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이팔청춘의 나이에 령어의 몸이 되였다가 반백이 되여서야 세상밖으로 나오신… 당신 들은 여전히 청춘이셨습니다. 오히려 청춘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열정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지리산처럼 크고 그 산자락만큼 넓었습니다.···

(남조선《련합뉴스》 정영대의《지리산후기》중에서)

 

1

 

아침이였다. 채석장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이가 누구보다 일찍 나와 진서를 찾았다.

《이것보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또 신문에 났네요. 따님들이 베이징에 가서 국제인권위원회랑 유엔고등판무관에게 메쎄지도 보냈구요. 보세요, 여기 있지 않아요!》

진서는 별안간 마비된듯 싶었다. 따님들이 어데론가 가서 편지를 보냈다는 말만이 종소리처럼 귀안에서 징징거렸다. 데설궂은 젊은이가 휘-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아직두 내 말을 짜장 못믿겠다는거죠? 아하- 어서 보시라는데두요!》

그제서야 진서는 시꺼멓게 두드러진 광대뼈를 실룩거리며 신문을 받아들었다. 젊은이가 손끝으로 꾹꾹 눌러대는 곳을 보니 《이 사람의 삶》이라는 고정란에 《북녘고향땅에 나를 보내주오》라고 크게 찍힌 제목과 《비전향장기수출신 김진서씨》라는 부제도 눈에 띄였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신문을 거머쥐고 밖으로 나갔다. 북슬개가 왕왕 짖으며 뒤따랐다. 젊은이가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아침해살이 신문의 작은 글자들까지 선명하게 비쳐주었다. 진서는 정신없이 그것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장홍채석장에서 고역을 치르는 김국홍씨는 무엇보다도 고향산천과 혈육이 그립다. 김씨가 태여나 자란 곳은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리, 주민등록증에는 김국홍으로 적혀있지만 김씨의 원래 이름은 김진서. 사상전향을 거부한 비전향장기수출신이다···》

그 다음부터 그의 경력이 소개되고있다. 아니 그가 보고저 하는것은 자신에 대한 주해표가 아니다. 뭉청 잘라버리듯 기사를 건너뛰며 살핀다.

《김진서씨와 같은 비전향장기수들은 출소뒤에도 보안관찰법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 거주지를 옮기거나 3일이 넘는 려행을 떠날 때에는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장기수들끼리의 만남과 회합도 금지되여있다. 표현, 집회, 려행, 사생활의 자유에 실질적인 인권침해를 당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간절한 김씨의 바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것이다. 김진서씨의 이러한 바람은 북한송환운동이 좌절되자···》

이것도 아니다, 또 건너뛴다.

《김진서씨 송환운동이 벌어진것은 몇해전인 93년 리인모로인을 송환해 해빙분위기가 조성되자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김재열목사와 불교인권위원회 진관스님 등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이 〈김진서, 한제완, 김병택송환추진본부〉를 구성해 적십자사와 통일원에 북송환을 탄원했다. 그러나 이 탄원은 통일원이 외면해 좌절되였다.》

또 몇줄씩 뛰여넘는다. 드디여 《북한의 딸 아버지 송환 간절히 원해》라는 소제목을 발견했다. 숨을 돌리고 천천히 한글줄씩 눈으로 더듬기 시작한다.

《김진서씨는 올해 6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앞으로 직접 탄원서를 제출했다. ··· 로동할 능력도 없는 병든 로인을 고향으로 보내 남은 여생을 가족과 함께 보낼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제네바협정에 따라 전쟁포로를 교환할 때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갔어야 할 사람을 군사재판으로 징역을 살게 하고 지금까지 붙잡아놓는것은 국제법위반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송환을 반대했다. 93년 3월 리인모로인을 송환했다가 북한의 체제선전에 리용만 당했다는 국내 보수세력들의 강한 반대때문이였다.···》

《현재 김씨와 같은 비전향장기수는 국가정책상 제3국을 통해서 북한주민과 만나는것도 금지되고 통신만 허용된다.···》

드디여 그가 찾고있는 대목에 이르렀다. 두 딸 화순이와 정순이가 베이징에 또 갔다고 한다. 어제는 로씨야, 일본, 도이췰란드, 중국에서 전화를 걸고 편지도 보내오더니 지금같이 조국에서 가장 극심한 곤난을 겪고있을 때 또다시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으니··· 가슴이 뻐근해났다.

