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고난의 행군은 벌써 두해째 계속되고있었다. 전례없는 식량난, 연료난, 동력난이 극한점에 이르고있었다.

1996년, 전대미문의 고난과 시련을 겪던 이해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낮에 밤을 이어 전선지도의 천만리길을 이어가고계시였다.…

밤이 왔다. 도래굽이 저쪽에서 등대불이 숨이 찬듯 껌벅거렸다. 아마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배들이 있을가봐 안타깝게 찾고부르는듯 했다. 강한 바람이 불면서 바다모양이 사나와지고있는것이다. 기슭을 덮치는 파도소리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 기슭으로 뻗어간 도로를 질주해가는 여러대의 승용차들에도 물보라가 들씌워지군 했다.

맨 선두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갑자기 멎어섰다. 포장도로를 허비는 차바퀴소리가 아츠럽게 울렸다. 뒤따르던 차들도 급정거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였다. 다른 차들에서 급히 내린 수행원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무슨 급한 정황이 생겼는가 해서 바싹 긴장해진 기색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차를 돌려야겠소. 일정을 바꾸어서 평양으로 돌아갑시다.》

《예? 지금말입니까?》

누군가 바람새는 소리처럼 부르짖었다. 그이께서 오늘 전연지구의 인민군련합부대를 현지지도하시고 방금 멀지 않은 해군전대로 떠나셨는데 천리길을 되돌아가신다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가야 하오, 이밤으로. 빨리 가서 통일관계부문 일군들의 회의를 가져야겠소.》

그이께서는 더이상 밝히지 않으시였다. 갑자기 생각나신듯 혀를 차며 말씀하시였다.

《참 우린 아직 점심식사도 못했지!… 어떻게 한다?!…》

사위를 둘러보나 안침진 곳이 없어 수행원들도 난감해했다. 더우기 시꺼먼 하늘에서 후둑후둑 비방울이 처지고있었다. 바위벽을 때리는 파도의 물보라는 더 극성스러웠다.

《여기선 안되겠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가면서 적당한데를 골라 요기를 합시다.》

수행원들은 아무말없이 서로 마주 볼뿐이였다. 이런 난감한 경우를 한두번만 겪어오지 않은 그들이였다. 그이께서 독촉하시였다.

《시간이 없소. 서두르시오.》

그리하여 승용차들은 차머리를 돌렸다. 아침까지 천리길을 달려야 하므로 처음부터 속도를 높여야 했다. 속도 또 속도… 그것은 단순한 낱말이 아니다.

그이를 모시고 다니는 수행원들은 언제나 비상한 속도를 목표로 삼고 거기에 습관되여있어야만 한다.

비바람에 몸부림치는 가로수들이 기다렸던듯 마주 달려왔다. 어느새 령길에 접어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눈빛으로 전조등불빛이 밝히는 벼랑굽이며 소나무숲 등을 묵묵히 바라보고 계시였다. 가끔 참을길없는 의분에 주먹을 꽉 틀어쥐기도 하신다.

방금 받으신 통보에 의하면 남조선의 김영삼역도가 전연지대를 싸다니며 감히 그 누구에 대한 《보복》과 《응징》을 줴치다못해 우리와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서거하시였을 때 조의표시는 고사하고 국상을 당하여 통곡하는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조문객들을 잡아가두는가 하면 수만명의 전투경찰을 내몰아 대학가의 분향소들을 마구 들부신 만고역적 김영삼, 조미회담이 우리의 승리로 결속되고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담보서한을 보내게 되자 《혈맹우방》인 미국이 《북에 너무 양보》한다고 앙탈을 부리면서 《북의 군사적위협》설을 목터지게 고아대던 끝에 나중엔 대화의 창구까지 닫아버리고 못을 박아놓는 추태를 부리고있는것이다.

어쩌면 그리도 파렴치할수 있는가?…

조국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며 우리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로고에 로고를 다 바쳐오신 지상의 과제였었다.

