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7

 

제 2 장

7

 

다시 밤이 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권형일비서가 올린 자료들을 읽고계시였다.

먼저 지리산빨찌산의 변절자 최동환의 짤막한 경력부터 보시였다. 로병 서산옥이 눈물로 하소하던 리수진의 친아버지 최동환, 추악한 변절자··· 그런데 그의 아들은 이전 지리산빨찌산의 정치위원이였던 리재명과 전쟁참가자인 로병 서산옥이 키웠다. 그런즉 생활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것인가!···

변절자의 경력을 다시한번 훑어보신다.

 

이름 최동환

생년월일 1927년 5월 19일

본적지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면

 

가족관계:

안해 김춘금(1952. 9 폭사)

유복자 최수진(현재 리수진)

본인경력:

1940년 소학교졸업

1945년까지 탄광로동

1947~1948 수동탄광민청부위원장

1949. 5.1 조선로동당 입당

1950. 6 인민군대 입대

1950. 8 락동강전선에서 부상

1950. 9 리현상의 남부군에 편입

확인자

리재명 (수표)

허영택 〃

오철수 〃

※ 1951년 11월 당시 남부군(지리산빨찌산통칭) 제2부정치위원 차일평과 같이 리현상사령관이 준 기밀문건을 가지고가던중 적들과 조우. 체포되여 변절. 그들만이 알고있는 통신대가 폭격을 맞고 수많은 비밀아지트들이 기습당하였음. 적들의 선무방송에도 협력하는 등 악질적으로 놀았음.

확인자 : 고달순 (수표)

최익주 〃

임창세 〃

(이상 확인자들은 지리산

빨찌산출신들임)

 

이것이 전부였다. 그후의 소식은 력사의 리면에 묻혀버렸다. 그것을 알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거나 분계선너머 남쪽의 철창속에 갇혀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도 창가림이 걷힌채로 있는 창밖에 눈길을 주시였다.

인제는 말끔히 개인 밤하늘··· 하늘을 뒤덮고있던 비구름도 미구에는 풀리고만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날이 밝으면 해빛이 강산을 비친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풀리지 않는 검은 구름이 있고 가시지 않는 어둠이 있다.

장장 30년, 40년 세월 철창속에 갇혀있는 통일애국투사들, 우리는 아직 그들의 이름조차 다는 알지 못하고있다.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등 20여명만이 지금 알려져있다. 누가 살아있고 어떻게 싸우고있으며 누가 목숨을 잃었는지 다는 모르고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모두를 찾아내여 통일성업에 바친 그들의 위훈을 빛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모두를 기어이 데려와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잊지 못해하시던 그들, 우리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조국통일문건에 서명을 하실 때 그들모두의 이름까지 써주신것은 아니던가!··· 탁상전화스위치를 누르고 책임서기를 찾으신다.

《오늘 오후 베이징에서 열린 범민련공동의장단회의에 대한 자료가 보고된게 있으면 가져오시오. 음ㅡ 지금 곧.》

래일도 회의가 계속되므로 첫날회의에 대한 자료는 극히 실무적으로 집계된것이였다.

특별비행기로 베이징에 날아간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의 두 딸과 김병택의 아들, 한제완의 조카(한제완은 자식이 없다.)를 전체 회의참가자들과 외국의 인권옹호단체인사들, 기자들이 뜨겁게 맞아주었다고 한다. 무서운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그들을 회의시작전까지 가닿게 하려고 당에서 직접 조직사업을 하고 시간을 앞질러 차를 달리고 비행기를 날렸다는 이야기에는 모두 눈물을 머금었다는것이다. 거기에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의 맏딸 김화순이 아버지를 목메여 부르며 읊은 자작시가 또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고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우의 전화기에로 손을 내미시였다. 회의에서 국제적십자사와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내는 호소문이 랑독되고 열띤 토론들이 벌어진 보고자료를 읽으며 말씀하신다.

《베이징을 찾으시오. 음ㅡ 범민련공동의장단회의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볼것이 있소. 의장동무를 찾으시오.》

우리측 공동의장은 백인준이였다. 저명한 시인이며 극작가이며 사회활동가인 그는 마치 기다리고있었던듯 인차 나왔다.

《경애하는 장군님, 백인준 전화받습니다.》 《아, 의장동무, 수고가 많겠습니다.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회의소식은 들었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우리는 철저히 인도주의적문제로 이 사업을 밀고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록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3명을 데려오는 투쟁을 벌리고있지만 궁극에는 전체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라는것을 잊지 않는것입니다.

