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5

 

제 1 장

5

 

진서는 처녀를 리해하게 되였다. 그러나 리해가 된다는것과 마음이 통한다는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사람이 며칠사이에 이렇듯 변할수 있을가. 랑만적인 녀대학생이 얼음장같은 녀성빨찌산이 되였다. 동지들은 그를 아껴주고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박종하같이 호방한 전투지휘관도 도리질을 했다하니··· 아니, 그것은 사랑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안전한곳에 남겨두고싶었으리라.

어쨌든 진서는 《망가진 축음기》가 제 소리를 내도록 재간껏 손질해볼 생각이였다. 그런데 다음날 장흥지구사령부(지구사)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전남도당은 6개의 지구당과 지구사(로령, 광주, 장흥, 광양, 불갑, 보성)를 조직했는데 광주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구사들이 각기 련대를 지휘하고있었다.

1, 3, 5, 6, 7의 번호로 불리운 이 련대들은 수십명정도로 조직된것이 점차 200~300명 규모로 확대되였다.

겨울이 왔다. 김진서에게는 처음인 유격투쟁의 겨울이였다. 늘어난 경찰병력이 군과 면소재지들은 물론 중요도로들을 장악하고 지리산, 백운산, 봉두산, 백아산주변의 마을들을 닥치는대로 불사르기 시작했다. 매일과 같이 흘미지근한 전투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공세를 취하기에는 적아쌍방이 다같이 취약했다.

지구사 부참모장(책임참모라는 그 어느 군사편제에도 없는 직책이였다.)격으로 활동하는 김진서는 불면으로 충혈진 눈을 가까스로 뜨고 매일같이 백운산특각의 도당과 련계를 가지고 지시문,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지구사관하의 3련대(민청련대라고도 했다.)의 활동을 방조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총사에서 파견한 정대천(완도해방전투후 완도와 진도방어를 맡고있던 인민군보병중대장)이 인민군대의 재진격이 시작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가져왔다. 리현상부대도 《남부군》이라는 장엄한 이름으로 적후투쟁을 벌리기 위해 피흘리던 옛 싸움터 지리산을 향해 남하하는 중이라고 했다. 소문은 마른 잔디밭에 달린 불길처럼 삽시에 전라남도 전지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각 지구사의 부대들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죽음의 떼구름이 백아산, 백운산, 봉두산을 비롯한 유격투쟁의 거점들을 뒤덮었다. 재귀열이 창궐했다. 미군비행기들이 세균탄을 퍼부었던것이다.

사람들이 무리로 쓰러져갔다. 도당의 지시문을 가지고 이번엔 선전부장 류은혁이 하정례를 데리고왔다. 장흥지구사에 도착한 즉시 적들의 세균전만행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대책을 의논했다.

류은혁이 도당의 지시문 《방역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를 랑독한후 흥분하여 말했다.

《이를 박멸해야 합니다. 재귀열을 전염시키는 이를 없애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디디티와 같은 구충제를 구입하는 한편 증기소독을 매일하고 녀성들인 경우엔 무조건 머리를 자르거나 더 좋기는 박박 깎아버리도록 해설과 설복을 들이대시오. 뭐 부끄러울게 없습니다. 이 동무를 보시오.》

류은혁이 눈짓하자 하정례는 서슴지 않고 머리수건을 풀었다. 박박 깎은 머리가 드러났다. 누빈 솜옷속에 미군녀복장이 들여다 보이고 옆주머니에 두손을 지르고있는 빤빤머리 그 녀자의 모습은 개망나니 소년이거나 곡마단의 어리광대로밖에 볼수 없었다. 류은혁이 계속했다.

《이 하정례동무가 이곳 방역투쟁을 지도하게 됩니다. 지구당에서 이 동무를 잘 도와주시오.》

김진서는 그 녀자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 녀자의 용기에 감탄하고 눈물겹게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새 앙상하니 여위여 볼품없이 파리했지만 꼭 다문 작은 입귀가 여전히 경련적으로 바르르 떨고있는것이 매서운 말 한마디를 내쏘려고 준비하는듯 싶었다.

회의를 끝내고 떠나기전에 류은혁이 그를 따로 불렀다. 정치공작대로 평양에서 발령을 받을 때 서로 알게 된 그들이여서 어쩌다 만나면 공식적인 인사말이라도 꼭 나누군 했다.