《비데오카메라앞에서 자작시를 읊는 맏딸 김화순씨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였다. 듣고있는 사람들모두가 울어 끝내 회장은 눈물바다가 돼버렸다.···》

신문은 화순이가 읊은 시 몇련도 실었다.

 

아버지, 아 아버지!-

목놓아 불러도 대답없는 아버지

어찌하여 못오십니까

그리도 가까운 사흘길을

 

목이 칵 메였다. 신문에 찍힌 글줄들이 방울지어 떨어지는 눈물에 젖어들었다. 조국에서 대국상을 당한이래 무서운 시련을 겪고있으므로 한 늙은이에 불과한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리라고, 괴롭지만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해온 그여서 더더욱 충격이 컸다.

채석장골안에는 밤이슬에 젖은 투명한 적막이 서렸다. 아침해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나무잎사귀들이 조용히 설레였다. 진서는 사물거리는 두눈을 쪼프리며 파란 하늘가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제 한몸조차 가누기 힘들어하는 병약한 늙은이 자기를 조국은 여전히 잊지 않고있다. 기어이 그를 데려가려고 모진 시련속에서도 힘껏 애쓰고있다. 눈물젖은 딸의 목소리로 정다운 조국이 그를 부르고있는것이다.

《고맙습니다, 김정일장군님. 이 고마운 은정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겠습니까. 마음속 근심도 하많으시련만 저같은것까지 위해주시려니 언제한번 마음편하실 날이 있겠습니까!···》

신문을 가져온 젊은이는 북슬개 《도라》를 안고놀다가 두눈을 뒤룩거렸다. 비전향장기수로인의 경건한 표정을 해석해보느라고 애쓰는듯 싶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물러가고있었다. 11월초의 어느 날 진서는 더는 채석장에서 고된 일을 계속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채석장인부들이 그를 차에 실어 광주시 산수동의 《빛고을(광주라는 한자풀이)탕제원》으로 보냈다.

며칠 누워있어야 했다. 함께 기거하던 김병택이 극진히 간호해주었다.

김병택은 본래 인민군전사로서 1951년 단양에서 미제침략군의 세균전만행으로 재귀열에 걸려 산중의 동굴속에 떨어져있다가 마침 남하하는 리현상의 남부군에 합류되였다. 그후 지리산에서 김진서와 알게 되고 이어 광주포로수용소와 대전교도소에서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피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김진서의 병치료를 위해 며칠밤을 꼬바기 밝혔다. 그의 침술과 김진서 자신의 지압법(손가락으로 침혈을 눌러 치료하는 방법) 그리고 《송추위》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등 여러 단체 인사들과 종교인들의 방조가 있어 사흘후 김진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수십년간의 옥중고초로 피페해진 몸이였지만 최악의 조건과 병을 이겨내는데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있는 그들이였다.

사실 비전향장기수들치고 침술과 지압법 등 자체치료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나 없다. 오랜 세월 악착스러운 고문과 기아급식으로 만신창이 된 몸을 스스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김진서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날 《한총련》소속대학생들 10여명이 탕제원으로 찾아왔다. 녀대학생들도 여럿이나 끼웠는데 그들은 《김진서, 김병택선생님들의 송환을 기리는 좌담회》라고 쓴 프랑카드와 비데오촬영기도 가지고왔다.

건강과 생활상 편의에 대한 떠들썩한 인사말이 있은후 전남대학교 학생회장이라는 젊은이가 아무런 격식도 없이 모임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말을 하였다.

《세간에서는 선생님들을 〈통일의 전사〉 또는 〈통일의 전령〉이라고 부릅니다. 참으로 선생님들의 삶 그것은 치렬한 싸움의 련속이였고 통일을 위한 노두돌이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송환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 먼저 노래에 담아볼가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젊은이들은 서로 어깨겯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풀 한포기도 자유로울수 없는

식민의 아들딸들아 어서 일어나거라

 

최근 대학가들에서 널리 불리우는 노래라고 한다. 분렬된 조국의 아픔에 대하여, 그 아픔에 외면할수 없는 새 세대의 자각에 대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노래부르고있다.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비전향장기수로인들에게 자기들의 뜻과 의지를 노래에 담아 터놓고있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쓰러지지 않고

통일조국으로 가는 길 힘차게 걷자

 

그러면 통일조국으로 가는 길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가?··· 자연히 모임은 이런 론제로부터 시작되였다.