우리는 혁명을 해도 인간을 위해 하고 한생도 동지들을 위해 바치는 조선의 혁명가들입니다. 천하를 얻을수 있다해도 동지 한사람을 잃는다면 단호히 부정한다는것이 나의 혁명관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조선의 철창속에 갇혀있는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화순동무가 자작시를 읊게 한것은 잘한 일입니다.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아, 가까이에 있으면 좀 바꿔주시오.》

그이께서는 탁자 한끝에 있는 김진서의 사진 두장을 손에 드시였다. 젊었을 때 찍은 사진 뒤면에는 본인이 자필로 쓴 《인민의 복무자로 맹세하면서 1949. 3. 30》라는 글이 있었다. 저 멀리 푸른 하늘가를 바라보는 청년, 그 시각 그는 무엇을 보고있었을가. 고난에 찬 자기의 인생행로를 상상이나 하였을가?··· 두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전혀 판다른 처참한 모습의 늙은이이다. 채석장에서 무겁게 돌을 들고서있는 백발의 로인, 《인민의 복무자》로 맹세한 그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온 불굴의 인간, 그는 지금도 자기의 임무를 무겁게 들고서있는것은 아닐가?···

수화구에서 가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진서의 맏딸이 베이징에서 송수화기를 들고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

그다음은 흐느낌소리, 김정일동지께서는 불현듯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느끼시였다. 채석장의 늙은이, 뼈가 앙상한 백발로인이 북녘하늘을 우러러 추연히 서있는 모습을 실지로 보시는듯 했다.

《아 화순동무구만. 지금 뭘하고있었소?··· 아, 그럴테지. 아버지생각에 잠 못 들건 뻔하고··· 나도 그렇소.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뻐근해지는게··· 견디기 힘들 때가 많소. 그래서 오늘 동무가 아버지를 그리며 자작시를 읊었다기에··· 그걸 듣고싶었소. 그래서 찾았던거요.》

《장군님, 이건 그저 시라기보다··· 딸의 심정을 토로한것입니다. 정말 변변치 못합니다.》

《그게 더 좋은거요. 친딸의 그 마음을 듣고싶었다니까··· 자 울지 말고 읊어보오.》

《그럼··· 장군님, 제 이제··· 읊겠습니다.》

조용해졌다. 흐느낌소리도 사라지고 모든것이 고즈넉한 정적속에 잠겨들었다. 창밖의 무한대한 하늘가에서는 별들도 귀를 기울이는듯··· 드디여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엄마손에 이끌려

동구밖까지 따라가며

아버지를 배웅했던 이 딸이

 

석달을 기다리고 3년을 기다리고

어언 30년, 40년을 기다렸습니다

고사리같은 손 저어주던 이 딸이

머리에 흰서리 얹도록 기다렸습니다

 

아버지, 아 아버지!-

목놓아 불러도 대답없는 아버지

어찌하여 못 오십니까

그리도 가까운 사흘길을

 

또다시 커지는 신음소리, 김정일동지께서는 꽉 틀어쥐고계시던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옮겨잡으시였다.

《계속하오, 화순동무. 울지만 말고 계속하라니까. 응?!》

《예, 장군님.》 가늘게 떨리는 속삭임. 《계속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눈물의 속삭임은 이어져갔다. 조국통일성업에 한생을 바친 아버지를 목메여 부르고 세계의 량심에 호소하는 뜨거운 웨침으로 높아져갔다.

 

아버지를 부르는 이 딸의 목소리

대륙과 대양은 넘어가는데

걸어서도 사흘길 저 광주엔

어찌하여 울려가지 못합니까

 

아픔에 신음하는 이 웨침에

대답해주세요 세계의 량심이여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백발을 떠이도록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시라기보다 눈물의 절규였다. 그러한 웨침에도 심장이 울리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인간이기를 그만 둔 목석일것이다.

집무탁에는 곧 비준해주셔야 할 문건들도 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아직 거기에 손을 대지 않으시였다.

두장의 사진을 들고계실뿐··· 이윽고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화순동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하겠소. 내가 약속하지. 정말이요.》

《장군님, 제가 그만 장군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건 아닙니까. 예?!》

《아니 그렇지 않소. 동무의 자작시를 들으면서 마음을 더 굳게 가다듬었소.》

《장군님!》

《걱정마오. 아버진 꼭 돌아오게 돼. 이건 틀림없소. 물론 동무도 잘 알겠지만 왜 그들을 다 데려와야 하는가, 당을 믿고 수령을 믿고 한생을 바쳐온 사람들, 조국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싸운 그들에게 흘러간 청춘을 되찾아주고 누리지 못한 인생의 락을 다 누리도록 하자는것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나날이 더 강하게 벌리는게 아니겠소. 그러니 화순동무, 신심을 잃지 말고 계속 잘 싸워주오. 대학강좌장으로서 후대교육사업도 더 잘하고··· 우리 새 세대들모두를 비전향장기수들처럼 끝까지 신념과 의리를 지켜싸울줄 아는 사상과 의지의 강자들로 키워야 하오. 알겠지. 책임이 무겁소.》

《예. 장군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전화를 끝내실 때까지 그이의 손에는 두장의 사진이 꼭 쥐여져있었다.

그이께서는 바로 그 사진들의 주인공인 김진서와 마음속대화를 나누는 심정이시였다. 사진속의 늙은이도 여전히 무겁게 돌을 쳐든채 그이를 우러러보는듯 했다.

돌을 놓으시오. 동지, 허리를 펴고 숨을 크게 쉬시오. 이제 그날은 꼭 옵니다. 꼭 옵니다!···

만약 김진서가 그이의 이 마음속 웨침을 들을수 있었다면 어찌 되였을가··· 허나 그는 아직도 너무 멀리에 떨어져있었다.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힌 그 땅은 아직 달이나 화성에 이르기보다 더 먼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