《진서동문 어느새 참모일군이 됐소?》

《예, 몇달 해봤습니다. 지금은 또 지구사정치교양과장입니다.》

《그러니 본직인 정치일군으로 돌았구만.》

《예,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합니다.》

《몸을 잘 돌보오. 승리의 날이 눈앞에 오는데··· 그리구 하정례동물 잘 도와주오.》

진서는 우정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저와는 앙숙인데요. 저를 총살하겠다고 한걸 모릅니까?》

《알고있소. 그렇지만 우리한텐 저런 녀자들이 필요하오. 특히 방역투쟁에선 녀자들이 기본이요. 저런 동문 끝까지 해볼거요. 전염병과 말이요.》

진서는 또 한숨을 내그었다.

《이번엔 또 병에 미치겠군.》

《그건 무슨 소리요?》

《아 아닙니다. 그저 혼자소릴···》

하정례가 다가왔다. 류은혁에게 탐진강너머의 력기산을 환자트(아지트)로 정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류은혁이 묻는듯 한 눈길을 진서에게 던졌다.

《부참모장사업을 해왔으니 잘 알겠구만.》

진서는 하정례의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저었다.

《왜요?》 정례가 따져물었다. 금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덤벼들 태세였다. 《산세가 험하고 옆에는 강을 끼고있지 않나요.》

《6. 25전에 투쟁인민들이 그 산밑에서 300명이나 참살당했소. 정례동문 그걸 모르오? 산세는 험하나 고립무원하단 말이요. 포위되면 끝장이요.》

하정례의 움푹 패워들어간 두 눈에서 불빛이 파르르 떨었다. 처음으로 진서는 그 녀자의 눈에 어린 따스한 빛을 본것 같았다.

류은혁이 말했다.

《그 문젠 지구사에서 결심하시오. 그리고 진서동무, 들리는 말이 놈들은 세균탄을 떨군 지역의 관청들에 마파산이라는 재귀열예방주사약을 공급했다는데··· 알아보시오. 헛소문은 아닌것 같소.》

그날부터 하정례는 재귀열과의 싸움에 미쳐돌아갔다. 입산한 가족들을 모아 증기소독을 하고 무섭게 증을 내며 남녀의 구별없이 옷을 벗기고 녀자들의 머리를 잘랐다. 그 녀자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진서는 설복하고 선동을 했지만 정례는 채찍을 휘둘렀다. 얼어붙은 대기를 쟁쟁 울리는 그 녀자의 날카로운 웨침소리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 정대천의 중대가 1련대와 함께 석곡지서를 습격하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20여상자의 마파산이 각 지구사들에 공급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방주사여서 이미 고열에 쓰러진 사람들은 일으켜세우지 못했다.

병이 나은 사람들도 민둥산처럼 머리가 다 빠지고 멍해져서 얼마간은 가까운 동지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두번 세번 재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구사의 간호원(의무요원이라고 함)들중 한 처녀는 그자신이 전염된것도 모르고 마파산주사를 맞다가 그 자리에서 무너져 숨지고말았다. 건강한 사람도 주사를 맞고는 1주일정도 앓는 법인데 눈뜰 힘조차 없던 처녀여서 그것을 견디여낼수 없었던것이다.

1951년의 봄은 이렇게 오고있었다. 그러나 참혹한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였다.

지구사의 아지트가 있는 장흥군 유치면 은월리 암촌의 마지막날이 왔다. 박격포탄들이 휙ㅡ 휙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더니 캥! 캥! 아츠러운 소리와 함께 불기둥을 말아올리군 했다. 억새대로 이영을 올린 농가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우물가의 산죽지붕이 날아나고 허청간에서 불달린 개가 뛰여나왔다. 새벽에 있은 일이였다. 경찰병력 수백명이 달려들고있었다. 그런데 지구사엔 30명정도의 무장인원밖에 없었다.

참모장 성승종이 소리치고있었다.

《산에 붙어라. 탐진강쪽으론 나가지 말아!-》

군사부사령관 김일이 진서에게 웨쳤다.

《환자트로 뛰여가오. 인원을 차출해서!···》

고작해서 한사람, 교양과 선동계장을 붙잡았다. 직총중앙에서 파견하여 출장을 왔다가 후퇴를 못한 사람으로서 정치교양과 김진서수하의 4명중 제일 믿음직한 사람이였다.

