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제 7 장

4

 

겨울은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고산지대의 산봉우리에서 눈보라를 날리며 발악을 하는가 하면 계곡의 음달에서 얼음버캐를 버석거리며 음산하게 위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리없는 봄의 행진에는 견디여내지 못한다.

봄은 야단스레 소리치며 오지 않는다. 한결같이 숨쉬고 미소하며 눈더미와 얼음을 녹이고 개울가의 버들개지에 봄물을 올리고 말라붙었던 잡풀과 잔디를 쓰다듬으며 새싹이 움트게 하는가 하면 어느새 소문도 없이 개나리며 철쭉에 망울이 부풀게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봄은 조용히 깃든다. 양지쪽의 볕을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벌써 얼음장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봄은 숨쉬기 시작하는것이다.

그해의 봄도 그렇게 찾아오고있었다. 엄혹한 고난의 행군에 이어 강행군의 신들메를 더 힘껏 조이던 그때에 벌써 승리의 새봄은 시작되고있었다.

숨죽었던 공장들이 돌아가고 전야에서는 대규모토지정리를 위한 측량말뚝이 더 멀리 꽂혀지고있었다.

북남관계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기대되였다. 극악한 반민족적, 반통일적대결에만 매달려 발버둥치던 김영삼역도가 마침내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 밀려나버렸다. 그리하여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북남관계에서 눈석이가 시작되기를 기대하고 또 고대하였다.

 

2월 4일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와 성강을 비롯한 여러 단위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통일관계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변화된 정세에 맞게 공화국정당, 단체련합회의를 열어야겠다고 하시였다.

《그럼 련합회의에서 토의할 의제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북과 남이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민족의 출로를 함께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자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는 말마디들에 특히 력점을 찍으며 계속하시였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질시하고 대결하던것을 단합으로,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자신의 뜻으로 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자! 이것이 토의할 의제의 골자입니다. 이와 같은 제안을 남조선의 정당, 단체들에 편지로 알립시다. 제안과 편지에서 우리는 새로 들어앉은 남조선〈정권〉이 김영삼역도의 비참한 말로에서 교훈을 찾고 새 출발의 용단을 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언제 이 모든 획기적대책을 구상하시였는가? 그처럼 멀고 먼길을 이어오셨는데 언제 제안과 편지의 내용까지 줄잡아보셨는가?···

권형일의 생각이였다. 뿌잇해지는 눈길로 그이를 우러르며 감동에 젖어있었다. 수천리 눈보라길을 헤쳐오시며 무척 축가신 그이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밝은 해살이 밀물처럼 흘러들고있었다. 밖에서는 아무런 고뇌도 격정도 모르는 새들이 고드름에서 녹아 흐르는 물로 목구멍을 적시며 한바탕 지저귀고있었다.

그때 서기가 조용히 들어와 새로 제기되는 보고자료들을 꺼내여 그이께 드렸다.

사람들이 긴장해졌다. 지난해에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토의때 무장충돌이 보고되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자료들을 단숨에 훑어보신후 누군가의 번호를 누르시였다. 그리하여 권형일을 비롯한 일군들은 별안간 들이닥친 적막에 귀안이 징징 울리는것을 느꼈다. 그래도 지난해 여름에는 전쟁의 위험이 박두했음에도 모임을 계속하지 않으셨던가. 태연히 보고를 받으시고 《다사다난한 날》이라고 롱담까지 하셨는데 지금 그이께서는 무거운 안색이시다. 무슨 일이 또 생겼는가?···

권형일은 지금 한쪽에서 로씨야의 손님 싸쥐 우말라또바가 그이의 접견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상기했다. 로씨야의 평화 및 통일당위원장인 싸쥐 우말라또바는 며칠째 그이를 뵙고 가르치심을 받겠다고 간절히 청원해왔는데 오늘 비로소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이를 만나뵙게 된것이였다. 그렇지만 비상사건이 생겼다면···

그때 김정일동지께서 먼곳의 누군가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현오를 찾아내시오. 적들이 감히 그를 체포하려 한다면 엄중히 경고하시오. 그는 바로 최고사령관이 아끼는 귀중한 전사라고, 머리칼 한오리 다치는 날엔 용서치 않겠다고 말이요!···》

 

이날 전선중부의 솔개령초소에서 크지 않은 눈사태가 있었다. 산악지방에서 폭설이 내린후 산과 골짜기를 쓸어버리는 눈사태와는 전혀 달랐다. 무엇이 원인으로 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밋밋한 릉선이 반반해졌다고 한다. 릉선을 꿰질러가던 순찰조가 얼어붙고있던 등판의 눈더미를 두부모 자르듯 했던것이 원인으로 됐을수도 있다고 했다.

