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제 2 장

4

 

숲속의 공지에 직승기가 준비되여있었다.

아침이였다.

그렇다, 아직도 아침시간이다. 지난 밤에 이어 샐녘까지 또 새벽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업을 하셨는데 이제야 겨우 8시를 조금 넘겼다. 한여름철이여서 날이 일찍 밝기때문일가. 시간을 앞질러가며 사업했기때문일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동행하는 권형일비서와 김하천대장을 스쳐보며 이렇게 생각하고계시였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장군님!》

권형일이 대답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저야 군인이 아닙니까.》

김하천은 갱핏한 몸을 쭉 펴며 빠르신 그이의 걸음에 맞추느라고 덤벼치고있었다.

《왜 피곤하지 않겠소. 나도 견디기 힘든데··· 그렇지만 참고 견딥시다. 지금이 제일 어려운때요.》

제일 어려운때!··· 그이께서는 지난 밤에도 그렇게 말씀하시였었다. 그것을 상기하는지 김하천대장은 목에 걸리는것을 꿀꺽 삼키고있었다.

직승기에는 사다리가 준비되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오르시자 통신병들과 그들의 지휘관인 녀성군관중위가 맵시나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그이께서 움직이시는대로 시계바늘처럼 따라 돌았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답례하고 기창옆의 정해진 좌석에 앉으실 때까지 그들은 줄곧 거수경례를 붙이고있었다.

직승기의 동음이 높아지면서 진동이 커졌다.

김하천대장이 리륙신호를 보냈다.

직승기가 허궁 떠올랐다. 어느덧 숲속의 공지와 그 주변이 작고 아담하고 정갈한 모형사판처럼 내려다보였다. 저 멀리 대동강과 안개발이 굼니는 수도의 거리들도 륜곽이 알렸다.

지금 저 거리들에서는 아침출근길을 다우치는 수도의 근로자들이 강물처럼 흐를것이다. 지하철도에서는 전동차들이, 지상에서는 궤도, 무궤도전차들이 사람들을 꽉 채우고 달릴것이고··· 정류소들에서는 체츠냐정세로부터 이미 있은 애틀란타올림픽경기를 거쳐 식량문제와 석유사정, 교통상불편과 계속되는 정전에 이르기까지 근심하고 희망을 론하며 자기들의 일터로 흩어져갈것이다.

생활상의 어려움에 쫓기여 오늘도 바쁠것이다.

그런데 서산옥은?··· 전쟁참가자 로병인 그는 지금 무얼하고있을가. 한때 피어린 싸움터였던 지리산의 그림자가 그와 양아들 리수진을 괴롭히고있다.

변절자 최동환의 망령이 나타난것이다. 하지만 지리산은 끝까지 신념을 지켜싸운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산정처럼 높은 긍지와 영예를 안겨주고있다. 김진서의 두딸은 지금 베이징으로 달리고있다. 지금 김진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매일같이 소개되는 김진서··· 이제 그의 딸들은 온 세상을 그 이름으로 울리게 될것이다. 얼마나 판이한 대조인가. 지리산과 결부된 두사람 김진서와 최동환··· 신념을 지키면 영광이, 그것을 버리면 비참한 저주만이 차례지는 법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듯 매일 매순간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하여 잊을수 없으시였다. 어려울 때엔 무서운 옥중고초를 이겨낸 그들을 생각하시였고 기쁠 때엔 또 수십년간 고독과 고통속에 락을 모르고 살아온 그들을 생각하시였다.

차츰 직승기가 험하게 떨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도의 하늘을 멀리 벗어나있었다.

김하천대장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이께서 계신 곳을 살폈다. 권형일비서는 벽체앞의 산줄(락하산줄)고리를 잡고 엉거주춤 일어서고있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을 이으시며 기창아래에 펼쳐진 한산한 정경을 묵묵히 살펴보시였다.

격랑쳐 흐르는 황토색의 물결, 뿌리채 뽑혀 떠내리는 나무들, 집도 떠가고있다.

그 지붕을 덮고있는것은 호박넝쿨인가?··· 천만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피눈물의 그해 여름부터 끊임없는 자연재해, 가혹한 시련의 날과 달들, 겹쳐지는 재난에 따른 경제적위기··· 정녕 이것은 불가피한 의지의 시험인가?···

《물새 하나. 나 모란봉, 정황을 보고하라. 수신!···》

직승기의 둔한 동음을 파헤치는 여무진 처녀통신병의 목소리,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로소 눈길을 돌리시였다. 순간 산줄고리를 잡고 우람한 체구를 흔들고있는 권형일비서를 보시였다.

