌리고 《대응책》을 협의하면서 《더 이상 북을 자극해선 안된다》, 《핵특별사찰문제도 민족내부문제로서 남북사이에 풀수 있다고 본다》, 《리인모를 정치적부대조건없이 넘겨주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다.》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3월 12일 드디여 남조선당국은 《리인모로인의 방북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라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여왔다.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여기 엄숙한 정적이 깃든 최고사령부작전실에서 그것을 보고 받으시였다. 리인모의 귀환을 위해 그처럼 마음 써오신 그이이시였으므로 일군들은 무등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화통지문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단호히 언명하시였다.

《그럴수 없소. 〈방북〉이라니,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다 바쳤는데 자기 조국, 자기 집을 방문하게 한단 말인가?··· 안되오. 되게 다불러대시오. 되게!···》

또다시 남측은 불에 덴듯 했다.

다음날 3월 13일 《통일원차관》이 나섰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방북기간을 3년까지 할수 있으나 본인이 요구하면 더 줄수도 있다.》고 아양을 떨었다.

3월 14일엔 《통일원대변인》이 나서서 《리인모에게는 방북기간을 정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의연 《방북》이라는 말로 오그랑수를 쓰고있는 조건에서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였다.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나라의 전체 무장력이 진지를 차지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었다. 모든 전파탐지기들이 조국의 령공을 눈밝혀 살피고 공군추격기 비행사들은 낮에 밤을 이어 교대로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다에서는 어뢰정을 비롯한 함정들이 파도를 헤가르고···

우리는 구차스러운 말장난, 말싸움이 질색이다. 조선의 대답은 오직 총대에서만 나온다. 어제도 그랬거니와 오늘도 래일도 그것은 변함없다.

적들도 그것을 무서운 공포속에서 숙고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끝내 《아무런 부대조건없이 리인모를 넘겨주겠다》고 통지해온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을 허리에 짚고 다시금 대형작전도앞으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복잡하게 새겨진 갖가지 전술부호들과 화살표들이 더욱 붉게, 진하게 살아숨쉬며 커지는듯 여겨지시였다.

《자, 그럼 타격집단의 기동작전에로 다시 돌아갑시다.》

최고사령부작전지휘조성원들이 일시에 몸을 돌리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여전히 전쟁의 폭음이 머리우에서 커지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야말로 한순간도 전쟁과 떼여놓고 자신을 생각할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최고사령부작전모임은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전모임이 끝나자 당중앙위원회 권형일비서를 찾아 판문점실무접촉을 잘하여 이번에는 리인모를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1993년 3월 19일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대곁을 떠나지 못하고 계시였다.

새벽 4시, 그이께서는 이제 몇시간후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길 리인모를 위한 연도환영, 치료대책, 보도문제로부터 그에게 선물할 고급승용차, 의복류문제들까지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전화를 받은것은 당중앙위원회 비서 권형일이였다.

《좋습니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오늘 그가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우리측 통일각에 들어서면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나의 명의로 축하와 문안인사를 꼭 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접행사를 전국가적인 행사로 크게 성대하게 진행합시다.··· 아니, 일없습니다. 준전시상태이지만 민족의 영웅을 맞이하는것처럼 전국이 끓게 합시다. 특히 평양시에서는 모두가 연도행사에 떨쳐나서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부지중 그이께서는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시였다. 가장 야만적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수십년간 지조를 굽히지 않은 전사, 그를 위해 더 해줄수 있는것은 없을가?···

《사실》 하고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였다. 《우린 모두가 그에게 절을 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조선로동당원은 어떻게 신념과 의리를 지켜야 하는가를 자기의 피어린 한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건강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알려진데 의하면 그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여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부인을 43년만에 처음 만나기때문에 갑자기 충격을 받고 졸도할수 있다는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의사들이 그에게 부인과 딸을 만나게 된다는것을 이야기해주고 주사를 놓아준 다음 만날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양까지 들어올 때는 의료진이 함께 차에 타도록 하고 하늘에는 직승기를 띄워 따르게 하시오. 절대 소홀히 하는 점이 없도록 온갖 대책을 다 강구해야 합니다.》

