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4

 

제 8 장

4. 하정례의 편지

 

선생님, 저를 기억하시겠지요. 하정례를?··· 47년만에야 이렇게 문안인사를 올리게 되니 정말 무엇부터 어떻게 썼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만난것은 광주포로수용소···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습니까. 그러나 우린 늘 가까이 있었죠. 적어도 30년은!··· 그래요. 저의 지리산과 옥중생활기간은 선생님과 또 저를 아는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숨쉬며 살아온 자랑스러운 세월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다음부터, 제가 전향서에 지장을 찍고 나온후부터 저는 선생님과 동지들곁에서 아득히 멀어져버렸습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제가 홀로 떨어져버렸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얼마나 무섭고 몸서리쳐지던지··· 그걸 어떻게 다 말할수 있을가요. 그처럼 무서운 일을, 끔찍한 일을!···

저는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펜을 든게 아닙니다. 결코 그런것은 아니예요. 이것만은 선생님, 믿어주세요. 그리고 고통받는 한 녀인의 (아니 한 늙은이의) 눈물겨운 고백을 끝까지 들어주셔요.

기억나세요? 50년전 제가 처음 선생님께 제 신상의 일들을 터놓고 마음속아픔을 고백하던 일말이죠. 기억을 더듬어보셔요. 강사령에 대한 남모르는 사랑의 감정까지 고백했었죠. 벌써 50년전, 반세기전 일이군요.(아 끔찍해. 반세기라니···)

왜 그랬을가요. 그때 선생님께만은 왜 다 터놓았던것일가요?··· 선생님이 나를 좋지 않게 보기때문이였던가요? 아니면 그저 과묵한 성격인 선생님이 놈들에게 총살당한 저의 오빠처럼 생각됐던것일가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죠.

이 세상에서 저를 제일 잘 아시는분은 선생님밖엔 없습니다. 기억나시죠? 저를 미친 녀자라고 부르시던 일이. 또 제가 저주맞을 변절자 차일평을 기어이 찾아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던 일을··· 그 개같은 차가놈이 얼마나 많은 동지들을 죽게 했던가요. 최동환동지만 해도 얼마나 비참하게 했던가요. 차가와 같이 변절자로 알려져있던 최동환동지를 잘 아시죠? 제가 감옥에서 나와 들여보낸 쪽지도 받으셨겠죠?···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고 묻고 싶을테지요. 그건 제가 아니라 한때 대구교도소특별사에서 같이 있던 정순복을 통해 알게 됐던겁니다.

지금 정순복은 지리산빨찌산출신들인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선생님들보다 더 많이 알려졌을수도 있어요. 왜냐면 그는 녀성이니까요. 녀자빨찌산, 그것도 한다리를 잃은 녀성···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동지들조차 알지 못하고있었어요. 그녀는 남부군도 아니고 지리산유격대가 놈들의 1차, 2차 대공세를 겪을 때 우리와 함께 있은것도 아니고 진안군(경북)유격대에 있다가 그후 소부대로 분산되면서 지리산에서 싸웠기때문이죠.

나보다 한살 아래인 그녀는 경남 산청군태생이지만 지리산아래마을에 옮겨와 살면서 결혼까지 한 몸으로 남편을 따라 유격대에 편입됐더군요. 놀랍게도 1963년 11월에야 체포됐는데 총격전을 벌리던중 대퇴부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고 해요.

그런데 몇시간동안이나 지혈도 받지 못하고 강변의 자갈밭으로 끌려왔기에 출혈이 심해서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어요. 그런 몸에 무기언도까지 받았으니··· 상상해보셔요.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겠나요.

나는 봤어요. 한 다리가 없는 그녀, 벽을 짚고서야 일어서고 벽을 따라서만 움직이고··· 그녀는 변기통도 제대로 리용할수 없어 엉금엉금 기여가 손으로 짚고서야 했어요. 그 손으로 밥덩이를 집어먹고··· 녀자들이 누구나 달마다 겪는 일에 빨래도 그시그시 바로 못하는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고통을 겪었을가요. 엄동설한에 앉지도 못하고 벽을 짚고 선채로 변을 보면 홑껍데기 수인복마저 젖어버리고··· 그런데도 놈들은 매일같이 매질하고 발가벗겨 눈더미우를 끌고다니고··· 아, 아 정말이지 그 참상··· 나 역시 녀성의 몸으로 꼭같은 고문과 모욕을 받았지만 그녀가 겪은 고통에야 비기겠나요. 그래도 그녀는 견뎌냈지만 목사였던 교회사의 설복에는 마음이 약해졌던거죠.