모두 김진서, 김병택 두 로인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고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난 말이죠.》하고 리영란이라는 녀대학생이 가늘게 부르짖었다.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처럼 싸우면 된다고 보는데요. 선생님들의 치렬했던 삶을 력사의 자양분으로 삼아 결코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남과 북의 혈맥을 이어가는거죠. 안그러세요?》

고수머리젊은이가 맞받아 웨쳤다.

《그럼, 그럼! 선생님들이 오랜 세월 지고오신 무거운 짐 이제는 우리가 지고가야 해!》

《어떻게?》 김진서가 물었다. 《무거운 짐 어떻게 지고간다는거지?》

《거야 뭐 투쟁이죠. 감옥도 죽음도 두려워않고 통일애국투쟁에 모두 나서는것!》

리영란은 금시라도 감옥과 교수대앞으로 떳떳이 걸어갈 기상이였다. 모든 청년들이 그에 합세했다.

《옳아, 그 말이 옳아. 지금껏 우린 자주, 민주가 유린당한 력사에 고스란히 순종만 해왔어.》

《그래서 이렇게 모였잖아. 보안관찰대상자와의 자아회합과 우려되는 집회참가를 금지하는 보안관찰법 거 몇조더라··· 그것도 무시하고말야.》

《바로 그거야. 우리 청년들이 나서서 남과 북의 화합을 이룩해야지.》

김병택이 말했다.

《그럼 미국놈들을 내쫓는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한 젊은이가 제꺽 대답했다.

《쫓겨가죠 뭐. 남과 북이 하나만 되면야.》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요 뭐. 남과 북이 하나로 된다는게 말이죠.》 리영란의 말이였다. 《어떻게 생각하셔요. 선생님?》

김진서에게로 향한 물음이였다. 그리하여 진서는 자기가 언제든 하고싶던 말을 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다. 미덥고 사랑스러운 이 젊은이들에게 영영 꺼지지 않을 불씨를 심어주어야 했다.

《나는 말이지. 이렇게 생각해. 통일을 바라는건 7천만겨레모두의 한결같은 숙원이지. 그래서 그를 위해 피흘리며 싸운 사람들도 많구··· 지금은 너희들같은. 참 이렇게 제 자식들처럼 불러서 안됐어. 그렇지만 그만큼 사랑이 가서 하는 말이란걸 알아둬요. 그리구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말투가 좀 거칠어. 수십년간 악행을 당하며 험한 욕설만 웨쳤으니까··· 그래서 하던 말을 계속하면 너희들같은, 님자들같은 젊은이들에게 기대가 큰거야. 다들 옳게 말했어. 통일을 이루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론적으로 풀이하자면 많이 말할수도 있어. 그렇지만 세상의 온갖 진리란 한마디면 통하는거 아니겠어. 그렇지?···》

그의 평이하면서도 박력있는 말마디들에 대학생들은 대번에 심취된듯 하였다. 두 눈을 빛내이고 마른 침을 삼키며 수십년전에 벌써 지리산빨찌산과 군정대학의 책임강사이며 교양과장이였던 김진서의 무릎가까이 바싹 다가앉았다.

《그래서요, 선생님, 어서 계속하셔요.》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나요, 예, 선생님?!》

《한마디로 정의하면 》하고 그는 흥분에 잠긴 목소리로 계속했다. 《이남의 청년학생들모두가 그리구 전체 이남민중이 위대한김정일령수님을 잘 아는거야. 모두가 김정일령도자님을 잘 알 때 통일은 돼!》

한순간 모든 대학생들이 입을 벌리고 굳어져버렸다. 우뢰소리가 귀청을 때린듯 싶었다. 감옥과 교수대도 무서워않겠다던 리영란 역시 맑고 검푸른 두눈의 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남쪽에서 최대의 리적행위로 모는 정치적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비전향장기수로인을 겁먹은듯이 바라보는 젊은이도 있었다.

진서는 소리없이 웃고나서 말을 이었다.