전쟁을 앞둔 최고사령부작전실에서 한 로인의 건강문제가 장시간 론의된다는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수 있으랴. 그러나김정일동지께서는 군사분계선 대밑에서 적들이 벌리는 《강행도하훈련》조차 감감히 잊고계신듯 했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맑게 개인 봄날의 하늘, 성깃성깃한 백양나무숲 저 멀리로 불타는 해가 솟아올랐다. 거리를 질주하는 궤도전차의 앞머리는 이슬에 젖어 번들거리고 아빠트의 유리창들은 시뻘건 화광에 물들었다. 네거리마다에 《환영 리인모》,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 《위대한 수령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리인모동지를 열렬히 환영한다》라고 쓴 대형구호판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제 곧 분계선너머 남녘의 상공에서는 700여대의 군용기들이 날아올라 하늘을 썰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대지전공습훈련을 벌리게 될것이다.

한쪽에서는 앙칼진 폭음에 창유리들이 떨고 한편에서는 환영의 꽃풍선들이 날아오르고···

그 시각 워싱톤은 깊은 한밤중이였다. 후에 알려진바이지만 그때 미국방성 작전보고실에서는 미국대통령이 지켜보는가운데 우리와의 전쟁을 가상한 콤퓨터모의전쟁이 벌어지고있었다.

어떻게 하나 전쟁의 명분과 그 결과를 알고싶어 콤퓨터에 묻게 된것이였다.

그런데 콤퓨터가 내린 답은 참담한것이였다. 전쟁개시 2주일만에 북조선군이 전 전선에서 종심까지 진격하며 단숨에 40여만의 미군측병력이 괴멸되고 800억딸라의 물적손실을 빚어낸다는 엄청난것이였다.

하지만 적들은 그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전쟁의 도화선은 여전히 끄물끄물 타들어가고있었다. 과연 이제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것인가?

온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극동의 열점인 조선에 눈길을 모으고있을 때 평양의 거리들에서는 환영의 꽃물결이 흐르고있었다. 개성으로부터 평양까지 수백리 연도에 펼쳐진 대환영의 물결··· 전국의 모든 기관, 가정들에서는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모여앉았다.

오전 11시.

드디여 리인모는 판문점중앙분리선을 넘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줄곧 텔레비죤화면앞에 서계시였다. 제대로 몸을 운신할수 없어 삼륜차에 실려오는 리인모, 온통 눈물에 젖은 얼굴로 초상화를 우러르며 알아듣기 어려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모습,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불굴의 전사를 안아주시였다.

《환영합니다, 리인모동지. 아니,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오늘 동지는 혼자서 돌아왔지만 싸우는 수백수천만 우리 인민에게 뜨거운 피를 더해주었습니다.》

가슴이 쩌르르 울리는것을 느끼시였다. 피페해진 로병, 비전향장기수로인의 눈물젖은 모습을 뜨거운 감동없이는 마주 볼수 없는 심정이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통일각에 잠시 머물러있던 리인모를 태운 구급소생차가 수도 평양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자동차행렬이 그뒤를 따르고 하늘에서는 직승기가 날았다.

그 시각 수도의 거리들에는 30여만의 시민들이 환영연도에 나와있었다.

명절옷차림을 한 처녀들과 가정부인들, 로인들과 학생소년들, 로농적위대복장을 한 청장년들, 붉은청년근위대원들, 그들은 이미 차지하고있던 진지들에서 총을 꽃다발로 바꾸어쥐고 한달음에 달려왔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1시간나마 한자리에 그냥 서계시였다. 구급소생차의 맑은 창가에서 환영 나온 수도시민들을 눈물속에 내다보는 리인모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질 때마다 눈굽이 저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성을 터치는 사람들, 모두가 울고웃으며 만세를 웨치는데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차도에까지 밀려나오기도 했다. 그들중에서 유표하게 눈물범벅이 되여 허우적거리는 한 녀인의 모습이 남달리 화면에 길게 비쳐졌다.