환자트는 수인산쪽 아흔아홉고랑에 있었는데 거기서도 총성이 소낙비소리처럼 휩쓸고있었다. 보총 7정뿐인 우리편은 적들의 질풍사격에 띠염띠염 맥없이 대답하고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후퇴도중 입산한 인민군전사 한 사람이 불꺼진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 바위벽뒤에서 마지막총탄을 날리고있었다.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 두 사람을 보자 그는 총신이 단 보총을 넘겨주었다.

《왜 이러오. 환자들은 어데 있소?》

김진서가 목이 칵 멘 소리로 묻자 그는 말없이 머리를 저었다. 옆구리에서 수류탄을 끌르고 안전고리를 뽑았다.

《동무!》

진서의 웨침에 전사는 입에 물고있던 꽁초를 뱉으며 자기의 다리를 가리켰다. 무릎아래에 피가 흥건하게 내배여있었다. 오른쪽 복사뼈어름이 뭉청 잘려나간게 알렸다. 바위모서리에 엉켜있는 피덩이가 모든것을 말해주었다.

진서가 그를 둘쳐업으려 하자 처음으로 전사는 꽥 소리질렀다.

《다가오지 마시오. 이걸 보지 못하오? 꽝! 하기전에 썩 비켜!》

틀림없이 그는 적들이 다가들면 자폭하려고 결심한것이였다. 두눈을 흡뜨며 어서 물러나라고 무섭게 공갈했다.

진서는 벼랑굽이에 이르러서야 칼릉선우의 바위턱에서 터진 폭음을 들었다. 《김일성장군 만세!-》하는 전사의 마지막웨침소리가 폭음에 묻혀 사라졌다. 이름도 알지 못한 전사!··· 하지만 죽음의 휘파람소리가 회오리치는 전장에서는 비애를 씹어삼킬 여유도 없다.

산불이 휩쓸었다. 수리산전체가 화염속에 잠겨버렸다. 로송들이 사방에 불티를 뿌려던지고 새초숲과 산죽밭이 무시무시한 불의 함성을 지르며 음달의 눈더미를 녹이고 재개비를 날렸다. 태양이 꺼멓게 죽어갔다. 적들도 불속에서 타죽으며 사방으로 굴러내렸다.

진서는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으며 아흔아홉고랑에서 빠져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때 불에 그슬린 광목수건을 쓴 녀인이 달려와 그한테 매달렸다.

《아이고메! 저걸 보지 못하겨? 저기 하지도원 있제라오?》

하정례가 비탈면에 쓰러져있는데 누빈 솜옷잔등에서 끄물끄물 연기가 피여나고있었다. 진서가 달려가 솜옷부터 잡아벗겼다. 순간 뜨거운 불연기에 끄슬린 처녀의 목에 이가 하얗게 쓸어나와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끝내 재귀열이 하정례마저 쓰러눕힌것이였다.

진서는 손바닥으로 처녀의 목에서 꼼지락거리는것들을 마구 문질러 떨구며 기신없이 머리를 떨군 처녀를 소리쳐불렀다.

그러나 정례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고있었다. 속에서는 40도를 넘는 고열이, 밖에서는 뜨거운 화염이 병약한 처녀를 휘감아 질식시켜버린것이였다.

광목수건을 쓴 녀인이 시꺼먼 재티로 범벅이 된 이끼를 긁어다 정례의 얼굴을 문지르며 울부짖었다.

《하지도원, 워매 이 모양 됐는강. 눈을 뜨락고요. 하정례!》

처녀의 새까맣게 타든 입술이 옴지락거리는것이 알렸다.

《물··· 물!···》

광목수건을 쓴 녀인이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조깨만(조금만) 참으소. 조깨만!···》

산우에서 회오리치던 화염이 쏴!- 하고 밀려내리기 시작했다. 거센 파도소리마냥 울부짖으며 암갈색의 초연을 구름처럼 몰아왔다. 재개비가 휘뿌려지고 사위는 대번에 어둠에 잠겼다.

《물- 물을 줘요!-》

처녀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사람들은 그를 맞들고 허둥지둥 내달렸다. 뜨거운 화염에 허덕이면서도 물을 찾으려고 덤벼쳤다.

갑자기 하정례가 진서의 팔목을 허비며 간청했다. 처녀의 입에서도 불이 쏟아져나오는듯 싶었다.

《막 타는것 같애요. 제발··· 그냥 죽게··· 내버려둬요.》

움푹 꺼진 눈확에서 두눈의 흰자위가 얼씬했다.