순찰조에 속해있던 심현오가 행불되였다. 병원에서 퇴원한후 안정치료를 계속하게 되여있었으나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온 병사로서 어떻게 병실에서 딩굴수 있겠는가고 우기여 순찰근무에 내보냈는데 남들과는 달리 중상당했던 몸을 제때에 날리지 못하여 눈사태에 밀려간것이였다.

림철사단장이 직접 보고를 올렸다. 전체 중대가 골안을 뒤지고있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중대장 유진국(지난해 림철이 철직조동시켰던)은 현오가 눈사태에 밀려 적측 비무장지대너머로 밀려간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심현오가 적들관할구역에 밀려갔다면 문제는 보다 엄중해진다. 자칫하면 지난해 여름처럼 무장충돌이 일어날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사를 구원해야 한다.

하여 그이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사를 구원하라고 명령하셨던것이다.

물론 이것은 군사적견지에서 극히 사소한, 보잘것없는 일로 여길수도 있다.

작전적문제도 아닌 한 전사의 일로 최고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구원전투를 벌리게 하는 일이 동서고금의 그 어느 군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무조건 구원하고 보고할것》을 또 명령하시였다.

오래도록 보고가 오기를 기다리시였다.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을 들고있는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와 군단병원에서 만나보신 전사의 모습을 거듭 그려보시였다.

 

×

 

중대장 유진국의 추측이 맞는것 같다. 골안의 눈더미를 다 뒤졌으나 현오는 없었다. 사단장 림철은 쌍안경으로 적측 비무장지대전방을 샅샅이 더듬었다.

눈사태가 그쪽으로 밀려내렸는데 중대는 거기서 멈추어섰다. 림철은 즉시 전연방송으로 심현오를 찾기로 결심했다.

출력이 높은 전연방송은 가까운 곳에서는 한마디 말도 알아들을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소리가 울려나가는 정면에서는 나무숲까지 몸부림친다. 그러므로 눈사태에 묻힌 심현오에게는 먼 우뢰소리처럼 들릴것이라고 그는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아직 전례가 없는 전연방송이 뢰우처럼 산과 골짜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병사 심현오, 동무를 찾는다. 전체 중대가 동무를 찾고있다. 말이 들리는가, 들리는가?··· 대답하라. 심현오, 총성으로 대답하라!···》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방송은 계속되고 적들도 우리측에서 눈사태에 밀려간 한 전사를 애타게 찾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적진에서 수색대가 산을 내렸다. 적아쌍방이 다 심현오를 찾기 위하여 눈에 파묻힌 골짜기를 샅샅이 헤치기 시작했다. 차츰 총부리를 맞댄 적아가 비무장지대에서 마주서게 되였다. 한마디 말도 없이 부서져나간 군사분계선표식물자리를 확인하며 서로가 한발자욱이라도 넘어서면 급사격을 가할 태세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었다.

눈보라가 휩쓸고있었다. 릉선우에서 날리는 눈가루들이 얼어붙은 골안을 뒤덮었다. 회오리치는 칼바람속에서도 적아쌍방은 상대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전진해갔다. 팽배해진 긴장감에 사람들은 강추위도 잊은듯 했다.

어느 누가 실수하여 한방의 총성만 울려도 류혈적인 총격전이 터질 침묵의 대결이였다.

 

×

 

현오를 정신차리게 한것은 밑둥아리가 꺾어져나간 고목이였다. 그 고목이 소리를 내고있었다.

그가 꽉 부둥켜안고있는 고목, 어떻게 되여 그것을 안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온통 뼈가 부서지는것같은 아픔을 느낀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였다.

희미한 어둠, 우르릉거리는 먼 우뢰소리··· 꿈을 꾸는듯 했다. 그러나 곧 벌어진 사태를 짐작할수 있었다. 처음 기억에 떠오른것은 무섭게 밀려내리던 눈더미의 파도였다. 이상한 소음과 함께 하늘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듯 했다.