순간 그이께서는 한발 앞으로 나서며 눈여겨보시였다. 무던히도 낯익어보이는 그 녀인의 얼굴, 그러나 어느새 카메라는 다른 군중들에게로 옮겨져있었다. 어데서 보았던가. 분명 어데선가 본 일이 있었는데?··· 급히 기억을 더듬었으나 생각나시지 않았다.

텔레비죤방송원의 격정에 넘친 목소리가 군중의 환호성속에서 점점 커져갔다.

《보십시오, 시청자여러분! 폭풍같은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꽃바다, 꽃물결이 세차게 파도치는 이 거리를 보십시오!···》 어느덧 방송원의 목소리도 젖어들고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저 남녘땅에서는 미제침략자들이 핵전쟁의 총포성을 미친듯 울리고있지만 여기 혁명의 수도 평양의 거리들에서는 리인모동지를 맞이하는 감격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있습니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크나큰 심려와 로고를 다 바쳐 끝내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신 민족의 장한 아들 리인모동지를 맞이하는 이 감격의 환호성이야말로 전쟁의 총포성을 짓누르는 승리의 축포성이 아니겠습니까!···》

구급소생차를 따라가며 새로운 화면들이 잇달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목메여 울며 두팔을 뻗쳐 무어라고 웨쳐대던 한 녀인의 모습을 머리에서 지워버릴수 없으시였다. 잡힐듯말듯 하면서도 끝내 떠올릴수 없는 녀인, 웬일인지 남다른 사연이라도 있을듯 생각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속 흥분을 누르며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수령님, 김정일이 전화받습니다.》

《여전하구만. 작전대앞을 떠나지 못하리라고 내 짐작했댔소.》 수령님의 음성은 웬일인지 갈리신듯 하였다. 《아, 오늘은 전쟁이야길 그만둡시다. 놈들이야 불장난을 하건말건. 내 지금 리인모동물 보면서 눈물이 나는걸 참을수 없어 전화를 걸었소. 이제 준전시상태가 끝나면 최고사령관과 같이 리인모를 찾아가 문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떻소. 지금은 안되겠지만.》

《예, 수령님! 저도 그럴 생각이였습니다. 꼭 수령님을 모시고 문안을 가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때 수령님께서 그에게 새 당원증도 수여하고 훈장도 달아주시면 그의 한생에 대한 당의 평가로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기뻐하시였다.

《그러니 최고사령관은 그일까지 다 예견하고있었구만. 정말 좋은 생각이요. 그럼 좋은 날을 택하여 꼭 그렇게 합시다.》

수령님께서는 리인모의 병치료대책에 대하여 물으신 다음 전화를 끊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그린듯 서계시였다. 수령님께서 《눈물을 참을수 없어》라고 하시던 음성이 여전히 귀전에 울려오는듯 싶으시였다. 연도행사장면을 보시다가 전화를 걸어오셨을 때엔 그만큼 충격이 크셨음을 의미하는것이다. 귀중한 전사를 끝내 데려오게 된 기쁨이 너무 커서였을가, 아니면 운신조차 못하는 백발의 전사를 보시고 아픔을 참기 어려우시여서?··· 혹시 리인모는 왔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전사들이 마음에 걸리시여··· 아, 가만! 그때문일것이다. 수십년세월 돌아오지 못하는 전사들때문에 남모르는 아픔을 안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 때로는 밤 깊도록 정원을 거니시며 그리운 전사들에 대하여, 김삼룡, 성시백, 리현상, 김종태에 대하여 회억에 잠겨 말씀하시던 수령님이시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머리속에 얼핏 스쳐간 하나의 기억을 살리시였다. 리현상의 이름이 짚이자 떠오른 기억의 한 토막··· 언제였던가. 지리산빨찌산대장이였던 리현상의 가족들을 만나주시려 리현상의 딸 리상옥의 집을 찾으셨던 그날, 그날 그 집에서 손님으로 와있던 한 녀인을 만나보신 일이 있었다. 방금 화면에서 스쳐보셨던 녀인, 이름을 김화순이라고 했던것 같다. 너무도 뜻밖에 그이를 만나 뵙게 되여 미처 인사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하며 굳어졌던 녀인, 그 김화순의 아버지도 전쟁때 정치공작대로 나갔다가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지리산빨찌산에서 싸웠다고 한다. 지리산빨찌산정치위원이였던 리재명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는것이다. 그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아버지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예, 김진서라고 합니다.》