《이게 중요한거야. 김정일령도자님을 잘 알게 되면 무서운것도 없고 전체 민중이 하나로 뭉쳐 통일을 위해 매진하게 돼. 미국놈들도 쫓겨가구. 내 한가지 실례를 들지. 내가 처음 령도자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건 감옥안에서였어. 〈푸에블로〉호 사건때말이지. 아 글쎄 세계의 헌병처럼 우쭐렁거리며 오만하게 굴던 미국놈들이 당장 전쟁을 일으킬것처럼 고아대다가 어떻게 됐지?··· 너희들 그때엔 아직 세상에 태여나지 않았을테니 잘 모르겠지만 온 세계가 땀을 쥐고 지켜봤던거야. 그렇지만김정일령도자님께서 쥐락펴락하시며 끝내 놈들을 무릎꿇게 하셨어. 그 소식을 들은 우린 그때 모두 감옥안에서 만세를 불렀어. 울고웃으며 말이지.》

《옳아,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구만.》 김병택이 추억에 잠겨 말했다. 《그때부터 령도자님에 대한 감동이··· 거 뭐랄가. 흠모의 정에··· 목이 메던 일이···》

그가 더 말을 잇지 못하자 진서는 계속했다.

《지난 93년의 일만이라도 생각해봐. 핵전쟁을 일으키려던 미국놈들이 항복서한을 보냈어. 세상의 어느 령도자가 미국놈들을 주물러놓은 일 있어. 그런 얘길 들어본적이 없지? 우리의 령도자님께서만이 초대국이라는 미국을 길들이시는거야. 그렇지만 지금껏 이남의 대통령권좌에 올라앉은 자들은 어떻게 했지? 미국을 하내비처럼 섬기며 한사코 통일을 가로막아왔어. 그렇지만 김정일장군님(이북에선 전체 인민이 장군님이라고 꼭 존칭을 한다는거 동무들도 알지?) 우리의 장군님께선 이제 반드시 통일대문의 빗장을 열어주셔. 이걸 알아야 한다는거야. 장군님을 잘 알면 조국통일의 앞날도 환히 내다보여. 동무들(참 동무들이라 불러도 좋지?)도 문명자씨의 글을 읽어봤겠지? 못 본사람 있으면 꼭 찾아 읽어보라구. 우리 장군님께서 어리실 때김일성주석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작전대에서 담과 슬기를 키우신 얘기를 쓴 건지리방문록도 있어. 〈말〉잡지에 나간거··· 그담 〈한겨레〉신문··· 잘 알아야 해. 장군님께서 얼마나 위대한분이신가를 말이지. 우린 감옥에 있을 때부터 장군님에 대한 새 소식을 더 많이 알려구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그때문에 끔찍한 고문도 당하구 형벌로 목숨까지 잃으면서두 장군님에 대한 노래를 지어불렀어. 들어보겠나?》

그는 눈귀를 가늘게 좁히며 노래라기보다 시를 읊는듯 한구절한구절을 상기하였다.

 

아십니까 아십니까

친지김동 아십니까

이남민중 그 언제나

가슴속에 품고살며

노래처럼 다정하게

불러보는 그 이름

아- 친지김동 아십니까

 

《여기서 〈친지김동〉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를 의미하는거야.》

 

그 이름은 우리 행복

그 이름은 통일조국

 

《보라구. 우린 벌써 그때부터 장군님은 우리의 행복이시구 통일조국이라고 믿고있었던거야.》

눈굽이 축축해지고 목소리가 떨려나기 시작했다. 또다시 눈앞에 어리는 감옥, 광주와 대구, 대전교도소, 아츠럽게 울리는 채찍소리, 피로 즐벅해진 취조실, 서로 어깨를 껴안고 노래부르던 동지들···

젊은이들도 격동되여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풀 한포기도 자유로울수 없는

식민의 아들딸들아 어서 일어나거라

노래하고 시를 읊고 조국통일을 위해 령도자님을 더 많이 잘 알며 령도자님을 따라 힘차게 싸우자고 맹세했다. 그리고는 한창나이 젊은이들답게 웃고 떠들기도 했다.

