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5

 

제 3 장

5

 

세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은 오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지리산의 추억이 그들을 흥분시켰고 눈물을 머금게 했다. 하정례와 아라의 행처를 묻는 한 늙은이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추억이 그들의 가슴을 허비고 까닭모를 애수로 저릿저릿한 아픔을 더해주었던것이다.

다음날 류은혁은 떠나갔다. 주민등록증도 없이 출소증명서만 가지고 옛 동료들을 만나러왔던 그였으므로 구청의 독촉에 하는수 없이 떠나간것이다.

그런데 그가 떠나자 또 귀신같은 늙은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병택이 손바닥으로 송화구를 막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진서형, 또 그 사람이요. 진서형을 찾구 있소.》

지긋지긋한 느낌이였지만 전화를 받지 않을수 없었다.

《누구시오. 뭣때문에 자꾸 나를 불러대는거요. 이젠 터놓을 때가 되지 않았소?》

《김진서선생.》하고 저쪽의 늙은이가 괴롭게 가르릉거렸다. 《날 좀 도와주시우. 따로 만나게 해주시면··· 다 알게 되리다.》

《왜 떳떳치 못한데가 있으시오? 여기로 찾아오지 못하는가말이요.》

《부탁합니다. 김진서선생, 간절히 빕니다. 선생께 해될 일은 없으니 좀 나와주셔요. 예? 저녁산보를 하는셈치구··· 그렇게 하시죠?》

《···》

이쪽에서 거절할가봐 겁내는듯 늙은이는 바싹 매달렸다.

《고맙습니다. 김진서선생, 그럼 택시기사(운전사)를 보내죠. 꼭 혼자서 오십쇼.》

가릉가릉하는 목쉰 소리에 애써 친밀함과 동정을 사려는 처량한 음조까지 섞으며 늙은이는 간청했다. 그리고는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떤 늙은이일가. 하정례도 잘 알며 아라의 행처를 찾지 못해 몸부림치는 늙은이, 과연 그는 누구일가?

무엇인가 음침한, 곰팡이냄새가 낀 과거의 유물을 냄새맡듯이 께름직한 기분이였다. 그러나 자기를 숨기는 그 늙은이의 정체를 꼭 밝혀야만 했다. 하여 그는 김병택이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것을 억지로 눌러앉혔다.

《귀신은 아닐테니까 걱정할건 없소. 혼자서 와달라고 부탁했는데 무에 겁나서 둘씩이나 가겠소. 어쨌든 가서 만나봅시다. 어떤 늙은 도깨비인지.》

날이 어두워서야 택시운전사가 나타났다.

《김진서선생님을 모셔오라고해서 왔어요.》

《날세.》 진서가 모자를 쓰며 나섰다. 《도대체 누가 나를 찾던가?》

《모르겠어요. 전연!··· 늙은분이던데···》

택시는 좁은 골목길을 빠지자 시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무등산방향으로 한참 달렸다. 무등산의 주봉 장원봉이 시꺼먼 웅자를 하늘에 뻗치고 관광호텔과 조선대학교의 무리등불빛들을 음울하게 내려다보고있었다. 주봉과 잇달려 솟은 이림산, 삼각산, 화개산, 백마산, 신성봉, 칠봉산, 삼룡산들도 흘러간 피어린 력사의 자취들을 더듬으며 묵묵히 숙고하고있는듯··· 그렇다. 김진서는 그 언제든 험준한 산봉우리들을 볼 때마다 비명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쩌르르해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차가 몇번이나 방향을 바꾸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어데로 그를 실어가건 상관할바가 아니다. 어떤 괴한들이 나타나건 그것도 대수롭지 않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그였으므로 하느님앞에 불리워간대도 놀라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있은것은 천상의 하느님보다도 더 놀랍고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는 뜻밖의 살아있는 실체였다.

차가 멎었다.