수령님께서 마지막친필을 남기신 문건도 조국통일과 관련된것이였다. 하기에 김정일동지께서는 피눈물의 그해에도 통일관계부문 일군들이 대국상을 당한 지금에야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려놓겠는가 하는 생각을 모으고있을 때 오히려 행사를 더 크게 특색있게 하도록 밀어주시였다. 지난해에는 조국통일대축전까지 마련해주시였다. 김영삼이 《조문파동》을 일으키며 만고대죄를 저질렀지만 수령님의 필생의 뜻을 받들어 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야 한다고 하시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오늘 이 순간까지 천명해오시였다. 그런데 추악한 역도가 끝끝내 북남관계의 전면차단을 선포하였으니… 참을수 없는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눈앞의 현실로 가까이 불러오시였던 조국통일의 그날이 아득히 멀어져가고있다. 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마음써오신 비전향장기수들의 귀환도 료원해지고말았다. 아니, 안된다, 절대로 그것을 허용해선 안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운 연기처럼 가슴속에 서리서리 엉켜도는 분노와 쓰린 아픔에 손끝까지 저려나는것을 느끼시였다.

비줄기가 세차졌다. 령길은 온통 물사태였다. 차바퀴밑에서 물줄기가 소용돌이쳤다. 앙ㅡ앙 용을 쓰며 배기가스를 토하는 승용차들, 가야 할 길은 멀고 또 먼데 날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횡포해지고있다. 이것이 올해에 들어와 두번째로 시작된 파국적인 자연재해라는것을 아직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미 청천강이북지역에서는 련 이틀째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리고있었던것이다.

령길을 내리자 이번엔 사품치는 골개강물이 앞을 막았다.

골짜기들에서 흘러내려 모인 물이 길을 덮어버린것이였다. 세찬 급류가 길을 뭉청 끊어버린것인지도 모른다.

차들이 멎어섰다. 이번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려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살펴보시였다. 김하천대장이 우산을 들고 달려왔다.

《최고사령관동지, 옷이 젖습니다.》

어느새 그이의 전설적인 야전복ㅡ잠바옷이 흠씬 젖어들고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우산을 밀어놓으며 물가까이 좀 더 나가시였다. 김하천과 여러 수행원들이 앞을 막아섰다.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먼저 건너가보겠습니다.》

《장군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시 흙탕물속에 들어서려는 김하천대장을 만류하시였다.

《그럴 필요는 없소. 전조등빛을 막지 말고 좀 비키시오.》

그이께서는 전조등불빛이 비쳐준 저쪽의 드러난 길목을 살펴보시였다.

《보시오. 저쪽까지 길은 거의 직선이요. 물도 깊지 않고… 고속으로 밟으면 될것 같소.》

모두 차에 오르게 하시였다. 이윽고 자신께서 직접 운전대를 잡고 골개강물이 휩쓰는 구간을 눈겨눔하시였다. 10m정도 남짓하다. 량쪽의 경사도로 미루어 물은 무릎을 넘진 않을것이다.

정지상태에서 가속답판을 지그시 밟으신다. 앵ㅡ 하는 발동기소리, 드디여 차가 튕기듯 달려나갔다. 거침없이 물속에 뛰여들어 물결을 헤가른다. 차체에 부딪치는 나무등걸,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황토색거품, 전조등불빛이 성난 물결우에 미끄러져간다. 물이 어지간히 깊다. 세찬 물결에 차가 한쪽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드신다. 그러나 어느새 제일 깊은 곳을 넘어섰는지 탕탕탕! 배기관이 터질듯 한 소리가 울려온다. 승용차는 곧바로 맞은편 길우로 올라섰다.

이렇게 한대 또 한대 물결을 쩍ㅡ 쩍ㅡ 가르며 넘어왔다. 그러나 그새 탕수가 더 불어났는지 아니면 운전사가 앞차의 꽁무니에 너무 붙어있다가 사전속도를 놓지 못한탓인지 맨 나중의 차가 제일 깊은 곳을 지나다가 발동이 죽고말았다. 사람들이 물에 잠긴 차에로 달려갔다. 누군가는 앞차와 쇠바줄을 잇느라고 분주탕을 피웠다.

《빨리, 빨리! 차가 밀린다!ㅡ》

육중한 차였건만 골개물은 더 사나왔다.

《덤비지 마시오. 자, 한꺼번에 힘을 써야지.》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어느새 물속에 들어서신 그이를 알아보자 모두 울상이 되였다. 그러나 벌써 그이께서는 차체에 어깨를 들이밀고계시였다.