아마도 그는 달구지처럼 들추어대는 이런 직승기를 타보는것이 처음인듯 했다. 그러나 그가 모지름 쓰는것은 그때문만이 아니였다. 이렇듯 위험한 항로에 그이를 모시고있다는것이 너무도 놀라와 입을 쩍 벌리고있는것이였다. 그이께서 돌아보시자 기다리고있었던듯 부르짖었다.

《장군님! 이렇게 위험천만한 길을 꼭 가셔야 합니까?··· 인민들이 이걸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장군님을 잘 모시지 못하는 우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할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심중의 안타까움을 서슴지 않고 내뿜는것도 처음 보는 일이였다. 그렇다. 위험천만한 항로이다. 직승기는 마구 들추다못해 금시 산산이 부서져버릴것처럼 찌국거리고있다. 산줄고리를 잡고있는 권형일은 태질을 당하는듯 위태롭게 흔들리며 기체벽에 부딪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손짓으로 앉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꺼멓게 죽어갈뿐이였다. 무어라고 또 웨치듯 했으나 갑자기 더 높아진 동음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마침 김하천대장이 항법사에게 고도를 200이하로 낮추라고 소리쳤다. 산지대에서 고도를 낮추면 그것대로 위험했지만 달리는 할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또 기창밖으로 눈길을 주시였다. 산기슭에 멎어서있는 기차가 눈에 띄시였다. 평양ㅡ 신의주행 렬차인듯··· 어느새 그것도 멀리 뒤로 사라져갔다. 직승기는 해안쪽으로 날고있었다. 큰물피해가 제일 심한 곳, 압록강하류쪽으로 계속 뚫고나간다.

하늘은 여전히 느릿느릿 떠가는 더미구름으로 덮여있었다. 멀리 수평선과 맞물린 하늘가에서 소리없는 번개가 펑끗 구름장을 파헤치고있다. 이윽토록 우뢰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권형일과 김하천 두사람은 숨을 딱 죽이고있었다.

하늘을 나는 직승기에 가장 치명적인것은 돌풍과 번개이다. 김하천이 항법사에게 또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직승기가 돌맹이처럼 곧추 아래로 떨어져내리는듯 했다. 강과 바다의 합수목에 강한 수직기류가 생겼던것이다.

직승기가 떨어져내리자 수해지역인민들을 구원하는 인민군부대들의 결사전이 자세히 드러났다. 수륙량용차들이 거센 물살을 헤가르고 해병들이 물우에 구명대를 던지고있다. 어느 학교 건물인가 길다란 지붕우에 올라있던 사람들이 낮추 떠있는 직승기의 줄사다리에 매달리고있는것도 보였다.

직승기가 선회하기 시작했다. 합수목상공을 지나 신의주시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게 되였다. 범람하는 강물에 잠긴 도시, 물결우에 가득 떠있는 통나무며 가장집물들, 이것은 전달에 있은 황해남북도지역의 큰물보다 더 혹심한것이다. 그때의 피해정형이 세상에 알려져 중국의 강택민,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를 비롯한 여러 나라 당 및 국가수반들, 사회단체들이 위문전문을 보내오고있는가운데 이번엔 더 참혹한 재난이 청천강이북을 휩쓸고있는것이다.

불시로 그이의 눈길을 끄는것이 있었다. 물속에 반나마 잠겨있는 뽀뿌라나무들, 작은 수림과 그 가운데를 꿰질러나간 도로, 도로는 비행장으로 이어져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통 물속에 잠겨있다. 그 도로 한끝에서 차를 멈추시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길에서 오른쪽으로 좀 들어간곳에 흰 화강석으로 다듬어세운 표식비가 있었다. 그 표식비는 1952년 6월 22일 그이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비행부대를 찾으시였던 날을 기념하여 세운것이였다.

그곳에 차를 멈춰세운것도 두달전 바로 6월 22일이였다. 차에서 내려 표식비로 다가가시였다. 거기에 새겨진 글발을 읽으시다가 그앞에 놓여있는 한다발의 꽃묶음에 눈길을 주시였다.

이 나라의 어느 산기슭, 들가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꽃송이들, 하얀 찔레꽃들속에서 노란 양지꽃이 수집게 웃는가 하면 갸웃이 머리를 내민 보라빛 초롱꽃도 있었다. 꽃가지들이 흐트러질세라 비닐에 감싸서 하얀 실로 찬찬히 동여맨것으로 미루어 어린이들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후에 알아본데 의하면 나어린 세 소녀의 소행이였다. 그 어린이들은 자기들이 태여나기 썩 이전에 있었던 현지지도기념일을 잊지 않고 표식비에 꽃다발을 가져다놓은것이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소박한 그 꽃다발을 오래도록 정겨운 시선으로, 그윽한 감동속에 보고 또 보시였다.

