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2

 

제 8 장

2

 

가면 오게 되고 오면 또 가게 된다. 얼어붙은 분렬의 장벽을 넘어 어제는 문익환목사가 오고 그 뒤를 이어 남조선의 통일맞이 7천만겨레모임 대표이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인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녀사와 《현대그룹》의 창업주, 명예회장인 정주영 그리고 범민련 남측본부대표들, 《전국련합》대표들,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 《민주로총》대표들과 로동자통일축구선수단까지 왔다 갔다. 남조선의 언론인들까지 김정일장군님께서 열어주신 통일을 위한 민족화합의 길로 왔는데 동아일보 신문사대표단은 일제시기 보천보전투소식을 보도한 당시의 《동아일보》신문조판을 순금으로 다시 만들어가지고 와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선물로 올리였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 《말》잡지를 비롯한 여러 출판보도기관의 언론인들이 수많이 찾아와 공화국북반부 각지를 참관하고 취재했다. 수십년간 반공, 반북선전에 물젖어 북에 가면 숨도 제대로 못쉬는것으로 알던 그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쓰고 말하였으랴. 그럴수록 고향과 부모처자들을 그리는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남조선당국의 비인간적처사를 두고 사회계와 언론이 물끓듯 했다.

《북의 고향엔 소도 가는데》라는 기사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것도 이무렵이였다. 정주영이 소무리를 끌고 북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북으로 가는 소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비전향장기수의 절절한 심정을 옮긴 기사를 그 누구도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었다.

가면 오게 되고 오면 또 가게 되는 법, 그러나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비전향장기수들에게만은 왜 길이 열리지 않는것인가?··· 세기와 세기가 바뀌는 력사의 분기점 2000년에 들어서면서 내외의 정세에서는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도 실현되였다. 하여 남조선에서는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집권상층들까지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집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김대중도 마침내 2000년 3월 《베를린선언》을 통해 북남관계개선을 표방하였다. 하여 력사적인 4. 8북남합의서가 발표되여 온 민족을 격동시켰다.

 

《북과 남은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방문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절차문제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2000년 4월 8일》

 

눈석이가 시작되였다. 반세기이상 얼어붙어있던 반목과 대결의 얼음장이 쩍 갈라져나갔다. 그것이 산산쪼각으로 깨여져 력사의 기슭으로 밀려가기를, 영영 녹아 없어지기를 사람들은 눈물로 기원하였다.

 

×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뿌듯해지는 마음으로 옛 추억을 더듬고계시였다. 오래전, 어리실적의 일이 먼저 떠오르신다.

광복후인 1947년 어느 날이였다.

그날 어머님께서는 백마에 올라 정원둘레를 돌고계시는 그이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뛰여나와 야단법석을 하시는 리보익할머님을 웃으며 만류하시였다.

《걱정마세요, 할머니. 아무일 없으니 그저 보기만 하세요.》

그런데 백마가 갈개기 시작했다. 무엇이 못마땅했던지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소란스럽게 투레질을 하는가 하면 발통으로 땅을 구르며 금시 앞발을 쳐들고 뿌리쳐버릴 태세였다.

이번에도 어머님께서는 허둥지둥 말고삐를 잡으시려는 할머님을 막으시였다. 그리고는 어리신 그이께 청높이 말씀하시였다.

《고삐를 늦추지 말아. 단번에 길들여놔야 해!》

하여 그이께서는 고삐를 힘껏 당기며 두발로 말의 배허벅을 차시였다. 그러자 주인의 담찬 기개와 의지를 알아차린 령리한 백마는 곧 순종하여 투덕투덕 땅을 구르며 내닫기 시작했다.

진정 어머님께서 바라신것은 굴함없는 투쟁과 기어이 목적을 이루는 의지였었다.

그렇다. 훌륭한 미래는 절로 오지 않는다. 돈으로 사는것도 아니며 누가 선물하는것도 아니다.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전취되는것이다. 그러되 중요한것은 래일에 사는것이다. 래일을 내다보며 래일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 투쟁하는것, 투쟁하되 기어이 승리를 이룩하는것이다!···

창밖에서는 새벽빛이 희미해지고있었다. 아려한 고요, 이슬듣는 소리마저 들릴상싶은 정적, 하늘도 땅도 새날의 사변을 앞두고 정적속에 묻혀있다.

오늘은 2000년 6월 13일,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그이께서는 창문을 여시였다. 초여름의 신선한 대기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밤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하늘가 저 멀리에는 벌써 새벽빛이 파르스름하게 퍼져가고있다. 그속에서 금빛을 뿌리던 별들도 파랗게 마지막빛을 던지며 명멸하고있다.

그이께서는 멀리 대성산쪽으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검푸른 하늘아래 우렷이 모습을 드러내고있는 대성산의 웅자, 그 등판에서 고요히 미소짓고계시는 어머님의 모습도 분명해지는듯 싶으시였다.