《김하천대장, 빨리 구령을 치오!》

후더운 비줄기가 그이의 머리우에, 어깨우에 물보라를 일으키고있었다. 물결에 떠내려오는 나무가지가 무릎을 치고 발밑에서는 흙모래가 장난치듯 빠져나가군 했다. 앞차에 건 쇠바줄이 팽팽해졌다. 김하천이 웨치자 모두가 《영싸!ㅡ》하고 웨치며 용을 썼다. 밤하늘 어데선가 번개불이 푸들거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천둥소리는 없었다. 듣지 못한것인지… 탕수가 끓어번지고 나무숲이 흐느꼈다. 차바퀴가 맨땅이 드러난 길우에 올라섰을 때에야 다들 《영싸, 영ㅡ싸!ㅡ》하는 웨침소리를 그쳤다. 푸르릉! 발동이 걸리다 멎고 또 푸릉, 푸릉! 하는 소리에 모두 허리를 펴고 일시에 그이께 머리를 돌렸다.

《모두 물참봉이 됐구만.》 그이께서 소리내여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마침 잘됐소.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고 늦어진 식사나 합시다.》

누구 한사람 움직이지 못했다. 비물에 젖은 그 얼굴들은 소리없는 웃음으로, 뜨거운 격정으로 이지러져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청을 높여 말씀하시였다.

《왜들 그러구 있소. 김하천대장, 뭐 준비된게 있으면 아무거나 내놓소.》

그제서야 다들 서둘렀다. 가운데차의 기관실덮개우에 신덕수병들을 세워놓고 줴기밥덩이를 골고루 나누어쥐였다.

《이게 점심이요, 저녁이요?》

그이께서 물으시자 비로소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비에 젖은 몸을 우들우들 떨며 줴기밥덩이를 통채로 입에 밀어넣는 사람도 있었다. 비에 젖은 줴기밥을 눈물과 함께 씹어삼키는 사람들, 그들을 둘러보며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참 별식이요. 진수성찬인들 이보다 더 맛나겠소!》

《참 그렇습니다. 꿀떡같습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장군님!》

저저마끔 한마디씩 했다. 총참모장에게 남은 줴기밥덩이를 자꾸 권하던 김태영비서도 말했다.

《오늘일을 언제든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래 잊지 못하지.》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잊어서도 안되구…》

비줄기가 약해졌다. 그러나 아직 바람은 죽어들지 않았다.

《이자 차를 밀면서》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니까?… 문득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생각나더란말이요. 요즘 우리 신문과 방송들에서 계속 선전하는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또 지난해 5월초에 출소한 안히섭, 김명산, 한상호… 내 책상우엔 김진서로인의 사진도 있는데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을 들고있는 모습이요. 그들이 지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울가, 억이 막힐가 하는 생각을 하였소. 수령님을 잃고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한다는것을 알고 암담해하지 않을가… 그런데 오늘 김영삼은 우리와 일체 대화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니 한생을 조국통일에 몸바쳐온 그들의 눈앞이 새까매질것 같은게… 가슴아팠소. 그래서 〈동지들, 근심마시오. 우리가 이렇게 모진 고난과 시련을 뚫고 동지들한테 가고있지 않습니까!〉하고 마음속으로 말해주었소.》

차머리에 둘러선 일군들모두가 숙연한 감정에 겨워 눈시울을 떨고있었다.

《동무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지금이 제일 어려운 때입니다. 그렇지만 기어이 뚫고나갑시다. 일부 사람들은 경제형편이 악화되고있는데 우리가 왜 인민군부대들에만 계속 나가는지 의아해한다는데… 짧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상점에 나이론양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만 살피고 그것을 구하러다녔더라면 벌써 망해버린지 오랬을것입니다. 총대가 기본입니다. 이 총대만 든든하면 무서울것이 없습니다. 경제도 살리고 인민생활도 높일수 있고… 또 수령님의 유훈인 조국통일도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도 다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단계에서는 높은 목표를 정하고 멀리 내다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잘 살겠다는 생각보다 조국통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하며 모든것을 바로 거기에 지향시켜야 합니다. 자, 그럼 요기를 했으니 또 달려봅시다.》

사람들은 감탕이 들어찬 구두를 벗어 탁탁 털고 다시 차에 올랐다.

승용차들은 다시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좌석에서 눈을 감고계시였다.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아직은 괴로움과 쓰라린 아픔이 더 많은 생각들이였다.

비줄기도 그치지 않았다. 정녕 이 몇해사이 비는 얼마나 많이 내렸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