《선생님들, 난 비로소 선생님들의 북송이 꿈이 아니란걸 확신했습니다. 이제 선생님들 북에 가셔서 나랑 초청해주시면요. 을밀대아래서 개성금패인삼주, 룡성맥주, 백두산들쭉술 다 마셔 볼락하는데요. 어떠세요, 나무람 안하실테죠?··· 그럼 좋아요. 이름난 북의 그 세가지 술과 맥주 다 섞은 폭탄주를 마시고서 헤롱헤롱 취해보겠어.》

《그럼 옥류관랭면은 어떻게 먹지? 헤롱헤롱 취하구서?》

진서의 물음에 그는 머쓱해하면서도 장담했다.

《난 국수에 엄청 소질이 있는걸요. 커피, 동동주 다 마시고도 두그릇쯤은 어렵사리 제껴버리니 선생님 걱정일랑 마셔요.》

떠날 시간이 되자 전남대학교 학생회장이 일행을 대표하여 작별인사를 했다.

《선생님들의 삶은 저희들의 귀감입니다. 우리도 굽힘없이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삶 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선생님들, 분단조국의 여기 남쪽 빛고을땅에도 통일의지를 불태우는 젊은 별들이 많다는것을 말이죠.》

낡고 어수선하던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의 거처지 탕제원이 이날은 빛고을 그 이름처럼 환히 밝아지고 넓어졌다.

 

×

 

젊은이들이 떠나가자 이번엔 류은혁이 찾아왔다. 김진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것이다.

《그럼 그렇겠지. 진서동지가 누워있을수 없지.》 류은혁은 벌써 눈시울을 떨고있었다. 《감옥에서도 살아나온 동지가 그렇게 맥없이 쓰러질수가 없지, 그렇지 않소?》

《그렇구말구요, 살아야지요. 기어이 살아서 통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바쳐야지요.》

그들은 뜨겁게 포옹하였다. 평양에서 정치공작대로 파견되기전부터 안면을 익힌 류은혁, 지리산빨찌산과 포로수용소, 교도소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가장 귀중한 동지들중의 한사람, 그들 세 로인이 한덩어리가 되여 끌어안았다.

그런데 그날밤 이 불사신의 로인들이 갖가지 잊을수 없는 추억에 잠기고있을 때 풀길없는 수수께끼가 또 들이닥쳤다.

그것은 요란스러운 전화종소리로 시작되였다.

전화종소리만 울리면 두 김로인은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다가간다. 김진서는 지난해 4월 《아버지!》 하고 목이 잠겨부르던 딸의 목소리를 상기하고 저도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군 한다.

《아버지!··· 나 화순입니다. 내 말이 들리시나요, 딸 화순이예요!···》

진정 40여년간 단 하루도 잊어본적이 없는 딸 화순이, 헤여질 때 4살이였던 그 딸이 50살이 넘어 아버지를 눈물속에 불렀던것이다. 베이징에서 광주까지의 멀고먼 거리도 뜨거운 그 눈물의 속삭임만은 덜지 못했다. 그리하여 김진서는 전화종소리만 울리면 자기를 찾는것으로 착각했고 역시 지난해부터 아들의 편지를 받아본 김병택도 어느새 전화기앞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류은혁이만은 아직 혈육들과 련계를 가져보지 못했지만 두 김로인의 갑작스러운 충동에 이끌려 그들을 따라섰다.

그러나 매번 북에 사는 가족, 친척들이 전화를 걸어오리라고 믿을수는 없다. 대부분의 전화는 《한겨레》나 《말》, 《시사져널》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구하는것이거나 관할경찰서에서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이 오늘 누구와 만났고 어디에 갔댔는가를 시시콜콜 따지고드는 전화였다.

그래도 매번 희망을 잃지 않는다. 천번중 단 한번이라도 좋다. 순간이나마 희망을 잃는다면 이 로인들의 삶은 더더욱 비참해질것이다.

이번에는 김병택이 먼저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김병택의 떨리는 목소리, 뒤에 선 두 사람도 가슴을 조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김병택의 얼굴에, 안대를 댄 왼쪽볼이 경련적으로 떨렸다. 바라지 않던 전화인것이다. 실망의 여파가 다른 두 사람에게도 옮겨졌다. 잠시후 김병택은 아무말없이 김진서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화였다.

바람새는 소리가 섞인 늙고 병든 사람의 갈린 소리가 울려나왔던것이다.