《다 왔어요. 선생님.》 택시운전사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기념탑앞에서 기다릴거라구 했어요. 가서 만나보구 오십쇼.》

마가을의 밤은 무던히도 차고 을씨년스러웠다. 아마도 늙고 병약한 탓이리라. 그는 목깃을 올리며 포석길을 걸어갔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앞에까지 이르렀으나 사위는 싸늘한 바람결에 부대끼는 나무들의 설레임소리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그는 솜옷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그앞을 천천히 오락가락했다. 기념탑을 비치는 불빛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갔다.

이번엔 탑의 뒤면으로 돌아가보았다. 누군가 숨어서 그를 살피고있는것일가?··· 김진서가 옳은가고 엿보며 확인하는것일가?··· 그는 탑에 새겨진 비문을 훑어보았다.

그 글발을 처음 읽는것도 아니건만 다시금 눈여겨 살펴보았다.

 

단기 4262년 11월 3일 이 날은 광주학생들이 일제의 탄압에 항쟁하여 일어선 민족정기의 날, 굴욕으로 사는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기로써 너도나도 뛰쳐나서자 이에 호응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학생들이 무릇 5만 4 000명 혹은 쇠사슬에 묶이여 철창아래 갇히였으며 또 혹은 피를 뿜고 쓰러졌으되···

 

별안간 그는 쑤시는듯 한 아픔에 숨쉬시가 헐치 않아 헐씨근거리기 시작했다. 《쇠사슬에》, 《철창아래》, 《피를 뿜고》라는 글발들이 쇠꼬치처럼 가슴을 찔렀다. 오랜 세월 아물지 못한 마음의 상처에서 피가 뿜어나오는듯 싶었다. 꼼짝하지 않고 서서 계속 비문의 글줄을 더듬었다.

 

···그날 그들이 높이 들었던 정의의 홰불은 그대로 력사위에 길이길이 타오르나니 어허! 여기 흐르듯 고인 그들의 피와 눈물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마르지 않을것이며 또한 여기 서린채 깃들인 그들의 넋과 뜻은 겨레의 갈 길을 밝히 비치리로다.

 

단기 4286년 11월 3일

여기에 모든 뜻있는 이들이 힘과 정성을 모아 이 탑을 세우다.

 

또다시 그의 눈앞엔 지리산, 백운산, 백아산, 력기산들과 수많은 렬사들, 원혼들이 떠올랐다. 리현상, 박종하, 김흥복, 리진범, 리영회, 김선우, 양봉순, 김지회, 박신규와 전남도당 박영발, 전북도당의 방준표, 충남도당의 박우현··· 격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했거나 최후의 순간에 자폭한 유명무명의 렬사들··· 그들을 위한 기념비는 왜 없는가.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새긴 기념탑은 언제 가야 지리산, 백운산, 태백산, 덕유산, 죽령과 락동강반에 세워질것인가?··· 진정 이 나라의 모든 《뜻있는 이들이 힘과 정성을 모아》 탑을 세우고 력사에 길이 새겨줄 그날은 과연 언제 올것인가?···

발밑에서 가랑잎들이 부시럭거리며 엉켜돌아갔다. 기념탑에 비쳐진 불빛마저 추위에 떨며 파르스름하게 빛을 잃어가는듯 했다. 하지만 력사는 얼어붙지 않는다. 그것은 지워버릴수도 위조할수도 없다. 력사는 불태울수도 없다. 력사의 진실을 감추려고 책들을 불살라버린 씨저, 히틀러, 진시황과 같은 독재자들도 있었지만 그 불길은 오히려 진실과 허위, 선과 악만을 더 낱낱이 밝혔을뿐이다.

그는 머리를 수굿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기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와있는지도 잊고있었다.

갑자기 흠칠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기념탑뒤의 숲에서 아무 소리도 없이 시꺼먼 형체가 나와 그를 막아선것이였다.

《누구요?》

진서의 놀란 물음에 상대는 쿨럭쿨럭 괴롭게 기침을 터쳤다.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둠속에 나섰지만 백발에 등어리가 굽고 마른 삭정이처럼 빼빼마른 늙은이라는것이 확연히 알렸다.

《당신이 나를 불렀소?》

《그렇습니다, 김진서선생.》

술에 망기진듯 한 거쉰 목소리였다. 전화에서 듣던것보다 더 탁하고 김빠진 소리였는데 어둠속에서 번득인 눈빛만은 얼음장같이 차고 날카로왔다.