《난 알아요. 죽는다는걸···》

그것은 진정 죽음의 속삭임이였다. 그 한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영영 꺼져버리고만다는것을 진서는 알고있었다.

《정례, 정신차리오. 여기··· 동지들이 있지 않소. 동지들이!··· 동문 죽지 않아. 죽게 놔두질 않아. 내 말을 듣소?》

그러나 처녀는 대답이 없었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에 고열이 끓고있어 마지막기력마저 죄다 타버린듯 하였다.

또다시 온몸을 휘감는 뜨거운 초연과 재개비, 처녀의 빤빤머리에 한격지 올라앉은 재티가 몸을 흔들 때마다 푸시시 흩어져날렸다. 아무리 흔들어도 더는 기척이 없다. 까맣게 끄슬린 엷은 입언저리가 버긋해지며 굳어져갔다.

처녀가 죽어가는것이다. 벌써 숨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진서가 고함을 쳤다.

《누구 의무요원 없소? 하정례가 죽어가오!》

허나 의무요원이 있은들 숨쉴 힘조차 없는 처녀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말인가. 한순간 뜨끔한 충격에 몸서리치며 그는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다음 순간 피방울이 흘러내리는 손가락을 처녀의 입에 가져다댔다. 마지막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였는지 모른다. 화독처럼 달아오르고 땅땅 말라버린 처녀의 속을 적시기엔 너무도 보잘것없는 피방울들이였다.

그때 광목수건을 쓴 녀인이 몰켜든 사람들을 헤집고 맨 뒤쪽에서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있는 애기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서금이야, 느 젖 있제라? 애길 이리 내여!》

젊은 애기어머니의 두눈이 공포로 희번뜩이였다. 애기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항거했다. 그러나 광목수건을 쓴 녀인은 사정이 없었다.

《워매 지랄이여, 느 애긴 죽었능기여, 그것두 모름서 무슨 지랄이여, 지랄이!···》

또다시 화염이 회오리쳤다. 사람들이 나딩굴며 숨이 막혀 가슴을 쥐여뜯었다. 눈녹은 흙을 입에 물고 손톱으로 바위돌을 박박 긁기도 했다. 그러나 젖먹이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아드는 재티를 태연히 맞고있었다. 그제서야 애기어머니는 모든것을 깨달은듯 싶었다. 째지는듯 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숨진 애기를 마구 흔들고 굳어진 두눈을 들여다보고 손끝으로 긁어대고는 또 미친듯 울부짖었다.

광목수건을 쓴 녀인이 우악스럽게 애기를 빼앗고 그 녀자의 머리끄뎅이를 잡아끌었다.

《누가 누구때문에 살았제? 이것아, 잘방지게 굴지 말구 젖을 물려. 하지도원 살려야지라!》

애기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도록 귀쌈을 찰싹찰싹 때리고 하정례앞에 세웠다.

어찌나 달구쳤던지 애기어머니는 눈먼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헤쳐진 젖가슴을 처녀에게 들이대였다.

《서금아, 느 애기다. 젖을 먹여, 빨리!》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리고 헐떡거리며 하얀 젖방울이 튀여나오는것을 지켜보고있었다. 진서도 사무치는 기대에 숨이 막혀 목을 비틀면서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방울, 두방울··· 죽은 애기가 젖을 빨지 않아 불어날대로 불어나고 땅땅해진 젖통을 시꺼먼 손으로 비틀어짜고있다.

좀 더 좀 더!··· 말라터진 입술을 추기며 울대뼈를 움씰거린다. 부끄럼도 모른다. 죽음의 전장에서 비애를 씹고있는것도 무리이지만 부끄럼을 탄다는것은 전혀 가당치 않는 사치인것이다.

애기어머니가 젖을 쥐여짜며 눈물을 뿌렸다. 무엇때문에 울고있는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숨이 막혀 몸부림치며 두볼을 타고흐르는 눈물을 마구 씹어삼키고있다.

젖이 뿜어나왔다. 하얀 젖샘이 솟구쳐뿜으며 생명을 소리쳐부르고있다.

차츰 애기어머니의 얼굴에 홍조가 피고 코마루에 찍혀있는 까만 수수알같은 주근깨들이 살아서 움직거렸다.