《음- 김진서··· 그래 아버지와는 몇살때 헤여졌습니까?》

《네살때였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음··· 어느덧 40여년 세월이 흘러갔구만.》

인제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시다. 아버지들이 지리산에서 싸웠다는것으로 하여 남다른 인연으로 가까와졌을 리상옥과 김화순, 그 김화순도 지난해 남조선잡지 《말》에 아버지 김진서의 소식이 났다는것을 알고있을것이다. 아버지가 여적 살아있으며 리인모와 같이 장장 34년간 옥중에서 굴함없이 싸운 비전향장기수라는것을 알고있기에 그처럼 환영연도에서 목메여 울며 부르짖었을것이다. 기쁨과 감격에 울고 크나큰 기대와 희망에 울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아버지를 목메여 불렀으리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생각을 이어가시였다. 거의 두시간째 한자리에 그냥 서계시는것도 잊고 계시였다.

얼마나 많은 아픔을 우리 인민은 겪어왔던가. 민족분렬의 아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리게 했던가. 그리고 그 모든 아픔을 한가슴에 안으신 우리 수령님의 아픔은 또 얼마나 크고 무거운것이랴. 저 김진서의 딸 김화순을 포함하여 둘로 갈라진 이 나라 전체 인민이 겪고있는 불행과 아픔을 다 안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 하기에 수령님께서는 연도행사를 보시며 눈물을 참을수 없으신것이리라.···

어느덧 리인모를 태운 구급소생차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분원으로 향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구급소생차가 화면에서 멀리 사라져갈 때까지 지켜서서 불굴의 전사를 바래주시였다. 그를 바래주시며 마음속으로 수령님과 나누신 말씀을 거듭 되뇌이시였다. 이제 적들의 핵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어느 좋은 날을 택하여 리인모의 병문안을 가시려는 생각이시였다. 수령님께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시였었다. 《좋은 날》을 택하여 가자고··· 그러면 그 《좋은 날》은 어떤 날일것인가?···

 

1993년 7월 23일

그날은 전국로병대회가 열리는 날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대회가 시작되기전에 조국해방전쟁로병인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리인모와 상봉하시였다.

아침해살이 창유리를 불태우고있었다.

뜻밖의 소식에 접한 리인모가 삼륜차를 타고 홀에서 대기하고있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직도 이 모든것이 믿어지지 않는듯 했다. 시퍼런 피줄이 툭툭 불거져나온 손으로 삼륜차의 한끝을 꽉 잡고 입을 벌린채 굳어져있을뿐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러는 전사를 꽉 안고 두볼을 비비며 《리인모동무, 건강은 어떻소? 동무를 보고싶었소.》라고 하시자 그는 급기야 몸을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버이수령님!》

눈물속에서 끓고있는 목소리였다. 그는 더이상 말을 못하고 두팔을 허우적거렸다. 수령님의 옷깃을, 팔소매를 붙잡고 거기에 매달리며 울고만 있었다.

정녕 이 순간을 기다려 43년을 종군기자로, 지리산빨찌산대원으로, 옥중의 비전향장기수로 싸워온 그였다. 한생의 거의 전부를 눈물없이, 눈물과 인연을 끊고 살며 싸워온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여 울고있다. 바로 이날을 기다려 그 많은 눈물을 아껴온것인가!···

수령님께서도 눈물을 참을수 없으신듯 하였다. 전사의 잔등을 어루쓸며 갈리신 음성으로 겨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젠 그만··· 이 기쁜날 계속 울고만 있겠소. 자, 보오. 여기 김정일최고사령관도 와있지 않소!》

그러자 그는 눈물이 즐펀한, 바짝 마르고 여윈 얼굴을 돌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장군님!···》

누구도 그의 이 목메인 부르짖음을 제대로 가려들은 사람은 없었다. 토막토막 끊기는 가는 웨침소리를 오열을 터치는 그의 입놀림으로 알아들었을뿐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후들후들 떨고있는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부지중 가슴이 저려나시였다.