그녀는 전향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체제에 대한 신념을 바꾼게 아니라 하느님께 전향한거죠. 선생님 같으신분들은 물론 용납하지 않으실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신자였어요. 신자였던 그녀가 10년세월 총을 메고 산에서 싸워온거죠. 제 땅, 제 나라가 만신창이 되고 력사가 유린당한 그 세월 무어라 항변 한마디 못하고 저 하나만을 생각하며 골뱅이처럼 껍데기를 쓰고 숨어 살아온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하지만 그녀는 싸웠습니다. 참생활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실로 감당키 어려운 싸움에 한몸바쳤습니다.

통일조국을 위한 그 마음 지금도 변함없음을 선생님도 잘 아실겁니다. 출소장기수 선생님들 뒤바라지를 하며 자기를 다 바쳐가는 그녀··· 참, 저의 얘기가 그만 빗나가네요.

제가 그녀와 함께 있게 된건 석달동안만, 놈들은 내 마음도 교회의 십자가로 움직여보려 했던거죠. 그러나 내가 미친 녀자라는걸 그네들이 알리 없었죠. 사랑에 미친 녀자,(선생님이 바로 미치겠으면 사랑에 미치라고 하셨죠.) 복수에 미친 녀자. 그랬어요. 여전했어요.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주로운 차가놈이 나타날줄이야··· 그자가 정순복을 꼬여보려 했던겁니다. 그녀를 만나 (나를 직접 만날 용기는 없었는지)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수작질을 늘여놓다가 최동환동지 얘기도 하더라는거죠. 최동환처럼 하정례라는 녀자 역시 혁명의 원쑤로, 동지들의 저주의 대상으로 만드는것쯤 식은 죽 먹기라구요. 하정례라는 녀자가 서울리화녀대까지 다니다가 지리산에 들어간것은 비밀임무를 받았기때문이라고 적당히 꾸민다는거예요. 그다음 최동환처럼 특별사의 먹방에 처넣으면 영영 반역자의 오명을 벗지 못한채 썩어 문드러진다는겁니다.

나는 미칠 지경이였습니다. 미친 녀자가 2중으로 미쳤으니 어느 지경이 됐을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한가지 생각뿐, 변절자를 죽이자. 다시는 동지들을 모욕하지 못하게 하자!··· 벼르고 또 벼르고··· 끝내는 전향하여 밖에 나가는 길을 택하였군요. 변절자를 잡아죽이면 또 옥에 갇힐테지··· 그러면 함께 싸운 동지들도 리해해줄거고··· 그때의 내 생각이였어요. 그때의 생각··· 어리석고 무서운 생각, 아아, 선생님, 만약 내게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달리하지 않을것입니다. 다만 개인복수를 결심하던 그날만을 고치고는!···

선생님, 온 남한땅을 샅샅이 뒤지며 차가놈을 찾았습니다. 지리산빨찌산에 대해 쓴 책들에는 그놈이 남쪽땅엔 없다고 했지만··· 아닙니다. 그놈은 여기서 지금도 그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고있어요. 그것까진 확인했습니다. 놈들도 그자를 써먹다 버리고··· 한때 그 추악한 놈은 《고령감》, 《강처원》, 《한봉구》라고 변성명하고 다니다가 지금은 종적없이 숨어버렸습니다. 10여년을 추적했지만 오늘까지도 복수를 못했으니··· 결과는 무엇이 남았겠습니까. 30년 떳떳한 나의 삶마저 잃었다고 생각하면··· 밤에도 소스라치며 뛰쳐 일어납니다.

그러니 지금 내게 남은건 통한의 쓰라림 그것뿐이란 말입니까? 나도 인젠 그 추악한 변절자모양 숨어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선생님, 인제는 선생님이 그때 지리산에서 나와 아라를 구원해주신것을 원망해야 합니까? 제가 거기서 죽지 못한것을, 남들처럼 끝까지 싸우다 자총하지 못한것을 후회해야 합니까?···

온밤 꼬바기 밝히며 이 글을 씁니다. 어제 또 오늘··· 세상은 얼마나 변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더 밝아졌습니까. 온 국민이 통일을 외치고··· 이같은 날을 위해서 싸워온게 아닙니까. 이런 날을 위해서, 이런 날이 오기를 믿고··· 그래서 선생님들은 더 기쁘실테죠. 행복하실테죠··· 텔레비에 비추이는 선생님들 모습을 볼 때마다 마악 달려가고펐어요. 달려가 선생님들 붙들고 울고팠어요. 그런데 어인 일로 나만은 울지도 못하나요. 내게만은 어인 일로 래일이 없나요?!···

오늘, 아니 인제는 어제 밤, 정순복을 찾아갔어요. 형기의 반이상을 채우지 못해 5년전에야 가석방되여나온 그녀, 인천《나사렛병원》에 입원중이나 서울로 달려와 《만남의 집》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통일이 눈앞에 왔다고, 조국으로 가게 됐다고 맘껏 울고왔다는거죠. 장농을 열고 이옷 저옷 꺼내여 입어보는거예요. 그럴 때 내가 들어간거죠.