《눈사태다!-》

누가 소리쳤던지··· 그는 남들처럼 은페물을 찾아 몸을 날릴 대신 커져오는 우뢰소리에 놀라 목을 빼들고 돌아보았다.

한순간 몸이 둥 뜨는것 같은 감각을 느끼는것과 동시에 암흑의 나락속에 태질을 당하였다. 무서운 격랑이 그를 떠싣고 드넓은 골바닥에 쥐여뿌렸던것이다. 총부혁을 목뒤로 걸고있지 않았더라면 무기조차 어데로 날려버렸을것이다. 순간의 타격에 뼈가 으깨여진듯 심한 고통을 느끼며 실신해버리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밑둥이 부러져나간 이 고목은 언제 부둥켜안았는가?··· 그 고목이 빠극거리며 이발가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그의 솜옷앞섶을 물어뜯는것이 또한 놀라왔다. 믿을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머리우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또 어찌된 일인가?···

그는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움직일수 없었다. 심한 아픔이 가슴을 찌르고 두발은 바위에 짓눌린듯 했다. 알고보니 굵은 고목이 그의 허리아래부분을 깔고있는것이였다. 발을 움직거려보았으나 끄떡도 없다. 온몸이 얼어버려 움직이지 못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얼어죽고마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공포에 짓눌릴수 있다. 공포를 모른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의 경우일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겨나가는가 하는데 있다.

현오의 머리속에 맨처음 떠오른것은 군단병원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며 하신 말씀이였다.

《···동무의 외할아버지 같은분들이, 비전향장기수들이 어떻게 살며 싸워왔는가를 생각해보오. 그런분들앞에서 〈우리 새 세대들도 억척같이 살며 싸우고있습니다!〉하고 떳떳하게 말해줘야지. 그들의 투쟁이 결코 헛된것이 아니였으며 그들과 같은 수백, 수천만의 영웅들이 자라고있다는것을 말이요.》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을 통일애국투사라고 말씀하시였다.

투사!··· 그런데 투사의 외손자가 눈에 묻혀 죽는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너의 이런 꼴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외할아버지가 아신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외할아버지는 34년동안이나 0. 75㎡의 감방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매일 끔찍스러운 고문에 시달리고 굶주림과 병, 어둠과 추위, 숨 막히는 더위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현오는 늙은 나무에 깔려 꼼짝하지 못하고있다. 보나마나 삭정이같은 늙다리나무일것이다. 눈속에 묻혀있다지만 외할아버지처럼 살가죽이 다 드러난 누데기 홑옷이 아니라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있다. 그런데도 여기서 꼼짝하지 못하고 죽는다는것을 생각이나 할수 있는 일인가!··· 그는 입술을 옥물고 몸을 움쩍거렸다. 차츰 눈구뎅이가 생기는것 같다. 이번엔 총부혁을 지그시 당기며 가슴팍을 짓누르는 통나무에 틈을 내였다. 그러자 전혀 뜻밖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좀전까지는 군복앞섶을 물어뜯던 통나무가 찍- 찍 신음소리를 내는것이다.

무서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통나무가 이발로 물어뜯고 찍- 찍 소리를 낸다는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는가?··· 그는 한손을 가슴우로, 배쪽으로 밀어보았다. 한순간 뭉클한것이 잡히며 찍!- 하고 빠져나갔다. 불시로 머리칼이 곤두서고 와들짝 하는 몸의 경련에 등어리가죽이 찢어지는듯 했다.

다음 순간 손에 잡혔던 그것이 그의 가슴우로, 턱밑으로 기여올랐다. 통나무에 짓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던 쥐새끼가 턱밑으로, 얼굴우로 기여오르는듯 했다. 또다시 푸들쩍거린 경련에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으시시 몸을 떨었다. 그통에 그를 뒤덮고있던 눈더미의 공간이 좀 더 버긋해진것 같았다.

아직 현오는 이렇듯 몸서리치는 일을 겪어본 일이 없다. 커다란 쥐, 쥐만 보면 몸서리치던 그였는데 턱을 허비고 코밑에까지 주둥이를 들여미니 까무라칠 지경이였다. 통나무와 눈더미에 짓눌려있지만 않았어도 버들쩍 몸을 솟구쳐 달아났을것이다.

한동안 그는 실신해버린듯 늘어지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커다란 쥐, 아니, 고양이 같은것이 움직이고있다.