차디찬 손의 감각, 뼈마디들이 앙상하게 불거진 그 손에서 마쳐오는 아픔, 그처럼 강의한 불굴의 전사ㅡ 강철의 인간 리인모가 이 지경이 되다니··· 이렇듯 처참하게 분질러놓고 무두질해놓다니··· 했어도 그는 싸워이겼다. 그렇듯 야만적인 악행으로도 이 백발로인을 꺾지 못했으니··· 인사를 드리자. 수령님의 참된 영웅전사, 불굴의 로병에게 머리숙여 인사를 드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행하여 온 일군들모두가 인사를 드리게 하시였다.

이윽고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선가운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리인모동무, 동무는 원쑤들의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이김으로써 조선의 혁명가, 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소. 동무와 같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 훌륭한 로동당원을 가진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그에 대하여 리인모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대답하고있었다.

이미 그에게 최고훈장들인 영예의 김일성훈장과 공화국영웅칭호,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되였지만 이 순간의 영광에는 견줄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는 오열에 몸을 떨며 흐느낌소리만 내뿜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고급금시계를 채워주실 때 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어푸러지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잡아주시자 그이의 팔굽에 얼굴을 대고 마구 비벼대였다. 피페해진 로인이였지만 눈물은 뜨거웠다. 그 뜨거운 눈물이 김정일동지의 팔소매를 적시고있었다. 그 정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모두가 눈물을 걷잡지 못했다.

수령님께서 손수건을 꺼내여 그의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자, 이젠 기념사진을 찍어야겠는데 이러면 사진이 잘 안돼. 자, 저리로 갑시다.》

수령님께서는 리인모의 삼륜차를 손수 밀며 눈부신 해빛이 홍수처럼 흘러드는 창문가로 가시였다. 촬영기들이 쉴새없이 돌아갔다.

진정 동지란 무엇인가. 이 세상 가장 고결한 사랑과 의리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리인모를 가운데놓고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일동지께서 량옆에 서시였다.

사진기의 섬광들이 련속 번쩍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 수령님께 조용히 말씀드렸다.

《수령님, 부인도 옆에 세우는것이 어떻습니까.》

《아, 그래야지, 그래야 하구말구.》

수령님께서 리인모의 부인을 부르시여 남편곁에 나란히 세워주시였다.

《리인모동무도 잘 싸웠지만 한생을 기다려온 안해도 정말 용해. 자, 어서 나란히 서오.》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신듯 환히 웃고계시였다.

여전히 번쩍거리는 사진기의 섬광들, 모두가 웃고 울었다. 웃음과 눈물이 그처럼 하나로 녹아흐르는것을 언제 또 본적이 있었던가.

수령님께서 다시 리인모를 다정히 껴안아주시였다.

《리인모동무, 자, 이젠 대회장으로 나갑시다. 감옥에서 싸우던 그 신념과 투지를 온 세상에 보여줍시다.》

김정일동지께서 역시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시였다.

《자, 모두가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리인모동지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문이 열리자 대회장에서 터져오르는 환호성이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함께 모시고 주석단으로 나오는 리인모로인을 맞이하였다.

 

대회의 첫날 일정이 끝난후 리인모를 병원으로 떠나보내신 수령님께서는 승용차 가까이 가시다가 걸음을 멈추시였다. 차문은 열려있었건만 머리우에 드리운 나무가지를 무심히 잡으시였다. 청록색으로 윤기나게 부풀은 잎사귀를 뜯으며 멀리 파아란 운무가 서린 하늘끝으로 눈길을 옮기시는데 어쩐지 흐려진 안색이시였다. 방금전까지 그리도 밝게, 환하게 웃고계시였는데··· 수행원들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돌려 누군가를 눈길로 찾으시였다.

《권비서 어디 있소?》

권형일이 현관문뒤에서 급히 나섰다.

《어버이수령님, 제 여기 있습니다.》

《음ㅡ 비서동무, 지금까지 알려진 비전향장기수들이 모두 몇명이나 되오?》

뜻밖의 물으심에 권형일은 미처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말씀드렸다.