더 많은 젖방울이 하정례의 입가에, 코잔등에 튀여났다. 어거지로 벌린 작은 입으로 끊임없이 생명수가 퍼부어졌다. 인제는 처녀의 입에 젖꼭지를 물릴수 있었다. 릉선우의 뻘건 불빛이 처녀의 때국물 오른, 불에 그을린 얼굴에서 어룽거렸다. 김진서는 자기가 꼭 잡고있는 처녀의 손목에서 파란 정맥이 하들하들 미약하게나마 숨쉬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얼마후 하정례는 의식을 되찾았다. 쑥 꺼져들어간 두눈이 김진서를 놀란듯 보고있었다. 까맣게 타들던 엷은 입술이 고통스럽게 움씰거렸다. 정례는 입을 여는데 혼신의 힘을 다 짜는듯 했다. 입귀로 허연 젖물이 흘러나왔다.

《난··· 죽어서 봤어요. 강사령이 나를··· 나를 안아가겠죠···》

《?!···》

진서는 처녀의 얼굴이 벌거우리해지는것을 공포에 질린듯 여겨보았다. 정례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것을 손을 들며 《가만 있소. 정례. 인젠 아무 말도 마오.》하고 속삭이였다. 그자신은 속삭이는듯 했으나 사실은 갈린 소리로 웨치고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같이 처녀를 껴안고 헐금씨금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걸음을 멈추었다. 애기어머니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 울고있는것이였다. 단발을 한 녀인이 그 녀자의 헤쳐진채로 벌려진 저고리앞섶을 여미여주며 뭐라고 속삭이였다. 애기어머니가 단발녀인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기자 대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연에 덮인 산비탈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한마디 말없이도 모든 사람이 김진서를 믿고따르고있었다. 절망에 빠져 모든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도 인솔자만 나서면 다시 용기를 되찾고 희망에 눈뜨는 법이다. 그 인솔자가 비록 말을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의지가 굳세고 눈빛만 번뜩인다면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주는것이다.

하정례는 다시 눈을 감고있었다. 강사령ㅡ 박종하에게 안겨 몽롱한 꿈길속을 헤매고있는지도 모른다.

낮추 떠있는 태양이 타래치는 초연을 헤집고 희뿌연 빛으로 산발을 더듬었다. 그속으로 진서는 하정례를 껴안다싶이 하고 허청거리며 갔다.

삶은 억세다. 사랑이 불타는 한 삶은 언제나 죽음을 이긴다.

《정례동무, 맥을 놓지 마오.》 그는 힘들게 말하였다. 불연기를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타들다 못해 찢어지는것 같았으나 기를 쓰고 말을 이어갔다. 《우린 죽지 않소. 절대로 죽을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요? 맥을 놓으면 죽고마오. 맥을 놓는다는건 벌써 죽음을 기다린다는게 아니겠소. 죽음을 무서워해선 안되지만 맥없이 죽음을 기다린다는건 비겁한 짓이요.》

화염속에서도 간혹 총소리가 탕탕 울리군 했다. 사람들이 진서에게 몰려들었다. 그와 하정례주위에 덩어리처럼 뭉쳐 불타는 산발을 넘어갔다. 그들모두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최후의 희망을 거기서 찾고있다는것을 진서는 깨달았다.

하여 그는 하정례에게, 한덩어리가 되여나가는 사람들에게 목쉰 소리로 줄곧 말을 이어갔다.

《정례동문 그저 복수를 위해서 싸운다구 했더랬지? 그래 복수를 하면··· 어떻게 한다는거요?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거요?··· 아니, 우린 복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싸우는거요. 누구도 우리를 모욕하구 천대하지 못하게 보살펴주구 떳떳하게 내세워주는 그런 세상을 위해서!··· 정례, 내말을 듣소?··· 음, 좋아.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새겨들으시오. 나는 이미 김일성장군님 치하에서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봤소, 철길에서 자갈이나 깔던 나였소. 그러던 내가 김일성장군님 은덕으로 공부를 하고 도민청부위원장으로까지 자라났소. 어디 그뿐인줄 아시오? 도, 시, 군인민회의 대의원선거때엔 형님과 같이 군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받았소. 아버지는 면인민회의 대의원이 되구··· 생각해보시오. 땅이나 뚜지던 우리가 3부자대의원집안으로 불리웠단말이요. 이전같으면 상상이나 할 일이겠소?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같은 무지렁이들도 공부시켜주시구 도와 군, 면의 정사를 보게 내세워주셨단말이요. 이제 전쟁을 이기면 여러분들가운데서도 도와 군, 면의 간부들이 수두룩하게 나올거요, 제 땅을 가지고 농사짓구 새 집을 짓구 황소를 사구··· 부러운게 없이 된단말이요. 이게 무슨 꿈얘긴줄 아시오? 내가 겪은 그대로요, 여러분들도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입산한게 아니겠소, 옳지요?··· 서금이아주머니, 울지 마시오.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린 꼭 이겨요. 꼭 이기구 보란듯이 잘 살게 됩니다. 그러니 절대 맥없이 죽을 생각일랑 마시오. 끝까지 살아서 좋은 세상을 봐야지요!》