《김진서씨를 찾는데요··· 아 당신이였군요. 내 부탁을 잊으셨나요?》

《여보시오.》 진서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무얼 부탁했다는겁니까?》

《부탁을 했습지요. 김진서씨, 아니 진서선생, 하정례와 아라에 대해서···》

석쉼하고 늘어빠진 그 목소리의 여운에는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있을듯 했다. 진서는 차디찬 전률을 느꼈다.

《여보시오. 당신이 누구신지··· 왜 그녀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지 말해줄수 없는가요?》

《난 죽어가는 한 로인입니다. 당신보다 더 년로한 늙은이··· 그래서 죽기전에 꼭 알고싶어서··· 제발 부탁합니다. 진서선생, 선생은 알고있겠지요? 아는껏 대주시오.》

《?!···》

어쩐지 더 말을 잇고싶지 않았다. 그가 자기를 숨기는 이상 이쪽에서도 곰살궂게 대해줄 필요가 없는것이다. 포로수용소나 교도소, 보안감호소들에서 오랜 세월 끔찍한 경난을 겪어온 그여서 창끝같은 경계심이 뇌리를 찔렀다. 하여 그는 증을 내며 말했다.

《난 숨박곡질이 질색이요. 정 알고프면 나를 찾아오시우.》

송수화기를 내려놓았지만 그 음침한 목소리가 안겨준 껄끄러운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저리를 치는듯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고 궁금해하는 동지들에게로 돌아섰다.

《뭔가 있어, 무서운 비밀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고나서 그는 침대쪽으로 걸어갔다. 늙은 동지들이 뒤따랐다. 하여 그들 세사람,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려 끙끙거렸다.

아라는 누구의 딸인가?··· 그애를 처음 데려온것은 리현상과 여운철(정치위원)일행을 호위해온 최동환이다. 그 최동환을 리현상사령관일행에게 호위원으로 붙여준것은 남부군의 첫 정치위원이였던 리재명이라고 한다.

세 로인은 자기들이 보고들은 모든것을 상기하며 흘러간 력사의 갈피를 뒤져보았다.

조국해방전쟁이 시작된후 지리산을 떠난 리현상부대, 락동강이남에서의 적후투쟁, 인민군대와 같이 후퇴하던중 강원도 회양군 후평리에서 최고사령관동지의 적후투쟁명령을 받고 다시 지리산을 목표로 남하하였다. 그때부터 《남부군》이라고 불렀다. 그 남부군의 첫 정치위원이였던 리재명, 그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은 그 누구도 들은적이 없다. 전사했다거나 자총했다는 말도 들은 일이 없다. 그러면 리재명은 어데로 사라졌는가?···

로인들로서는 도저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래도 애써 기억을 짜내본다. 아라는 누구의 딸인가, 리재명은 어떻게 종적을 감추었는가, 최동환은 어떤 사람인가?···

 

김병택의 회상

 

나는 1951년 1월 추풍령에서 미제놈들의 세균탄세례를 받고 재귀열에 걸려 부대와 떨어졌다. 다행히 리현상사령관이 이끄는 남부군이 남하하다가 나를 대오에 편입시켰다. 그리하여 리재명정치위원도 알게 되였다.

내 보기에 그는 신중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 같았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민군대 어느 사단에 복무했소?》

《고향은 어디요?》

《장가는 들었소?》

이렇게 묻고나서 그는 히죽이 웃었다.

《병택동무, 머리칼이 다 빠진게 정말 유감이요. 름름한 대장부인데.》

그후 추풍령철길횡단때였다. 우리 남부군은 수천명의 적들에게 포위되여있었다. 참모장 박종하사령(빨찌산들은 그를 강사령이라고 불렀다.)이 결사대를 이끌고 포위진을 돌파했는데 그 결사대엔 나도 끼여있었다.

부대가 포위를 뚫고나가자 리재명정치위원이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참모장동무가 병택동무를 칭찬하더구만. 결사대의 맨 앞장에서 잘 싸웠다구··· 사실 우리 박종하참모장은 웬간해선 춰주지 않는 성미인데 병택동무나 최동환같은 인민군출신들이 한몫 한다고 아주 좋아하더구만.》

그 말을 하고는 곧 대오앞으로 달려갔다. 아마 최동환에게도 그 말을 했을것이다.