《수령님, 지금까지는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을 비롯하여 11명이 알려져있습니다. 제가 알아본데 의하면 출소했지만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전향장기수들도 있고 감옥에 갇혀있는 장기수들은 더 많습니다.》

《음ㅡ》 수령님께서는 괴로우신듯 했다. 《리인모동물 만나고보니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사들 생각이 자꾸 드는구만. 애젊은 나이에 감옥에 갇혀 백발이 된 오늘까지 신념을 지켜싸운 그 사람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요?···》

수행원들중에서 몇사람이 저도모르게 《수령님!》 하고 가느다랗게 부르짖었다. 수령님께서 가슴아파하시니 참기 어려웠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먹을 꽉 부르쥐고계시였다. 순간의 격정을, 아픔이 어린 충동을 이겨내기 어려우셨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희슥해진 머리며 눈언저리에 깊이 패운 아픔의 주름을 그대로 마주 보기 힘드시였다.

《수령님!》 그이께서 마침내 말씀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미 리인모로인을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던 그때부터 결심하고있었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 모두를 수령님품으로 데려오리라고말입니다.》

《믿소. 나도 그걸 의심치 않소.》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최고사령관이 일단 결심하면 끝장을 보고야만다는걸 내가 왜 모르겠소. 그저 리인모동물 만나서 로병대회에 함께 참가하니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으리라 했는데 갑자기···》

수령님께서는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눈앞의 나무아지를 꺾어들더니 이윽고 다시 밝게 웃으시였다.

《계속 이렇게 서있을수야 없지. 자, 갑시다.》

승용차들이 발동을 걸었다. 눈부신 해빛이 차창유리에서 어룽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나무아지를 그대로 쥐고 차에 오르시는것을 여겨보시였다.

 

1994년 12월 31일

우리 인민이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땅을 치며 통곡하던 피눈물의 해 1994년의 마지막날도 어느덧 저물어가고있었다.

찬 날씨였다. 대기는 살얼음처럼 다치면 부서져나갈듯 팽팽하게 서리찼고 하늘에 널린 구름쪼각들은 푸르뎅뎅했다. 겨울철에 서리찬 광채가 스러져가면서 한적한 들판도 음울한 재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윙윙거리는 바람만이 나무가지들에 매달린 잎사귀를 사정없이 뜯어 길가에 쥐여뿌리군 했다.

승용차의 시창에도 황이 든 잎사귀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얼씬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시창을 통해 어느 한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계시였다. 저 멀리 휘우듬한 등성이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하나의 굴뚝이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이다.

이 길을 지나실 때마다 쌉쌀하고 약간 매운듯 한 연기냄새에 익숙되시였는데 지금은 그 굴뚝에 연기가 없다. 피빛의 석양이 그 굴뚝우에 떠있는 구름쪼각을 시진하게 물들이고있을뿐···

이제 저 굴뚝처럼 연기를 뿜지 못하는 공장들이 하나둘 늘어갈것이다. 그이께서는 쓰린 아픔에 손끝까지 저려나는듯 하시였다.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되던 때로부터 나라의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던것이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후 더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른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날로 극악해지는 경제봉쇄, 군사적위협과 파국적인 자연재해의 시작··· 얼마나 많은 비가 이 땅에 퍼부어졌던가?··· 그이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대국상을 당하던 그때 폭우속을 헤치며 차를 달리시던 밤길을 상기하시였다. 어쩔수 없이 떠올린 가슴아픈 회억···

차창에 휘뿌려지던 대줄기같은 비발, 시꺼먼 하늘에서 꽈르릉! 하고 노성을 터치는것 같던 뢰우, 번개불이 밤을 찢고 대기를 불사르며 연송 푸들거렸다.