얼마나 반가워 했겠어요. 나를 끌어안고 울고 웃으면서!···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지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거예요.

《하선생, 어디 편찮으세요? 이제 다들 평양으로 가게 될텐데요. 어쩌끄나- 몸을 상하문!》

정말이지 그처럼 순박하고 진실한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수 있었겠나요. 가슴은 자꾸만 쓰려나고··· 사실 나는 이미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 권오헌선생에게 물어서 아는바였지만··· 그녀는 모르고있은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하면 정말 어쩌끄나- 추진위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북송을 희망한 사람이 모두 70여명인데(6월 현재) 6. 15공동선언엔 비전향장기수로 못박아 놓았기에 전향자들인 경우 그것이 강제적이였건 병보석의 조건부였건 지금 당장은 송환의 당위성이 없다는 통일부의 해석을 나는 알고있는데 그녀는 열심히 분단선을 넘게 될 그날에 입을 옷가지를 고르고있으니··· 어쩌끄나- 정말 어쩌끄나요?!···

그녀는 날더러 어느 옷이 좋겠느냐고 묻겠죠. 그러면서 《하선생도 빨리 준비해야죠. 내가 도와드릴게.》하는거예요. 그러니 나는 어찌했어야 옳았을가요. 나는 빌었어요. 마음속으로 이 못난 하정례는 못가도 좋으나 정순복만은 꼭 데려가 주셔요. 같이 가주셔요!하고 선생님을 비롯한 옛 동지들께 빌고 또 빌었어요. 그런데··· 아, 잠간!··· 내가 이자 뭐라고 했나요. 옛 동지들?··· 그럼 지금은 동지들이 아니란 뜻을 내 스스로가 발설한겁니까? 어머! 어쩌면 그렇게야?···

선생님, 말해주셔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도 이 정례를 동지라는 범주에서 그어 던진겁니까?···

6월의 해빛은 그리도 밝고 따스한데 통한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어찌된겁니까? 그네들자신의 잘못으로, 평생의 한으로 침뱉아 버려야 합니까? 선생님, 말씀해주셔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아픔이 어데 또 있을가요?··· 피를 나눈 동지들한테서 배척을 받고 조국의 버림을 받는다면, 그래서 래일이 없어진다면?!··· 아아, 선생님, 나는 왜 거기서 죽지 못했겠습니까. 선생님은 어인 일로 나를 벼랑에서 차던졌겠습니까. 이렇게 버림받는 나를 보자구요? 울지도 못하는 나를 보자구요?···

선생님 아니면 어디에 대고 이런 넉두릴 하겠습니까. 용서하셔요. 리현상선생, 박종하사령, 리재명, 류주목, 양봉순과 같은 동지들이 다 살아계신다면 그들모두를 붙들고 목놓아 울기라도 하련만··· 울고싶어요. 언녕 맘놓고 우는것도 행복이 아닐가요?··· 부탁합니다. 선생님, 동지라고 불러주셔요. 이 못난 정례도 동지라고 불러주시면··· 다시 30년 세월을 지리산과 감옥에서 보내야 한대도 기꺼이 수락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동지들에게서 배척받는다면 나의 삶은 끝장입니다. 동지들이 곁에 있어서 영위해온 삶이 아니였습니까!

리상가들에게 매료되여 꿈을 꾸던 어제날의 처녀 하정례가 동지들의 사랑속에 참된 삶을 알고 투쟁과 행복을 알았는데 칠순이 되여오는 오늘 동지들이 버린다면··· 무서운 일입니다. 통한에 숨이 막혀 죽고말것입니다. 그 무서운 고립감과 외로움을 또 감내해야 한다면··· 나는 못견딥니다.

여기에 문병란씨의 시 한수를 적어봅니다.

 

리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 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두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녀인아

은하수 건너

···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련인아 련인아

리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이것은 통일의 꿈을 눈물로 노래한 시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내 심정과도 꼭 들어맞으니··· 어찌합니까. 선생님들, 동지들! 여기서 그대들을 《손짓하는 녀인》은 하정례- 바로 나자신이라고 여겨주세요.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잘 가세요. 부디 행복하셔요. 동지들이 떠나가는 날 공항이나 역두에서 저의 모습이 뵈지 않더라도 거기 있는듯이 보아주셔요. 조국의 품에 안길 땐 저도 같이 있는듯이 여겨주셔요. 그러면 이 못난 정례는 꿈을 꾸겠습니다. 꿈만은 끝까지 잃지 않으렵니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안녕히 선생님, 나를 찾진 마십시오.

안녕히. 동지들, 미더운 동지들, 장한 동지들, 부디 안녕!··· 머리숙여 고별의 인사드립니다.

 

변함없을 선생님의 벗, 동지들의

옛 동지(?)

하정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