날카로운 발톱이 금시 입술을 찢는가 했는데 출로를 찾지 못하고 또 턱밑으로 기여내렸다. 그때에야 현오는 자기의 얼굴과 목을 덮고 쓸어가는 부드럽고 따스한 털의 감촉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 기다란 꼬리로 미루어 그것이 청서라는것을 깨달았다. 초소의 군인들과 인연이 깊은 청서, 전사들은 대소한추위나 폭설이 내릴 때 그것들에게 먹을것을 뿌려주기도 했었다.

숨을 할딱거리며 그것의 꼬리를 쓸어주었다. 그놈도 고목과 함께 눈사태에 밀려온 모양이다. 다리를 상했는지 움직거릴 때마다 찍- 찍 소리를 지르군 한다. 이 미물같은것, 사람을 놀래우다니, 어쨌든 잘됐다, 동무가 생겼으니, 꼼지락거리지 말구 잠자코 있어. 내 이제 살려줄테니···

눈무지가 밑으로 다져지며 틈이 점점 더 벌어졌다. 그는 어펑바위우에 깔려있는듯 했다. 밑으로는 더 넓힐데가 없어 옆으로 빠지려 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여 팔과 어깨, 다리를 움쩍거린다. 한번 더, 한번 더!···

아무것도 보지 못하나 빛은 감촉된다. 머리우 저 눈더미우에서는 태양이 빛날것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이 제일로 그리워했다는 태양, 태양의 빛발이 두텁게 쌓인 눈무지를 파고들며 현오를 부른다. 정말 태양도 목소리를 가진것인가?··· 어렴풋이 밝아오는 빛살처럼 퍼져오는 목소리···

《심현오동무, 대답하라. 심현오.》

분명 그를 찾는 목소리였다. 그는 감각을 잃어가는 손으로 머리우의 눈더미를 마구 긁어내기 시작했다. 얼마후엔 또 귀를 강구며 숨을 죽인다.

《심현오, 어데 있는가. 용기를 잃지 말라. 힘을 내라. 심현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무의 소식을 기다리고계신다. 들리는가. 심현오?!···》

태양에도 목소리가 있다. 열과 빛과 뜨거운 음성이 있다는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는 엉엉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총잡은 병사가 운다고 나무람하지 말라. 울어도 크게 울줄 아는게 우리 병사들이다.

그를 깔고있던 고목이 움쭉거리기 시작했다. 나무가지에 긁히고 찢기여 손과 목덜미에서 피가 흐르는것도 몰랐다. 정신없이 헉헉 흐느끼며 눈더미를 파헤치고는 또 통나무를 밀어낸다. 그러는속에서도 청서란 놈이 상할가봐 자기의 옆구리쪽에 끄당겨놓는것을 잊지 않았다. 점차 먼 우뢰소리가 커지며 웅글게 파도쳐왔다.

 

×

 

사단장 림철이 솔개령초소에 도착한지 30분가량 지났을 때에야 심현오가 눈구뎅이에서 기여나왔다. 눈사태가 일어났을 때부터 3시간이 지났다.

《현오다!-》

누군가 웨쳤는데 사람의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괴한것이였다.

너무도 기쁘고 반가와 전사를 찾아 헤매던 전체 중대가 눈무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목터지게 웨쳤다.

《현오!-》

《현오동무!-》

그러나 밀물처럼 휩쓸어가던 전사들이 우뚝 멎어섰다. 현오는 비무장지대 적측구역에서 솟아나왔던것이다.

감시소에서 쌍안경을 들고 살피던 림철은 오한이 나는듯 몸을 떨었다. 우리 전사들은 더이상 달려나가지 못하고 숱한 적들이 떼구름처럼 현오를 둘러싸는것이였다. 현오가 뭐라고 웨치는듯 했다. 가철식자동보총을 배허벅에 붙이고 적들을 향해 위협하는 모습이 쌍안경의 대물렌즈에 또렷이 찍혀졌다. 그가 적측의 비무장지대구역에 너무 깊숙이 밀려들어가있었으므로 이쪽에서는 피타게 부르짖고있을뿐이였다. 중대장 유진국이 무어라고 웨치자 전체 중대가 일제히 사격태세를 취하는것이 보였다. 적아간에 류혈적인 충돌이 벌어질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림철이 소리쳤다.