그속으로 차를 달리며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부르짖고계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위급하시다니 과연 그럴수도 있는가. 아니, 아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이제 내가 나타나면 수령님께서 곧 눈을 뜨실것이다. 눈을 뜨시고는 저으기 놀라신듯 《어떻게 이 깊은 밤중에 달려왔소?》 하고 물으실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틀림없다!···

그날 승용차의 속도계바늘은 마지막수자들에서 파들거리며 떨고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차가 너무도 굼뜨게 움직이는듯 하시였다. 전조등의 불빛마저 퍼붓는 비발속을 겨우 뚫고나가는듯··· 조바심치는 마음속에 재가 앉는것을 느끼시였다. 저 번개불을 잡아달릴수는 없을가. 꼬불꼬불 령길을 만든 저 산발을 통채로 들어 바다에 집어던질수는 없단말인가?··· 그렇게 괴로운 분과 초들이 흘러갔다.

이윽고 차가 아츠러운 소리로 땅을 허비며 멎어섰다. 경황없이 달려나온 일군들이 비에 화락하니 젖은 몸을 비틀며 어푸러졌다.

《장군님!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만···》

더 이상 잇지 못하는 그 말을 대신하여 꽈르릉! 하는 천둥이 터졌다.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밤도 어둠도 미친듯 한 폭우도 죄다 그 무서운 폭음속에 파묻히고말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흠칫하였으나 곧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어떤 말도 죄다 부정하시였다. 급히 걸으며 속으로 부르짖고계시였다. 난 믿지 않아. 지금 수령님께서는 나를 기다리고계실뿐이야, 절대로 믿지 않아!···

섬광이 또 번쩍이였다. 그러자 건물의 유리창을 때리던 비방울들이 무수한 반디불처럼 린광을 휘뿌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이 드신듯 누워계시는 수령님께로 다가가시였다. 터질듯 한 격정을 누르고 조용히 불러보시였다.

《수령님!》

대답이 없으시였다.

또다시 섬광, 창유리들이 퍼렇게 번쩍이였다.

《수령님!》

더 크게 불러보시였다. 그보다 엄청나게 큰 천둥소리. 그이께서는 어느새 수령님침상을 꽉 그러쥐며 목메여 웨치시였다.

《수령님, 제가 왔습니다. 수령님!ㅡ》

하지만 여전히 수령님께서는 아무 기척도 없으시였다. 눈을 감은채 근엄한 안색으로 누워계실뿐,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서운 아픔에 신음하시였다. 누군가 자신을 붙들며 《장군님!ㅡ》 하고 목메여 울부짖었을 때에야 비로소 수령님께서 영면하셨다는것을 깨닫고 모진 허탈감에 심신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느끼시였다.···

영원히 잊을수 없는 그날의 회억··· 그때부터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시며 피눈물속에 잠긴 온 나라 인민을 안고 170여일의 낮과 밤을 이어오시였다. 잠도 휴식도 다 잊으시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이 땅에 쏟아져내렸던가. 이 나라 인민이 흘린 피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허나 지금은 겨울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여느때보다 일찍 강이 얼어붙고 나무숲이 헐벗고 메마른 등성이에서는 눈더미들만 희끗거렸다.

엄혹한 겨울이 왔다. 이제 닥쳐올 고난과 시련은 또 얼마나 가혹할것인가.

저 연기없는 공장굴뚝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고립압살책동, 그에 뒤따를 식량난, 연료난, 동력난···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슬픔을 이겨내고 역경을 헤쳐가며 우리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빛내주신 조국을, 사회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수령님께서 마지막친필을 남기신 조국통일문건에 뜨겁게 슴배여있는 필승의 념원도 풀어드려야 한다.

하여 그이께서는 지금 차를 달리고계신다. 이제 겪게 될 고난의 행군에 앞서 가슴속에 꽉 차있는 온갖 아픔과 눈물과 비장한 각오를 다 터뜨릴 생각이시다.

차가 멎었다.

어느새 목적한 사격장에 이르렀다.

직일관과 몇사람이 황황히 달려나오고있다. 그이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셨으므로 누구실가, 웬일일가 하고 얼떠름해하는 표정이였다.

그이께서 차문을 열고 내리시자 먼저 직일관이 잽싸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하고 다급히 웨치고는 무엇인가 목에 걸린듯 꿀꺽하였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답례하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늦게 뛰여나온 키 큰 상좌가 거수경례를 올리며 규정의 보고를 하려했으나 어느새 그이께서 손을 들어 막으시였다. 여전히 빠른 걸음을 옮기시며 뒤따르는 그에게 말씀하시였다.