그날 그가 해준 말이 나에겐 하나의 높은 표창과도 같았다. 《지리산의 호랑이》로 불리우는 박종하참모장이 정치위원에게 그렇게 말했던것이다.

그후 우리가 덕유산에 있는 적들을 공격할 때 이번엔 리재명이 나를 결사대에 불렀다. 51년 8월 어느날이였다. 억수로 퍼붓는 소낙비속을 뚫고 우리 결사대 30명은 절벽을 기여올라가 천막을 치고 잠자던 적(남조선군 1개중대)들에게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그날 전투에서 중기 2문, 경기 5문, 칼빈총 80정과 수많은 포탄, 탄약들, 피복과 신발, 식량 20석을 로획하였다.

리재명이 나를 불렀다.

《칼빈총 20정을 충남유격대에 넘겨주시오. 동무가 직접 마태식대장에게 가져다주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가 제일 믿는 오랜 빨찌산대원들을 부르군 했는데 그들속엔 나도 끼우게 되였다.

이런 연고로 해서 나는 그를 존경하였다. 그는 리론도 풍부하고 조직력도 두드러진 사람이였다.

우리가 지리산에 들어서기전 이자 말한 덕유산전투가 있은후 부대에서는 조국광복 6돐기념집회가 있었다. 집회는 차일평 제2부정치위원이 집행했다.

리현상사령관과 여운철은 지리산으로 먼저 떠나가고 리재명은 앓고있었기때문이다. 그날 집회가 3시간나마 계속되였는데 정세보고만도 1시간 40분이 걸렸다. 앓고있던 리재명이 당장 차일평과 김갑제정치주임, 김흥기선전부장을 불러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렇듯 무섭게 변한 그를 처음 보았다. 무슨 말로 어떻게 비판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멀리서도 부들부들 떨며 말한마디 못하는 차일평의 모습을 보고 되게 족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사실 리재명은 그때 제1부정치위원이였으나 사람들은 여운철과 같이 그도 정치위원이라고 불렀다. 남부군의 주력을 이루는 지리산빨찌산의 첫 정치위원이였던 류주목도 그를 존경하였다. 락동강전선에서 지리산빨찌산과 의용군부대가 합쳐 련합부대를 형성할 때부터 사실상 리현상과 박종하, 리재명은 부대의 삼각기둥을 이루고있었던것이다.

말이 난김에 말해두지만 여운철은 도중에 중앙당에서 파견되여왔고 또 남부군이 지리산에 이르러 활동하던 도중 지구당들이 조직되면서 속리산의 제3지구당책임자로 갔기때문에 리재명은 계속 정치위원으로만 불리우게 되였다.

리현상사령관과 제일 가까운 사람도 그였다. 그때 소문에 들은 말이지만 부대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도 그 두사람뿐이라고 한다.

그는 여운철과 같이 간부티가 나는 사람도 아니고 차일평처럼 연설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였다. 나도 사령부호위원으로 오래 있었기때문에 잘 아는데 그는 늘 사령관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각 부대 정치위원들에게 과업을 줄뿐 보통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나는 그가 최동환을 리현상사령관에게 붙여보낼 때 따로 만나 장시간 이야기하는것을 보았다. 그때는 리현상사령관을 잘 돌보라는 지시를 주는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믿는 최동환에게 딸을 데려오라고 시켰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리재명이 대구시출신이라는것만 보아도 그렇게 짐작해볼 근거가 있다.

 

류은혁의 회상

 

병택동지가 이자 말한 덕유산전투후의 정세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있다.

51년 8월 이후 남부군이 지리산에서 멀지 않은 덕유산에 이르자 충청남도 여러 군들에서 경찰들은 완전히 지서에 틀어박혀버렸다. 한가지 실례로 덕유산부근의 무주군에서는 경찰들이 자기네가 피눈이 되여 찾던 군당일군들을 보아도 체포할 념을 못하고 눈인사를 건네는 정도였다고 한다.

련락원들도 내놓고 다녔다. 그리하여 무주군, 장수군, 거창군, 합천군들에서 군당과 유격대들이 활기를 띠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박영발(전남도당위원장)동지가 나를 불렀다.