《이 전화를 방송기에 련결시키라!》

그의 뒤에 서있던 군인들이 달려갔다. 림철은 그들을 돌아볼새도 없었다. 누구든 한방의 총성만 터치면 수백명에 달하는 량편의 군인들이 서로 몰사격을 퍼부을 순간이였다. 몸을 숨길데도 없는 개활지대, 그마저 눈사태로 반반해지고 하얀 눈우에 몰켜선 적아쌍방은 눈감고도 쏴눕힐수 있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있었다.

지난해의 무장충돌과는 정반대의 정황이였다. 지난해에는 적들이 정상적인 순찰근무를 수행하는 우리 병사들에게 먼저 사격을 가하였지만 지금은 우리 병사가 적측구역 깊숙이 들어가있다. 전후사연이야 어떻든 우리 병사는 적진에 들어가있고 적들은 그를 사살하거나 포로할수 있다. 과연 적들은 우리쪽에 경계의 총부리를 겨누고있는 한편 여라문놈이 현오에게 한발한발 조여들고있었다.

드디여 방송기와 련결되였다. 림철은 숨을 내뿜기에 앞서 퍼릿해진 볼을 후들후들 떨었다.

《모두 내 말을 들으라!》

찌렁찌렁 계곡을 울린 웨침소리, 방송기가 최대출력으로 사단장 림철의 목소리를 터쳤다.

《나 조선인민군 제51사 사단장 림철이다.》

새된 음파가 폭풍치듯 전연을 휩쓸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던 적아쌍방이 일시에 감시소쪽으로 머리를 들었다.

《인민군병사 심현오는 눈사태에 밀려갔다. 누구도 그를 다칠수 없다. 만약 그의 머리털 한오리라도 건드린다면 전체 사단이 포화를 들씌울것이다. 들었는가?··· 조선인민군병사 심현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전사이다. 우리 장군님의 전사에겐 죽음이란 없다. 심현오, 나를 기다리라. 내가 직접 나가겠다!》

명령이 끝났다. 우뢰소리처럼 휩쓸던 방송음파가 멎자 짱!- 하는 전류의 흐름소리와 함께 돌연 정적이 깃들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속이 불에 달군듯 웅웅거렸다.

무시무시한 정적, 움직이는것은 오직 사단장 림철뿐인듯 했다. 감시소를 내리는 그의 발밑에서 눈덩이들이 사태처럼 굴러내렸다.

누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였는가?··· 최전연부대를 지휘하는 사단장은 수백정의 총부리가 겨누어진 대결장에 몸을 내댈 권리가 없다. 그의 임무는 사단을 지휘하는것이지 분대장이나 소대장, 중대장들처럼 총을 쏘며 육박전을 벌릴 권리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심장의 명령이라는것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아끼시는 한 전사의 생명이 경각에 이른 지금 사단장이라 해서 지휘소에 박혀 쌍안경으로 지켜보고만 있을수는 없는것이다.

누군가 헐레벌떡거리며 뒤따라 왔다. 사단정치위원이였다. 그는 언제 여기에 나타났는가?··· 하지만 그가 나타난것이 고마왔다.

《사단장동무, 저두 같이 갑시다.》

《아니, 정치위원동문 감시소에 위치를 잡고있는게 더 좋습니다.》

정치위원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자기가 대신해서 나가겠다고 우기지도 않았다. 대신 림철에게 무선통신마이크를 내밀었다.

《한번 더 경고를 하시오. 못을 박을 땐 끝까지 때려박아야지요.》

옳은 말이다. 그는 무선마이크의 누르개를 누르고 다시 엄엄하게 경고했다.

《전체 중대군인들, 내 말을 들으라. 적들도 내 명령을 들으라. 내 명령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것. 모두 총을 내릴것!》

적들도 우리 병사들도 일제히 총구를 내렸다.

《경고한다. 한방의 총소리라도 울리면 벼락을 칠것이다!》

또다시 정적이 깃들었다. 비탈면을 휩쓸던 눈바람소리도 죽어든듯 했다. 적측 봉우리의 초소들(지난해에 날려버린후 새로 지은것들이다.)에서는 물론 심현오를 포위한 수색대도 시꺼먼 형체들로 꼼짝하지 않았다. 지난해의 충돌 때 무자비한 보복타격을 맛본 적들이였다.