검붉어진 그의 두볼이 후둘후둘 떨렸다. 사지판에서 절망적으로 헤매던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덩어리처럼 뭉치여갔다. 걸어가면서, 숨을 헐떡이면서 《김일성장군님!》 《김장군님치하에서》하고 정신없이 뇌이고있었다. 발치에서, 머리우에서 화염이 휩쓸고 불티를 날렸어도 쓰린 연기와 불의 뜨거움도 잊고 허둥거리며 따라섰다. 울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례도 울었다.

진서에게 끌려가면서 재티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애써 쳐들군 했다.

《정례, 힘을 내시오.》 진서가 거쉰소리를 짜냈다. 《힘을 내야 해!》 정례는 허리를 폈다. 휘청거리는 두다리를 내짚으며 뭐라고했는데 너무 걱정말라고 하는듯 했다.

《그래, 그래, 정례동무가 주저앉으면 안되지. 응?! 여기 모든 사람들이 그걸 바라고있소. 동무가 다시 소리치며 앞장서주길 바란단말이요. 이건 정말이요. 이 사람들을 보시오. 정례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오. 동무가 전염병과의 싸움에 앞장서서 숱한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았소. 그래서 다들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는거요.》

《사랑?!》

정례가 비틀거렸다. 진서에게로 향한 그의 눈빛에 무엇인가 따뜻한 빛이 어린듯 싶었다.

《정말이요. 모두가 동물··· 걱정하구··· 사랑하고있소. 그러니 정례, 정 미치겠으면 사랑에 미치오. 그리고 그 사랑을, 그 정을 모두 동지들을 위해 바치시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힘이 사랑이요. 그래서 혁명이란 곧 사랑이라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셨다오. 우리 집에 들렸던 한 항일혁명투사가··· 안길이라는분이요. 그분이 그렇게 말해주더구만. 잊지 마오, 정례. 항일빨찌산은 사랑으루, 동지애로 싸워이겼다는걸말이요.》

땅거미가 졌을 때 일행은 70여명으로 늘어났다. 불속에 나딩굴던 사람들, 인제는 틀림없이 불에 타죽고마는구나 하고 절망속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김진서를 중심으로 벌떼처럼 뭉치여 화염속을 헤쳐나왔다. 목이 다 쉬여버린 진서에게서 끊임없이 새 생활에 대한 꿈을 들으며 희망을 안고 살아나왔다. 극도로 지쳐버린 진서가 잠시나마 입을 다물면 인정사정도 없이 또 말해달라고 간청하군 했다. 들을수록 더 듣고싶은것이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였고 장군님항일빨찌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투쟁인민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다수였지만 어쨌든 그들도 지금은 빨찌산이였기때문이였다.

그새 발산리로 옮겨간 지구사에까지 이르렀을 때 진서는 아무 말도 할수 없는 상태였다. 불을 마시고 불을 토해온 그의 목구멍은 끄슬리다못해 숯덩이로 되여버린듯 했다.

이번엔 정례가 그를 부축해주었다. 죽을 맥도 없던 처녀가,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그 녀자가 진서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다.

《고마와요. 진서동지, 다 죽었던 나를, 우리를 구원해주어서··· 참, 동지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존경해요. 진심으로!》

진서는 아직도 눈물에 얼룩이 진 그 녀자를 지켜보며 떠듬거렸다. 다시금 사랑에 대하여, 동지애에 대하여 말하고싶었는데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후 진서는 석달이상이나 하정례를 만나지 못하였다. 도당의 지시로 당학교(군정대학이라고도 불렀다.) 책임강사로 임명되여갔던것이다. 그곳 당학교의 군사교관으로는 전 인민군중대장이였던 정대천이 임명되였다.