《선전부장동무, 덕유산으로 가야겠소. 리현상사령관과 토의가 있었는데 선전부장동무가 남부군을 마중가서 사전에 통보할것과 사령관의 지시를 전해주어야겠소.》

박영발동지는 15명의 무장인원을 나에게 붙여주었다. 그때 내가 남부군을 마중가서 해야 할 임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리현상, 여운철, 박영발, 방준표(전북도당위원장) 등이 토의결정한 남부군과 도당유격대들의 유격활동지역과 아지트들을 사전에 알려줄것,

둘째, 남부군이 지리산에 들어서기전에 일부 부대들로 기동전을 벌려 적들의 력량이 지리산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라는 리현상사령관의 명령을 전할것.

이렇게 되여 지리산에서 남부군을 마중간 나는 거기서 리재명동지를 처음 만났다.

리재명과 당시 부사령관이였던 리진범 두사람이 내가 전하는 통보와 명령을 받았다. 차일평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사령관의 명령을 놓고 두사람은 진지하게 토의하였다. 조금후 사단장, 려단장들이 불리워왔다. 명령전달은 리진범부사령관이 하고 전투임무도 주었다.

리재명은 나와 따로 만나 서로 관심하는 문제들을 론의했다.

그때 무주군당위원장이 인사차로 와서 이말저말 하다가 지금 자기네 군당에 리극로선생의 아들이 와서 일을 잘한다고 자랑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하고 나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리재명이 내게 물었다.

《리극로선생을 잘 압니까?》

《예, 평양에서 몇번 만나보았습니다.》

《그럼 리극로선생 아들도 잘 아시겠군요.》

《아닙니다. 선생의 아들은 아직···》

리재명은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남부군선전부장인 김흥기를 불렀다. 그에게도 꼭같은 질문을 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이였던 김흥기는 평양에서는 물론 이미 서울에서부터 리극로선생댁에 자주 드나들어 선생의 아들도 잘 안다고 대답했다.

《좋소. 무장인원을 데리고가서 그 리극로선생 아들이란 사람을 확인해보시오.》

나는 지금도 그가 무슨 근거로 의심을 가졌고 무장인원을 파하여 체포할 결심까지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리재명이 주의깊고 예민하며 매사에 신중한 사람, 지하활동을 오래한 사람들에게 고유한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것만은 확신하였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가짜 리극로선생의 아들은 체포되였다. 그러나 그자를 심문하기도전에 누군가 밤중에 결박을 풀어주어 달아나게 하였다.

그에 대하여 보고받은 리재명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격분하여 고래고래 소리지르지도 않았고 당장 추격하여 붙잡아오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리현상사령관과 여운철정치위원이 회의를 위해 지리산으로 먼저 들어갔으므로 박종하와 리재명이 남부군의 최고지휘권을 가지고있었는데 박종하도 없는(기동전을 벌리고있었다.) 조건에서 당장 추격대를 조직할수도 있었건만 손가락마디들을 딱딱 꺾고있을뿐이였다. 얼마후에야 리진범과 제2정치위원 차일평에게 말했다.

《이건 심상치 않소, 경각성을 높이시오.》

다음날 거창, 합천군을 류동하면서 기동전을 벌리던 박종하참모장이 나타났다. 쾌남아인 박종하는 리재명의 침울한 낯빛을 보고 소리쳤다.

《정치위원동무, 워찌 그리 모지락스럽게 얼골을 찡기고있는디. 승리하고 돌아온 전사들을 축하해서 북을 쳐야제!》

리재명은 북을 치진 않았지만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치는 말을 했다.

《대내에 나쁜 놈들이 있소.》

박종하가 놀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자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갑시다. 참모장동무, 가서 토론합시다.》

그들은 지휘부로 쓰는 가막사로 올라갔다. 거기서 무슨 말들이 있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때 나는 리재명이 침착하고 주도세밀하며 강의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싶지 않다. 그는 결코 숨어살 사람이 아니다. 분명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을것이다.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늙은이는 지리산빨찌산출신이고 또 죄있는 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때문에 피흘리며 함께 싸운 동지들앞에 나서지 못하겠는가. 보나마나 틀림없이 변절자이다. 변절자들중에서 하정례와 아라를 잘 아는 자가 누구겠는가를 생각해보자···

 

그리하여 지난 날의 추억이 또 김진서를 잠 못 들게 했다. 쓰라린 회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피어린 력사도 지워지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