지금같이 어려운 때, 풀뿌리를 캐여먹으면서도 수령님이 그리워 이날을 잊지 않은 그 어린이들, 들가에서, 숲속에서 한송이 한송이 고운 꽃들을 골라 꺾고있었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여 후더워지던 마음이시였다.

그 어린이들이 지금 저속에, 사품치는 물결속에 있다. 그토록 순결한 마음들을 키우고 가꿔준 수수하고 강인하며 그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고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인민이 지금 재난을 겪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하천대장을 부르시였다.

《구조전투에 동원된 전체 부대들에 전하시오. 직승기, 수륙량용차, 함정들도 총동원할것,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명피해를 내선 안되겠소. 동시에 식량, 피복,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세우고 최고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할것, 이상이요.》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무선대의 통신병들이 분주히 키를 누르고 전건을 두드렸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무선통신대를 마주하고있던 김하천대장이 머리를 피끗 돌렸다.

《최고사령관동지!》 그의 꿋꿋한 얼굴이 뜻밖의 웃음으로 환해졌다. 《354비행부대장의 보고입니다. 공군직승기 870호에서 한 산모가 방금 해산을 하였다고 합니다. 간호원처녀들이 진땀을 뽑으며 도왔는데 순산이라고 합니다!》

《그렇다?!ㅡ》 그이께서 안경을 벗으며 다우쳐 물으시였다. 《산모는 어떤 녀성이요. 남편은? ···》

《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인차 보고가 왔다. 김하천이 큰소리로, 마치 훈장수훈식에서 명단을 부를 때처럼 그것을 되받아 웨쳤다.

《산모, 신의주시 동림동 37반 안영숙, 나이는 스물셋, 남편은 인민군군관, 마상록, 전연에서 복무, 스물아홉살···》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없이 웃고계시였다. 심장에 사무치는 아릿한 기쁨, 행복한 흥분, 어느새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것을 느끼신다. 비록 집은 물에 잠기고 요람도 없지만 우리의 미래가 하늘에서 고고성을 터뜨렸다. 재해속에서의 힘찬 고고성, 탄생의 웨침··· 그이께서는 흥분어린 음성으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세상에 널리 알립시다. 우리의 미래가 하늘에서 태여났다고!》

《예,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권형일비서도 어느덧 목이 잠긴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을 스쳐가는 예리한 아픔에 숨길을 멈추시였다. 아까 눈여겨보신 그 렬차가 여전히 황량한 산기슭에 못박혀있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새벽 통일관계부문 일군들을 만나주실 때 베이징회의문제를 알아보시였었다. 그때 권형일은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이 어제 국제렬차로 떠났다고 했었다.

권형일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있다. 떠나보냈으니 정시로 도착할것이라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뜬뜬한 배심으로 유명한 권형일, 지금 그는 하늘에서 새 생명이 태여난 희한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기창아래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어느새 멎어서있던 렬차도 멀리 뒤에 남고 직승기는 물에 잠긴 들판의 상공을 날고있었다.

그런즉 어제 오전에 출발시킨 렬차가 새날을 맞는 이 아침까지 이름모를 산기슭에 멎어있는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전기간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물론 피할길없는 재해라는것도 있다. 화산, 지진, 해일, 폭우와 폭설, 태풍··· 그러나 기차는 멎을수 있어도 목적한 사업은 멎을수 없다.

《비서동무.》 그이께서 권형일에게 말씀하시였다. 《방금 멎어서있던 기차를 보았습니까?》

《예? 기차말입니까?》

권형일은 뜻밖인듯 했다. 보지 못한것이 분명했다.

수재민들을 구원하는 인민군전사들의 결사적인 투쟁모습은 보았겠지만 산기슭에 외로이 멎어있는 렬차엔 주의조차 돌리지 못했을것이다.

어쩐지 추위가 엄습해오는듯 느껴지신다.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져 가셔지지 않던 아픔도 커져가는듯··· 그것을 단순히 아픔이라고만 표현할수는 없을것이다.

《알아보시오. 국제렬차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의 베이징회의참가가 늦어졌다면 즉시 대책을 세우시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권형일은 여전히 헌헌한 모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풍랑이 휩쓸어간 아래의 한산한 정경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고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