분계선철망이 눈앞에 있었다. 눈사태에 밀리고 뒤집혀 뭉테기로 버려진것들이였다. 그앞에 이르자 림철은 현오를 둘러싼채 얼어붙어있는 적들을 향해 구령을 쳤다.

《우리 병사에게 길을 내주라. 모두 좌우로 10보 물러 갓!》

구령이 내리자 절컥거리는 소리들로 부산스러워졌다. 총가목이 장구류에 부딪치고 너무 덤벼치던 나머지 총구가 철갑모를 때리기도 하였다.

적들이 좌우로 쭉 물러서자 현오앞에는 눈덮인 통로가 림철에게까지 열리였다.

《현오!》 림철이 또 명령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정보 앞으롯!》

《알았습니다, 사단장동지!》

눈물에 젖었으나 쨍쨍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눈무지에 발목까지 푹푹 빠져 도저히 정보로 나올수는 없었다. 그러면 무슨 대수인가. 덤비지 말고 힘차게, 머리를 높이 들고!··· 림철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고있었다.

현오가 걸어왔다. 아니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을 헤염쳐왔다. 그래도 총부혁만은 꽉 틀어잡고 놓지 않는다.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있고 팔목과 손등에 굳어져있는 피덩이들은 시꺼멓게 보인다.

마침내 그가 눈앞에 이르자 림철은 두팔을 벌리며 얼싸안았다. 현오는 우는듯 했다. 목이 메여 꺼이꺼이 중얼거렸다.

《사- 사단장동지, 너무 꽉 안지 마십시오. 청서가 수- 숨을 못쉽니다.》

《뭐 뭐라구?》

《글쎄 이놈의 처- 청서가···》

그제야 림철은 그의 헤쳐놓은 군복앞섶에서 대가리를 내밀고있는 청서를 보았다. 반득거리는 눈으로 얄궂게 변하는 천지만물을 열심히 내다보는 새까만 청서, 지금 그놈은 자기가 보금자리를 튼 정든 릉선을, 정든 고향을 애써 찾는것인지도 모른다.

《이건 또 뭐요?》

림철의 물음에 현오는 흐느낌소리로 속삭이였다.

《나와 같이··· 파묻혀있었습니다. 사단장동지, 적들속에··· 홀로 내버려둘수 없어서···》

전체 중대가 달려온것은 그 순간이였다. 맨처음 얼굴이 온통 젖어있는 중대장 유진국이, 그 다음 수십명 전사들이 달려와 현오를 부둥켜안고 딩굴었다. 한순간에 눈사람들의 덩어리를 이루어 눈속에서 울며 웃으며 버둥거렸다.

여전히 적들은 얼어붙은 자세 그대로였다. 아마도 적들은 이들이 무엇때문에 울고웃으며 한덩어리가 되여 딩구는지 리해할수 없을것이다. 무자비한 사단장 림철이 무엇때문에 이름도 없는 한 전사를 구원하려 직접 수백개의 총구앞으로 나왔는지 도저히 알수 없을것이다.

기겁하여 찍찍거린것은 청서였다. 어느새 현오의 품에서 빠져나와 눈가루들이 뽀얗게 일고있는 릉선쪽으로 꼬리를 끌며 기여오르고있었다.

이윽고 유진국이 중대를 정렬시키기 시작했다. 적들속에 밀려갔던 동무와 눈속을 딩굴던 전사들이 재빨리 자리를 차지했다. 눈보라도 죽어들고 차츰 겨울날의 설핀 해빛이 땅땅 얼어붙었던 산과 골짜기를 따스한 빛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중대 우로- 돌앗, 앞으로- 갓!》

유진국의 구령에 따라 걸어총을 한 병사들이 눈을 차며 걸어왔다. 맨 앞장에 선 중대장이 림철에게 대렬경례를 했다. 림철도 장령모옆에 손을 올리며 답례했다.

전선중부의 솔개령초소는 고요했다. 아무일도 없은듯 했다. 바로 여기서 또 한차례의 무장충돌이 일어날번 했다는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례사롭고도 평범한 최전연초소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고있었다.

얼마후 심현오를 구출해온 소식이 직접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되였다.

《수고했소, 사단장. 그럼 자기 임무를 계속 수행하시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역시 한동안 밀리고있던 사업을 계속하시였다. 그리하여 이날 로씨야손님과의 접견은 오후에야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