《어머니!》

그이께서 조용히 불러보신다.

엷은 카텐이 바람결에 흐느적이며 그이의 얼굴을 간지른다. 그이께서는 카텐을 밀어놓으며 차츰 선명해지는 대성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신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머님계신 곳을 향하여 어머님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시는 그이이시였다.

별찌 하나가 포물선을 그으며 하늘전폭을 가로지르더니 주작봉너머로 사라져갔다. 불타는 운석, 별들이 사물거리며 어서어머님께 말씀드리라고 속삭이는듯··· 삼라만상이 숨을 죽이고있다.

 

어머니, 새날이 밝아오고있습니다. 조국통일의 려명을 불러오는 새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곡절도 많겠지만 길은 열렸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마음쓰시던 조국통일의 대통로에 첫 리정표가 세워지게 되였습니다. 아무튼 길이란 오고가야만 열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면 가게 되고 가면 또 오게 되고··· 그러느라면 잡풀은 짓밟히고 걸림돌은 치우게 될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곡절을 겪어왔겠습니까. 어머니, 저는 지금 마지막으로 조국통일문건에 서명을 하시던 수령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눈물을 금치 못하고있습니다. 그것이 수령님의 유훈으로 남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기에 저는 자나깨나 수령님의 유훈을 한치도 드팀없이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왔습니다. 수령님의 유훈을 끝까지 관철하기전에는 발편잠을 잘수 없다고 생각해온 저였습니다.

바로 어머님께서 일찌기 저에게 맘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언제든 고삐를 늦추지 말라고!···

오늘 우리는 북과 남의 첫 수뇌상봉을 하게 됩니다. 전 세계가 경탄에 찬 눈길로 지켜보고있을것입니다. 20세기를 마감짓는 오늘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분렬된 나라에서 적대적이던 두 쌍방의 수뇌상봉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제 여기 평양에서 어떤 결단이 내려질것인지 가슴을 조이고있을것입니다. 불안에 차서 안절부절 못하는 자들도 없지 않을것이고··· 나중엔 훼방을 놀고 삿대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러보려는 자들도 있겠지만 저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것들은 단번에 길들여 놔야 한다고!···

어머니,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성사시켜야 한다는것을 중점으로 못박아놓을 결심입니다. 바로 이것이 수령님께서 철칙으로 삼아오신것이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수령님께서 잠 못 이루며 마음써오신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것도 결착을 보려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까지 조국통일문건에 명기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의아해하는 편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왜 조국통일문건에 명기할 타당한 명분이 없단말인가, 한생을 다 바쳐 조국통일을 위해 싸워온 그들인데 그들에 대한 문제이자 조국통일문제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지 못한다면 다른 그 무엇도 다 필요없다! 라고 말입니다.

어머니.

저는 늘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광복후 어머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해 나선 일군들에게 새옷을 마련해주시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시던 일들을··· 때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때문에 수령님께서 밤새껏 정원을 거니시던 때에도 어머님께서는 새벽까지 함께 찬 이슬을 맞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저의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그들이였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희미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 전사들을 기다리시는 수령님의 마음속 아픔만은 시간도 세월의 흐름도 전혀 가시여내지 못한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던 저였습니다. 하기에 학창시절 로씨야에 포로된 프랑스 나뽈레옹군대의 병사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생각하였습니다. 그 포로들을 후날 로씨야에서 데려가라할 때 부르봉왕조는 나뽈레옹때의 포로들은 모른다고 하여 거의 모두가 수십년간 옥살이끝에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읽고 어쩌면 제나라 사람들인데 그리도 무정할수 있는가 하고 격분을 금할수 없었던것입니다. 그때 저는 인간에 대한 문제, 애국에 대한 문제, 령도자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일 어려운 고난의 행군때에도 언제 한번 그들을 잊은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쳐싸운 귀중한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혁명의 령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귀한 사랑으로 여겨왔습니다. 하기에 이번에도 그들에 대한 문제를 공동선언에 꼭 명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것입니다.

그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세월 싸워온것이겠습니까. 인도주의에 관한 문제로 걸고 세계의 량심에 호소하고 적들의 비인간적악행을 성토하고···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무적의 우리 군대의 위력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떨쳐보이고··· 마침내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게 되였습니다.

고난의 천만리길을 헤쳐온 끝에 희망찬 새날을 맞게 되였습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오. 이 아들을 민족의 아들로 키워주신 어머니, 한생 혁명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굴함없이 싸우도록 고무해주신 어머니, 이 김정일이 오늘은 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력사의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되였습니다.

이 승리의 소식을 보고드립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새날이 밝아오고있습니다. 투쟁으로 앞당겨온 새날, 새 아침이!···

 

피빛의 노을이 창살같이 동켠하늘을 꿰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파랗게 눈뜨고 그이의 마음속 대화를 엿듣고있던 별들도 소리없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