《당신은 누구요?》

그가 한걸음 나서자 상대의 늙은이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뒤걸음쳤다.

《진서선생, 날 좀 도와주시오. 보다싶이 난··· 얼마 못사오.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내 딸을 만나고싶어서···》

《딸? 누가 당신의 딸이요?》

《전화로 이미 말했지요, 아라!··· 그가 바로 내 딸이요.》

드디여 아라의 아버지가 나타난것이다.

《난 압니다.》 귀신같은 늙은이가 계속했다. 《아라에 대해서 제일 잘 아시는분은 당신과 하정례··· 물론 40년전 일이긴 하지만 선생이 출소했다는걸 아라도 알게고··· 소식이 왔겠는데···》

《난 모르오.》

《그러지 마시오. 제발··· 이 늙은이의 마지막부탁을 들어주시오.》

《당신이 누군지 그것부터 밝히시오.》

흥분으로 하여 홧홧 달아오르는 볼을 실룩거리며 진서는 그한테로 바싹 다가섰다. 이번에는 그가 뒤걸음치지 않았다. 하여 진서는 수수께끼의 늙은이를 자세히 살펴볼수 있었다. 웬일인지 소름이 끼쳤다. 류달리 험상궂게 생긴것도 아니고 음험하게 이발을 드러낸것도 아닌데 오골조골한 그 주름진 얼굴의 창백함은 꼭 무덤속에서 나온 사람같았다.

《뉘시오?》

《정말 모르시겠소?》

등굽은 늙은이 되물었다. 무엇때문인지 이발을 떡떡 마주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짜냈다.

《나요. 차일평···》

《뭐?!···》

김진서는 한순간 후려맞은듯이 비칠했다. 차일평- 그것은 원한과 증오의 대명사였다. 이 저주로운 배신자때문에 피흘리며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소리가 일시에 기차의 기적소리마냥 거칠게 째지는듯 뇌리를 찌르는것을 의식했다.

《네놈이··· 살아있었구나. 벌레같은것!》

크나큰 충격에 온몸이 지끈거리고 발밑의 땅이 꺼져 천길나락속에 떨어지는듯 눈앞이 휘휘 돌면서 구토감을 일으켰다.

《배신자, 인간쓰레기!···》

설설 끓는 증오가 독가스처럼 뿜어나오고 경련을 일으킨 그의 입술이 푸들거렸다.

《네놈이 아직까지···》

혀가 굳어져 돌덩이가 된듯 말을 이을수 없었다. 몸서리치는 스산함과 살을 지지는듯 한 모진 경련··· 그는 무서운 힘으로 배신자의 살멱을 움켜쥐였으나 웬일인지 짱- 하고 손끝까지 퍼져가는 전률에 피를 쏟는듯 비청거렸다.

《아- 아니 진서선생.》 차일평이 목을 비틀며 신음하였다. 《이러지 마시고··· 그것만 대주시오. 제발 그것만··· 내겐 아무것도 남은게 없소. 아라만 찾을수 있다면··· 내 보수를 후하게···》

《죽어라- 아-!-》 하고 그는 울부짖었다. 《죽어라- 아!-》

더러운 그자의 백발머리를 돌로 짓모아놓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한 손은 여전히 차일평의 살멱을 틀어잡고 다른 손으로는 발밑을 더듬었다. 손톱이 젖혀져 찢기는것도 모르고 소로에 깔아놓은 포석을 잡아뜯으려하는데··· 홀연 온몸의 힘살이 푸들쩍! 하면서 눈앞이 몽롱해졌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피가 벌려진 입으로 울컥울컥 쏟아져나오는것을 마지막으로 의식하며 그는 차디찬 포도우에 무릎을 꿇고 구겨박혀버렸다.···

 

다음날 신문 《한겨레》는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씨 뇌졸중으로 광주기독교병원에 입원》이라는 짤막한 기사를 냈다.

또 다음날엔 거제도에서 비전향장기수 정대천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랜 세월 생사를 함께 했던 출소장기수들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