《기관총과 자동보총을 만장탄해 가져오시오.》

상좌가 쩡쩡한 목소리로 웨치듯 했다.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그이께서는 야외사격장으로 곧추 향하시였다.

벌써 땅거미가 깃들고있었다. 멀리 둔덕쪽에 두억시니처럼 웅크리고있는 목표판들이 겨우 분간되시였다. 그래도 괜찮다. 무자비하게 쓸어버려야 할 목표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조성, 조문은 맞추어져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자동보총을 틀어잡으시였다. 안전쇠를 열고 방아쇠에 손을 거신다. 희읍스름한 하늘에서 파랗게 눈뜨기 시작한 별들이 반들거리는 총신우에 빛을 던졌다. 그이께서는 별로 겨눈것 같지도 않게 급사격을 퍼부으시였다.

울부짖는 자동보총, 세찬 불줄기가 거침없이 목표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세찬 반충도 어느덧 고르로운 률동으로 변하였다. 따다다다!- 련발사격은 계속된다. 둔덕밑의 목표판이 나가넘어진다. 또 다음목표··· 도탄되는 탄알들이 불꼬리를 길게 끌며 아우성친다. 목표판뒤의 나무숲이 사정없이 분질러진다.

드디여 총성이 멎었다. 어느새 한탄창을 다 쏴갈기시였다. 다섯개의 목표판은 형체도 없이 부서져버렸다.

이번엔 기관총을 바꾸어드신다. 묵직하다. 그 엄엄한 중량감, 랭철한 철의 촉감이 마음에 드신다.

《목표 출현!》

그이께서 나직이 구령을 치시자 시꺼먼 둔덕밑에서 이동목표들이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련발로ㅡ 쐇!》

마음속으로 구령을 치신다.

또다시 울리는 련발사격의 총성, 기관총의 집중사격은 격렬하고 위엄찬것이였다.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는다.

둔덕쪽에서는 모든것이 죄다 들부셔지는듯 했다. 얼어들던 땅이 파헤쳐지고 나무숲이 신음했다. 너울거리는 불길, 박살나는 목표들, 그래도 그이께서는 사격을 멈추지 않으신다. 무시무시한 총성속에서 마음속 격정을 한껏 터치신다.

 

수령님,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제가 제일 사랑하는 총대가 불을 토하고있습니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키워오신 총대가 있고 억척같은 인민이 있는 한 우리는 꼭 이길것입니다!···

 

세찬 불줄기, 화약가스가 타래쳤다. 몰사격의 총성처럼 멋들어진 음악이 또 있을가?··· 완강한 투지와 인내와 헌신을 선언하는 총성··· 그이께서는 한시도 사격을 멈추지 않으신다.

 

세계여, 들으라.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

원쑤들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전쟁을 할줄 알며 또 준비되여있다. 우리를 건드리는자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인민이여 믿으라, 내가 이 총대를 틀어쥐고있는 한 우리는 기어이 사회주의조국을 지킬것이다. 그리고 부강조국을 일떠세울것이다! 우리 수령님의 필생의 념원인 조국통일성업도 이룩될것이다. 조국통일위업에 한생을 다 바친 비전향장기수들도 이 소리를 들으시라. 그리고 끝까지 싸우시라!···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고계시였다.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을 비롯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 비전향장기수들을 한사람한사람 불러보시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이께서는 철창속에서 신음하는 그들에게, 이제 엄혹한 시련을 헤쳐가야 할 온 나라 인민에게 그리고 오만한 원쑤들에게, 온 세상에 자신의 드팀없는 결심을 선언하고계시였다. 이제 얼마후이면 새해가 시작된다. 물러가는 해를 전송하며 밝아오는 해를 맞받아 터치는 격렬한 총성, 바로 그것이 선군령도의 새장을 펼치는 장엄한 서곡이라는것을 아직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울부짖던 기관총이 뚝 그쳤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정적, 그러나 싸늘한 대기를 썰던 엄엄한 총소리의 여운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 총성의 메아리를 여겨들으시는듯 김정일동지께서는 기관총을 꽉 틀어쥐신채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